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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송덕비/이춘규 논설위원

    전국의 도시·마을 입구에서 송덕비(頌德碑)를 쉽게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현감의 공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불망비(不忘碑)가 다수다. 임진왜란 때 지원했던 명나라 장수 송덕비도 있다. 유서 깊은 도시에는 수십개씩 송덕비가 늘어선 이른바 ‘비석거리’가 많다. 지방관들의 선정을 칭송하는 글을 새겨 선정비(善政碑)라고도 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이 세운 송덕비였다. 마음대로 송덕비를 세울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공적 내용을 엄격히 심사했지만 엉터리도 많았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아버지의 송덕비를 세운다는 핑계로 돈을 거두어들이기도 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한 배경이다. 주민들에게 비석 건립을 강요한 관리들의 위선과 악정에 대한 분풀이로 ‘비사치기(비석차기)’ 놀이가 있을 정도다. 반대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송덕비를 세우려 해도 끝내 사양한 청백리도 적지 않았다. 순절비(殉節碑)·충렬비(忠烈碑)·대첩비(大捷碑) 등도 있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변 높이 5.7m의 거대한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쟁하다 삼전도로 나와 항복한 뒤 세운 청 태종 공덕비이다. 굴욕의 상징이라며 고종과 주민들에 의해 두 번이나 땅 속에 묻혔다가 홍수로 드러났고, 이전을 거듭하다 371년이 지난 올 봄에야 원래 위치에 옮겨졌다. 비문의 글씨를 쓴 오준은 치욕을 참지 못해 오른손을 돌로 짓이겨 못쓰게 됐고, 벼슬도 버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부끄러운 송덕비가 많았다. 해방 뒤 상당히 사라졌다. 을사5적 박제순 등의 송덕비는 철거 논란이 뜨거웠다. 현대에도 송덕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 경제인, 예술인 등의 송덕비가 많지만 때로는 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물론 송덕비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수백년이 지나면 풍화작용으로 내용의 해독이 어렵다. 오래 전의 한자들은 읽기 어려운 것이 많다. 이처럼 송덕비는 무상할 뿐이다. 12년간 재직하고 퇴임한 전직 동작구청장의 송덕비가 화제다. 서울 동작문화원이 지난달 30일 퇴임한 김우중(68) 전 구청장의 업적을 새긴 너비 1m, 높이 1.5m의 표지석을 최근 문화원 앞에 세웠다. 표지석에는 그의 약력과 학력, 수상 내역, 부모와 배우자의 이름 등이 쓰여 있다. 큰 덕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운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자발적 모금으로 세워졌다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고라니/이춘규 논설위원

    경기 파주시 야산자락에 있는 지인의 주말농장에 갔다. 고추, 상추, 고구마, 쑥갓, 오이 등이 자라고 있었다. 일하다 보니 고구마 줄기 상당수가 통째로 잘려나가 안타까웠다.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 “고라니가 먹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일주일 뒤 지인이 밭에 가니 장마로 물이 불어난 수로에 고라니 새끼가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커다란 쥐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고라니새끼였단다. 구해주려 하자 새끼는 비명을 지르고 어미는 새끼를 공격하는 것으로 착각, 근처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고 한다. 새끼의 털을 말려주고, 기념사진도 찍고, “고구마 먹지 말아줘.”라고 다독인 뒤 놓아주자 고라니가족은 평온을 되찾았다. 심성 고운 인간을 만난 운좋은 고라니들. 고라니, 맷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깊은 산에서 서식밀도가 높아지자 자꾸 민가 근처로 내려와 인간과 충돌한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충돌은 갈수록 심해질 것 같다. 공존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외진 주말농장 고라니가족의 그 후가 걱정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흙길/이춘규 논설위원

    흙길이 그리워지면 집근처 남산에 간다. 오랜만에 남산 중턱 남동쪽 산책로에 이르니 길이 화려하게 바뀌었다. 듬성듬성 남아있던 흙길들이 온통 우레탄 등으로 포장되어 버렸다. 흙길을 밟으며 생각을 가다듬고자 했던 계획은 헛꿈이 되고 말았다. 보기는 좋지만 허전했다. 서울특별시민들은 종일 흙과 함께하기 어렵다. 출퇴근길은 포장길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한강 둔치의 길에도 흙은 귀하다. 한 뼘 남았던 흙길인 많은 아파트의 샛길들도 빠르게 포장길로 바뀌어 간다. 근교 등산로에도 나무·철제 계단 등 인공구조물이 무섭게 늘어간다. 서울뿐인가. 농촌의 도로들도 오래 전 포장되었다. 골목길까지 말끔하다. 주요 논길, 밭길조차 흙길이 아니다. 농민들도 논이나 밭에서 일하지 않으면 흙 밟기가 쉽지 않다. 포장길은 장점이 많다. 하지만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다. 흙길이 주는 많은 것이 사라져 간다. 편리함과 자연스러움의 조화는 어려운가. 가끔은 흙먼지 날리는 황톳길을 걷고 싶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꿩/이춘규 논설위원

