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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태순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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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기부의 두얼굴/임태순 논설위원

    기부는 서구의 전통이고 문화이다. 로마시대 때 원로원 등 귀족들은 대회당이나 목욕탕 등을 건설해 시민들에게 남겼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장군 등 유공자들에게 전리품이 주어진다. 이처럼 부를 축적한 귀족들이 노후에 사재를 털어 공공시설을 지어 기부했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부의 사회환원인 셈이다. 여기에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국방의 의무 등을 다하는 것이 이른바 ‘가진 자의 고귀한 의무’로 불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물론 기독교도 기부문화가 뿌리내리는 데 일조했다. 수입의 10%를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 예수님이 다섯개의 보리빵과 물고기 두마리로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나눔과 베풂의 힘을 일깨워주는 일화이다. 반면 우리의 기부문화는 아직 인색하다. 나눔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한해 기부액은 5만 1000원이었다. 이는 1998년 미국의 1075달러(105만여원),96년 일본의 240달러(23만여원)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이다. 그나마 미국은 정기적인 기부자가 전체의 70%나 되지만 우리나라는 18.2%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를 말해주듯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실적도 ‘개미’보다는 기업 등 ‘큰손’들에 크게 좌우된다. 경기가 얼어붙으면 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금모으기운동, 태풍이나 홍수피해시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의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기부문화보다는 위기상황에 따른 동원체제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엊그제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금 내역이 공개됐다. 몇백만원 등 고액기부자들은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공천을 노리고 낸 로비성 또는 대가성 후원금이라는 분석이다. 기업들은 업무와 연관된 상임위 의원들에게 보험성으로 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은행 ‘얼짱’ 농구선수 김은혜씨가 거인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선배농구인 김영희씨를 위해 연봉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내놓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또 정부보조금을 받는 80대 할머니는 20년간 모은 돈 6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증했다고 한다. 대비되는 우리 시대 기부의 두 얼굴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그리운 악마/임태순 논설위원

    점심에 만난 친구가 ‘나 열받았다.’라는 이메일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 졸업식에 갔다 쓸쓸하게 혼자 돌아온 아버지가 보낸 것이었다.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돼 만사 제쳐놓고 달려갔다고 한다.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예쁜 꽃까지 준비하니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불쑥 커버린 딸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교정을 오가며 열심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졸업식이 끝나면 근사한 곳으로 가 점심도 먹고 선물도 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갔다 온 딸은 “아빠, 친구들하고 점심먹기로 했으니 먼저 가.”하더니 친구들에게 달려가더란다. 그날따라 비는 왜 그리 추적추적 내리던지. 아버지는 연인 같은 딸에게 버림받은 쓰라린 심정을 이수익 시인의 ‘그리운 악마’란 시로 달랬다.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있으면 좋겠다./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그/악마같은 여자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정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흥남철수 그후/임태순 논설위원

    아버지 손에 끌려 13살때 피란내려온 사촌형이 한분 계시다.1950년 12월21일에 거제도에 닿았다고 하니 그 유명한 ‘흥남철수’때인 모양이다. 그가 지난해 북에 있는 가족소식을 듣게 됐다며 한동안 흥분했던 적이 있다. 브로커가 달라붙었던 것이다. 몇차례 맞느니, 틀리느니 옥신각신하다가 어머니, 누나, 여동생, 남동생 등 가족사진과 편지가 전해졌다. 첫번째 편지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공부 잘하고 예뻤던 누나는 의사로 정년퇴직한 뒤 ‘년료보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남동생은 위암으로 죽었지만 여동생 2명은 각각 함흥 성천강 피복공장 간부, 도 출하사업소 지도원으로 역시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설 때 그후 소식을 물어봤다. 여동생으로부터 짤막한 편지가 날아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보고싶은 마음 간절하나 자식들한테 피해를 줄 것 같아 따라나서지 못합니다. 더 이상 사람을 보내지 마세요.”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동생이나 누나를 만나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보자 “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지.”하고 입맛을 다신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아파트 중독증’ 에서 벗어나자/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파트 중독증’ 에서 벗어나자/임태순 논설위원

