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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자민당 지지율 민주당에 역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권 추락이 끝이 없어 보인다.집권 자민당의 지지도가 창당 이후 처음으로 다른 정당(민주당)에 뒤지고,고이즈미 내각 지지도도 처음으로 30%대로 추락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러나 선거결과에 대해 “역풍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했다.”며 연금문제 등 역풍은 무시한 채 건투한 점만 부각시키는 억지 발언을 계속해 “전형적인 궤변”(야당 간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제1야당인 민주당이 바람을 계속 이어가면 대안정당으로 떠올라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정권교체를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마저 나돌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들의 여론조사는 일본 국민들이 자민당에 등을 돌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아사히신문이 12∼13일 이틀간 실시해 14일 보도한 여론조사결과,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29%,자민당 27%로 나타났다.자민당 지지율이 다른 정당에 뒤지기는 1955년 보수합동으로 자민당이 탄생한 이래 처음이다. 민주당 의석이 자민당 의석을 앞선 참의원선거결과에 대해서도 62%가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연금문제도 ‘백지화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79%에 달했다. 고이즈미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9%에 그쳤다.내각 지지율은 교도통신 조사에서도 38.9%로 처음으로 30%대를 기록했고,5월 조사 때보다 무려 16.0%포인트나 급락했다.반면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51.0%로 과반을 넘어섰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한 이유로 “당의 낡은 체질이 변하지 않아서”를 든 사람이 40%로 가장 많았고,이어 “정책이 불만”(32%),“총리에게 불만”(16%) 등을 들었다. 한편 민주당 의석이 증가한 이유로 “자민당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73%로 가장 많은데 비해 “정책이 기대돼서”는 12%,“오카다 대표를 신뢰할 수 있어서”는 9%에 불과했다.혁신을 통한 변신 성공 여부가 자민당의 향후 진로와 직결돼있음을 보여준다. taein@seoul.co.kr˝
  • [국제플러스] 日정부·중앙銀 경기회복 선언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모두 경기판단을 상향 조정,경기회복을 공식 선언했다.하지만 당국의 자신감과는 달리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는 떨어지고,도쿄지역 백화점 매출액이 감소하는 등 일부 혼조상태도 이어지고 있다.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상은 13일 “기업부문의 개선이 가계부문으로 확대돼 견조하게 회복되고 있다.”는 내용의 7월 월례경제보고서를 관계각료회의에 제출했다.일본 정부는 상반기 6개월간 경기가 ‘착실히 회복되고 있다.’는 판단을 유지해 왔다.7월 보고서에서는 소비동향에 대해 거품경제 붕괴후 처음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6)항일 논객 장도빈 주필

    장도빈 선생은 망명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천년 가까이 잠자고 있던 발해(699∼926)를 처음으로 찾아낸 역사학자이다. 보성전문 법과에 진학한 1908년 약관의 나이에 박은식 선생의 소개로 대한매일신보 논설기자로 발탁됐고 와병중이던 신채호 주필을 대신해 논설을 집필했다.1909년에는 단재와 일주일씩 교대로 논설을 쓸 정도였다.그의 글로 알려진 ‘금일 대한민국의 목적지’‘일인하지(日人何知)’ 등은 매서운 항일 필봉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후 신보가 일제에 의해 문을 닫기 전까지 3년 동안 단재와 ‘친동기 이상’의 친분을 쌓았고 그의 영향으로 역사에 눈을 떴다.양기탁 선생으로부터도 두터운 신임을 받아 비밀리에 신민회에 가입했고 국채보상운동에도 동참했다. ●신한촌 여관방에서 단재와 동고동락 데라우치 총독 암살모의사건인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검거열풍이 일자 1912년 국외 망명길에 올라 일단 북간도로 피신했다가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로 스며들었다.회고록에서 “신한촌에서 단재 선생을 만나 같은 여관에서 동고동락했다.”고 적고 있다.단재 선생이 주필로 있던 권업신문에 논설을 기고했다. 물 설고 낯선 땅이었지만 1910년대 연해주 신한촌에는 선생을 비롯, 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주역 5명중 배설(1909년 서거) 선생을 제외한 전원이 엇비슷한 시기에 드나들며 몸을 의탁했었다.마치 대한매일신보사를 연해주로 옮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천년 동안 잠자던 발해를 깨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내륙 쪽으로 100여km 떨어진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양대 성지로 꼽힌다. 선생은 이곳의 옛 지명이 쌍성자(雙城子)였던 사실에 주목,틈 날 때마다 답사했다.당시 한인들은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쌍성자(우수리스크),수청(水淸·빨치산스크),추풍(秋風·수이푼),연추(延秋·크라스키노),동개터(나홋카),지신허(地新墟·치진헤)처럼 러시아 지명을 쓰지 않고 고구려,발해 때부터 전해내려 오던 한국지명을 썼다. 선생이 성벽,해자,절터 등 유적을 찾아내 발해의 동경성터로 추정했던 곳은 현재의 크라스노야르 성이다.성안에는 넓은 공터가 자리잡고 있어 크기와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었고 성밖에는 토성이 남아 있었다.성을 감싸고 흐르는 수이푼강은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해자였다.