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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평론가의 시선, 문학을 둘러싼 시간을 보다

    젊은 평론가의 시선, 문학을 둘러싼 시간을 보다

    작품 안팎 시간의 상호작용 주목 ‘맘충’의 페미니즘적 재현 비교도지금 이 시대를 문학 안팎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비평집이 출간됐다. 2012년 ‘세계의 문학’ 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허희(35)의 ‘시차의 영도’(민음사)다.처음으로 펴내는 비평집에서 젊은 평론가가 주목한 것은 ‘시간’이다. 작품이 탄생한 당대의 시간, 당대에서 문학이 포착해 낸 시간, 작품을 읽은 뒤 독자가 생성해 낸 시간 등 텍스트 안팎에 놓인 시간들과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가령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느닷없이 자식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인 영화 ‘비밀은 없다’(2015)를 중첩시켜 ‘맘충’이라는 소재의 페미니즘적 재현을 살펴보는 식이다. ‘조남주 작가가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엄마는 맘충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면, 이경미 감독은 영화에서 “엄마가 맘충이면 어때?”라고 반문한다’(39쪽)는 게 평론가의 분석이다. 그 이유는 영화 속 캐릭터 연홍이 행한 복수극은 ‘그녀가 뒤늦게 끌어낸 모성의 위력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는 것’(43쪽)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 시대를 그대로 보여 주거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통해 현재를 비춘 김사과·윤이형·박민규·김중혁의 소설, ‘전통’과 ‘현대’라는 키워드로 김언, 박소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화자로 한 ‘엄마, 나야’와 같은 시를 돌아본다. ‘문학은 그 자체로 가치 있지 않다. 이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인간과 다른 점이다.’(5쪽) 문학 비평서치고는 도발적인 책머리다. 평론가는 최근 몇 년 새 문단을 휩쓴 ‘미투’와 표절 논란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한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문학작품을 읽고 쓴다는 것뿐 아니라, 자기가 지향하는 문학적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중략) 만약 그런 것이 문학(적 삶)이라고 한다면, 문학 따위 할 필요 없다.’(25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0과 1이 두려운 아날로그 시인, ‘키워드’를 던지다

    0과 1이 두려운 아날로그 시인, ‘키워드’를 던지다

    0과 1, 디지털로 모든 현상을 표현하는 시대. 아날로그의 문법을 따르는 시집이 출간됐다. 2007년 ‘월간문학’,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은묵(52) 시인의 ‘키워드’(문학수첩)이다.2014년 첫 시집 ‘괜찮아’(푸른사상)를 내기도 전에 수주문학상, 천강문학상,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시인의 시집은 아날로그의 온기를 전하는 데 특화됐다. 태생이 ‘모노타입’이라고 밝힌 시인은 “점심을 굶고 구입한 건전지 두 개로는 뇌를 작동할 수 없어” 수시로 “태엽을 감”는다. “0과 1이 두려워서”라고 고백했지만 실상은 체온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디지털은 눈물이 없다/눈물은 아날로그의 오류//좌표를 지운 섬에서 살았다/0과 1이 두려워 세상의 모든 질문에 아날로그로 대답했다’(92쪽, ‘아날로그의 뇌’ 일부) 첫 시집에서부터 누워야만 목소리가 들리는 바닥의 존재들에 관심을 가져온 시인은 이번에도 바닥 너머로 시선이 향한다. ‘개미굴의 아침은 등 굽은 수드라처럼 쉬 펴지지 않지 직립보행을 꿈꾸던 일개미들이 기지개를 켜네’(118쪽, ‘황금배열 몬스터’ 일부)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개미굴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서둘러 집을 나서는 일개미들의 자화상이다. 이들을 구원할 출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시인은 암담한 현실에 맞서 희망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늘을 화장으로 덧씌우지 않아도 좋은 당신의 계절을 향해/계단이 새로 돋고 있었다’(135쪽, ‘다행이다’ 일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스크린으로 옮긴 ‘메모리’…왜 자꾸 시계를 보게 될까