    사정상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3층 건물의 2,3층에 전세든 것이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다가구주택으로 옮긴 것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왔으니 20여년만에 아파트를 벗어난 셈이다. 우리들에겐 알게 모르게 ‘집’하면 ‘아파트’라는 고정관념이 배어 있다. 어느 새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0%를 넘어섰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사오기 전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난방, 온수 등의 불편은 예견했던 일이지만 특히 일반주택에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걱정이 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잘 지낸다. 아파트의 발전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다가구주택도 많이 진화해 난방과 온수사용에도 큰 문제가 없다. 집 주변을 돌아본 아내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기대감을 표시했다. 청과물 가게가 어디에 있고 세탁소 세탁물 가격은 얼마라면서 아파트에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동네’,‘이웃’을 느끼게 돼 사람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불편한 점도 많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아파트였으면 문앞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살짝 집어 왔을 텐데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어야 한다. 방범도 걱정이 된다. 아파트는 경비가 있어 안심이 됐지만 이제 집의 도난, 도둑 등 안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집 주변도 청소해야 하고 눈 치우기 조례에 따라 눈이 오면 눈도 쓸어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웬만한 것을 다 해결해줘 주부와 가장의 손을 덜어준다. 재테크로서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다. 아파트 가격은 평당 2000만원을 넘어서면서 재산을 불리는 강력한 수단이 됐다. 전세시장도 아파트 우선이다. 세입자들도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보다는 시장이 넓어 구하기 쉽고 순환이 잘되는 아파트를 찾는다.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기여한 것도 아파트다. 공동주택이다 보니 초고속인터넷망을 깔기가 훨씬 수월하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와서 케이블 TV이용료가 비싼 것을 보고 깜빡 놀랐다. 설치비로 4만5000원을 내고 한달수신료는 3.5배 비쌌다. 아파트분양은 곧 주택정책이라 할 정도로 아파트 중독증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채권입찰제, 청약저축, 아파트전매,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원가공개 등 그동안 쏟아져나온 각종 제도가 모두 아파트와 관련된 것이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뉴타운도 아파트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달동네나 단독주택 지역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실시할라치면 주민들이 돈이 되는 아파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얼마전 도봉구에서부터 시내인 용산, 마포를 거쳐 은평구에 아파트를 대량 공급해 강북을 U자형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면서 도시의 건강성, 역사성을 잃어가고 있다. 공동체의식, 커뮤니티, 사람사는 재미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단절과 소외, 획일성이 가득하다.600년 역사의 서울은 아파트 열기에 밀려 고도(古都)의 향취를 잃어가고 있다. 내집값만 올라가면 그만이라는 현세대의 이기심과 탐욕심에 아무도 2,3세들이 살아갈 도시의 미래, 서울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멈포드는 “각 세대는 그 세대가 창조한 도시에 자신의 전기를 기록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도시도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산을 아파트로 병풍처럼 에워싼 서울의 모습에 대해 후손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 모두가 아파트중독증과 대세론,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계 주/임태순 논설위원

    계주하면 가을운동회가 생각이 난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가을운동회의 대미는 계주가 장식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 대표가 나와 배턴을 주고받으면서 달리기를 한다. 이어 달리다 보니 순서가 자주 뒤바뀐다.1학년은 청군이 앞서나가면 2학년은 다시 백군이 앞지른다. 배턴을 떨어트리는 실수도 자주 발생, 엎치락뒤치락한다. 이래저래 한편의 드라마일 수밖에 없고 보는 사람은 마음을 졸이게 된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이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이후 이 부문에서 줄곧 우승을 놓치지 않아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여자양궁이 하계올림픽 단체전에서 5연패를 하고 있는 것과 견줄 수 있는 쾌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번 3000m 계주도 각본없는 드라마여서 관전의 묘미를 더해주었다. 주연배우는 4번주자였던 변천사 선수였다. 그녀는 지난 19일 열린 여자 1500m에서 3위로 골인했으나 실격 처리돼 올림픽 동메달을 놓쳤다. 그러나 변 선수의 실격은 진선유, 최은경 등 우리나라 낭자들이 1,2위를 차지하는 등 메달을 독식하는 것에 대한 역풍이 작용한 것이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나이인데도 동료들이 메달을 땄으니 괜찮다고 말해 국민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이런 의연함, 희생정신은 계주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변 선수는 고비고비에서 우승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했다.27바퀴를 도는 중반 레이스에서 한국이 3위로 처지자 역주,1위로 배턴을 넘겨주었으며 4바퀴가 남은 종반전에서도 중국선수를 따돌리고 1위로 진선유에게 배턴을 넘겨줘 이름 그대로 금메달을 전하는 ‘천사’가 됐다. 쇼트트랙은 체구가 작은 동양인에게 유리한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점에 착안, 쇼트트랙에 집중투자해 동계올림픽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호리병주법, 납조끼훈련을 개발해낸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계주는 팀워크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협동과 희생정신, 단결심이 없었으면 이런 선진 훈련법은 아무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단합된 힘으로 백인우위의 동계올림픽에 계속 황인종 돌풍을 이어가기를 기원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봄의 속도/임태순 논설위원