    ‘꿩~꿩~’ 이른 아침 꿩 소리를 듣고 나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른바 꿩 자명종에 익숙해졌다. 지난해까지와는 다르게 올해는 봄부터 여름까지 아침이 이렇다. 해가 뜨고 나면 꿩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계속 들려온다. 집 바로 옆 군부대 숲에 살고 있는 꿩이다. 몇 년 전 이사를 와 처음으로 꿩 소리를 들을 때만 해도 “정말 꿩인가.”하며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자주 들으면서 꿩이 군부대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겨울에는 앙상한 나무 아래서 한가롭게 노니는 꿩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길 건너 용산미군기지 본부까지 날아서 왕래한다. 이즈음 농촌에서는 온갖 새울음 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뻐꾸기, 비둘기, 까치, 꿩 소리가 낭자하다. 꿩 소리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예전엔 수탉 울음소리가 사람들 잠을 깨웠지만, 요즈음의 여름날 농촌에선 뻐꾸기 소리가 자명종임을 알게 됐다. 그런데 좁은 도심 군부대에서 힘차게 울어대는 꿩. 미군기지 이전 뒤 개발바람이 불면 터전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병역특례/이춘규 논설위원

    징병제(徵兵制)는 주로 성년 남성들에게 국토를 방위할 병역 의무를 지워 강제하는 제도이다. 군대에 일정기간 복무하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우리나라, 타이완, 독일 등이 징병제 나라다. 우리나라는 복무기간이 24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되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내년까지 4만명의 병력자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국민개병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국가의 안전과 국민들의 자유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징병제는 공평성이 생명이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면 징병제와 국가안보가 위험해진다. 특례가 늘게 되면 국가 운영의 원칙이 흔들리게 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래서 병역의무를 면제하는 특례제도는 예외적으로, 엄격히 운영되고 있다. 현재 많은 분야에서 병역특례를 운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포츠계이다. 산업체 특례도 있다. 바둑, 무용에도 있다. 특례가 늘면 현역 장병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신성한 병역 의무를 징벌로까지 인식하게 된다. 병역특례 논란이 재점화됐다. 축구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허정무 감독과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 등이 16강 진출 직후부터 병역특례를 거론하면서다. 찬반 양론이 있지만, 누리꾼들은 반대론이 압도적이다. 원칙을 흔드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름 없고, 돈 없고, 배경 없는 사회적 약자들만 군대에 가란 말인가.”라는 항변도 들려 온다.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국위를 선양했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했지만 법을 바꾸면서까지 특례를 주라는 훈장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스포츠 병역특례는 1973년 도입됐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3위 이상’이었다가 1984년 엄격해졌다. 1990년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로 더욱 강화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 4강 이후 ‘축구 월드컵 16강, 야구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이상’까지 특례조항이 추가됐지만 2007년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로 원위치됐다. 일본 우파 언론들은 지난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 행진을 이어가자 “한국선수들은 병역면제 혜택 때문에 강하다.”고 빈정댔다. 당시 여자선수들의 선전은 외면해 버렸다. 야구나 축구, 그리고 올초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도 한국선수들의 선전을 병역면제 혜택 덕분으로 폄하했다. 병역특혜 논란 때문에 국민적 영웅들이 국제적 놀림감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앵두/이춘규 논설위원

    고향집 장독대 옆 앵두의 붉은 빛깔이 강렬하다. 올해는 적게 열려 씨알들이 굵다. 뙤약볕 아래 밀짚모자를 쓰고 잘 익은 앵두를 딴다. 입에 넣자 시큼하면서 단맛의 추억이 아련하다. 가족들에게 맛보이기 위해 그릇에 조심스레 담아 본다. 40년 전 앵두는 이즈음 시골어린이의 최고 간식이었다. 이때만은 앵두나무가 많은 집 아이들은 상전이었다. 아이들은 지혈에 좋다는 삐비를 먹었고, 뽕나무 열매 오디도 탐했다. 소나무 속피도 벗겨 먹었다. 그 간식들 중에서 기관지나 변비에 좋다는 앵두는 경쟁상대가 없었다. 앵두는 인기가 높다 보니 집안일을 돕거나 착한 일을 하고 나면 따먹을 특권이 주어졌다. 차지하기 다툼도 일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앵두가 익으면 주인 없는 집에 아이들이 몰래 숨어들어 따갈 정도로 인기가 여전했었다. 몇 명 남은 고향마을 아이들 입맛도 변해버렸는가. 이제 앵두가 먹음직스러워도 몰래 따갈 아이들이 없다. 허허로운 농촌 여기저기 주인 잃은 앵두가 익어 짓물러 간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태종우(太宗雨)/이춘규 논설위원

