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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다노 관방장관 ‘차기 총리감’ 급부상하나

    일본 도쿄 북부 도치기현에서 태어난 그는 우쓰노미야시립 요토중학교 때는 학생회장을 맡았다. 현립 우쓰노미야고교에 다닐 때는 교내 웅변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했다. 웅변대회 때는 환경 문제나 일본교원노동조합 비판 등을 주제로 삼았다. 노래도 잘했다. 중·고교 시절 합창부에서 활동하며 중학교 2, 3학년 때는 2년 연속 NHK 전국 학교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11 대지진 이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며 연일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에다노 유키오(47) 관방장관 얘기다. 간 나오토 총리가 이번 지진 이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비판을 받는 것과 달리 그는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손하고, 짧지만 열정적인 어조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일본 국민들에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유력한 차기 총리감’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반오자와의 선봉격인 그를 싫어하는 기류도 엄연히 있으나 그가 지진 극복 과정에서 국민적 인기를 얻어가자 간 총리의 리더십에 위기감을 느낀 진영에서 그를 대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에다노가 젊음의 힘을 보여줬다. 최고의 공경어를 쓰며, 단 한번의 말실수도 안 하면서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믿음을 주고 있다.”고 절찬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세계적 대기업의 한 중견사원은 “에다노는 안 된다. 내용이 없다. 말은 잘하지만 지진 이후, 특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상황 파악·통제를 제대로 못한다. 국정장악 능력이 떨어지는 속빈 강정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에다노 장관은 과연 차기 총리감인가, 아니면 속빈 강정일까.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그는 도호쿠대를 나와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 변호사로 지내다 1993년 중의원선거에 첫 당선된 뒤 6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말 행정쇄신상이던 시절 한 강연에서 “일본은 식민지를 넓혀가는 쪽이 됐고 중국이나 조선반도가 식민지로서 침략을 당하는 쪽이 된 것은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말해 물의를 빚자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발언이었다며 즉시 사과한 적이 있다. 도쿄 이춘규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이춘규 논설위원 도쿄 리포트] 자연에 맞섰던 日의 상징 ‘산리쿠의 굴’ 최후 맞다

    “미나미산리쿠 앞바다 최후의 굴입니다. 이번 3·11 대지진 직전에 채취한 것입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산리쿠 해안에서는 더 이상 굴 양식을 할 수 없을 겁니다. 바다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양식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너무 슬퍼요.” 지난 16일 늦은 밤 일본 국회의원들도 자주 찾는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오코노미야키(빈대떡과 유사) 음식점 주인이 우리나라 굴보다 배나 큰 싱싱한 굴을 구워 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식당도 지진 때 컵과 식기가 여럿 파손됐다고 했다. 이 굴은 지진의 파장을 상징한다. 주인의 말대로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는 쓰나미로 궤멸하다시피 했다. 인구 1만 7000명이 사는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차가운 눈이 무정하게 내린 17일 현재 인구의 반 정도인 8000명 이상이 행방불명된 상태다. 그 앞바다가 일본에서도 유명한 굴 산지다. 일본에서는 한겨울 서쪽 히로시마와 동북쪽 센다이에서 양식된 굴이 계절의 별미로 꼽힌다. 하지만 센다이 바로 북쪽 미나미산리쿠 앞바다에서 양식된 굴이 최고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설명이다. 그 별미가 이번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산리쿠 굴’은 일본인들이 자연에 도전해 온 상징이다. 일본인들은 유사 이래 끝없이 자연재해를 극복하려 했다. 어류 양식업은 세계 최고 수준.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태풍 등이 올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조제와 각종 시설물을 축조했다. 와세다대의 한 교수는 익명을 전제로 “일본인들의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스트레스를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시설을 축조하고 과학을 발달시켰다.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봐 왔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강한 기술력의 기본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처절하게 자연에 도전했다. 서기 800년대 이번 3·11 대지진과 유사한 규모의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도호쿠지방 육지까지 엄습했었다는 일부 내용이 구전되고 있다. 그때부터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방조제를 축조해 왔다고 설명한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도 쓰나미가 오는 것에 대해서도 구전을 남겼다. 당시는 몰랐던 칠레 연안 강진에 의한 쓰나미였다. 에도시대 이후 기록하기 시작했다. 방조제를 쌓고, 쓰나미 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운하를 팠다. 높은 쓰나미 피난 구조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은 시설물들을 무심하게 삼켜 버렸다. 이로 인해 자연에 대한 일본인들의 도전이 약화되고 자연에 일부 순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간의 도전이 재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 대책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재해에 대한 일본인들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면 복구계획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17일 피해의 전모가 밝혀진 뒤에야 정확한 복구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지진 이전과 같은 형태로 복구시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높이 10m에 길이 2㎞가 넘는 거대한 방조제를 축조하는 것이 자연재해를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지만 근본적 대책은 못 된다는 것. 따라서 해변에 밀집돼 있던 주택·사무실을 내륙으로 분산시켜 재건할 것으로 예상했다. 파괴된 철로는 상당수 재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대지진은 지금까지 어떤 일본인도 상상하지 못했던 자연의 대역습이었다. 자연에 응전하는 인간의 대비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이번 쓰나미가 입증했다. 자연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일본인들은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도 일본 정부나 기업들이 새로운 차원에서 복구 문제, 도시계획 등을 강구할 것으로 봤다. “일본인들은 자연에서 배운 것은 반드시 현실에 반영한다. 정면으로 맞서는 방침을 바꿀 것이다. 역사적 전환점이다.”라고 했다. 일본인들이 정말 자연에 순응해 갈까. taein@seoul.co.kr
  • [이춘규 논설위원 도쿄 리포트] 너도나도 사재기… 자제하던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이 추락이냐, 반전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음을 이곳 도쿄에 와서 지켜보고 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는 열도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했다. 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이 잇달아 누출, 수도 도쿄까지 위협하며 마스크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방사능 공포까지 덮쳐 왔다. 억제된 불안과 공포의 눈빛들을 보게 된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 등은 대지진·방사능 유출을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국난이라고 탄식하고 있지만 대재앙을 헤쳐 나갈 지도력을 의심받고 있다. 거대 지진에 방사능 유출 공포까지 겹치자 정치권 전체가 통제력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아사히·요미우리 신문 등 현지 언론들은 탄식한다. 문제는 일본이 변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추락할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는 데 있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근대화를 추진, 늦었지만 당당하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메이지유신 주역들은 한반도 등 식민지를 개척했고, 태평양전쟁을 도발해 결국 패전국이 된다. 그러나 일본 사회 주류는 변하지 않았다. 승전국 미국이 공산권 견제 전략에 따라 이들에게 의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60년대 경제 부흥을 이끌었고, 1980년대에는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의 경제를 일궈 냈지만 흥청망청은 오래가지 못했다.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1990년 이후 일본 경제의 거품은 꺼졌다.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다.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자민당 총재들이 단명 총리로 마감했다. 마침내 2009년 9월에는 54년 만에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민주당이 집권했다. 하지만 하토야마도 11개월로 단명하고, 뒤이은 간 정권도 취임 9개월인데 지지율 10%대에서 헤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재앙이 몰아치며 정치권이 허둥대자 일본 국민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믿음을 접었다. 대참사에 갈팡질팡하자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나’를 찾기 시작했음을 실감한다. 나부터 살기 위해 컵라면, 생수, 응급약품을 사들이며 상품이 순식간에 동나고 있다. 일본 역사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기이한 현상이다. 도쿄 도심 여기저기 편의점 생필품 진열대는 놀랍게 텅 비어 있어 을씨년스럽다.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은근하고 조심스럽던 사재기를 눈치 볼 것 없이 하고 있다. 매점매석도 성행한다. 불신받는 정부가 자제를 부탁해도 안 통한다. 내재된 야만성이 분출하는 기세다. 도쿄 주변과 도호쿠 지방에서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강력한 여진은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일본이 다시 혼란에 빠져 새로운 주도 세력을 만들어 낼지, 아니면 지진과 방사능 공포를 잘 수습해 점진적인 개혁을 이뤄 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일 관계도 변곡점을 맞고 있음을 확인한다. 따라서 단순하게 현재 진행 중인 지진·방사능 유출 사태만을 보면 안 된다. 일본 정치권, 사회 전체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주시해야 한다. 도쿄에서 지인들을 만나며, 출퇴근길 시민들의 표정에서, 언론을 통해 변화의 에너지가 임계점임을 감지한다. 수년 전과는 완연하게 달라진 일본, 일본 사람이 왠지 낯설다. 전환시대 일본이 140년 만에 격동에 휩싸이면 한·일 관계도 영향받는다. 대재앙 이후 일본의 변화를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지켜봐야 한다. 일본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외교 전략을 기대한다. 수면 위보다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근본적인, 거대한 변화의 에너지를 추적하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슈퍼 문(Super Moon)/이춘규 논설위원