    스크린으로 옮긴 ‘메모리’…왜 자꾸 시계를 보게 될까

    캐스팅 화려… 특별한 줄거리는 없어 줄곧 이어진 노래, 피로감 느끼기도1981년 초연 이후 30여개 국가, 300여개 도시에서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 원작에 ‘레미제라블’을 만든 톰 후퍼 감독, 제니퍼 허드슨, 테일러 스위프트, 주디 덴치 등 화려한 캐스팅까지 더해 영화 ‘캣츠’에 쏠린 관심은 뜨거웠다. 의인 아니 의묘화된 인간의 모습이 무대 아닌 스크린에 올랐을 때의 모습이 어떨지, 설명이 필요 없는 히트 넘버들은 어떻게 재현될지 세간의 추측이 쏟아졌다. 막상 뚜껑을 열자, 전 세계 유력 언론들에서 악평에 가까운 혹평이 쏟아졌다. “전혀 본 적 없는 끔찍한 장르의 포르노를 보는 느낌”(뉴욕타임스), “완벽하게 끔찍한 고양이 토사물”(가디언) 등이다. 정작 한국에서는 이 같은 평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리트윗돼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했고,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부른 ‘메모리’(Memory) 영상이 1000만뷰를 기록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섰다. 23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한국에 공개된 ‘캣츠’는 ‘사람에게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도시의 쓰레기장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세계’라는 원작 서사에 충실했다. 1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젤리클 고양이 축제가 점점 무르익는 가운데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이드리스 엘바 분)의 등장으로 위기에 빠진다는 내용 그대로다. 뮤지컬도 T S 엘리엇(1888~1965)의 동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라는 원작에서 가져왔다. “구조는 있는데 스토리는 없는 것이 ‘캣츠’의 특별한 지점”이라는 시나리오 작가 리홀의 말처럼 ‘축제’라는 설정 외에 특별한 줄거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는 서사를 만들기 위해 버려진 고양이 빅토리아(프란체스카 헤이워드 분)를 등장시켜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한다. 1980년대가 배경인 뮤지컬과 달리 영화는 193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소호와 런던 시내 중심가의 좁은 골목을 걷는다. 원작자 엘리엇이 살았던 시대를 끄집어낸 것이다. 영화에서 독보적인 것은 빅토리아의 존재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헤이워드는 발레가 곁들여진 가뿐한 몸놀림, 유려한 몸 선으로 절로 시선을 끈다. 청아한 고음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묵직한 보이스의 그리자벨라(제니퍼 허드슨 분)와 어우러져 ‘메모리’에 깊이를 더한다. ‘마성의 고양이’ 럼 텀 터거 역의 제이슨 드룰로의 퍼포먼스는 재기 발랄하고, 젤리클 고양이 축제를 주재하는 ‘올드 듀터로노미’ 역 주디 덴치의 카리스마는 빛난다. 문제는 고양이를 표현하는 인간의 한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뮤지컬과 영화라는 매체의 차이에서 오는 듯하다. 대사 없이 줄곧 노래만 이어지는데, 뮤지컬과 달리 현장성이 없다 보니 간헐적이던 경이감이 피로로 이어진다. 주위 집중할 만한 줄거리가 없어 결코 길다고 보긴 힘든 러닝타임 109분이 길게 느껴졌다. 12세 관람가. 24일 개봉.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재난영화면서 버디무비… 하정우 연기 센스 돋보여” “재난 상황 극복 흥미로워… 이병헌 형 연기는 완벽해”

    “재난영화면서 버디무비… 하정우 연기 센스 돋보여” “재난 상황 극복 흥미로워… 이병헌 형 연기는 완벽해”

