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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대학(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좋은 화가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돌아온 뒤 한국 근현대사, 특히 분단과 냉전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과 사진은 물론 미술계를 겨냥한 날선 평론까지 보폭을 넓혔다. 일반인에게 이름이 알려진 건 형 박찬욱(48) 감독과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 ‘파란만장’이 올해 독일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금곰상을 수상하면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작가’ 박찬경(46)이 주인공이다. 전주국제영화제(4월 28일~5월 6일) 한국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 감독의 신작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다큐와 극영화를 뒤섞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비행’(2005)이나 ‘신도안’(2008) 등 영화와 설치미술의 경계가 모호한 중단편을 만들던 그가 처음으로 손댄 장편 영화다. 영화는 1988년 경기 안양 그린힐봉제공장 화재-기숙사에 감금된 채 생활하던 여공 22명이 화재로 숨진 사건-를 중심에 놓고 풀어 간다. 더불어 안양천 수재(水災)와 지방선거, 안양사(寺) 발굴과정 등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지난달 30일 전주 고사동 영화의거리 카페에서 영화평론가 이용철(왼쪽)과 함께 박 감독의 복잡한 뇌 구조를 들여다봤다. 이용철 안양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위성도시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흥미롭고,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는 걸 깨닫게 됐다. 박찬경 어느 도시나 그런 면들은 있다. 이번에 안양예술재단 측의 요청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예산은 8000만원 정도로 장편을 하기에 부족했는데 제작 기간이 3개월로 짧아 외려 가능했다. 시나리오, 콘티, 조사, 촬영, 섭외를 동시에 했다. 더 분열적인 걸 구상했는데 보는 사람도 생각해야 될 것 같아서(참았다)…. 이 영화가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영화 속에 담긴 것도 참신하다. 굿하는 장면은 영화 제작 과정인 동시에 영화 속의 영화이기도 하다. 박 픽션(허구)을 왜 섞었냐 하면 내가 안양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일종의 투어리스트처럼 와서 찍는 작가이기 때문에 배우들도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내가 (극 중 다큐 감독으로) 출연한 것도 안내하는 사람이란 걸 보여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뒷모습만 나가려고 했는데, 클로즈업까지 나갔다(웃음). 이 편집이 굉장히 신선하다. 할아버지가 수해로 딸과 손녀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기차 소리가 난다거나 여자와 아이가 걷는 장면이 연결된다. 기성 영화인들이라면 못 했을 것 같은데. 박 글쎄…. 전에는 좋은 실험영화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실험적이거나 새로운 편집·기술, 상상력 등 아방가르드한 것들을 광고에 빼앗긴 것 같다. 예술적인 성취도를 얻었지만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만한 영화의 폭이 너무 좁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동원 관객 수 2만이라면 정말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영화의 폭이 넓어지면, 내 영화도 색다를 수 있지만 더이상 새로운 언어는 아니다. 이 전작 ‘신도안’(계룡산 토착 종교집단의 흥망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표현)과 ‘파란만장’에 이어 또 무속을 담았는데. 박 한국의 종교문화처럼 이상한 게 없다. 한국의 개신교는 샤머니즘을 ‘응용’하면서 성장했다. 새벽기도나 울부짖는 기도들을 생각해 보라. 개신교가 무속을 흡수했다기보다 무속이 개신교에 스며든 셈이다. 무속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형태인데 점쟁이로 천시하거나 ‘무릎팍도사’처럼 희화화하거나 여전히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무속의 명예회복 같은 걸 말하고 싶었다. 무속은 굉장히 정교화된 제의(祭儀) 형식을 갖춘 한편 날것의 측면도 갖춘 흥미로운 종교 문화다. 한국 근대를 바라보는 키워드인데 너무 간과됐다. 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언제부터 다른 길에 관심을 가졌나. 박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웃음). 좋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입학하자마자 학교에 너무 실망했다. 수업은 안 듣고 학내 영화서클 ‘얄라셩’(1979년 만들어진 영화연구모임. 김홍준·박광수 감독이 이곳 출신)에 들어갔다. 그런데 데모하느라고 4년 내내 영화를 한 편도 안 만들더라. 이 최근 활동을 영화감독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미술의 한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봐야 하나. 박 내 미술작품의 80~90%는 영화나 미디어에 관한 것이었다. 미술을 하더라도 영화 언어를 염두에 뒀고, 영화를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예술의 레퍼런스들을 생각했다. 미술과 영화의 장르 구분이란 건 무의미하다. 이 올해에만 두 번 국제영화제(베를린·전주) 경쟁 부문에 올랐다. 영화계에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미술 자체는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미술계는 너무 답답하다-1990년대 평론가 박찬경은 미술계를 ‘미술관료체제’(아트크라시)라고 꼬집었다-관객이 너무 없고 비평 시스템이 취약하다. 반면 영화는 관객이 새롭고 흥미롭고 궁금하다. 특히 영화제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일들은 생기를 준다. 주위에선 영화계에 더 있으면 좌절할 거라지만(웃음)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폐쇄적이지는 않으니까. 이 박찬경에게 박찬욱은 어떤 존재인가. 박 형이 워낙 아는 게 많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 사진도 좋아한다. 형은 영화 쪽 정보를, 나는 미술 쪽 얘기를 전해 주곤 한다. 형의 존재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가끔 곤란할 때는 있다. 못 보던 사람이 전화해서 형과 연결시켜 달라고 한다(웃음). 이 호러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박 한국의 공포영화라는 게 대개 일본 호러물에서 온 것들이 많다. 나라마다 특수한 공포영화 화법이 있을 텐데 ‘전설의 고향’의 처녀귀신 이미지조차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만의 무서운 귀신이나 무덤 얘기를 해보고 싶다. 현재 장편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인터뷰 끝자락에 박 감독은 “꼭 써 줬으면 하는 부분은 한국 영화가 너무 마초적인 데 대해 반성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논의가 고조되면서 남자들이 만드는 영화도 신경을 썼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과장하면 최근 10여년 동안 깡패, 반성이 없는 폭력이 한국 영화를 먹여 살렸고 폭력의 미학으로 포장됐다.”면서 “여성적인 모티프나 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리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의정부 국제음악극축제 화두는 ‘소수자’

    의정부 국제음악극축제 화두는 ‘소수자’

    음악극이란 낯선 장르를 축제의 형식으로 대중화한 의정부 국제음악극축제가 어느새 10회째를 맞았다. 폐막작으로 예정됐던 러시아 유리 류비모프의 ‘마라와 사드’가 방사능 피해를 우려한 극단 측의 결정으로 취소되는 등 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달랠 작품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오는 10일 개막해 28일까지 계속된다. ●장애인극단 ‘빵만으론’ 개막작 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이론과 교수) 예술감독은 “올 축제의 포커스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라면서 “‘빵만으론 안 돼요’나 ‘욕망의 파편’은 물론,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포용하고 화합시키는 창구로서 문화 예술의 정책 방안을 토론하는 국제심포지엄 등을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축제의 화두는 ‘마이너러티’(소수자)로 모아진다. 개막작으로 장애인 극단 이스라엘 날라갓의 ‘빵만으론 안 돼요’가 선정됐다. 지난해 영국 런던국제연극제에 초청돼 선풍을 일으켰고, 내년 미국 장기 공연을 앞두고 있다. 날라갓 단원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중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한 작품을 준비하려면 2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케리 앤드루 런던국제연극제 공연 기획 담당자는 “감정을 자극하는 독특한 공연”이라면서 “누구에게나 희망과 꿈이 있으며 간절히 원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동성애자·장님 등의 사랑 얘기도 지난해 아비뇽페스티벌에서 감각적인 미학으로 주목받았던 프랑스 도아되 극단의 화제작 ‘욕망의 파편’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동성애자 아들과 아버지, 그들을 걱정하는 집사,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장님 등 4명의 인물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판타지 요소를 곁들여 표현했다. 창작 판소리로 유럽을 공략하는 서울대 국악과 출신 소리꾼 이자람(32)은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억척 어멈과 자식들’을 소재로 한 ‘억척가’를 선보인다. 이자람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재창작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로 지난해 폴란드 콘탁국제연극제 등에 초청되어 반향을 일으켰다. 공연 일정은 축제(www.umtf.or.kr) 홈페이지나 사무국(031-828-5895~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화프리뷰] 숏숏숏 프로젝트 ‘애정만세’

