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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프리뷰] 톰 매카시作 ‘비지터’

    [영화프리뷰] 톰 매카시作 ‘비지터’

    미국 코네티컷대학 경제학과 교수 월터(리차드 젠킨스)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삶의 의욕을 잃었다. 해마다 똑같은 강의를 하고, 강의계획서 연도만 수정액으로 고쳐 되풀이할 만큼 무기력증에 빠진 것. 논문 발표를 위해 뉴욕에 간 월터는 오랫동안 비워놓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불법체류자 타렉-자이납 커플과 만난다. 당장 한밤중에 갈 곳 없는 그들에게 월터는 집을 구할 때까지 머물라고 한다. 타렉은 감사의 뜻으로 월터에게 젬베를 가르쳐 준다. 클래식의 4박자에 길든 월터는 아프리카 음악의 3박자 리듬에 애를 먹지만 둘 사이에는 묘한 우정이 싹튼다. 공원에서 함께 거리공연을 펼치고 오던 길에 타렉이 연행을 당하면서 영화는 속도를 낸다. 연기자 출신인 톰 매카시 감독의 2007년작 ‘비지터’가 뒤늦게 한국에서 개봉된다. 영화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국내 관객에겐 행운이다. 매카시 감독은 관계와 소통을 얘기한다. 월터는 아내를 잃고 홀로 남은 60대 백인, 명문대 교수다. 굳이 살아야 할 이유조차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다. 반면 시리아 출신 20대 젬베 연주자 타렉은 불법 체류자인데다 수입도 거처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하는 연인, 어머니로 충만하다. 월터의 어설픈 젬베 연주에 타렉이 젬베로 화음을 넣는 장면에서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자는 경계를 허문다. 알게 된 지 불과 열흘밖에 안 된 타렉의 석방을 위해 월터가 대학에 휴직계를 내고 뉴욕으로 와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작위적이지 않은 까닭은 월터가 타렉과 젬베를 통해 비로소 삶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타렉이 영장 없이 연행되고, 불법이민자 수용소로 이송된 후 매카시 감독은 슬쩍 정치적 색채를 드러낸다. 9·11 이후 한껏 강화된 ‘애국법’이 아프리카계나 이슬람교도들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꼬집는다. 2009년 제81회 아카데미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젠킨스의 연기는 일품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외롭게 살아가던 노교수의 무뚝뚝한 얼굴, 젬베 리듬을 접한 뒤로 미묘하게 얼굴을 씰룩거리던 모습, 이민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파르르 떨리던 분노의 눈빛, 타렉 어머니와 뮤지컬을 보러갈 때의 설레임 등 작은 표정변화와 눈빛, 목소리 톤의 조절만으로도 모든 것을 표현한다. 11월 8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탄압·가난에 버려진 쿠르드족 남매 생존기

    탄압·가난에 버려진 쿠르드족 남매 생존기

    소녀 굴리스탄은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던 중 부모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남동생과 아직 갓난아이인 막내와 남은 굴리스탄은 이모 옛분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이모는 그들을 스웨덴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데리고 가기 위해 비자를 발급받으러 나갔다 체포를 당한다. 다시 고아가 된 아이들은 시장을 맴돌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약을 살 돈이 없어 막내 동생까지 잃는다. 남동생 피렛은 소매치기들과 어울려 폭력적으로 변해 가고, 굴리스탄은 콜걸 딜라라를 만나 매춘 행위를 돕는다. 어느 날 굴리스탄은 딜라라의 고객 누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부모를 죽인 자라는 걸 알게 된다. EBS는 26일 밤 12시 ‘금요극장’에서 ‘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을 방송한다. 영화는 터키 쿠르드족 주거지역 디야르바키르를 배경으로 정치·민족적 갈등에서 비롯된 아이들의 비극을 그린다. 쿠르드족에 대해 터키 군부는 오랜 세월 억압과 정치적 학살을 감행했다. 1990년대 초 학살은 정점을 이뤘고, 1만 8000여명이 죽음을 당했다. 동부 터키의 디야르바키르는 버려진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다. 영화는 오염된 어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거나 선량한 어른의 동정심으로 포장된 구원 따위로 현실을 윤색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들이 인내해야 하는 현실이며 보호막 없이 싸워야 하는 세상이다. ‘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은 정치·민족적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 전반부가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남매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면 후반부는 부모를 살해한 군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복수극으로 진행된다. 굴리스탄의 복수는 그의 죄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상징적이다. 터키 군부가 쿠르드족에 저지른 만행은 은폐되거나 국제사회에서 테러 소탕으로 정당화되기 일쑤였다. 따라서 살인범의 존재와 살인행위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쿠르드족의 존재를 알리고, 쿠르드인에게 가해졌던 폭력을 알리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라즈 베자르 감독은 수백만명의 쿠르드인 중 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독일로 망명한 이후, 영화감독을 꿈꿨던 그는 늘 첫 작품을 조국 쿠르디스탄에서 만들 것을 결심했다. 이 영화는 터키에서 쿠르드어로 개봉한 최초의 영화다. 배급이 쉽지 않아 베자르 감독이 직접 배급사를 차렸다. 심의를 통과할 때도 가짜로 만든 시나리오를 사용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박스 오피스] ‘광해’ 6주째 극장가 통치

    지난 20일 누적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6주째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9~21일 전국 619개 상영관에서 54만 6702명(매출액점유율 32.5%)을 모았다. 누적관객은 1025만 6491명. ‘광해’는 1230만명을 동원한 사극 ‘왕의 남자’보다 1주일 빨리 1000만 고지를 넘어서 그 이상 흥행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류승범의 연기변신이 돋보인 ‘용의자X’는 53만 5785명(매출액 32.5%)을 모아 간발의 차로 ‘광해’에 1위를 내줬다.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은 17만 6856명(11.2%)을 동원, 3위로 1주일새 한 계단 내려앉았다. 이어 조지프 고든 레빗 주연의 공상과학(SF) 액션 ‘루퍼’가 10만 5083명(6.7%)으로 4위,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5만 7888명(3.2%)으로 5위를 기록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 ‘스카이폴’ UP&DOWN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 ‘스카이폴’ UP&DOWN