    연말 ‘텐트폴’(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로 불리는 ‘백두산’의 흥행이 심상찮다. 개봉 나흘째인 22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000만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2017), ‘극한직업’(2019)과 같은 속도다. ‘백두산’은 백두산의 마지막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해준·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더욱 관심이 쏠린 것은 ‘충무로 대표 배우’ 이병헌(49)과 하정우(41)의 첫 만남이다. 이들을 만나 촬영 뒷얘기, 둘 사이 ‘케미’(케미스트리) 등을 들어 봤다.■ 북한 무력부 소속 요원役 이병헌 “기존 재난영화가 재난 이전 사람들의 삶을 옴니버스 스타일로 보여 주고, 그들이 상황을 해결하고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 줍니다. ‘백두산’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공동의 목표로 ‘적과 동침을 하는 버디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할까요.”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병헌은 자신이 주연한 영화 ‘백두산’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북한 무력부 소속 요원 리준평을 연기한다. 남한 측 스파이 활동을 하다 발각돼 지하 감옥에 갇히지만, 남한에서 온 특전사 대위 조인창(하정우 분)과 함께 백두산 폭발을 막는다. 이병헌은 영화에서 그야말로 팔색조 연기를 펼친다.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가 북한말을 하며, 딸 앞에서는 뜨거운 부성애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남한 측 폭발물처리반과 능청맞게 농담을 하다 순식간에 서늘한 눈빛으로 돌변한다. 이를 받아내는 다른 주연 배우 하정우와의 합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정우씨는 평소에도 순발력과 유머가 있습니다. 배우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행동이 어색하게 굳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정우씨는 카메라 앞에서도 그 재능을 발휘합니다. 자기만의 센스를 연기에 잘 녹여내는 스타일이죠.” 하정우는 지난 18일 기자시사회에서 이병헌에 대해 “감정 하나하나까지 계산해 연기하는 ‘연기기계’ 같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굉장히 급박한 신을 찍고서 한 시간 이상 쉬었다가 다시 찍을 때가 있어요. 보통은 감정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죠. 그걸 두고 하정우씨가 ‘감정의 양을 딱 맞춰서 다시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장면과 감정의 적정선을 잘 찾아 연기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는 규모 큰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해 소규모 영화를 가리지 않고 매년 1~2편의 영화를 찍는다. TV 드라마에서도 맹활약이다. “쉼 없이 달려온 터라 힘들 때도 있지만, 시나리오를 읽다가 재밌다 싶은 것은 무조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내년이면 벌써 데뷔 30년이다. 그래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이 끝없다. ‘굳이 쉬려 하지 말자’, ‘나는 못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면서 자신을 다독이기도 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좀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를 더 먹기 전까지 액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다”고도 했다. “존경하는 배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을 롤모델로 정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연기하고 어떻게 나이 든 배우가 될지 저 자신도 궁금하긴 합니다. 지금은 좋은 작품을 만나고, 그 속에서 연기하는 게 가장 큰 목표죠.”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북한에 급파된 특전사 대위役 하정우 배우 하정우의 수식어 중 하나가 ‘재난 영화 장인’이다.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테러범의 협박을 받는 뉴스 앵커, ‘터널’(2016)에서는 개 사료를 먹으며 버티는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이었다. 이번 ‘백두산’에서는 전역을 앞두고 북한에 급파된 특전사 대위 조인창 역이다. 왜 재난영화에 등장한 그는 그토록 인상적일까.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꺼내 들어 설명했다. “차 안에 갇혀서 고통받더라도 일단은 적응하고 이겨낼 방법을 찾아봐야 하잖아요. 긍정적인 하정우라면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낼까…. 그런 제 태도나 해석을 흥미 있어 하시는 게 아닐까요.” 함께 백두산 폭파 작전에 나선 북한 무력부 요원 리준평(이병헌 분)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허당에 ‘쫄보’인 조인창의 인간적인 면은 그가 직접 설정했다. “‘인간 병기’인 리준평의 완벽함과 대비도 되고요. 어느 지점부터 인물이 상황에 적응해서 성장해 나간다면 재밌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더록’(1996)에서 생화학무기 전문가로 활약한 니컬러스 케이지를 참고했다. “니컬러스 케이지가 감옥 가는 수송기 안에서 다리를 떠는 모습이 나와요. 캐릭터를 굉장히 가성비 있게 잘 표현한 장면입니다.” 하정우는 영화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병헌, 마동석, 배수지 등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은 그의 힘이 컸다. 마동석은 ‘신과 함께- 인과 연’ 프로모션차 방문한 대만의 한 호텔방에서 맥주 한 잔에 섭외했고, 이병헌은 ‘미스터 션샤인’을 한창 촬영할 당시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 이렇게 이루어진 충무로 대표 배우의 만남. ‘강대강’일 것 같은 둘의 케미는 의외로 부드러운 데가 있다. 영화 중반부 장갑차를 세워 두고 밖에서 소변 보는 리준평과 차 내부에서 필사적으로 수갑을 푸는 조인창의 ‘티키타카’는 거의가 다 애드리브다. 실상 촬영은 다른 세트에서 찍었다. “병헌이 형이 찍은 걸 보니 애드리브를 많이 쳤더라고요. 그 변주를 보고서 저도 다시 했죠.” 능청에 능청을 거듭하는 아재 개그의 향연에, 긴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식’ 웃음이 난다. 뜻밖에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아내 지영(배수지 분)과의 애정신이다. 볼을 만지고, 혀 짧은 목소리로 애칭을 부른다. “연기할 때는 민망하고, 나중에 봤을 땐 오글거렸어요. 제 스타일 아닌데”라고 웃으면서도 찍고 싶은 영화는 늘 ‘로맨틱 코미디’란다. “일반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멋진 하루’(2008)에 나왔던 병운이 같은 사람, 다시 연기해 보고 싶네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재난영화면서 버디무비…하정우 연기 센스 돋보여“ “재난 상황 극복 흥미로워…이병헌 형 연기는 완벽해”

    “재난영화면서 버디무비…하정우 연기 센스 돋보여“ “재난 상황 극복 흥미로워…이병헌 형 연기는 완벽해”

