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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태순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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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노팬티 아이들/임태순 논설위원

    이따금 경북 상주 과수원에 가서 자원봉사하고 돌아오는 아줌마가 들려준 이야기다.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5학년 자매들이 과수원으로 와 낡은 그네를 타고 놀았다. 별다른 놀 것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우연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이들이 속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주위를 통해 알아보니 자매들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이른바 ‘조손’(祖孫)가정이었다. 조손가정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일까 싶었다. 서울로 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도와주자고 했다. 옷, 학용품 등을 챙겨 지난 추석 과수원을 찾았다. 물론 아이들의 속옷도 준비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소용이 없었다. 옷이 갑갑하다며 다시 벗어 던졌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밀림에 사는 소년 이야기가 떠오르더란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에 절대빈곤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조차 못받는 극빈층도 적지않다. 가난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양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압구정과 반구정/임태순 논설위원

    한강변은 예부터 권세가들이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조선초 세조∼성종 때의 세도가 한명회도 동호대교 옆 현대아파트 이웃 경치 좋은 곳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압구(狎鷗)라는 말처럼 오리와 갈매기가 강가에서 평화롭게 노닐어 중국 사신들도 구경하고 싶어할 정도였다. 지난여름 임진강변에 있는 반구정(伴鷗亭)을 찾았다.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즐기기 위해 만든 정자다. 사라진 압구정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반구정에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바라보는 맛도 놓치기 아까웠다. 반백의 문화해설사는 “절경에 지은 압구정은 없어졌지만 수수한 자태의 반구정이 남아 있는 것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인 신경림선생도 ‘나무’라는 시에서 “나무를 길러본 사람은 잘나거나 큰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못나고 볼품없는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우쭐대고 웃자란 나무가 햇빛을 독차지해 뽑히거나 베어지는 것을 안다.”고 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다문화동문/임태순 논설위원

    전남 여수 인근 시골학교 출신 인사가 얼마전 모교 살리기에 성금을 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정다웠던 고향 초등학교가 폐교되는 것이 안타까워 약간의 돈을 보탰다. 동창들의 십시일반이 힘이 됐는지 모교에선 기념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옛 추억을 되살리고 친구들도 만날 겸 찾아갔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만난 동문은 서먹서먹했다. 생김새가 다른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인종사회,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나돌 때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생김새가 다른 한국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의외로 ‘동문’이란 이름으로 가까이에 있었다. 결혼이주여성의 2세들 중 80%가량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다인종 동문’이 지금은 초등학교에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학교, 고등학교로 확산된다는 이야기다. 더이상 장벽을 쌓고 살 일이 아닌 것이다. 인종이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인권이다. 인권은 멀리 있지 않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배꼽축제/ 임태순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정중앙은 어디일까. 충주, 대전 등이 떠오르지만 의외로 강원도 양구다. 해양을 포함한 한반도의 동서남북 네 극지점을 기준으로 측량을 하면 바로 양구군 남면 도촌리 봉화산 기슭 7부 능선이 국토의 중심이다. 조선 1531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양구현 산천조에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도리관현(都里串峴)이란 기록이 나온다. 도리관현의 고갯마루는 바로 지금의 도촌리 정중앙에서 2㎞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양구군이 한반도의 정중앙을 기념하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9일까지 축제를 연다. 이름하여 배꼽축제다. 흔히 한가운데를 배꼽이라고 하는 만큼 그렇게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배꼽은 출산하면서 태줄이 떨어져 나가 아문 것이다. 임신 중에는 탯줄을 통해 어머니와 연결된 생명선이다. 그런 만큼 배꼽은 생명, 탄생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지리적으로 우주의 중심, 중앙으로 신성시돼 왔다. 이런 전통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리스의 중심으로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 떨어진 델포이시에는 옴파로스(omphalos)라는 유물이 보관돼 있다. 옴파로스는 라틴어로 ‘배꼽’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옴파로스를 통해 우주의 중심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양구군이 새 지역축제를 배꼽축제로 이름지은 것은 이러한 상징성을 차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행사도 ‘생명’,‘중심’이라는 컨셉트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양구읍 서천에 55만평의 습지를 조성, 탄생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청정환경지역인 것을 감안, 생명중심 농축산브랜드전도 마련할 예정이다. 습지에는 1만 3000평의 한반도를 상징하는 섬을 만들고 정중앙을 표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역축제는 함평 나비축제, 보령 머드축제, 화천 산천어축제 등 일부만이 성공했을 뿐 나머지는 부실하게 운영돼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슷비슷한 성격의 붕어빵 축제가 많은 데다 차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구군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배꼽마케팅에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배꼽(생명, 근원)이 허해서야 되겠는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남산족/임태순 논설위원