    오늘은 음력 5월10일. 역사적으로는 태종우(太宗雨)가 내린다는 날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5월조에 보면 조선 3대 임금 태종의 기일인 매년 이날이 되면 비가 내리는데 이 비를 태종우라고 했다. 태종이 숨질 때 아들 세종에게 말하기를 “현재 가뭄이 극심한데 내가 죽어 영혼이 있다면 비가 오게 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들 징조라 해 태종우를 반겼다. 태종 때는 가뭄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태종은 수리(水利)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태종이 손수 기우제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국의 저수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공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기우제도 지내고, 고려말 이래 정치 불안으로 파괴되어 방치된 저수지를 보수·증축하게 했다. 태종의 이러한 민생, 치수에 대한 관심에 농민들의 감사의 마음이 담겨져 태종우라는 이야기를 낳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종우는 장마라는 전형적인 기상현상과 연결된다. 음력 5월10일은 양력으로는 매년 6월 중순 전후다. 이 시기는 장마철이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도 음력 5월10일 전후 거의 어김없이 비가 내렸으니, 태종우는 본격적인 장맛비의 의미도 갖는다. 장마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 극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기상현상이다. 구우(久雨), 임우(霖雨)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쓰유 혹은 바이우(梅雨)라고 한다. 장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5월에 시작돼 6월에 끝난다. 이어 우리나라 제주도와 일본 혼슈에서 시작된다. 계속해서 중부지방까지 전선이 북상해 1개월여 비가 내리다가 북부지방까지 오르내린 뒤 7월 중·하순쯤 소멸한다. 우리나라엔 예전과 같은 장마가 안 나타나 아열대성의 우기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에 6월 들어 비가 자주 내렸다. 기상청은 기상학상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비가 오는 시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장마선언을 하지 않았다. 제주·남부는 장마에 진입했다. 장마는 우리 생활과 밀접해 많은 문학작품도 낳았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는 6·25전쟁 기간 혈연의 끈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얽힌 집안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었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사돈 관계인 김씨, 권씨 집안이 전쟁으로 인해 받은 재앙 때문에 반목했지만 지루한 장마 중에 나타난 구렁이를 매개로 반목이 극복되는 과정이 정겹다. 심신이 지치기 쉬운 장마 기간. 서로 양보하고 다독거려 주면 장마를 조금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서울광장] 민심의 바다 얕보지 말라/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민심의 바다 얕보지 말라/이춘규 논설위원

    민심의 바다는 넓이와 깊이를 측정하기 어렵다. 6·2지방선거 결과는 민심의 절묘한 선택이었다. 낡은 상식으로는 민심에 다가서지 못한다. 국민의 마음, 민심을 얕보다가는 큰코를 다치게 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키기 힘든 공약으로 국민을 현혹해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끌었던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결국 집권 8개월 만에 바닥이 드러나 퇴진했다. 세상 민심은 무섭지만 현명하기도 하다. 오만을 용납하지 않지만 예방주사도 놓아준다. 누구의 독주도 허락하지 않는다. 특정 세력이 오만하면 매섭게 심판한다. 한쪽으로 기울면 균형을 잡아준다. 1997년 정권교체가 그랬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압도적 당선도 민심으로부터 멀어진 참여정부 심판이었다. 그 민심이 지방선거로 경보음을 냈다. 국민들은 냉정하다. 과거 대중매체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엔 민심이 조작의 대상이 된다고 인식됐다. 이제 민심은 누구도 조작할 수 없다. 국민은 북풍에도, 노풍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집권세력을 무섭도록 냉철하게 평가해 성적을 매긴다. 독주하던 여당을 견제했다. 민주당을 택한 게 아니라 제1야당에 힘을 보태 여당을 견제하게 했다. 차기 대권경쟁도 적절한 균형을 잡아줬다. 지난 6·2지방선거는 ‘낡은 상식’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여론조사 기법에 의지했던 기성 언론과 제도 정치권은 바닥민심을 읽어내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이 대통령 집권 2년의 종합성적표를 토대로 정치권, 제도권 언론에 민심의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기성언론과 정치권력이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 해도 결코 이끌려가지 않았다. 국민은 기성언론보다, 정치권보다 몇 걸음이나 앞서갔다. 상식은 진화한다. 개인이나 조직은 자신이 갖고 있는 상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낡은 상식을 고집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지방선거가 입증했다. 한 대학교수는 “기성언론과 정치권은 유권자를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낡은 상식에 안주하는 오만함의 극치였다. 오히려 국민은 투표로 이런 기득권세력을 계도했다.”고 분석했다. 여러 대학교수들을 만나 민심의 흐름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젊은이들의 인증 문화에 대해 들었다. 그들에 따르면 변화무쌍한 대학생들은 사생활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비밀스러운 사생활은 추구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친구들이나 또래들로부터 인증받으려 한다. 개념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투표하고, 인증받으려 한 것이 위력적인 인증샷이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젊은 표심의 변화를 놓쳤다. 21세기는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20세기의 낡은 상식으로 신세대를 이끌려 한다. 여당은 신세대가 보수화한 것으로, 야당은 투표율이 낮을 것으로 봤지만 둘 다 틀렸다. 달동네에서 야당이 강하다는 상식이 바뀌며 표밭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낡은 상식에 새로움을 입히자. 진보도 보수도 낡은 상식에 매달리면 유권자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일본을 보자. 어린이 수당 등 진부한 대중영합주의로 정권을 교체했던 민주당 하토야마 총리는 초기 지지율이 70%대였다. 이후 공약의 허구성에다 우왕좌왕하던 오키나와 후텐마기지 문제, 정치자금 문제로 민심이 이탈해 10%대로 추락했다. 결국 퇴진하며 국민들에게 대등한 미·일관계 실현을 외쳤지만 민심은 냉랭했다. 55년 전 일본 총리였던 그의 할아버지 이치로도 자주외교, 자주헌법, 자주방위를 추구했지만 뜻을 못 이루고 물러났다. 일본에서처럼 잠깐 국민의 눈을 가릴 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침묵하는 다수, 민심의 정치적 집단사고력은 놀랍다. 아무리 조종하려고 해도 안 된다. 계몽하거나 유도할 수 있다는 낡은 상식으로는 국민들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심의 바다를 얕보지 말라. 그것이 6·2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정치권에 보낸 준엄한 경고다.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새만금 삼국지/이춘규 논설위원

