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전격 월경작전 왜?
터키와 이라크 국경이 ‘세계의 화약고’로 급격히 떠오르고 있다. 분리주의자인 쿠르드노동자당(PKK) 반군에 대한 공격을 이유로 이라크 월경(越境) 공격을 경고해 온 터키군이 전격 월경 공격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전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정부는 또 한가지의 고민을 떠안게 됐다. 터키와 이라크 국경지대의 분쟁은 석유의 공급선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불안한 상태인 국제유가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터키의 강경 기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특사를 파견하는 등 노력하던 부시 대통령은 24일에는 압둘라 굴 터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PKK 반군 소탕작전에 대한 터키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이 즈음 터키의 월경공격이 단행됐다. 터키와 미국 정부간 사전교감이 있었음이 감지되고 있다. 터키 사태의 발단은 PKK의 도발이다. 독립을 추구하며 터키 정부군과 무력충돌 및 휴전을 반복하던 PKK는 여름부터 공세를 강화했다.9월에는 터키 민간인 12명을 납치, 살해하기도 했다. 터키의 민심이 들끓었다. 그래도 터키는 PKK에 대한 군사작전을 자제해 왔다. 이 지역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미국이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군 13명이 PKK와의 교전 끝에 사망하고 민간인까지 피해를 입자, 터키는 강경 대처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미국이 PKK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점도 지적된다. 특히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아르메니아 학살 결의안’을 10일 통과시키면서 터키는 급격히 강경해졌다.1914년 이후 옛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150만명 살해를 대량학살로 규정한 결의안을 채택해 본회의에 회부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에 의한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20세기 첫 집단학살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터키는 내전 도중 일어난 일에 불과하며 조직적 학살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사망자도 30만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미국 의회가 구속력은 없다지만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터키가 발끈했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수년째 노력하고 있는 터키에는 심대한 타격이다.EU는 아르메니아 대량학살을 내세워 터키의 비원인 EU 가입을 꺼린다. 결국 결의한 채택이 터키인의 빈미감정에 불을 지폈다. 주미 대사도 소환됐고, 월경공격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터키의 강수는 미 하원 본회의가 아르메니아 학살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승부수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터키의 협박성 강수가 통하지 않아 결의안이 미국 상·하 양원 본회의를 통과하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부심 중이며, 동시에 터키를 달랠 묘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할 때 터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터키 남부의 인시를릭 공군기지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향하는 군수품의 보급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이라크로 가는 군수물자의 70%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다급해진 미 백악관은 터키 전투기들이 월경해 쿠르드 반군을 공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터키와 이라크 양측 모두의 자제를 촉구했다. 의회 설득도 강화했다. 이에 따라 미 결의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주목된다.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