    도심 한가운데 있는 남산은 서울의 허파이자 보석과 같은 공간이다. 울창한 수목은 매연과 일에 찌든 도시인의 심신을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산은 하루종일 바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인근 주민들이 부지런히 올라와 곤히 자고 있는 남산을 깨운다. 서로의 안부를 물은뒤 배드민턴을 치고 체육기구로 몸을 단련한다. 점심, 저녁시간이면 남산 주변의 직장인들이 올라와 산책로를 따라 조깅을 하거나 트레킹을 한다. 웰빙흐름에 맞춰 자연스레 ‘남산족’이 생겨난 것이다. 남산은 교통을 통제하면서 오히려 되살아나고 시민들과 가까워졌다. 지난 2005년부터 순환로는 자동차통행이 금지되고 청정연료를 사용하는 순환버스만이 다닐 수 있게 됐다. 덕분에 남산의 접근권이 더 좋아졌다. 남산도서관, 남산로, 대한극장, 장충동, 국립극장, 순환로를 도는 녹색순환버스는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남산족을 실어나른다. 국립극장, 남산도서관 등은 교통사각지대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더욱 친근하게 됐다. 남산족이 인근 주민에서 시민 전체로 확산된 것이다. 남산은 많은 훈장을 갖고 있다.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서울의 심장을 지켜온 풍수학상의 안산(案山)의 역할을 해온 만큼 그럴 만도 하다. 동상이 10개, 기념비는 11개나 된다. 동상의 주인공은 김유신, 김구, 안중근, 정약용, 이시영, 유관순, 이황, 사명대사, 김용환, 이준 열사 등 역사를 빛낸 위인들이다. 기념비로는 소월시비, 조지훈시비, 외솔 최현배선생비 등 있음직한 것도 있지만 자연보호 현장비, 반공청년 운동비, 제일강산 태평비 등 공원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것도 있다. 남산이 더 바빠질 것 같다. 얼마전 남산 인근의 호텔들이 주변의 명소와 연계한 피크닉 패키지 등 관광상품을 만들어 판촉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남산에 필요한 것은 휴식과 자연보전일 것이다. 피곤에 지친 남산에 건축물, 마케팅 등 덧칠할 것이 아니라 힘들게 껴안고 있는 것을 떼어내 부담감을 덜어 주어야 한다. 남산족들이 제2의 남산 제모습찾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때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촛불, 보약이냐 독약이냐/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촛불, 보약이냐 독약이냐/임태순 논설위원

    “출산하는 데 가장 어려운 때가 입덧인데 이제 입덧이 끝나가고 있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지난달 여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권 출범 초기 촛불시위로 엄청난 홍역을 치른 것을 ‘입덧’에 비유해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라는 역풍을 만나 국민과의 달콤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촛불시위는 청와대 입성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청계광장에서 5월2일 처음 시작돼 6월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아 개최한 6월10일 100만 촛불대행진까지가 절정이었다. 먹거리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이명박 대통령은 두 차례나 사과를 했다. 대통령선거에서 50%에 이르는 지지율을 받았던 후보로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더 낮은 자세로 국민께 다가가겠다.” “식탁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헤아리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국민들에게 깊이 머리를 수그렸다. 정부는 ‘쇠고기관보 게재’를 연기하고 ‘미국과 쇠고기수입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자세에서 물러나 추가협상에 나서 타오르는 촛불민심을 누그러뜨렸다. 또 ‘강부자’,‘고소영’으로 물의를 빚은 청와대 참모들도 개편해 민심수습에 나섰다.“여론으로부터 세게 훈련을 받았으니 그대로 쓰겠다.”던 그동안의 자세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대통령의 독주로 유명무실했던 국무총리에게도 힘을 실어주었다. 한반도 대운하도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해, 백지화선언을 했다. 촛불시위가 국정운영의 보약이 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촛불시위가 폭력화되고 과격화되면서 힘을 잃자 촛불의 교훈도 잊혀져 갔다. 폭력시위에 진절머리를 느낀 국민들이 공권력 확립과 법치와 준법을 강조하자 정부는 다시 일방독주하기 시작했다. 대신 국민을 섬기겠다는 다짐이나 소통, 통합이란 말은 멀어져 갔다.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규제, 공기업 낙하산 인사 등에서 보듯 밀어붙일 것은 눈치 보지 않고 밀어붙이고 멜라민 사태가 나자 대통령이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전격 방문하는 등 다시 청와대의 독주가 시작됐다. 이뿐 아니다.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들의 바람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경기부양에 집착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는데도 신도시건설 발표 등 건설경기 부양에 나서고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반대가 많았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도 당초 안대로 밀어붙였다. 종부세가 흐지부지되면 강남 고가주택 소유자야 쾌재를 부르겠지만 그 부담이 국민들에게 전가되면 과연 누가 좋아하겠는가. 종부세 폐지는 선거공약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해야지 강남 지지층만 보는 외눈박이 정치를 해선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시위 때 “마음이 급하다 보니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했다. 왜 다시 일방통행식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치게 가시적인 업적이나 성과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소통없이 유형적 결과물에만 집착할 경우 다시 촛불 역풍을 맞아 입덧만 하고 옥동자는 낳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경험이나 실수에서 배우기도 쉽지 않다.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호수공원의 힘/임태순 논설위원