    큰 재난을 당하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초기에는 어느 정도 냉정을 유지한다. 남을 우선 배려하는 등 훈훈한 미담도 많이 들려온다. 하지만 재난이 길어지면 상황은 급변한다. 인간의 이기심이 이성을 마침내 압도하기 시작한다. 지난 11일 일본에서 리히터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사재기·매점매석·새치기도 없었고, 남을 먼저 배려해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지진 발생 나흘을 넘기며 상황이 변하고 있다. 산케이신문 인터넷판 기사는 재난 현장의 스산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문은 14일 피해가 큰 이와테현의 한 대피소 모습을 전하며 “식량부족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50대 여성은 ‘먹을 것을 손에 넣으면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조리하는 등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다’고 말한다. 식량부족을 이유로 뒤늦게 들어온 피난민을 내쫓자고 선동하는 피난민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사재기와 매점매석 역시 확산되고 있다. 도쿄에서는 공포에 질린 주민들이 여진 등에 대비해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상인들이 물건을 내놓지 않아 텅 빈 상품진열대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주유소에서는 휘발유를 가득 채워 달라고 보채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수도권 지역에서 사재기·매점매석이 확산되자 정부가 나섰다고 한다. 소비자청은 과도한 사재기·매점매석에 대한 조사와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공포 확산 악순환을 막기 위한 비상 조치다. 지진현장을 무대로 설치는 절도나 사기범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쿄 하치오지시에 사는 70세 노인에게 아들이라고 속인 남자가 ‘급한 일이 있으니 계좌로 돈을 넣어달라.’는 후리코메(계좌이체) 사기를 시도하려다 탄로나자 전화를 끊었다. 경찰은 노인의 신고를 받고 “앞으로 비슷한 수법의 범죄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상하면 즉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최근 노인 상대 후리코메 사기가 횡행하고 있다. 유언비어도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슈퍼 문’(Super Moon) 괴담. 오는 19일 달과 지구의 거리가 19년 만에 가장 가까워져 보름달 중에서도 가장 큰 슈퍼 문이 뜨는데 보다 더 강력한 대지진을 불러온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지진과 슈퍼 문과의 상관관계를 강력히 부인하지만 민심은 뒤숭숭하기만 하다. 미증유의 재난을 당하고도 미담을 쏟아내던 일본인들. 일본인들의 냉정을 끝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아니면 사재기·매점매석 등 혼란은 일시적인 것으로 끝날까.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국민공부(國民共富)/이춘규 논설위원