    1954년 영국 해군 첩보부 정보분석가 출신 이언 플레밍(1908~1962)의 소설 ‘카지노로얄’은 전 세계적으로 6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1960년대 미·소 냉전 구도와 맞물려 플레밍이 심장마비로 숨지고 나서 출간된 ‘옥토퍼스와 리빙데이라잇’까지 14권의 소설 모두 예외 없는 성공을 거뒀다. 007의 폭발력을 간파한 영화제작자 앨버트 R 브로콜리가 첫 영화 ‘007 살인번호’를 공개한 건 1962년 10월 5일. 영화 역사상 최장 시리즈로 군림하며 22편이 만들어져 50억 달러(약 5조 6000억원)를 벌었다. 시리즈가 시작한 지 50주년을 맞는 2012년, 23번째 영화 ‘스카이폴’이 26일 전 세계 동시 개봉된다.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는 운동 능력은 떨어지고, 두뇌 회전도 무뎌진 퇴물 요원이다. 하지만 조직에 배신당한 전직 요원의 공격에 MI6(영국 정보부) 본부가 파괴되고, 우두머리 M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믿을 건 역시 본드뿐. ‘아메리칸 뷰티’(1999)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샘 멘데스가 드라마의 색깔을 한껏 강화해 연출한 ‘007 스카이폴’의 장단점을 분석해 봤다. [UP] 스파이 하면 본드, 이름값 어디로 가나요 명불허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꽤 많았다. 007 시리즈의 23번째 영화인 ‘007 스카이폴’은 영국 첩보 시리즈로서의 고전미와 현대적 세련미가 균형을 잘 이뤘다. 영화는 시작부터 촘촘한 주택가의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현란한 오토바이 액션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곧이어 이어지는 오프닝 크레디트는 영국의 팝스타 아델이 부르는 주제곡 ‘스카이폴’이 웅장하게 흐르는 가운데 전위적이고 고급스러운 영상으로 올해 탄생 50주년을 맞는 007 시리즈의 오랜 역사와 품격을 담았다. ‘스카이폴’은 판에 박힌 듯한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첩보영화의 고전으로서 자기만의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극 초반 눈길을 끄는 제임스 본드와 적의 격투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로 시속 50㎞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촬영돼 사실감을 더했다. 몸에 꼭 맞는 슈트를 입고 대부분의 액션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열연한 ‘영국 신사’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전히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영화는 적과 싸우다 임무 실패로 실종됐던 본드가 죽음의 위기를 딛고 다시 첩보원으로 활약하는 과정을 통해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전달한다. 또한 MI6의 수장인 M의 과거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MI6 조직을 구하려는 본드의 활약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멘데스 감독은 신구의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연령의 관객층을 공략했다. 감독은 본드카로 1960년대 007 시리즈에 나왔던 ‘애스턴 마틴’을 등장시켜 헌정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편 젊은 컴퓨터 천재 Q를 통해 최첨단 무기들을 선보이는 등 관객의 향수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영화의 큰 버팀목이다. 주디 덴치는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M 역을 맡아 연기 관록을 뽐냈고, 본드와 숙명적인 대결을 펼치는 실바 역의 연기파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제2의 조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악랄한 악당 역을 존재감 있게 표현했다. [DOWN] 쇠약해진 본드, 50년 골수팬들 실망할걸요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했던 007시리즈의 21편 ‘카지노 로얄’(원작소설의 1권에 해당)과 22편 ‘퀀텀 오브 솔라스’는 본드의 첫사랑 베스퍼 린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비밀조직 ‘퀀텀’과 본드의 대결을 그렸다. 말끔하면서도 바람둥이 이미지가 그득했던 1~5대 본드와 달리 크레이그는 ‘순정 마초’ 이미지로 시리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역대 본드 중 가장 거친 액션은 물론 처음으로 진지한 연애감정을 내보인 것. 23편의 메가폰을 잡은 멘데스와 제작진은 고민(혹은 욕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21~22편과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버린 독립된 이야기로 ‘스카이폴’을 풀어냈다. 본드가 악당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장소로 본드의 스코틀랜드 고향집을 택했다. 본드 부모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고, 이를 계기로 본드가 진짜 남자가 됐다고 슬쩍 흘린다. 시리즈의 또 다른 아이콘인 M 역의 주디 덴치도 과감하게 은퇴시킨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시리즈처럼 정색하고 ‘리부터’(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를 표방한 건 아니지만, 50주년을 맞아 ‘시즌 2’를 만들고 싶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 쇠약해진 본드에 대한 연민, 조직과 인간관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M의 모습, 동기 부여가 확실한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르뎀) 등 입체적인 캐릭터와 풍성해진 드라마는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산토끼’들을 포섭할 여지는 커졌지만, 50년 동안 단단하게 형성된 ‘집토끼’들에게는 실망스럽다. ‘본 시리즈’ 못지않은 크레이그의 맨몸 액션과 Q(영국정보부의 과학자)가 만들어낸 각종 신무기의 도움을 받는 첨단 액션을 되레 반감시킨 것은 분명하다. 상영시간이 2시간 23분이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드라마와 액션의 강약 조절이 더 아쉽다. 1대 본드걸 우슬라 안드레스를 시작으로 킴 베이싱어, 핼리 베리, 소피 마르소, 에바 그린 등 매혹적인 역대 본드걸과 달리 존재감이 없는 두 명의 본드걸(나오미 해리스, 베레니스 말로)이 구색 맞추기로 등장한 것 역시 실망스럽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작지만 매운 강소국 가지각색 영화 잔치

    작지만 매운 강소국 가지각색 영화 잔치

    인구 50만명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 문화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룩셈부르크 영화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모처럼 좋은 기회다. 25일부터 31일까지 한국·룩셈부르크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룩셈부르크 영화 특별전’이 서울 소격동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린다. 11편의 상영작 중 폴커 쉴렌도르프 감독의 ‘아홉번째 날’(2004)이 우선 눈에 띈다. 나치의 인종차별법에 대항해 포로수용소에 끌려간 크레머 신부는 강제 노역과 종교적 모욕, 폭력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종교적 양심과 신념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1942년 1월, 영문도 모른 채 크레머 신부는 9일간의 외출을 허락받는다. 이어 룩셈부르크 대주교를 나치에 협력하도록 회유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는다. 실패하면 다시 수용소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동료 사제들의 목숨도 위험하다. 존 말코비치가 주연하고, 니컬러스 케이지가 제작한 ‘뱀파이어의 그림자’(2000)는 엘리아스 메리지의 작품이다. 영화는 한 감독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독일의 유명 영화감독 무르나우는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판권을 얻어내지 못해 고민하던 중 주인공 흡혈귀를 올록 백작으로 바꾸고 제목 또한 ‘노스페라투’로 바꿔 촬영한다. 무르나우 감독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백작 역을 맡은 맥스 슈렉을 소개한다. 하지만 실제 뱀파이어와 같은 그의 모습에 모두 놀라고, 급기야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 ‘뱀파이어의 그림자’는 평단의 호평과 함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맥스 슈렉 역의 윌렘 데포는 LA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오른 폴 크루시튼 감독의 ‘아빠의 비밀’(2006)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열두 살 소년 노르바의 성장담을 그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끈 베릴 쾰츠 감독의 ‘핫 핫 핫’(2010)은 소심하고 불안한 마흔의 음악 애호가 페르디낭의 이야기이다. 수족관에서 오랫동안 물고기를 돌보던 주인공이 핀란드-터키식 스파에 배치되면서 잠재된 관능의 세계를 맞닥뜨리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광해’도 1000만… ‘극장가의 왕’ 되다

