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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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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펜한국본부, 세계한글작가대회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손해일 시인)는 12~15일 경북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와 힐튼 호텔에서 제5회 세계한글작가대회를 연다. 이번 대회는 이근배 시인이 조직위원장을, 김홍신 소설가가 집행위원장을 각각 맡았다. 신달자 시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권재일 한글학회장,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한국문학 주요 단체장·사무총장 등이 조직위원으로 참여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셔누 향한 악플, 설리 극단 선택… 실명제로 막나 댓글을 없애나

    셔누 향한 악플, 설리 극단 선택… 실명제로 막나 댓글을 없애나

    지난 3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셔누 사진’이 올라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보이그룹 몬스타엑스 멤버 셔누의 사진이라며 누군가 올린 알몸 사진이 확산되면서 관심이 집중된 것. 소속사 측은 “불법적으로 조작된 사진”이라며 최초 유포자 등 유포하는 이들을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에서는 해당 사진에 대한 요청과 악플이 줄을 이었고, 일부 극단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미러링’(mirroring·거울처럼 따라 하기)을 내세워 남성 연예인이 피해자가 된 상황에 대한 조롱을 이어 갔다. 지난달 아이돌 출신 배우 설리의 사망 이후, 악플을 규제하자는 논의가 뜨거워지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몬스타엑스 사태, 설리의 사망으로 본 악플의 양상과 해결법을 두고 평론가와 시인, 기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셔누를 향한 조롱과 악플… ‘미러링’ 위험 이정수 스타들이 악플에 시달린 사례는 워낙 많지만, 일단 최근에 있었던 몬스타엑스 사태부터 얘기해 보죠. 어떻게 보셨나요. 서효인 그게 좀 희한한 것이, 보통 여성 연예인에게 이런 일이 있으면 갖가지 유희와 악플이 이어지죠. 그것들을 반대쪽 성별에서 놀이하듯 즐기는 듯한 댓글이나 SNS 반응이 있어서 미러링이라는 걸 새롭게 보게 됐어요. 지금까지 미러링은 피해자 집단에서 가해자 집단을 거울 비추듯 깜짝 놀라게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건 분명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미러링이잖아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윤하 남성 비중이 높은 커뮤니티 반응이 흥미로웠어요. 예전에 여성 연예인에게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어디서 볼 수 있냐’, ‘공유해 달라’는 반응들이 많았죠. 반면에 셔누의 불법 조작 사진 논란에서는 ‘그도 피해자다’, ‘사생활 침해다’ 같은 이성적 댓글 비중이 높더라고요. ‘피해 당사자의 성별이 바뀌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정수 저는 트위터 반응을 주로 봤는데요. 트위터상에는 아이돌 팬들이나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기본적으로 성범죄가 대부분 남성에 의해서 일어나고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많잖아요. 반대로 특정 남성 피해자가 생겼을 때 한 명을 그렇게 공격하는 건 분풀이에 그치는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김윤하 분위기가 더욱 격앙될 수밖에 없었던 게 사건의 순서가 있어요. 몬스타엑스 멤버 중에서 원호의 채무 불이행, 학창 시절 소년원 보호관찰 같은 이슈가 먼저 터졌고 곧바로 셔누도 불륜 논란이 이어졌죠. 팬덤이나 그를 둘러싼 여론이 자극적으로 부풀려져 있는 상태에서 사진 유출 의혹까지 터지니 걷잡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정수 기존에 여성 연예인들의 동영상 유출 등의 논란이 터질 때마다 지적됐던 부분이지만 그런 사진이나 영상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범죄잖아요. 2차 가해고. 그런 걸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성별이 바뀐 걸 떠나서 관심이 똑같이 이어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자정 작용은 가능한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악플과 공생하는 미디어 이정수 지난달 설리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여러 지적이 나왔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악플과 이어서 설리의 개인 인스타그램을 일일이 기사화했던 언론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였어요. 김윤하 설리 얘기를 하면서 꾸준히 언급되는 게 ‘노브라’인데요. 노브라로 기사화되는 걸 볼 때마다 이게 기삿감이 될 일인가, 한 사람이 이렇게 욕먹을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설리가 웹 예능 프로그램 ‘진리상점’ 예고편에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뭘 궁금해할까? 내가 진짜 미친X인가?” 하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 그런 자조를 해야 했죠. 서효인 설리 사례처럼 많은 악플들이 특히 여성혐오적인 것들이 많죠. 언론에서 쏟아진 기사도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빅뱅의 멤버 승리보다 설리 기사가 더 많았어요. 김윤하 노브라와 버닝썬은 사건의 경중을 비교할 수도, 논할 필요조차 없는데… 너무 화가 나는 부분이에요. 이정수 악플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해법 중의 하나가 인터넷 실명제죠. 과연 인터넷 실명제는 악플을 막을 수 있을까요. 서효인 페이스북 보면, 실명으로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이 많아요. 김윤하 맞습니다. 페이스북만 봐도 답이 나와요. 거의 실명을 쓰고, 개인정보가 전부 노출되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넷 악플과 다를 바 없는 글들이 올라와요. 실명제를 하면 미미하게나마 실명으로 글 쓰기 두려운 사람들을 거르는 자정작용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결국 지엽적인 대응밖에는 안 될 거예요. 서효인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보면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악마가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쓰는 게 상당수거든요. ‘내 말이 맞아, 이 말을 너한테 전해 줘야겠어’라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올려요. 실명제로 거를 수 있는 게 아니죠. 김윤하 악플러와 미디어가 공생하고 있는 게, 기사에 악플이 쭉 달리면 그걸 캡처해서 그대로 기사로 쓴 다음에 ‘이런 반응이 있다’고 다시 기사를 쓰는 인터넷 언론이 많아요. ‘논란’이라는 글자를 붙이면서 논란화하는 상황이 너무 많은 거죠. 악플을 다는 사람들, 이걸 확대 재생산하는 미디어를 함께 못 잡으면 인터넷 실명제는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어요. ●뉴스 댓글, 일시적 쾌감 이상의 순기능 없어 서효인 최근에 포털 사이트 다음은 연예뉴스 댓글을 없앴잖아요. 그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댓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값이 없어요. 사회나 개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는 없고 휘발되는 일시적 쾌감만 주는 거죠. 이정수 뉴스 댓글이 악영향이 크긴 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 관한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다는 게 가장 쉽게 여론을 전달하는 방법이잖아요. 연예 기획사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여론의 향방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는 부분이고요. 좋은 영향력을 우리가 간과하는 건 아닐까요. 김윤하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댓글로만 여론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말과 정보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지치는 시대죠. 개인 SNS나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언제나 할 수 있는 시대에 굳이 기사 바로 밑에 선정적인 형태로 즉각적인 댓글을 다는 것이 가장 진실한 여론의 척도일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서효인 우리나라처럼 포털에서 모든 언론사 뉴스를 제공하는 곳도 없을 뿐더러, 뉴스 제공자가 모든 댓글을 다 공개하는 시스템도 없죠. 영미권 언론사들은 누군가 댓글을 달면, 걸러서 통과된 것만 올려요. 기사 댓글도 초반에는 순기능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댓글로 매크로 조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죠. 쓸모없다는 게 판명이 난 것과 다름없어요. 이정수 그럼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서도 다음처럼 댓글을 아예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서효인 다른 커뮤니티로 반응들이 흩어지는 풍선효과가 당연히 있겠죠. 그래도 뉴스 댓글보다는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게 나은 거 같아요. 대다수의 커뮤니티들은 성격이 어느 정도 결정돼 있고, 우리가 거기 들어갈 때도 그 성격을 감안하고 들어가잖아요. 엠엘비파크와 여성시대의 성격이 다르고, 각각의 놀이문화가 있는 것이고요. 네이버와 다음은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는 국내에서 가장 큰 언론사에 속하는 거고요. 직접 생산하는 기사는 없더라도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는 차별금지법 통과돼야 이정수 설리 사망 이후에 구체적인 악플 규제 방안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뉴스 댓글을 없애는 것 외에 또 어떤 방안들이 있을까요. 김윤하 최근에 베이비복스 출신 배우 심은진이 고소한 악플러가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잖아요. 연예기획사들이 악플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혀 놓고 연예인 이미지를 고려해서 합의하는 경우도 대부분이죠. 하지만 전 심은진 같은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론에서도 악플과 공생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기사의 질을 낮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모두가 루저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봐요. 서효인 법망을 촘촘히 정비해야 하고요.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여부를 판단하기 이전에 어떤 말은 무조건 불법이 돼야죠. 계속 말만 나오고 진척이 없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돼서 성별, 지역, 성적 지향 등에 대한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안으로 처벌할 수 있을 때나 악플이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김윤하 성희롱 교육처럼 처벌 가능한 악플 사례를 정리해서 배포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본인은 악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상대방에게는 악플이 되는 것들도 적지 않거든요. 실질 사례를 중심으로 한 국가적 교육도 실행되면 좋을 것 같고요. 정리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대담자 소개합니다 김윤하(오른쪽) 대중음악평론가. 무대에 반해 시작한 케이팝 ‘덕질’도 어언 1n년차. 서효인(가운데) 시인, 작가, 문학편집자. 그러나 무엇보다 가요 애호가일 때가 가장 평화로운 사람. 이정수(왼쪽) ‘덕업일치’를 실현 중인 문화부 대중음악 담당 기자. 그룹 소방차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꼬마가 몸만 자랐다.
  • 강릉에 모인 국제영화제 수장들 “콘서트 같은 영화제 어떤가요”