성은 지명 그대로 남성(南城)과 서성(西城) 등 2개의 성(雙城)으로 이뤄져 있었다. 서쪽 성은 시가지에 편입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하지만 남쪽 성의 절터에 방치돼 있는 4개의 현무암 주춧돌과 발해식 축성법을 보여주는 토성 일부는 아직 남아 발해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지난 1995년 우수리스크 일대를 발굴한 러시아 극동고고학연구소는 성내부의 경사면에 위치한 집터에서 온돌구조를 찾아냈다.9세기 당백자(唐白磁) 도편도 출토돼 발해시대 문화층 존재가능성이 확인됐다. ●극동대학엔 장도빈기념관이 우뚝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아데우스카야 56번지에 위치한 극동대학 동양학부는 1899년에 세워진 동양학의 산실이다.무려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대학 건물 옆에 한국학대학이 서있다.건물 이름은 ‘장도빈 기념관’이다.선생의 아들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이 사재를 들여 지었다. 선생의 ‘고토(古土)’ 발해에 대한 집착이 연해주를 대표하는 극동대학의 건물 이름으로 현재화한 것이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틀)=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이춘규 특파원 ●중국 및 러시아(상하이,다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노주석 이언탁 박지윤 특파원˝
  • 자산 1900조원 세계최대 은행으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금융기업인 UFJ그룹과 미쓰비시도쿄 파이낸셜그룹이 통합을 추진한다고 일본 언론들이 14일 보도했다. UFJ와 미쓰비시도쿄가 통합하면 총자산 190조엔(약 190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은행이 탄생한다. UFJ그룹은 이날 오전 이사회에서,미쓰비시도쿄 파이낸셜그룹과 경영 통합을 향한 교섭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결정했다.이번 통합은 신탁을 포함한 전면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어 스미토모신탁은행에의 UFJ신탁은행의 매각을 철회하기로 결의했다. UFJ그룹은 부실 채권 처리나 수익력 강화를 단독으로 진행하기는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이날 오후 미쓰비시도쿄에 통합을 신청했다.미쓰비시도쿄측도 받아들일 의향을 비쳤다. 일본은 통합은행과 미즈호,미쓰이스미토모 등 3대 금융그룹 시대에 돌입한다. 양 그룹은 구체적인 통합을 서둘러 이달 내에 정식 통합을 발표한다.합병 비율,새 그룹명 등은 특별 팀을 만들어 협의한다. taein@seoul.co.kr˝
  • 젠킨스 “가족과 日서 살고 싶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납북 피해자인 부인 소가 히토미(45)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상봉한 월북 미국인 젠킨스(64)를 면회하고 싶다는 북한측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13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젠킨스와 소가 일행이 머물고 있는 호텔 방에는 소가의 양해 아래 외부로부터 전화연락이 차단돼,북한측이 이들과의 접촉을 위해 발을 구르는 상황이다.일본은 “가족들이 조용한 환경을 원한다.”며 북측에 양해를 구했다. 북한은 자카르타 주재 북한 대사관과 젠킨스와 동행해 자카르타에 온 북한 외무성 및 인민위원회 담당과장 등이 일본 외무성 담당자에게 젠킨스 면담을 요청했으나 사실상 거절당했다. 북측 인사들은 젠킨스 가족이 머무르는 같은 호텔 다른 층에 머물고 있으며 젠킨스 가족이 있는 층은 일본측 관계자 외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아울러 미군 탈주병인 젠킨스는 일본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날 “젠킨스는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살고 싶다고 이전부터 말하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미국측이 탈주 혐의로 기소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 정부가 신병치료 목적으로 젠킨스를 일본에 데려오는 방안을 본인에게 타진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복수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젠킨스는 미국측이 ‘신병을 구속하지 않는다.’고 일본측에 보증하면 그에 응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 국방부는 “우리는 젠킨스가 여전히 탈영 죄로 기소 대상이라는 점을 일본측에 통고했다.”고 밝혔다. taein@seoul.co.kr˝
  • ‘흡연천국 일본’ 옛말

    |도쿄 이춘규특파원|여전히 흡연자들의 천국인 일본에서도 점차 흡연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길거리 흡연 금지 지역이 확산되고,학교,음식점,병원,극장,관공서 등 11개 공공장소에서 간접흡연을 해소하도록 지난해 5월부터 건강증진법이 시행되고 있다.스모협회도 도쿄의 국기관에서 열리는 내년 1월 첫대회부터 모든 좌석에서 금연 방침을 확정하는 등 흡연 규제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13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간접흡연 대책에 소홀한 직장에 대해 첫 배상명령이 내려져 금연대책을 소홀히 한 책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도쿄지법은 에도가와구 직원이 간접흡연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건강을 해쳤다며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5만엔(약 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12일 명령했다. 재판부는 “구청은 간접흡연의 위험으로부터 원고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배려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는 의사의 진단서를 보이며 개선을 호소했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의무 소홀”이라고 판결했다. 원고는 지난 1995년 4월에 이 구청에 채용됐다.구청은 당시 좌석에서의 흡연이 허용됐으며 추후 사무실 내 별도 흡연장소가 마련됐지만 칸막이는 설치되지 않았다. 기관지가 약했던 원고는 동료들의 흡연 때문에 건강에 이상을 느꼈고 이듬해 1월 대학병원에서 “두통과 인두통 등 간접흡연에 따른 급성 장애의 의심이 있다.”는 진단서를 받아 구청에 조치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구청은 원고가 진단서를 보여주며 조치를 취해달라고 호소한 시점부터 다른 부서로 옮겼던 3개월간 좌석에서 흡연을 막거나 원고의 자리를 흡연장소로부터 이동시키는 등 배려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taein@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5) 대문장가 신채호 주필