    봄에도 속도가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될까. 봄이 ‘오고 간다.’는 말이 있으니 있을 법하다. 배달된 잡지책 표지에 봄의 속도를 소개한 글이 눈에 띈다. 정답은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정도라고 한다. 계산법은 이렇다. 제주도에서 개나리가 피면 보통 20일뒤 서울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의 직선거리가 440㎞이고 이를 20으로 나누면 하루에 22㎞씩 올라오는 셈이다. 다시 24로 나누면 개나리의 북상속도는 시속 900m로 나온다.3살배기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으면 한시간에 이 정도 간다고 한다. 개나리에 비유해 산출한 봄의 속도이지만 그럴듯해 보인다. 봄다운 속도라는 생각도 든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모습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운 분위기가 솟는 봄의 이미지가 느껴져 궁합도 맞는 것 같다. 17일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7.3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적으로 반짝 추위가 몰아닥쳤다. 아침에는 바람까지 불어 온 몸을 움츠리게 했다. 일요일인 19일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다. 봄아, 아장아장 걸어선 대동강 물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속도 좀 내자.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새마을 운동/임태순 논설위원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새마을운동 노래의 한 구절이다. 요즘말로 하면 농촌 업그레이드 운동인 새마을운동은 70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근면, 자조, 협동의 기본정신에 따라 주민 스스로 농경지와 농로를 정비하고 교량과 마을창고를 지어 농촌의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농업기계화, 농한기 부업개발 등을 통해 농촌소득이 증대되고 도시로도 번져 뒷골목 정비, 생활오물분리수거 등의 사업이 실시됐다. 새마을운동은 1988년 국정감사와 5공청문회 등을 통해 된서리를 맞으면서 관주도에서 순수민간운동으로 전환됐다. 중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눈길을 끈다.14일 베이징에서 전국 31개 성과 시의 주요간부들이 머리를 맞대 일주일동안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중국 농촌에 접목시키는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도 참석한다고 하니 국가적 관심도를 엿볼 수 있다. 중국으로선 개방, 개혁의 뒷전에 놓여 불만세력이 되고 있는 농촌문제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한류1호’,‘원조한류’라고 할 수 있다.70년대부터 나이지리아, 네팔 등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이 내방, 새마을운동을 배워갔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71개국 1945명이 새마을연수원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다. 또 4만명 가까운 인원이 3732회에 걸쳐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방문, 새마을운동을 견학하고 돌아갔다. 그렇지만 새마을운동은 유신체제유지 및 옹호 수단으로 이용된 부정적 측면도 있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권위주의적인 사회체제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토지소유자들의 이해다툼을 어떻게 조정했는지 궁금해 농로확장 등에 대해 물으면 연수원측에선 토지소유자가 마을발전을 위해 희사했다고 답하는데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마을운동이 개발도상국들에 농촌개발의 모범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균형감각을 갖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스테디셀러 한류로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디지털 치매/임태순 논설위원

    집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거나 평소 자주 들르던 처갓집을 찾지 못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본다. 휴대전화에 집전화번호를 저장해놓고 단축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승용차를 몰고 처갓집을 가는 사람들에게 발생한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사용에 익숙한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기억력이나 계산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디지털치매’(Digitai Dementia)라고 한다.‘IT 건망증’ ‘과학기술로 인한 건망증’ 등으로 불리다 지난해 국립국어연구원이 신조어로 발표하면서 용어가 정리됐다. 디지털치매현상은 생활 주변에 널리 번져 있다. 노래방 기기의 가사에 익숙했거나 한자전환모드로 한자를 써온 사람들이 갑자기 애창곡 가사가 생각나지 않거나 잘알고 있던 한자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암산한 값을 확신하지 못해 전자계산기로 다시 계산하기도 하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키보드로 입력하기도 한다. 치매현상은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때마침 외신은 영국에서 대학 신입생들의 학습수준을 조사해봤더니 덧·뺄셈을 못하거나 구두점, 철자법을 잘 몰라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입시위주의 주입식교육 때문이라는 분석이지만 인터넷 정보를 짜깁기한 논문도 부지기수였다는 걸로 미루어 디지털기기에 과다노출된 것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기억력 감퇴는 진화론의 용불용설에 기인한다. 사람의 꼬리가 쓰임새가 적어져 없어졌듯이 자주 사용하지 않다 보니 평소 잘 알던 것들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치매라는 용어가 붙었지만 뇌의 집중력이 떨어져 일시적으로 생긴 현상인 만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고급 두뇌기능인 암기와 연산기능을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창조적인 뇌 기능이 퇴화할 가능성은 있다면서 우려를 표명한다. 정보화 시대에 디지털 기계사용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부작용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는 것. 치매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치매를 예방하려면 단축키 대신 손으로 집 전화번호를 누르는 등 직접 손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일기를 쓰고 정신을 집중해 신문과 잡지를 읽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귀찮더라도 조금씩 손을 쓸 일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오만/임태순 논설위원