    공간은 그곳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좌우한다. 아무리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라도 젊은 연인들이나 노년층 또는 10대 등 특정층이 독점하고 있다면, 그들에 의해 성격이 규정돼 그들의 점유물이 되고 만다. 서울 탑골공원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지만 역사와 유래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오랜만에 일산 호수공원을 찾았다. 가을비와 함께 늦더위도 물러나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부부들, 열심히 공원 산책로를 걷는 할아버지·할머니들, 한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젊은 연인들.50대 아줌마 군단들은 뭐가 신나는지 잔디밭 그늘에 앉아 연신 웃음꽃을 터뜨렸다. 언제 찾아도 반갑고 정겨운 모습이다. 힘차고 생기차다. 호수공원 구성원들의 사랑, 우애, 우정 등이 이곳에 다른 이물질을 끼어들 수 없게 한다. 새삼 호수공원의 힘을 느끼면서 나도 그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차없는 날/임태순 논설위원

    어제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서울 시민들은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차 없는 날을 맞아 아침 6∼9시의 출근시간대 버스, 지하철이 무료로 운행돼 공짜로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 없는 날 행사는 1997년 9월22일 프랑스의 소도시 라로셀에서 처음 열렸다. 기후변화 및 대기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이후 각국이 동참해 현재 40여개국 2020여개 도시에서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처음 개최됐으며,8번째를 맞은 올해는 서울시 외에 인천시와 경기도 안산시로 확대됐다. 연례행사가 올해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세계가 전례 없는 고유가로 홍역을 치른 데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현재 100달러까지 떨어졌지만 2003년 30달러,2005년 60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올랐다. 그나마 석유 소비는 느는 데 비해 생산량은 줄어 석유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차 없는 날을 맞아 청와대 사저에서 본관까지 자전거로 출근하고 대전에서 열리는 신성장동력회의에 승용차 대신 KTX를 타고 갔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가는 하락추세이지만 다시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200달러를 넘어 300달러,38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과 운송부문에 스며든 석유중독증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재앙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기차를 타고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일과성이 아니라 상례화될지도 모른다. 환경오염에 따른 위기 정도를 나타내는 ‘지구환경위기시계’는 올해 9시33분으로 지난해보다 2분 빨라졌다.92년 제정 이후 최악이다. 차 없는 날 행사로 출근길 승용차 통행이 통제된 종로와 청계천에서는 손수운전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고 한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빨라진 교통흐름을 반겼으나 승용차를 끌고 나온 운전자들은 교통통제로 길이 막히자 짜증을 냈다. 지금 지구는 석유고갈도 문제지만 환경훼손으로 더 중증을 앓고 있다. 차 없는 날 하루 승용차를 몰지 못했다고 짜증내기에는 해가 너무 기울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처음처럼/임태순 논설위원

