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창간103주년] 20대가 본 ‘10년뒤 한국’
10년 뒤 한국 사회의 화두는 역시 ‘고령화’였다. 서울신문이 창간 103주년을 맞아 20대와 50대 각 100명씩 2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10년 뒤 미래’에 대해 지난 3∼5일까지 전화·면접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10년 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20대의 48%,50대의 46%가 고령화를 꼽았다. 이 같은 답변은 양극화와 실업, 환경문제 등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중년기 외환위기를 겪은 50대와 취업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대. 이들은 10년 뒤 한국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라는 답변을 내놨다.10년 뒤 닥칠 가장 큰 고민거리로 20대에서는 ‘육아(31%)’를,50대는 ‘건강(49%)’을 꼽았다.
20대 응답자의 71%가 10년 뒤 갖고 싶은 직업으로 공무원이 아닌 전문직을 꼽았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득세에 따라 노동 유연성이 강화되고 ‘평생직장 신화’가 무너진 뒤 가장 각광받는 직종인 공무원은 8%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20대 응답자 가운데 48%가 10년 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고령화’를 꼽은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시한부 생명’처럼 밑바닥이 보이는 연금 문제에 대해 ‘많이 내고 나중에 받을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운’ 젊은 층이 피해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10년 뒤 최대 고민이 ‘육아(31%)’라는 응답은 다소 의외다. 또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전향적이었지만 공교육 정상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우세했다.
‘10년 뒤 한국의 미래’에 대해 응답자의 36%가 ‘희망적’이라고 응답했다. 이어 ‘현상유지(32%)’,‘예측하기 어렵다(24%)’,‘절망적(8%)’이란 순으로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응답자의 과반인 68%가 ‘지금과 같거나 오히려 좋아질 것’이라고 답하는 등 긍정적인 기대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대 응답자들의 10년 뒤 최대 고민은 육아 문제(31%)로 드러났다. 취업(28%)과 내집 마련(26%), 결혼(11%) 등이 후순위로 밀린 점이 이채롭다.
평균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부모에게 육아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맞벌이 가정이 일반화됐지만 직장 내 탁아시설 등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 3% 퇴출안이 나오고 ‘철밥통 신화’가 조금씩 깨지고 있지만 공무원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공무원은 1등 신랑·신붓감이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 결과 10년 뒤 갖고 싶은 직업으로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71%가 전문직을 꼽았다. 최고경영자(CEO·16%)나 공무원(8%)은 뒤로 밀렸다.
이런 현상은 여성 응답자에게서 더욱 뚜렷했다. 남성 응답자의 60%가 전문직이라고 응답한 반면, 여성 응답자의 82%가 전문직을 선택했다.
이 같은 흐름은 ‘10년 뒤 유망 직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란 설문에서도 이어졌다.20대 응답자의 33%는 정보통신(IT) 및 생명공학(BT) 등 미래산업이 가장 유망하다고 응답했다.30%는 금융산업,23%는 전문직이라고 밝혔다. 공무원이라는 대답은 7%에 머물렀다.
‘10년 뒤 바라는 당신의 모습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2%가 ‘직장 내에서 초고속 승진 및 최고 연봉을 보장받는 인물’이라고 대답했다.
20대들은 10년뒤 한국 사회가 안게 될 가장 큰 문제를 고령화라고 생각했다.‘10년 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란 질문에 응답자의 48%가 ‘고령화’라고 답했다. 환경(16%), 실업(10%)이라는 응답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다. 현 정부 들어 최대 화두로 등장한 ‘양극화’라고 답한 이는 9%에 머물렀다.
‘10년 뒤 한국 정치는 어떻게 변할까.’란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과 비슷할 것’이란 응답이 62%로 가장 많았지만,‘지역주의가 사라지고 정책 정당이 뿌리내리는 등 지금보다 훨씬 발전할 것’이란 응답도 26%가 나왔다. 퇴보할 것이라는 응답은 12%에 그쳤다.
‘10년 뒤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라는 문항 역시 62%는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26%는 ‘성장과 분배, 일자리 창출 등 전반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20대 응답자들은 10년 뒤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IT(48%)와 반도체(41%)를 꼽았다. 한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생명공학을 꼽은 이는 단 1명(1%)에 머물렀다.