    강릉에 모인 국제영화제 수장들 “콘서트 같은 영화제 어떤가요”

    지난 9일 강원 강릉의 명주예술마당에서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중심으로 세계 9개국 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예술감독 14명이 한자리에서 21세기의 첫 20년을 돌아보고 향후 80년을 내다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올해 첫발을 내디딘 강릉국제영화제의 국제포럼 ‘20+80’에서 이들은 넷플릭스 같은 OTT(실시간 동영상 서비스)의 풍랑 등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영화와 영화제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견을 전했다. ●한일 갈등으로 日영화제서 한국 작품 위축 세계 각국의 영화제들이 자국 정부의 검열과 정치적 압박, 예산 문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은 대동소이했다. 첫 개막 후 4년간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는 그 대가로 중국·대만 영화와 정치적인 내용이 담긴 영화를 상영 금지하는 등의 전방위적 압력을 받았다. 마에다 슈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일 정치 갈등 등으로 초청한 한국 영화에 대한 관객수가 더욱 줄어들어 예산 감축에 들어갔다”고 했다. 1990년대 옛 소련 정부의 만성적인 검열에 시달렸던 모스크바국제영화제는 이후에도 정부보다는 스폰서의 보조에 기대고 있다. 키릴 라즐로고프 모스크바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그러나 2008년부터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예산이 삭감됐다”며 “영화제 기간을 10일에서 8일로 줄이고 경쟁 부문에서도 각 작품의 감독들만 초청하기로 했다. 영화제 기간을 다시 늘리고 싶어도 못했다”고 말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영화제 위상이 추락한 것에 대한 진단도 줄을 이었다. 히사마쓰 다케오 도쿄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여년 전 도쿄영화제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제작 국가를 제외한 첫 상영)로 선보일 정도로 일본은 할리우드의 ‘넘버원 시장’이었다”며 “지금은 불법 복제된 영화들이 이미 상영 전에 유포돼 더이상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도쿄에 오지 않고 있다”고 한탄했다. ●함께 보는 영화… 4D 넘어 5D 극장 필요 각국의 영화인들은 영화제가 여전히 영화를 함께 보고 감상을 공유하는 축제의 장으로 기능한다는 것에는 공감대를 같이했다. 마르틴 테루안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오늘날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도, 젊은 세대들은 콘서트나 공연장에 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영화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영화제가 콘서트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더욱 주목해야 할 역할로 영화의 인간적인 면모,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라즐로고프 집행위원장은 젊은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키워드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예로 들며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극영화라든지, 실험적인 작품들을 영화제에서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영화 스스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윌프레드 웡 홍콩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향후 AI의 활약으로 번역이 자동으로 이루어져 자막 작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며 “4D를 넘어서는 5D의 도입 등 모든 영화관들이 콘텐츠나 외형 모두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 세계화” vs “지역성 강화 ” 이날 연사들 간에 영화제가 콘텐츠 세계화에 더욱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과 지역성에 기반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눈길을 끌었다. 웡 조직위원장은 홍콩에서 이뤄지는 중국과의 영화 공동 제작 작업을 소개하며 “훌륭한 예술 영화임에도 배급 시스템이 미비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제가 전 세계적인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는 창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새뮤얼 하미에르 뉴욕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역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의 경우에도 역사 문제로 소통에 제약이 있다”며 “미국에서는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한국에서는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각기 다른 시장에 제공하려고 하는 초파편화 현상, 로컬리제이션(지역화)이 추세”라고 지적했다. 강릉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세상의 시선은 까다롭고 별나지만 원칙 지키는 복희 사랑스럽고 유쾌해요