    ‘광해’도 1000만… ‘극장가의 왕’ 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지난 20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달 13일 개봉한 지 38일 만이다. 한국영화로는 일곱 번째,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를 포함하면 여덟 번째다. ‘광해’는 9월 개봉작으로는 첫 1000만 관객 돌파, ‘도둑들’에 이어 한 해 두 편의 1000만 관객 달성 기록도 쏟아냈다. ‘광해’의 흥행 성공은 익숙한 ‘왕자와 거지’의 구도에 코미디와 메시지를 버무려낸 탄탄한 시나리오, 이병헌 등의 호연, 추창민 감독의 연출력 등 콘텐츠 완성도가 담보됐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지도자에 목마른 대중의 기대가 투영된 영화 속 하선(광해군 대역을 맡은 광대) 캐릭터가 대선 정국과 맞물려 공감을 얻었다. 물론 올 들어 시장점유율이 21%까지 추락하면서 자존심을 구긴 CJ E&M(공동제작·배급사)이 홍보·마케팅 비용으로 30억원가량 쏟아붓고, 개봉 초기 900개 안팎의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등 든든한 지원을 받은 것도 단단히 한몫했다. 하지만 ‘광해’는 잉태부터 탄생까지 지금껏 6편의 1000만 영화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괴물’ ‘도둑들’ ‘태극기 휘날리며’ ‘해운대’는 감독이 각본을 썼고, ‘왕의 남자’ ‘실미도’는 원작이 존재했다. 반면 ‘광해’는 2009년 말 CJ E&M 기획팀 인턴이 내놓은 A4용지 한 장 반짜리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다니던 안소정씨는 ‘광해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정적의 독살 위협 때문에 대역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동법 시행과 실용외교 등 긍정적 평가를 받는 부분을 대역이 했다고 하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때마침 학계·출판계에서는 광해군 재조명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채택되자 사학과 출신 김보연 프로듀서가 서너 달을 매달려 20쪽 분량의 트리트먼트(줄거리와 중요 장면, 등장인물을 압축한 글)를 썼다. ‘올드보이’의 황조윤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아 시나리오를 탈고한 게 지난해 초. CJ E&M 임상진 기획1팀장은 “‘마파도’만 했으면 추창민 감독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면서 드라마와 코미디를 고급스럽게 풀어 가는 능력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추 감독이 시나리오를 손보고, 제작사 리얼라이즈가 합류하면서 지난 2월 촬영을 시작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사를 찾아가거나 제작사가 감독을 고용한 뒤 투자자를 구하고 배급사와 접촉하는 충무로의 제작 시스템과는 달랐던 셈이다. CJ가 원안부터 시나리오는 물론 제작까지 참여한 ‘기획영화’란 얘기다. 물론 기획영화는 1990년대부터 있어 왔다. 감독의 철학보다 트렌드를 읽어 낸 제작·기획자의 아이디어가 중심이 된 영화들이 ‘결혼 이야기’(1992)를 계기로 쏟아졌다. 제작사 신씨네가 실제 20대 부부들을 취재해 삶의 방식을 녹여낸 코미디가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1990년대 기획영화들은 심재명(명필름)·오정완(영화사 봄)·김미희(좋은영화) 등 걸출한 프로듀서들의 창의성과 아이디어에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재명 대표는 “1990년대에는 프로듀서, 작가, 감독 개인 역량이 중요했고, 이들이 영화를 주도했다. 반면 ‘광해’는 CJ에서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감독을 뽑고, 전문제작사가 나중에 붙는 분업화된 시스템이란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임 팀장도 “1990년대에는 프로듀서의 통찰력이나 창의력이 영화를 좌우했다. 하지만 ‘광해’는 특정인의 영화가 아니다. 분업과 협업, 팀워크로 만든 작품”이라고 밝혔다. 한국영화 관객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06년이다. ‘왕의 남자’(2005년 12월 말 개봉)와 ‘괴물’ 등 두 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오면서 9174만명이 봤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무려 63.6%였다. 벌써 두 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온 올해는 9월 말까지 8612만명이 한국영화를 봤고, 점유율은 57.8%다. 올해 1억명 돌파도 무난하다. 이쯤 되면 한국영화 르네상스다. 전찬일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30~40대가 영화관을 찾으면서 외연이 확장됐고, ‘최종병기 활’ ‘도가니’ ‘완득이’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등 완성도 높은 영화가 쏟아지면서 한국영화끼리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거장과 신예의 앙상블 바로크 선율에 홀리다

    거장과 신예의 앙상블 바로크 선율에 홀리다

    2008년 6월. 케임브리지대학 시절부터 단짝인 바이올리니스트 앤드루 맨지와 첫 내한공연을 한 영국 고음악 연주단체 아카데미 오브 에이션트 뮤직(AAM)의 음악감독 리처드 이가(49)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2005년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뒤를 이어 AAM 음악감독을 맡은 그에게는 ‘고음악계의 (레너드) 번스타인’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번스타인(1918~1990)은 명지휘자·피아니스트로도 유명했지만, 뉴욕필하모닉 청소년음악회 시리즈 등 후학 양성과 젊은 음악인과의 교류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이가 또한 그라모폰상과 미뎀어워드 등을 받을 만큼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쳄발로), 포르테피아노 같은 바로크 건반악기에 능통한 연주자인 동시에 AAM의 음악감독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브리튼 페어스 재단·네덜란드 오페라 아카데미 등에서 정기적으로 젊은 연주자들과 교류했다. ●2008년 첫 만남부터 느낌이 통하다 2005년 10여명의 젊은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한 바로크 전문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이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독특한 팀 이름은 옛것(antiqua)을 함께 모여 연구하고 연주하는 단체(camerata)란 뜻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오보에, 바순,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꾸려졌다. 당시 2시간쯤 이어진 마스터클래스에서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로카텔리의 콘체르토 그로스를 이가 앞에서 연주했다. 연주를 지켜본 이가는 무대에 올라가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직접 하프시코드를 연주해 보였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리더 김지영(바로크 바이올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이가는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가득했고, 그러면서도 대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연륜이 전해졌다.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무대 위에서 놀고 즐기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즉흥성을 길러내야 한다는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이가 또한 “창단한 지 1년여밖에 안 되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젊은 앙상블을 만나 즐거웠다. 이들에게서 젊음의 에너지와 넘치는 의욕을 느꼈다.”며 흐뭇해했다. 이 때문에 이가는 지난해 소프라노 조수미와의 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에도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쳄발로 주자 박지영을 따로 만나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바흐 하프시코드 협주곡 C장조 등 선봬 4년에 걸친 인연이 작은 결실을 본다. 바로크 음악 거장 이가와 한우물을 파는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이 오는 25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 함께 오른다. 1부에서는 바로크 시대 가장 중요한 협주곡 형식인 합주협주곡을 집대성한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의 콘체르토 그로소 1번, 현을 튕기거나 활로 거칠게 긁는 등 전투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하인리히 비버(1644~1704)의 바탈리아(전투) 등을 선보인다. 메인요리는 2부에서 서빙된다. 하프시코드의 은밀한 대화가 돋보이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1739년쯤 작곡한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C장조’를 이가와 박지영이 함께 들려준다. 쓸쓸한 듯한 울림의 하프시코드의 음색만큼 이 계절엔 딱맞는 악기도 드물다. 3만~7만원. (02)2005-111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공연프리뷰] 카르멘

    [공연프리뷰] 카르멘

    이탈리아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청순가련형 소프라노였다. 1875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초연된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이 뒤집힌 건 그런 전통적인 여성상과 도덕관념을 무력화한 메조 소프라노 여주인공 카르멘의 모습이 당혹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군인 돈 호세가 카르멘의 꽃을 받아든 순간 파멸은 시작된다. 여자 때문에 탈영하고, 쫓기던 그는 결국 다른 남자 품 안에 안긴 카르멘을 죽이고 만다. 알면서도 빠져드는 치명적인 매력의 팜파탈(나쁜 여자) ‘카르멘’은 창단 50주년을 맞아 국립오페라단이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오페라 1위로 뽑혔다. 응답자 1282명 중 697명(54%)이 선택했다. 덕분에 2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역대 최고의 캐스팅과 스태프들이 꾸민 ‘카르멘’을 보게 됐다. 현존하는 가장 매혹적인 카르멘으로 꼽히는 메조소프라노 케이트 올드리치(39)가 주인공을 맡았다. 2006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카르멘’으로 데뷔한 뒤 메트로폴리탄, 도이체오퍼, 베로나, 몽펠리에, 잘츠부르크페스티벌 등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페스티벌에서 이 역을 독식했다. 지난 16일 프레스 전막 리허설에서 올드리치는 왜 “이 시대의 카르멘”이란 찬사를 받는지를 입증했다. 1막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사내를 외면하고 돈 호세를 유혹하기 위해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는 물론 아슬아슬한 눈빛과 은근한 몸짓까지 카르멘 그 자체의 모습을 뽐냈다. 호흡을 맞출 돈 호세 역의 테너 장 피에르 퓌흐랑(51)도 만만치 않았다. 프레스 리허설에서 퓌흐랑의 연기와 노래는 사랑에 미쳐 파멸하는 남자의 모습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뚫고 객석 맨 뒤쪽까지 전달될 만큼 성량도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올드리치와 퓌흐랑, 강형규(에스카미요)가 출연하는 공연은 20일 오후 3시에 볼 수 있다. 19일과 20일 오후 7시 30분, 21일 오후 3시에는 김선정과 정호윤, 정일헌이 각각 카르멘과 돈 호세, 에스카미요 역을 맡는다. 테너 정호윤은 2006년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극장의 솔리스트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던 차세대 간판이다. 2008년에는 소프라노 신영옥과 함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번 무대의 연출은 2007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관록의 연출가 폴 에밀 푸흐니가 맡았다. 프랑스 태생으로 현재 슬로베니아 국립오페라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벤자망 피오니에가 지휘한다. 1만~15만원. (02)586-5363.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창녀엄마·패륜아 다룬 변태감독? 내 꿈은 멜로감독!