    ‘숏숏숏’은 국내 단편영화 활성화를 위해 전주국제영화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지털 단편영화 프로젝트다. 올해는 ‘사랑’을 화두로 독립영화계의 스타 양익준 감독과 부지영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두편을 묶은 제목은 ‘애정만세’. 양 감독의 ‘미성년’은 어른인 척하지만 그러지 못한 30대 진철과 가끔 어른같아 보이지만 아직 ‘고삐리’인 민정의 얘기다.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 보낸 둘은 캔맥주와 짬뽕을 먹으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하지만, 진철은 민정을 좋아하던 남학생의 신고로 경찰에 끌려가게 된다. 200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비롯한 국내외 영화제를 휩쓴 ‘똥파리’ 이후 양익준의 귀환이다. 거친 욕설과 폭력으로 점철된 ‘똥파리’를 떠올린다면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양 감독은 지난달 29일 전주국제영화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똥파리’ 이전에 만든 중단편들은 모두 사랑이야기”라고 말했다. 남성 판타지를 영화화한 마초적인 작품이란 비판도 있다. 30대 남자와 여고생의 해피엔딩에 초점을 맞춘 시각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조건의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얘기했을 뿐이다. 다만 남자가 30대이고 여자는 고3이었던 게다. 그나저나 영화를 보고 나면 짬뽕이 생각나는 건 분명하다. 부지영 감독의 ‘산정호수의 맛’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순임의 사랑 얘기다. 지난가을 산정호수에서 있었던 회사 야유회에서 2인 3각 경기를 함께한 연하남 준영과의 추억을 순임은 고이 간직한다. 한겨울 산정호수를 홀로 찾아간 순임은 온몸으로 추억을 복기한다. 부 감독은 첫 장편 연출작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9)로 주목받은 데 이어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인 ‘시선 너머’ 중 ‘니마’를 연출했다. 공통점은 주변부에 놓인 이들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다. 어쩌면 순임은 평범한 여자다.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새 어그부츠를 신고 외출한다. 남자에게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전화를 해놓고는 수줍어 말을 못 잇는다. 그런데 순임이 신은 어그부츠는 고교생 딸의 물건. 좋아하는 연하남은 전형적인 ‘어장관리형’이다. 상처는 순임의 몫이다. 부 감독은 “사랑이나 멜로를 생각해 봤을 때, 딱히 젊은 연인들이 떠오르지 않았다.”면서 “낭만적 사랑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더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6월 9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아닉 마시스 “늦깎이 성공비결? 트라바유와 파시옹”

    아닉 마시스 “늦깎이 성공비결? 트라바유와 파시옹”

    프랑스 작곡가 프란시스 풀랑(1899~1963)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195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오페라계에 충격을 던졌다. 지금껏 오페라가 사랑에 관한 아리아를 내세웠던 것과 달리 ‘카르멜회’는 자아 성찰적인 대화를 담은 노래로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포정치의 공기가 무겁게 드리운 1794년 7월 카르멜회 수녀들의 처형을 소재로 했다. 둔탁한 단두대의 칼날이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떨어지면 수녀들도 한 명씩 쓰러지는 기괴하고 인상적인 피날레가 백미다. ‘카르멜회’가 5~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프랑스 국보급 오페라이지만 한국 공연은 처음이다. 국립오페라단이 나섰다.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 2008년 로렌스 올리비에 상(영국극장협회가 주최하는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상) 수상자인 프랑스 연출가 스타니슬라스 노르디의 솜씨를 우선 눈여겨봐야 한다. 또 다른 포인트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순교와 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번민하는 여주인공 블랑슈 역의 프랑스 소프라노 아닉 마시스(51)다. 지난달 18일 입국해 연습에 한창인 그녀를 서초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초반 분위기는 어색했다. 그녀가 약속한 사진 촬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는 편하게 얼굴을 내놓기에 부담스러운 시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문답이 서너 차례 오가자 그녀는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빠르지만 논리적이고 정돈된 답이 돌아왔다. 마시스는 “언제나 새로운 문화와 도시를 체험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면서 “입국 이후 하루 9시간씩 일(연습)만 해서 서울을 느껴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28살 때 파리의 프란시스 플랑 음악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성악 수업을 받았다. 그녀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면서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성악을 반대한 탓에 진로를 교사로 수정했지만 결국에는 원래의 물줄기로 돌아왔다는 고백이다. 1990년인가 1991년(그녀의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모차르트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가운데 여주인공 시녀인 블론트켄 역으로 데뷔했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1997년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출연하면서였다. 정략결혼을 한 루치아가 신랑을 칼로 찌르고서 피묻은 잠옷 차림으로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는 이후 마시스의 상징이 됐다. 늦깎이의 성공 비결이 궁금했다. 통역을 통해 질문을 듣더니 그녀는 “트라바유(travail·일), 트라바유, 트라바유… 파시옹(passion·열정), 파시옹, 파시옹…”이라며 같은 단어를 반복했다. 우문현답이다. 마시스는 “남들보다 늦어 처음에는 이해도 못 하고 당황했지만, 열정이 있었기에 닥치는 대로 해치워 따라잡았다.”면서 “호기심과 음악에 대한 사랑, 사람들과의 만남이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다. 시간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시스는 2005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황금기러기상(La Siola d‘Oro)을 받았다. 1983년 세기의 소프라노 리나 팔리우기(1907~1980)를 기념하려고 만든 상이다. 2년마다 최고의 여성 성악가가 상을 받는다. 조수미(1993년), 엘리자베스 비달(프랑스·2000년), 조안 서덜랜드(호주·2007년)도 이 상을 받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에게도 ‘카르멜회’의 블랑슈는 첫 경험이다. 그녀는 “귀족 출신으로 수도원에 들어간 블랑슈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에 대해 자문한다.”면서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진실들을 직시하느냐 피하느냐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라 더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과는 다른 음색과 스타일로 블랑슈를 연기할 것”이라면서 “제대로 해낸다면 (수없이 해냈던) ‘라 트라비아타’까지도 완전히 다르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무대경력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녀는 5·7일 무대에 선다. 6·8일은 독일 슈베린극장의 주역으로 활동 중인 소프라노 박현주가 맡는다. 평일 오후 7시 30분, 일요일 5시. 1만~15만원. (02)586-528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중훈 “오늘의 나 만든 ‘특등 콤플렉스’ 벗으니 자유로워”

    박중훈 “오늘의 나 만든 ‘특등 콤플렉스’ 벗으니 자유로워”