    세상의 시선은 까다롭고 별나지만 원칙 지키는 복희 사랑스럽고 유쾌해요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문은강 지음/다산책방/268쪽/1만 4000원‘괴팍하다’는 말의 정의는 얼마나 자의적인가. 나와 다르면, 세상의 잣대와 조금 다르면 우리는 ‘괴팍하다’는 말을 편의상 갖다 붙인다. 나의 편의가 남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고려 사안에 넣지 않은 채.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은강(27) 작가의 첫 장편소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에는 세상의 시선으로는 충분히 괴팍한 여자, 고복희가 나온다. 그는 무엇이든 원칙대로이며,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세상 금시초문인 ‘밤 12시 통금’이 있는 호텔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25년 동안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일할 때 학생들이 붙여 준 별명은 ‘로보트’이며, 소싯적 매주 토요일 밤 남자친구를 따라 간 디스코텍에서도 단 한 번 스테이지에 나서지 않았다. 테이블만 지켰다. 이런 고복희의 호텔 ‘원더랜드’에 불현듯 “앙코르와트를 보겠다”는 청년 백수, 박지우가 날아든다. 앙코르와트를 보겠다면서, 앙코르와트에서 7시간 넘게 걸리는 원더랜드를 숙소로 잡은 박지우에게 고복희가 말한다. “왜 여기로 왔습니까?” (중략) “여기가 캄보디아 수도 아니에요?” “불국사는 서울에 있습니까?” 반박 불가다.지난 6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 작가는 “무뚝뚝하고 융통성 없는 여성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다”라는 유성호 문학평론가의 추천사처럼, 고집불통 까칠남인 ‘오베’ 같은 남성 캐릭터는 ‘츤데레’라는 명목으로 사랑스럽게 그려지는 반면, 여성은 히스테릭한 인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거기에 격차를 뛰어넘어 서로를 보듬는 세대 간의 얘기도 함께 그리고 싶었다. 50대 여성 고복희와 20대 여성 박지우를 등장시켜서. 여기에는 증조 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이 한몫했다. “1920년생이신 할머니는 제 친구들만 오면 그렇게 먹을 것을 장롱에 숨기세요. 처음엔 너무 창피했죠. 근데 그땐 먹을 것 하나 이웃에게 나눠주면, 내가 먹을 게 없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가까운 가족부터 이해를 하게 되는 게 글 쓰는 재미인 거 같아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요즘 20대답지 않게 교민사회와 원더랜드를 종횡무진 들쑤시고 다니는 박지우는 작가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9개월간 생활하며 만난 교민 사회와 현지 청년들을 소설에 담았다. 교민 사회의 폐쇄성이나 일확천금을 꿈꾸고 왔다가 스러져 가는 사람들 등 어두운 부분들도 소설에 적극 노출된다. 고복희가 믿고 의지했던 한 사람, 남편 장영수와의 일화를 써내려 간 대목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대학생들의 수업 거부 시위, 2000년대 중반 재개된 새만금 간척 사업 등도 등장한다. 깊이 파고들진 않지만 고복희의 캄보디아행을 설명하는 데 필연적인 요소들이다. “우리 퇴직하면 남쪽 나라에서 살까요?”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은 새만금 사업 반대에 앞장서다 운명을 달리했다. 등단작 ‘밸러스트’에서 양극화,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썼던 작가는 한국에서도, 캄보디아에서도 일관되게 사회상을 응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복희는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인간이었고 나 역시 그녀의 방식으로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264쪽) 이 변수 많은 세상에 이토록 올곧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서른 살 터울의 젊은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따뜻한 소설이다. ‘괴팍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붙임성이 없이 까다롭고 별나다’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붙임성’이라는 게 얼마나 사적인 동기에서 유래하는지, ‘까다롭고 별나다’는 표현의 상대성을 되새기게 되면서, 남에게 쉬이 ‘괴팍’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없을 것 같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어린이 책] 절박하고 간절한 그들… 예상치 못한 벅찬 감동

    [어린이 책] 절박하고 간절한 그들… 예상치 못한 벅찬 감동

    어려서부터 그 말에 기대어 살게 하는 책이 있다. 루벤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소년 네로가 충견 파트라슈와 함께 그림을 보러 간 차가운 성당 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플랜더스의 개’가 그렇다. 그 동화를 읽고 눈물을 펑펑 흘렸던 이는 평생에 걸쳐 파트라슈처럼 큰 개를 볼 때의 감흥이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2001년 한국에서 출간된 동화 ‘조금만, 조금만 더’가 100쇄를 돌파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데도 20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은근한 저력은 캐릭터와 스토리의 힘에 있다. 주인공 윌리는 열 살밖에 안 된 소년이지만, 할아버지의 일부인 감자 농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윌리를 돌보던 할아버지는 이제 손가락으로 가느다랗게 의사를 전달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력해졌다. 이런 불가해한 상황에서도 이 소년, 결기가 대단하다. 우승 상금으로 농장을 되찾기 위해 사랑하는 개 ‘번개’와 함께 개 썰매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 것. “선생님이 모르는 게 있으면, 내게 물어보렴.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책을 찾아보고. 책을 찾아봐도 없으면, 네가 품고 있는 질문이 정말 좋은 질문이라는 뜻이다!”(31~32쪽)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소년이다. 한편 대회에는 개 썰매계의 불멸의 챔피언인 인디언 얼음 거인도 출전한다. 이 얼음 거인도 소년만큼이나 절실하다. 백인 주류 사회에서 차별받는 인디언인 그는 대회 상금으로 자신이 살던 땅을 되사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사람들이 모인 이 대회의 승자는 누가 될까. 마지막 장면, 먹으로만 표현된 마샤 슈얼의 담백한 삽화가 주는 감동이 여기서 폭발한다. 어려서 접했더라면, ‘플랜더스의 개’와 더불어 그 말에 기대어 살았을 것 같은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메가박스, 성수동 시대 개막

    메가박스, 성수동 시대 개막

    멀티플렉스 메가박스가 성수동 시대를 연다. 메가박스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신사옥을 마련하고 ‘라이프시어터 2.0시대’를 연다고 7일 밝혔다. 메가박스 성수동 사옥은 지하 5층, 지상 8층 높이에 총면적 2만 4388㎡ 규모로 조성됐다. 오는 8일에는 2층부터 5층, 그리고 7층과 8층에 7개관, 1041석 규모의 상영관을 갖춘 메가박스 성수점이 함께 들어선다. 이번 사옥 오픈은 메가박스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본거지 구축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성수동은 과거 공장 밀집 지대에서 최근 문화예술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메가박스는 지난 2017년 신규 CI와 함께 ‘라이프시어터’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발표, 영화만 보는 영화관이 아닌 고객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족시키는 극장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대형 멀티플렉스 3사 중 최초로 넷플릭스 최신 영화를 상영하며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메가박스는 향후 대도시 위주의 거점에 중대형 규모의 극장을 확보하고 콘텐츠 저변 확대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년에는 10개 이상의 신규 지점이 오픈 예정이며, IPO(기업공개)도 추진 중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아니 에르노·박완서… 여성 서사를 다시 펼치다

    아니 에르노·박완서… 여성 서사를 다시 펼치다

    문화계 전반이 여성 서사에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문학에서도 여성 서사 재발굴이 한창이다. 최근 민음사는 문고판 시리즈인 ‘쏜살 문고’를 통해 ‘여성 문학 컬렉션’을 출간했다. 쏜살 문고는 2016년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민음사가 내놓은 시리즈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가벼운 책에 작품 선정과 편집, 디자인에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컬렉션 1차분으로는 법이 금지한 임신 중절 경험을 정제된 문체로 서술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사건’, ‘무민 시리즈’를 만든 핀란드의 국민 작가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과 ‘두 손 가벼운 여행’ 등 여섯 권이 출간됐다. 강경애의 ‘소금’, 박완서의 ‘이별의 김포공항’,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 등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책도 함께 나왔다. 최정은, 최지은, 유진아, 김린, 박연미 등 여성 디자이너들의 활약으로 꾸민 표지 디자인도 이채롭다. 이어서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히구치 이치요, 캐서린 맨스필드와 거트루드 스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등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여성 작가와 여성 문학을 컬렉션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민음사는 “오늘날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 책을 둘러싼 문화와 산업 전반에 걸쳐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음에도 여성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은 부족하다”며 “매서운 분투 속에서 생존한 여성 문학을 새로이 기념하기 위해 이 컬렉션을 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백석문학상에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백석문학상에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제2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에 나희덕(53)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가 선정됐다고 5일 창비가 밝혔다.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1912~1996)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됐다.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하며 상금은 2000만원이다. 심사위원단은 선정 이유에 대해 “세계에 편재한 죽음의 증후들 속에서 비극적 인식의 언어를 거침없이 토로하면서 이제까지는 없었던 전혀 다른 시 세계를 보여 주며 리얼리즘 시의 예리한 갱신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액션에만 기댄 복수극, 다음 수가 보여 아쉽네

