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아파트 중독증’ 에서 벗어나자/임태순 논설위원
사정상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3층 건물의 2,3층에 전세든 것이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다가구주택으로 옮긴 것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왔으니 20여년만에 아파트를 벗어난 셈이다. 우리들에겐 알게 모르게 ‘집’하면 ‘아파트’라는 고정관념이 배어 있다. 어느 새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0%를 넘어섰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사오기 전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난방, 온수 등의 불편은 예견했던 일이지만 특히 일반주택에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걱정이 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잘 지낸다. 아파트의 발전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다가구주택도 많이 진화해 난방과 온수사용에도 큰 문제가 없다. 집 주변을 돌아본 아내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기대감을 표시했다. 청과물 가게가 어디에 있고 세탁소 세탁물 가격은 얼마라면서 아파트에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동네’,‘이웃’을 느끼게 돼 사람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불편한 점도 많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아파트였으면 문앞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살짝 집어 왔을 텐데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어야 한다. 방범도 걱정이 된다. 아파트는 경비가 있어 안심이 됐지만 이제 집의 도난, 도둑 등 안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집 주변도 청소해야 하고 눈 치우기 조례에 따라 눈이 오면 눈도 쓸어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웬만한 것을 다 해결해줘 주부와 가장의 손을 덜어준다. 재테크로서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다. 아파트 가격은 평당 2000만원을 넘어서면서 재산을 불리는 강력한 수단이 됐다.
전세시장도 아파트 우선이다. 세입자들도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보다는 시장이 넓어 구하기 쉽고 순환이 잘되는 아파트를 찾는다.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기여한 것도 아파트다. 공동주택이다 보니 초고속인터넷망을 깔기가 훨씬 수월하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와서 케이블 TV이용료가 비싼 것을 보고 깜빡 놀랐다. 설치비로 4만5000원을 내고 한달수신료는 3.5배 비쌌다. 아파트분양은 곧 주택정책이라 할 정도로 아파트 중독증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채권입찰제, 청약저축, 아파트전매,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원가공개 등 그동안 쏟아져나온 각종 제도가 모두 아파트와 관련된 것이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뉴타운도 아파트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달동네나 단독주택 지역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실시할라치면 주민들이 돈이 되는 아파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얼마전 도봉구에서부터 시내인 용산, 마포를 거쳐 은평구에 아파트를 대량 공급해 강북을 U자형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면서 도시의 건강성, 역사성을 잃어가고 있다. 공동체의식, 커뮤니티, 사람사는 재미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단절과 소외, 획일성이 가득하다.600년 역사의 서울은 아파트 열기에 밀려 고도(古都)의 향취를 잃어가고 있다. 내집값만 올라가면 그만이라는 현세대의 이기심과 탐욕심에 아무도 2,3세들이 살아갈 도시의 미래, 서울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멈포드는 “각 세대는 그 세대가 창조한 도시에 자신의 전기를 기록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도시도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산을 아파트로 병풍처럼 에워싼 서울의 모습에 대해 후손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 모두가 아파트중독증과 대세론,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stsl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