    20년이 넘도록 주연만 해 온 배우는 인터뷰 대상으로 ‘양날의 칼’이다. 캐낼 거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언론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만큼 ‘섹시한’ 답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후자를 염두에 두고 2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박중훈(45)을 만났다. 새달 4일 개봉하는 ‘체포왕’이 핑계다. 포상이 걸린 체포왕을 놓고 인접한 마포서와 서대문서 형사들의 이전투구를 그린 코믹 액션영화다. 공동주연 이선균(36)과 주진모·이한위 등 조연들의 연기도 맛깔스럽지만, “코미디 연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도 맞춤옷을 입은 듯 실적 쌓기에 도가 튼 ‘황구렁이’ 황재성 팀장으로 분한 박중훈이 돋보인다. 데뷔 26년차로 41편의 출연작을 가진 배우, ‘영화계 인맥 종결자‘라는 이 남자가 궁금했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약속한 12시를 훌쩍 넘겼다. 박중훈의 제안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40분을 더 이어갔다. ●선배 감독·연기자가 후배들보다 편해 →이번이 6번째 형사 역인데 ‘체포왕’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점이 끌렸나. -그 무렵 들어온 시나리오 중 가장 재밌었다. 요즘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웃음). →연쇄 성폭행범 추격 장면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젊었을 때 찍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와 비교하면. -아현동에서 해뜰 때부터 질 때까지 열흘 내내 뛰었다. 그래도 ‘인정’ 때가 육체적으로는 8~9배 더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도 젊은 것 아닌가(질문 중 ‘젊었을 때’란 표현이 걸렸던 모양이다)? 남자에게 40대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체력도 20대 때보다 그리 떨어지는 걸 못 느끼겠고…(“지금보다 젊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더니 웃는다). ‘라디오스타’를 마흔에 찍었는데 당시 ‘극중 퇴물가수와 박중훈의 모습이 겹친다.’는 평가를 보고 의아했다. 톰 크루즈가 나보다 3살, 브래드 피트는 4살이 많다. 그들은 한창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달리 보는 걸까. 영화계뿐 아니라 사회가 조로하는 것 같다. 그러면 장인이 나오기 힘들다. →임권택 감독 작품(‘달빛 길어올리기’) 바로 다음에 신인 감독(임찬익) 작품을 선택했는데. -솔직히 선배 감독이 더 편하긴 하다. 내 맘대로 제안해도 적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월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신인 감독과 할 땐 자기 검열이 심해진다. 그래서 임권택, 이명세, 강우석 감독님이 편하다. →배우들과도 비슷할 것 같다. -안성기 선배보다 (아홉살 아래인) 이선균과 할 때가 어렵다. 안성기 선배한텐 ‘형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하면 ‘제안’이 되지만, 이선균한테 같은 얘기를 하면 ‘제한’이 될 수 있다. →형사만큼 건달도 많이 했다. 어느 쪽이 편한가. -형사 쪽이다. 직업 자체의 정의감, 고뇌 등이 저절로 연기를 하게 해 준다. 미국에서 연기 못 하는 남자 배우를 가리키는 농담으로 ‘저 배우는 형사를 줘도 못할 거야.’란 표현이 있다. 대신 관객의 연민을 얻는 데는 루저 같은 깡패가 용이하다. 깡패는 조금만 인간적이어도 마음이 간다. →전에는 영화 ‘대부’의 말론 브랜도 같은 보스 역할을 부러워했던 것 같은데. -전엔 무조건 강해야 했다. 선두 그룹에서도 1등만 해야 한다. 누가 앞서가는 꼴을 보지 못했다. 박중훈식 조어로 ‘특등 콤플렉스’ 정서가 20~30대를 관통했다. 지금은 자유롭다. 영화 속에서 슈퍼맨을 안 해도 편안하다. ‘특등 콤플렉스’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돌아보니 ‘투 머치’(너무 과했던 거)였다. ●감독 데뷔·토크쇼 한번 더 도전하고파 →다양한 역을 했는데 사람들은 코믹 이미지를 떠올린다. -어떤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를 못 가지면 불행한 거다. 이미지가 자기 복제되고 답습되면 그 또한 불행하다. 26년 동안 41편을 찍었다. 그 정도면 어떤 배우라도 물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코미디 이미지는 좀 희석되지 않았나? 출연작 가운데 내게 멍에 같은 작품이 ‘할렐루야’(1997)다. 그런데 14년 전이다. 이후 ‘게임의 법칙’(1994)이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누아르 같은 영화도 잘됐다. 하나의 이미지만 있다고 하기엔 좀 그렇다. →배우 말고 다른 욕심은 없나. -감독도 마음에 있다. 감독이 탐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하자니 감독을 해야겠다. 그런데 아직 구슬로 못 꿰겠다. (시나리오를) 남을 시키자니 성에 안 차고. 오만한 남자의 얘기인데 아직 익지 않았다. ‘체포왕’이 개봉하면 본격적으로 매달려 볼까 한다. →조기 종영했던 ‘박중훈쇼’(2008년 12월~2009년 4월) 같은 토크쇼를 한번 더 하고 싶다고 했는데. -물론이다. 50, 60세쯤에 다시 하고 싶다.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클래식한 포맷은 가져가고 싶다. 당시 박진영이 “형, 우리나라에선 (단독 MC가 진행하는 미국식 토크쇼는) 안 돼요.”라고 하더라. 우리나라는 (토크쇼를 떠받칠 만큼) 사연 많은 게스트가 많지 않기 때문이란다. 예컨대 굴곡 많은 가수 이하늘은 좋은 게스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K양이라면 가능할까(박중훈은 실명을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토크쇼가 일찍 막을 내려 실망이 컸겠다. -난 병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다. 실패하면 유쾌하진 않지만 절망스럽지도 않다. 전투에 졌다고 전쟁에서 진 건 아니다. ●“할리우드 재진출 위해 엄청 노력해요” →박중훈이 패한 전투는 무엇인가. -흥행보다 배우로 외면받은 영화가 아프다. ‘인정사정’ 전에 찍은 일련의 자기 복제 코미디물이나 ‘해운대’에 대한 부정적 반응들은 견디기 힘들었다.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찍었는데 안 좋았던 ‘세이 예스’나 ‘박중훈쇼’도 그렇고. 범법행위로 걸린 것도 있고….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후회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배우로서 보너스라고 본다.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하지 않았나. →할리우드 재진출은 계속 노력하나. -무지 많이 한다(웃음). 한달 전 미국에 다녀왔는데 조너선 드미(박중훈이 출연했던 미국 영화 ‘찰리의 진실’ 감독)의 집에서 그의 아내, 영화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었다. →‘체포왕’의 흥행 전망은 어떤가. -입이 방정이라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손해는 안 볼 것 같다(‘체포왕’의 손익분기점은 180만명).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중훈 “특등 컴플렉스 벗으니 편하다”

    박중훈 “특등 컴플렉스 벗으니 편하다”