    액션에만 기댄 복수극, 다음 수가 보여 아쉽네

    5년 전, 교도소 독방에 갇힌 태석(정우성 분)과 벽을 사이에 두고 노크로 바둑을 두던 사내, 태석을 맞아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정체 불명의 ‘귀수’가 돌아왔다.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신의 한 수: 귀수 편’이다. ‘신의 한 수: 귀수 편’은 2014년 개봉해 관객 356만명을 동원한 영화 ‘신의 한 수’의 스핀오프(파생작)이다. 15년 시간을 거슬러 주인공 태석이 아닌 귀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귀수가 어떻게 ‘귀신 같은 수를 두는 자’라는 뜻의 ‘귀수’(鬼手)가 되었는지, 어린 시절 누이와 스승을 모두 잃고 전국의 바둑 고수들을 차례차례 격파하며 핏빛 복수극을 감행한다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바둑은 철저히 장치적인 요소다. 사활, 착수, 패착, 초읽기, 포석 등의 바둑 용어가 장별 부제로 등장하지만, 화투판보다 어려운 바둑을 설명하려니 겉도는 느낌이다. ‘어른 귀수’의 서사가 권상우의 복근을 화면 하나 가득 클로즈업하는 데서 시작하듯, 영화는 액션에 집중한다. 1980년대, 서울의 뒷골목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누아르 감성’은 있을지언정 신출귀몰하다거나 예측불가하지는 않다. 내기 도박에서 빠지지 않는 ‘손모가지 타령’이 되풀이되는데, 이미 ‘타짜’ 등에서 수차례 봐왔던 클리셰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여성 서사다. 범죄 피해자 이상의 역할이 없다. 귀수가 벌이는 복수극의 모태는 프로 기사 황덕용(정인겸 분)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어린 누이가 황 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황 기사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귀수는 황 기사의 딸 선희(스테파니 리 분)를 볼모로 그와 바둑을 둔다. 이 외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특별 출연한 다방 마담 역의 유선이 전부다. 빛나는 것은 오직 조연들의 연기다.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입바둑의 대가 김희원, 살벌한 눈빛으로 연기하는 장성무당 역의 원현준, 비슷한 시기 개봉하는 ‘블랙머니’에서는 중수부 검사 역을 맡은 ‘부산 잡초’ 허성태의 연기가 빛난다. 이에 비해 권상우의 연기는 비교적 평면적이다.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권상우는 6kg 이상의 체중 감량으로 기적에 가까운 몸매를 완성했다. 15년 전,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를 그대로 박제한 듯하다. 그러나 복수를 꿈꾸는 시종일관 어두운 캐릭터임을 감안하더라도, 미묘한 감정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귀수의 납작한 연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국내 최대 규모 ‘대산문학상’ 오은 시인·조해진 소설가

    국내 최대 규모 ‘대산문학상’ 오은 시인·조해진 소설가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7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으로 오은(왼쪽·37) 시인의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소설 부문에는 조해진(오른쪽·43) 작가의 ‘단순한 진심’이 선정됐다. 번역 부문에는 윤선영(51)씨와 필립 하스(49)가 독일어로 옮긴 박형서 작가의 소설 ‘새벽의 나나’가 뽑혔다. 평론과 함께 격년제로 심사를 진행하는 희곡 부문은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심사위원회는 오 시인의 시집에 대해 “언어 탐구와 말놀이를 통해 사람의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을 이끌어냈다”고 평했다. 한때 ‘언어유희가 전부’라는 평가를 듣고 고민이 많았다는 오 시인은 수상 소감으로 “독일에 있던 허수경 누나로부터 ‘네 시가 쓰이는 순간들을 사랑한다’는 문장의 메일을 받고 버티면서 썼다”며 세상을 떠난 허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소설 부문 수상작 ‘단순한 진심’은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해외 입양 임신부 ‘문주’를 등장시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로를 보여 줌으로써 개인의 역사를 복원하고 한국의 역사를 들춰냈다”는 평을 받았다. 총상금 2억원(부문별 5000만원)인 대산문학상은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문학상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걷다가 벼락 맞은 것 같은 한 해…올해는 하늬 하고 싶은 거 다 해

    걷다가 벼락 맞은 것 같은 한 해…올해는 하늬 하고 싶은 거 다 해

    ‘극한직업’ 차기작 론스타 다룬 ‘블랙머니’ 형사·검사 이어 변호사까지 연기 변신 미인대회·엄친딸 이미지 편견 딛고 연기 “작품은 선물 같다” 한·佛 합작 드라마도 3년 전 예능 프로그램(‘SNL코리아’ 시즌7)에 나와 “헤이~ 모두들 안녕? 내가 누군지 아니?” 했던 미스코리아는 이제 자기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는 흥행 배우가 됐다. 올 초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으로 관객 1600만명을 동원하고, 이어 방영된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시청률 20%를 가뿐히 넘긴 배우 이하늬(36)다. 2019년을 ‘하늬 하고 싶은 거 다 해’로 보낸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날 2019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은 그는 올해는 “선물 같다 못해 기적 같은 해”라고 했다. “1600만명이 넘는 영화를 만난다는 건, 배우 입장에선 걷다가 벼락 맞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얼떨떨하면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빨리 내려놓고 다음 캐릭터와 에너지를 준비해야죠.” 한 해의 막바지, 이하늬가 들고 나온 영화는 뜻밖에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 1985’(2012) 등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들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다.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12년 하나금융에 다시 매각하는 과정을 영화화했다. 이하늬는 ‘극한직업’의 형사, ‘열혈사제’의 검사에 이어 이번엔 변호사로 변신한다. 정 감독은 이하늬가 출연했던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은밀하고 위대한 동물의 사생활’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단다. 프로그램에서 그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친구를 독려하고 리더십을 발휘한 주도적인 모습을 보인 게 정 감독의 눈에는 영화 속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 김나리의 당당한 캐릭터와 겹쳤다.김나리를 만들기 위해, 정 감독이 이하늬에게 주문했던 네 글자는 ‘자신만만’이었다. 김나리는 냉철한 엘리트이면서도 사회 정의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감성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다. 이하늬는 “‘나 단단한 여자야’라고 표출하는 게 아니라 내재된 단단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분석을 소개했다.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유학파 변호사이자 외국 펀드의 법률 고문인 김나리의 영어 구사에 특히 힘을 쏟았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한국식 영어를 배워서 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일을 하고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경제 용어도 일상 용어처럼 입에 붙이는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 노력 끝에 영어로 국제 회의를 주관하는 김나리의 모습에는 전혀 위화감이 없다. 이하늬의 영어 연기에 도움을 준 건 2008년 미국의 연기 스튜디오로 떠났던 유학 경험이다. 오랫동안 국악을 수련해 온 사람이기에, 무대 서는 일의 무거움을 알았던 까닭에 결정한 일이었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데뷔한 이래 특별한 수식어가 없던 시절이지만 마음이 조급하진 않았다. “누군가는 ‘쟤 뭐하는 거야’ 할지언정, 저는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좀더 초탈해서 광범위하게 활동할 수 있었고요. ‘어떤 캐릭터든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연기하겠습니다’라는 마음들이 조금 전해진 거 같아요.” 남부러울 거 없는 ‘엄친딸’ 이미지이지만 그는 스무살 이후로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유학 생활도 경제적으로 녹록지 않았다. 연기를 처음 할 때 한 카메라 감독이 한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감독은 “너는 왜 이걸 하려고 그러냐? 안 해도 되잖아. 시집갈 수 있을 때 가라”는 말은 던졌다. 그때 그는 다짐했다고 털어놨다. “네, 시집가기 전에 배우로 잘 한 번 성장해 보겠습니다.”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에게는 코미디의 타이밍을, 정 감독에게선 배우로서 현장에서 누리는 자유로움을 배웠다. 현재 진행형으로 진화 중인 배우 이하늬에게 다음 목표는 뭘까. “배우로 아직은 이끼가 더 많이 껴야 하는 ‘중간에 있는 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열려 있는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도도 좋고, 할리우드, 유럽, 아프리카도 좋아요. 물론 배우에게는 작품은 선물처럼 와야 하는 거라 그 시기도 작품도 알 수 없지만 마음 한켠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최대 연예 에이전시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하늬는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는 한국·프랑스 합작 드라마 ‘클라우스47’(가제) 촬영을 앞두고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주는 대로 받지 마세요” 두 언니의 살뜰한 참견