    ‘붓을 들어 사물을 논하면 신(神)이 동(動)한다.’고 했던 대문장가 신채호 선생이 주필로 재직한 1907년 10월부터 1910년 4월까지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구국의 필봉’앞에 몸을 떨었다.선생이 집필한 ‘일본의 3대 충노’‘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같은 논설은 기백이 넘치는 가운데 논리 전개가 정연하고 다분히 선동적이었다. ●망명후 연해주 개척리에 기거 1910년 망명길에 오른 선생은 중국 칭타오를 거쳐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한인거주지)에 숨어들었다.지금의 포그라니치나야 거리는 당시 한국인들이 개척리(開拓里)라고 부르던 곳이다. 이곳에는 선생을 비롯,장지연·이강·홍범도·유인석 선생 등 쟁쟁한 독립지사들이 운집해 있었다.선생은 개척리 344호와 600호에 머물면서 해조신문과 대동공보의 발간에 관여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가는 철둑길부터 항구까지 길이 1㎞에 불과한 이 거리는 지금은 한국총영사관과 한국음식점,서태지 공연이 열린 경기장 등이 늘어선 시내 중심가로 변모했다. ●‘서울거리’문패가 유일한 흔적 1911년 봄 러시아 당국의 개척리 강제철거 계획에 따라 한인들은 지금의 신한촌(新韓村)으로 집단이주했다.선생은 연해주 한인들의 자치 및 독립운동조직인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항일언론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신한촌은 1만여 한인들이 거주하는 러시아 한인사회의 구심점이자 해외독립운동의 메카였다. 1920년 춘원 이광수가 ‘바윗 등에 굴 붙듯이 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은 집’,‘동서로 6정(町,1정은 약109m),남북으로 7정의 면적’,‘겨울이면 결빙된 얼음 위를 걸어서 훈춘·왕청·화룡 등 북간도를 오가던 곳’‘집집마다 놓인 온돌방’등으로 표현한 신한촌은 지금은 고급 아파트촌이다. 하바로프스크 거리 율리차 10호에서 창간됐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동휘 선생의 집(21호) 바로 옆집이던 권업회와 권업신문사의 옛터는 물론 대한국민의회같은 수많은 독립운동단체와 한인학교,‘3·1독립문’등이 서 있던 거리엔 아파트와 차고가 촘촘히 들어서 당시의 흔적을 찾기 위해 마을 구석구석을 뒤지던 취재팀을 허탈하게 했다. 단지 바다쪽 철길에 면한 아무르스카야 언덕배기에 ‘서울스카야 2A’ 즉 ‘서울거리 2번지’라고 적힌 문패가 붙은 러시아식 주택 1채가 이곳이 신한촌이었음을 알리는 유일한 증좌로 남아 있을 뿐이다.한국총영사관 박상태 부영사는 “이곳을 박물관으로 꾸미려 했지만 계획을 눈치챈 소유주가 15만 루블에 불과한 집값을 200만 루불이나 요구하는 바람에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당시 신한촌 거주 한인들에 관한 기록을 찾고자 취재팀이 방문한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문서보관소에는 한국관련 자료가 20여권 남아 있었다.문서보관소측이 공개한 ‘1913년 신한촌거주자 명단’에 따르면 204개 동에 712가구가 사는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알렉산드 토르포프 소장은 “거주자의 이름,이주연도,종교,직업,생년월일,동거자와의 관계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면서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독립지사들이 이곳에 불법체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상하이·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4) 초대주필 박은식

    대한매일신보의 초대 주필 박은식 선생은 언론인이자 교육자,역사학자였다.무엇보다 임시정부 국무총리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항일 독립운동가의 사표(師表)였다. 중키에 턱뼈가 좀 튀어나왔지만 항상 미소짓는 강직·온화한 인상의 소유자였으며 성격은 관후·소탈했다.양기탁 선생의 소개로 배설 선생을 만나 1905년 8월 초대 주필로 인연을 맺었으며 1907년 10월 신채호 선생을 후임으로 앉혔다. ●고구려 옛터에서 교육·저술 활동 나라를 빼앗기자 1911년 4월 랴오닝(遼寧)성 환런현(桓仁縣)으로 망명,대종교의 3대 교주 윤세복이 설립한 동창학교에서 신채호 선생과 함께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고구려의 환도성 옛터에 자리잡은 동창학교는 도시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위치는 현재 환런현 정양가도 서궐가 민족백화점 근처로 추정된다. 그는 “비록 국체(國體)는 망했지만 국혼(國魂)이 소멸당하지 않아야 한다.”라면서 ‘동명성왕실기’‘발해태조건국지’같은 역사서를 쓰고 가르쳤다.서북 만주와 요동평야가 모두 고대 우리 민족의 활동지임을 증명하고 이곳에 독립운동의 새 기지를 세우려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연해주서는 한족공보 주간으로 일제에 의해 동창학교가 폐교 압박을 받자 1918년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전로한족대표자회의 기관지인 ‘청구신보’의 후신인 ‘한족공보’의 주간을 지냈다.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기지 구실을 한 우수리스크의 체체리나 거리 31번지에 있던 신문사 터는 폐허로 변했지만 러시아에 귀화한 고려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던 선생의 의지는 연해주에 사는 4만 5000여명 고려인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러시아 동포들은 신문발간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라는 목표 아래 구한말부터 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청구신보·한족공보 등 숱한 신문과 잡지를 간행해 왔다.”