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간판 2008] 간결한 공공시설물… 쾌적한 공간 창출
가용 토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이렇다 할 자원도 보유하지 못한 네덜란드는 공간 활용 측면에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안겨준다.부족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시경쟁력 확보와 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공공디자인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반영돼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공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도시들 속에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들여다본다.
ㅣ암스테르담 글 사진 장세훈특파원ㅣ 네덜란드 도시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설물에 대한 ‘통합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이를 통해 도시경쟁력 향상은 물론,경제 활성화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인구 75만명의 네덜란드 최대 도시인 암스테르담 주변에는 부족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수도권처럼 신도시가 조성돼 있다.암스테르담과 차로 15분여 떨어진 알미르도 간척사업으로 생긴 신도시 중 하나다.
지난 1932년 길이 32㎞의 제방을 쌓기 시작한 이후 1969년 비로소 간척사업이 마무리됐다.간척사업으로 형성된 4만 3000㏊의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숲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어 1976년 정부가 5개 지구에 대한 계발계획을 수립하고,인프라 등 도시의 기본 틀을 구축한 뒤 1977년 알미르항구 인근부터 개발을 본격화했다.현재 3지구까지 개발이 완료됐으며,지난해부터는 4지구 개발에도 착수했다.개발 완료 시점이 2050년인 점을 감안하면 신도시 하나를 건설하는데 100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특히 알미르 시내 중심상가에 들어서면,눈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건물·간판·도로·바닥패턴·가로수·가로등·도로표지판·볼라드(말뚝) 등 공간 전체가 통합적으로 디자인됐기 때문이다.다양한 공공시설물들이 간결하면서도 모든 기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조화롭게 배치됐다.
최만진 경상대 교수는 “사람이 인식하는데 있어서도 인식대상의 체계성이 중요하며,이는 수많은 시설물이 있음에도 시각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다.”면서 “통합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시설물의 크기가 작아도 쉽게 눈에 띄고,약간의 변형만으로도 차별화가 가능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인근,암스텔강에 위치한 3개 섬에도 70년대 후반 자바·KNSN·보르네오 등 신도시가 조성되기 시작했다.컨테이너 부두시설이 있던 곳을 재개발한 것으로,지금은 ‘건축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다만 이들 3개 신도시는 도시계획·공간계획·건축·디자인 측면에서는 성공했지만,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소형·임대주택을 선호하는 수요를 예측하지 못해 대형·분양주택 위주로 조성돼 빈집이 많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해 2000년대 들어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신도시가 아이부르그이다.
암스테르담 서북쪽에 위치한 아이부르그에는 오는 2015년까지 모두 5000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아이부르그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차량 운전자 등을 모두 배려한 공간 활용이 눈에 띈다.때문에 차도보다 오히려 보행로와 자전거도로가 넓다.아이부르그 시내를 가로지르는 주 도로조차 편도 2차선에 불과하고,이 중 1개 차선은 주차 공간으로 활용될 정도다.간판도 상업지역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최 교수는 “네덜란드 신도시는 구색 갖추기 식의 평면적 도시계획만으로는 부족하며,문화와 취향 등 3차원적인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면서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핵심은 다양한 시설물에 대한 통합디자인을 통해 공간의 질 향상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구 60만명의 로테르담은 암스테르담에 이은 네덜란드 제2의 도시로,교역·상업·물류 중심지이다.
세계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쇼부르크 광장에서 시청에 이르는 800m 구간의 레인반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행자 전용공간으로 꾸며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초 시내 중심부에 자리잡은 레인반 거리는 차량들이 이동하는 주요 통행로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로테르담중앙역 주변지역에 대한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이를 통해 일반 상가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 통합디자인을 적용한 대형 쇼핑몰로 탈바꿈한 것이다.
보행자 전용도로의 폭만 20m가 넘는다.이처럼 넓은 도로 폭을 감안해 가로등·쓰레기통·벤치 등이 직선 또는 지그재그 형태로 배치돼 있다.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상점을 찾을 수 있도록 자연채광의 원리가 적용된 캐노피(덮개)도 설치됐다.
간판은 보행자들의 동선을 고려해 캐노피 아랫부분에 도로와 수직 방향으로 세워져 있다.상점마다 간판의 규격을 통일해 시각적인 자극도 최소화했다.여기에는 간판 크기가 2㎡를 넘으면 세금을 내도록 한 엄격한 규제도 한몫했다.
특히 레인반 거리 인근에는 로테르담 유일의 백화점인 바이엔코르프도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쇼핑객들은 백화점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물론,공간의 쾌적성까지 확보하고 있는 레인반 거리를 찾는다고 한다.최 교수는 “쇼윈도에 전시된 상품이 간판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간판 크기나 개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면서 “결국 사람들을 끊임없이 즐겁게 하는 공간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경쟁력이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shja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