    “주는 대로 받지 마세요” 두 언니의 살뜰한 참견

    잘나가는 에세이스트 임경선(47)과 뮤지션, 책방 주인, 책 팟캐스트 진행자로 분야를 가리지 않는 요조(38)가 만났다. 에세이집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문학동네)에서다. 책은 단짝 친구인 두 작가가 서로에게 보내는 교환 일기 형식이다. 이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 일기’라는 제목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녹음해 보내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일과 사랑, 삶, 생리, 섹스, 여행, 돈, 자유 등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전방위 토크를 이어 가다 30편의 녹음 파일에 여섯 편의 긴 글을 추가해 책으로 완성했다.두 여자가 말하는 세상살이 노하우는 이렇다. 책만 스무권째 출간하는 ‘베테랑 저술업자’ 임경선은 글노동자의 노력과 시간을 후려치는 기관과 단체들에 짱돌을 던진다. “그런데 이 일은 비용이 발생하나요?”(번역: 돈 안 줘요?) 다음은 이어지는 페이 협상법이다. ‘일을 의뢰하는 측에서 액수를 알려주면, 그 액수가 얼마이든 일단 해맑게 페이 액수가 적다고 피드백을 보낼 것.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음. (중략) 페이 네고했다고 해서 잘릴 정도면 애초에 해당 일에 관해서는 나는 그 정도의 대체 가능한 인물이었다는 뜻.’ 늘 이메일 폭탄에 둘러싸인 ‘책방 주인’ 요조에게는 무례한 메일에 대항하는 두 가지 회신의 원칙이 있다. ‘첫째, 아무도 기분이 상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이모티콘을 문장으로 표현해 본다.’ 다 큰 언니들의 교환 일기에는 짧지 않은 세월 몸으로 부닥쳐 배운 사실을 담았다는 힘이 있다. 거기에 애정을 더하면 더욱더. 자칭 ‘낙타와 펭귄’처럼 다른 두 여자의 쿨한 듯 살뜰한 참견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KBS, 독도 헬기 사고 영상 찍어놓고 숨겼나

    KBS, 독도 헬기 사고 영상 찍어놓고 숨겼나

    KBS가 독도 소방헬기 사고 관련 영상을 보유한 사실을 숨기고 독도경비대의 영상 공유 요청을 거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일고 있다. KBS는 지난 2일 ‘KBS 뉴스 9’에서 독도에서 추락한 소방헬기의 이륙 후 짧은 영상을 단독 보도 형식으로 공개했다. 3일 독도경비대 박모 팀장이라고 밝힌 인물은 한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 “KBS 영상 관계자들이 소방헬기 진행 방향 영상을 제공하지 않고 촬영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수십명이 이틀을 잠 못 자는 동안 다음날 편히 주무시고 나가는 것이 단독 보도 때문이냐”고 거듭 비판했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KBS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단독 보도를 위해 영상을 숨겼다는 비난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해명했다. KBS는 “영상은 독도에 고정 설치된 파노라마 카메라를 정비, 보수하기 위해 입도해 있던 본사 미디어송출부 소속 엔지니어가 휴대전화로 찍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직원은 경비대의 요청으로 본인이 찍은 화면 중 20초가량 되는 일부를 제외하고 곧바로 제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소방헬기 진행 방향 등이 담긴 화면을 제공해 달라는 경비대 측 추가 요청에는 “소방헬기 이착륙장 촬영의 보안상 문제에 대한 우려와 진행 방향과는 무관한 화면이라는 점을 들어 추가 화면은 없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이어 “경비대 관계자가 이 같은 설명을 들은 후 댓글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사는 관련 사실을 인지한 후 해당 화면들을 다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팀에 모두 넘기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전 동의 없이 휴대전화 촬영 행위를 한 점, 사고 초기에 촬영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점, 전날 보도 과정에서 이를 보다 철저히 확인하지 않은 점 등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이어 추가 조사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독도 헬기 추락영상 미공개 논란…KBS “경비대 요청에 즉각 제공”

    독도 헬기 추락영상 미공개 논란…KBS “경비대 요청에 즉각 제공”

    KBS가 독도 소방헬기 사고 관련 영상을 보유한 사실을 숨기고 독도경비대의 영상 공유 요청을 거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일고 있다. KBS는 지난 2일 ‘KBS 뉴스 9’에서 독도에서 추락한 소방헬기의 이륙 후 짧은 영상을 단독 보도 형식으로 공개했다. 3일 독도경비대 박모 팀장이라고 밝힌 인물은 한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 “KBS 영상 관계자들이 소방헬기 진행 방향 영상을 제공하지 않고 촬영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수십명이 이틀을 잠 못 자는 동안 다음날 편히 주무시고 나가는 것이 단독 보도 때문이냐”고 거듭 비판했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KBS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단독 보도를 위해 영상을 숨겼다는 비난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해명했다. KBS는 “영상은 독도에 고정 설치된 파노라마 카메라를 정비, 보수하기 위해 입도해 있던 본사 미디어송출부 소속 엔지니어가 휴대전화로 찍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직원은 경비대의 요청으로 본인이 찍은 화면 중 20초가량 되는 일부를 제외하고 곧바로 제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소방헬기 진행 방향 등이 담긴 화면을 제공해달라는 경비대 측 추가 요청에는 “소방헬기 이착륙장 촬영의 보안상 문제에 대한 우려와 진행 방향과는 무관한 화면이라는 점을 들어 추가 화면은 없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경비대 관계자가 이 같은 설명을 들은 후 댓글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사는 관련 사실을 인지한 후 해당 화면들을 다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팀에 모두 넘기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전 동의 없이 휴대전화 촬영 행위를 한 점, 사고 초기에 촬영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점, 전날 보도 과정에서 이를 보다 철저히 확인하지 않은 점 등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이어 추가 조사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11월, 영화 보기 좋은 날”…서울 도심서 즐기는 영화제

