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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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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블리비언’ 주말 박스오피스 1위

    톰 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오블리비언’이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2~14일 ‘오블리비언’은 전국 638개 상영관에서 53만 44명(매출액 점유율 34.2%)을 동원했다. 하루 앞서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신작 ‘전설의 주먹’은 전국 733개 관에서 47만 8863명(31.2%)을 모아 2위를 차지했다. 지난주 1위였던 신하균 주연의 ‘런닝맨’은 25만 2122명(15.4%)에 그쳐 3위로 떨어졌다. 이병헌 주연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 ‘지.아이.조 2’는 10만 3867명(6.5%)에 머물러 4위로 떨어졌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전주에 핀 영화꽃 190송이… 대중성·예술성 뿌리 찾을까

    전주에 핀 영화꽃 190송이… 대중성·예술성 뿌리 찾을까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내홍을 겪었다. 지역언론과 갈등을 빚은 프로그래머의 부당 해임 논란, 고석만 신임 집행위원장과의 의견 충돌에 따른 스태프의 집단사표가 이어졌다. 우려를 딛고 JIFF는 심기일전했다. 오는 25일부터 새달 3일까지 열리는 제14회 JIFF는 프로그램을 정리했다. 6개 메인 섹션과 19개의 하위 섹션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던 지난해와 달리 하위 섹션을 11개로 줄였다. 반찬 가짓수만 많았던 한정식 상차림을 간소하게 한 셈. 대신 재료의 선도는 한껏 끌어올렸다. 지난해 상영작 중 세계 첫 상영(월드 프리미어)은 36편, 제작국을 제외한 최초 상영(인터내셔널프리미어)은 1편이었지만, 올해에는 각각 45편과 18편으로 늘어났다. 총 190편의 상영작 가운데 김영진(왼쪽)·이상용(오른쪽) 프로그래머가 추린 추천작 7편을 소개한다. 마테호른 판권·배급사업을 병행하는 JIFF가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구매했다. 올 로테르담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디데릭 에빙어 감독의 작품.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사는 프레드는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레오를 도와주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며 마을 사람들의 눈총을 산다. 하지만 프레드는 레오에게 집안일을 알려주는 등 점점 마음을 쓰게 된다. →김영진의 추천평:아내를 떠나보낸 후 혼자 사는 중년 남성이 낯선 노숙자를 보살피면서 우정을 확인한다.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과 놀라운 반전까지 선사해줄 아름다운 삶의 찬가다. 마스터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유명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최근작.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와 경합 끝에 은사자상과 공동남우주연상(필립 세이모어 호프먼·호아킨 피닉스)을 쓸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후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던 사내가 신흥종교 교주를 만나 포교에 동참하지만, 더 큰 폭력으로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김영진의 추천평:구원 대신 맹목적인 믿음을 추구하는 인간이 견인하는 광기의 드라마다. 앤더슨의 절도 있는 연출 아래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과 65㎜ 촬영이 만나 영화예술이 이를 수 있는 절경을 유감없이 펼친다. 센트로 히스토리코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의 두 거장과 빅토르 에리세(스페인),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네 감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기마랑이스를 배경으로 풀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 최고령인 올리베이라(105) 감독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건 영화팬에겐 축복이다. →김영진의 한마디:손님 없는 식당의 외로운 주인(카우리스마키), 혁명에 실패한 후 미쳐버린 대위(코스타), 과거의 명성이 퇴색한 폐허 같은 공장(에리세), 기마랑이스의 관광 가이드(올리베이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유럽의 근대사를 관통한다. 디지털 삼인삼색 2013:이방인 중 풍경 ‘숏!숏!숏!’과 더불어 JIFF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삼인삼색’(영화제 측이 3명의 감독에게 화두를 던지고 제작비를 지원, 30분 내외의 디지털 영화를 의뢰)의 올해 주제는 ‘이방인’이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영화작가 장률은 서울에 사는 이방인의 풍경을 다룬다. 사람과 도시를 바라보며 “누군들 이방인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김영진의 한마디:많은 시간, 사람들은 서로에게 풍경으로 존재한다. 이 생경함은 때론 당신에게 어떤 감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풍경은 여전하나 감동은 서서히 변한다. 경계에 선 인간을 지속적으로 조명해 왔던 장률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아메리카 ‘심판’ ‘성’과 더불어 프란츠 카프카의 3부작으로 불리는 ‘아메리카’는 끊임없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JIFF는 카프카 탄생 130주년을 맞아 ‘카프카, 영화를 만나다:카프카 특별전’을 마련했다. 블라디미르 미차렉이란 낯선 감독은 원작에 대한 뛰어난 해석과 스타일리시한 화면 구성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상용의 한마디:수많은 버전의 ‘아메리카’가 있지만, 더 스타일 넘치는 화면으로 미국에 대한 풍요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영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카프카라는 20세기 예술가의 비전이 스며 있다. 돌아올 거야 오빠와 소녀 크리스가 한적한 도로 위에 남겨진다. 부모는 돌아오지 않고 오빠는 방법을 찾겠다며 크리스를 남겨둔 채 떠나가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크리스는 근처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시간을 보내며 가족을 찾게 된다. 하지만 며칠 동안 세상은 조금 변해 있다. 브라질 감독 마르셀로 로르델로의 성장영화다. →이상용의 한마디:길 위에서 떠나버린 부모와 오빠를 기다리던 소녀의 성장담을 깔고 있으면서도, 남미의 풍경과 소녀의 마음이 흥미롭게 겹쳐지는 아름다운 영화다. 세상은 자신도 모르게 변하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을 경험한다. 지젝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 슬로베니아의 석학 슬라보이 지제크와 함께 2006년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를 내놓았던 소피 피엔스 감독의 후속 다큐멘터리. 이번에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다. 그가 다루는 핵심은, 우리가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과 시차다. 시청각 지제크 개론서라 부를 만하다. →이상용의 한마디:지제크이다. 언변과 재기 넘치는 예시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뛰어난 논증, 사색이 담겨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3D안경끼고 서서 즐겨라, ‘일렉트로닉 전설’ 크라프트베르크

    3D안경끼고 서서 즐겨라, ‘일렉트로닉 전설’ 크라프트베르크

    1968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슈만 호흐슐레(음악대학)에서 만난 랄프 휘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는 클래식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의기투합했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시초이자 역사인 크라프트베르크의 시작이다. 1970년 데뷔 이후 10장의 스튜디오앨범을 통해 선보인 혁신적인 사운드는 팝음악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어로 ‘발전소’를 뜻하는 그룹 이름처럼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했다. “비틀스 이후 이들만큼 팝문화 전반에 영향을 준 밴드는 없었다”는 업저버지(誌)의 헌사는 과장이 아니다. U2와 데이빗 보위, 비욕, 디페시모드, 뉴오더, 프란츠 퍼디난드 등 수많은 뮤지션이 자신들의 곡을 헌정하거나 공개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대중음악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신시사이저의 전자음과 로봇 비트, 사람의 목소리를 기계화시켜주는 장치인 ‘보코더’를 처음 대중음악에 접목했다. 일렉트로닉이 단순히 듣고, 춤을 추는 음악이 아닌 종합 퍼포먼스란 걸 재발견한 것 또한 이들이다. 지난해 3차원(3D) 테크놀로지를 도입한 이들은 관객에게 3D 안경을 제공하고 사운드와 어우러진 환상적인 영상을 동시에 선사했다. 현대예술의 요람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려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2008년 슈나이더(신시사이저·백그라운드 보컬·보코더·플루트·색소폰)는 팀을 떠났다. 원년멤버인 휘터(리드보컬·보코더·신시사이저·키보드·오르간·드럼·기타·베이스기타)와 프리츠 힐페르트(일렉트로닉 퍼커션·사운드 엔지니어링), 헤닝 슈미츠(일렉트로닉 퍼커션·키보드·사운드 엔지니어링), 포크 그리펜하겐(라이브 비디오 전문가)까지 4인조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합류한 그리펜하겐을 제외한 3명은 26년째 호흡을 맞췄다. 마침내 크라프트베르크가 내한공연을 한다. 2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의 서문주차장에 마련된 돔 무대에서다. 주최사인 현대카드는 1500명이 입장할 수 있는 공연장을 임시로 만들었다. 물론 서서 봐야 한다. 데뷔 40주년을 훌쩍 넘긴 휘터(67)는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서울과 같이 기술이 발달한 도시에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제라도 갈 수 있게 돼 설레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음악과, 그에 부합하는 3D 프로젝션(영상물)을 동시에 선보이는 공연이다. 마치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일종의 라이브 일렉트로닉 3D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일부 해외 공연에서 현지어로 번역한 자막을 영상에 삽입했다. 하지만, 서울 공연에서 한글 자막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휘터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몇몇 언어를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아시아 국가의 언어는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휘터는 또한 “슈나이더와 함께 크라프트베르크로 첫발을 뗄 때부터 시각적 요소가 강했다. 점점 진화하는 기술 사회와 어울릴 법한 전자음악을 목표로 삼았다. ‘현대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했고, 그 산물이 여러분이 보게 될 ‘전자음악과 3D 영상의 조화’”라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영화 리뷰] 톰 크루즈 주연 SF 대작 ‘오블리비언’