    눈 내리는 날이면 어느해 겨울 산행의 기억이 떠오른다. 봄을 앞두고 있는 이맘때였다. 주말을 맞아 북한산 삼천사를 찾았다. 끄물끄물하던 날씨는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매표소를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달려나와 이름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예전에 없던 일이어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눈이 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북한산에 자주 와 본 데다 눈도 많이 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뿌리쳤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산에 올라가면 눈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투덜거리며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한동안은 산행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어 할아버지가 괜한 걱정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산에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면서 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등산로도 희미해져갔다. 예전의 눈대중으로 길을 재촉했으나 어느새 눈이 수북이 쌓이면서 등산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할아버지에게 큰소리 친 것이 생각나 오기를 부려보았으나 굵어지는 눈발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매표소를 되돌아 나오면서 한순간 오만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할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입석/ 임태순 논설위원

    자라나는 세대들이야 입석표라는 말이 생소하겠지만 40대 이상의 장노년층에겐 낯익은 단어이다. 열차가 주요 장거리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시절에는 좌석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입석(立席)은 말 그대로 서서 가는 것을 말한다. 요금은 좌석표에 비해 60∼70% 쌌다. 어렵던 시절 어머니, 할머니 등 어른들은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좌석표 대신 입석표를 구입했다. 열차는 승객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들이 있어 큰 역을 지나면 빈 좌석이 나기 마련이다.1∼2시간 앉아 있다 좌석주인이 나타나면 다시 자리를 내주고 그러다 보면 목적지에 닿는다. 좌석에 앉았을 때 가장 난감한 것은 할머니나 아이를 업은 여성이 입석표를 갖고 열차에 오르는 것이다. 잠자는 체하면서 잠시 고민하다 자리를 양보하곤 했었다. 좌석표는 명절에 위력을 발휘한다. 귀성열차의 좌석표를 구하지 못하면 고향행을 포기하게 된다. 콩나물 시루속에서 어린 자녀들과 손을 잡고 장거리 여행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좌석표를 확보하면 뿌듯하다. 차창 밖으로 고속도로나 국도에 승용차가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기 그지없다. 한국철도공사가 설 연휴 동안 KTX에 입석표를 발매한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론 괜찮다고 여겼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귀성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1∼2시간 정도 서서 가겠지만 빨리 가는 만큼 귀성승객들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설 연휴 입석표 발매실험은 실패로 끝난 것 같다. 승객들의 반응은 엇갈리지만 ‘편하려고 탔는데 짐짝 같았다.’는 등 반대론자들이 60% 된다고 한다. 반면 귀성전쟁을 치러야 하는 명절에는 필요한 것 아니냐는 옹호론자들은 40%에 그쳤다. 철도공사는 설문조사를 거쳐 추후 명절 입석표 발매여부를 결정하겠다지만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행할 것 같지는 않다. 때마침 귀성, 귀경전쟁도 한결 누그러지는 추세다. 역귀성이 느는 데다 유비쿼터스에 GPS시스템 등 첨단 지리정보장치의 개발로 귀성, 귀경교통 흐름도 한결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철도공사의 위험한 실험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신년결심과 신년특별연설/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년결심과 신년특별연설/임태순 논설위원