    연말 ‘텐트폴’(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로 불리는 ‘백두산’의 흥행이 심상찮다. 개봉 나흘째인 22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000만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2017), ‘극한직업’(2019)과 같은 속도다. ‘백두산’은 백두산의 마지막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해준·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더욱 관심이 쏠린 것은 ‘충무로 대표 배우’ 이병헌(49)과 하정우(41)의 첫 만남이다. 이들을 만나 촬영 뒷얘기, 둘 사이 ‘케미’(케미스트리) 등을 들어 봤다.■ 북한 무력부 소속 요원役 이병헌 “기존 재난영화가 재난 이전 사람들의 삶을 옴니버스 스타일로 보여 주고, 그들이 상황을 해결하고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 줍니다. ‘백두산’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공동의 목표로 ‘적과 동침을 하는 버디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할까요.”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병헌은 자신이 주연한 영화 ‘백두산’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북한 무력부 소속 요원 리준평을 연기한다. 남한 측 스파이 활동을 하다 발각돼 지하 감옥에 갇히지만, 남한에서 온 특전사 대위 조인창(하정우 분)과 함께 백두산 폭발을 막는다. 이병헌은 영화에서 그야말로 팔색조 연기를 펼친다.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가 북한말을 하며, 딸 앞에서는 뜨거운 부성애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남한 측 폭발물처리반과 능청맞게 농담을 하다 순식간에 서늘한 눈빛으로 돌변한다. 이를 받아내는 다른 주연 배우 하정우와의 합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정우씨는 평소에도 순발력과 유머가 있습니다. 배우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행동이 어색하게 굳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정우씨는 카메라 앞에서도 그 재능을 발휘합니다. 자기만의 센스를 연기에 잘 녹여내는 스타일이죠.” 하정우는 지난 18일 기자시사회에서 이병헌에 대해 “감정 하나하나까지 계산해 연기하는 ‘연기기계’ 같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굉장히 급박한 신을 찍고서 한 시간 이상 쉬었다가 다시 찍을 때가 있어요. 보통은 감정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죠. 그걸 두고 하정우씨가 ‘감정의 양을 딱 맞춰서 다시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장면과 감정의 적정선을 잘 찾아 연기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는 규모 큰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해 소규모 영화를 가리지 않고 매년 1~2편의 영화를 찍는다. TV 드라마에서도 맹활약이다. “쉼 없이 달려온 터라 힘들 때도 있지만, 시나리오를 읽다가 재밌다 싶은 것은 무조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내년이면 벌써 데뷔 30년이다. 그래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이 끝없다. ‘굳이 쉬려 하지 말자’, ‘나는 못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면서 자신을 다독이기도 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좀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를 더 먹기 전까지 액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다”고도 했다. “존경하는 배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을 롤모델로 정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연기하고 어떻게 나이 든 배우가 될지 저 자신도 궁금하긴 합니다. 지금은 좋은 작품을 만나고, 그 속에서 연기하는 게 가장 큰 목표죠.”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북한에 급파된 특전사 대위役 하정우배우 하정우의 수식어 중 하나가 ‘재난 영화 장인’이다.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테러범의 협박을 받는 뉴스 앵커, ‘터널’(2016)에서는 개 사료를 먹으며 버티는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이었다. 이번 ‘백두산’에서는 전역을 앞두고 북한에 급파된 특전사 대위 조인창 역이다. 왜 재난영화에 등장한 그는 그토록 인상적일까.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꺼내 들어 설명했다. “차 안에 갇혀서 고통받더라도 일단은 적응하고 이겨낼 방법을 찾아봐야 하잖아요. 긍정적인 하정우라면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낼까…. 그런 제 태도나 해석을 흥미 있어 하시는 게 아닐까요.” 함께 백두산 폭파 작전에 나선 북한 무력부 요원 리준평(이병헌 분)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허당에 ‘쫄보’인 조인창의 인간적인 면은 그가 직접 설정했다. “‘인간 병기’인 리준평의 완벽함과 대비도 되고요. 어느 지점부터 인물이 상황에 적응해서 성장해 나간다면 재밌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더록’(1996)에서 생화학무기 전문가로 활약한 니컬러스 케이지를 참고했다. “니컬러스 케이지가 감옥 가는 수송기 안에서 다리를 떠는 모습이 나와요. 캐릭터를 굉장히 가성비 있게 잘 표현한 장면입니다.” 하정우는 영화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병헌, 마동석, 배수지 등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은 그의 힘이 컸다. 마동석은 ‘신과 함께- 인과 연’ 프로모션차 방문한 대만의 한 호텔방에서 맥주 한 잔에 섭외했고, 이병헌은 ‘미스터 션샤인’을 한창 촬영할 당시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 이렇게 이루어진 충무로 대표 배우의 만남. ‘강대강’일 것 같은 둘의 케미는 의외로 부드러운 데가 있다. 영화 중반부 장갑차를 세워 두고 밖에서 소변 보는 리준평과 차 내부에서 필사적으로 수갑을 푸는 조인창의 ‘티키타카’는 거의가 다 애드리브다. 실상 촬영은 다른 세트에서 찍었다. “병헌이 형이 찍은 걸 보니 애드리브를 많이 쳤더라고요. 그 변주를 보고서 저도 다시 했죠.” 능청에 능청을 거듭하는 아재 개그의 향연에, 긴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식’ 웃음이 난다. 뜻밖에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아내 지영(배수지 분)과의 애정신이다. 볼을 만지고, 혀 짧은 목소리로 애칭을 부른다. “연기할 때는 민망하고, 나중에 봤을 땐 오글거렸어요. 제 스타일 아닌데”라고 웃으면서도 찍고 싶은 영화는 늘 ‘로맨틱 코미디’란다. “일반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멋진 하루’(2008)에 나왔던 병운이 같은 사람, 다시 연기해 보고 싶네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그래서 연말에 무슨 영화를 봐야 하냐고요?