    현지 어른들은 징게맹갱(김제·만경)이라고 부른다.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면)의 드넓은 평야 지역을 말한다. 새만금은 김제만경의 앞글자에서 따왔다. 새롭다는 ‘새’자를 붙여 새만금으로 했다. 지난 4월 완공된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생긴 땅은 4억 100만㎡에 이른다. 여의도 면적의 140배, 서울시의 3분의2에 해당하는 넓은 땅과 33㎞인 방조제의 행정구역이 올 연말께 결정된다. 행정구역은 행정안전부가 해당 시·군의 의견을 수렴한 뒤 중앙분쟁조정위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 징게맹갱은 한(恨)의 땅이었다. 동학혁명 때는 수많은 농민군이 김제 땅이 코앞인 부안 백산에서 봉기해 김제만경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진격해갔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다. 워낙 광활해 백산(47m)에 오르면 고창, 부안, 김제, 군산, 익산, 완주, 전주 등 전북 대부분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벽골제가 김제 남단 부량면에 있다.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에는 1905~45년의 만금지역 민중들의 애환이 녹아 있다. 김제 죽산면 들판에 살던 민초들이 일제에 수탈당하면서도 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처절히 투쟁하는 장면들이 장대하게 묘사돼 있다. 일제가 조선인들의 종교적 대상도 됐던 당산나무를 베어버렸다는 내용은 아픈 민족사를 상징한다. 군산, 만주, 북간도, 하와이로 유랑하던 만금지역 주민들. 민족의 수난사다. 당시 일제는 김제만경 앞바다에 해상경계선을 그었다. 넓은 김제만경 들판의 식량 수탈을 위한 군산항만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일제는 새만금지구에서 원래 부안·김제 소속 지역 일부를 군산시로 편입해 버렸다. 주민들의 편의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통일신라시대 이래 새만금 지구는 김제를 관할하던 만경현 소속이었다고 한다. 광복 65년이 흐른 오늘 그 해상경계선이 분쟁의 원인이 됐다. 군산, 김제, 부안의 ‘새만금 삼국지’가 불을 뿜는다. 군산시는 해상경계선을 기준으로 새만금지구 행정구역을 정하자고 한다. 그러면 전체 면적 중 71.1%는 군산시로 넘어간다. 부안군 15.7%, 김제시 13.2%다. 반면 김제의 경우 김제시와 군산시는 만경강, 김제시와 부안군은 동진강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을 결정하길 원한다. 그 경우 군산시 38.8%, 김제시 36.8%, 부안군 24.4%를 점유한다. 새만금특별시 얘기도 나오지만 새만금지구 행정구역이 모두를 만족시키게 결정되고, 일제의 잔재도 조금 털어낼 수는 없을까.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제비 마을/이춘규 논설위원

    양평 들녘에서 5월 초에 만났던 제비들을 찾아갔다. 군무를 하던 근처에 집은 있을 터. 어렵잖게 길가 단층 슬라브 가옥 벽에서 제비 둥지를 찾았다. 어! 놀랍다. 제비집이 하나가 아니고 무려 6개다. 제비들의 마을이다. 쌍쌍이 알을 번갈아 품고, 그 후 새끼를 키웠다. 왜 이럴까. 일본에서 살 때다. 자매회사 1층 난간 4개의 제비집에서 제비부부들이 3년 연속 각각 알을 품고, 새끼를 키웠다. 도쿄만 근처로 습지·초지가 있어 집 재료와 먹이가 풍부했다. 양평 제비 마을도 산과 강, 친환경 농법의 논이 가깝다. 예전 제비들은 한 가옥에 둥지가 한 개였는데…. 한 집에 복수의 제비집을 짓는 곳이 증가일로다. 제비 마을 시대다. 환경오염으로 먹이가 감소해 살 곳이 줄자 먹이가 있고 안전하면 한 가옥에 여러 채를 짓게 된 걸로 추정된다. 새끼들이 옆집 어른 제비의 먹이를 보고 헷갈려하는 제비 마을이 안타깝다. 제비의 집단 거주 전환도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인가. 환경을 복원해주면 제비들이 한가롭게 살 수 있을 텐데.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막걸리 세상/이춘규 논설위원