    해가 바뀌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결심을 한다. 웰빙시대를 맞아 금연, 금주, 다이어트에서부터 외국어 및 컴퓨터 익히기 등 실용적인 목적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도와주는 ‘결심(決心)상품’이 많이 팔린다. 어학학습기, 금연파이프, 다이어트신발, 몸짱사이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 상품은 장수상품이 되지 못하고 대부분 단명하고 만다. 정초를 맞아 굳게 먹었던 마음이 오래가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 십상이기 때문이다. 신년 결심중엔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담배인삼공사에 따르면 1월에 급감했던 담배판매량은 몇개월 지나면 다시 원상회복한다고 한다. 새해를 맞아 마음을 다잡는 것은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다 1년을 새로 시작하는 전환점에서 분위기를 일신하고 새 출발하려는 심리가 있다. 그러나 마음먹는 것과 행동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마음 먹은 대로 몸이 따라주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연초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전 신년특별연설을 했다. 매년 연두회견을 통해 국정운영방향을 밝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청와대는 연두회견 형식으로는 언론에 기자문답 내용만 부각돼 정작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특별회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회견의 요지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경제·사회부문의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갈수록 확대되는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격차를 예로 들면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소득층과 소외층의 교육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평소의 노 대통령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확보 방안은 조세논쟁으로 이어질 텐데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별로 득될 것 없는 세금문제까지 과감히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재원확보 방안은 쟁점이 됐다. 무책임하게 어젠다만 던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판에서 시작돼 적자재정 편성, 증세 등 논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재원논쟁은 지난 25일 신년기자회견에도 반영됐다.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방안이 조세논쟁으로 번진 것을 의식한 듯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면서 대신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재원은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효율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1주일전 예산절감으로는 재원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발언에서 물러선 것이다. 여당과 한배를 타고 있는 대통령으로선 5월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20대80 사회가 10대90 사회로 변할 만큼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의료, 주거, 교육 등 그 격차는 삶의 질 부분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통령이 어렵게 말을 꺼낸 만큼 양극화해소 의지는 작심삼일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5월 선거가 있어 부담스럽지만 세금도 손댈 것이 있으면 과감히 손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하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한다. 더더구나 증세, 감세 논쟁으로 희석돼서도 안 될 것이다. 언행이 일치하여 양극화 해소가 올 한해를 꿰뚫는 화두가 되기를 기대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맞춤형/임태순 논설위원

    ‘맞춤’이란 말이 부쩍 많이 쓰인다. 맞춤 여행, 맞춤 분만, 맞춤식 교육, 맞춤형 복지, 맞춤형 줄기세포…. 개성화 시대에는 제품이나 정책이 당연히 소비자,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춘 맞춤형이어야지 상품성이 높을 것이다. ‘안성맞춤’이란 말도 있지만 맞춤이란 말은 아무래도 양복과 연관이 깊다. 어린 시절 읍사무소가 있는 윗마을에 가면 ‘○○라사’ ‘××라사’라는 간판이 붙어 있을 정도로 양복점이 흔했다. 라사(羅紗)는 포르투칼어(rasa)로 두꺼운 모직의 한종류를 말하는 것으로 맞춤양복점을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우리나라에 양복이 처음 전래된 100여년 전부터 양복은 재단사가 직접 만든 맞춤형이었다. 양복점에서 옷감과 디자인을 고르고 치수를 잰 뒤 가봉(假縫)을 거치면 양복이 완성된다. 시침질을 하는 가봉을 거치는 만큼 몸에 딱 맞았다. 양복은 곧 맞춤(Tailor)이었다. 맞춤양복은 80년대 들어 기계의 발달로 기성복(ready made)이 대량 생산되면서 쇠퇴했지만 요즘 들어 재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맞춤양복 체인점까지 생기고 있으니 이 역시 개성화 시대에 발맞춘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풍속도라 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이 달러를 위조하는 등 파문을 일으키자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라는 칼을 들고 나왔다. 맞춤형 봉쇄는 2002년 재연 이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북핵문제에 대해 최근 미국의 네오콘들이 들고 나온 강경 제재책이다. 맞춤형 봉쇄는 주변국 또는 국제기구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에 대한 물자나 현금지원 중단, 북한의 미사일 수출 해상 봉쇄 등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에 전방위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개념이다. 북한을 양복에 비유하면 맞춤형보다는 기성복의 이미지가 강하다. 김정일 위원장도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중국 공산당의 전통복장인 중산복을 애용한다. 한동안 잠잠하던 맞춤형 봉쇄 주장이 다시 불거져 나와 한반도에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이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에 지금 더 필요한 것은 맞춤형 봉쇄보다는 맞춤형 양복일지도 모른다. 북한에 재갈을 물리기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개혁, 개방이라는 맞춤형 양복을 입혀 스스로 국제사회에 걸어 나오도록 하는 것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경찰모자/임태순 논설위원