    [영화 리뷰] 톰 크루즈 주연 SF 대작 ‘오블리비언’

    ‘약탈자’로 불리는 외계인의 침공 이후 60년. 살아남은 인류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으로 이주했거나 우주정거장에서 대기 중이다. 지구에 남은 건 정찰·공격 로봇 드론의 수리기술자 잭 하퍼(톰 크루즈)와 파트너 비카(앤드리아 라이즈버러)뿐. 바닷물을 빨아올려 에너지로 전환하는 장비를 약탈자로부터 보호하는 게 하퍼의 주 임무다. 어느 날 하퍼는 우주선 추락을 목격한다. 생존자를 구하고 보니 늘 하퍼의 꿈속에 나오던 여인이었다. 60년 동안 수면 캡슐에서 동면했던 여인은 추락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항법장치를 확인하자고 설득한다. 우주선을 수색하던 하퍼는 정체불명의 조직에 납치된다. 방사능 오염으로 생존자가 없다던 지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60년 전 지구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지프 코신스키 감독의 1억 2000만 달러(약 1356억원)짜리 공상과학(SF)영화 ‘오블리비언’은 여러모로 의외다. 일단 ‘지구의 미래를 건 최후의 반격이 시작된다’는 광고 카피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영화 중반까지 잔잔하게 흘러간다. 비카는 기억이 지워진 채 회사에서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지만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은 채 타이탄으로 떠날 날을 고대한다. 반면 하퍼는 끊임없이 의혹을 키운다. 코신스키는 한 시간이 넘도록 SF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느린 호흡으로 하퍼를 쫓는다. 하퍼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거대한 음모를 눈치챈 뒤에도 영화의 호흡은 그다지 빨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워쇼스키 남매의 ‘매트릭스’나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러너’,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 존재에 관한 근원적 성찰을 담아내려는 것도 아니다. 기계공학과 건축학을 전공한 코신스키 감독은 자신의 그래픽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태)을 영상으로 펼쳐내는 데 몰입한 듯하다. 꽤나 신선했던 데뷔작 ‘트론:새로운 시작’처럼 ‘오블리비언’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감각은 빼어나다. 영화에서 사용된 적이 없다는 소니의 시네알타 F65카메라로 담아낸 2077년 지구의 이미지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다. 60여년 후를 배경으로 한 만큼 하퍼와 비카의 거주지는 물론 버블십과 드론 등 미래 운송장치와 전투장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볼거리에 걸맞은 서사나 담론은 없다. ‘지상에 살아 있는 자 모두에게 늦거나 빠르거나 죽음은 찾아온다. 그렇다면 선조의 유물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강적에 맞서는 것보다 더 나은 죽음이 있겠는가’란 토머스 B 매콜리의 연작시 ‘호라티우스’를 하퍼의 읊조림을 통해 반복한다. 인류를 압살하려는 ‘테트’에 맞서기 위해 하퍼가 오르는 우주선의 이름은 오디세우스다.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지난한 모험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와 하퍼의 여정은 닮은꼴이다. 그럼에도 신선하지 않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많은 탓. 영화 제목이기도 한 망각(오블리비언)과 복제인간 등은 ‘매트릭스’ ‘블레이드러너’ ‘토탈리콜’ 등을 통해 익숙하다. 인류 생존을 위해 한몸을 던져 ‘테트’에 맞서는 주인공의 행적은 ‘터미네이터’나 ‘나는 전설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하퍼를 제외한 캐릭터의 존재감도 아쉽다. 포스터에 크루즈와 나란히 등장하는 지하조직의 리더 모건 프리먼조차 제 몫을 하지 못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를 일깨우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 역할을 기대한 건 실수였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은 ‘오블리비언’의 신선도를 75%로 평가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보스·조직원-학폭 친구… 화해할 수 있을까

    보스·조직원-학폭 친구… 화해할 수 있을까

    누구나 쉽게 용서를 말하는 시대다. 하지만, 누구도 쉽지 않은 게 용서다. EBS에서 11일 밤 9시 50분 방송하는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용서’는 갈등 당사자들이 사과와 용서를 위해 애쓰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다. 1987년 이른바 ‘용팔이 사건’으로 불리는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이 있었다. 통일민주당 지구당에 난입한 폭력배들의 중심에는 전주파 보스 김용남(일명 ‘용팔이’)이 있었다. 그의 밑에서 칼잡이로 활동한 길정운은 폭력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15년 옥살이를 했다. 길정운은 보스 김용남이 자신을 돌봐주지 않은 것에 대해 복수의 칼을 간다. 최근엔 김용남이 금전적으로도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에 실제로 칼을 품고 찾아간 적도 있다. 반면, 김용남은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그는 진실한 사과를 한다면 길정운이 받아주리라 생각한다. 과연 길정운은 지난날을 잊고 그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열여덟 동갑내기 정욱과 정헌. 문제아였던 정욱의 괴롭힘으로 정헌의 학창시절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정욱은 4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재혼한 아버지마저 가족을 돌보지 않아 할머니, 형과 어렵게 생활해 왔다. 방황의 길에 들어선 정욱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공갈과 갈취, 폭행을 서슴지 않는 비행청소년이 되었고 소년원에 6개월 수감됐다. 소년원에서 나온 후 정욱은 잘못을 반성한다. 특히 친구 정헌에게 어떻게든 사과를 하고 싶지만 용기 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정헌의 학교생활은 정욱 탓에 꼬였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문제아로 낙인 찍힌 정헌은 갑작스러운 정욱의 사과를 의심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1972년 춘천파출소장 딸(9세)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정적인 증거는 동네 만화가게 주인이었던 정원섭 씨의 친아들 정재호 씨(당시 10세)의 증언. 졸지에 범인으로 몰린 원섭씨는 15년간 억울한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1987년 출소하고 검찰과 소송 끝에 39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감옥에 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큰아들에 대한 원망을 누를 길이 없다. 한편, 아버지의 15년 옥살이로 자신도 ‘죄책감의 감옥’에서 살았다고 하는 아들 정재호 씨. 사건 당시 경찰이 시키는 대로 연필 한 자루에 이빨 자국을 낸 것이 아버지를 감옥에 가게 했다는 사실을 안 후, 재호씨 역시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했다. 둘은 과연 용서와 화해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한국재즈의 A부터 Z까지 다 모였다