    “11월, 영화 보기 좋은 날”…서울 도심서 즐기는 영화제

    가을서 겨울로 가는 문턱, 11월은 영화 보기 좋은 날이다. 서울에서는 11월 한 달 각양각색의 영화제가 이어진다. 전 세계에서 날아든 단편영화와 퀴어영화, 장애를 넘어 모든 이가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영화 등 영화 팬들의 입맛에 맞춤한 영화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미래의 거장을 미리 만난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지난달 31일 개막한 제16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전 세계의 다채로운 단편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에서는 35개국 74편 경쟁 부문 상영작들이 국제경쟁 9개 섹션, 국내경쟁 3개 섹션, 뉴필름메이커 섹션으로 나뉘어 상영된다. 여기에 ‘시네마 올드 앤 뉴’를 포함해 ‘이탈리아 단편 특별전: 미래의 거장을 만나다’, ‘오버하우젠 뮤비 프로그램’, ‘숏쇼츠필름페스티벌 & 아시아 컬렉션’, ’특별상영: 캐스팅 마켓 매칭작’ 등 5개 섹션으로 구성된 특별 프로그램 상영작 43편이 더해져 모두 117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개막작은 웨이트리스 ‘조나’의 우연한 대화를 따라가는 영화 ‘버뮤다’와 은행 강도 사건을 독특하게 조명한 ‘약탈자들’이다. ●전 세계 퀴어 영화를 한 곳에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2019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는 전 세계 퀴어영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오는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올해 처음으로 국제영화제로 승격, 더욱 다양한 국가에서 출품된 31개국 100여편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개막작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프랑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결혼을 앞둔 여인과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를 비밀리에 그리는 여성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국내 퀴어 영화들을 선보이는 코리아프라이드섹션은 올해 처음 한국단편경쟁부분을 신설했다. 성소수자 부모의 시점, 혹은 부모가 등장하는 작품들(‘모르는 사이’, ‘전환치료’ 등)이 눈길을 끈다. 여자친구의 엄마인 형숙과 민진의 어색한 만남을 담은 ‘마더 인 로’는 민진 역에 배우 손수현의 등장으로 화제가 됐다.●장애·비장애를 넘어… 배리어프리영화제들 장애·비장애를 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들도 이 달 관객들을 손짓한다. 오는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CGV 피카디리1958에서 열리는 가치봄영화제는 올해 20회를 맞이한 장애인 영화제의 새 이름이다. 가치봄영화제는 전체상영작을 한글자막 화면해설 작품으로 상영하는 국내 최대의 장애인영화제이다. 무료 상영으로 개최되는 영화제는 에리카 데이비스 마시 감독의 미국 영화 ‘코다’를 개막작으로 29편의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을 선보인다.오는 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열리는 제9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는 장편 11편, 단편 13편 등 4개 부문 24편의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한다. 배리어프리영화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 등을 넣어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개막작 ‘일 포스티노’를 비롯해 ‘기생충’, ‘엑시트’, ‘봉오동 전투’ 같은 올해 개봉작, ‘커다랗고 커다랗고 커다란 배’, ‘김복동’ 같은 최신 영화, 앵콜 상영작인 ‘오즈의 마법사’ 등을 만날 수 있다.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에 참여한 영화 스태프들고 함께하는 씨네토크 등도 마련된다.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베스트셀러]김난도, 출간 동시에 1위… 82년생 김지영 2위

    [베스트셀러]김난도, 출간 동시에 1위… 82년생 김지영 2위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 2020’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리며 책 판매량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교보문고가 1일 온·오프라인 도서 판매량을 집계해 발표한 10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0’이 1위를 차지했다. 김 교수가 매년 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는 직장인들에게 새해 트렌드를 가늠하는 주요 참고서가 되었다. 30대 독자가 36.6%, 40대 독자가 27.1%로 전체 독자의 절반 이상 비중을 보였다. ‘밀리언셀러’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지난주에 비해 한 단계 상승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동명의 영화가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얻으며 책의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에 처음 방문한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신작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도 7계단 상승한 22위에 올랐다. 노벨문학상 특수도 이어지고 있다. 2018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은 26계단 상승한 34위, ‘태고의 시간들’은 1계단 하락한 52위를 기록했다. 2019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관객 모독’은 68위에 올랐다. 1. 트렌드 코리아 2020(김난도·미래의창) 2. 82년생 김지영(조남주·민음사) 3.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글배우·강한별 4. 흔한남매. 2(흔한남매·아이세움) 5. 90년대생이 온다(임홍택·웨일북) 6. 혼자가 혼자에게(이병률·달) 7. 여행의 이유(김영하·문학동네) 8. 십팔년 책육아(김선미·알에이치코리아) 9. 사피엔스(유발 하라리·김영사) 10.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손힘찬·부크럼)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불안한 영혼들의 도피처, 존엄을 묻는 천사의 도시

    불안한 영혼들의 도피처, 존엄을 묻는 천사의 도시

    방콕은 전 세계인들의 도피처다. 노점의 싸구려 음식들, 물 마시듯 마시는 맥주, 카오산로드에서 만나는 배낭족, 차오프라야강이 보이는 루프탑바 등. 돈과 시간을 마음껏 허비하며 취할 자유를 누리는 곳.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 곳이 ‘천사의 도시’ 방콕이 가지는 세계적 위상이다. ●김기창 작가 공간 3부작 2번째 도시 ‘방콕’ ‘방콕’은 2014년 장편소설 ‘모나코’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기창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의 공간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에서 까다롭고 냉소적인 노인에게 찾아온 마지막 사랑을 통해 고독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가는 이번에도 이국의 도시를 통해 묻는다. 인간 존엄이란 무엇인가. 베트남 국적의 불법체류 노동자 훙은 한국에서 일하다 손가락 세 개를 다친다. 회사에서 해고당한 홍은 사장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망치겠다며 복수를 감행한다. 쾌락을 충족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방콕으로 은퇴 이민을 온 백인 남성 벤은 현지에서 만난 와이의 육체에 탐닉한다. 와이는 벤을 전율케 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을까, 그래서 벤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돌릴까 늘 전전긍긍이다. 미국에서 동물권 수호를 위해 일하는 벤의 딸 섬머는 ‘개를 먹는 나라’ 한국에서 온 정우와 사랑에 빠지지만, 정우는 신변의 위협도 아랑곳 않고 전 세계를 누비는 섬머가 불안하기만 하다. 이들이 섞여드는 지점이 바로 방콕이다. 동물과 사람을 포괄하여 권리 의식에 관해 가장 예민해 뵈는 캐릭터인 섬머는 말한다. “하나의 생명체에게 지옥인 곳이 다른 생명체에게 천국일 수는 없다.” 이 말은 사실일까 아닐까. 소설을 읽다 보면 ‘하나의 생명체에게 지옥이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에게 천국’이라는 말이 더욱 자명한 진실 같다. 훙의 다친 손가락으로 공장주 윤 사장의 풍요가, 와이의 불안과 아름다운 육체를 디디고서야 벤의 쾌락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인생을 허비할 자유는, 누군가에 대한 착취로 일어난다는 게 방콕과 이 세계의 사회학이다.●빛과 어둠의 공존… 인간 존엄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읽는 내내 느끼는 모종의 불편함은 이렇게 부조리한 명제 위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느 캐릭터에도 심정적 동조를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온다. 벤을 닥달해 그악스럽게 관계를 거머쥐는 것 외에 다른 방책이 보이지 않는 와이와, 동물 보호에는 열심이면서 아빠와 아빠의 젊은 연인과의 관계에는 둔감한 섬머 등이 그렇다. 휘몰아치듯 이어지는 악의 연쇄작용에서 최하층 층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결국 여성이라는 현실도 그렇다. 손가락을 잃고 해고당한 훙이 ‘자신을 기억하라’며 윤 사장의 딸 정인에게 자행하는 복수나, 자신은 그냥 ‘차 한 잔 하자’고 했을 뿐이라며 해안 도로에서 만난 정인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남자의 폭력은 결국 여성이라서 당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늘 취하게 하는 도시, 방콕에서 술을 깨게 만드는 지점은 도처에 있었다. 젊은 현지 여성의 허리에 팔을 두른 나이 든 백인 남성, 화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호텔 루프탑 바로 아래 너절한 살림살이의 주택들이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지점을 탐색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일 거다. 소설 ‘방콕’ 속 베트남과 미국, 한국에서 날아든 인물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존엄이란 무엇이며, 이를 쟁취하기 위한 악다구니 속에서 너는 과연 어디에 있느냐고.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인 박형서의 소설 ‘새벽의 나나’와 함께, 이 책을 읽고 방콕으로 가면 천사의 도시가 달라 보일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詩적이고 영화 같은 그녀만의 K스릴러… 13개국이 반했다

