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고추 게놈지도’ 한국주도로 푼다
그동안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작업(게놈 프로젝트)에서 ‘변방 국가’에 불과했던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제컨소시엄을 주도하게 됐다.
농촌진흥청 농업생명공학연구원 배추게놈팀(팀장 박범석)은 충남대 원예학과 임용표 교수팀과 공동으로 최근 배추의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을 위한 국제컨소시엄인 ‘멀티내셔널 브라시카 게놈 프로젝트’(Multi-National brassica Genome Project)를 결성, 연구작업에 착수했다.
●2007년 배추 유전체 완전해독
브라시카는 생물 분류상 배추의 속명으로 국제컨소시엄에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영국, 캐나다 등 1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농업생명공학연구원 배추게놈팀 양태진 박사는 “우리나라는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작업 이외에 연구방향을 제시하고 연구결과를 취합하는 등 프로젝트를 이끌게 된다.”면서 “국제컨소시엄을 주도하는 것은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연구능력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놈 프로젝트는 방대한 연구 범위와 막대한 비용 탓에 주로 국제컨소시엄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이 주도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그동안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양 박사는 “올해 안에 유전체 초안을 만들어 각 나라에 배포, 할당한 뒤 이르면 2007년까지 완전해독할 계획”이라면서 “특히 배추는 김치의 주재료인 만큼 유전체 기능 등 후속 연구도 뒤따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배추의 10개 염색체 가운데 우리나라가 맡은 1개 염색체에 대한 해독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덧붙였다.
●고추 유전체 해독도 ‘우리 몫’
우리나라가 고추의 유전체 해독을 위한 국제컨소시엄을 주도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단장 서울대 최양도 교수)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미국 등 10개국이 공동 진행하는 ‘토마토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 토마토 12개 염색체 가운데 2번 염색체에 대한 해독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유전체연구실 최도일 박사는 “토마토는 고추와 생물 분류상 동일한 ‘과’에 속해 유전자의 90% 이상이 같다.”면서 “우리나라가 토마토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바로 고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시작된 토마토 게놈 프로젝트는 2007년쯤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는 프로젝트 참가국 가운데 가장 빠른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다.
최 박사는 “2번 염색체에 포함된 유전체의 10%가량을 해독했으며 내년 말까지 해독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면서 “토마토에 이어 고추에 대한 유전체 해독은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전자 지도’는 ‘보물 지도’
이같은 유전체 해독작업을 통해 지난 1월 현재 전세계적으로 모두 243개 생물종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다.
동물의 경우 인간과 쥐, 닭 등의 유전체 해독이 끝났으며 침팬지, 돼지 등에 대한 해독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식물은 애기장대와 벼의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졌고 토마토, 옥수수, 알팔파, 담배, 콩 등에 대한 유전자 지도 작성도 ‘초읽기’에 돌입했다. 또 바이러스·세균·효모·곰팡이 등 미생물의 경우 230여종에 대한 해독작업이 끝났고,600여종은 진행중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생물유전체연구실 박승환 박사는 “미생물은 유전자 수가 많지 않은 데다 기술적 어려움과 비용 부담도 대폭 줄어 국제컨소시엄보다 국가별 독자적인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보건위생, 산업, 환경 등의 측면에서 유용성이 있는 미생물을 위주로 유전체 해독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미생물의 ‘보고’(寶庫)인 김치에 포함된 인체에 유익한 수십종의 미생물 등이 우선적인 관심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다양한 생물종에 대한 ‘유전자 지도’가 속속 완성되면서 최근에는 연구의 무게 중심이 유전체 해독에서 유전체 기능으로 옮겨가고 있다.
게놈은 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로 한 생물체가 지닌 유전정보의 집합을 의미한다. 한 개체에 있는 모든 세포는 동일한 수의 유전자와 염색체를 가지고 있어 하나의 세포만 분석해도 전체 유전정보를 알 수 있다.
때문에 ‘유전자 지도’를 바탕으로 개별 유전체의 역할과 기능 등을 규명할 경우 신약 개발, 동물복제, 식량증산, 자원확보 등 현재 인류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의 상당부분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유전자 지도’는 활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미래의 ‘보물 지도’인 셈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