    한국재즈의 A부터 Z까지 다 모였다

    1960년대 한국재즈의 태동부터 지금껏 걸어온 흔적들을 살펴보고, 미래까지 엿볼 수 있는 공연이 마련됐다. ‘LIG아트홀·합정’ 개관기념으로 10일부터 21일까지 선보이는 ‘재즈타임즈’다. 라인업만 봐도 무게감이 전해진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거목인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가 이끄는 퀸텟(5인조)은 14일 보컬리스트 박성연과 궁합을 맞춘다. 서울고 2학년 때인 1960년 미 8군 무대에 선 정성조는 1970년대 국내 최초의 브라스 록그룹인 ‘정성조와 메신저스’를 결성했다. 1979년에는 미국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떠났고 1995년부터 10년간 KBS관현악단장을 맡기도 했다. 서울예대 실용음학과 학과장으로 정년퇴임한 2011년 미국 뉴욕의 퀸스칼리지로 또 한 번 유학을 떠날 만큼 학구파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한국재즈의 1세대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라이프’의 주역들인 최선배(트럼펫), 이동기(클라리넷), 김수열(색소폰)은 21일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1960년대 미 8군 무대에서 음악경력의 첫걸음을 뗐다는 것. 특히 최선배는 1980년대 일본 순회공연과 독일 재즈페스티벌 초청공연 등으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았다. 그가 1998년 발표한 ‘프리덤’은 프리재즈의 명반으로 꼽힌다. 재즈 대중화의 일등공신인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이 이끄는 섹스텟(6인조)은 20일 공연한다. 이정식은 1990년대 초 KBS ‘밤으로 가는 쇼’와 CBS FM의 ‘0시의 재즈’를 통해 수많은 입문자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이정식의 딸 이발차 또한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대를 잇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부녀의 남다른 호흡도 기대된다. 어느덧 중견 반열에 오른 여성 재즈디바들의 공연도 있다. 중저음과 그루브를 지닌 마성의 보컬리스트 웅산은 자신의 밴드와 함께 10일 공연의 첫 테이프를 끊는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스캣, 끈적끈적한 감성으로 사랑받는 보컬리스트 말로는 17일 만나볼 수 있다. 이 밖에 일렉트릭 재즈와 펑크를 융합한 독특한 색깔의 6인조 JSFA(11일), 탁월한 라이브와 개그맨 뺨치는 입담으로 사랑받는 프렐류드(13일), 포크의 감성을 품은 관록의 더 버드(18일) 등 밴드는 물론 피아노 트리오의 대표 격인 송영주 트리오(12일)와 배장은 트리오(19일)의 공연도 있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부산 LIG아트홀에서도 19~28일 이어진다. 1544-1555. 전석 3만원.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가정부 20여년…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가다

    가정부 20여년…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가다

    상류층인 발데스 집안의 입주 가정부 라켈은 20년 넘게 주인 부부와 4명의 자녀를 돌봐 왔다. 라켈은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불만 없이 묵묵히 일한다. 라켈의 마흔한 번째 생일날, 발데스 부인은 그녀를 위해 새로운 하녀를 들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라켈은 새 하녀가 올 때마다 비정상적이고 유치한 방법으로 그녀들을 쫓아낸다. 그후 라켈의 두통은 심해지고 급기야 발데스 부부의 침실에서 쓰러지고 만다. 루시가 새 하녀로 들어오고 발데스 가족은 루시를 마음에 들어한다. 라켈도 따뜻한 마음씨의 루시는 차마 쫓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루시의 고향집에 내려가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생전 처음으로 연애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루시와의 즐거운 생활도 잠시다. 루시는 생일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29일 밤 11시 15분 EBS 금요극장의 상영작은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실바의 두번째 장편 ‘하녀’(원제:The Maid)다. 200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그해 열린 제6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실바는 상류층 가정부로 오랫동안 일한 중년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실바 감독 가족들이 생활하는 집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아 자전적 경험에 근거해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표정 없는 무뚝뚝한 라켈의 얼굴을 시종 비춘다. 백지 같은 얼굴에서 관객은 어떤 인상을 그려 넣게 될지도 모른다. 단순한 일상에서도 수십 가지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 라켈을 카메라는 세밀하게 포착한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플롯이 복잡하게 여겨질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침실, 부엌, 서재, 거실, 정원으로 이어지는 한정된 공간에 들어가 가족 구성원이 된 듯한 착시효과로 인해 영화의 정서가 밀도 있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 유쾌함과 쓸쓸함이 교차한다. 마지막에 완전히 달라진 라켈의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는 데서 관객들은 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 영화는 작지만 소중한 교훈을 전달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 계급 갈등과 성적 긴장감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한국영화 ‘하녀’와 비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칠레영화 ‘하녀’는 훨씬 소박하지만 더 현실적이고 따뜻하며 섬세하다. 올 선댄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크리스털 페어리’로 또 한 번 주목받은 실바 감독은 기억해야 할 칠레 영화계의 미래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주말박스 오피스] 뜨거운 ‘연애의 온도’ 식어버린 ‘웜 바디스’

    김민희·이민기 주연의 ‘연애의 온도’가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연애의 온도’는 지난 22~24일 전국 563개 상영관에서 53만 8875명(매출액 점유율 31.9%)을 모아 정상에 올랐다. ‘연애의 온도’는 개봉 4일 만에 누적 관객 64만 4564명을 기록, 지난해 비슷한 때 개봉한 ‘건축학개론’과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한석규·이제훈 주연의 ‘파파로티’는 32만 9615명(17.9%)을 모아 2주째 2위를 지켰다. 누적 관객 97만 1252명으로 1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지난주 1위였던 할리우드 영화 ‘웜 바디스’는 26만 2127명(14.5%)을 모아 3위로 떨어졌다. 이정재·황정민·최민식 주연의 누아르 ‘신세계’는 20만 2708명(12.0%)으로 4위에 머물렀다. 할리우드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방한으로 화제를 모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11만 9743명(6.9%)을 동원, 5위로 출발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예술 영화판 많이 커졌다고? 착각이에요

    예술 영화판 많이 커졌다고? 착각이에요

    소리 없이 강한 예술영화들이 화제다. 지난해 12월 19일 개봉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4개월째 장기 상영하고 있다. 누적 관객은 7만 4488명(21일 현재). 누적 매출액 5억 7000여만원 중 수입·배급사의 몫은 3억원이 조금 넘는다. ‘아무르’의 로열티(수입가격)와 개봉에 든 마케팅·홍보(P&A) 비용을 합쳐 봤자 1억원 남짓. 수익률은 300%에 이른다. 심지어 ‘아무르’를 장기 상영하고 있는 씨네큐브는 수입·배급사 티캐스트와 같은 모기업을 두고 있다. 끈질김으로 치면 ‘서칭 포 슈가맨’이 한 수 위다. 올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서칭 포 슈가맨’은 지난해 10월 11일 개봉했다.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1~2개 관에서 볼 수 있다. 누적 관객은 2만 7574명. 극장에 티켓 수익의 40%를 주고도 수입·배급사에 떨어지는 돈은 1억 1581만원. 로열티 1만 2000달러를 포함, 개봉에 든 비용은 5000만원가량이다. 수익률은 230%를 웃돈다. 두 작품은 예외적으로 잘된 경우다.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예술영화 수입을 돈벌이로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상업영화로 번 돈을 조금씩 까먹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영화의 수입가격은 대개 1만~5만 달러(1116만~5580만원) 수준이다. CJ CGV 무비꼴라쥬, 씨네큐브, KU시네마테크, 스폰지하우스 등 예술영화 전용관을 중심으로 30~50개 스크린에 영화를 걸 경우 수입가격이 5만 달러를 넘기면 손익분기점을 넘기 힘들다. 지난해 35만여명의 관객을 동원, 수입 예술영화 중 최대 흥행작이 된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수입가격이 10만 달러쯤 되면 와이드 릴리스(100개관 이상 개봉)를 해야 승산이 있다. ‘아무르’가 지난해 이후 30개 미만 스크린에서 상영한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 된 것은 행운도 겹쳤다. 수입사 티캐스트는 거장 하네케 감독의 작품임에도 2011년 프랑스 칸 필름마켓에서 비교적 헐하게 구입했다. 하네케는 2001년 ‘피아니스트’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남녀주연상을, 2005년에는 ‘히든’으로 감독상을, 2009년에는 ‘하얀리본’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12년에 또다시 영광을 안을 줄은 누구도 몰랐기 때문에 수상에 따른 옵션계약을 하지 않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등 주요 부문을 받으면 추가로 돈을 내는 계약을 맺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80대 노부부의 삶과 사랑, 죽음을 다룬 ‘아무르’는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물론, 지난달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면서 거듭 주목받았다. 국내 극장가의 주 관객층으로 떠오른 40~50대에 짙은 울림을 남긴 건 하네케 감독의 연출력과 주연배우 장 루이 트린티냥, 에마뉘엘 리바의 호연이겠지만, 따로 돈을 쓰지 않고도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건 분명 운이 따른 셈이다. 최근 수년 새 ‘아무르’처럼 깜짝 흥행작들이 나온 영향인지 최근 해외 필름마켓에서는 한국 수입업자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물론, 거품이 상당하다. 지난해 칸 영화제 화제작 중 국내 수입가격이 15만~50만 달러에 이르는 영화까지 등장했다. 마켓에서는 감독과 주연배우, 시놉시스 정도를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경쟁이 과열된 데다 전문성이 부족한 신생 수입사까지 뛰어들다 보니 판매 측에서도 한국 업자에게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생겼다. 한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칸을 비롯한 주요 마켓에선 전 세계에서 한국 바이어가 가장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 업자 사이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수입가도 치솟았다. 불과 2~3년 전 30개 이내의 스크린에서 걸 영화들은 1만~2만 달러면 충분했다. 하지만 요즘 쓸 만한 영화들은 3만~4만 달러는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IPTV 부가 판권 시장이 커지면서 깜이 안 되는 영화들을 무분별하게 수입하거나 가격이 부풀려지는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내 예술영화 관객층은 어느 정도일까. 2008년 140편(수입·한국영화 포함)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 365편까지 늘어났다. 국내 영화시장에서 예술영화(영화진흥위원회 기준) 관객층은 안정적으로 형성된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착시에 가깝다. 특정 영화 몇 편의 흥행에 따라 여전히 들쑥날쑥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다양성영화’(예술·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칭하며 제작·배급·상영에서 상업영화보다 규모가 작고 예술·작품성이 높은 영화)로 분류한 수입 작품들의 연간 관객 추이를 참고할 만하다. 2008년 138만명에서 2009년 401만명으로 확 늘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110만명)와 ‘블랙’(86만명) 등 두 편의 흥행작이 터진 덕이다. 이후 50만명을 넘긴 수입 예술영화는 없었다. 2010년에는 381만명, 2011년 237만명, 지난해 228만명(172만명 든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상업영화로 분류된다) 등으로 줄어들었다. 또 다른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1000만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이면에 다수 한국영화는 상영도 못 해보고 간판을 내리는 것처럼 예술영화 시장에도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극장을 보유하지 못한 수입·배급사에서 들여온 예술영화는 입소문 날 틈도 없이 사라지는 게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공연리뷰] 국립오페라단 ‘팔스타프’

