[건국 60·광복 63주년] 잇단 이의신청… 끝없는 친일논란
■ 인명사전 4776명 중 118명 불복해 발간 연기
#1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어 각지에 발송하고,10년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해 체포됐던 독립운동가 위암 장지연.1910년까지 언론인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장지연은 이듬해부터 돌연 친일행적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한시를 게재했고,1914년부터 1918년까지 객원으로 있던 매일신보에 조선총독부의 시정(施政)을 미화하고 옹호하는 700여 편의 글을 발표한 행적 등이 밝혀져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념사업회측은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2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물산장려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민립대학 설립운동의 일환으로 중앙학원을 설립해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던 인촌 김성수. 그는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는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 또 임전대책협의회 간부이자 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일제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등 언론매체에 학도병의 참전 및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게재하고, 강연한 것으로 밝혀져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인촌기념사업회측은 친일명단 수록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대한민국은 올해로 광복 63주년을 맞았지만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숙제인 친일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편찬위)가 오는 29일 발간예정이던 친일문제연구총서(전17권) 중 1차분인 3권짜리 친일인명사전의 발행이 연기됐다.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 4776명 가운데 118명에 대한 이의신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의신청이 기각될 경우 각종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친일인명사전 발간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편찬위에 따르면 이의가 제기된 주요 인물은 만주군 중위 박정희, 무용가 최승희, 교육자 김성수, 언론인 장지연, 소설가 김동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등이다. 일제시기 군인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의 유족과 기념사업회 등은 “당시 군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친일이라고 할 수 있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편찬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이 선전포고했던 적군 소속 장교가 친일인사가 아니라는 것은 비상식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지식인으로 친일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당시에 그들이 썼던 글은 다 어쩔 수 없이 이름만 빌려준 것이며, 참전을 호소하는 강연은 일제가 써 준 것을 그대로 읽은 것일 뿐”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편찬위는 “수백편의 글에서 명의도용을 당하고 있었는데 이를 몰랐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는 입장이다.
편찬위 관계자는 “뜻하지 않은 피해자가 없도록 각 전문분과위원회, 상임위원회의 이중 검토를 통해 8월 중 이의제기 수용여부를 결론낼 것”이라고 말했다. 편찬위는 “실제로 일제하 판검사를 지낸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시국사건을 변론한 기록을 유족이 제출하고, 편찬위가 변론기록을 추가로 찾아내 친일인명사전 등재 대상에서 보류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건국 60주년 논쟁 가열
임정사업회 등 5개 단체 별도 행사 ‘갈라진 광복절’
광복절인 15일 정부가 주최하는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에 불참하기로 한 독립운동 관련 5개 단체가 별도의 광복절 기념 행사를 열기로 해 ‘건국 60주년’ 논쟁이 정점을 맞고 있다. 정치권도 건국 60주년 행사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논란은 광복절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독립유공자회·민족자주연맹·한민족운동단체연합·항일독립운동단체협의회 등 5개 단체는 15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대한민국 건국 89주년 학술회의-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이다’ 행사를 갖는다고 14일 밝혔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몰이해로 정부가 ‘건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반만년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였고,1948년 세워진 정부는 임시정부를 계승해 수립됐다.”면서 “임시정부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단절시키는 것은 엄연한 역사 왜곡”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도 독립선언일·독립인정일·정부수립일 중 독립선언일인 1776년 7월4일을 가장 중요시한다.”면서 “국내 대학들이 전문학교 시절부터 개교년(年)을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헌정회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건국 60년 주장은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말살하는 것으로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독립운동을 부정하면 결국 대한민국이 일제의 사생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 우기종 단장은 “헌법적인 실체로서의 건국은 행정부에 입법부·사법부까지 갖춰진 1948년이 맞다.”고 반박했다.
한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은 이날 ‘건국절 변경’ 움직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15일 정부 기념행사에 당 대표가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야 3당 대표는 서울 용산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합동 참배하기로 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성명을 내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소수 친일보수세력과 야합해 8·15행사를 ‘건국 60주년기념행사’로 치르려는 반역사적인 음모를 자행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헌법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헌 행위이자, 불굴의 투지로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독립투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경병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3명은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이미 공동발의했다. 현 의원은 “상하이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라면서 “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길회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친일사전 발간은 상식을 바로잡는 일”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입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실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조세열(51·경희대 겸임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의 이의신청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2001년 시작한 사전 발간 작업이 7년 남짓 만에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발간을 앞두고 친일인사의 유족이나 기념사업회 쪽의 이의신청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 총장은 “전체 4776명 가운데 이의신청은 118명밖에 되지 않고, 일제공훈록과 당시 사료 등 친일행적을 보여 주는 원문자료들을 충실히 확보했기 때문에 법정까지 가더라도 걱정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특히 만주군 중위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적 논란에 대해 그는 “박정희는 극히 평범한 친일세력의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박근혜씨가 정계에 입문하기 훨씬 전인 1991년부터 이 문제를 다뤄 왔다.”고 잘라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의 후손이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후손의 신원을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연좌제는 있을 수 없다.”면서 “국가 예산으로 기념사업에 나서거나 후손이나 연고자가 땅 찾기에 나설 때, 친일행위가 뚜렷한데 한 적이 없다고 강변할 때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후손을 대상으로 진상을 규명했다.”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