면서 “조국의 국권회복과 독립은 물론 재러한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이 재정난으로 문 닫자 체체리나 거리 54번지에 위치한 고려사범전문대학(현재의 우수리스크사범대학 물리수학부) 등 지역의 한인학교를 순회하며 역사교육을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신한촌 기념탑엔 잡초가 무성 선생은 1919년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당시 한인들이 ‘해삼위(海蔘威)’라고 부른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중심가 서북쪽 아무르만 연안 언덕배기 북쪽 하바로프스카야 거리 끝 아파트단지 옆에는 이 도시의 유일한 한인관련 역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1999년 8월15일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건립한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그것이다. 1911년 건설된 신한촌(新韓村)은 한때 1만여명의 한인들이 거주하던 러시아 최대의 한인 집단거주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아파트단지로 변했다.신한촌의 의미를 기록한 기념비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했다.철제 출입문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더구나 3개의 기념탑신에는 낙서를 지운 자국이 얼룩져 있었고 비 앞에는 마른 꽃다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日 고이즈미 참패…민주 오카다 떴다

    |도쿄 이춘규특파원|1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은 스스로 승패 기준으로 제시했던 기존 51석을 밑도는 49석을 얻는 데 그쳐 패했다.반면 12일 최종 확인된 집계결과에 따르면 자민당과 같은 보수성향의 민주당은 기존 38석에서 50석으로 늘리는 대약진을 했다.야당이 개선 의석 수에서 제1당이 되기는 1989년 사회당(당시) 이래 15년만이다. 불과 1석 차이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입지가 흔들리는 등 일본정국 전체에 소용돌이를 몰고왔다.공명당 11석,공산·사민당은 각각 4석과 2석을 얻었다.5석은 무소속이었다.다만 자민당은 이번 패배에도 불구,비개선 의석 및 공명당 의석을 합해 과반(122석)보다 17석 많은 139석을 연립여당 의석으로 확보했다. ●한없이 초라해진 고이즈미 지난 2001년 4월 취임한 이후 언제나 당당하고 거침없는 화술을 상표처럼 내걸었던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에서 패배가 기정사실화된 뒤 맥빠진 기색이 완연했다. 장기집권을 향한 고공비행에 급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12일 오후 기자회견 발언 때도 몸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개선 의석 51석에는 부족했지만,자민당·공명당 여당을 합하면 모든 위원회에서 과반수 확보가 가능하다.”면서 “경제활성화,경기의 본격 회복에 여당이 결속해 국민의 지원을 얻도록 노력하겠다.”고 애써 강변했지만 지쳐보였다. 이어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 과정에서 야당을 포함,니혼게이단롄 등 경제단체나 노동단체와도 충분한 협의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이라크 파병·국민연금법에 국민의 60∼70%가 반대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다짐,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때와는 확연히 대비됐다. 이에 따라 당내 원로들이 개각과정 등에서 협의를 주문해 파벌의 요구를 단호히 뿌리쳤던 지금까지의 야생마적 기질 변화여부도 관심사다. ●오카다 대표,차기주자 부상 반면 오카다(50) 민주당 대표는 선거전에서,성실하고 강직한 리더상을 내세워 정권 교체를 호소해 일대 약진을 이끌어냈다.전임 당 대표와 대표 후보가 국민연금 미납 문제로 선거를 앞두고 낙마한 경황 중에 대표직에 오른지 불과 2개월도 안돼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을 누른것이다. 오카다 대표는 이날 오전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다음 총선거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다.(약진은) 정권교체로 가는 하나의 발걸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당당히 설명했다.아울러 대안정당의 이미지를 의식한 듯 “여당도 선거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연금이나 이라크 문제에 대해서 국회에서 의논하고 싶다.”고 여유있게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라이벌로 비쳐진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서는 “3년 전에는 기대감 때문에 실체 이상으로 이미지가 부풀어 올랐지만,그 버블이 사라졌다.”고 진단했다.또 조기 중의원 해산과 총선을 요구,내친 김에 정권교체를 향해 매진할 태세도 비쳤다. 도쿄대 출신의 5선 중진 의원인 오카다 대표는 1990년 자민당으로 처음 국회에 진출했다.93년 자민당 대분열 때 오자와 등과 함께 신생당·신진당을 거쳐 98년 민주당 결성에 합류했다.정조회장 등을 거친 유력 차세대 후보의 한 사람으로 지난 5월18일 국민연금 파동의 와중에 “이것도 하나의 천명인지 모르겠다.”며 지도력을 의심받은 채 대표에 올랐다.때문에 오카다 대표는 이제부터 자신의 정치력을 본격 시험받게 될 것 같다. taein@seoul.co.kr ˝