    몇년 전 중앙부처에서 식목일을 맞아 청사에 있는 벚나무를 잘라 내려 했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인 만큼 일제의 잔재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아무 영문도 모르는 나무에게 과거의 역사를 투영시켜 베어내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 덕분인지 벚나무는 당시에는 화를 면했지만 오래 살 운명이 아니었던지 그후 청사 재배치 계획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스테디셀러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펴내 지식인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자신의 서예작품 ‘처음처럼’으로 비슷한 수난을 겪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엊그제 신 교수의 ‘처음처럼’을 나무에 새겨 관내지구대와 역전파출소 등에 걸려다 취소한 것. 신 교수는 알려진 대로 통일혁명당사건에 연루돼 20년 20일을 복역하다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고,10년 뒤인 98년에는 사면복권됐다. 불씨가 된 ‘처음처럼’은 감옥에서 익힌 서체를 바탕으로 95년 출품한 것으로 귀족적인 한글궁체에 서민적 체취를 담았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다.‘처음처럼’은 모 소주회사의 제품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출발 당시의 마음에서 흐트러지지 말자는 다짐의 말로 더욱 울림이 크다. 그러나 ‘처음처럼’은 끝내 보안법의 사슬을 넘지 못했다. 경찰관서에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작품을 부착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돼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을 새기려던 경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얼마전 국방부는 ‘나쁜 사마리아인’ 등 베스트셀러 23권을 불온도서로 선정, 군내 반입을 불허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시정권고를 받는 등 망신을 샀다. 그러나 ‘금서’들은 이 사건 이후 오히려 판매부수가 최고 20배 늘었다고 한다. 국가안전과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경찰과 군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과 거리가 멀어 안타깝고 아쉽다. 감옥은 폐쇄적이고 고립된 공간이지만 신 교수는 이곳에서 폭넓고 열린 사고를 통해 우리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줬다. 경찰과 군도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가졌으면 한다.‘처음처럼’은 처음처럼 됐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 [길섶에서] 장좌불와 시선/임태순 논설위원

    출근길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졸기 시작한다. 한동안 중심을 잡던 머리가 전동차의 흔들림에 따라 좌우로 출렁인다. 역을 한두곳 지나자 아예 머리를 내 어깨에 내려놓는다. 몸을 뒤척여 주의를 주지만 약효는 오래가지 않는다. 몸을 바로 하는가 싶더니 다시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고 어깨에 내려온다. 머리를 밀쳐 확 정신이 들게 하고 싶지만 야박한 것 같아 꾹 참는다. 쫓기듯 생활하는 직장인들에게 출근길 단잠은 보약이다. 하지만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가려는 사람에겐 이같은 무례(?)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옆사람 머리에 주의가 가면 더 이상 책이나 신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스님들이 산사의 선방에서 여름철에 하는 참선을 하안거(夏安居)라고 한다.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자세로 용맹정진한다. 말 그대로 눕지 않고 가부좌의 자세로 참선을 한다. 술에 찌들고 격무에 시달린 중생들을 위해 장좌불와의 비법을 시선(施善)할 분은 없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정상 그후/임태순 논설위원

    청록파 박두진은 20,30대에 발표한 시가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 대표작 ‘해’ ‘청산도’가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젊은 시절 문학적 완성도가 최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후에도 그는 문학적 상상력을 심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크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환호의 순간을 뒤로 하고 다시 훈련을 재개했다고 한다. 런던 올림픽 등 다음 목표가 있는 만큼 새로운 도전을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가운데 TV에서는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해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운동에 외곬으로 매달려 정상에 올랐지만 그후의 삶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무나 풀이 자라는 곳은 산 정상이 아니라 산등성이라고 한다. 전 인도 대통령 압둘 칼람이 한 말이다. 정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다. 누구도 정상에서 평생을 살 순 없다. 모든 사람들은 정상 너머 등성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간다. 인생에선 정상 그후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조계사/임태순 논설위원