    20년이 넘도록 주연만 해온 대배우는 인터뷰이(interviewee)로서 ‘양날의 칼’이다. 너무 알려져 ‘캐낼’ 거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우문현답’은 기본. 기자와 독자의 관심사를 꿰뚫는 ‘섹시한’ 답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후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2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박중훈(45)을 만났다. 새달 4일 개봉하는 영화 ‘체포왕’이 계기다. 포상이 걸린 체포왕을 놓고 인접한 마포서와 서대문서 경찰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를 그린 코믹 액션영화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서울청장 시절 표명한 실적주의 논란과 오버랩되면서 경찰의 촬영협조를 전혀 받지 못해 화제를 모았다. 공동주연 이선균은 물론, 주진모·이한위·임원희 등 조연들의 연기도 맛깔스럽다. 하지만 무엇보다 “코미디연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설명과 달리 맞춤옷을 입은듯 실적쌓기에 도가 튼 순경출신 ‘황구렁이’ 황재성 팀장으로 분한 박중훈이 돋보인다. 데뷔 26년차로 41편의 출연작을 가진 배우,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에 진출한 한국 배우, ‘영화계 인맥종결자‘로 불리는 이 사내가 궁금했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인터뷰는 약속된 시간을 넘겼다. 박중훈의 제안으로 샌드위치와 롤 등을 나눠먹으며 40분을 더 이어갔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만족스럽나.  -유치한 면도 있고 괜찮은 구석도 있다.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다. 유치한 코드를 조금만 걷어내면 아주 ‘웰메이드’였을 텐데란 생각도 들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다.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때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나.  -당시 받은 시나리오 중 가장 재밌었다. 내가 요즘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웃음). 좋은 투자·제작자에 재미있는 상업영화 하나 쯤 나오겠다 싶었다. 연기의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건 아니니 마음은 편했다.  형사 역할만 여섯 번째인데.  -의도한 건 아닌데 참 많이 했다. 형사들이 나에게 가족처럼 친밀감을 느낀다.  연쇄성폭행범 추격신이 근사하다. 꽤나 고생했겠던데.  -아현동에서 해뜰 때부터 질 때까지 열흘 내내 뛰었다. 마지막 장면은 홍대 거리에서 1주일을 또 뛰었다. 지난 겨울 좀 추웠나. 11월~2월까지 알토란처럼 찍었다(웃음).  젊었을 때 찍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보단 힘들었나.  -그때가 육체적으로는 8~9배는 더 힘들었다. 8개월을 찍었다. 영화 5편을 찍은 노력이 들어갔다. 그런데 40대도 젊은 것 아닌가(질문 중 ‘젊었을 때’란 표현이 걸렸나보다). 남자에게 40대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체력도 20대보다 많이 떨어지는 건 못 느끼겠고, 젊고, 사회적 지위도 안정되고, 아이들도 자라고, 부드러워지면서도 패기도 남아있다. (지금보다 젊다는 의미라고 했더니 웃었다) ‘라디오스타’(2006)를 마흔에 찍었는데 당시에 ‘극중 퇴물가수와 박중훈의 실제 모습이 겹쳐진다’는 둥의 평가를 보고 좀 의아했다. 톰 크루즈가 나보다 3살, 브래드 피트는 4살이 많다. 그들은 한창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중견배우냐. 사회 전체가 빨리 조로하는 것 같다. 그러면 장인이 나오기 힘들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달빛 길어올리기) 다음이 신인 감독 데뷔작인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최근 작품을 역순으로 가면 데뷔 감독(‘체포왕’·임찬익)-101편 찍은 감독-다시 데뷔감독(‘내 깡패같은 애인’·김광식)이다. 선배 감독이 더 편하다. 내가 마음대로 제안해도 적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월권이란 생각은 안한다. 하지만 신인 감독과 할 땐 자기 검열이 심해진다. 이렇게 말하면 감독이 불편해하진 않을 까란 생각이 든다. 신인감독들이 나와 (작품을) 하기 전에는 ‘결코 박중훈 선배에게 휘둘리지 말아야겠다’란 생각을 하고 온다. 그래서 임권택, 이명세, 강우석 감독님 같은 분들이 제일 편하다.  배우들과도 비슷할 것 같은데.  -마찬가지다. 예컨대 안성기 선배보다 이선균과 할 때가 어렵다. 안성기 선배한텐 ‘형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하면 ‘제안’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이선균한테 같은 얘기를 하면 ‘제한’이 될 수도 있다. 누가 이런 농담을 하더라. 신인이 말을 많이 하면 재미있는 놈인데 선배가 그러면 ‘저 사람은 왜 그럴까’라고 생각한다. 후배가 말이 없으면 과묵한데, 선배가 그러면 부담스럽다(웃음).  형사만큼 건달도 많이 한 드문 경우인데.  -자화자찬을 하자면 내가 액션과 코미디를 오가는 배우 아니냐(웃음).  어느 쪽이 연기할 때 더 편한가.  -형사 쪽이다. 역할 자체가 연기해준다. 액션이 있고 정의감이 있고. 고뇌도 있다. 미국에서 연기 못 하는 남자 배우를 가리키면서 ‘저 배우는 형사를 줘도 못할 거야’라고 말한다. 대신 관객의 연민을 얻는데는 루저같은 깡패 역할이 용이하다. 깡패는 조금만 인간적이어도 마음이 간다.  전에는 영화 ‘대부’의 말론 브란도 같은 보스 역할을 부러워했던 것 같은데.  -실제 삶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엔 무조건 강하고 쎄야 했다. 선두 그룹에서도 1등만 해야한다. 누가 앞서가는 꼴을 보지 못했다. 박중훈식 조어로는 ‘특등 컴플렉스’다. 그런 정서가 20~30대의 나를 관통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로워졌다. 영화 속 역할도 슈퍼맨을 안 해도 편안하다. 마흔을 넘어서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사냥의 묘미는 잡을 때 있는 게 아니고 쫓을 때 있다’는 미국 속담을 좋아했는데 부질없다. 평생을 쫓아다니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든가. 날 닥달해온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투머치’(너무 과했던 것)였다.  굉장히 다양한 역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박중훈하면 코믹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장단점이 있을텐데.  -어떤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를 못 가지면 불행한 거다. 이미지가 자기 복제가 되고 답습되면 또한 불행하다. 하나의 이미지를 가졌다는데 초점을 맞추면 내가 배우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방증 같다. 조그만 역까지 하면 26년 동안 41편째다. 그 정도면 어떤 배우라도 관객들에게 친숙하지만 물리지 않을 순 없다. 오래된 배우의 한계다.  전보단 많이 코미디 이미지는 희석된 것 같다. 내 출연작 중 멍에 같은 게 ‘할렐루야’(1997)다. 한 배우의 재능으로 영화 한 편을 완성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만, 너무 끝까지 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무려 14년 전이다. 그만큼 90년대에 찍었던 코미디들이 임팩트가 있었다는 얘기다. 반대로 ‘게임의 법칙’이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내 깡패같은 애인’ 등 느와르성 영화도 잘 됐다. 나에게 하나의 이미지만 갖고 있다고 하기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드라마는 생각 없나.  -마음이 안 간다. 빨리 찍는 것 같아서 안 맞기도 하고. 안성기 선배나 박중훈 정도는 괜히 폼 잡고 영화에만 있는 것도 괜찮지 않나(웃음).  배우 말고 다른 욕심은.  -제작·감독도 생각 있다. 감독이란 직업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하자니 감독을 해야겠다. 그런데 얘기를 구슬로 잘 못 꿰겠다. 남을 시키자니 성에 안 차고, 속으로 생각 중이다. 오만한 남자의 얘기를 다룬 드라마인데 아직 익지 않았다. ‘체포왕’ 개봉하면 본격적으로 매달려볼까 한다. 그런데 좋은 영화들어오면 또 (시나리오 작업을)홀드해야 하니까 요즘은 좋은 영화가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다른 한편으론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웃음).  ‘박중훈쇼’(2008년 12월~2009년 4월 KBS 방영)같은 토크쇼를 한번 더 하고 싶다고 했는데.  -물론이다. 지금 다시 하는 건 의미가 없고. 50세이든 60세이든 넘으면 다시 하고 싶다. 그땐 너무 트렌드를 외면하고 클래식을 고집했다. 다음에는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클래식한 토크쇼 포맷은 가져가고 싶다. 박진영이 당시 촌철살인 같은 얘기를 했다. “형, 우리나라에선 (지금 컨셉트는) 안 돼요.”라고 하더라. 이유가 뭔고 하니 미국은 일찍 독립을 하니까 개똥철학이라도 자기 만의 얘기가 있는데, 우리는 결혼 전까지 부모에 얹혀살고 그러니 자기만의 스토리가 없다. 토크쇼를 할만한 게스트가 한정적이란 얘기다. 극단적으로 이하늘 같은 경우는 토크쇼에서 좋은 게스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K양(박중훈은 실명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했다)이라면 스토리가 없지 않겠나. 실패한 사람의 변명일 수도 있지만, 내 방식을 고집하면서 품위를 잃지 않고 그만둔 걸 자부한다. 다음에는 공중파 3사말고 EBS나 케이블에서 하고 싶다.  당시 실망이 컸나.  -난 병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다. 늘 희망을 본다. 실패하면 유쾌하진 않지만 절망스럽지도 않다. 전투에 졌다고 전쟁에서 진 건 아니다. ‘박중훈쇼’가 안 된 것도 요즘은 복이라고 생각한다. 토크쇼가 잘 됐으면 배우 이미지가 희석될 수도 있다. 덕분에 인생을 더 알게 되서 환갑 쯤 더 좋은 토크쇼로 꽃피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 박중훈이 패배한 전투는 무엇인가.  -흥행보다 배우로 외면받은 영화가 아프다. 90년대 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전에 찍은 일련의 자기 복제된 코미디 영화들, ‘해운대’의 반응들, 당시에는 힘겨웠다. 절대적인 확신을 하고 찍었는데 안 좋게 반응이 나온 ‘세이 예스’(2001)도 같은 경우다. 그 외에 ‘박중훈쇼’도 그렇고. 개인사의 범법행위 걸린 것도 있고,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지 않을 거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후회하고 땅을 치는건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당장 배우인생이 끝나도 난 행운아다. 예컨대 할리우드에서 (출연)기회가 안 와도 한국배우 최초로 메이저 영화에 출연한 것 자체가 의미있다. 마음이 편안하다.  할리우드 재진출은 계속 노력하나.  -무지 많이 한다(웃음). 한 달 전 미국에 다녀왔는데 조너던 드미(박중훈이 출연했던 ‘찰리의 진실’의 감독으로 ‘필라델피아’ ‘양들의 침묵’ 등 걸작을 연출)의 집에서 그의 가족, 후지모토 타크(‘찰리의 진실’ ‘필라델피아’ ‘양들의 침묵’ 촬영감독) 등과 저녁을 먹었다(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할리우드 재진출이) 오래 늦춰지니까 양치기소년처럼 보는 분들도 있지만 ‘선’은 유지하고 있다.  영화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나.  -있다. 내가 몇억을 받은 배우인데. 부담 정도가 아니다. 최소한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일정 수익을 내야 배우 생활을 유지하는데 역할을 해주는 것 아니겠나.  ‘체포왕’은 어떤가.  -입이 방정이라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최소한 안 되는 쪽에 속한 건 아닌 것 같다. 손해는 안 볼 것 같다(‘체포왕’의 손익분기점은 180만명).  트위터를 열심히 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안 돼서 사귀기 어려웠던 사람들과 관계가 개선됐다. 영화배우란 직업이 사람들과 접촉하기 어려운데 지금은 누구든지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내가 세상 속에 더 들어간 셈이다. 팔로어가 12만이 넘는다. 배우 중에는 가장 (팔로어가) 많고 (아이돌을 제외한)연예인 중에는 10위 안에 들 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어린이날 문화공연 가이드…주머니 가볍게, 동심은 꽉 차게