    중국의 성현 맹자(BC 372~BC 289)는 의인(義人)에 의해 다스려지는 왕도국가를 이상적인 국가로 보았다. 그는 군주가 불의하면 민심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민심이야말로 하늘이 맡긴 사명이자 소임, 즉 천명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주·국가는 민심을 따르라 했다. 철저한 민본주의 사상이다. 그래서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社稷)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대단치 않다.”고 했다. 이런 맹자의 이상국가는 중국의 이후 역사에서 한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BC 427~BC 347)은 이상국가를 정의로운 국가로 봤다. 각자가 타고난 덕에 따라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 한 국가 속에서 지혜와 용기, 절제의 덕이 조화를 이룰 때 그 국가나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했다. 그는 공정한 사회를 꿈꾸었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상 국가란 철학자들이 국가를 통치하지 않는 한, 혹은 철학을 공부해 국가를 다스리지 않는 한 실현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그 한계를 인정했다. 고대 동·서양에서 맹자와 플라톤이 꿈꾸었던 이상국가.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인간세상의 혼란상을 지켜보면서 강하고 정의로운 인간과 권력을 꿈꿨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어디까지나 꿈, 유토피아일 뿐이었다. 이상적인 목표였을 뿐이다. 권력은 옳기 어렵고, 옳은 사람은 권력에 오르기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주었다. 맹자와 플라톤 이후 2000년 이상 흐른 지금도 실현하지 못한 이상국가다. 중국 지도부가 이상국가 실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최대 정치행사인 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14일 폐막된다. 12일 동안 계속된 이번 양회(兩會)에서는 국정의 새로운 정책 목표를 국민공부(國民共富)로 정했다. “나라와 국민이 함께 부유한 시대를 열자.”는 뜻이다. 달성되면 이상국가에 가까운 나라가 된다. 나라가 강해졌으니 국민들도 부유해지자는 것이다. 소득분배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만 다가갈 수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했던 선부론(先富論)이 낳은 빈부격차, 도농격차 등의 폐해를 인정했다. 이를 극복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을 걷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논의했다. 중국이 개혁·개방 뒤 나라는 부강해졌지만 국민은 가난했다는 반성이다. 실제로 많은 중국인들은 여전히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으로 인식하고 있다. 맹자와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국민공부 정책으로 중국에서 실현될까. 그 실험이 주목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강남 좌파/이춘규 논설위원

    미국에서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화려한 생활을 하며 약자를 위하는 척한다는 비아냥을 듣는 민주당 정치인 등을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s)이라고 부른다. 1969년 뉴욕시장 선거 때 한 민주당 공천희망자가 경쟁자와 그를 지지하는 맨해튼 부자들을 비난하며 처음 사용했다. 호숫가에서 백포도주를 홀짝거리며 삶을 즐긴다고 해 ‘레이크프런트 리버럴’(Lakefront Liberal)이라고도 칭한다. 부자 좌파라고 조롱받기도 한다. 영국 런던 북부의 부촌 햄스테드는 학력수준이 높으면서 진보적인 지식인,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 이 지역 부자들이 진보적인 노동당에 표를 많이 주자 보수주의자들은 ‘햄스테드 리버럴’(Hampstead Liberal)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영국에서는 “우리가 훈훈한 응접실에서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사회주의에 관해 지껄일 때, 야외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가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유래한 ‘샴페인 사회주의자’도 사용된다. 프랑스에서는 고급요리 철갑상어알을 먹으며 사회주의를 논한다는 의미로 부자 좌파들을 ‘고슈 카비아’(캐비어 좌파)라고 부른다. 이 밖에 서구에서는 구치 사회주의자, 살롱 좌파 등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을 비아냥거리는 표현이 많다. 진보적인 부자들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언행을 꼬집는 부정적 의미를 담는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가 대립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따금 양식 있고 책임 있는 부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족들이 모여드는 청담동 좌파가 수년 전 유행했다. 집값이 폭등한 강남에 살며 부동산 투기 등 나쁜 짓을 일삼으면서 좌파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신조어였다. 우파가 만든 단어다. 반면 청담동 좌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좌파 부자들도 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부자들이 자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보수주의자들은 고상한 인상을 주는 ‘진보’라는 용어가 붙는 데 거부감을 나타낸다. 최근 유럽식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강남 좌파가 조명받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선두다. 조 교수는 저서 진보집권플랜을 들고 지방에서 북 콘서트를 열며 강남 좌파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비판·옹호의 논란도 뜨거워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 좌파가 분화하는 신호탄이 될까. 부정적인 청담동 좌파와 구분되는 강남 좌파. 이들이 이념 갈등과 충돌을 막아줄 사상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줄까.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브리지 잡/이춘규 논설위원

    “베이비부머들에게 디지털 농촌은 새로운 꿈이자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농촌에서 부모들과 희망을 일궈냈던 베이비부머들에게 디지털 농촌을 목표로 귀환운동을 펼친다면 어떨까.” 자신이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한 이재선(55) 자유선진당 의원이 명사와 나누는 농업이야기 ‘여기 길이 있었네’라는 공동저서에서 기술한 내용의 일부다. 그는 다수의 베이비붐 세대들을 농촌으로 귀환시켜 농촌의 부활을 도모해 보자고 제언했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의 퇴직이 본격화하면서 이들의 인생 2막 대책이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웃 일본도 비정규직 비율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 기업들의 정년이 60세에서 65세로 연장되거나 퇴직 후 재고용으로 혜택을 받는 직장인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일본마저도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무기력해지며 퇴직자들이 팍팍해졌다. 초고령화사회인 미국·유럽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퇴직자들의 인생 제2막 대책 일환으로 20여년 전부터 브리지 잡(Bridge Job)이 부상했다. 새로운 조류다. 브리지 잡이란 직장에서 물러난 뒤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10년 이내에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으로 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우리말로 징검다리 직업이라고 하는 새로운 고용형태다. 미국 은퇴자의 3분의2 정도가 브리지 잡을 활용한다. 이들은 회사에 충성도가 높고 노하우를 다음세대에 전수할 수 있어 기업이 선호한다. 미국도 한국처럼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이 한꺼번에 이뤄지며 일시적 노동력 부족에 따른 경제활동 공백이 문제다. 이를 브리지 잡으로 막고 있다. 퇴직자들은 활력 넘치는 인생 2막을 영위하고, 경제계는 노동력의 일시적 부족 현상을 메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미국퇴직자협회 등은 국가고용파트너십 등을 활용해 많은 퇴직자들의 브리지 잡을 알선한다. 아울러 ‘완전히 은퇴하지 않은 상태’라는 새로운 이력 사항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도 브리지 잡 시장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할 때다.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720만명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퇴직 이후 생활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사회안전망이 상대적으로 약한 우리나라에서 퇴직 뒤를 혼자서 준비하면 벅차다. 정부와 기업이 퇴직자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10년을 더 일할 수 있는 브리지 잡을 늘리면 개인과 국가의 10년이 밝아질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커피/이춘규 논설위원