    힘겹게 중흥기를 맞은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했다. 쌀농사를 시작한 3000년 전, 길게는 1만 5000년 전부터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막걸리는 청주(淸酒)를 뜨지 않고 그대로 걸러 짜낸 한국 고유의 술이다. 고려·조선시대의 기록에 청주와 탁주를 구별했다. ‘조선양조사’(釀造史)에 따르면 막걸리는 중국에서 전래된 민족 고유주다. 알코올 농도는 6∼8도 정도이다. 막걸리 원료는 지역 차가 있다. 현재는 흔해진 쌀이 주원료다. 고구마를 원료로 하는 막걸리도 있다. 강원도나 경북 산간에선 옥수수를 원료로 해 지역색을 살린다. 일제 시대 이전엔 집에서도 막걸리를 담가 먹었다. 쌀이 귀하던 1960년대 후반부터 10년 이상 쌀막걸리가 금지됐었다. 밀가루와 옥수수 막걸리만 허용됐다. 북한 막걸리의 운명은 식량난을 극적으로 반영한다. 예전에는 북한 주민들도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하지만 식량난으로 제조가 거의 되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용 정도로만 만들어진다고 한다. 쌀이 매우 귀한 북한에서는 감자, 옥수수, 도토리를 원료로 한 밀조 소주가 많이 제조되어 시장에서 유통된다고 한다. 그런데 막걸리 폭탄주인 혼돈주(混沌酒)는 위험하다. 정신을 잃게 만들 수 있다 해서 붙여졌다. 막걸리와 증류소주를 혼합한 조선시대 폭탄주다. 1782년 남원 사대부 이갑부의 둘째아들이 아버지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기생을 시켜 형에게 혼돈주를 먹여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춘향이도 이몽룡에게 혼돈주를 권했다고 한다. 일본서는 ‘맛코리’라고 한다. 일본의 도부로쿠는 막걸리와 유사하다. 도부로쿠와 막걸리는 탁주(일본어 니고리자케)라고 불리는 공통점이 있다. 색깔도, 형태도, 맛도 매우 흡사하다. 다만 도부로쿠는 알코올 농도가 14~17도로 독한 것이 특색이다. 신사에서 행사 때 주로 쓰였다. 가정에서는 제조가 금지돼 밀주가 성행했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야 규제가 풀려 제조·판매가 쉬워졌다. 농민들마저 새참으로 맥주를 마셨을 정도로 1980~90년대 막걸리 산업의 위기는 심각했다. 중소기업 막걸리 종사자들이 눈물겨운 재생 노력 끝에 마침내 막걸리 산업이 명예롭게 부활했다.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막걸리 산업에 군침을 흘릴 정도다. 농군도, 등산객도, 도시의 술꾼들도 막걸리를 벗한다. 때마침 서울 도심서 열리는 막걸리·한식 페스티벌과 함께 월드컵축구 단체응원 열기가 더 고조될 것 같다. 막걸리 세상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돌아온 붉은 악마/이춘규 논설위원

    제2차 세계대전 때 ‘붉은 악마’로 불린 이탈리아제 수류탄이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군 주종 수류탄 3종류 모두 붉은 도료가 칠해져 있었다. 이 3종류 수류탄은 적에게 던져도 폭발하지 않는 것이 많았다. 변덕스럽게 폭발해 적은 물론 아군도 두려워하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적과 아군 모두 두렵게 한다는 수류탄이라고 해서 붉은 악마라고 했다고 한다. 2차대전 때 독일군에 맞서 창설된 영국군 제1공정사단의 별칭도 붉은 악마였다.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애칭도 붉은 악마다. 붉은 색 경기복을 입고 운동장을 누비며 상대팀을 유린하는 박지성 등을 떠올린다. 벨기에와 콩고공화국 축구 대표팀의 애칭도 붉은 악마다. 이처럼 붉은 악마(영어로 Red Devil)는 주로 전쟁이나 스포츠 등 진영과 진영이 대결을 할 때 자주 호칭된다. ‘악마처럼 사납게 싸우는 전사들’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클럽도 붉은 악마다. 한국어의 악마는 불교에 뿌리를 둔다. 인간이 열반에 못 이르게 유혹하는 힘을 악령으로 봤다. 유혹자의 우두머리 ‘마라’에서 악마가 유래했다. 악마에 대한 신앙은 문화·사회질서의 붕괴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사회 규범을 준수한다. 붉은 악마는 태극전사들이 세계 축구질서를 뒤흔들어 달라고 염원하는 것일까. 오는 11일 남아공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붉은 악마가 돌아왔다.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는 붉은 악마라는 명칭에 반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붉은 유니폼의 한국이 4강에 오르자 놀란 외신들이 ‘붉은 악령’ 등으로 호칭한 데서 비롯됐다. 1997년 8월 붉은 악마로 이름이 확정되었다. 국가대표팀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에 가입할 수 있다. 경기장에 붉은 색 옷을 입고 오는 사람은 모두 붉은 악마가 된다. 붉은 악마의 서울 지역 응원 장소가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으로 확정됐다. 그리스전과 아르헨티나전, 그리고 나이지리아전 등 예선 세 경기 모두 코엑스 앞에서 응원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붉은 악마의 공식 길거리 응원 장소일 뿐이다. 붉은 악마 각 시·도지회나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은 전국 곳곳에서 신나는 남아공월드컵 거리 응원전을 펼친다. 장소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가까운 데로 가자. 그리고 붉은 악마의 염원으로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목 터지게 외쳐보자.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잡초/이춘규 논설위원