    어린이날 문화공연 가이드…주머니 가볍게, 동심은 꽉 차게

    살아 움직이는 그림? 요즘 대세라는 발레? 검증된 전통 애니메이션? 빨간 날이 몰려 있는 5월. 빈약한 아이디어와 호주머니 사정에 시달리는 가장에게는 부담스러운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공연 한편 보는 건 어떨까. 가족 나들이에 걸맞은 문화 행사를 추려 봤다. ●“동심 유혹엔 애니메이션이 최고!” 애니메이션 개봉일은 어린이날인 5일에 맞춰졌다. ‘토마스와 친구들-극장판 3’은 씩씩하고 용감한 꼬마 기관차 토마스가 제일 열심히 일한 기차로 뽑혀 육지로 ‘포상 휴가’를 떠났다가 겪는 모험을 그렸다. 배우 지진희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썬더 일레븐 극장판: 최강 군단 오우거의 습격’은 지난해 일본에서 약 230억원의 수익을 올린 화제작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주장 강수호의 열정 덕에 만년 꼴찌였던 천둥중 축구부가 ‘축구 프런티어’ 결승에 올라 수수께끼의 오우거 축구부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인기 캐릭터 ‘짱구’도 빠질 수 없다. 2009년 극장판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된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은 14만명을 불러모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짱구는 못 말려: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대목이다. 위기에 빠진 미래의 자신과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짱구가 시간 여행을 떠난다. ●“클래식, 어려운 것만은 아니란다” ‘김지호와 함께하는 2011 예술의전당 어린이음악회’가 5월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초등학생 딸을 둔 탤런트 김지호의 해설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등이 연주될 예정이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여자경)가 연주를 맡고 김규희, 손은정(피아노)이 협연한다. 1만~3만원. 국립무용단은 4~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프린세스 콩쥐’를 올린다. 국립무용단이 어린이용 작품을 내놓는 것은 처음이다. 콩쥐팥쥐 이야기를 기본으로 삼되 한국적 얘기를 고집하기보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섞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5000~7만원. 국립발레단은 8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코펠리아’를 공연한다. 19세기 낭만 발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한 작품으로, 어린이들은 물론 발레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상세한 해설을 곁들였다. 전막 발레이며 공연 시작은 4월 30일이다. 1만~4만원. ●“무대에서 신나게 흔들어 봐요” 4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엔 가족 뮤지컬 ‘알라딘’이 오른다. 아역 배우 서신애와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김동준이 주역이다. 3만~5만원.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삼은 ‘브레멘 음악대’도 빠질 수 없다. 지난 5년간 유료 객석 점유율 75%에 동원 관객 35만명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5월 29일까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3만~5만원. 5월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충정로 문화일보홀에선 음악극 ‘모차르트 원정대’가 오른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살리에르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이 힘을 합쳐 음악회를 연다는 내용으로 그 과정 속에서 관객에게 타악기 연주를 들려준다. 관람료는 전석 2만원이며 3인 가족 패키지는 3만원이다. 서울 역삼동 LIG아트홀은 어린이날 전후인 4~8일 해외 작품 두편을 올린다. 요술 카펫을 타고 호주의 대자연을 누비는 ‘솔트부쉬’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는 ‘앨빈 스푸트니크의 모험-심해탐험가’다. 2만~3만원. 한국국악교육원이 5일 서울 홍은동 서대문문화회관에 올리는 국악동화극 ‘혹부리 영감과 노래주머니’도 있다. 1만 2000원. ●“헉, 그림이 살아 움직여요” 6월 26일까지 서울 구로동 테크노마트 신도림점에서 열리는 ‘2011 트릭아트 서울 특별전’은 착시 효과를 이용해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명작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눈속임 회화에 관심이 큰 일본 회사의 원작을 그대로 들여왔다. 1만 2000원. 수원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은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앤서니 브라운 원화전’을 연다. 앤서니 브라운은 ‘미술관에 간 윌리’ ‘마술피리’ 등을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림책 작가다. 한국의 엄마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작품 250여점을 원화로 만날 수 있다. 1만 2000원. 체험 행사도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경기 양주 장흥아트파크에서는 7월 10일까지 어린이 체험전 ‘쑥쑥’이 열린다. 5000~7000원. 조태성·임일영·김정은기자 cho1904@seoul.co.kr
  • ‘영드’ SF 재난시리즈 안방 공략

    ‘영드’ SF 재난시리즈 안방 공략

    지금껏 공중파와 케이블TV의 수입 드라마는 ‘미드’(미국 드라마) 일색이었다. ‘일드’와 ‘중드’는 소수 팬의 지지에 힘입어 명맥을 이어 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만듦새가 탄탄한 ‘영드’들이 몰려오면서 수입 드라마 판도에 미묘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2월 영화채널 OCN에서 방송 당시 3주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셜록 홈스’가 그 시작이었다. 영국 국민 드라마인 ‘닥터 후’의 작가 스티븐 모펫과 마크 게티스가 공동 집필하면서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린 데다 영화 ‘어톤먼트’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그려낸, 까칠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21세기판 셜록 홈스는 영국에서도 대성공을 거둬 시즌 2를 예약했다. ‘셜록 홈스’의 성공에 힘입어 또 한편의 ‘영드’가 안방을 공략한다. OCN은 29일부터 2주 동안 매주 금요일 밤 12시에 5부작 SF 재난 시리즈 ‘패러독스’를 방송한다. 미래에서 온 의문의 메시지를 해석해 인류에게 닥칠 대재앙을 막는 과정을 그린 ‘패러독스’는 2009년 11월 영국 BBC1 채널에서 처음 방송됐을 때 시청률 15.8%를 기록했다. 역설과 모순을 뜻하는 ‘패러독스’란 제목처럼 진위를 판단할 수 없는 미래의 경고 메시지에 따라 18시간 후 일어날지 모르는 대재앙을 막아야 하는 상황을 그린다. 제한된 이미지로만 표현된 경고 메시지를 추리하고 단서를 좇는 과정이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호텔 바빌론’에서 섹시한 매력을 발산한 영국의 톱스타 탐진 오스웨이트가 미래의 비극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열혈 형사 레베카 플린트를, 에문 엘리엇이 미래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아웃사이더 물리학자 크리스틴 킹 역을 맡았다. 한지형 OCN 편성피디는 “영국 드라마는 특유의 문학적인 분위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있었다. 또 뉘앙스를 강조한 대사 때문에 한국말로 번역했을 때 맛을 살리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셜록 홈스나 패러독스 등은 캐릭터와 스토리가 살아 있는 데다 소재도 대중적이기 때문에 영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OCN은 최근 영국 드라마의 인기와 맞물려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그를 쫓는 수사관을 그린 BBC의 범죄 수사 드라마 ‘루터’도 5월에 방영할 계획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탤런트 김인문씨

    [부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탤런트 김인문씨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 8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김인문 씨가 25일 오후 6시 34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72세. 손녀딸인 김은경씨는 “할아버지께서 지난해 4월 말 방광암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하셨다.”면서 “며칠 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오늘 저녁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5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재활에 성공했다. 당시 병원에서 앞으로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정까지 받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일어났다. 이후 2007년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에, 2008년에는 연극 ‘날개 없는 천사들’에 출연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영화 ‘독 짓는 늙은이’의 주인공 송노인 역을 맡아 투병 중에도 촬영을 마쳤다. 동국대 농대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68년 김수용 감독의 ‘맨발의 영광’으로 데뷔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당하였으나 김 감독에게 70여일을 매달린 끝에 배우가 됐다. 1968년 TBC 특채탤런트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형’ ‘가시나무 꽃’ 등의 드라마와 ‘저 하늘에도 슬픔이’ ‘달마야 놀자’ ‘바람난 가족’ 등의 영화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구수한 연기를 펼쳤다. 특히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된 장수 드라마인 KBS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정감 넘치는 멋쟁이 아버지 ‘백구두 신사’를 연기해 사랑을 받았다. 뇌경색을 극복한 후에는 장애 배우들을 육성하는 데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2009년 1월 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를 설립, 장애 배우들을 훈련시켰다. 그가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린 ‘날개 없는 천사’에는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환자가 배우로 출연했다. 유가족은 부인 박영란씨와 필주(씨네크루 대표 )·헌주(삼화 F&B 이사)씨 등 두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8일이다. (02)2227-750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8일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낸 영화밥상