    “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18~19세기 프랑스 성직자이자 정치가, 외교관이었던 탈레랑의 커피 예찬이다. 탈레랑의 도움을 받았던 영웅 나폴레옹은 “내게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은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이다. 커피는 내게 온기를 주고, 특이한 힘과 쾌락과 그리고 쾌락이 동반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미국 링컨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는 커피예찬론자. 커피는 종류가 무수하다.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와 인도, 예멘, 중국 등지의 1000만㏊ 농장에서 150억 그루의 커피나무가 재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에 포함된 카페인은 흥분효과가 있다. 사향고양이가 커피원두를 먹은 뒤 생산되는 사향커피는 최고급. 사향고양이가 자연산인지 사육된 것인지, 먹은 열매가 어떤 것인지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국내 유명호텔에서 한잔에 3만원이 넘는다. 인간은 유사 이전부터 야생 커피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비카’는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 옛날부터 식용으로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현재와 같은 커피는 13세기 아랍세계에서 등장했다. 처음 일부의 성직자만이 마셨다. 15세기에 들어서야 일반주민의 음용이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유럽에는 16세기, 북미에는 1668년에야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1830년대 프랑스 신부들이 전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이후 명동과 종로 등지에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커피집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커피전문점이 포화상태라는 말이 수년이나 됐지만 현재도 커피전문점 출점 경쟁은 치열하다. 국내 최초로 500호점 시대를 연 카페베네의 김선권 대표는 출점 경쟁이 뜨겁던 지난해 2월 사석에서 “저는 강남대로를 걸을 땐 가끔 눈을 감고 싶습니다. 많은 커피전문점들을 바라보면 겁이 나서 말이죠.”라고 말했다. 실제 강남대로변은 무수한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의 기세로 늘었다. 커피 열풍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커피는 11만 7000t, 4억 1598만 달러어치로 사상 최대 규모다. 2009년 수입 금액에 비해 33.8% 늘었다. 커피 한잔에 커피가 약 10g 들어간다고 볼 때 지난해 성인 1명이 커피 312잔을 마신 셈. 고급커피 수요가 크게 늘었다. 특히 외국계 커피전문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국산 원두 10g(1잔 분량)의 세전 수입 원가는 123원으로 나타나 3000~4000원인 시중가의 적정선 논란이 뜨겁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낭인(浪人) /이춘규 논설위원

    낭인(浪人)은 일정한 직업이 없이 이리저리 헤매는 떠돌이다. 경제·정치적 위기를 겪은 뒤 낭인이 많이 생겨난다. 중세 이전 일본에서 낭인은 호적에 등록된 지역을 떠나 타지역을 유랑하는 사람을 지칭했다. 당시에는 민초들이 낭인이 된 뒤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에도바쿠후 중기 이후는 주종관계인 영주를 떠난 무사·평민을 낭인이라고 했다. 여행의 자유가 제한됐다. 19세기 악명을 떨친 신센구미는 평민 출신의 낭인들이다. 요즘 일본에서 낭인은 재수생을 지칭한다. 재수생이 보호막을 떠난 옛 낭인 신세와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한 낭인이 열도를 뒤흔들었다. 간사이 명문 교토대를 지망한 야마가타현 출신 한 낭인(19)이 지난달 교토대 본고사에서 모친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영어·수학 시험문제를 인터넷에 유출, 올라온 답으로 작성했다. 도시샤, 릿쿄, 와세다대 문제도 인터넷에 유출시켰다. 3일 체포돼 입시부정 수법 등에 대해 조사받고 있다. 가면(假面)낭인. 대학생 가면을 쓴 채 실질적으로 낭인생활을 하는 재수생을 지칭한다. 일본도 명문대 입시 경쟁이 심해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에 합격하면 재수하는 경우가 많다. 낭인 양산을 막기 위한 장치도 있다. 합격한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순수한 낭인이 되면 다음해는 상당수 대학에 입학할 수 없는 등 불이익이 많다. 그래서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며 낭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과 재수생의 중간신분, 반수생이다. 명문고교 입시경쟁도 심해 고등학교에도 가면낭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시낭인이 문제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시름하는 낭인들이 많다. 사시 1차시험이 치러진 지난달 19일엔 29세 사시낭인이 자살하기도 했다. 고시낭인들은 사법시험이나 행정·외무·입법고시 등에 수년씩 매달린다. 고시낭인을 줄이려 정부가 노력하지만 효과는 별로다. 과거나 지금이나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낭인이란 명칭이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통한다. 하지만 ‘낭인정신’이 긍정적으로 조명되기도 한다. 낭인은 스스로 활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결코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수많은 낭인들이 조직과 사회를 변혁시키는 동력을 발휘한다. 조직을 떠나 실직하면 마음가짐이나 각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리면 잠재된 에너지가 발산되는 이치다. 일본 근대화의 촉발점인 메이지유신도 사카모토 료마라는 낭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낭인정신으로 무장한 낭인·재수생들이여! 기죽지 말라.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젖동냥/이춘규 논설위원