    현직 경찰간부가 청와대에 보낸 경찰모자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찰청 소속 유모 경감은 “내 명예를 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승진할 때 썼던 모자를 우송했다고 한다. 모자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추위나 더위를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부터 멋을 내기 위한 장식용으로도 이용된다. 특정집단을 일반인들과 구분하는 제복으로서의 이미지도 강하다. 그래서 모자는 사회적 지위나 권위, 명예를 상징하고 조직의 통일성, 일체감을 가져온다. 우리 조상들은 갓을 쓰고 양반의 위세를 부리기도 했다. 경찰모자는 단정함과 엄숙함을 상징하는 파란색 바탕에 한 가운데 무궁화와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창에는 노란테가 둘러쳐져 있다. “명예를 돌려드린다.”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 경감은 지난해 농민시위 진압과정에서의 공권력 행사가 폭력으로 매도되고 경찰청장이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모자를 보냈다. 유 경감은 “정당성이 훼손된 공권력이 어떻게 범죄 앞에 설 수 있느냐. 이번 사건으로 경찰은 서 있는 발판을 잃었다.”며 “제복을 입은 사람의 명예의 상징인 모자를 국민(대통령)에게 돌려드린다.”고 말했다. 또 “정치권은 우리를 폭력배로 낙인찍었다.”며 “시위대의 행동과 관계없이 경찰만 잘못이라고 하면 공권력이 설 자리가 없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유 경감의 서운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경찰 간부가 경찰의 상징이자 공권력의 상징이기도 한 모자를 국가최고책임자에게 보낸 것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공권력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시위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과잉진압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공권력은 치안질서와 국민의 생명을 유지하는 범위내에서 사용되어야지 남용되어선 안된다. 또 국민을 다독거리고 어루만져 줘야 할 경찰이 청와대를 겨냥해 국민들에게 불만을 표출한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쩌다 나라의 기강이 이렇게까지 무너졌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다행히 청와대는 이 모자를 반송했다고 한다. 글을 올린 경찰간부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진해서 글을 내렸다고 한다. 반송된 모자를 쓰고 모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봤으면 한다. 경찰의 명예와 권위는 제 본분을 다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연하장/임태순 논설위원

    연초라서 그런지 연하장이 심심치 않게 배달된다. 이메일 또는 우편물로도 받는다. 우편으로 연하장을 받으면 우편배달부 아저씨들이 지난 연말과 연초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카드나 연하장을 받으면 뭔가 좀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보내는 사람의 정이나 체취, 온기가 덜하다. 철 지난 연하장 가운데 무릎을 치게 만든 것이 하나 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 두개 적힌 것 외에는 여느 카드나 연하장과 다름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당연히 부부의 이름이라는 짐작이 들었지만 신년인사 겸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하나는 부인의 이름이라는 말과 함께 평소에도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편지 등 소식을 전할 때에는 부부의 이름으로 보낸다는 답변이었다. 여풍당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 각계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만 아직도 많은 아내, 또는 어머니의 이름은 남편, 또는 아버지의 이름 뒤에 묻히는 것이 현실이다. 연하장을 보낸 이의 부인을 본 적이 없었지만 남편과 나란히 적혀있는 이름에서 그들 부부의 사랑과 행복이 새록새록 전해져왔다. 가정의 행복을 주위에 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중의 하나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느린 동네/임태순 논설위원

    얼마전 봉사단체 회원과 달동네를 둘러봤다. 달동네는 홍릉에서 전농동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다 쓰러져 갈 것 같은 한옥 몇채가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시절 등·하굣길로 이용한 낯익은 길이었다. 학창 시절 번듯했던 한옥촌은 30여년의 세월속에 남루하고 초라해졌다. 주위에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아파트의 기세에 눌려 더욱 왜소해 보였다.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할머니가 문간방에서 ‘누가 왔냐’며 고개를 내민다.87세의 고령이었지만 정정했다. 문간방 입구에 쳐놓은 비닐 구멍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기른 아들이 있었지만 생모(生母)를 찾게 되자 떠나갔다고 한다. 딸은 생활이 어려워 서로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봉사단체 회원은 “재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달동네엔 더 이상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면서 “그래서 동네가 참 느리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연탄이 배달되면 가스에 중독되지 않게 잘 가세요.” 하자 “연탄가스에 중독돼 소리없이 죽었으면 원이 없겠어.” 한다. 이러다 느린 동네는 죽은 동네가 되는 건 아닌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낙방자 마케팅/임태순 논설위원