  • ‘캐스팅보트’ 쥔 공명당 공산·사민당 존립위기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해 11월 중의원선거에서 시작된 일본 정계의 자민·민주당 ‘양당 구도’가 11일 치러진 참의원선거에서는 더욱 공고해졌다.이에 따라 공명·공산·사민당 등 군소정당들이 급격히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그나마 공명당은 캐스팅보트로서의 위치를 강화하는 반면,공산·사민당의 추락은 끝이 없다. ●자민당, 공명당 의존도 높아져 일본 언론들은 12일 공명당의 존재의미에 대해 “자민당·공명당 의존 심화”라는 표현으로 강조했다.선거에서 패한 자민당이 공명당에 의존하지 않고는 정권유지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공명당은 800만가구가 신도인 것으로 알려진 창가학회의 절대적인 지지속에 이번 참의원선거에서도 의석을 늘렸다.모두 24석으로 전체 참의원 의석(242석)의 10분의1이다. 공명당은 전국을 6개의 권역으로 나눠 정치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는 창가학회 회원들이 지인들을 상대로 열렬한 득표활동을 펴도록 했다. 비례대표와 지역구 후보 11명을 당선시키는 견고한 조직력을 과시했다.자민당이 그나마 49석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막판 공명당과 창가학회의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이처럼 자민당의 공명당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민주당이 다음 선거까지 국민지지를 높여가면 공명당이 자민당을 등진 뒤 민주당과 연립정권을 세울 수도 있다.”는 평도 나온다. 간 자키 공명당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자민당과의 협력의지를 확인하면서도 “국민연금·이라크파병을 국민에게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자민당에 점잖게 충고했다. ●공산·사민당 당선자 없어 반면 진보적인 공산당과 사민당은 추락이 끝이 없어 보인다.일본 사회의 급격한 보수우경화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선거구에서 두 당이 단 1명의 후보도 당선시키지 못한 채 존립 자체가 의심받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우선 공산당이 지역선거구의 의석을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은 1959년 이래 처음이다.비례대표에서 4석을 간신히 건졌지만 교체 대상 의석 15석에서 4석으로 대폭 줄었다.야당 공동추천후보인 오키나와 선거구를 제외하는 전 선거구에서 후보자를 냈지만 전멸한 것이다.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11일 양대 정당화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고 탄식하며 “새 흐름을 만드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며 위원장직 유지의사를 밝혔다. 사민당은 더욱 초라하다.1989년 선거때 개선 의석에서 제1당을 차지했던 것은 옛 추억이 됐다.후쿠시마 당수를 포함,비례대표만 2석을 확보했지만,당간부의 표정은 비통했다.앞사 작년 중의원선거 참패로 도이 다카코 당수가 사임하는 진통을 겪었었다. taein@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3) 초대총무 양기탁

    대한매일신보의 대들보인 우강 양기탁 선생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영어사전을 편찬하고 일본 나가사키상업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근무하는 등 33살 때까지의 삶은 평탄했다.능통한 영어·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정부관리(예식원 주사)와 한성전기회사 간부로 채용되는 등 출세길이 보장돼 있었다. ●배설과의 만남·20여년 망명생활 하지만 1904년 배설 선생과의 운명적 만남(34세) 이후 ‘혁명가의 길’이 주어졌다.이후 5년여 동안 대한매일신보를 통한 국채보상·신민회 운동 등을 펼쳤고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병합되자 1910년 만주로 탈출,1918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등지에서 활동했다.1922년(52세) 임시정부 주석 등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살아서 광복한 조국땅을 밟지 못했다. ●리양에서 맞은 쓸쓸한 임종 선생은 1938년 5월21일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든 중국 장쑤성 리양현 대부진 남문두 고당암에서 6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지금은 논으로 변해 버린 암자에서 중국인들에 둘러싸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20여년 동안 중국 관내와 만주,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떠돌며 독립운동에 몸바친 그의 유해는 사후 60년 만인 1998년에야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봉환됐다. ●우수리스크엔 담장만 남아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 거리인 우수리스크 자나드보롭스가야 15번지에서 그의 숨결을 만날 수 있었다.우수리스크는 러시아거주 9만여 고려인들의 절반가량이 모여사는 연해주의 여러 도시중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사료에 의하면 선생은 서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들어왔으며 고려인신문 ‘한인신보’의 편집인으로 청빙됐다.선생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자 이동휘 선생 등이 주도한 환영회가 대대적으로 열린 사실도 기록돼 있다. 1917년 5월 전 러시아 한인의 대표기구인 전로한족중앙총회가 개최된 자나드보롭스가야에서 선생은 박은식·이동휘·최재형 선생 등과 함께 사자후를 토하며 조국의 독립투쟁 방안을 논의했다.우수리스크와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한인들이 러시아혁명 이후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독립운동을 모색하려고 연 회의였다.그러나 우강은 최초의 한인 공산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창건에 반대하고 국제유대를 통한 조국독립운동을 주장,갈라서고 말았다. 1㎞ 남짓한 이 거리에는 ‘노령정부’로 알려진 대한국민의회와 그 기관지 청구신보의 사무실 등이 세들어 있었다.부자들이 모여 산 화려한 주택가로,시장의 주택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체체리나 22번지에 학교가 들어섰고 집이 있던 거리는 운동장에 편입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취재팀을 안내한 송지나(러시아 극동대) 교수는 “길 건너편에는 100년 전에 지은 오래된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서 “도시계획에 따라 학교쪽 집을 모두 허물고 길을 넓혔다.”고 말했다. 운동장 구석 잡초 더미에서 발견된 허물다 만 오래된 집 담장이 취재팀을 상념에 빠지게 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日참의원선거“자민 사실상 패배… 민주 약진”