    그래서 연말에 무슨 영화를 봐야 하냐고요?

    이른바 연말 텐트폴 영화(유명 감독과 배우에 거대 자본을 투입해 제작한 영화)의 습격이다. 마동석·박정민·정해인 주연의 ‘시동’이 지난 18일 개봉한 데 이어 이병헌·하정우 투톱에 마동석이 또 나오는 블록버스터 ‘백두산’도 19일 개봉했다.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최민식·한석규 콤비의 ‘천문’은 크리스마스를 하루 지난 26일 개봉한다. 남성 콤비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들 영화들에 별점과 ‘케미’(케미스트리) 지수를 따로 매겨봤다. ●시동: 필연적이지만 간헐적인 웃음 시동 ‘노란 머리’ 반항아 ‘택일’(박정민 분)은 학교도 싫고 집도 싫고 공부는 더더욱 싫은 ‘미운 열여덟’이다. 배구 선수 출신 엄마(염정아 분)에게 ‘1일 1강스파이크’라는 매를 벌다 1만원으로 갈 수 있는 곳 군산에 이르렀다. 거기서 만난 기묘한 중국집 ‘장풍반점’, 더욱 남다른 포스의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 분)을 만나 겪는 성장담이 ‘시동’의 주요 줄거리다.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필모그래피를 꽉 채운 박정민과 존재 자체가 웃긴 마동석이 만났다. 그러나 웃음이 필연적인 동시에 간헐적이라는 것이 ‘시동’의 한계다. 꽉 짜여진 스토리 라인으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비주얼이나 디테일로만 승부를 보기 때문이다. 전작 ‘유열의 음악앨범’에서도 반항하는 청춘이었지만 좀더 ‘멜로’한 인물이었던 정해인은 여전히 멜로스러운 눈빛 연기를 이어가 다소 불안하다. 어딜 가서 먹어도 실패는 없지만, 특별히 맛나지는 않은 짜장면 같은 영화. 별점 지수: ★★★ (5개 만점) 케미 지수: ★★☆ ●백두산: 압도적 스케일의 CG… 공감은 ‘글쎄’ 백두산이 폭발한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한반도는 아비규환이 되고,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추가 폭발이 예측된다. 사상 초유의 재난을 막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 전유경(전혜진 분)은 백두산 폭발을 연구해 온 지질학 교수 강봉래(마동석 분)의 이론에 따른 작전을 계획하고, 전역을 앞둔 특전사 대위 조인창(하정우 분)이 이 작전에 투입돼 북한으로 급파된다.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이병헌 분)과의 접선에 성공하지만, 오랜 세월 이중 스파이로 살아온 리준평은 자신만의 꿍꿍이가 있다. 영화를 꽉 채우는 것은 역시나 CG의 힘이다. 특히나 초반부 강남역 붕괴 신은 ‘그래, 정말 백두산이 폭발해서 지진이 나면 저런 피해를 끼칠 수도 있겠구나’하는 리얼리티를 끌어 올리며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의 연기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순간 순간 이런 생각은 든다. 국가적 대위기 상황, 북한에 급파된 부대원들이 너무 희희낙락하는 것 아닌가? 리준평과 조인창 사이 피어나는 끈끈함은 조금 느닷없지 않은가? 이들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블록버스터 ‘백두산’을 보는 관건인데, 순간 순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가장 다급할 때 등장하는 지원군 같은 재난 영화 특유의 신파 공식도 살짝 지루하다. 별점 지수: ★★☆ 케미 지수: ★★★ ●천문: 뜻밖에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였던 장영실은 자신이 만든 세종이 탄 가마가 부서진 사건 이후,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 이후를, ‘봄날은 간다’를 만들었던 멜로의 거장 허진호 감독이 이어 붙였다. 영화 ‘천문’이다. 늘 함께였던 것만 같은 두 배우, 최민식과 한석규는 기실 ‘쉬리’ 이후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각각 장영실과 세종 역으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에서도 세종으로 열연했던 한석규는 8년 만에 다시 세종으로 돌아왔다. 최민식과 한석규의 연기에도 물음표는 필요 없다. 명나라 사신의 술상 앞에서 깽판치는 장영실의 춤사위에서는 모종의 신들림이 느껴지고, ‘엄근진’ 세종 대왕님의 입에서 가끔 터져나오는 욕지거리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어마어마하다. 눈길만 스쳐도 눈물이 그렁그렁, 애잔한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를 보고 기자시사회에서는 ‘멜로물’이라는 반응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나 7월 개봉한 ‘나랏말싸미’ 등 세종의 권력 투쟁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국민에겐 너무 익숙한 듯하다. 오랜 세월 사극을 보아온 짬밥으로 엔딩 부분도 예측 가능한 것이 영화의 최단점. 별점 지수: ★★☆ 케미 지수: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근배 신임 예술원 회장 “원로들의 경륜, 후배들에 전수”