    창녀엄마·패륜아 다룬 변태감독? 내 꿈은 멜로감독!

    영화 ‘아버지는 개다’(2010)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두들겨 팬다. ‘엄마는 창녀다’(2011)에서 아들은 포주로 엄마를 부린다. 제목과 줄거리만 들어도 역하다. 그런데 전 세계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관객들은 펄떡거리는 그의 영화 세계에 반했다. 끔찍한 삶 속에 허우적거리는 가족 이야기,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풀어가는 그만의 방식에 주목한 것. 제목부터 파격이다 보니 투자자가 붙을 리 없다. 영어 보모, 번역, 결혼식·CF 촬영 등 아르바이트로 몇백만 원이 모이면 영화를 찍었다. 기성 배우들은 출연을 꺼릴 뿐더러 제작비도 아낄 겸 웬만한 작품에선 아예 주연을 했다. 이상우(41) 감독 얘기다. 그가 10번째 장편 ‘바비’(작은 25일 개봉)로 돌아왔다. 사채를 끌어 500만원 안팎으로 찍었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아리랑TV 등에서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댔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제작비가 4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한없이 미약한 수준이다. 그래도 이천희와 김새론·아론 자매가 노개런티로 참여하면서 ‘상업영화’ 모양새를 갖췄다. ‘바비’는 정신박약 아버지·망나니 삼촌과 함께 포항 민박집에서 사는 어린 자매의 잔혹한 삶을 그렸다. 망나니 삼촌(이천희)은 미국에 큰 조카 순영(김새론·아래)을 입양 보내려 한다.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순영은 아버지와 동생 때문에 거부한다. 반면 ‘아메리칸 드림’에 젖어 있는 동생 순자(김아론·위)는 가지 못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이미 딸 둘을 둔 미국인이 한국 소녀를 입양하려는 데는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슬픈 결말로 치닫는다. 입양을 가장한 장기매매는 22년 전 실제 있었다. 한 감독이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우려한 정부 압력으로 중단됐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당시 조감독과 알고 지낸 이 감독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영화는 의외의 만남으로 급물살을 탔다. ‘아버지는 개다’로 2년 전 홍콩영화제에 참가한 이 감독은 ‘바비’에서 미국인 딸로 나온 캣 테보의 친아버지를 만났다. 딸이 출연할 영화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열혈 아버지는 이 감독에 반했다. ‘바비’의 얘기를 듣더니 딸의 출연은 물론, 투자까지 거들겠다고 나섰다. 마침 아리랑TV가 투자자로 나섰다. 이 감독으로선 남의 돈으로 처음 영화를 찍게 됐다. “워낙 극악무도한 영화들을 찍었기 때문에”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아역배우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저씨’로 유명세를 탄 김새론의 어머니에게 시나리오가 들어간 건 행운. “(전작 이미지 탓에) 내가 잔뜩 겁을 먹고 새론이 어머니를 만났다. 그런데 선뜻 승낙했다. 새론이는 천재다. 시나리오를 한번 훑더니 맥락을 다 파악하더라.” 이어 “새론이는 NG가 많아야 한번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눈물을 흘린다. 동생 아론이에게는 ‘언니는 저렇게 잘 하지 않니’란 식으로 시샘을 돋웠다. 새론이야 검증된 연기파이지만, 아론이도 대사 톤이나 눈빛이 아주 좋았다. 해외에서는 외려 아론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위기도 있었다. 민박집 손님으로 출연한 이 감독이 3000원을 건네며 순영을 더듬는 장면에서 사달이 났다. 시나리오에는 뭉뚱그렸던 장면인데 이 감독이 애드립으로 변태 흉내를 냈다. 김새론이 눈물을 펑펑 쏟아 촬영은 중단됐다. “한동안 새론이와 서먹서먹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바비’는 이 감독 영화로는 처음 30개 안팎의 스크린에 걸린다. ‘영화관 키드’였던 그에게 꿈같은 일. 초등학교 때부터 극장에서 살았다. 수업시간표는 몰라도 대한극장·단성사 등의 상영시간은 줄줄이 뀄다. 고교 때는 이장호 감독의 판 영화사 사무실을 기웃거리며 연출부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정작 첫 단추는 배우로 풀렸다. 고3 때 황규덕 감독의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 오디션에서 400대1의 경쟁을 뚫었다. 당시 뽑힌 15명 가운데 영화판에 남은 건 이 감독과 배우 정재영뿐. 점수가 나올 턱이 없었다. 4수를 했지만, 대학 연극영화과 입시에 줄줄이 떨어졌다. 방위병 시절 쓴 시나리오로 1994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공모전 장려상을 타기도 했다(당시 1등은 훗날 이 감독이 모신 김기덕 감독). 하지만 막둥이 아들이 대학생 되는 게 소원이던 어머니를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죽기 살기로 했다. 처음 시애틀의 아트스쿨을 다녔지만, 그만뒀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알 만한 대학에 가고 싶었다. 기적적으로 UC버클리에 붙었다. 등록금이 700만~800만원이라 졸업할 때까지 식당에서 일했다.” 미국 생활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공중전화 박스에 설치된 사제폭탄이 터져 한쪽 눈을 실명했다. “석 달을 병원에 있었다. 실명을 하면 영화를 못 찍게 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고 떠올렸다. 8년 만에 귀국했지만, 미국 학벌은 별 도움이 안됐다. 김기덕 감독 밑에서 ‘숨’ ‘시간’의 연출부에서 일하고, 6년 동안 시나리오만 썼다. “4년 동안 가장 큰 돈을 만진 게 50만원이다. 이러다가 영화를 못 찍고 끝나겠구나 싶더라. 아버지 일을 도와 300만원을 만들어 필리핀으로 떠났다. 현지에서 사기꾼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배우와 스태프까지 다 구했다. 국내로 들어와 사채를 끌어 완성한 게 ‘트로피칼 마닐라’다.” 당시 쓴 사채는 4000만원쯤 된다. 훗날 이자까지 8000만원으로 불어난 빚을 갚을 때까지 사채업자에게 시달렸다. 이 감독은 “다시는 안 쓴다. 신체포기각서를 썼었다. 그나마 ‘엄마는 창녀다’가 화제를 모으면서 유예를 해줬다. 그거 아니었으면 지금쯤….”이라며 진저리를 쳤다. 그에게는 ‘변태감독’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파격적인 소재와 제목 탓.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그는 “‘변태감독’으로 기억돼도 나쁠 건 없다. 연줄도, 돈도 없는 내가 살아남으려고, 영화제 초청을 받으려고 전략적으로 세게 갔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조선 최초 성형외과 의사를 소재로 한 사극을 준비 중이다. 이번엔 수십 억원 짜리다. 하하. 궁극적으로는 판타지 멜로를 찍고 싶다. 입봉작으로 준비했던 ‘심연’은 상어가 인간의 몸을 빌려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다. 나랑 너무 안 어울린다고? 하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피에타’ 영평상 3관왕