    |도쿄 이춘규특파원|11일 치러진 제20회 일본 참의원선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권의 집권 3년에 대한 싸늘한 평가로 해석됐다.출구조사·개표 결과 자민당이 고전,고이즈미 총리의 책임론도 제기됐다가 잠복했지만,언제든지 재부상할 수 있다.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약진은 두드러졌다.보수적인 자민·민주 ‘2대 정당화’현상이 심화되며 진보적인 공산당·사회당의 약체화도 가속화됐다. ●NHK “자민 43~52·민주 48~55석 예상” 투표가 끝난 직후 발표된 NHK 니혼TV 등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를 토대로 한 예상 의석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집권 자민당을 일제히 앞선 것으로 발표됐다.대접전이긴 했지만 2001년 선거 때 자민 65 대 민주 26석에 비하면 대단한 변화다. NHK는 전국 22만명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를 분석,“자민당이 43∼52석,민주당 48∼55석,그리고 공명당 9∼12석,공산당 2∼4석,사민당 2∼3석,무소속 4∼7석”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방송사의 출구조사 예측도 비슷했다.니혼TV는 자민 47,민주 53,공명 11,공산 3,사민 2,무소속 5석으로 예상했고,TBS는 자민 48,민주 52,공명 10,공산 4,사민 2,무소속 5석으로 보았다. ●‘민주당 강화’-정권교체? 연립여당인 자민·공명당은 고전,민주당은 대약진,그리고 공산·사민당은 퇴조였다.“제1 야당에 의석을 몰아줘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여망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전체의석 예측에서 자민·공명의 연립여당 의석수가 민주·공산·사민당과 무소속을 합한 야당 의석수보다 적었다.자민당이 선거에서 안정의석 확보에 실패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정권운영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공명당이 연립여당에서 이탈할 경우,자민당 정권이 중대위기에 처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우정사업 민영화·교육개혁 등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 정책 추진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즉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를 향한 헌법 개정을 내년말까지 추진하려던 자민당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당 장악력 약화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 뒤 책임론에 대해 “관계없다.”고 잘라 말했다.아베 신조 간사장이나 아오키 참의원 간사장 등 자민당 집행부도 총리 사퇴론을 일축했다.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당 장악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후계경쟁이 조기에 가열될 가능성도 있다. 오카다 민주당 대표는 선거에서 대약진,오카다 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반면 지난해말 중의원에 이어 이번 참의원서도 급격히 세가 위축된 공산·사민당 등 진보정당들은 위상 회복에 매우 고전할 것 같다. 그렇지만 일본의 한 정치분석가는 “민주당의 정국장악력은 불확실해,중의원 해산이 없을 경우 3년 뒤에 예정된 큰 선거까지는 불안정한 정국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내각 불신임권은 중의원만 일본은 중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 국회다.미국 하원격인 중의원이 예산안 심의와 총리 지명,조약 비준 등에 있어 우월한 권한을 가진다.내각 불신임 의결권도 중의원이 가진다.중의원은 임기 4년에 총 480명으로 구성된다.총리는 중의원의 내각불신임 권한에 맞서 중의원 해산권을 가진다. 참의원 임기는 6년이며 현재의 의원정수는 242명이다.3년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절반을 다시 뽑는다.여당이 대패하면 총리가 바뀔 수도 있다.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중의원·참의원에서 모두 과반 의석을 유지한다. taein@seoul.co.kr˝
  • 한국계 백진훈씨 비례대표 당선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계 백진훈(白眞勳·일본명 하쿠 신쿤·45)씨가 11일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백씨는 선거운동 때 이례적으로 한국 핏줄임을 밝혔다.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재일교포 2세인 백씨는 지난해 1월 일본 국적을 취득,이번 선거에 나설 수 있었다.니혼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백씨는 1994년부터 지난달 선거 입후보직전까지 조선일보 일본지사장을 지냈다. 그는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해 유명해졌으며 특히 일본인 납북사건과 관련해 ‘전문가’로 단골 출연,지명도를 높였다.민주당은 최근 일본인 납북 문제와 북·일 국교정상화 등 대북 현안이 최근 정국의 주의제로 부상하자 ‘대북 전문가’로서의 그를 평가,영입한 것으로 전해졌다.선거운동 기간 백씨는 선거벽보에 ‘아버지는 한국인,어머니는 일본인’이라고 밝혔다.백씨는 출마의 변에서 “한·일간 우호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taein@seoul.co.kr˝
  • 日 “중국인 강제 징용자에 배상” 첫 판결