    이근배 신임 예술원 회장 “원로들의 경륜, 후배들에 전수”

    “대체적으로 예술원이 뭐하는 곳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안 갖춰져 있습니다. 각 분과에서 지방 문화원이나 도서관 등에서 초청 강연을 하면 상당히 반응이 좋아요. 회원들의 경륜과 감성, 창작력을 후배 예술인들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근배(79) 신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20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예술원은 예술 발전과 예술가 지위 향상을 위해 1954년 설립된 국가기관이다. 예술 경력 30년 이상이고 창작에 공적 있는 원로 예술가들로 구성됐다. 회원 정원은 100명으로 현 재적 인원은 89명이다. 4년이었던 회원 임기는 지난달 종신제로 개정 완료됐다. 회원으로는 문학 분과에 김남조·이어령·신달자·윤흥길 등 26명, 미술에 이준·전뢰진·서세옥 작가 등 18명, 음악에 안형일·황영금·이경숙 등 20명, 연극·영화·무용에 임권택·박정자·손숙·신영균 등 25명이 있다. 이 회장은 “예술원 회원은 최고 원로이고 퇴역이 아니라 현역“이라며 “예술원이 자문기구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로 예술인들을 실질적으로 예우하고 이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요 추진 과제로는 예술원 단독 청사 입주를 가장 먼저 꼽았다. 예술원은 현재 대한민국학술원과 서울 서초구 청사를 함께 쓴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6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 다수의 신춘문예에 당선,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장, 간행물윤리위원장을 역임했다. 2015~2017년 예술원 부회장을 지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어린이 책] “엄마 말고 다른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

    [어린이 책] “엄마 말고 다른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

    진짜 우리 엄마 맞아요?나딘 로베르 지음/준비에브 고드부 그림/이세진 옮김/미디어창비/64쪽/1만 4000원 “학교 가기 싫어!” 어릴 적 으레 놓던 으름장인데 그날따라 엄마 반응이 달랐다. “그래? 그럼 가지 마. 집에서 놀아.” ‘학교 가기 싫어’와 ‘얼른 학교 가’는 일종의 ‘티키타카’(탁구공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짧은 패스 위주로 전개하는 축구)인데, 어라. 우리 엄마가 이러면 안 되는 거다. 그림책 ‘진짜 우리 엄마 맞아요?’의 다섯 살 꼬마 아이 조제프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엄마는 ‘똥강아지’라고 부르지만 책에서 본 멋진 동물 ‘그리핀’으로 불리길 바라는 조제프.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는 아기 방울새가 알을 까고 나왔는지 보기 위해 나무에 오르려다 엄마에게 혼이 난다. “엄마 미워. 엄마 말고 다른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 아이의 항변에 “다른 엄마가 어딨어!” 하는 게 엄마 반응이어야 할 텐데, 그날따라 엄마 반응이 다르다. “그래, 좋아. 내가 아는 다른 엄마가 있는데 (중략) 북극의 빙산에 사는 바다코끼리 엄마야. 어떻게 생각해?” 화만 버럭버럭 내는 엄마 대신 찾아나선 바다코끼리 엄마는 다르다. 화도 안 내고 매우 자상하다. ‘그리핀’이라고 불러 주고 등에도 선뜻 올라타게 해 준다. 그러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다코끼리도, 빙산도 없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조오오오제에에에에프!” 철없던 시절의 작은 반란은 결국 10분을 넘기지 못했고, 결국 헐레벌떡 학교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책을 덮고 나니 다 커서도 짐짓 놓는 으름장을 받아 주는 사람이, 불안한 마음일 때 목소리 높여 불러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안전망이 없는 세상에 살아서 그런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삶도 지름길이 있을까