    ‘피에타’ 영평상 3관왕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왼쪽) 감독의 ‘피에타’가 국내 영평상에서도 3관왕의 영예를 얻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배장수)는 제32회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으로 ‘피에타’를 선정했다고 17일 발표했다. 김 감독에게는 감독상이, ‘피에타’의 주연 조민수(오른쪽)에겐 여우주연상이 돌아갔다. ‘부러진 화살’의 안성기는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이웃사람’의 김성균과 ‘은교’의 김고은은 각각 남녀 신인배우상을, ‘밍크코트’의 신아가·이상철 감독이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각본상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윤종빈 감독이 차지했다.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도둑들’과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각각 촬영상(최영환)과 기술상(오흥석)을 가져갔다. 한국 멜로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건축학개론’은 음악상(이지수)을 받았다. 공로영화인상 수상자는 원로영화인 황정순씨, 신인평론상 수상자는 이대연(경기대 강사)씨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다음 달 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배우 안성기의 사회로 열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50년 뒤 나타난 범죄자와 그들을 쫓는 형사

    50년 뒤 나타난 범죄자와 그들을 쫓는 형사

    할리우드의 감독 겸 제작자·각본가 JJ 에이브럼스는 ‘떡밥의 제왕’으로 통한다. 극 초반 무언가 엄청난 존재, 물건, 사건들을 던져놓지만, 막바지까지 정체를 알려주지 않거나 정작 알고 보면 별것 아닌 일이 비일비재하다. 단지 관객(혹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붙잡아두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드라마 ‘로스트’나 영화 ‘클로버필드’ ‘미션임파서블 3’를 떠올리면 될 터. 영화전문 채널 OCN은 18일부터 매주 목요일 밤 11시에 13부작 미스터리 범죄 수사극 ‘알카트라즈’를 방송한다. 미국 폭스가 올 초 선보인 ‘알카트라즈’는 천재 감독 JJ 에이브럼스가 기획·제작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탈출이 불가능한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의 섬 알카트라즈 감옥에서 1963년 3월 20일 302명의 죄수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50년이 흐른 2012년 이들이 전혀 늙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범죄를 저지른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에피소드마다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키며, 사건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수사 드라마의 묘미를 선사한다. 50년 전과 같은 범죄 패턴을 지닌 죄수들을 하나씩 체포하고, 1963년에 사라진 죄수들이 2012년에 다시 나타나게 된 비밀을 찾아가는 등 색다른 요소들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배우들의 호연도 기대치를 높인다.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호기심 많은 열혈 형사 레베카 매드슨 역은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예 세라 존슨이 맡았다. 매드슨은 용의자가 알카트라즈와 관련이 있다는 단서를 포착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그랜트 박사 역으로 유명한 샘 닐은 1963년 당시 알카트라즈 담당 FBI 요원으로 나온다. 알카트라즈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아는 듯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매드슨에게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드라마는 1963년 3월에서 시작한다. 악명 높은 교도소 알카트라즈에 수감된 모든 수감자와 교도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실종된 그들의 존재는 역사 속에 묻히고, 50년이 흐른 현재 알카트라즈는 관광 명소에 불과하다. 어느 날, 최근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레베카 형사는 지문 감식 결과 범인이 50년 전 알카트라즈 수감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인은 50년 전 수감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모습을 하고 있다. 놀이동산에서 사람들이 무차별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또한 범인은 50년 전 알카트라즈에서 사라진 죄수 중 한 명. 범인의 행동패턴을 파악하려고 레베카 형사와 소토 박사는 50년 전 범인이 수감되었던 감방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화프리뷰] ‘조조:황제의 반란’

    [영화프리뷰] ‘조조:황제의 반란’

    중국 후한 말의 대혼란기. 부모를 잃은 고아 영저와 목순은 괴한들에게 납치된다. 사막 깊숙한 어딘가에서 영저와 목순을 비롯한 수많은 아이들이 살인기계로 키워진다. 10년이 흐른 뒤 살아남은 아이들은 후한 마지막 황제 헌제와 조조가 있는 수도 허도로 보내진다. 내시와 시녀로 궁궐에 들어간 이들은 비로소 그들이 조조를 죽이고자 훈련받았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조조를 최측근에서 모시게 된 영저는 혼란스럽다. 전쟁과 혼란의 주범으로 생각했던 그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낀 데다 주민들이 진심으로 조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에 놀란 것. 비밀 암살 조직을 운영해 온 반란군이 마침내 봉기를 일으키면서 허도는 피로 물든다. ‘조조:황제의 반란’은 권모술수에 능한 간웅이 아닌 난세의 영웅 조조를 재조명하는 중국 사학계의 최근 기류를 반영했다. 과거 ‘삼국지’를 다룬 영화들은 유비와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량 등 촉나라의 주역들을 영웅으로 묘사했다. 반면 지난해 개봉한 ‘삼국지:명장 관우’에 이어 ‘조조:황제의 반란’은 카리스마는 물론 대인배적 풍모와 인간적 고뇌를 품은 조조를 담아 내려 애쓴다. 예전에는 마르고 간사하게 생긴 조연 배우들이 맡던 조조 역을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 장원(姜文·삼국지:명장 관우)이나 저우룬파(周潤發·조조:황제의 반란)가 맡은 데서도 조조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당초 윤은혜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던 영저 역은 ‘천녀유혼’의 리메이크 버전 이후 중국 대표 청순 미인으로 떠오른 류이페이(劉亦菲)가, 목순 역은 영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지아키로 여성 팬의 사랑을 받았던 일본 배우 다마키 히로시가, 헌제 역은 타이완의 꽃미남 스타 쑤유펑(蘇有朋)이 맡았다. 동아시아 전역을 겨냥한 다국적 캐스팅인 셈. 하지만 저우룬파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비해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캐릭터와 겉돈다. 신인 감독 자오린산은 2010년 허난(河南)성에서 발굴된 조조의 무덤에서 젊은 여성의 유골이 함께 나온 데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조조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만 공을 들였을 뿐 정작 내레이션을 맡은 영저의 캐릭터는 밋밋하다. 장이머우의 ‘영웅’(2002), ‘황후화’(2006) 등에서 화려한 색감과 대규모 전투 장면으로 관객을 압도했던 자오샤오딩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았지만, 스펙터클 또한 기대치를 밑돈다. ‘조조:황제의 반란’이란 아리송한 제목으로 개봉하는 영화의 원제는 ‘동작대’(銅雀台)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조조의 궁궐 이름이다. 영어 제목은 ‘암살자들’(The Assassins).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진 주인공들의 운명을 뜻한다. 우리말 제목이 가장 어색하다. 18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9일 예술의전당서 서울신문 ‘가을밤 콘서트’

    29일 예술의전당서 서울신문 ‘가을밤 콘서트’