    조계사는 서울시내 한복판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사찰로 한국 불교의 1번지다. 조계사는 1910년 현재의 수송공원 옆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포교당 각황사를 모태로 하고 있다. 불교도들은 일제가 조선 불교를 일본 사원으로 통합하려는 데 맞서 1935년 조선불교선교양종종무원을 설립하고 각황사를 헐어 태고사란 사찰을 세웠다. 태고사란 명칭은 한국 불교의 법통을 태고 보우에서 찾는다는 뜻에서 붙여졌다.1954년 왜색화된 불교를 척결하고 비구 중심의 전통불교로 회귀하자는 정화운동이 벌어지면서 태고사는 조계사로 개칭된다. 일제의 민족말살책에 맞서고 불교정화운동의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한국 불교의 명맥을 이어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1번지 조계사가 정치 1번지가 되고 있다. 종교편향에 항의하는 불교도들의 범불교도대회 이후에도 불심이 누그러들지 않자 정치인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엊그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이 1시간 간격으로 각각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찾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안절부절못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이채롭다. 같은 날 오후에는 종교 담당주무 부처인 유인촌 문화부 장관도 조계사를 방문했다. 이에 앞서 한승수 국무총리,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도 조계사를 찾아 조계사가 정치의 중심지가 돼버린 느낌이다. 매맞은 사람이 발 뻗고 잔다는 말처럼 종교편향으로 상처를 입은 조계사가 구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역사도 박해·압박받은 자가 오히려 살아남고 가해자, 탄압자는 사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황청은 천주교도인데도 악녀로 처형된 잔다르크,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에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사과했다. 우리는 지역감정 문제로 적지 않은 홍역을 앓았다. 군사정권 시절 호남을 상대적으로 소외시키고 차별한 것에 대한 앙금은 지금까지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불교계가 사각지대, 소외지대가 되는 것은 더 큰 재앙이다. 조계사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민주당 소나무/임태순 논설위원

    소나무처럼 우리 민족과 친근한 나무도 없다. 곧게 뻗은 소나무는 지조, 절개를 상징해 예부터 시나 서화의 중요한 소재였다. 조선시대 성삼문은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면서 단종에 대한 굳은 마음을 소나무에 빗대 표현했다. 조상들은 또 소나무로 집을 짓고 솔잎을 깔아 떡(송편)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 누워 먼 길을 떠났다. 소나무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현실 정치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한자로 소나무 송(松)자는 나무목(木)과 공변될 공(公)자를 합한 형성문자이다. 여기에서의 공은 공평하다는 뜻이 아니라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등 벼슬을 의미한다. 소나무에 이런 명칭을 부여한 사람은 중국의 진시황이다. 그는 비를 피하게 해준 소나무에 고마움을 느껴 산둥성 태산에 있는 소나무에 공작의 벼슬을 내렸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충북 보은 법주사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도 정이품송(正二品松)이라 불린다. 조선 세조가 법주사 행차에 나섰다가 가마가 처진 소나무 가지에 걸리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그러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세조가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정이품의 높은 벼슬을 내린 것이다. 민주당이 통합민주당으로 새 출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엊그제 소나무를 당의 새로운 상징물로 선택하고 진녹색 금강송을 로고로 공개했다. 민주당은 “소나무는 기개, 지조, 생명 등을 상징하고 녹색은 50년 정통민주세력의 상징색으로서 통합과 소통, 균형, 평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현재 정당지지율이 20%대를 밑돌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집권 한나라당이 미국산 쇠고기수입, 종교편향 등 잇단 실정으로 악수를 두고 있는데도 전혀 반사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체성 모호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당을 대표하는 간판타자가 없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뜻한다. 금강송은 곧게 자라는 소나무다. 당의 중심을 굳건히 하고 국민들의 가슴에 뿌리내리는 금강송 같은 소나무를 키우면 민주당이 으뜸 정당이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영재고 양보다 질을/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영재고 양보다 질을/임태순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전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입상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과학영재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과학영재 육성방안은 보도자료를 통해 “초·중·고생의 1% 이상이 영재교육을 받도록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교육과학기술부도 “과학영재고를 올 연말까지 1,2곳 추가지정하고 과학고 내실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혀 이같은 방침을 뒷받침했다. 한 사람의 천재가 수십만명, 수백만명을 먹여살리는 시대가 된 만큼 국가장래를 위해 영재를 육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영재가 길러질 수 있는 좋은 토양이 아니다. 과학영재가 될 성싶은 떡잎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영재가 자랄 수 있는 사회·교육적 여건이 척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영재를 범재(凡材)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선행교육국가이다. 높은 교육열에다 학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과 욕심 때문이다. 유년시절에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읽고 쓰는 것을 다 깨우친 천재들이 많다. 하지만 사교육에 길러지고 웃자란 이들은 중·고교로 가면서 수재, 영재가 되고 대학에 가서는 범재가 되고 만다. 입시와 평등주의라는 병도 영재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언어영재와 과학영재를 기르기 위해 외국어고와 과학고를 운영해 왔지만 이들 학교는 설립취지와 달리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 과학고 졸업자의 상당수가 의대·치대·한의대로 진학하고, 외고도 의대 등을 겨냥해 편법으로 이과계반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특정 분야의 뛰어난 재능은 언어·외국어·사회탐구·과학탐구 등 대입 수능공부에 매달리느라 사장되고 있다. 또 광역단체마다 하나씩 생겨 과고는 20개, 외고는 30개로 불어나면서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됐다. 반면 현재 영재교육법에 의해 지난 2003년 설립된 부산과학영재고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교육계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 학교는 한해 144명을 선발한다. 선발방식도 1차 서류,2차 필기,3차 3박4일의 면접 등 까다로워 입시학원을 통한 선행교육으로 관문을 뚫기가 쉽지 않다. 학생들은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와 맺은 협약에 따라 별도의 시험없이 특별전형으로 이들 학교로 진학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국어·영어 등 입시과목에 시달리지 않고 수학·과학의 심화과정을 배우고 과학의 지식과 원리도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학교가 비교적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것은 소수정예의 원칙과 대학과 연계교육 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입에 목매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학교 입학이 보장되지 않으면 영재학교도 입시학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서울과학고의 영재학교전환 등 영재고의 양적 확대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대학이 과학영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내에서 영재고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영재들은 순식간에 수리·과탐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영재고는 짧은 역사로 인해 아직까지 현재의 교육시스템이 적절했는지 등이 검증되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지, 영재의 길을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지 등 영재고 교과과정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것이 급선무다. 양적 확대보다는 질을 개선해 명품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때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곡물의 부양능력/임태순 논설위원