    28일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낸 영화밥상

    봄이면 전주를 찾는 외지인들이 급증한다. 세 부류쯤 된다. 꽃놀이와 식도락을 겸한 상춘객, 프로농구팬(KCC 연고지가 전주다), 그리고 영화 마니아들이다.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는 28일부터 새달 6일까지 열린다. 총 38개국 190편이 상영된다. 한술 뜨면 숟가락을 놓기 어려운 전주식 성찬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셈. 놓치면 후회할 영화 8편을 추려봤다. ●‘불면의 밤’에 만날 보석들 올빼미 관객이라면 자정부터 동 틀 때까지 쉬지 않고 영화를 보는 ‘불면의 밤’ 섹션을 주목할 것. 새달 1, 4일 ‘불면의 밤’에서는 지난해 전 세계 영화잡지들이 꼽은 최고의 영화 10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카를로스’(오른쪽)를 만날 수 있다. 1970~80년대 악명을 떨친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더 재칼(본명 일리치 라미레즈 산체스)이 1973년 첫 테러부터 1994년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기까지를 5시간 30분의 러닝타임에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담았다. 지난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과 미국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멕시코의 호르헤 미셸 그라우 감독의 데뷔작 ‘우린 우리다’도 두고 볼 만하다. 인육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저주받은 가족을 그린 호러 영화. 초저예산으로 찍은 탓에 화면에서는 ‘빈티’가 나지만, 고만고만한 뱀파이어물로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 ●오늘의 거장과 내일의 거장들 올해 독일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남녀주연상을 휩쓴 아스거르 파르허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 별거’(왼쪽)가 개막작으로 국내 첫선을 보인다. 통속적일 수 있는 이야기의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간다.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거짓말의 윤리적 문제, 종교, 성(性)과 계급 등 이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담아낸다.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스릴러 ‘이센셜 킬링’은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체포된 이슬람교도가 북유럽 눈덮인 산에 버려진 뒤 추위와 굶주림, 고독, 공포에 맞서 사투를 벌인다. 상영시간 내내 별다른 대사 없이 죽도록 고생하는 갈로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친형 박찬욱 감독과 함께 작업한 ‘파란만장’으로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금곰상을 받은 박찬경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를 출품했다. 20여년 전 안양 봉제공장 화재로 22명의 여공이 사망한 사건을 따라가면서 도시개발의 문제, 기억과 망각 등 중첩된 질문을 던진다. 뱅크시 감독의 ‘선물가게를 지나는 출구’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영화제 화제작이다. 영국의 그라피티 예술가로 신분과 얼굴을 밝히지 않은 채 세계 곳곳에서 작업하는 뱅크시의 첫 장편영화다. 올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다. ●만화 혹은 만화원작 소품들 1960~70년대 일본의 청춘들에게 좌표를 제시한 복싱만화 ‘내일의 조’는 극영화 버전으로 상영된다. ‘조’ 역은 아이돌 스타 야마시타 도모히사가 맡았다. ‘야마삐’(야마시타의 애칭) 팬이라면 원없이 몸매를 감상할 기회이니 놓치지 말 것. 고속촬영으로 재현된 조의 주특기 크로스카운터(일부러 상대에게 주먹을 허용하다가 빈틈을 노려 맞받아치기)도 인상적이다. 실뱅 쇼메 감독의 ‘일루셔니스트’는 미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내공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실직한 늙은 마술사와 소녀와의 우정을 다뤘고,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하는 마법 같은 작품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박스 오피스] ‘분노의 질주-언리미티드’ 정상에

    [주말 박스 오피스] ‘분노의 질주-언리미티드’ 정상에

    액션스타 빈 디젤을 앞세운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분노의 질주-언리미티드’가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분노의 질주’는 지난 22~24일 전국 554개 상영관에서 39만 6071명(33.2%)을 모아 1위를 차지했다. 류승범 주연의 ‘수상한 고객들’은 23만 5213명(19.7%)에 그쳐 2위로 떨어졌다. 3위 ‘위험한 상견례’는 19만 3149명(16.2%)으로 누적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0만 94명으로 4위,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은 5만 9453명으로 5위에 올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잘 쓰여진 詩 같은 모차르트 들려주다

    잘 쓰여진 詩 같은 모차르트 들려주다

    1976년 스위스 루체른페스티벌. 피아노를 치는 친오빠와 협연을 펼친 열세살짜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의 솜씨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소문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의 귀에 들어갔다. 카라얀의 초대를 받은 소녀는 마에스트로와 베를린필 단원 앞에서 바흐의 ‘샤콘’을 연주했다. 넋을 잃고 듣던 카라얀은 소녀를 베를린필의 정식 협연자로 채용하는 한편, 이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초대해 베를린필과 같은 무대에 세웠다. ‘바이올린 여제’의 거침없는 행보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15세 때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표한 첫 음반(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3·5번)으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10대 소녀에게 카라얀은 “세계 3대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사람이며 경우에 따라서 1인자일지도 모른다.”는 극찬을 했다. 1989년 카라얀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음반과 공연에서 함께했다. 안네 소피 무터(48)의 얘기다. ‘여제’의 위기는 카라얀 사후에 찾아왔다. 정신적 지주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을 터. 그 즈음 스물입곱살 연상인 카라얀의 변호사 데트레프 분더리히와 결혼했다. 세상은 ‘의외의 선택’에 놀랐지만, 두 아이를 낳고 행복했다. 1995년 분더리히가 암으로 숨지면서 또 한번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2002년에는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재혼했다. 4년 만에 헤어지고 음악적 동지로 남았다. 범접하기 힘든 연주력은 물론, 금발의 아름다운 외모와 짙은 화장, 어깨끈 없는 과감한 드레스 등 음악 외적인 요인으로도 두터운 팬을 확보한 무터가 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선다. 2008년 트론하임 솔로이스츠와 내한한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공연에서 자신의 핵심 레퍼토리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K454를 선보인다. 무터는 “모차르트 음악은 잘 쓰여진 시와 같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간결하게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G장조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소나타 F장조 등 도 연주한다. 변신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선택이다. 깊어진 여제의 품격을 확인할 기회다. 5만~18만원. (02)318-4301.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지아 5년전 재산권 포기”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가 위자료 및 재산분할 소송을 벌이는 가운데 이지아가 재산권을 이미 포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MBC는 24일 ‘뉴스데스크’에서 “이지아가 5년 전 미국 법원에 서태지와의 이혼 청구 서류를 제출했고 LA 인근 샌타모니카 가정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됐다.”면서 “담당 판사가 이혼을 확정한 일종의 이혼 판결문에는 원고 이씨가 서씨로부터 위자료 등 금전적 지원을 포기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보도했다. MBC가 미주 한국일보를 통해 입수했다는 이혼판결문에 따르면 2006년 6월 12일에 판결이 확정됐고, 이혼 효력이 발생하는 시기는 두 달 뒤인 2006년 8월 9일로 표시돼 있다. 문건에는 또한 이날로 혼인 관계는 종료되고 싱글이 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지아 측은 서울가정법원에 소를 제기하면서 2009년에 이혼 효력이 발생했다는 근거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서태지·이지아’ 소송, 농협 해킹 클릭 광풍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서태지·이지아’ 소송, 농협 해킹 클릭 광풍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14년에 걸친 만남과 이별, 법정 송사가 인터넷 세상을 점령한 한 주였다. 서태지와 이지아가 50억원대의 위자료 및 재산 분할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21일 알려졌다. 이날 밤 이지아는 소속사를 통해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대부분의 사실을 인정했다. 불과 오전까지만 해도 정우성과의 데이트 장면이 화제였지만 반나절 만에 대반전이 일어난 셈. 오리무중에 빠진 농협 사이버테러 사태가 2위에 올랐다. 검찰이 지난 19일 농협 서버에 삭제 명령을 내린 노트북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적어도 한달 전 이 명령이 예약 실행되도록 프로그램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농협 내부 시스템과 운영구조를 잘 아는 내부 직원 소행이거나 내부자가 외부 해커와 공모했을 개연성을 조사하고 있다. 소녀시대의 ‘가창력’을 담당하고 있는 태연이 지난 17일 공연에서 한 남성 관객에게 납치될 뻔한 사연은 3위에 올랐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밝혀진 이 남성은 잘못을 반성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귀가했다. 4위는 축구대표팀 공격수 박주영의 결혼 소식이 차지했다. 프랑스 프로축구 AS 모나코에서 활약 중인 박주영은 오는 6월 프랑스리그를 마친 뒤 한살 연상의 정유정씨와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이들은 2005년부터 캠퍼스 커플로 만나 6년째 공개 연애를 했다. 5위는 고학력 백수 300만명.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비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전문대와 4년제 대학교 이상을 졸업한 ‘고학력 백수’가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6위는 BBK 수사팀 패소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을 담당한 수사팀이 김경준씨를 회유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검찰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이 났다. 가수 윤복희가 MBC ‘무릎팍도사’에서 가수 남진과의 결혼은 첫 남편 유주용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 7위에 올랐다. 8위는 지난 23일 분당선 죽전역 부근에서 일어난 전동차 탈선사고 소식이었다.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셧다운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9위, SBS ‘생활의 발견’ 방송 사고가 10위에 올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화제작사 “무료초대권 남발 31억 피해”