    시벨리우스 콩쿠르(1995년) 파가니니 콩쿠르(1996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1998년) 입상, 뉴욕 영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오디션(2000년) 우승,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01년) 입상, 2005년 서울대 음대 최연소(만 29살) 교수 부임 등 그의 이름에는 화려한 콩쿠르 수상경력과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보통은 교수가 되면 엉덩이가 무거워지기 마련. 하지만 2007년 세계 최초로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 12곡 전곡을 하루에 완주하는 등 왕성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백주영 교수의 얘기다. 백 교수가 이번에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를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여자경)와 함께 들려준다. 오는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2 서울신문 가을밤 콘서트’가 무대다. 이 곡은 1838년부터 1844년 완성까지 6년 세월이 걸릴 만큼 멘델스존이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다. 음악적으로 세 개의 악장이 이어진다. 시작하자마자 독주 바이올린이 음악적 방향타를 제시하는 새로운 방식은 당시 청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845년 3월 13일 닐스 가데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와 페르디난드 다비트의 협연으로 초연이 이뤄졌다. 낭만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바이올린협주곡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차이콥스키의 작품과 더불어 멘델스존의 곡은 지금껏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클래식에 문외한이라도 이 협주곡의 1악장만큼은 들어봤을 터다. 가을밤 콘서트에서는 줄리아니의 기타협주곡 A장조도 들을 수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 출신으로 세고비아, 폰세, 일 드 프랑스 등 국제 콩쿠르를 휩쓴 실력파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승호가 협연한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인 데이비드 러셀과 리히텐슈타인 페스티벌에서 나란히 연주와 마스터클래스를 열 만큼 무게 있는 연주자다. 귀에 익은 오페라 아리아도 이어진다. 케이블채널 tvN ‘오페라스타’의 멘토 및 심사위원으로 유명해진 소프라노 김수연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박쥐’ 중 ‘나의 주인 마르퀴스’,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그리운 그 이름’,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인형의 노래’,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꿈속에 살고 싶어라’를 들려준다. 테너 나승서는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린 눈물’, 비제의 ‘카르멘’ 중 ‘꽃의 노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을 부른다. 3만~20만원. (02)2000-9752~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화프리뷰] ‘사랑에 빠진 것처럼’

    [영화프리뷰] ‘사랑에 빠진 것처럼’

    학비를 벌려고 성매매를 포함한 ‘에스코트 걸’로 일하는 아키코(다카나시 린)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노교수 다카시(오쿠노 다다시)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노교수가 원한 건 육체적인 접촉이 아니었다. 둘은 밤새 대화를 나눈다. 이튿날 아키코를 학교로 데려다 주던 다카시는 아키코의 남자 친구 노리아키(가세 료)와 만난다. 다카시는 노리아키에게 “아키코의 할아버지”라고 소개한다. 여자 친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고, 그가 있는 곳을 확인하려고 화장실 바닥의 타일 개수까지 세어 보게 할 만큼 집착하는 사내로부터 아키코를 보호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노리아키는 점점 다카시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이란의 거장 아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일본 스태프·배우들과 일본에서 찍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제목처럼 말랑말랑한 사랑 얘기는 아니다. 관계에 서툰, 혹은 관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카시가 아키코에게 바라는 것은 육체적 관계가 아니다. 잠시 욕망을 억눌렀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원하는 듯 보인다. 손녀딸을 대하듯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위험(?)을 무릅쓰고 들짐승 같은 남자 친구 앞에 직접 나선다. 노리아키가 던진 돌에 의해 다카시의 집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듯 그의 ‘유사 할아버지’(혹은 보호자) 역할은 한낱 꿈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카시의 욕망은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딱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극적인 반전도 없다. 중요해진 건 공간의 변화다. 영화 속 공간은 아키코가 친구를 만나는 카페, 다카시를 찾아가는 아키코가 탄 택시, 아키코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다카시의 승용차, 아키코와 함께 머무르는 다카시의 집 등 네 곳뿐. 카메라의 시선은 늘 창문 밖에서 안쪽을 향하고 있다. 관계 맺기에 서툰 아키코와 다카시 등 주인공들이 폐쇄된 공간에 스스로 들어가 잔뜩 움츠린 모양새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젊음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가족이나 남자 친구와도 거리를 두는 아키코나 무료하고 외로운 삶 속에서 돈으로 산 여자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얻으려는 다카시는 일그러진 소통이란 측면에서 다르지 않다. 반면 고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정비공으로 살아가는 노리아키는 영화 속에서 늘 공간의 창(다카시의 승용차와 집) 밖을 맴돈다. 타인을 대하는 노리아키의 방법은 거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유일한 인물은 노리아키다. 가세 료는 “요즘 세태가 사람이 사람과 마주 보고 만나는 걸 점점 꺼린다.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노리아키는 적어도 현실과 마주 보려는 의지를 갖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70살의 노감독은 영화를 통해 어떤 설명도,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109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세 인물이 겪는 하루의 궤적을 그저 좇을 뿐이다. 그러다 가장 역동적인 한 장면으로 덜컥 끝내 버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고려오페라단의 ‘나라 사랑’ 아리아

    고려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이기균)은 1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작곡된 국내외 오페라 아리아들을 골라 갈라쇼 ‘위 러브 코리아’를 선보인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의 해설이 곁들여진다. 베르디의 ‘나부코’와 ‘아이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 벨리니의 ‘청교도’ 등 오페라의 고전들은 물론 류진구의 ‘안중근’, 박재훈의 ‘손양원’, ‘유관순’ 등 국내 창작오페라의 아리아를 들려줄 계획이다. CMK교향악단과 함께 오미선(소프라노), 이아경(메조소프라노), 김진추(바리톤), 신동원(테너), 함석헌(베이스) 등 성악가들과 라루체 합창단이 함께한다. 3만~12만원. (02)883-7753.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피아니스트 박종훈 “전혀 다른 色의 음악들이 날 자극”

    피아니스트 박종훈 “전혀 다른 色의 음악들이 날 자극”

    클래식 연주자가 뉴에이지(혹은 이지리스닝)나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면 ‘날라리’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가끔 리사이틀에서 팬서비스로 한두 곡 앙코르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작정하고 앨범까지 내놓은 경우는 드물었다. 꼭 10년 전 피아니스트 박종훈(43)이 뉴에이지 앨범 ‘안단테 텐덜리’를 발표했을 때 의아한 시선들이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엘리트 코스를 거친 데다 막 피아니스트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종훈은 “뉴에이지 음악을 가볍게 보는 시선들은 알고 있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와 비교하면 유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뉴에이지는 이해하기 쉽게 예쁜 멜로디로 만든 피아노곡으로 가치가 있다. 편안하게 쉴 때조차 베토벤의 곡을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웃어넘겼다. 박종훈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작은할아버지의 권유로 3살 때 바이올린을,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12살 때부터 피아노에만 전념했다. “바이올린은 어렸을 때부터 재미가 없었다. 반면 피아노는 연습한다기보다 논다는 생각으로 했다. 남달리 목이 긴 편이어서인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무리가 왔던 것도 피아노에 전념한 이유가 됐다.” 15살 때 서울시향과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할 만큼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이후 줄리아드 음대 대학원에선 세이모르 립킨을, 이탈리아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했다. 2000년 이탈리아 산레모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그즈음 한국에선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이 인기였다. 마침 박종훈의 연주를 지켜본 유니버설뮤직 관계자가 ‘앙드레 가뇽 풍의 앨범을 내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서울예고 시절 딥퍼플에 빠져 록밴드 기타리스트를 했고, 이후 재즈와 팝을 즐겨 듣고 이지리스닝 계열의 피아노곡을 작곡해 놓았던 박종훈은 선뜻 수락했다. 그렇다고 뉴에이지로 방향을 튼 건 아니다. 2009년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회를, 지난해에는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전곡 연주에 도전했다.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 남다른 쇼맨십으로 유럽 전역 귀부인들의 넋을 잃게 했던 19세기 슈퍼스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웬만한 피아니스트는 고개를 내두르는 난해한 레퍼토리다. 피아노곡의 스펙트럼을 1~10까지 나눈다면 박종훈은 극단을 오가는 행보를 반복하는 셈이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이 다르다. 욕심이 많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금방 싫증 낸다. 리스트의 곡을 오래 연습하고 있으면 짜증 난다. 그럴 때 크로스오버 곡들을 연습하면 리스트를 치고 싶어진다. 전혀 다른 색깔의 음악이 날 자극하고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박종훈은 23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뉴에이지·크로스오버 데뷔 10주년 특별공연을 연다. 박종훈이 대표로 있는 ‘루비스폴카’ 소속 비올리스트 가영과 함께하는 카르멘을 빼면 대부분 직접 작곡한 곡들로 채워진다. “귀에 익은 곡들이 아니라 (티켓 판매의) 위험부담도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내가 만든 곡들을 들려주고 싶다.”는 게 박종훈의 설명이다. 이달에 나올 새음반 수록곡도 소개된다. “서정적인 뉴에이지 피아노 솔로 곡으로만 100% 채웠다. 쉽고 낭만적인 멜로디이면서도 화성 진행도 신경을 쓰고, 가볍지만 대위법적인 요소들도 포함시킨 깊이 있는 곡들”이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새 음반] 英밴드 ‘뮤즈’ 3년만에 정규앨범 6집