    [공연리뷰] 국립오페라단 ‘팔스타프’

    오페라 ‘팔스타프’(1893)는 주세페 베르디(1813~1901)답지 않은 작품이다. 이탈리아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를 떠올리면 운명, 배신, 사랑, 죽음 같은 열쇳말이 떠오른다. 기본적으로 장엄한 비극이다. 스물여섯에 첫 오페라 ‘오베르토’(1839)를 발표한 이래 50년이 넘도록 비련의 여주인공에게 고통과 눈물의 세월을 보내게 한 주인공이다. 하지만, ‘팔스타프’는 80세가 된 베르디가 마지막으로 남긴 오페라이자 희극이다. ‘나부코’(1842) ‘리골레토’(1851) ‘일트로바토레’(1853) ‘라트라비아타’(1853) ‘아이다’(1871) 등 베르디의 대표작과는 형식적으로도 구분된다. 베르디는 절절한 아리아를 좋아하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전통에 있다. 말년에 쓴 ‘팔스타프’는 3막이 끝날 때까지 아리아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바그너의 음악극처럼 대화풍의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질 뿐. 동갑내기 바그너가 몰고 온 오페라의 새 흐름을 애써 무시하던 베르디조차 말년(바그너는 1883년 먼저 세상을 떴다)에는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국립오페라단이 1995년 이후 18년 만에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다.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다. 베르디 작품치고는 짧은 120분짜리. 줄거리는 간단하다. 늙고 배만 불룩 나온 기사 팔스타프는 돈이 궁해지자 마을의 유한부인 알리체 포드와 메그 페이지에게 똑같은 연애편지를 보낸다. 이 사실을 안 두 부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작당을 해 팔스타프를 골탕 먹인다. 지난 19일 프레스리허설에서 본 ‘팔스타프’의 장점은 캐스팅이다. 팔스타프와 리골레토 전문 영국의 바리톤 앤서니 마이클스 무어는 ‘괴물같은 파워’란 별명답게 오케스트라석을 뚫고 객석 맨 뒤쪽까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전달했다. 늙고 초라하지만 예쁜 여자만 보면 추근대고, ‘자뻑’이 남다른 팔스타프의 귀여움(?)을 표현한 연기력도 발군이다. 1막에서 “내 뚱뚱한 배는 나의 왕국, 그걸 늘려 가는 게 나의 과제”라고 노래하던 팔스타프는 3막에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그를 굴리고 짓밟을 때도 “내 배만은 살려줘!”라고 간청해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프레스리허설에서 컨디션이 나쁜 탓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포드 역의 바리톤 이응광에 대한 평가를 유보한다면, 나머지 가수들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사사했다는 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의 능력도 돋보인다. ‘팔스타프’는 현악기 중심의 반주음악에 가까운 베르디의 다른 작품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변화무쌍하고 풍부한 음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코바체프가 지휘하는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는 최근들어 손꼽을 만큼 좋았다. 다만, ‘막장드라마’스러운 치정극이나 장엄한 서사극이 아닌 해프닝을 다룬 희극인 터라 서사나 무대가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주인공이 노래를 한 곡조 뽑고 청중들은 요란스레 박수치는 이탈리아의 고전 오페라에 익숙한 관객에겐 낯선 경험일수도 있다. 1만~15만원. (02)586-5284.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헨델, 통영을 걷는다 웨스트우드 옷 걸치고

    헨델, 통영을 걷는다 웨스트우드 옷 걸치고

    지난 1월 호주 시드니의 타운홀. 30m 길이의 런웨이 양쪽에 관객이 앉아있다. 조명이 켜지고 헨델의 장중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무대 양쪽으로 모델들이 쏟아져 나온다. 화려한 타조털 머리장식과 드레스를 입고 일본 전통극 가부키 배우의 메이크업을 한 모델들의 손에는 악기가 들려 있다. 런웨이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이들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관객들은 깜짝 놀란다. 백스테이지로 사라지지 않고 무대 한쪽에 앉아있던 연주자들과 연주를 시작한다. 이들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바로크 전문 연주단체 칼라이도스코프 앙상블. 이어 모델 틈에 섞여 있던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자모스카가 ‘영원한 기쁨, 영원한 사랑’을 부른다. 헨델의 오페라 ‘세멜레’와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사의 패션쇼를 섞어놓은 이종교배 퍼포먼스 ‘세멜레 워크’다. 공연계에서 일찍부터 입소문이 난 ‘세멜레 워크’가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리는 제11회 통영국제음악제(TIMF) 개막공연으로 22~23일 선보인다. 아시아 초연이다. 본래 ‘세멜레’는 헨델이 1743년 발표한 바로크 오페라다. 쾌락의 신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이자 매력적이지만 허영이 넘치는 세멜레가 주피터(제우스)의 아내 주노(헤라)의 꾐에 넘어가 파멸한다는 게 오페라의 얼개다. 2011년 5월 독일의 쿤스트페스트슈필레 헤렌하우젠에서 초연 당시 영국 패션의 대모 웨스트우드가 공연의상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전설적인 펑크밴드 ‘섹스피스톨스’의 매니저 맬컴 맥라렌을 사귀면서 1970년대 런던 펑크문화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웨스트우드의 개성은 의상뿐 아니라 음악에도 묻어난다. 펑크록의 역사에 짧지만 깊은 흔적을 남긴 여성 그룹 엑스레이 스펙스의 ‘오 본디지 업 유어스’ 노랫말을 대사로 차용하고, 듀오 유리스믹스의 ‘스위트 드림스’가 불린다. 통영에서도 시드니 공연에 참여했던 폴란드 소프라노 자모스카가 세멜레를 연기하고, 오스트리아의 카운터테너 아르민 그라머가 연인 주피터를 맡는다. 주최 측은 지난 18일 오디션을 통해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웨스트우드의 의상을 입을 한국 모델 10여명을 캐스팅했다. 런웨이의 길이가 20m로 짧아지고, 한국 모델이 등장하는 걸 제외하면 독일, 시드니 공연과 다를 바가 없다. 웨스트우드는 오지 않지만, 그의 스태프들이 직접 의상을 챙겨온다. 휴식시간 없이 80분 동안 이어진다. 28일까지 이어지는 음악제에는 ‘세멜레 워크’ 외에도 놓치기 아까운 공연들이 눈에 띈다. 26일에는 TIMF의 상주 아티스트인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숑과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의 듀오 리사이틀이 열린다.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라벨의 치간느, 브람스의 첼로소나타 등 친숙한 곡들을 자신들만의 색깔로 풀어낸다. 둘은 27~28일 화음 챔버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카푸숑은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을, 강주미는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를 연주한다. 24일에는 TIMF 상주 작곡가이자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음악감독을 역임한 중국의 치강 첸과 프랑스의 작곡가 파스칼 뒤사팽의 곡들을 모았다. 최수열이 지휘하는 TIMF앙상블이 연주한다. 2011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2위를 한 신예 조진주의 22일 공연도 궁금하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1번과 현대음악 작곡가 류재준의 바이올린 카프리스 등을 들려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영화 프리뷰] ‘콰르텟’

