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경 슬럼프 딛고 세계선수권 더블트랩 우승
지름 11㎝, 무게 105g의 클레이표적(피전) 2개가 운명을 갈랐다. 손혜경(30·창원경륜공단)이 지긋지긋한 슬럼프를 털어내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손혜경은 1일 새벽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루체경기장에서 열린 제49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더블트랩 여자 일반부 개인전에서 106점(120점 만점)을 쏴 중국의 리 루시앙을 2점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보나(25·상무)는 103점을 명중, 동메달을 보탰다.
한국이 세계선수권대회 클레이 종목(트랩·서키트·더블트랩)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손혜경이 처음이다. 손혜경은 또한 이번 대회 일반부 첫 금메달을 한국팀에 안겼다. 한국은 주니어부에서는 금1, 은5, 동3의 호성적을 거뒀지만 일반부에서는 노메달 행진을 이어왔다. 손혜경은 지난 2002년 핀란드 라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더블트랩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클레이 종목 개인전 동메달을 따낸 베테랑이다. 개인적으로는 2회 연속 세계선수권에 입상한 것.
사냥을 좋아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총이 낯설지 않았던 손혜경은 아버지의 권유로 부산 혜화여고에 입학하면서 사격에 입문했다. 출발은 남들보다 늦었지만 발전속도는 군계일학이었다. 국내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고교 3학년 때인 94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손혜경은 그 해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더블트랩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어 사격계를 흥분시켰다.
이후 96년 5월 회장기대회 더블트랩에서 111점을 쏴 한국신기록을 세웠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르는 등 국내 여자 클레이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하지만 손혜경은 2004년 무렵 슬럼프에 빠졌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결혼식마저 미룬 상황에서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던 것. 설상가상 다리 부상으로 부진은 깊어졌다.
결국 국내 1인자의 자리는 후배 이보나에게 빼앗겼고 자신이 올림픽 쿼터를 따놓고도 평가전에서 밀려 아테네올림픽에 나가지도 못했다. 후배 이보나가 은·동메달을 따내며 스타덤에 오르는 것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손혜경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부터 소속팀 창원경륜공단의 김관용 감독과 함께 강훈련을 소화해냈고, 전성기의 실력을 회복해 지난 1월 1년 6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손혜경을 고등학교 때부터 지켜봐온 경남사격연맹 이규천 전무이사는 “혜경이는 웬만한 남자보다 대담하고 승부근성이 좋다. 순간적인 집중력과 ‘깡다구’가 좋아 클레이 선수로는 제격이다. 도하 아시안게임은 물론 베이징올림픽도 기대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더블트랩이란
시속 105㎞로 날아가는 접시모양의 점토 표적(피전·11㎝ 105g)을 12구경 산탄총으로 격파하는 클레이 종목은 트랩과 스키트, 더블트랩으로 나뉜다. 더블트랩은 중앙의 자동표적방출기에서 표적이 동시에 좌·우로 날아온다. 아테네올림픽을 끝으로 여자 더블트랩은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됐다.
■ 손혜경은 누구
●1976년 3월4일 부산생
●가족관계:손광명(63)씨와 최영민(61)씨의 1남1녀 중 막내
●취미:영화보기
●주량:전혀 못함
●체격:158㎝ 55㎏
●경력:부산 안락초-혜화여중·고-경남대-창원경륜공단
●국제대회 입상경력: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더블트랩 銅-98년 방콕아시안게임 더블트랩 단체 銀-02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더블트랩 개인 銅-02년 부산아시안게임 스키트 단체 및 개인 金, 더블트랩 단체 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