    영화사 ‘봄’을 비롯한 23개 영화제작사가 멀티플렉스에서 무단으로 무료초대권을 발급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CJ CGV와 롯데쇼핑, 프리머스, 메가박스 등 4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들은 소장에서 “CGV 등은 제작자 및 투자자들과 상의 없이 개점초대권, 마일리지초대권 등의 명목으로 부금이 정산되지 않는 무료초대권을 남발해 손해를 입혔다.”면서 “피해금 약 31억 4000만원을 보상하라.”고 주장했다. 부금이란 상영관이 영화요금 중 약속된 비율에 따라 배급업자에게 지급하는 금액을 말한다. 국내영화는 배급사와 상영관이 5대5, 외국영화는 서울 6대4, 지방 5대5의 비율로 나눈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료초대권과 관련해 CJ CGV 등 대기업이 부당행위를 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영화제작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국내배급사는 영화제작자와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들과 같은 대기업 계열사로 수직계열화돼 있어 피고들과의 공모나 방임으로 이 같은 행위를 막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관계자는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대기업의 전횡을 고쳐야만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소프라노 게오르규, 6년만의 아리아 선물

    소프라노 게오르규, 6년만의 아리아 선물

    미모에 살짝 묻어 가는 가수가 있는가 하면, 실력이 미모에 묻혀 저평가되는 일도 있다. 루마니아 출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46)는 데뷔 초만 해도 후자였다. 동유럽 출신의 약점을 딛고 일어서려고 영어는 물론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까지 빨아들여야 했다. 1994년 11월 영국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하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여주인공을 맡으면서 게오르규는 비로소 정상급 프리마돈나로 발돋움한다. 공연 직전 리허설에서 게오르규의 아리아를 들은 솔티가 눈물을 쏟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솔티는 “오랫동안 연주를 해왔지만 그렇게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한 적이 없다. 나는 잠시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10년이 넘도록 코벤트가든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에서 구름관중을 쓸어모으는 비올레타(‘라 트라비아타’ 주인공)와 미미(‘라보엠’ 주인공)로 군림하고 있다. ‘오페라의 여신’ 게오르규가 6년의 기다림 끝에 한국팬과 재회한다. 2002년과 2005년에 이어 세번째다. 무대는 오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폭넓은 음역을 넘나드는 고음과 표현력, 우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기회다. 당초 일본 공연이 대지진 여파로 연기되면서 한국 공연마저 무산될 위기였지만, 한 금융기업이 자사 고객들을 위한 1회 공연을 추가로 유치하면서 되살아났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가운데 ‘어떤 갠 날’, 카탈리니의 ‘라 왈리’ 중 ‘나 이제 멀리 떠나가리’ 등 친숙한 아리아를 선물할 계획이다. 같은 루마니아 출신의 신예 스테판 마리아 포프(24)와 함께 푸치니의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신비로운 이 묘약’을 함께 부른다. 7만~22만원. (02)541-2513.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토르: 천둥의 신’ 美 앞서 28일 국내 개봉

    ‘토르: 천둥의 신’ 美 앞서 28일 국내 개봉

    미국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물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마블엔터테인먼트가 ‘신상’을 내놓았다. 미국(새달 6일 개봉)보다 한발 앞서 오는 28일 국내서 뚜껑을 여는 ‘토르: 천둥의 신’이다. 게임이나 신화에 관심이 없다면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르는 “히어로 사상 가장 힘이 센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던 마블코믹스의 스탠 리(89) 명예회장이 가장 아끼는 만화 캐릭터이다. 스탠 리가 대중문화 장르로 끌어오기 전에도 그는 유명인사였다. 목요일(Thursday)은 토르(thor)의 날이란 의미. 고대 북유럽(게르만족) 신화에서는 천둥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해머(묠니르)를 휘둘러 거인족과 맞서 싸우는 등 탁월한 전투력을 뽐내지만, 단순하고 우직해 외려 살가운 존재다. 다만 신들의 영역을 그린 터라 영화로 만들 엄두는 쉽게 내지 못했다. ●셰익스피어의 터치… 인간보다 인간다운 신 ‘헨리 5세’(1989)와 ‘헛소동‘(1993) ‘햄릿’(1996)을 연출한 영국 왕립연극아카데미 출신의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불멸의 신 토르를 뻔한 액션영화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았다. ①자만심에 빠져 사고를 친다→②아버지(오딘)의 노여움을 사 인간세계(미스가르드)로 쫓겨난다→③개과천선해 왕국을 구한다는 식의 전개는 그리스 희곡과 닮은 꼴이다. 때문에 다른 무결점 슈퍼 히어로보다 더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브래너 감독은 “왕이 될 자질이 부족한 토르가 모든 것을 잃은 후 자아를 찾아 영웅이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토르’는 제법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다. 서사구조를 지닌 신화에 바탕을 둔 데다 정극에 도가 튼 브래너가 매만진 덕에 슈퍼히어로물의 고질병인 ‘엉성한 드라마’를 극복했다. ‘아바타’ 이후 모처럼 3차원(3D) 영상의 장점을 제대로 살렸다. 신의 세계인 아스가르드 왕국은 눈부신 황금빛으로, 거인들의 왕국 요툰하임은 차갑고 버려진 땅으로 묘사된다. 풍경의 입체적인 완성도는 물론, 타이슨의 경기를 보는 듯한 투박하고 묵직한 액션 장면의 쾌감도 괜찮다. ●마블코믹스 vs DC코믹스: 숙명의 라이벌 토르 같은 슈퍼 히어로의 고향은 역시 미국이다. 1930년대부터 꾸준히 히어로를 창조했다. 창사 70주년을 넘긴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가 쌍두마차 격이다. 1935년 출범한 DC코믹스의 스타는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아쿠아맨·플래시·그린랜턴이 있다. 반면 1939년 만들어진 마블코믹스에는 스파이더맨·헐크·아이언맨·엑스맨·데어데블·블레이드·판타스틱 Ⅳ가 대표 주자다. 두 회사의 캐릭터는 확연히 구분된다. DC의 영웅들은 대체로 잘 빠진 근육질(혹은 S라인) 몸매에 민망한 쫄쫄이를 즐겨 입는다. 슈퍼 히어로의 기본 유니폼으로 자리 잡아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됐다. 행동도 지극히 ‘미국스럽다’. 악의 무리를 때려잡는 ‘세계경찰 미국’의 상징인 슈퍼맨이 냉전시대를 관통한 캐릭터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DC코믹스의 예외적 존재인 배트맨이 오늘날의 입체적 캐릭터로 변한 것은 그래픽노블(만화소설)의 대가인 ‘씬시티’의 프랭크 밀러나 ‘왓치맨’의 앨런 무어가 가세한 1980년대 이후다. 반면 후발주자 마블은 어두운 과거를 품고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내세웠다. 실험 부작용 등으로 생긴 자신의 능력을 짐으로 여기고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돌연변이(엑스맨)나 괴물(헐크), 왕따 고교생(스파이더맨), 반인-반흡혈귀(블레이드)에 유니폼도 제각각이다. 마블 왕조를 건설한 스탠 리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로 요즘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먹히고’ 있다. 마블의 예외는 재벌이자 천재과학자 겸 슈퍼 히어로인 아이언맨 정도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마블의 캐릭터들이 영화시장에서 DC를 압도했다. 아이언맨과 엑스맨 시리즈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DC 작품 가운데 성공한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히스 레저(조커 역)의 도움을 받은 ‘다크나이트’(배트맨 시리즈) 한편뿐이다. ●‘토르’에도 숨겨진 영상…자막 끝날때까지 버텨라 2000년대 초반까지 히어로 캐릭터를 빌려준 대가를 챙기던 마블은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제작·투자에 나섰다. 덕분에 기업가치를 잔뜩 키워 2009년 40억 달러를 받고 디즈니에 회사를 넘겼다. 아직까지는 디즈니 그룹 내에서도 독자 영역을 인정받는 마블의 야망은 제작비만 6억 달러가 드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어벤저스’로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헐크와 아이언맨, 토르, 캡틴아메리카를 한 작품에서 보여주자는 것.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청룽의 NG 모음 만큼이나 유명해진 마블의 숨겨진 영상(영화가 끝난 뒤 1분 안팎의 영상)을 통해 조금씩 흘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08년 ‘아이언맨’의 끝장면에는 ‘아이언맨 2’에 본격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총괄 조직 ‘쉴드’의 닉 퓨리(사뮤엘 잭슨) 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해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헐크(에드워드 노튼)를 탄생시킨 선더볼트 장군 앞에 ‘아이언맨’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왔다. 지난해 ‘아이언맨 2’는 지구에 떨어진 정체 불명의 해머(망치)로 끝이 난다. 알고 보니 ‘토르’의 주무기(묠니르)였던 것. ‘토르’는 한발 더 나간다. 그러니 영화가 끝난 뒤에도 서둘러 일어서지 말고 끝까지 버틸 일이다. ‘캡틴아메리카’는 미국색을 빼기 위해 제목을 ‘퍼스트 어벤저’로 바꿔 7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화리뷰] ‘상실의 시대’