    지구 상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대륙은 아시아다.2005년 유엔 인구추계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 64억 7000만명 중 60.4%인 39억 1000만명이 아시아에 살고 있다. 다음은 인구 9억 1000만명의 아프리카로 14.0%에 이른다. 인구밀도도 아시아가 가장 높다.㎢당 123명으로 유럽(32명), 아프리카(30명)에 비해 많다. 남미와 북미는 각각 27명,15명이며 오세아니아는 아시아의 40분의 1인 4명에 불과하다. 농업진흥청 농업다기능평가팀이 최근 작물별 인구부양능력을 분석했다. 가로 세로 100m인 정방형 토지(1㏊)에 곡물을 심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살릴 수 있는지 조사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고구마가 25.1명으로 가장 많았고 쌀 20.4명, 밀 16.4명, 감자 13.7명, 보리 13.3명, 옥수수 13.0명이었다. 매일 매일 먹는 주식 개념이 아니라 사람에게 하루 필요한 칼로리 3000㎉를 기준으로 환산했다. 고구마와 감자는 생산력이 뛰어난 작물이다.10a의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쌀은 500㎏인데 비해 고구마·감자는 5∼6배 많은 2500∼3000㎏에 이른다. 고구마, 감자가 옛날부터 구황작물이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특히 고구마는 최근 100g당 130㎉로 열량이 높은 데다 위에서 오래 머물러 다이어트에 적격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열량도 높고 생산량도 뛰어나니 고구마가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시아의 인구밀도가 높은 것은 주식이 쌀이기 때문이다. 벼는 아열대 작물로 동남아에서 주로 생산된다. 반면 밀과 보리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호냉성 작물로 유럽과 남미에서 재배된다. 농진청 연구처럼 쌀이 밀에 비해 2배의 인구부양능력이 있는 만큼 중국, 인도, 일본,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다인구국가가 아시아에 많은 것이 설명된다. 최근 전세계가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벼 재배면적이 2002년 105만 3186㏊에서 지난해 95만 250㏊로 5년 사이에 10만㏊ 이상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요즘 세대는 식량부족이 먼나라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에겐 예사롭지가 않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두바이와 새만금/임태순 논설위원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세계 무역의 허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그만 어촌이었던 두바이는 세금과 비자를 없애고 35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중동·아프리카·유럽·아시아의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두바이 성공신화는 세계 최고면 돈이 된다는 ‘으뜸주의’(일등주의)가 밑바탕이 되고 있다. 삼성물산의 부르즈 두바이는 160∼180층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루 숙박비가 최고 5000만원인 부르즈 알아랍호텔은 세계 유일의 7성급 호텔로 22캐럿의 금박을 입히는 등 초호화내장으로 유명하다. 두바이의 초고속성장전략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1000달러에 이르는 등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신화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한국외국어대 서정민 교수는 그 이유로 아라비안 대상, 캐러밴으로 대변되는 독특한 상인 기질을 들고 있다. 이집트는 1950년대 자동차 조립공장이 있었지만 아직 자동차 산업은 없다. 자동차조립기술을 익히기보다 부품과 기술자를 들여와 팔면 얼마나 더 이득을 볼 수 있는지 상인 정신에 더 관심을 갖는다. 쉬 상하는 생선, 야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견과류, 향료 등 오랫동안 부패하지 않는 상품에 승부를 거는 그들의 ‘대박근성’ 때문이다. 상인기질은 자본회전이 빠른 물류, 금융 등 서비스업에는 장점이지만 제조업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석유를 배경으로 막강한 부를 자랑하고 있는 아랍, 중동이 앞으로 잘 살수 있는지에 의문부호를 갖는 이유다. 국토연구원, 농어촌연구원 등 5개 연구기관이 최근 바닷물을 메워 생성된 간척지 새만금지구의 70%를 산업·도시·관광용지로 복합 개발하는 토지이용계획 변경안을 확정했다고 한다. 농업용지 중심에서 복합개발용지로 용도가 변경된 만큼 ‘동북아의 두바이’로 개발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셈이다. 새만금지구는 세계 최대의 경제권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마주하고 있어 입지적인 면에서 두바이에 뒤지지 않는다. 근면, 성실한 ‘제조업 근성’도 있는 만큼 창조성, 규제완화에 대한 ‘열린 마음’만 있으면 새만금이 동북아의 두바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현금/임태순 논설위원