    [영화 프리뷰] ‘콰르텟’

    은퇴한 음악가들을 위한 요양원 비첨하우스에 새 식구가 찾아온다. 자존심 센 왕년의 스타들을 웅성거리게 한 주인공은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로 군림했던 진 호튼. 딱 한 명의 얼굴이 굳어진다. 호튼과 부부의 연을 맺었던 왕년의 명 테너 레지널드다. 외도로 부부관계를 깨뜨렸던 호튼은 사과하지만, 레지널드의 얼어붙은 마음은 녹지 않는다. 비첨하우스는 해마다 갈라 콘서트를 열어 운영경비를 모금한다. 예술감독 격인 시드릭은 한때 오페라 드림팀이던 레지널드와 호튼, 씨씨, 윌프를 함께 무대에 세우려 한다. 문제는 “커튼콜을 열두 번 이하로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자존심 센 호튼이 대중 앞에서 노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배우 더스틴 호프먼(76)의 감독 데뷔작 ‘콰르텟’(사중창)은 황혼의 예술가들을 통해 나이 듦을 이야기한다. 늙고 쇠약해진다는 건 서글프다. 그러나 사그라지지 않는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사랑만 있다면 인생의 또 다른 막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일흔 다섯 살에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호프먼은 “누군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몸이 늙어갈수록 마음도 연약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더 확장될 수 있다. 작품에 담긴 삶에 대한 관대한 시선과 나이 듦에 대한 낙관적인 자세는 영화를 연출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50여년을 현장에서 보낸 호프먼에게 첫 연출작이란 건 무의미해 보인다. 촘촘하게 직조된 캐릭터, 삶에 대한 혜안, 명배우들의 호연, 맥락에 꼭 들어맞는 음악까지 ‘콰르텟’을 엮어낸 건 호프만의 능력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줄리앙 슈나벨의 ‘잠수종과 나비’를 각색한 로널드 하우드(79)는 자신의 연극극본 ‘콰르텟’을 각색, 호프먼에게 제공했다. 감독 만큼이나 오래된 배우들의 관록은 몸짓 하나로도 대사 이상을 표현한다. 호튼 역의 매기 스미스(79)나 레지널드 역의 톰 커트니(76)는 물론, 바람둥이 윌프 역의 빌리 코놀리(71), 치매에 걸렸지만 소녀 같은 씨씨 역의 폴린 콜리스(73), ‘해리포터’의 덤블도어 교장으로 익숙한 마이클 갬본(73) 등 70대 배우들의 연기 궁합은 스크린을 꽉 채운다. 제목 ‘콰르텟’은 4명의 노배우가 비첨하우스의 갈라 공연에서 부르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다. ‘리골레토’ 중 3막에 등장하는 사중창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처녀여’는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테너)이 막달레나(알토)에게 치근대는 모습을 질다(소프라노)와 그의 아버지인 꼽추 리골레토(바리톤)가 훔쳐보는 대목에서 나온다. 각본가 하우드는 “인간의 목소리를 위해 쓰인 곡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극찬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만토바 공작)와 조안 서덜랜드(질다) 등이 함께 부르는 데카 앨범이 가장 유명하다(데카는 이 영화의 공동제작사). 28일 개봉.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13년차 ‘더 버드’ 20년차 ‘디아블로’ 살아있네

    13년차 ‘더 버드’ 20년차 ‘디아블로’ 살아있네

    베이스 기타리스트 김정렬을 중심으로 5명의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뭉친 13년차 재즈밴드 ‘더 버드’가 21일 밤 12시 5분 ‘EBS 스페이스 공감’을 찾는다. 이들은 3집 ‘럭셔리’(2012)에서 오랜 시간 이어진 끈끈한 유대감을 단단한 음악으로 표현했다. 이들의 팬이라면 동네 형 같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앨범 제목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반어적인 앨범 타이틀에는 이들이 고수해온 음악적 태도가 담겨 있다. 자신의 음악은 생계를 떠난 고급스러운 취미 활동의 산물이고, 순수하게 음악적인 즐거움만을 위해 곡을 쓰고 연주한다는 것. 한국에서 재즈밴드를 13년이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1990년대 ‘새 바람이 오는 그늘’의 베이시스트이자 조동진·조동익 형제가 이끈 1990년대의 전설 하나음악에서 활동한 김정렬을 주축으로 더 버드는 시작됐다. 데뷔 앨범 ‘쁘띠 아 쁘띠’(Petit a petit·2004)는 퓨전 재즈의 역동성과 즉흥성에 김정렬의 음악적 고향인 하나음악의 정서를 섞어 놓았다. 6년 만의 2집 ‘아트 세프트’(Art theft·2010)에서는 섬세하게 쌓아올린 사운드로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3집 ‘럭셔리’(2012)에는 드러머 조규원과 색소포니스트 이상하가 가세했다. 새벽 1시부터는 한국 헤비메탈의 대표 밴드 ‘디아블로’의 무대가 전파를 탄다. 대중의 음악적 편식에도 이들이 20년을 버텨낸 건 멤버들의 고집과 뚝심 덕. 디아블로가 선보일 곡들은 지난해 발표된 미니앨범 ‘덤’(Dumb)의 수록곡이다. 정통 스래시 메탈의 질주를 담은 곡들과 더불어, 정통의 근간은 유지하면서도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보탠 ‘유어 네임’, 래퍼 바스코와의 콜라보로 힙합과 헤비메탈을 접목시킨 ‘더스트’를 들려준다. 1980년대 후반 LA 메탈을 국내에 선보이며 강렬한 사운드와 화려한 연주로 사랑받았던 ‘크라티아’도 돌아왔다. 최근 발표한 ‘레트로 펀치’는 무척 반갑다. 80년대의 향수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과거 열악한 녹음 환경 때문에 거칠 수밖에 없었던 레코딩 음질은 라이브를 통해 탈바꿈했고, 세월의 힘으로 농익은 연주력은 오래전과는 다른 멋을 풍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민희 “리얼하고 공감가는 연애 딱 이 작품이다 싶었어요”

    김민희 “리얼하고 공감가는 연애 딱 이 작품이다 싶었어요”