    감독에게 베스트셀러 원작은 비빌 언덕일 때가 많다. 논란은 원작의 그늘이 너무 짙을 때 생긴다. 1987년 첫 발간 후 36개국에서 1100만부가 팔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원제:Norwegian Wood)쯤 되면 적확한 예가 될 법 하다. 오랜 세월 왕자웨이 감독을 비롯한 숱한 이들이 매달렸지만 하루키는 영화화를 거절했다. 4년여의 구애 끝에 허락받은 이는 베트남 출신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홍이다. ‘그린파파야의 향기’ ‘씨클로’를 통해 영상시인으로 불리는 감독이다. 17살의 와타나베(마쓰야마 겐이치)는 기즈키와 그의 연인 나오코(기쿠치 린코)와 어울렸다. 어느 날 기즈키가 목숨을 끊는다. 2년 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던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재회한다. 둘 다 죽은 친구의 존재를 애써 거론하지 않는다. 나오코의 스무 살 생일. 둘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나오코는 기즈키를 잊은 게 아니었다. 우울증이 심해진 나오코는 요양원에 들어간다. 그즈음 와타나베에게 사랑스러운 여인 미도리(미즈하라 기코)가 나타난다. 건조하게 줄거리만 읊으면 ‘상실의 시대’는 삼각관계가 얽히고설킨 연애소설이다. 물론 단순 연애소설이라면 20년 넘도록 스테디셀러로 남지는 못했을 터. 1960~70년대 일본 사회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사람(혹은 사회)과 소통하지 못하는 청춘의 얘기는 비슷한 경험을 한 한국·유럽 독자에게도 울림을 남겼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나날은 우리에게 이른바 ‘멀미나는 시대’였습니다…여기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동시에 시대를 감싼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상실의 시대’ 한국어판 중 하루키의 서문) 하지만 21일 개봉한 트란 안 홍 감독의 ‘상실의 시대’는 청춘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시대를 감싼 분위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의 시선은 사랑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청춘들로 국한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치유할 수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함도,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는 와타나베의 내레이션은 감독의 시각을 오롯이 드러낸다. 찬반이 엇갈리는 지점이다. 물론 원작에 대한 기대치를 걷어내면 영화도 제법 괜찮다. 특히 영화를 보면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도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분명히 떠올릴 수 있다.”던 소설 속 서른일곱 와타나베의 독백이 절절이 와 닿는다.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속마음을 토해내는 이 장면은 일본 효고현의 초원에서 무려 5분여의 롱테이크로 완성됐다. 무난한 캐스팅 속에 돋보이는 이는 미도리로 나오는 한국계 신인배우 미즈하라 기코다. 그의 묘한 눈빛과 목소리는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133분. 18세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푸치니의 ‘토스카’ 눈으로 즐기세요

    음악평론가 안동림씨는 저서 ‘내 마음의 아리아’에서 “푸치니의 토스카는 눈으로 봐야 할 오페라”라고 말했다. ‘오묘한 조화’(Recondita armonia·1막),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2막), ‘별은 빛나건만’(Elucevan le stelle·3막) 등 오페라와 담을 쌓은 이들도 들어봤을 법한 중독성 강한 아리아들이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의 ‘토스카’에 담겨 있다. 하지만 안씨의 말처럼 토스카의 고갱이 같은 아리아를 CD로만 빼먹는 것과 직접 무대를 보는 즐거움은 비교할 수 없다. 서울시오페라단이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리는 ‘푸치니’를 놓쳐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이 2007년부터 3년에 걸쳐 ‘베르디 빅5’ 공연을 통해 원작에 충실한 해석에 장점이 있음을 입증한 것도 기대치를 높이는 대목이다. 박세원 단장은 “베르디에 이어 푸치니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베르디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특유의 색채를 잃지 않은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푸치니의 또 다른 작품 ‘자니 스키키’도 7월에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토스카는 가수들에게 부담스럽다. 오페라팬들이 남자 주인공(카바라도시)의 아리아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버전에, 여주인공(토스카) 노래는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녹음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카바라도시는 테너 박기천이, 토스카는 소프라노 임세경이 맡았다. 박기천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에서 올 시즌 ‘투란도트’의 칼리프 역과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에 잇따라 발탁되기도 했다. 임세경은 지난해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극장에서 ‘아이다’의 주인공을 맡아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라는 평을 받았다. 2만~12만원. (02)399-1783~6.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슈베르트 팬이세요 이남자 놓치면 후회

    슈베르트 팬이세요 이남자 놓치면 후회

    거장의 후광이 불편할 때가 있다. 이미 ‘일가’를 이뤘는데도 ‘아무개의 제자’란 이유로 평가절하되는 경우다.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38)도 한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체코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알프레도 브렌델(80)의 애제자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루이스는 축구와 비틀스, 사이먼 래틀(독일 베를린 필 음악감독)의 도시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전형적인 리버풀의 노동자 집안이라 넉넉하지 않았지만, 4번째 생일에 장난감 피아노를 선물 받았다. 가정형편상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피아노 교사가 없어 첼로를 먼저 잡았다. 점심시간에 홀로 피아노를 두들기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맨체스터의 체담 음학학교에 들어가 제대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된 것은 열네 살 때의 일이다. 늦깎이인 셈이다. 런던 길드홀 음악원에서 브렌델 문하(門下)에 들어가면서 루이스의 인생이 달라진다. 좀처럼 제자를 두지 않는 꼬장꼬장한 노장 피아니스트에게 발탁된 것은 양날의 칼. 빨리 주목을 받았지만, ‘브렌델 복제판’이란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음반부터 까다로운 슈베르트의 후기 소나타를 녹음한 데 이어 베토벤 소나타 전집 녹음 등 뚜벅뚜벅 나간 끝에 스승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내로라하는 슈베르트 해석가로 우뚝 섰다. 오는 2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루이스의 첫 내한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다. 루이스는 “아무런 선입견이나 기대 없이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경험하고 싶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5번 C장조와 제17번 D장조 등 전공인 슈베르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루이스는 “C장조 소나타는 두 악장만으로 구성돼 있는데, 끝에 가서 해답을 주지 않고 우리를 의문에 빠뜨린 채 남겨 놓는 것이 슈베르트 작품의 전형”이라면서 “슈베르트는 종종 우리에게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고 말했다. 슈베르트 팬이라면 그의 해석이 더 궁금해질 터. 3만~10만원. 1544-8117.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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