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로스쿨] (상) 설립 취지 어디 갔나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2일 본격적인 학사과정에 돌입했다. ‘교육을 통해 다양한 법률가를 양성한다.’는 설립 취지를 로스쿨은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서울신문이 2009학년도 로스쿨 신입생과 지난해 제50회 사법시험 합격자를 비교한 결과 나이는 어려지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서울 소재 명문대학 출신자들이 여전히 강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3년 뒤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만한, ‘암기 잘하는 인재’만 골라 뽑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법시험을 준비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7+1법을 3년 동안 습득할 생각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8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로스쿨에 지원한 김모(32·여)씨는 서울지역 대학 로스쿨 면접관에게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 상식적인 리걸 마인드를 가진 법률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로스쿨 입학 안내서를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 면접관은 “법학 전공자도 아니고, 늙어서 3년 만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겠느냐.”고 다그쳤다.
나이 많다고 구박하고, 사법시험 경험이 없다고 다그치는 면접은 다반사였다고 로스쿨 수험자들은 말한다.
결과는 로스쿨 신입생 평균 연령 26.8세가 말해 준다. 전문분야에서 실력을 쌓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나이다. 지난해 제50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의 평균 연령인 28.6세보다 1.8세나 어리다.
●“법학전공 않고 나이 많다” 구박
로스쿨 합격자 중 남성은 26~28세가 383명, 여성은 23~25세가 301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졸업예정이었던 학생들이 대거 입학한 것이다. 로스쿨 수험생들은 “어려야 유리하다.”는 말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특히 서울대 로스쿨 등록자 평균 나이는 25.7세로 가장 낮았다. 나이가 서울대 로스쿨의 당락을 좌우했다는 말이 나도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살판 난 ‘SKY’
지난해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1005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275명, 고려대 182명, 연세대 104명으로 이른바 ‘SKY’ 출신이 55.8%를 차지했다. 자료를 공개한 22개 로스쿨(한양대·인하대·경북대 제외) 합격자 1730명 가운데 서울대는 427명, 고려대는 248명, 연세대는 242명으로 세 학교 출신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53%였다.
‘SKY’ 쏠림 현상은 어느 로스쿨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두드러졌다. 최초 합격자 발표 때 정원의 80%를 ‘SKY’ 등 수도권 대학 출신자로 채웠던 한 지방 로스쿨은 이후 등록률이 낮아 최종 등록기간까지 추가 합격자들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지방대 로스쿨 관계자는 “한국보다 먼저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내지 못한 학교들이 폐교위기에 처했다.”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합격 가능성이 높은 지원자들을 뽑아 인가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자교 학생 선호 1위는 서울대
아이로니컬하게 모교 졸업생을 가장 많이 뽑은 로스쿨은 서울대다. 정원 150명 가운데 93명(62%)의 등록자가 서울대 출신이다. 이나마 최초 합격자 중 본교 출신이 100명(66.7%)이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편이다. 서울 지역 로스쿨은 자교 출신 비율을 높이려고, ‘SKY’가 빠진 자리에 자교생을 넣었다는 소문에 시달린다. 이런 흐름은 ‘기수·서열 문화와 엘리트 학벌주의를 없앤다.’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이다. 서울 지역의 로스쿨 관계자는 “‘경기고-서울대’, 혹은 ‘대원외고-서울대’란 학벌에다가 ‘서울대 로스쿨’이 더 보태진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또 ‘지역균형발전’이란 취지도 무색해졌다. 지방 로스쿨 입학자의 70% 이상이 서울지역 출신이다. 지방대 로스쿨 관계자는 “공부는 지방에서 하겠지만, 다시 서울로 가려 하지 않겠느냐.”면서 “결국 ‘우리 학교 출신이 법조계에서 활동한다.’는 것 외에는 지역에 득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불황속 기막힌 ‘생계형 강도’
KT-KTF 합병…휴대전화요금 내릴까
전화·메일로 “회사 떠나라” 통보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