    삶도 지름길이 있을까

    2년 만의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옛 연인과 불편한 관계 외면한 진혁 교통사고로 아이·엄마를 잃은 애영 테크놀로지 세계 속 실수와 무책임 그 결함을 메우는 건 ‘돌봄의 정서’은희경의 ‘새의 선물’, 천명관의 ‘고래’에 밀리언셀러 작가 조남주의 ‘귀를 기울이면’까지…. 면면이 화려한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여정의 ‘알제리의 유령들’ 이후 2년 만에 수상작을 낸 문학동네소설상에 거는 기대에는 특별한 데가 있다. 올해의 선택은 강희영의 ‘최단경로’였다.‘최단경로’는 경장편 분량에 담기에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겹겹이 중첩된 스토리 라인이 복잡한 소설이다. 라디오 PD인 혜서는 전임자인 진혁에게서 인수인계 자료가 담긴 업무용 노트북을 받는다. 우연히 열어 본 노트북 맵 계정은 여전히 로그인 상태이고, 맵에는 진혁이 떠난다던 호주 시드니가 아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지명들을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진혁의 방송에서는 알 수 없는 희미한 소리까지 난다. 늘 의뭉스러웠던 진혁의 태도에 의문이 더해져 맵의 검색 기록을 단서로 그의 뒤를 쫓아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몇 차례의 엇갈림 끝에 마주한 애영은, 고등학생 때 진혁과 연인 관계로 임신 사실을 외면하는 진혁과 헤어져 암스테르담에 자리잡은 인물이다. 그러나 잘못된 지도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동시에 잃었다. 진혁에게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서로의 휴대전화가 바뀌었고, 애영이 진혁의 맵 계정을 공유하게 됐다. 휴가를 내 전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혜서의 행동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작가가 벼려 놓은 숨은 의미가 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혜서는 진혁과 같은 연차였지만 그와 달리 성과를 낼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외곽 시간대 한산한 자리에 편성된 프로그램이나 공개방송의 협찬을 담당하는 업무만 주어질 뿐이다. 혜서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인 민주는 직접 차를 몰거나 택시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새벽 시간대 프로그램에서조차 최저임금의 급여를 받는다. 애영은 동양 사람만 보면 ‘곤니치와’, ‘니하오’라며 국적과 인종을 속단해 버리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폭력적인 시선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차별의 면면이 이들 여성을 연대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소설 속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오류의 복제, 무책임과 불가해가 혼재된 테크놀로지의 세계’(신샛별 문학평론가)인 듯하다. 빅데이터 사회, 축적된 데이터가 도출해 내는 빠르고 경제적인 노선인 ‘최단경로’가 최적의 경로는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물들의 여정이다. 애영의 아이와 엄마를 앗아간 교통사고는 데이터의 작은 오류에서 비롯됐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지도에는 아이와 할머니가 건너던 횡단보도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애영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고, 극단적인 길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의 존재를 무시하고 최단경로로 가고자 했던 진혁의 삶은 과연 최선이었으며 최적이었는가.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결함 속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더없이 아날로그스러운 사람들 간 ‘돌봄의 정서’다. 아이의 애착인형이었던 곰 인형을 사고가 난 삼거리 신호등에 놓아두는 애영과 생면부지의 애영을 돕는 혜서, 자상한 미술가 친구 ‘마이레’가 있다. 한참 서로 마주 보던 애영은 혜서에게 말한다. “어디 가지 말아요.”(159쪽) 책 끄트머리에는 심사위원 9명의 심사평이 적혀 있는데, 각자가 간추린 줄거리가 제각각이다. 같은 얘기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만큼 등장인물을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독법이 다르고, 여러 장치적 요소 때문에 진입 장벽이 꽤 높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로서의 소설 그 자체의 매력을 느끼기에 좋다. 소설을 쓴 강희영 작가는 전직 SBS 라디오 PD로, 현재는 암스테르담에서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를 공부 중이라고 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다큐 ‘부재의 기억’ 아카데미 예비 후보

    다큐 ‘부재의 기억’ 아카데미 예비 후보

    세월호 참사를 다룬 한국 영화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이 제92회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 후보로 선정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국제극영화상과 주제가상 부문에 이름을 올린 데 이은 쾌거다. 18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발표된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 후보에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이 포함됐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를 당시의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조명,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상영 시간은 29분이다. 이 감독은 탈북민의 실상을 밝힌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으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원고에 스며든 취준생 아픔 오롯이… 퀴어·페미니즘은 한 걸음 더