    |도쿄 이춘규특파원|태평양전쟁 중 강제연행돼 중노동을 강요당했던 중국인들에게 일본 고등법원이 원심을 뒤집고 배상판결을 내렸다.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9일 태평양전쟁 기간 히로시마현 가케초의 발전소 건설을 위해 강제 연행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다며 중국인 2명과 유족 3명이 니시마쓰 건설을 상대로 한 2750만엔(약 2억 7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판결을 취소,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스즈키 사토시 재판장은 “중대한 인권침해이고,10년의 시효를 원용하는 것은 권리의 남용”이라며 청구를 기각한 1심 결정을 취소하고 니시마쓰 건설에 2750만엔의 지불을 명령했다.중국인 강제 연행 소송은 전국에서 10건이 계류 중이지만,고등법원이 2차대전 중 강제징용 관련 재판에서 배상 명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이번 판결은 일본 전국에서 진행 중인 비슷한 사건의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시효와 제척기간 등을 내세워 전후 보상책임을 회피해온 일본정부와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장에 따르면 송모(75)씨 등 중국인 5명은 1944년,일본군의 포로가 되거나 강제연행된 뒤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충분한 식사도 주어지지 않은 채 터널 굴착 공사에 종사했다. 1심인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2002년 7월,“열악한 환경으로 장시간의 노동을 강제하는 등 인간의 존엄과 명예를 돌아보지 않았다.”라고 니시마쓰건설의 불법 행위(강제 연행,강제 노동)와 안전 배려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그러나,불법 행위에 대해서,손해배상 청구권이 존속하는 ‘제척 기간’(20년)이 지났다고 해,안전 배려 의무 위반에 관해 ‘소멸 시효’(10년)가 성립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taei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 (2) 초대사장 배설

    100년전 ‘제2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의로운 항일 독립투쟁을 펼친 ‘대영남자(大英男子)’배설 선생의 족적은 영국·일본·중국 등 그가 머무른 곳곳에서 발견됐다.36살이라는,짧지만 맹렬한 삶을 산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영국 런던과 브리스톨,일본 고베,중국 상하이를 찾은 특별취재팀은 마치 그와 동시대를 사는 듯한 느낌속에 역사추적 여행을 시작했다. ●런던에서 만난 혈육 토머스 남매 취재팀은 선생이 나서 자란 영국 남서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생가(生家)를 찾는 데 실패했지만 런던에서 후손들을 만나 100년 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런던 북부의 에지웨어 하트랜드 클로즈 3번지에 사는 손자 토머스(46)와 손녀 수전(49) 남매를 만난 것이다.그들은 한국정부가 추서한 건국훈장과 추서장,그리고 낡은 사진첩과 서류 뭉치 등 선생의 유품을 거실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토머스는 사진을 통해 익숙해진 배설 선생의 모습을 빼닮았다. 두 사람은 베델가의 길지 않은 역사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깊이 우려했다.수전은 결혼 후 베델의 성 대신 블랙(Black)이라는 성을 갖게 됐고,토머스는 루신다라는 9살난 딸만 두고 있다.루신다가 결혼하고 나면 베델 성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할아버지의 사진과 출생·사망기록 등 유품을 고이 간직해 온 수전은 “유품은 우리 베델 가족의 귀중한 역사이지만 한국인들에게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면서 “한국인들이 이를 볼 수 있도록 전시공간이 마련된다면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고베에서 발굴한 사진 한장 일본 서남부의 항구도시 고베에도 선생이 남긴 족적이 빛바랜 몇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특히 고베지역 외국인사회에서 가장 전통 깊은 고베 레가타 어슬레틱클럽(KRAC)에서 뚜렷했다. 취재팀은 이곳에 보관된 낡은 사진첩 3권을 샅샅이 뒤진 끝에 고베선발 축구선수 유니폼을 입은 선생의 25살때 사진 1장을 새롭게 발굴하는 소득을 올렸다.고베는 선생이 15살 때인 1888년 가족과 함께 건너가 1904년 한국행에 오르기 전까지 16년 동안 산 곳이다. 선생이 가족과 함께 산 고베외국인거류단지 42번지와,선생이 운영한 회사가 위치했던 69번지는 고베의 대표적인 상업중심지로 변해 있었다.42번지에는 다이마루백화점 고베점이 들어서 있고 69번지에는 12층짜리 다이이치세메이 빌딩이 서 있다.빌딩 북쪽에 쇼우간지(商館址)라는 비석이 서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폭동 교사’ 괴상한 죄목 선생이 1908년 6월18일부터 3주간 옥고를 치른 중국 상하이 영국조계 안 형무소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선생은 당시 신문을 통해 폭동을 교사한 혐의로 3개월의 금고형 및 6개월 근신형을 선고받고 이곳에서 복역했다. 선생을 대한매일신보에서 손 떼게 하려는 일본의 흉계와 외교적 술책의 결과였다.선생은 복역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듬해 5월 세상을 등졌다.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상하이)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 日폭염… 열사병 사망자 속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열도에 때이른 폭염이 엄습,열사병환자가 속출하고 있다.8일 하루 4명이 사망했다.도쿄에서 49명의 시민이 구급차에 실려갔고,8명은 중태다.9일에도 도쿄·사이타마 등 간토지방에서만 70명이상이 구급차로 실려가 5명이 중태에 빠졌다. 도쿄를 중심으로 연일 섭씨 35도이상,도쿄 도심부나 인근 분지지역은 38도 안팎까지 기온이 치솟았다.이날 전력사용량은 7월 초순으로는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도쿄는 예년보다 7도나 높은 35도안팎의 폭염이 계속되면서 초·중·고교에는 결석 및 조퇴생이 속출했다.폭염으로 수혜를 받는 분야도 적지 않다.에어컨 판매는 두 배로 급증했고,소매없는 옷은 7배나 늘었다.일부 맥주 품목은 판매량이 25%나 증가했다.이에 따라 민간 경제연구소들을 중심으로 “더위가 GDP를 0.1∼0.3% 끌어올리며 상승추세 경기에 탄력을 줄 것”이라고 분석한다. taein@seoul.co.kr˝
  • 고이즈미 운명 참의원 선거에?