    “송나라 황주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봉사가 곽씨 부인과 살았다. 부부는 소생이 없어 지성으로 불공을 드린 끝에 딸 심청을 낳았다. 곽씨 부인은 산후 조리를 잘못하여 청을 낳은 지 7일 만에 죽고 만다. 심학규는 젖동냥에 나선다. ‘여보시오. 이 자식 젖 좀 먹여주오. 어미 없는 어린 것이 불쌍하지 않소. 댁의 귀한 아기에게 먹이고 남은 젖 좀 먹여주오’ 하면 빨래를 하다가도 먹여준다. 심청은 잔병 없이 성장하여 효행이 근동까지도 자자했다….” 한국의 대표 고전소설 심청전의 일부다. 고려~조선시대가 시대배경으로 추정된다. 그 시절 엄마 없는 젖먹이 아이는 젖동냥이 아니면 키울 수 없었다. 현대처럼 싸고 대중화된 분유·우유도 없고, 모유를 대체해서 먹일 가축 젖도 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60년대 전후 농촌에서는 산후 후유증으로 엄마를 잃은 아이를 젖동냥으로 키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 농사일로 산모가 바쁘거나, 산모가 젖이 적어도 젖동냥은 스스럼없이 이루어졌다. 근래 들어서는 분유 등의 구입이 쉬워져 젖동냥을 하지 않고도 엄마 없는 아이를 키울 수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분유회사가 주최하는 우량아 선발대회가 열렸다. 분유가 권장되고, 모유는 한동안 외면받기까지 했다. 상당수 여성들은 미용을 이유로 분유로 아이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모유가 영양학적, 심리학적으로 좋다면서 권장된다. 그러나 현실은 모유 수유가 어렵다. 직장생활 하느라 분유로 대신하는 여성이 많다. 모유 먹이기가 세계적인 추세가 됐다. 모유 아이스크림까지 등장했다. 영국 런던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지난달 25일 모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베이비가가’를 판매해 논란을 일으켰다. 회사 측은 건강한 산모 15명의 모유이고, 저온멸균처리해 건강에도 좋다며 홍보전을 폈다. 하지만 간염을 포함한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전 문제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해당 시의회의 결정으로 사흘 만에 판매가 잠정 중단됐다. 최근 수년간 국내에서는 젖동냥이 화제다. 산모들의 각종 인터넷 카페에는 ‘모유 구함’ ‘모유 판매(나누기)’ 등의 글이 오른다. 모유를 구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이다. 직장에서 모유를 짤 여건이 안 돼 수유를 중단했거나, 제때 모유를 먹이지 못해 모유량이 줄어서다. 모유를 구해도 먹이기는 쉽지 않다. 아이 양육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젖동냥하는 산모가 없도록 양육환경 정비가 시급하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용병(傭兵)/이춘규 논설위원

    용병(傭兵)은 품을 팔아 보수를 받는 군인. 영어의 mercenary는 ‘돈에만 움직이는’ ‘보수를 목적으로 하는’ 등의 뜻도 지녔다. 고대국가부터 존재했다. 보수가 목적이니 충성심은 부족하다. 월급을 안 주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한 용병이 인터뷰를 통해서 “장난으로 지나가는 차에 총질하는 일이 잦았다.”고 증언해 논란이 일었듯이 “피에 굶주린 용병”으로 묘사된다. 고대 그리스는 스키타이와 크레타섬 출신 용병들을 고용했다. 페르시아는 그리스의 폴리스나 그 식민 도시 출신의 중무장 보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상업국가 카르타고는 대다수의 병력을 이베리아반도 원주민 켈트족 용병에 의존했다. 상비군 위주의 로마군도 용병을 고용했다. 하지만 제정시대 이후 평화가 계속되면서 상비군 대신 용병이 늘자 급격하게 타락하게 돼 로마 멸망의 원인이 된다. 중세유럽은 용병의 최전성기. 전쟁은 주로 용병 몫이었다. 용병끼리 짜고 분쟁을 일으켜 싸우는 척하기도 했다. 쌍방은 피해가 없었다. 보수만 타먹는 용병들이 많았다. 15세기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두 용병단이 서로 칼을 두어 번 휘두르고 평원에서 쉰 뒤 보수로 함께 술을 먹었다.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용병”이라며 징병제를 주장했을 정도였다. 동양에서는 송나라 때 용병부대가 있었다. 프랑스혁명 때 루이16세를 지키던 스위스 용병 200여명이 숨졌다. 스위스 용병은 목숨을 걸고 계약을 지켜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백년간 바티칸시티 경호·경비를 맡고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용병은 약화되고 국민군으로 대체된다. 현재는 국제법상으로 용병은 불법이다. 1949년 제네바 조약에 의해 교전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잡혀도 전쟁포로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적인 용병조직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블랙워터 같은 민간보안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 형태로 분쟁 지역의 전쟁에 뛰어든다. 용맹을 자랑하는 영국의 네팔 출신 구르카 용병이나 프랑스 외인부대 등은 용병에 가깝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정식 군인이다. 용병은 빈국의 국민이나 특수부대, 경찰 출신들이 많다. 돈을 벌기 위해 목숨 걸고 전장을 누빈다. 용병들은 차가운 시선을 높은 보수로 이겨낸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 정부나 군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버려진다. 요즘 악화일로의 리비아 사태에서 중부아프리카 출신 용병들이 도마에 올랐다. 시위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지만, 설마 살상에 무감각한 건 아니길….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서울광장] 한국정치 변화 주저할 시간 없다/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국정치 변화 주저할 시간 없다/이춘규 논설위원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얼마 전 이른 아침. 서울 시내 중심부 한 특급호텔 회의실에서 일본 집권 민주당 비서협회(한국의 보좌관협회) 소속 비서 40여명을 상대로 조찬 강연을 했다. 두달여간의 사전 연락을 통해 요청받은 강연 주제는 ‘신문사 논설위원이 본 한반도 정세’. 일본 국회 휴회기 비서회의 한국 시찰 행사의 일환으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에 응했다. 그들은 한국 정치와 남북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다. 일본에선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이 한반도의 정치·안보 정세에 특히 민감한 편이다. 그런데 당시 한국 정치권은 예산안 강행 처리를 둘러싼 사과 문제 등 때문에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남북관계도 연평도 사태 후유증 등으로 뒤틀려 있었다. 안보 리스크가 실제 이상 크게 부각된 시점이었다. 호텔 최상층부의 회의실은 꽉 찼다. 그들은 전날 주요 정당 고위 당직자들을 면담하는 등 일정이 빡빡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시작된 조찬 강연에 모두 참석했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한국의 정세를 알고 싶은 듯했다. 그들은 궁금했던 한국의 현재 정치 상황, 내년 총선과 대선 전망,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한반도의 2012년 문제 등에 대한 강연 내용을 메모하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강의 뒤 질문도 이어졌다. “연평도 사태 이후 일본 TV에 보도된 영상을 보니 피해가 엄청나 보이던데 사망자가 4명이라는 보도가 정말인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사망자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은폐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이었다. 무상급식 논쟁, 자유무역협정(FTA), 연평도 사태로 인한 일반 한국 국민의 실제 위기감 등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물었다. 한국인보다 한반도 정세에 더 예민함을 실감케 했다. 양국 관계와 관련해 민감한 내용은 피하면서 강연과 질의응답을 끝냈다. 답례 말을 건넨 비서회 회장은 한국과 일본 정치의 발전을 기원했다. 비서회장은 일본 민주당 정권도 중대국면에 서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1980년대 말 이후 대부분 단명 내각이 계속되며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정치불신은 임계점에 달해 있다. 간 나오토 정권의 리더십 약화로 국정은 회복불능의 마비 상태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늦은 밤 비서회 간부로부터 국제전화를 받았다. 그는 “강연은 한반도 정세 이해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의 의례적인 인사치레일 것이다. 그러면서 강연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일본 국회에 공식적으로 보고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를 접한 일본 국회의원들의 한국 인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 정치와는 차별화된, 생산적인 선진 한국 정치를 소개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5년 전엔 마쓰시타전기산업(현 파나소닉) 도쿄 본사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한국 특파원이 본 일본’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다. 일본 게이단렌 홍보지에 일본과 한국 경제를 비교했던 인터뷰 기사가 강연의 계기였다. 일본에서는 한류가 위력을 떨치던 때라 한국 특파원의 얘기를 직접 듣고 싶다고 했다. 일본인들의 유난스러운 한국 배우기 열풍을 체감했다. 한국 경제, 일본에 대한 인상을 소개하면서 기조 강연을 끝낸 뒤 직원들은 욱일승천 기세이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이 어떻게 해서 강해졌는지 물었다. 일본 기업의 원천기술이 강하지만 일본을 따라잡은 한국 기업을 극복하기 위한 단서를 얻어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더 강해지려는 집요함이다. 그땐 경제 강연이라 부담이 덜했다. 언제쯤 발전된 한국 정치를 부담 없이 알려줄 수 있을까. 한국 정치는 경제보단 국제 경쟁력이 약하다는 지적이지만 일본인들은 한국 정치가 일본보다 안정됐다고 말한다. 정치체제가 내각제와 대통령제로 다른 점을 고려하면 어떨까. 한국 정치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겨우 열린 2월 국회도 뒤뚱거린다. 그들만의 리그로 국민의 기대와 거리가 멀다. 이러다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다. 국민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한국 정치도 변화를 주저할 시간이 없다.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80대 현역/이춘규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집 근처 버스종점에 80대 초중반의 군고구마 장수 할아버지가 보인다. 1년여 전 3000원어치를 사고 1만원권을 건넸다. 거스름돈이 없다. 근처 가게로 가 잔돈을 바꿔온다. 걸음은 느리지만 계산은 정확하다. 두번 그랬다. 뜻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떤 사연의 노인일까. 이후는 잔돈을 준비해 가 샀다. 몹시 추웠던 지난 겨울에도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손님은 뜸했다. 영하 17도까지 떨어진 날 밤에는 군고구마통에 흰색 실장갑 낀 손을 대고 석상처럼, 꼼짝하지 않은 채 추위를 견뎠다. 나이를 물으면 “살 만큼 살았어요.”라며 웃어넘긴다. 설연휴는 쉬었다. 주변 상인들도 노인의 사연은 몰랐다. 심성이 곱다고 했다. 산책길에 어쩌다 안 보이면 안부가 걱정된다. 다시 보면 반갑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 노인문제는 심각하다. 일자리, 건강, 독거노인 급증…. 지자체가 나서 안내원·강사 등 일자리를 늘리고 있지만 태부족이다. 당당한 ‘80대 현역’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봄기운/이춘규 논설위원