    늦은 봄 고향에 가 가족묘를 살폈다. 잔디에 섞여 웃자란 잡초들이 눈에 거슬렸다. 준비도 안 하고 가 맨손으로 몇 개 뜯어냈다. 보기에 한결 좋았다. 내친 김에 잡초를 모두 뽑고 잘라버렸다. 묘가 산뜻해져 뿌듯했다. 그런데 작업을 한 오른 손목이 따끔거렸다. 무심코 지나쳤다. 다음날 오른 손목 주변에 붉은 반점 50여개가 솟아났다. 접촉성피부염인 풀독이었다. 보기 흉했다. 가려웠다. 쑥을 이용해 며칠간 민간요법 치료를 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5일이 지난 뒤에야 병원을 찾아 주사 맞고 처방약을 먹었다. 근무 중 졸림이 심하지만 겨우 나아간다. 풀·나무·열매는 스스로 못 움직이지만 해충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독을 지닌단다. 종족보전을 위해 성장기 때는 더 독하다. 나무들이 해충을 물리치려 뿜어낸다는 피톤치드는 일부 질환 치유 효과도 있다지만 유기농산물을 포함한 일반 식물의 인체 유해 독 함유 여부는 논란 중이다. 잡초도 정말 자기방어를 위해 독을 내뿜을까. 잡초라고 가볍게 다뤘다가 혼났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쪽박바꿔줘/이춘규 논설위원

    5월 숲에서 온종일 휘~휘휘휘, 검은등뻐꾸기가 울었다. “옛날에 며느리가 밥을 많이 한다며 시어머니가 쪽박을 깨버렸다. 깨진 쪽박으로 밥을 하니 항상 모자라 며느리는 영양실조로 죽는다. 영혼이 새가 되어 ‘쪽박바꿔줘’라며 울었다.”는 슬픈 전설의 새. 별칭 쪽박바꿔줘다. 아침엔 숲 입구에서 야행성인 소쩍새가 울었다. “옛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살았다. 며느리를 미워한 시어머니는 솥을 작게 만들어서 밥을 하게 했다. 솥이 작으니 밥이 모자라 제대로 밥을 못 먹고 피를 토하며 죽어 소쩍새가 됐다.”는 소쩍새의 전설을 생각했다. 슬픈 새들이다. 숲의 끝 무덤가 할미꽃. 고약한 부자 큰손녀 집에 살던 할머니가 가난하지만 착한 작은손녀 집을 찾아가다 고갯마루에 쓰러져 숨진 뒤 되었다는 할미꽃. 조상들은 동·식물에도 인격을 부여하는 소프트파워가 강력했다. 전자산업이 하드웨어는 강한데 소프트웨어가 약해 문제란다. 민담, 전설, 설화로 동·식물을 대접한 선조들의 소프트파워를 되살려보자.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미치광이풀/이춘규 논설위원

    1000m 안팎의 높고 긴 능선 종주 길. 8시간 이상, 13차례 종주하면서 계절별로 수많은 야생화들을 음미하고 촬영해 놨었다. 능선의 야생화들은 다 봤다고 자만했다. 아니었다. 조금 과장하면 숨막히게 아름다운 암갈색 꽃을 봤다. 한복 입은 고운 여인의 자태다. 군락도 네 군데. 내려와 이름을 확인하고는 또 놀랐다. ‘미치광이풀’이라고 했다. 미친풀, 독뿌리풀이라고도 한다. 자태와 달리 으스스한 이름뿐이다. 짐승이 먹으면 미쳐 날뛰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잎에 신경을 흥분시키는 성분이 있다. 뿌리는 독성이 있다. 약용이라고 한다. 소량으로는 진통효과도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독초, 미치광이풀이다. 다 안다는 자만과 고운 이름을 떠올렸던 경박함을 야유한 미치광이풀. 어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귀하게 크라며 돼지 등 험한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름과 모습이 함께 예쁜 꽃도 많지만 전혀 다른 꽃도 있다. 사람·사물을 이름이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낭패 보기 쉽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서울광장]천안함, 언론과 유언비어/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천안함, 언론과 유언비어/이춘규 논설위원