    [새 음반] 英밴드 ‘뮤즈’ 3년만에 정규앨범 6집

     ●‘더 세컨드 로’(The 2nd Law) 매튜 벨라미(기타·보컬·키보드) 크리스 볼첸홈(베이스·보컬) 도미닉 하워드(드럼)로 구성된 영국의 국가대표 밴드 뮤즈가 3년 만에 정규 6집 ‘더 세컨드 로’를 들고 나타났다. 고교 물리 시간에 배운 ‘열역학 제2 법칙’을 뜻하는 앨범 타이틀에 대해 벨라미는 “앨범 작업 즈음 뉴스에서 나오던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악화 등 글로벌 재앙들을 보면서 모든 문제들이 과도한 성장에 대한 우리의 집착에서 초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배경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은유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이 앨범에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수록곡 13곡 가운데 11곡을 만든 리더 벨라미의 고뇌와 영민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뮤즈의 상징인 록오페라 혹은 심포닉 록 스타일의 곡과 초저음역대의 베이스라인을 강조한 일렉트로닉의 한 부류인 덥스텝을 차용한 노래들이 공존하는 것. 런던올림픽 주제가로 일찌감치 공개된 ‘서바이벌’, ‘슈프리머시’ 등이 전자라면,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이 “뮤즈의 모든 곡들 중 최고”라고 극찬한 ‘매드니스’가 후자에 해당한다. 클래식에 대한 동경과 덥스텝에 대한 끌림을 한데 버무려놓은 연작 ‘더 세컨드 로: 언서스테이너블’, ‘더 세컨드 로: 아이솔레이티드 시스템’에 이르면 록밴드 이상을 지향하는 듯한 벨라미의 야심마저 느껴진다. 워너뮤직.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방은진 감독 “배우는 한마디 칭찬에 날개 다는 사람들 배우 출신 장점 최대한 살려야죠”

    방은진 감독 “배우는 한마디 칭찬에 날개 다는 사람들 배우 출신 장점 최대한 살려야죠”

    20대에도 그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비련의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냘픈 체구에서 나온 울림 있는 목소리에는 강단과 카리스마가 묻어났다. 남다른 삶의 궤적에서 비롯됐을 터다. 여고 시절 그는 연극배우를 동경했다. 어린 마음에도 연극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울 것 같아 대학은 의상학과를 다녔다. 졸업하고 직장 생활도 했지만 사표를 던지고 민중극단을 찾아갔다. 스물네 살 되던 해 ‘처제의 사생활’(1989)로 데뷔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은 아니었지만 금방 주목받았다. 하지만 “연극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태백산맥’(1994)을 통해 충무로로 움직였다. 이듬해 박철수 감독의 ‘301·302’로 웬만한 여우주연상은 모두 휩쓸었다. “그때 상업 영화 출연 제안이 쏟아졌는데 마다했다. 외려 ‘지하철 1호선’ ‘햄릿’ ‘리어왕’ 등의 연극을 병행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대중의 사랑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고단한 길을 택했다. IMF 외환 위기가 오면서 출연하려던 몇몇 작품이 엎어졌다. 그사이 나이가 들었고 대단히 예쁘지도 않은 내가 여주인공을 하기에는 애매했다. 배우로서의 포지션이 흔들렸다.” 그는 다른 생각을 품었다. 낯선 영화 연기를 잘하고 싶어 카메라와 렌즈를 가까이 하다 보니 연출이 눈에 들어왔다. 1999년 김진한 감독의 단편영화 ‘장롱’에서 주연은 물론 조연출을 맡아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깊이 빠져들었다. 박철수 감독이 조경란의 소설 ‘식빵 굽는 시간’을 건네며 각색과 연출을 권유한 것도 그 무렵이다. 또 다른 작품의 각색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상업 영화의 장벽이 이렇게 높은 건가. 의심과 후회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출사표를 던졌는데 물러설 순 없었다. 원칙주의자라 자신과 타협을 못 한다. 한 작품이라도 완성해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정신적 지주인 이창동 감독이 “각색 말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감수해 주며 “급하게 생각하지 마. 넌 마흔이지만 난 마흔셋에 데뷔했다.”고 다독였다. 고진감래라고 2005년 영화 ‘오로라공주’를 내놓았다. 감독을 준비한 지 꼭 6년 만, 불혹의 나이에 바라던 입봉을 했다.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출력은 평단의 지지를 끌어냈다. 또 94만여명의 관객을 모았을 만큼 대중 반응도 괜찮았다. 방은진(47) 감독 얘기다. 그가 7년 만에 ‘용의자X’(오는 18일 개봉)를 들고 관객들과 만난다. ‘용의자X’는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용의자 X의 헌신’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수학 천재였지만 평범한 고교 수학 교사로 사는 석고(류승범)는 이웃집 여자 화선(이요원)을 마음에 품는다. 어느 날 밤, 화선이 자신을 괴롭히던 전 남편을 우발적으로 죽인다. 석고는 화선을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빈틈없는 알리바이 때문에 고민하던 담당 형사 민범(조진웅)은 자신의 고교 동창 석고가 화선의 옆집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범의 후각이 발동하면서 영화는 놀라운 결말로 치닫는다. 방 감독은 원작 소설의 팬이었다. “이 소설 죽인다. 누나가 했으면 좋겠다.”는 ‘오로라공주’의 최영환 촬영감독 말을 듣고 책장을 펼친 뒤 단박에 반했다. 얼마 뒤 일본에서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시나리오로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명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준비하던 영화가 두 편쯤 투자 단계에서 엎어져 좌절하던 방 감독에게 지난해 봄 CJ엔터테인먼트가 연출을 제안한 것이다. 방 감독과 CJ의 기획1팀은 일본판 영화 ‘용의자X의 헌신’과 차별화하기 위해 원작 소설에 메스를 들이댔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석고)와 물리학자 유카와의 두뇌 싸움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 달리 방 감독은 석고의 화선에 대한 헌신적 사랑에 포커스를 맞췄다. 7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출산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영화 초중반 템포가 떨어진다거나 세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너무 깊이 빠져 정적으로 흘렀다는 지적도 알고 있다. ‘오로라공주’ 때와는 또 다른 완급 조절의 아쉬움이 있다. 처음 크랭크업 했을 때만 해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관객 반응이 두렵다. 후후후.” 배우 출신, 게다가 손꼽히는 연기파였던 만큼 배우들은 방 감독과 작업하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 “좀 다른 거 없을까.”, “한번 더 가볼까.”란 뜬구름식 주문이 아니라 딱 꼬집어 지시하기 때문이다. 조진웅은 제작 보고회에서 “선배라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단점은 너무 긁어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대해 방 감독은 “배우들과 충분한 대화와 리허설을 하고 나서 촬영에 들어가면 순간에 나오는 감정을 담으려고 한다. 테이크를 더할수록 감정이 익어버려 기계적으로 나오기 쉽다.”고 설명했다. 배우 출신이라는 점은 양날의 칼이다. “‘오로라공주’ 때는 딱 보면 배우가 얼마큼 더 끄집어낼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테이크(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연속 화면)를 더 안 가고 끝내 버렸다. 그땐 연기자 출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감독은 배우들의 최대치 이상을 끌어내야 한다. 당장은 징글징글해도 그래야 배우가 또 작업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 출신이란 꼬리표는 어떻게 해도 뗄 수가 없다. 연출만 했던 사람들의 막연한 디렉션에 비해 디렉션이 구체적이라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역으로 배우의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많이 배우들에게 물어봤다. ‘난 지금 컷이 괜찮은데 어때?’, ‘그럼 오케이한다’라고 배우를 신뢰한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줬다. 경험상 배우들은 한마디 칭찬에 날개를 달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 출신이란 걸 최대한 장점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활짝 웃었다. 충무로에서 입봉은 하늘에 별따기다. 더 어려운 건 두 번째 영화를 찍는 일이다. 하늘에 별 딴 사람끼리 경쟁하기 때문이다. 통상 감독들의 10~15%만 행운을 쥘 수 있다. 첫 영화까지 6년, 두 번째 영화까지 7년이 걸린 방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은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글로벌 리더 손지애의 자녀 교육법