    詩적이고 영화 같은 그녀만의 K스릴러… 13개국이 반했다

    글밥만 32년. 1987년 대학 졸업 후 줄곧 라디오·예능 프로그램의 작가 등으로 활약하며 자기가 쓴 소설을 직접 드라마·희곡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2010년 한국에서 출간한 소설 ‘잘 자요 엄마’는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전 세계 13개국에서 번역 출간을 준비 중이다. 지난 6월에는 ‘다운튼 애비’ 등을 만든 영국 드라마 제작사 카니발 필름과 영상화 판권 계약을 마쳤다. 이 전방위, 혼종의 작가를 최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추리 소설의 여왕’ 서미애(54) 작가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이유부터 물었다. “제 소설 보고 ‘유니크하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받아들일까 생각해 봤는데, 순문학 느낌도 있고, 어느 정도 시적이면서도 영화적인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시적이면서도 영화적인 느낌’에는 이유가 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담임 선생님 다섯 분이 국어 선생님이었다는 작가는 ‘대학에 국문과밖에 없는 줄 알고’ 단국대 국문과에 진학했다. 198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1994년에는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추리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두 신문춘예 사이, 그는 스스로 산문형 인간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제가 쓴 시에 대한 평을 들으면, 제 뜻이 이렇게 오도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웃음) 저는 그것보단 스토리에 관심이 더 많았어요. 추상적인 것보다는, 글을 읽으면서 풍경들이 그려지게 쓰는 게 좋더라고요.” 시에서 소설의 세계로 전향했지만, 시를 썼던 근육은 소설을 쓰는 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한국과 대만에서 출간된 소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남자 얘기를 해 보자’는 시 같은 메모 한 줄에서 시작됐다. “그 후에 우연히 세월호 희생 아이들의 빈방 전시회를 보게 됐어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은 아이가 없는 빈방을 바라보는 부모겠구나’ 싶더라고요.” 모종의 사건으로 딸을 잃은 아빠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에 막상 세월호 얘기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를 계속 쓰게 만드는 힘은 뭘까. 인간의 어두움에 대한 지독한 탐구다. 작가는 트릭이나 반전 위주의 셜록 홈스보다는 범죄 배경에 주목하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더 좋아한다. 예상치 못한 범인의 등장으로 허를 찌르는 작가의 소설 ‘잘 자요 엄마’, ‘목련이 피었다’ 등은 이들을 잉태한 사회에 더욱 주목하는 작품들이다. “악마도 열심히 달려왔고요.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에 나타나고 있어요. 사이코패스는 유전적이냐, 환경적이냐를 따지고 보면 어느 한쪽이라고 선뜻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우주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인간’이라고 얘기한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예요.” 작가는 과학 수사 다큐멘터리의 구성 작가로 일하며 부검의와 검시관, 프로파일러 등 한국 최고의 범죄 수사 베테랑들을 취재했다. 그 덕에 그가 그리는 범죄 현장은 사실적이다. 일선 경찰서 형사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느냐”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7~8년 전만 해도 작가는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아 글을 썼다가 장르문학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할 뻔한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 도서전에서 한국의 장르소설만 출간하겠다는 프랑스 출판사를 만날 만큼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한단다. “우리나라는 순문학의 영향이 있어서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심리적인 걸 많이 묘사하다 보니까 동적이지 않죠. 장르가 대세가 되는 이유는, 영상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미지화가 잘되는 장르 소설을 훨씬 더 편하게 여기기 때문인 거 같아요.” ‘요즘 대세’의 길을 일찌감치 선택했지만, 본인 스스로 휘발성이 강한 웹소설은 맞지 않다고 여겼다는 작가. 그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기 색깔을 갖는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온전히 사랑하기에 갖게 되는 ‘전지적 동물 시점’

    온전히 사랑하기에 갖게 되는 ‘전지적 동물 시점’

    ‘나의 비거니즘은 탐이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얼마나 생생한 존재인지 가까이서 오래 보지 않았다면 축산과 수산 현장에 관심을 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중략) 탐이에 대한 사랑과 그를 기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그에게 느끼는 동질감이 어떤 책임을 준다.’(이슬아, ‘새로운 우리’ 중에서)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 동물에 대한 사랑스러운 시선과 아름다운 기억을 담은 작품집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책은 동물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평범한 날들을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이들을 향한 가치 추구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길임을 역설한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왼쪽·문학동네)는 동물보호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진행하는 동물과의 일대일 결연 방식을 알리고, 결연 대상 동물들이 지낼 센터 건립 및 운영을 위해 기획됐다. 결연으로 동물들의 후원자가 된 김하나·이슬아·김금희·최은영·백수린·백세희·이석원·임진아·김동영 작가가 자신들의 오늘을 만든 동물에 대한 추억을 읊었다. 책의 판매 수익금 일부는 유기 동물 구호 및 동물 권익 수호에 쓰일 예정이다. ‘공공연한 고양이’(오른쪽·자음과모음)는 우리 삶에 등장한 ‘공공연한 존재’ 고양이를 조명한 짧은 소설 10편을 모았다. 치즈태비 고양이 ‘봄’의 엄마인 조남주 작가와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최은영 작가 등 고양이와 직간접적 묘연을 가진 소설가들이 힘을 보탰다. 고양이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김멜라, ‘유메노유메’), 고양이가 세상을 떠날 땐 고양이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조예은, ‘유니버설 캣샵의 비밀’) 등의 한번쯤 해 봄 직한 상상들을 기초로 ‘다정한 이웃’ 고양이의 세계를 직조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빌런 전성시대, 불평등에 따른 분노… ‘짠한 악당’ 조커에 빠지다