    로맨틱 코미디면 운명적인 첫 만남부터 알콩달콩한 연애, 오해로 갈등도 빚지만,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금 수상하다. 3년차 은행 사내 커플 영(김민희)과 동희(이민기)가 헤어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둘은 쿨하게 작별한다. 하지만 여자는 늦은 밤 펑펑 눈물을 터뜨리고, 남자는 친구를 불러내 술에 취해 진상 짓을 한다.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는 둘은 다음 날부터 치졸한 복수극을 벌인다. 남자가 빌려 간 노트북을 돌려 달라고 하자 여자는 망치로 박살 낸 채 착불 택배를 보낸다. 남자 명의로 된 휴대전화 소액결제로 수십만원어치 쇼핑을 한다. 남자는 여자가 스토커에 사이코라 헤어졌다는 식으로 소문을 낸다. 이들은 미련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에 다시 만나지만 쉽지 않다. 상대를 위해 참고, 헌신한 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변함 없기 때문이다. 신인 여성 감독 노덕(33)의 데뷔작 ‘연애의 온도’(작은사진 맨 위·21일 개봉)는 지금껏 한국 로맨틱 코미디 중 가장 솔직하다. 한번쯤 겪어 봤을 법한 상황들이 깨알처럼 대사와 상황 속에 박혀 있다. 김민희에겐 생애 첫 여우주연상(부일영화제)을 안긴 ‘화차’ 이후라 궁금했다. 1999년 TV 드라마 ‘학교2’로 데뷔한 이후 여자 모델 출신의 꼬리표나 다름없는 연기력 논란을 떨치지 못했던 게 사실. 최근 ‘모비딕’ ‘화차’ 등 사회성 짙은 영화에 거푸 출연하면서 배우로 거듭난 김민희가 의외로 처음 로맨틱 코미디를 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렸다. “‘화차’의 차기 작을 고민했어요. 어떤 장르를 해야겠다고 기준을 세워 놓거나 계산적으로 고른 건 아니에요. 전에도 로맨틱 코미디가 들어왔는데 안 했어요. 전형적인 로코의 느낌, 판타지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연애의 온도’는 로코라고 하기 애매하죠.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으면서 유머도 있고, 적당한 메시지도 있어 딱 이 작품이다 싶었죠.” 현실적인 연애담이다 보니 공감 가는 대목도 많았다고 했다. “헤어진 다음 날 식구들이나 친구들 앞에서 과장되게 웃고 떠들다가도 혼자 되면 눈물을 쏟는다든가, 핸드폰 비밀번호를 풀어 보려고 애쓰는 등 많은 장면이 공감되던 걸요.” 시사회 후 ‘연애의 온도’의 완성도는 물론 김민희의 연기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스스로 몇 점쯤 줬을지 궁금했다. “지루하지 않고 잘 나온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했는데 안심도 되고요. 물론 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죠. 그런데 평생 아쉬움을 떨쳐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 연기에 100% 만족은 못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으니까 관객에게도 부끄럽지 않아요.” 그의 나이 서른하나. 데뷔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미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느덧 15년차 중견이다. “15년차? 하하하. 너무 까마득하게 먼일 같다. 시간이 빨리 간다. 현장에서 언젠가부터 언니, 누나가 돼 있단 걸 느낄 때 놀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연예계에 발을 담근 탓에 기회조차 없었던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은 없다고 했다. “배우가 된 걸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 못한 일, 도전하지 못한 일에 대해 후회를 하는 순간 지금의 내 모습은 사라진다. 난 배우 김민희가 좋다. 배우와 떼어 놓고 김민희를 생각하면 내가 아닌 것 같다. 연기가 재미있고, 미래도 연기와 함께 가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자신감이 조금씩 붙었다. 잘했든 못했든 내가 해온 건 연기다. 연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면 보통 사람보다 (연기에서)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연기란 걸 느끼는 순간 애정이 생기고 의욕도 붙었다”고 말했다. 이어 “20대에 많은 경험을 했고, 그것들이 쌓여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 경험과 연륜이 좀 더 쌓여 40대가 되면 걷고 싶은 미래가 좀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지금은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또 제한상영가 논란… ‘홀리 모터스’ 볼 수 있을까

    또 제한상영가 논란… ‘홀리 모터스’ 볼 수 있을까

    해묵은 영화등급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 12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레오 카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 ‘홀리 모터스’의 탁월한 작품성 때문에 문제가 더 커졌다. ‘퐁네프의 연인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등으로 유명한 카락스 감독이 13년 만에 내놓은 ‘홀리 모터스’는 지난해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프랑스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의해 ‘올해(2012)의 영화’ 1위로 뽑혔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면 제한상영관으로 등록된 극장에서만 상영과 홍보가 가능하지만, 국내엔 제한상영관이 없다. 영화를 틀지 말라는 얘기다. 수입사 오드(AUD)의 김시내 대표는 “영등위에서 문제 삼은 장면은 뿌옇게 블러 처리를 해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라면서 “새달 4일 극장 개봉을 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프랑스 제작사 측과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논란에 대해 곤혹스러운 눈치다. ‘영화 ‘홀리 모터스’ 제한상영가 결정 보도 관련 영상물등급위원회 정정보도 요청’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의 등급분류 제도는 영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표현에서 주제 및 내용의 이해도, 폭력성, 공포 등의 수위가 높고 특히 선정적 장면 묘사의 수위가 매우 높다. 신체 노출과 관련, ‘성기 등을 구체적·지속적으로 노출하거나 실제 성행위 장면이 있을 경우’ 제한상영가로 결정한다는 등급분류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등위는 또한 “문제가 된 장면은 남성의 성기가 발기된 채 지속적으로 노출된 장면으로, 일부 언론에서 이 영화의 성기 노출을 4초, 30초 등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실제는 1분 55초로 매우 길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등위는 지난해 11월에도 베니스영화제 퀴어라이온상 수상작인 전규환 감독의 ‘무게’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선정성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11년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된 김경묵 감독의 ‘줄탁동시’ 역시 지난해 성기 노출 장면이 문제가 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모자이크 처리한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폭력성을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도 있다.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특정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는 마네킹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문제가 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이 영화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정치적 탄압 논란마저 일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새 음반] ‘왓 어바웃 나우’

    [새 음반] ‘왓 어바웃 나우’

    1983년 본 조비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회 오빠처럼 수려한 외모에 팝적인 양념을 버무린 이들의 음악은 남성 전유물이던 헤비메탈 음악에 여성 팬을 끌어들였다. 데뷔 앨범 ‘본 조비’ 이후 통산 11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과 3장의 베스트 앨범, 2장의 라이브 앨범으로 1억 3000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했다. 30년 동안 장수할 수 있던 비결은 누적 관객 3400만명에 이를 만큼 탁월한 라이브 실력은 물론 섹스나 마약, 폭력 등 부정적인 내용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불어넣는 밝은 가사가 많은 점이 한몫했다. 거물 밴드 본 조비가 4년 만에 정규앨범 ‘왓 어바웃 나우’(What About Now)로 돌아왔다. 리더인 존 본 조비를 비롯해 리치 샘보라(기타), 티코 토레스(드럼), 데이비드 브라이언(키보드)까지 30년째 호흡을 맞춘 밴드의 관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최근작들이 그렇듯 더는 메탈밴드의 색깔을 찾아보기 어렵다. 명불허전인 본 조비의 보컬과 리치 샘보라가 이끄는 빈틈없는 사운드, 따뜻한 노랫말이 있을 뿐. 동명 타이틀곡 ‘왓 어바웃 나우’는 물론 현악 사운드가 어우러진 ‘픽처스 오브 유’, 슬로 템포의 ‘아임 위드 유’나 어쿠스틱 발라드 ‘아멘’ 등 버릴 곡이 거의 없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열아홉 청년, 한계를 모르는 열 손가락