    전철에서 내려 6시간 걸리는 산 능선길로 접어들었다. 1주일 전과는 완연히 기운이 다르다. 새소리가 아주 높다. 경쾌해졌다. 반겨주는 새 가족들도 부쩍 늘었다. 딱따구리들의 먹이질도 힘차다. 계곡 얼음장 밑 물소리도 제법 커졌다. 마침내 봄기운이다. 봄이 멀지 않았음을 체감한다. 산꼭대기 남쪽 경사면의 나무들에서도 봄의 기운이 가득하다. 여기저기 나뭇가지에서는 성급하게 새싹을 틔우려는 봉오리들이 터질 듯하다. 많은 나뭇가지가 푸르게 물이 올랐다. 하산길에는 계곡 아래서 몇 차례나 훈훈한 바람이 기습해 온다. 소스라치게 반갑다. 들녘에서는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혹독했던 겨울이 쉽게 물러나기야 하겠는가. 높은 능선 북쪽 사면에는 쌓여 있는 눈이 여전히 10㎝ 안팎이나 된다. 눈 위로 어지럽게 찍혀 있는 토끼, 멧돼지, 꿩 등의 발자국은 동물들의 치열했던 겨울을 웅변해 준다. 응달 등산로엔 얼음이 두껍다. 그래도 겨울의 기세는 현저하게 꺾여 버렸다. 봄은 정녕 사립문 앞까지 와 있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토끼길/이춘규 논설위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된 ‘토끼길’. 경북 문경시 고모산성이 있는 오정산 벼랑과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길이다. 고려 왕건 관련 전설이 그럴싸하다. 견훤과 전투를 벌이던 왕건은 이곳에서 절벽과 강물에 길이 막히며 더 이상 남진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때마침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 달아났다. 왕건은 토끼의 뒤를 밟아 벼랑길을 개척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문경 토끼길은 현지어로 벼랑을 뜻하는 비리를 더해 토끼비리나 토끼벼랑길, 토천(兎遷)이라고도 부른다. 절벽과 산허리를 따라 조성된 토끼길은 좁고 험했다. 길손들에게 고달픔을 안겨줬던 험준한 토끼길은 지금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토끼길을 따라 북상했다. 이런 사연의 토끼길이 요즘에도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국어사전은 ‘토끼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이라고 정의한다. 서울 중계동 등 전국 여러 곳에 현지인들이 토끼길이라고 부르는 좁은 오솔길이 지금도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연초 정치적 텃밭인 대구에 내려갔다. 대구여성정치아카데미 신년교례회에서 “올해 신묘년 토끼해는 여성의 해로 토끼는 남이 낸 길을 가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길로만 다니는 동물이라고 한다. 여성 정치를 꿈꾸시는 여러분의 길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해 뒷말이 무성하다. 정치권에선 차기주자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에 기대지 않고, 독자 노선과 정책으로 대권행보를 하겠다는 의미 등 다양하게 해석됐다. 토끼의 해 벽두 토끼길을 언급해 파장이 컸을 터. 영동 동해안 지역에 폭설이 내린 뒤 토끼길이 자주 거론된다. 100년 만의 폭설로 외딴 지역 주민 다수가 고립됐다. 대부분 고령자다. 일부 주민들이 하루종일 토끼길을 내 이웃집과 겨우 연결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깝게 했다. 고립된 집과 진입로를 연결하는 수많은 토끼길을 내기 위해 군과 공무원도 동원됐다. 토끼길을 통해 고립주민들에게 생명선인 구호물자를 전달했으니 생명의 길이기도 하다. 일본에는 토끼길 종합판이 있다. 도야마현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해발 3000m급 다테야마 연봉으로 들어가는 이 길은 수백m 절벽을 굽이굽이 돌아 오른다. 2000m 안팎 고지대에 오르면 동절기엔 눈이 수십m 쌓여 있다. 2월부터 두달간 불도저와 제설차,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길을 뚫는다. 눈의 계곡으로 불리는 높이 20m 안팎의 설벽 사이를 버스가 달린다. 해발 2450m 무로도고원까지다. 7월 한여름까지도 토끼길은 일부가 남아 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꿩의 보금자리/이춘규 논설위원