    신용카드는 현찰 대신 카드로 계산을 하는 편리한 대금결제수단이다. 신용을 기반으로 또 하나의 시장이 형성되니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신용카드는 1950년 미국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와 친구인 변호사 랠프 슈나이더가 만든 다이너스카드가 시초라고 한다. 맥나마라는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가 지갑을 가져가지 않아 낭패를 본 뒤 궁리끝에 카드를 만들었다. 신용카드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무차별발급과 이에 따른 과소비로 카드대란을 겪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시장은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신용카드 사용이 뿌리내리게 된 데는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세금공제제도가 일등공신이다. 특히 신용카드 영수증의 발급으로 세원이 투명하게 노출돼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당국의 환영을 받았다. 이에 착안해 나온 것이 현금영수증제도다.5000원 이상의 현금계산분에 대해 영수증을 발급해주고 현금사용분에 대해 연말에 소득공제나 세액공제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현금거래를 명확히 하고 세금을 투명하게 부과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된 현금영수증 제도는 지난 7월부터는 모든 현금 사용액에 대해 영수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지난달 발급건수는 3억 1193만건으로 6월에 비해 98.5%나 늘었다고 하니 소비자들의 호응은 절대적이다. 금융당국이 신용카드 가맹점이 카드 대신 현금을 내는 고객에게 대금을 할인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카드업계는 고객들이 카드 대신 현금으로 계산하려 해 궁극적으로 카드수수료가 떨어져 업계 전체가 손해를 볼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카드보다 당장 돈이 들어오는 현금결제에 혜택을 주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현금영수증의 도입이후 현금을 내면 요금을 깎아주는 편법이 성행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간단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은행잔고 안에서 쓸 수 있는 직불카드, 체크카드의 이용료율을 낮추고 사용을 활성화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등잔밑이 어두워/임태순 논설위원

    “제 동생이 원래 착한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그렇게 됐는가 봅니다.” 대학생 때 보호자로 동생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호출(?)당한 적이 있다. 동생이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렸기 때문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동생 친구들에게 슬쩍 책임을 돌리자 담임선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더군요. 그런데 남 탓만 할 일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며칠 전 아침 TV뉴스를 보는데 여고생들이 동료에게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밖에 감시병을 세워둔 뒤 상가화장실 등으로 끌고 다니며 4∼5시간 동안 주먹으로 머리, 가슴 등을 마구 때렸다고 한다. 비명이 새나가지 않도록 입에 화장지를 물렸다는 멘트도 나왔다. 변기의 고인물을 떠먹이는 장면도 뿌옇게 비쳤다. 조직폭력배이지 여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 맞는 아이의 부모가 봤으면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을까. 가해학생 부모도 내 아이가 저런 짓을 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예부터 등잔밑이 어둡다고 했나.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철도의 부활/임태순 논설위원