    빌런 전성시대, 불평등에 따른 분노… ‘짠한 악당’ 조커에 빠지다

    영화 ‘조커’의 흥행이 무섭다. 화제작 ‘82년생 김지영’의 개봉, 디즈니 애니메이션 ‘말레피센트2’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수일 내 500만명 돌파는 무난하리라는 전망이다. 핼러윈 시즌에 가장 인기 있는 코스튬 플레이는 역시 ‘조커’였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내 죽음이 삶보다 ‘가취’ 있기를”,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등의 대사가 끊임없이 회자된다. ‘조커’는 하나의 문화·사회 현상이 됐다. ‘조커’는 희대의 악당이자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탄생을 그렸다. DC코믹스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캐릭터와 배경을 가져왔지만, 독립적 세계관 속에서 스토리를 재창조했다. ‘스타 이즈 본’(2018) 등을 제작한 토드 필립스 감독이 메가폰을 든 영화는 코믹스 기반 영화 최초로 올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데 이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 초, 부자와 빈자의 불평등이 극에 달한 고담시. 코미디언을 꿈꾸는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에게 한 자루의 총이 주어지며 격변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골자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는 반응에서부터 ‘불편하다’는 얘기까지, SNS상에서는 영화의 결말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왜 이 어두운 영화를 보는가. 왜 ‘조커’에 열광하는가.●세계가 열광하는 빌런 영화 ‘조커’는 결국 ‘조커’라는 불세출의 캐릭터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중론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원형을 가져온 조커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는, 아이러니가 집약된 캐릭터다. 조커는 최고의 악당인 동시에 그 악의 기원도 알 수 없었다. ‘라이벌’ 배트맨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배트맨 비긴스’(2005) 등을 통해 탄생 배경이 널리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스터리해서 더욱 기괴한 인물 조커는 ‘다크 나이트’(2008)의 히스 레저(1979~2008)라는 걸출했던 조커의 부재 이후, 더욱 신화가 됐다. 베일에 싸인 인물 ‘조커’의 인기는 최근 ‘빌런’이 주목받는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악당을 의미하는 빌런이, 요즘은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평범한 사람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괴짜’를 일컫는 말로 확장돼 널리 사용된다. 이는 마블이나 DC코믹스 등의 히어로물에서 평범한 인물이 과도한 집착이나 이상한 계기 탓에 빌런이 되는 것을 빗댄 말이다. 마블의 ‘어벤저스 시리즈’에서도 전 우주적 악당인 ‘타노스’에 공감하는 것처럼 최근 ‘빌런’에 대한 공감은 전 세계적이다. 한때 ‘조커’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까지 올라섰던 ‘말레피센트2’도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등장하는 마녀의 전사를 그린 영화다.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선(善)은 평면적이고 악(惡)은 입체적”이라며 “세상도 선보다는 악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다 보니 악에 대한 소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허희 영화 칼럼니스트는 “요즘은 괴테의 고전 ‘파우스트’를 재해석할 때도 ‘메피스토’라는 악인에게 더욱 주목한다”며 “조커는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난쟁이 동료는 죽이지 않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무분별한 살인마가 아니라는 것, 나쁘긴 나쁜데 극한의 악한이 아닌 ‘짠한 악당’이라는 점에서 캐릭터가 주는 호소력이 있다”고 했다. 단순한 선인보다 내면의 복잡함을 가진 악인에게 주목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다. 여기에 완벽히 새로운 조커로 분한 호아킨 피닉스(45)의 연기도 인기에 한몫한다. ‘글래디에이터’(2000)에서 폭군 ‘코모두스’를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피닉스는 한 사람의 연기에 전적으로 기대는 영화 ‘조커’에서 절대적으로 빛나는 존재다. 극한의 다이어트를 통해 직조해 낸 앙상한 등, 신경질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 계단에서 아슬아슬 너울너울하며 추는 춤 등 피닉스는 조커 그 자체다. ‘제2의 제임스 딘’이라 불리웠던 형 리버 피닉스(1970~1993)의 그늘에서 드디어 빛을 본 셈이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커’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사회적 불평등에 따른 상위 10%를 향한 분노’다. 대저택에서 지하에 이르기까지 계층 구조가 뚜렷한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이 처단하는 박사장(이선균 분)은 상위 10%에 속하는 인물이다.불평등이 만연한 고담시에서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병을 앓는 아서 플렉은 무료 정신과 상담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그가 가장 먼저 총을 겨눈 이들이 월스트리트의 증권맨들이다. 조커의 총격을 기화로 성난 군중은 광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몰려나온다. 허 칼럼니스트는 “2011년 금융 자본주의에 반대한 뉴욕의 월가 시위에서 ‘가이 포크스’ 가면이 등장한 것과 똑같은 격”이라고 분석했다. 강 평론가는 “‘기생충’의 박사장이나 ‘버닝’의 벤 등 우리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불평등의 표지에 대한 분노가 훨씬 더 강렬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상위 10%는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같은 기존의 슈퍼 히어로처럼 지구 전체를 구원하는 인물들에게서는 보호를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조커’ 같은 빌런은 이들을 벌하며, 나름의 ‘정의’를 실현한다. 특히 조커는 젊은 싱글 남성들에게 소구한다는 분석이 많다. CGV 관객 분석에 따르면 실제 ‘조커’ 개봉일인 지난 2일부터 최근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들 중 남성 관객이 42.8%, 여성이 57.2%다. 반면 ‘조커’는 남성 관객 비중이 50.4%로 여성(49.6%)을 앞지른다. 남녀 합쳐 20대 관객이 42.6%, 30대 관객이 29.7%로 ‘2030’ 관객이 70%를 넘는다. 강 평론가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대우받던 시절이 사라지며 박탈감을 느끼는 남성들이 많다”며 “세계와 접점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조커처럼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는 싱글 남성들에게도 굉장히 노력했지만 멸시만 받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30 사이에서 ‘조커’를 두고 “자기 연민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 한국에서였으면 국밥 한 그릇, 소주 한 잔에 훌훌 털어 버렸다”는 우스개가 회자되는 것도, 고담시보다 ‘헬조선’이라는 자기 연민 탓이다. 조커의 화제성과 함께 불거지는 것이 폭력성 미화, 모방범죄 논란 등이다.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극장 상영 도중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던 미국에서는 더욱 민감한 분위기다.●“카타르시스”vs “불편” … 결말 갑론을박도 그러나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영화의 몰입도나 연출적인 미학이 높기 때문에 우려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풍토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미국에서 극장 총기 난사 등의 사건이 일어난 것은 총기를 소지하는 나라의 문제점이지 영화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N차 관람’에 힘입어 조커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가진 철학적 메시지나 미장센 등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의 재관람률은 3.5%로 기생충(5.2%)보다는 낮지만, 같은 기간 상영된 인기 영화 10편 평균(1.4%)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누구나 아는 캐릭터라는 대중성에 베니스영화제 최고상 수상이라는 예술성을 동시에 확보한 데다, 직접 보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 영화라는 이유도 여기에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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