    |도쿄 이춘규특파원|11일 치러질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어떤 성적표를 받아쥘까.일본 언론들이 제시한 선거결과별 시나리오는 유사했다.이번 선거의 교체(개선) 대상 121석 중 현 수준 유지선인 51석을 위험선으로 봤다.45∼50석은 구심력을 잃은 약체정권화,44석 이하는 총리의 퇴진과 정국혼란이 예상됐다. ●51석 이상,개혁가속 이 경우 고이즈미 총리는 오는 2006년 가을 총재임기까지의 장기정권을 보장받게 될 것 같다.51석은 3년 전 참의원 선거의 64석에는 크게 못미치는 것이지만 정권유지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수견해다.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오는 9월 내각개편을 단행하고 우정사업 개혁 등을 밀어붙여 ‘개혁정권’의 이미지를 선명히 부각시킬 발판을 마련케 되는 셈이다.선거도 승리로 규정될 것 같다.그러나 단독 과반수 의석이 될 56석을 얻지 못할 경우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지원을 많이 받은 점이 부담일 수도 있다.헌법개정 등에서 자민당이 독자 색깔을 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공명당이 민주당과 연합할 수도 있다. ●45∼50석,약체정권화 현재로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로 꼽힌다.총리 퇴진 여부는 극히 불투명하다.총리가 직을 유지해도 약체정권화될 것으로 전망된다.자민당의 구심력은 약화될 것 같다.당 관계자들은 고이즈미 이후를 책임질 후계자감이 없다는 점을 들며 “중의원에서 단독과반수인 만큼 그만둘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그렇지만 아오키 미네오 참의원 간사장이 말한 대로 ‘총리는 죽은 몸’이 될 수 있다. ●44석 이하,총리퇴진·후계난항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는 1998년 선거 때 자민당이 목표의석에 17석 미달한 44석에 그치자 물러났다.따라서 44석이 하한선이라는 기류다.진퇴 결정은 총리의 판단이지만 즉각 퇴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민당 내에서 확산될 것이다. taein@seoul.co.kr˝
  • [국제플러스] 日 방위백서 ‘집단적 자위권’ 언급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는 6일 방위백서를 통해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내용을 처음으로 언급했다.이시바 시게루 일본 방위청 장관은 이런 내용의 2004년판 방위백서를 이날 오전 각의에 보고,승인받았다.집단적 자위권과 관련,백서는 중·참의원 양원의 헌법조사회 논의사항을 소개했다.반대론도 나란히 소개했다.그러면서 ‘헌법을 개정해 (집단적자위권)행사를 용인하자는 긍정적인 발언’이 있었다는 걸 거론했다.˝
  • 다나카 前외상 “고이즈미는 불량품”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불량품이다.” 고이즈미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었던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이 11일 치러질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이즈미 저격수’로 변신했다.다나카 전 외상은 4일 요코하마 도심에서 열린 민주당 후보 지지연설에서“3년 전 자민당총재 선거에서 분골쇄신해 고이즈미 후보를 위해 연설했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라며 “터무니없이 조악한 불량품으로 판명났다.”고 고이즈미 총리를 몰아붙였다. 지난달 24일 공식 선거레이스가 시작된 뒤 무소속인 다나카 전 외상이 제 1야당인 민주당 후보 지지연설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그는 “모든 분들에게 (고이즈미 지지를) 사죄하고 회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남편이 고향인 니가타 선거구에서 자민당 후보로 출마,자민당 공격을 자제해온 그는 이날 “고전하고 있는 남편을 두고 왔다.”며 고이즈미 정권의 심판을 호소했다. taein@seoul.co.kr˝
  • 中·日 동중국해 가스개발 갈등 심화될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중국과 일본이 동중국해 가스전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천연가스 조사선이 4일 오전 독자조사를 위해 오키나와(沖繩) 항구를 출항,중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조사선은 이날 중국이 가스전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동중국해 일본측 수역에 도착했으며 7일부터 석달간 지질탐사와 시추조사를 포함한 독자조사를 펼칠 예정이다. 대상 수역은 춘샤오(春曉) 가스전 부근의 일본쪽으로 경계선에서 30㎞ 떨어진 길이 200㎞ 이상의 띠모양(帶狀) 해역으로,조사선은 지진파를 활용해 천연가스와 석유층의 존재를 확인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중국 외교부 선궈팡(沈國放) 부장조리(차관보급)는 일본이 독자조사 방침을 밝히고 나서자 지난달 30일 아나미 고레시게(阿南惟茂)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깊은 관심’ 등의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은 4개의 가스전으로 이뤄진 춘샤오 가스전군(群)이 위치한 경계수역의 중국쪽 일대에 가스 채굴용 플랫폼 1개를 건설한 데 이어 두번째 플랫폼을 건설,천연가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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