    열아홉 청년, 한계를 모르는 열 손가락

    앳된 얼굴이지만 더는 소년이 아니었다. 젖살이 빠져 이젠 청년의 태가 났다. 인터뷰를 조금 낯설어했다. 조심스러워했지만 똑 부러지게 할 말은 다 했다. 10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생각이 깊었다. 그를 겪어 본 공연 관계자가 ‘애늙은이’라고 표현했던 게 이해가 갔다. 2011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피아노 부문 3위에 입상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피아니스트 조성진(19)이 주인공이다.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한 조성진은 봄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다. ‘멋있어졌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수줍게 웃었다. 미소만큼은 여전히 소년이다. 그는 “한국에서 6개월쯤 프랑스어를 공부했지만 파리에서 처음 두 달은 정말 힘들었다. 워낙 말이 빨라 이해를 못 했다. 낯을 가리는 편인데 오히려 부딪쳐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다시 얘기해 달라고 먼저 말했다. 짜증을 내면서도 해 주더라. 이젠 수업은 웬만큼 알아듣고 의사표현도 된다”며 웃었다. 의외였다. 피아니스트들은 독일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게 보통. 왜 파리였을까.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끝나고 유학을 고민했어요. 레슨받으러 유학을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한국에서도 외국의 좋은 연주자들이 왔을 때 마스터클래스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클래식의 본고장에서 문화를 온몸으로 느껴 보고 싶었어요. 가장 예술적인 도시가 어디일까 생각해 보니 파리가 떠오르더라고요. 오길 잘했어요.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마우리치오 폴리니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같은 공연도 마음껏 볼 수 있어요. 6개월 동안 40번쯤 본 것 같아요. 그림을 보거나 박물관에 가는 것도 좋고요.” 그가 처음 건반을 두들긴 건 여섯 살 때였다. 어머니의 권유였다.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태권도, 수영, 미술, 바이올린 등 취미 삼아 이것저것 시켜 보던 중이었다. 동네 학원에서 바이올린도 함께 배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두 악기를 병행했다. 바이올린 대신 피아노를 선택한 건 의외로 간단했다. “바이올린은 서서 하는 게 싫었어요. 20분만 연습해도 못 하겠더라고요. 피아노는 1시간씩 해도 질리지가 않았어요. 운명인지 그냥 좋더라고요. ” 피아노를 배운 지 1년 만에 경기 성남 지역 콩쿠르에 나갔다. 그는 “그때 같이 콩쿠르 나간 친구들과는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 그때만 해도 친구들보다 4배 느리게 칠 만큼 형편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인 레슨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오디션에서 만난 박숙련 순천대 교수를 사사하면서 2004년 음악춘추 콩쿠르를 시작으로 2006년 이화 경향 콩쿠르까지 주요 콩쿠르를 휩쓸었다. 2007년부터 신수정(전 서울대 음대 학장) 교수를 사사하면서 더 도약했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뒤 처음 출전한 국제콩쿠르(2008년 러시아 국제 청소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은 물론 최연소상, 협연상 등을 석권한 것이다. 이듬해 일본 하마마츠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했다. ‘신동’ ‘천재’란 수식어에 거품이 잔뜩 낀 음악계에서도 독보적인 성장인 셈. 하지만 그는 “솔직히 천재의 정의가 뭔지 모르겠다. 천재라고 대가가 되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남보다 곡을 빨리 배우고 손가락 테크닉의 어려움을 못 느낀다. 같은 곡을 수십 번씩 연주하는 것보다 악보를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걸 좋아한다. 남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음악적인 머리가 비상한 건 아닌데 생각을 열어놓는 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성진의 오늘이 궁금한 팬이라면 새달 22일 뮌헨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주목해야 한다. 거장 로린 마젤과의 궁합도 궁금한 데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이다.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그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중 가장 좋아한다. 열정이 넘치는 베토벤의 여느 곡들과 다르게 낭만적으로 진행되면서도 베토벤적인 요소가 있다. 오케스트라와 대화를 하는 듯한 2악장도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이어 “거장과 함께 할 수 있는 건 행운이지만 마젤이나 뮌헨필과의 협연이라고 해서 더 떨리는 건 없다. 베를린필과 협연하든 300석짜리 소극장에서 공연하든 긴장하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다만, 독주회는 나만 책임지면 되는데 협연은 실수하면 다른 분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 부담된다”고 덧붙였다. 지금껏 잘 ‘자랐지만’ 피아니스트로선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다. 꿈꾸는 미래가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롤모델은 없었어요. 음악에서만큼은 나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롤모델이 생긴다면 적어도 음악가, 아니 피아니스트는 아닐 것 같아요. 아직까진 음악적으로 모든 면에서 명백하게 부족해요. 커리어를 따진다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셈이죠. 일단 나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피아노를 연구하고 싶어요. 평생을 해도 만족할지는 모르겠네요. 하하하.”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영화티켓 1만원’ 진실 혹은 거짓

    [주말 인사이드] ‘영화티켓 1만원’ 진실 혹은 거짓

    영화관람이야말로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가장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다. 그런데 지갑이 얇아지다 보니 영화 관람료 1000원 인상에도 민감해진다. 수백만명 드는 영화가 연달아 나오는 마당에 관객들이 봉이냐는 반응까지 있다. 한국의 영화관람료는 정말 다른 나라들보다 비싼 걸까. 극장 요금이 업계 자율로 풀린 건 30여년 전. 공연법 개정으로 1982년 1월부터 자치단체에 상영 전 신고만 하면 됐다. 하지만 물가정책과 관객·시민단체의 반발에 막혀 인상은 쉽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2500원이던 요금은 1990년대 들어 5000원을 유지했다. 5000원을 무너뜨린 건 브루스 윌리스다. 다이하드 1·2편이 모두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다이하드 3’가 개봉하던 1995년 여름, 수입사와 직배사는 서울 주요 극장 대표들과 협의, 관람료를 6000원으로 올렸다. ‘6000원 시대’가 오래 갈 줄 몰랐다. 1997년 ‘에비타’, 1998년 ‘타이타닉’, 2000년 ‘미션 임파서블 2’ 등 화제작 개봉 때마다 인상을 노렸지만,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미션 임파서블 2’ 상영 때는 7000원에 예매한 관객에게 1000원을 돌려주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7000원 시대를 연 건 멀티플렉스의 힘이다. 2001년 CGV와 메가박스가 7000원으로 올리면서 전국으로 확대됐다. 2003년 멀티플렉스에서 조조 요금은 4000원으로 낮추고 주말 요금을 8000원으로 올리는 요금 차등제를 실시했다. 2009년 7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개봉할 무렵 메가박스가 총대를 메고 평일 8000원, 주말 9000원으로 올렸다. 예매율 80%를 기록할 만큼 기대가 컸던 대작의 개봉에 맞춰 슬며시 올린 셈이다. 지난달 관람료를 둘러싼 논란이 4년 만에 다시 불거졌다. CJ CGV의 목동, 상암, 강남, 오리, 야탑, 센텀시티, 마산, 순천 등 8개관 점주들이 5000~1만원 상영시간대별로 다변화하겠다고 밝힌 것. 평일 조조 할인요금을 1~2회차 더 적용하되, 주말에는 9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리는 게 골자다. “전업주부와 대학생 관객 등이 많은 지역 특색을 감안해 점주들이 조정한 것”이라는 게 CJ CGV 측의 입장이다. 반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요금 다변화로 관람료가 7.1%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면서 “국내 영화요금은 영화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영화관람료는 외국보다 거품이 많은 게 사실일까.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평균 관람료는 7737원(2011년 평균 환율로 환산 땐 6.98달러)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일본(평균 15.71달러)은 물론, 캐나다(10.28달러), 영국(9.03달러), 프랑스(9.25달러)보다 낮다. 미국(7.90달러)보다도 조금 낮은 수준이다. 물론 단순비교는 무의미하다. 김수현 영화진흥위원회 연구원은 “극장관람료의 수준은 영화산업의 역사와 성숙도, 경제력, 특히 물가수준과 비교하는 게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각 나라의 맥도날드 햄버거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뒤 미국 내 판매가격과 비교해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하는 빅맥지수를 참고할 만하다. 2012년 7월 한국의 빅맥지수는 3.21달러. 비슷한 국가는 헝가리(3.48달러)와 체코(3.34달러), 이스라엘(2.92달러) 정도다. 이들의 극장요금은 헝가리가 평균 5.53달러, 체코는 6.33달러다. 이스라엘은 9.9달러로 빅맥지수를 감안하면 턱없이 높다. 미국의 빅맥지수는 4.33달러다. 한국의 1.35배 수준. 반면 평균 관람료는 미국이 한국의 1.13배 수준이다. ‘평균’의 함정을 피하면 또 달라진다. 한국의 주말요금은 2D 영화의 경우 비싸도 9000원이다. 반면 미국의 대표적 극장체인 AMC의 주말 저녁시간(오후 6시 이후) 요금은 12.5달러(1만 3785원)다. 한국의 1.53배 수준. 빅맥지수가 1.35배란 점을 떠올리면, 외려 미국이 비싸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잣대로 삼으면 어떨까.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 3679달러(2012년 기준)다. 비슷한 수준의 나라는 그리스(2만 4197달러)와 타이완(2만 502달러) 정도. 이들의 평균 관람료는 각각 12.0달러와 9.8달러다. 한국 관람료가 비싼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미국과 소득수준 대비 영화관람료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3.2로, 미국(1.7)의 183%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평균 관람료(원화 기준)를 1인당 GDP(달러 기준)로 나눈 수치를 비교했다. 실무를 진행한 김정훈 회계사는 “가처분소득에 대한 지출 부담능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싶어 평균관람료를 1인당 GDP로 나눠 비교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영화관람료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산업의 역사와 국가별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평균관람료는 7.9달러이지만, 뉴욕에서 주말에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최소 12달러는 내야 한다. 1.5배 수준이란 얘기다. 이 정도는 약과다. 중국의 3D 관람료는 130~150위안이지만, 낮시간대에는 80위안까지 떨어진다. 심지어 태국에서는 같은 상영관 내에서도 앞·뒷자석 요금이 다르다. 합리적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채택하지 않고 있는 요금제다. ‘한국은 2D 관람료는 싸지만, 3D는 비싸다’란 속설도 사실과 다르다. 한국의 3D 관람료는 1만 3000원(IMAX 제외). 미국 AMC의 경우 3D 관람료는 11~15.5달러다. 시설에 대한 투자가 이뤄진 만큼 3D 요금은 2D의 1.5배 수준에서 책정되는 게 보통이다. 김수현 연구원은 “경제규모나 물가·소득수준이 비슷한 국가와 비교해 보면 우리가 비싸지 않다. 오랫동안 물가제한품목에 묶여 있다 보니 규제가 풀린 이후에도 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의 심리적 저항이 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맞아 7년 만에 투자수익률이 흑자(13%)로 돌아섰다. 극장매출도 7년 만에 가장 많은 17.7%(전년 대비) 증가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과실은 투자·배급·극장까지 수직 계열화된 대기업에 쏠린 게 현실이다. 2006~2011년 누적 손실에 신음했던 중소 투자·제작사와 최저생계비 수준의 수입으로 생계를 잇는 현장 스태프와 다수 배우에게 달라질 건 없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비롯한 충무로 구성원 대부분이 관람료 인상을 지지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부율이다. 배급사와 극장이 나눠 갖는 비율을 뜻하는 부율은 현재 5(배급사)대5(극장)다. 8000원짜리 티켓이 팔리면 1000원은 세금(영화진흥기금 3%+부가세 9%)으로 빠지고 나머지를 배급사와 극장이 나눠 갖는다. 서울에서 할리우드 영화는 6(배급사)대4(극장)로 나눈다. 미국영화가 강세이던 관행이 남은 탓. 현재 5대5인 한국영화의 부율을 일단 5.5(배급사)대4.5(극장)로 조정하고, 장기적으로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6대4로 가야 한다는 게 영화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입장이다. 지난해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에서 합의된 부분이다. 영화제작가협회 원동연 부회장은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약 50억원)의 손익분기점이 150만명 선이다. 관람료가 오르면 창작자 부담이 줄어들 것이고, 다양하고 완성도 있는 영화 제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CGV의 일부 요금 인상이 전체로 확대된다면 동반성장협의회에서 약속한 부율 5.5(배급사)대4.5(극장)를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영화가 극장에 수익을 안겨주는데 외화보다 불이익을 보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라면서 “의무상영기간 2주를 보장하고, 종영 후 3개월이 지나서야 극장이 정산을 해주는 관행도 월별 정산으로 바꿔야 한다. 3D나 4DX 등 특수상영관에서 ‘시설비’를 이유로 극장들이 떼어가는 것과 3주차에 접어들면 부율을 극장 측에 유리하도록 조정하는 부분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영화 프리뷰] ‘호프 스프링즈’ 현실적이지만 불편하지 않은 결혼 31년차 부부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사랑