    글로벌 리더 손지애의 자녀 교육법

    CNN을 통해 한국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던 손지애(49)는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 대변인과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아리랑 국제방송 대표로 활동 중이다. 동시에 세 딸 미나(23), 유나(13), 지나(11)를 둔 어머니다. 많은 여대생의 롤모델이자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리더인 손지애의 어머니로서의 모습은 어떨까. 12일 밤 10시 40분 EBS ‘어머니 전’에서 만나 본다. 네 딸 중 맏딸인 손지애는 전통적인 교육보다는 개방적인 신식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950년대에 줄리아드 음대에 유학을 간 뒤, 평생 피아노를 연주하고 가르쳤던 어머니는 결혼 뒤에도 여자가 일을 가지는 길은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지애에게도 첼로를 가르쳤다. 하지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손지애의 선택은 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갔다. 4년을 머무른 게 전부였지만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고, 훗날 세계적인 언론사의 구애를 받았다. 외신기자와 결혼한 그는 기자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유축기를 회사에 갖고 다니며 2시간에 한 번씩 모유를 받았다. 세 딸을 모두 모유 수유로 키웠다. 퇴근해서는 밤마다 동화책을 꼭 읽어 주는 자상한 엄마였다. 세 딸이 손지애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네가 알아서 해.”다. 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하는 손지애는 자녀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게끔 해 주고 싶었다. 자신이 지킬 수 없는 일들은 아이들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게 손지애식 교육법이다. 사람들은 손지애의 자녀 영어 교육법을 궁금해할 테지만, 그는 영어 공부를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평생 가져가야 할 영어를 혹 교과목이라 생각하고 거부감을 느낄까 봐 걱정해서다. 책을 좋아하는 첫째에게는 영어책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둘째에게는 팝송으로 영어에 대한 흥미만 북돋아 주고 그다음은 딸에게 맡겼다. 영어책을 읽고 혼자 일기를 쓰며 영어에 재미를 붙이게 된 큰딸 미나는 지금 어머니보다 실력이 더 출중하다.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세 자매의 손을 잡고 서점에 간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균형 잡힌 시각, 사람에 대한 이해 등 기자로서, 글로벌 리더로서 자신을 키운 8할이 책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딸 미나가 취업이 부담스러워 사학과 전공을 망설일 때에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줬다.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된 사람만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난 주목할 만한 작품] 남영동 1985-이 참혹한 장면, 픽션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난 주목할 만한 작품] 남영동 1985-이 참혹한 장면, 픽션 아니다

    ‘석궁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9억 5000만원짜리 저예산 영화 ‘부러진 화살’은 지난 1월 개봉 당시 사건의 실체와 영화적 허구의 경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중견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에 평단은 지지를 보냈다.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는 343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1998년 ‘까’를 끝으로 현장을 떠났던 정지영 감독의 화려한 복귀였던 셈.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간판 섹션인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부러진 화살’에 이어 정 감독은 2년 연속 문제작을 들고 나타났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고문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당한 고문과정을 다룬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한 ‘남영동 1985’다. 영화는 1985년 9월 4일에서 출발한다. 재야인사 김종태(박원상)는 아내와 아들, 딸과 동네 대중목욕탕을 다녀오던 길에 경찰에 연행된다. 눈이 가려진 채 도착한 곳은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 잠을 안 재우는 것은 물론, 발가벗긴 채 집단폭행과 물고문으로 김종태에게 거짓진술서를 받아내려 한다. 김종태가 버티자 공안당국은 ‘장의사’로 불리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을 불러들인다. 김종태의 육체와 정신에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흉터를 남긴 22일이 시작된다. 정 감독은 주인공의 모델인 김근태란 거인의 생애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110분의 상영시간 중 상당 부분을 고문 자체에 할애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고문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부숴버렸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정공법을 택했다. 김 고문의 수기와 또 다른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문 수법을 복원했다. 김종태의 입에 고춧가루를 가득 풀은 물을 주전자째로 들이붓거나, 전기고문의 효과를 높이려고 몸 곳곳에 소금을 비벼댄다. 의식을 잃은 김종태가 하혈하는 장면에 이르면 관객은 몸서리를 치게 된다. 관객들도 고문을 당하는 것만큼 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할 순 없다. 영화적 허구가 아닌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상처는 덮어두면 곪는다. 역사적 상처도 마찬가지다. 곪아 터지지 않고 썩은 채 굳어버려 치유할 수 없는 내상이 되기 전에, 상처를 들추고자 한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또한 “국가의 이름을 걸고 가했던 야만적인 폭력들을 20년이 지난 지금, 피해자들은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한다고 해서 과연 역사적 화해로 승화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자칫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전적으로 박원상의 공이다. 시나리오 초고를 읽은 뒤 한 달 만에 10㎏을 뺀 박원상은 육체적 극한에 이르는 고문장면은 물론, 서서히 황폐해지는 주인공의 영혼까지 완벽하게 그려냈다. 물론 부산영화제 최대 화제작으로 떠오른 또 다른 이유는 제작 및 개봉시점 때문이다. ‘화해’ 혹은 ‘통합’의 정치 구호가 넘쳐나는 정치의 계절에 공개됐고,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에 개봉한다. 정 감독은 “어떤 식으로든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사회와 대중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감독에겐 보람”이라고 말했다. 부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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