    신군부세력이 집권시나리오를 가동해 가던 1980년 2월 대학생 신분을 벗어나 육군 사병으로 입대했다.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 ‘유신의 국군’을 매일 부르며 훈련소 생활을 했다. 자대 배치를 받을 무렵 유신의 국군 부르기는 사라졌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계속됐다. 북한의 안보 위협론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외출외박이 전면 금지되고 완전무장한 채 출동대기를 했다. 중무장 상태로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계절이 바뀌어 그해 초겨울 삼청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시내에 직접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정국이 수습되어 갔지만 북한의 위협은 수시로 부각됐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훈련에 충실하는 군 본연의 모습에 전념했다. 서부전선 최전방을 책임진 부대의 관측병이라 낮은 등급의 비밀취급 인가도 받았다. 통신병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 일상이라 통신보안을 몸에 익혔다. 군복무 단축 방침이 발표됐지만 병력자원 수급 관계로 오히려 길어져 33개월을 복무했다. 정치적 격변기, 안보위기 상황서 한 짧지 않은 군생활은 국가안보, 조국의 의미를 생각해 볼 기회가 됐다. 지난 3월26일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은 북한에서 만든 고성능 음향추적 중(重)어뢰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결론났다. 국민들은 정부가 단호하게 북한을 응징, 사태의 재발을 막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피격 후 두 달이 지난 현재는 군사적 대응보다는 외교적인 대응이 효과적일 것이다. 국민들은 흥분과 예단을 말고 한반도 안보리스크 등을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언론 보도가 국민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주진 못하고 있지만 유언비어에 휘둘려선 안 된다. 천안함 피격 이후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것은 재발을 막기 위해 긴요하다. 천안함 46용사의 희생은 위기관리체계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웠다. 특히 언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천안함 사태 이후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사석에서 “사회지도층, 그 중에서도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투철한 국가관이나 안보관이 있는지 우려된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으면서도 북한을 보복타격해야 한다는 정치인이나, 1급비밀에 해당하는 군사정보를 여과없이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군생활 33개월은 국가안보에 대해 끝없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미국의 9·11이나 이라크·포클랜드 전쟁 등 테러나 전쟁 때 외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학술적인 비교 분석을 해본 경험도 있다. 군인이 피습당한 천안함 사태는 전쟁상황이었다. 한반도가 휴전체제임을 상기시켰다. 이런 때도 언론의 감시기능은 무겁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국가안보 사안을 언론이 세세하게 공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국익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자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기회에 국가안보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넘어가야 한다. 국가위기 때 보도 수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도 찾아보자. 유언비어(流言蜚語)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는 천안함 정국에 유언비어가 난무하자 엄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악의적 유언비어는 뿌리뽑아야 한다. 하지만 사회학에서는 유언비어를 단속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본다. 유언은 국민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는 정보로 규정한다. 유언비어는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고, 일방적 의사전달이 많은 사회에서 쉽게 생겨난다고 한다. 이 기회에 우리사회에 불신이 가볍지 않다는 점을 겸허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국민신뢰가 없으면 국가는 성립할 수 없다. 불신 해소를 통한 국민 대통합을 위해 모두의 자성과 땀, 인내가 요구되는 시절이다. taein@seoul.co.kr
  • [길섶에서]족제비/이춘규 논설위원