    10년,20년 전만 해도 기업체 채용 공고를 보면 이력서 등 입사서류는 일절 반환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빠지지 않았다. 취업에 목매야 하는 구직자들로선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을 여유가 없었고, 또 그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다 취업난이 가중되자 한때 입사 지원서류를 반환해 달라는 독자투고가 줄을 이었다. 인터넷 채용이 활성화되기 전 직접 손으로 쓴 이력서를 회사에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응모서류를 부치던 시절의 이야기다.40∼50번 이력서를 제출해도 취업이 어렵던 시절에 구직자들에겐 이력서 한 장도 아까웠을 것이다. 그후 행정고시, 사법시험 등 각종 시험에서 이의를 제기해 낙방자들이 구제받거나 승소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개되면서 수험생들의 권리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낙방자 마케팅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올 하반기 신입사원 최종 합격자를 가려내기에 바쁜 은행들은 요즘 불합격자들에게도 일일이 위로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일부 은행은 탈락의 고배를 맛본 수험생들에게 불합격한 이유와 자신의 약점 등을 알려줘 다른 채용시험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준다. 나아가 꽃을 배달해 주는가 하면 계약직 사원에 재응시할 경우 특전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은행들이 낙방자 챙기기에 나선 것은 합격하지 못한 우수 인재들을 나몰라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선 이들 또한 고객이다.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정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부담이 된다. 실제 낙방자들은 취업 사이트에 모은행의 경우 면접시험에서 여성차별적이었다는 등의 글을 올려 놓아 인사 담당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기업 이미지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불합격자들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입사 시험에서 우월적이고 고압적이던 기업들이 탈락자들에게도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장삿속이 엿보이지만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기업들로선 탈락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 응시생들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방자들이 취업 사이트 등에 글을 올리는 것도 취업과 관련된 정당한 권리찾기에 그쳐야지 해당 기업에 흠집을 내거나 해코지를 하는 것으로 번져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하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히트상품 청계천/임태순 논설위원

    10월부터 시작된 청계천 열풍, 열기가 연말이 돼도 식을 줄 모른다. 개장 57일만에 청계천 방문자가 서울시 인구에 해당하는 1000만명을 넘어서더니 엄동설한인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찾고 있다. 또 미술대전, 해외비엔날레 등 각종 국내외 상을 수상하더니 급기야는 올해의 최대 히트상품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21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05년 히트상품 선정결과에 따르면 도심속에 자연을 복원한 청계천이 연령, 직업에 관계없이 응답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연구소는 청계천을 이종격투기 K-1(5위), 카트라이더(7위)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새로운 재미를 통해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도시인을 위한 생활형 휴식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 대박을 터뜨리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청계천은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그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조깅이나 산책장소, 데이트장소로 수시로 얼굴을 바꾸고 있으며 인근의 대형 서점과 결합돼 책을 사고 한번 들르는 도심 나들이 코스로도 부상하고 있다. 이런 시너지 효과는 이제 시작이다. 청계천은 앞으로 더 많은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낳게 될 것이다. 청계천 신드롬에 힘입어 이명박 서울시장의 인기가 치솟자 차기 시장을 노리는 후보자들이 제2, 제3의 청계천을 찾느라 혈안이 돼 있다고 한다. 가시적인 대토목공사만큼 유권자의 눈길을 끄는 사업도 없기 때문이다. 강남 재개발 아파트 고층화가 거론되고 한나라당내 잠재적 서울시장 후보자들은 입을 모아 한강 대개발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IT기술을 자랑하는 정보화 국가에서 토목공사에 목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고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청계천 복원도 따지고 보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혁신이 적중한 일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 성공의 열쇠는 고가도로를 해체하고 다리를 건설한 자체가 아니다. 대화와 현장견학 등을 통해 이해당사자인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고 회의적인 시민들의 여론을 호의적으로 돌릴 수 있었던 데에 힘 입었음을 알아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인생의 반환점/임태순 논설위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생의 반환점이 점점 길어진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3년 당시 38세의 남자,41세의 여자는 그동안 살아온 만큼 앞으로 더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02년 남자 37세, 여자 41세였던 것에서 1년만에 남자가 1세가량 높아진 것이다. 인생의 반환점이 길어진 것은 물론 의술의 발달에 따라 평균수명이 연장됐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공자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인생의 단계를 구분해왔다. 장유유서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지금도 우리들에게 유용하게 회자되고 있다.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志于學),30세에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而立),40세가 되면 어디에도 마음이 홀리지 않는 불혹(不惑)이 된다.50세가 되면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知天命),60세면 무슨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이순(耳順)의 단계에 이른다.70세가 되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從心)이 된다. 공자의 기준에 따르면 반환점을 돈 한국의 남녀는 불혹에 해당한다.40대는 인생의 중년이다.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지위에 오르고 삶의 신산(辛酸)을 어느 정도 맛봐 일희일비하지도 않게 된다. 42.195㎞를 뛰는 마라톤에서 중도 포기자는 초반 5㎞,10㎞에서 많이 나온다. 반면 반환점을 돌면 대부분 끝까지 완주한다고 한다. 절반을 돌았다는 자신감과 이제 반만 더 뛰면 된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반을 돌았건만 한국의 40대는 스산하기만 하다. 반환점을 돈 사람의 여유나 안정감은커녕 여기저기 혹(惑)할 일이 많다. 개발시대에서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연공서열이 파괴돼 20,30대에 치인다.45세면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라는 말처럼 언제 회사에서 떨려날지 불안해한다. 여기에 더해 자녀교육은 물론 길어진 수명만큼 노후에도 대비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 언제 고달프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 부모들은 일제와 남북분단 등에 따른 전쟁을 거치면서도 의연하게 살아왔다. 부모세대를 생각하면서 한국의 38세 남자,41세 여자들이여, 반환점을 꿋꿋하게 돌자.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인사]