    1970년대 끝자락 겨울. 대학에 다니다 입대하기 위해 잠시 고향에 머물렀다. 동네 악동들과 어울려 가끔 객기를 부렸다. 혹한기 훈련에 대비한다며 저수지 물을 빼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았다. 밤엔 소나무에서 잠자던 꿩을 잡아 야식을 했다. 잠자는 꿩은 불빛을 들이대면 꼼짝 못한다. 그러면 적절한 수단을 써 잡았다. 31년이 흐른 겨울날 초저녁. 도심 한복판 아파트 단지 큰 나뭇가지 위에 꿩 네 마리가 앉아 있다. 통통하다. 닭들이 닭장 속 홰 위에 앉은 모습이다. 잠자는 것 같다. 그곳에서 계속 잠을 잘까. 확인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 봤다. 네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자고 있다. 이후 잠자는 꿩의 모습은 혹한을 잊게 했다. 거의 매일 수마리가 나무를 옮겨 가며 잠잔다. 낮엔 인근 미군부대에서 지내다 밤에는 까치·비둘기 등도 많이 자는 단지 내 숲으로 날아든다. 해치려는 사람이 없으니 귀한 꿩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다. 31년 세월이 악동들의 사냥감 꿩들을 도심 속 소중한 생명체로 탈바꿈시켰나.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용암돔/이춘규 논설위원

    화산의 수명은 100만년. 이 기간 분화·폭발·휴식을 반복하다 마침내는 사화산에 이르게 된다. 일본 최고봉 후지산(3776m)은 생성된 지 5만~10만년으로 젊은 활화산이다. 1707년 대폭발했다. 300년 대폭발 주기설이 돌아 열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화산국 일본에는 활화산이 많다. 전 세계 900여개의 활화산 중 10% 이상이 일본에 있다. 1주일 전부터 폭발적 분화를 거듭하고 있는 규슈 남부 신모에다케(1421m)는 20여개 화산을 거느린 기리시마 렌잔(連山) 화산군에 속한다. 활화산이란 ‘현재 활발한 분화 활동이 있는 화산’ 및 ‘과거 2000년 이내에 분화(폭발)한 화산’이었다. 2003년 ‘1만년 이내에 분화한 화산이 활화산’이란 국제기준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일본 활화산은 86개에서 108개로 늘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발해 때 폭발한 백두산, 고려 때 분화했다는 한라산도 활화산이 된다. 가스나 연기를 내뿜는 활화산은 일본열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소산·아사마야마는 분화와 폭발적 분화를 되풀이하고 있다. 아소산에서는 펄펄 끓는 분화구 내부를 볼 수 있다. 도쿄 인근 하코네 오와쿠다니에선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수증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북알프스 야케다케 정상에 올랐을 때 유황냄새와 함께 굉음을 내며 솟구치는 수증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자우스다케, 구사쓰시라네산, 다테야마 지옥계곡 등에서도 수증기와 유황냄새를 체험했다. 도쿄도 내에도 도심에서 수백㎞ 떨어진 이즈제도에 4개의 활화산이 있다. 신모에다케의 직경 700m 분화구 안에는 분화 다음날 직경 50m의 용암돔이 생겼다. 1일 네번째 폭발적 분화를 하기 전까지 용암동 직경이 500m로 10배나 커졌다. 용암돔이란 점성이 높은 조면암질 용암이 느린 속도로 지상에 나와 화구 밖으로 흐르지 않고 내부에 굳어 돔(dome)처럼 형성된 화산체다. 폭발적 분화 전후 커진다. 대폭발로 용암이 화구 밖으로 흘러내리면 형상에 따라 침상용암·괴상용암·파호이호이용암 등으로 불린다. 분화와 대폭발의 중간인 폭발적 분화 때는 공기진동인 공진(空振)도 발생한다. 약하면 창문이 흔들리지만 강하면 유리창도 깨진다. 신모에다케의 1일 폭발적 분화 때 공진이 생겨 기리시마시 지소와 시내 병원 유리창이 깨져 1명이 다쳤다. 활화산은 무섭지만 화산성 온천도 제공한다. 일본에는 2009년 기준 온천장이 3130여개소, 원천이 2만 8033개소다. 경쟁이 치열해 가짜온천 소동도 있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스푸트니크/이춘규 논설위원