    늦은 퇴근 뒤 동네 밤길 산책에 나섰다. 집을 나와 5분. 여러 나라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밀집해 있는 대사관거리를 지나는데 족제비가 골목에서 큰길로 나온다. 좌우를 살핀 녀석. 거침 없이 2차선 도로를 건넌다. 담벽에 이르자 익숙한 몸짓으로 한 대사관저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족제비는 농촌에서도 귀해졌다. 서울 한복판인데 어디서 왔을까. 반갑다. 32년 전 처음 상경, 변두리에 살 때 가끔 보면 고향생각이 나게 했다. 서울 도심에서는 보지 못 했었는데 집 가까운 데서 만나게 될 줄이야. 가족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용산 미군기지에서 서식하는가. 족제비는 황토색이다. 입 옆에 흰 무늬가 있어 귀엽다. 얕보지 말라. 닭, 쥐, 개구리, 물고기를 잡아먹는 난폭자다. 털은 최고급 황모붓 재료다. 숲, 굴, 인가 주변에 산다. 도심에선 진객(珍客)이다. 지방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족제비들이 안타깝다. 서울시의 보호야생동물이다. 서식환경을 개선해 생명이 약동하게 하자. 귀한 손님이 된 족제비 가족이 무사하길 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헝 의회/이춘규 논설위원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일부 사회주의 국가나 제3세계 신흥국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중진·선진국이 그렇다. 특히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50% 이상 국민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드물 정도로 리더십이 현저하게 약화됐다. 1970~80년대 꾸준하게 국민 70~80%의 지지를 받는 강력한 지도자가 많았던 것과 대비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초 지지율이 80%에 육박했으나 집권 1년을 넘긴 현재 40%대로 추락했다. 지난해 8월 5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낸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정부도 지지율이 70% 안팎에서 20%선까지 급락해 흔들리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집권 초 60%대의 국민지지도를 보였으나 최근 20%대에서 허덕인다. 독일은 상당기간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권이 없었다. 정당들이 연립해야 정부를 꾸릴 수 있는 연립정부가 일상적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40% 지지율로 보수연립 정권을 꾸려간다. 리더십 약체화 원인은 여럿 지적되지만 정설은 없다. 다수의 학자들은 정보의 홍수를 원인으로 꼽는다. 과거 정치지도자들은 장막에 쌓인 채 필요한 경우만 대중매체에 출현, 약점이 노출되지 않았다. 반면 요즘 정치지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에 대부분 노출된다. 민주화도 리더십의 약체화 요인으로 평가된다. 인터넷의 출현은 리더십 약체화 심화 요인이라고 한다. 지도자의 조그만 약점도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근대민주정치의 모델인 영국 의회가 다시 헝(Hung) 의회가 된 건 세계 리더십 위기를 상징한다. 헝 의회는 과반을 이뤄낸 정당이 없는 불안한 의회구도를 말한다. 의회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6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과반을 이룬 정당이 없었다. 제1당이 된 보수당마저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다. 벌써 연내 재선거론이 나올 정도로 영국정치가 불안하다. 지구촌에 일반화된 리더십의 위기는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도 하는데 대책은 없는 것일까. 당분간은 집권 뒤 빠르게 정권이 약체화되는 현상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빈발하는 세계경제위기는 정치지도자들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그런데도 집권에 대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으니 역설적이다. 스마트폰 등 첨단 매체들이 리더십 위기의 촉매만은 아닐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의 복구는 어려운 과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의 어버이날/이춘규 논설위원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산업화·핵가족화로 약해진 경로효친 사상을 그리게 된다.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을 다진다. 우리나라는 1956년부터 어머니날을 지정, 기념해 오다가 73년부터 5월8일을 어버이날로 변경해 기념일로 했다. 사순절(四旬節)의 첫날로부터 넷째 일요일까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 등 유럽의 풍습과 미국의 어머니날을 참조로 했다. 각국의 기원은 다양하고 날짜도 다르다. 미국, 일본은 5월 둘째 일요일이 어머니날이다. 스페인은 5월 첫째 일요일, 스웨덴은 5월 마지막 일요일이다. 알바니아는 5월8일이 어머니날이다. 노르웨이는 2월 둘째 일요일, 그루지야는 3월3일이다. 러시아는 11월 마지막 일요일, 인도네시아는 12월22일이 어머니날이다. 일본은 1937년부터 5월8일이 어머니날이었다가 미군정기인 1949년부터 미국과 같은 5월 둘째 일요일로 했다. 일본은 5월5일 어린이날도 관련법에 ‘어머니에게 감사한다.’고 규정, 어머니날과 의미가 겹치게 했다. 아버지날은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와 달리 따로 있다. 미국, 중국, 일본, 영국, 캐나다, 프랑스, 터키, 남아공, 우크라이나, 칠레 등 16개국은 6월 셋째 일요일이 아버지날이다. 세르비아는 1월6일, 러시아는 2월23일,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은 11월 둘째 일요일, 불가리아는 12월26일이다. 어머니날에는 카네이션을, 아버지날에는 백장미를 드린다. 달아드리는 꽃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 카네이션은 로마시대부터 지중해 연안에서 재배됐다. 미국 애나 자비스가 1908년 5월10일 버지니아의 어머니 추도식에 흰 카네이션 470송이를 보내며 어머니날 꽃이 됐다. 미·일의 어머니날 기원이다. 현실적으로 초등학생까진 색종이 카네이션이 주류다. 중학생이 되면 색종이 카네이션에 멋을 부린다. 생화 카네이션은 돈을 벌어 달아드리면 빛난다. 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일 터. 따로 사시는 노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늘려 보자. 우리나라는 올해 일조량 부족과 저온현상이 심각했다. 카네이션을 어버이날에 맞추어 피우기 위한 비용증가로 카네이션 한 송이에 4000~5000원, 한 바구니 5만원까지도 한다. 중국산이 반 정도 가격에 들어와 화훼농들은 더 죽을 맛이다. 비싼 생화 카네이션 사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화훼 농가를 위해 다른 돈을 아껴 생화 카네이션 달아드리기를 해보자. 나이든 고아들은 달아드릴 부모도 안 계셔 한결 쓸쓸한 어버이날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제비/이춘규 논설위원

    5월 초 경기도 양평 들녘에선 봄기운이 넘친다. 농민들의 농사 손길은 힘차다. 논두렁, 밭두렁에는 나물 캐는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정성스럽다. 주말농장에서 농사체험하는 도시민들은 경건하다. 누렁이들의 움직임은 경쾌해졌다. 갑자기 기온이 오르며 온세상이 푸르름을 더해간다. 제비들의 군무는 단연 압도적이다. 눈물나게 반갑다. 20여마리 제비들이 10분 이상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집단으로 춤을 춘다. 귀한 봄손님들이다. 30년 넘은 서울생활에서 지지배배 노래하는 제비무리를 만난 건 처음이다. 자연환경 복원 노력이 결실을 거두었나. 상상조차 행복하다. 어릴 적 고향집에는 제비들이 매년 집을 켜켜이 쌓아올려 10층 이상, 높이가 30㎝쯤 됐다. 받침대를 해주고, 알을 품을 때는 숨도 참아가며 정성을 쏟았다. 집은 헐렸고, 새로운 집에는 이제 제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생활 중 만난 제비무리가 고맙기까지 하다. 선한 사람들에게 행운을 듬뿍 가져다 준다는 제비. 힘겨운 영혼들에게 제비의 행운을 빌어 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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