    ■ 서울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콘텐츠평가팀장 김성호△연구위원 유상덕(논설위원실)△논설위원 임태순(편집국)△수석부국장 오병남△부국장 이상일 ■ 국방부 ◇국장급 전보 △국립대전현충원장(이사관) 金洪植 ■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공학부장 朴孝勳△경영학부장 李義焄△연구기획처장 南贊基△교학처장 李相國△학술정보처장 孟成鉉△산학협력단장 崔埈均 ■ 한국항공우주산업 △상무 洪康杓 黃龍柱△상무보 成炳埈 李東信 梁埈豪 金哲秀△상무보 대우 全完基
  • [데스크시각] 3선단체장이 중심 잡아라/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얼마전 한 광역단체장은 간부회의에서 공직자들의 근무기강 해이를 강도높게 질타했다. 지시나 명령이 일선 부서에 잘 먹혀들지 않고 직원들이 업무는 제쳐두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다음 단체장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입방아를 찧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단체장 선거를 1년 남짓 앞두고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술렁거리고 있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벌써부터 하마평을 늘어놓으며 출마 후보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기에 바쁘다는 후문이다. 출마를 저울질하는 고위 공무원들은 선거구에 마음이 가 있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진원지는 아무래도 3선단체장을 끼고 있는 자치단체인 듯싶다. 초, 재선 단체장들은 내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만큼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런 만큼 이들 지자체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흔들림이 덜하다. 그러나 3선단체장들의 지자체는 그렇지 않다.3선단체장들은 3연임 금지규정 때문에 더 이상 출마할 수 없다. 자연스레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임기가 1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10년 동안 한 단체장과 호흡을 맞추어 왔던 공무원들이 새 질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음지에 있었던 공무원들이 지난 세월에 몸서리를 치며 양지를 찾으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내년부터 지방의원이 유급화되는 것도 공직사회를 동요케 하는 요인이다. 아직 기초의원, 광역의원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예우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처우가 현재보다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연간 2000만∼3000만원 지급되던 경비가 6000만∼8000만원으로 부단체장 또는 국장급 수준으로 개선된다. 정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거나 큰 뜻(?)을 품은 공무원들에겐 매력있는 자리로 다가온다. 서울에서만 600여개의 새로운 고위공직이 생기는 셈이다. 전국 234개 자치단체 가운데 3선 단체장은 34명이다. 서울신문은 얼마전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들은 대부분 야인으로 돌아간 뒤에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연말쯤 거취를 밝히겠다거나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겠다며 여운을 남긴 단체장들도 있었다. 이들은 광역단체장이나 또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3선단체장의 지자체가 모두 뒤숭숭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10년보다 남은 1년에 더 매진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공직자도 있으며, 특유의 조직장악력으로 문단속을 해나가는 단체장도 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그렇지 않다. 모 간부가 광역단체장 후보로 거론되는 의원의 측근이며 그동안 잘나갔던 모 간부는 모씨가 단체장이 되면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는 흑색선전도 난무한다. 또다른 간부는 아예 선거구에서 출퇴근을 하며 고향 행사라면 앞다투어 얼굴을 내밀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고 한다. 지자체가 선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3선단체장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들이 손을 놓아버리면 레임덕 현상은 초, 재선 단체장 쪽으로 번져나가 결국 234개 전 지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민선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한 이후 단체장이 된 뒤 내리 3연임에 성공한 이들은 누구보다도 지방행정에 밝고 검증된 인물들이다. 또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갖고 있다. 임기말이어서 그런지 부하직원들이 말을 듣지 않아 조직을 추스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단체장들도 있지만 그것은 핑계로 들린다. 조직은 장의 지도력에 따라 금방 활력을 되찾고 정비된다.3선단체장들은 조직을 장악하고 추스를 능력이 충분히 있다. 그들이 내년 선거 때까지 지자체를 흔들리지 않게 이끄는 것은 지난 10년간 자신에게 성원을 보낸 주민들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다. 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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