반공 교육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20대는 남북 관계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시각을 드러냈다.‘10년 뒤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 ‘북한이 붕괴 위험에 처할 것’이란 응답이 37%로 가장 많았지만,‘평화통일을 목전에 둘 것’이란 반응도 31%로 만만찮았다.
수능 세대인 20대는 공교육 정상화 전망에 대해서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응답자의 57%가 ‘사교육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입시 위주의 교육이 강화될 것’이라고 답한 것.‘지금과 비슷할 것’이란 응답은 26%,‘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입시 교육이 바로잡힐 것’이란 대답은 17%에 머물렀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 50대·20대, 10년뒤 한국 ‘모녀 토크’
‘10년 뒤 한국의 미래에 대한 신·구세대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10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한 어머니 박혜경(51)씨와 딸 이솔(23·서강대 영문과 4년)씨는 10년뒤 한국의 미래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두 모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한국의 미래를 엿보았다.
●어머니 솔아, 엄마는 10년 뒤 한국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고 있단다.10년 가까이 네 아빠와 함께 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잠재력과 역동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지.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한 기업이 프랑스의 대형 가전회사를 인수하려 할 때만 해도 “감히 아시아의 기업이 프랑스의 자존심을 인수할 수 있느냐.”며 반대 투쟁을 벌여 인수가 좌절되기도 했거든. 그런 일이 있은 지 불과 10년 만에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한국이 2025년까지 경제력이 2배로 증가하면서 전세계 경제·문화의 새 모델로 각광받을 것이며, 일본에서조차 한국식 모델을 차용하게 될 것”이라고 칭찬하는 시대가 되었어. 그만큼 우리의 성장 속도가 눈부시기 때문이겠지.10년 뒤면 우리나라는 경제·정치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 일류국가 대열로 합류해 있을 거야.
●딸 엄마, 저는 솔직히 엄마만큼 한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는 않아요. 오랜 외국생활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정말 ‘규제투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10년 뒤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인 것 같아요. 정말 어딜가도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요. 이렇게 규제가 많은 나라가 세계 일류국가로 진입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봐요. 실제 규제가 거의 없는 홍콩이 우리보다 훨씬 더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잖아요.‘메가트렌드’의 저자인 존 나이스비트 박사도 “한국 정부는 규제를 없애고 한국인들이 각각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어머니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 또한 한국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힘이 돼 나라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잖니. 집안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부모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딸 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공부가 참 즐겁고 유쾌했어요. 학교 가는 것이 참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학교를 다닐 때는 참 ‘고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사실상 ‘입시’와 ‘경쟁’이라는 두가지 가치밖에는 강조하지 않는 것 같아요. 외국의 학교에서 늘 배워오던 ‘인간에 대한 예의’나 ‘올바른 사회적 가치’등 덕목은 점수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어 안타까워요.
엄마, 사회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함’과 ‘눈물’이 없다면 어떻게 그 사회가 살기 좋을 수 있겠어요?
●어머니 우리나라에도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붉은악마’라는 한국식 문화가 있지 않니. 온 나라 국민들이 한 가지 일에 다함께 매달려 서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다질 수 있는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할 거라고 생각해.
●딸 ‘붉은악마’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폐쇄성을 잘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우리만큼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나라도 없잖아요. 전세계는 점점 문호를 열고 개방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마음을 닫고 있어요. 미국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고 매년 인재 풀을 새롭게 채워나가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나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어머니 그래도 우리나라만큼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진 국민도 드문 것 같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만 봐도 알 수 있지. 이런 애국심이 한국을 10년 뒤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어줄 거라 믿어.
●딸 제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사는 것을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기회만 되면 다 이민가려고 하잖아요. 멕시코에 살 때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멕시코인들이 자기 나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것을 보며 참 부러웠어요.
●어머니 그래도 엄마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자’인데…10년 뒤에 정말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돼 있을지 함께 지켜봐야겠구나.
●딸 저라고 우리나라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부정적인 요소들을 꾸준히 고쳐나가 훌륭한 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죠. 불평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아지는 게 없겠죠?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정리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