    [영화 프리뷰] ‘호프 스프링즈’ 현실적이지만 불편하지 않은 결혼 31년차 부부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사랑

    이 부부, 문제가 꽤 많다. 결혼 31년차 부부 아놀드(토미 리 존스)와 케이(메릴 스트리프)는 각방을 쓴 지 수십 년이다. 아놀드가 페인트칠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이후론 쭉이다. 마지막 섹스는 5년 전 9월 22일. 아놀드는 기억도 못 하지만 케이는 깨알같이 기억한다. 대화라곤 의례적인 인사말이 전부. 아놀드는 밥만 먹으면 골프 채널을 틀어놓고 전용 소파로 간다. 무뚝뚝한 남편의 사랑을 되돌리려고 케이는 일주일간의 부부관계 심층 상담 캠프를 덜컥 예약한다. 자그마치 4000달러짜리.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아놀드는 결국 비행기에 오른다. 상담가 펠드 박사(스티븐 카렐)의 노골적인 질문에 부부의 갈등은 깊어진다. 케이가 “다시 부부답게 살고 싶어요”라고 하면 아놀드는 “우리가 부부가 아니면 세상 부부 얼어 죽겠다”고 받아친다. 아내가 “대화를 안 해요”라고 하면 남편은 “너무 해서 귀가 아프다. 누가 뭘 샀고, 교환했고, 어쩌고저쩌고…”라고 한다. 부부는 인생의 시계추를 돌려놓을 수 있을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로 2030세대 여성들을 호응을 이끌어낸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이 이번엔 5060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호프 스프링즈’로 돌아왔다. ‘구닥다리 노인네들 이야기’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2030세대 관객이라도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의 미래가 혹시 저럴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만큼 세대를 초월한 문제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서로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진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을 부대끼며 산다는 게 얼마나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지, 서로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이, 성별과는 무관한 이슈다. 결혼을 앞둔 20~30대부터 50~60대 중년 부부까지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각본을 쓴 바네사 테일러는 미국 드라마 ‘앨리어스’ ‘왕좌의 게임’에 참여했다. 물론 드라마의 품격을 높이고 현실감을 덧입힌 건 명품 배우의 시너지다. 한국 영화에서 혹은 한국 관객에게 노년의 사랑(혹은 섹스)을 언급하고 표현하는 일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프랭클 감독은 메릴 스트리프(64)와 토미 리 존스(67)라는 두 배우와 함께 현실적이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31년차 부부의 갈등과 고민, 사랑을 담아냈다. 남자 배우로 해리슨 포드(71), 리처드 기어(64), 여자 배우에 샤론 스톤(55), 데미 무어(51) 등 섹시한 이미지를 가진(혹은 가졌던) 배우를 캐스팅했더라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겠지만 프랭클 감독은 현명했다. 북미에선 지난해 8월 개봉했다. 불과 3000만 달러(약 329억원)의 제작비로 찍은 이 영화는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1억 900만 달러(약 1198억원)를 벌어들였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은 이 영화의 신선도를 74%로 집계했다. 오는 28일 개봉.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솔로로 돌아온 ‘재주소년’ 박경환

    솔로로 돌아온 ‘재주소년’ 박경환

    박경환(29)이란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이면 남성 듀오 재주소년을 기억할 터. 2003년 어린 시절 친구 유상봉과 함께 ‘재주소년’을 결성했고, 1집 ‘재주소년’(才洲小年)으로 데뷔했다. 이후 3장의 정규 앨범과 1장의 미니 앨범을 발표하며 수록곡 ‘귤’, ‘이분단 셋째 줄’, ‘명륜동’ 등을 통해 소년 감성을 표현하는 남성 듀오로 자리매김했다. 사람들은 재주소년을 일컬어 ‘포크의 귀환’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2010년 11월 콘서트를 끝으로 급작스럽게 해체를 선언했다. “때가 되면 멋지게 마무리하자”가 그들의 약속이었다니, 팬들은 그들만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정서를 그리워하며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행과 소규모 공연을 통해 홀로 서기를 준비하던 박경환이 2년여의 시간과 경험이 오롯이 담겨 있는 솔로 1집 ‘다시 겨울’을 들고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공유가 출연한 커피 CF에 삽입돼 친숙한 ‘2시 20분’이 타이틀곡이다. 이적은 이 앨범을 일컬어 “노래가 자랐다. 목소리는 소년 그대로지만 노래는 훌쩍 자랐다. 그 간극이 마음을 흔든다”며 극찬했다. ‘재주소년’에서 솔로로 돌아온 한층 성숙해진 박경환의 음악적 존재감을 14일 밤 12시 5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옐로우 스트링 보이즈’도 같은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의 현악 사중주로 구성된 옐로우 스트링 보이즈는 2008년 1집 ‘필링 오브 스프링’을 통해 봄과 닮은 활기찬 멜로디를 전했다. 그들의 첫 결과물에는 브람스, 드보르자크 등 클래식 레퍼토리뿐 아니라 스탠더드 재즈 명곡 ‘플라이 미 투 더 문’부터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만화 ‘컴퓨터 형사 가제트’ 테마곡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음악들이 담겨 있다. 최근 발표한 2집 ‘레터 프럼 옐로 스트링 보이스’도 심상치 않다. 조심스럽게 피어오르는 첫 곡 ‘아련’, 의미심장하게 이어지는 ‘국민체조’, 바흐의 미뉴에트 ‘러버스 콘체르토’와 코끼리의 흥겨운 몸짓을 표현한 ‘코끼리 댄스’ 등 어떤 소재를 만나든지 밝고 희망찬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불어넣는 재주가 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는 이 즈음 듣기에 딱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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