    대전과 공주의 운명을 바꾼 것은 철도였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대전은 1910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만 경부선이 비껴간 공주는 1920년대 후반 도청소재지를 대전에 내주는 등 정치, 경제, 교육의 중심지에서 밀려나야 했다.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산업과 물자수송의 맹주였던 철도는 197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찬밥신세가 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기점으로 교통·물류체계가 도로 중심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개발의 성과를 보고 싶어하는 국민들에게 고속도로는 발전, 번영의 상징이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도로건설에 많은 돈을 투입했다.1970년 457.5㎞이던 고속도로는 현재 3368㎞로 8배 가까이 늘었다. 국도, 시·군도까지 포함하면 도로길이는 10만㎞가 넘는다. 그래도 인구 1000명당 도로 길이는 2.1㎞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바닥권이다. 이에 반해 철도는 1962년 3032㎞에서 2005년 3392㎞로 43년 동안 고작 360㎞ 늘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천덕꾸러기였는지 알 수 있다. 철도가 오랜 침체를 딛고 부활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유가가 일등공신이지만 친환경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 따르면 1t을 1㎞ 수송할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철도가 21g인 반면 자동차는 거의 8배나 많은 178g에 이른다. 이처럼 철도가 ‘고효율 저에너지 저비용 교통수단’인 만큼 다시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경기 안산∼충남 홍성을 잇는 90여㎞의 서해선 철도 건설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으로 서해권 물류수송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철도건설은 더 이상 늦출 일이 아니다. 서해선건설이 철도 르네상스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철도 부활이 ‘철도가 최고’라는 독불장군식으로 이루어져선 안된다. 열차를 주 운송수단으로 하되 간선에서 지선을 잇는 보완적인 교통수단은 버스, 화물트럭 등 도로교통수단에 맡겨야 한다. 철도가 장거리 수송에는 적합하지만 최종목적지까지 발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나눔과 공생의 미학이 존재하는 르네상스여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학부모의 마음은/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학부모의 마음은/임태순 논설위원

    서울시 초·중등 및 평생교육을 책임질 교육감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4·15 학교자율화 조치로 일선 학교교육에 대한 권한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넘어간 이후 치러지는 첫 서울시 교육감 선거이다. 교육감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 만큼 사실상 ‘교육대통령’을 뽑는 선거라고 불린다. 더군다나 교육위원 등 간선제가 아닌, 주민 손에 의해 진행되는 첫 선거이다. 대한민국 교육을 좌우하는 수도 서울의 교육수장을 뽑는 선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입후보자만 6명이나 될 정도로 열기를 띠고 있다. 또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원칙에 따라 정당의 개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민주당은 물론 한국교총, 전교조, 한국노총 등 각종 단체가 음으로 양으로 입장을 표명해 과열을 넘어 혼탁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덕분에 선거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지만 그래도 투표율이 30%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앞서 치러진 전북 등 다른 시도 교육감 선거가 20% 미만의 투표율을 보인 것이 이를 말해준다. 정치불신에 의해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지나치게 낮은 투표율은 공직자의 대표성을 약화시킨다. 또 실천력·추진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게 한다. 이번 선거를 서울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의 시험대로 활용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선이나 총선은 지형이 넓다. 외교, 안보, 국방, 통일, 성장, 사회복지 등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너무 거창해 유권자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웬만큼 공부하지 않고선 공약의 옳고 그름, 선악, 자신과의 연관성을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또 진보 또는 보수주의자라 하더라도 사안별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공약 A,D,K 등은 마음에 들지만 B,C,F는 싫을 수 있다. 유권자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교과서에서야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시민들로선 머리를 굴리기가 싫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교육감선거는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투표에 반영하기에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대학이 제외됐지만 분야가 교육으로 한정돼 있다. 민선 교육감은 0교시 수업, 자율형·자립형 사립고 및 특수목적고 확대여부, 학교선택제 실시 등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다. 자녀를 초·중·고교에 맡긴 부모들이 매일 마주치는 민감한 사안들이다. 때마침 교육감 입후보자들도 사안별로 차별화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학부모들로선 자신은 물론 아이의 미래와 연관돼 있는 만큼 공약을 면밀히 읽어보고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교육감을 선택해 볼 만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확대지향적인 성향 탓에 중앙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뒷전이다.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대선, 총선에 비해 낮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는 전국적으로 관심이 높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연장선상에서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그동안 이어져 온 지방선거의 한계를 벗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교육감 선거가 정치색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도 학부모들이 심판해야 한다. 교육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부모들이 마음을 활짝 펼쳐 보여야 한다. 낮은 투표율로 특정 집단의 표쏠림 현상에 의해 100년 대계라는 교육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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