    불은 인간 생활의 질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구석기 시대에 인간이 불을 이용하게 되면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체온을 유지, 수명을 크게 연장할 수 있었다. 사냥이나 전쟁에도 이용됐다. 열매를 건조시켜 건과를 만들었다. 해충을 죽였다. 신석기인들은 재를 비료로 이용하는 화전농법을 개발했다. 불이 화재와 같은 불행도 초래하지만 불의 발견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견으로 여겨지고 있다. 종이 발견 전 인간은 돌·금속·찰흙 외에 동물의 뼈·대나무 등을 이용해 기록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저며 서로 이어서 기록하는 재료를 만들어 썼다. 기원전 2500년께 종이와 유사하게 만들어져 기록용으로 활용됐지만 종이에 비견되지는 못했다. 서기 105년 후한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고 나서야 인류의 기록문화는 비약적으로 진보한다. 디지털시대에도 종이는 도도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원자폭탄처럼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과학은 고비고비마다 인류 생활에 변화를 주었다. 나침반은 항해술을, 금속활자는 인쇄문화를 꽃피웠다. 현미경·천체망원경은 정밀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증기기관은 인류의 이동시간을 단축했다. 전지와 전등은 인간의 활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다이너마이트, 전화, 자동차, 비행기, 진공관의 발명도 인류생활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과학은 경쟁을 통해 진화했다. 옛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1957년 10월 발사된 스푸트니크 1호는 인류의 우주시대를 열어젖혔다. 당시 미국과 체제 우월성 경쟁을 벌이던 소련의 결정타였다. 미국이 과학기술에서 소련에 앞선 걸로 인식되던 때라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충격과 공포심마저 안겼다. 미국은 부랴부랴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고 과학자를 양성, 1969년 유인우주선을 최초로 달에 착륙시키고서야 스푸트니크 충격에서 벗어났다. 스푸트니크 충격으로부터 50여년. 미국이 다시 위기감에 휩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를 ‘스푸트니크 순간(moment)’으로 표현했다. 새 세계의 경쟁국인 중국, 인도 같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적 위협을 거론하면서다. 이들 국가의 수학·과학·교육과 신기술 개발 투자가 미국에 스푸트니크 충격과 같은 위협이라는 것. 교육개혁, 사회간접자본 재건, 정부 지출 억제 등에 힘써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자고 했다. 스푸트니크 충격이 미국에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공귀족/이춘규 논설위원

    과거 우리의 명절은 사계절 농사 주기와 관계가 깊었다. 농사일을 시작하는 음력 1월 1일은 설날이고, 수확기인 8월 15일은 추석이었다. 우리네 조상들은 설날에는 전해 가을 수확한 곡식으로, 추석 때는 햅쌀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고, 일가친척들이 모여 앉아 덕담을 주고 받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설날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집단 세배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명절 풍습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로 크게 변했다.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놀이를 하던 단오·칠석 등 명절은 빠르게 쇠퇴했다. 설과 추석이 되면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기차·버스를 타고 고향을 찾았다. 기차 객차는 물론 기관차 빈 곳, 짐칸도 사람들이 빽빽이 타고 이동했다. 사고도 많아 1960년 1월 서울역 압사사고로 31명이 숨졌고, 1975년 9월에는 용산역 참사로 4명이 숨졌다. 명절은 기쁨이자 고통이었다. 명절은 보통 며느리들에게 아픔이다. 살림이 빠듯한 어머니들의 명절 고통은 심하다. 한동안 며느리, 어머니의 명절 고통이 조명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말은 못하고 삭이는 아버지, 특히 장남들의 명절 고통이 부각되고 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기 꺼려하는 부인이나 형제들의 누적된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장남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것. 남북 이산가족이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실업자들의 명절 고통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터. 보통 일본인들의 명절나기도 힘겹다. 일본에서는 연말연시와 어린이날 전후, 오봉(추석) 연휴 때 대이동을 한다. 철도·비행기·버스가 임시 증편된다. 평소보다 요금은 비싸지만 고향 가는 귀성전쟁은 연례행사다. 취직빙하기를 맞은 청년 미취업자나 미혼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인터넷에는 며느리들의 명절 스트레스 하소연이 넘친다. 미국·유럽에서도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휴가 때 귀성전쟁이 만만찮다. 중국에서는 춘제(설) 귀성을 두려워하는 공귀족(恐歸族)이 늘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열차표 구하기, 부모 선물, 친척 세뱃돈 등이 부담스럽다. 맞선을 보라는 부모 독촉까지 겹치면 물심양면의 부담이 가중된다. 중국언론 인터넷여론조사에 따르면 ‘왜 귀성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젊은이 44%가 ‘비용 과다’를 꼽았다. 대졸자 월급 1~2개월 분인 4000위안(약 68만원) 안팎 귀성비용은 공포란다. 명절이 원수 같다던 어른들의 말씀처럼 명절 고통은 만국공통인가 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이세돌 ‘신안천일염’ 한국바둑리그 우승

    ‘감독’ 이상훈과 ‘주장’ 이세돌 형제가 이끈 신안천일염이 2010 한국바둑리그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 다승왕(13승) 등 3관왕에 오른 이세돌은 기자단 투표에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신안천일염은 23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특설대국실에서 열린 2010 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강동윤, 이영구가 주축이 된 한게임을 종합전적 3-2로 제압, 9개월간의 대장정을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우승 상금은 2억 5000만원. 이세돌은 우승 직후 “우리팀은 강한 팀이어서 우승을 의심치 않았다. 멀리 신안에서 올라온 응원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개인상 부문에서는 프로 데뷔 7년 만에 처음 한국리그에 참가, 11승5패로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끈 한게임의 진시영이 신인상을 차지했고 신안팀 이춘규의 32개에 달하는 대마를 사냥했던 최철한이 대마상을 받았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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