    원고에 스며든 취준생 아픔 오롯이… 퀴어·페미니즘은 한 걸음 더

    총 1607명 응모… 시 3002편 등 4248편 시 11명·소설 8편 본심에… 새달 1일 발표 단편소설·동화·평론 여성 이슈 두루 등장 시·시조 내면과 역사 담으려는 시도 활발 희곡 가족해체·노인·빈부격차 문제의식“구직·이직·실직 등 취업과 관련한 청년 세대들의 서사가 절반 이상이었어요. 동남아나 유럽 등 실제 젊은 세대들이 가 본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여행 서사도 눈에 띄었습니다.”(김태용 작가) 지난 4일 마감한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곳곳에서 문청(文靑)들의 원고가 날아들었다. 군복 차림의 장병이 수줍게 전하기도 했고 미국과 호주, 중국 등 멀리 해외에서, 교도소에서도 작품들이 날아들었다. 원고지에 육필로 눌러쓴 원고, 삽화를 곁들인 시에 꼼꼼한 자기소개까지 한 해를 꼬박 기다린 마음들이 살뜰했다. 올해 응모 인원은 1607명, 응모작은 총 4248편이었다. 분야별로는 시 3002편, 단편소설 483편, 동화 175편, 희곡 92편, 시조 481편, 평론 15편이다. 모든 분야에서 지원자가 작년보다 소폭 증가했다. 단편소설에서는 1인칭 화자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인 이야기에 천착했다는 평이 많았다. 예심 심사를 맡은 편혜영 작가는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 위주로, 이야기의 규모가 작아 중심 서사가 작은 게 큰 특징”이라며 “가족 구성원의 상실, 특히 아이 잃은 부부 얘기가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붐이었던 SF 소설도 간혹 있었지만 로봇이 등장할 뿐 설득할 만한 근거를 내세우지 못했다는 평이 뒤를 이었다. 올해 문단을 휩쓴 퀴어·페미니즘 이슈는 소설, 동화 등에 두루 등장했다. 소설 예심 심사를 맡은 강경석 문학평론가는 “퀴어 당사자의 이야기를 넘어 퀴어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의 시선을 담은 작품 등 서사가 다양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동화에서도 여성을 조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유영진 아동문학평론가는 “동화에서 서사의 추동력을 가진 인물이 주로 남성이었다는 반성이 많았는데, 사건을 끌고 가는 핵심 인물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여자아이가 다수였다”고 말했다. 평론에서도 문보영, 박민정, 강성은, 백수린, 박솔뫼, 최정화 등 여성 시인·소설가들에 대한 작가론이 많았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문학사에 천착하기보다 동시대의 첨예한 의제를 드러내는 작가, 작품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평했다. 조연정 평론가는 “문장의 가독성이나 글의 완결성 등 당선권 작품들이 작년보다 많았다”면서 “최근 문인들이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이들의 존재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데, 이런 변화를 포착하는 글이 대거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시와 시조에서는 개인의 내면 풍경에 침잠하는 한편 지금 여기의 역사를 담으려는 시도가 활발했다. 시 예심을 맡은 오은 시인은 “기본적으로 이력서, 자소서 등을 제목으로 하는 청년 세대의 생활 밀착형 시가 많았다”면서도 “광화문광장이나 홍콩 민주화 사태, 시리아 난민 이슈 등 시의적인 것으로 현장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는 시도도 보였다”고 소개했다. 시조 심사를 맡은 이송희 시조시인은 “촛불집회, 위안부 소녀상 등 광장의 역사에 현대적 소재를 담아 재해석하려는 글들이 있었다”며 “자유시에서는 자주 등장했으나 시조에서는 드물었던 도치, 역설 같은 어법을 써서 언어의 묘미를 살리려는 실험정신이 엿보였다”고 분석했다. 희곡에서는 가족의 해체와 노인 문제, 빈부 격차에 관한 문제의식이 도드라졌다. 심사를 맡은 송한샘 뮤지컬 프로듀서는 “가족의 해체와 그 안에서 개개인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고독,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실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빚는 현실을 그린 작품이 많았다”며 “사랑 그 자체를 다루는 작품은 보이지 않아 ‘사랑’이라는 감정을 말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함께 심사한 민준호 연출은 “기본적으로 희곡은 연극을 위한 매개이기 때문에 읽는 가치를 넘어 관객들과 면대면으로 만났을 때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심사했다”고 평가 배경을 설명했다. 예심 결과 시는 11명의 작품이, 소설은 8편이 본심에 올랐다. 당선 결과는 이달 말까지 개별 통보하고 내년 1월 1일 자 서울신문 신년호에 심사평과 함께 발표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세월호 다룬 ‘부재의 기억’, 아카데미 단편 다큐 예비후보

    세월호 다룬 ‘부재의 기억’, 아카데미 단편 다큐 예비후보

    세월호 참사를 다룬 한국 영화 ‘부재의 기억’이 제92회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로 선정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국제극영화상과 주제가상 부문에 이름을 올린데 이은 쾌거다. 18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발표된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 후보에 이승준(사진) 감독의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이 포함됐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의 전작 ‘옥자’가 제90회 시각효과상과 음악상 예비후보에,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제91회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에 올라갔으나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를 당시의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조명,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상영 시간은 29분이다. 이승준 감독은 탈북민의 실상을 밝힌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으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감독은 18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과정에서 영화를 함께 만든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셨다”며 “그 성원에 보답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에는 ‘부재의 기억’을 포함해 ‘애프터 마리아’, ‘파이어 인 파라다이스’, ‘고스트 오브 슈가랜드’ 등 10편이 올랐다. 최종 후보는 내년 1월 13일에 발표되며, 시상식은 2월에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북미 비평가상 휩쓴 ‘기생충’… ‘오스카’ 최종 후보 되나

    북미 비평가상 휩쓴 ‘기생충’… ‘오스카’ 최종 후보 되나

    내년 1월 13일 작품상·감독상 후보 촉각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 아카데미 입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16일(현지시간) 발표한 제92회 아카데미상 국제극영화상과 주제가상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AMPAS는 이날 국제극영화상, 장편 다큐멘터리, 단편 다큐멘터리, 분장, 음악, 주제가, 단편 애니메이션, 라이브액션 단편 등 9개 부문 예비 후보를 발표했다. 국제극영화상은 내년부터 명칭이 바뀌는 외국어영화상의 새 이름이다. 기생충과 함께 예비후보에 오른 작품은 ‘더 페인티드 버드’(체코), ‘진실과 정의’(에스토니아), ‘레 미제라블’(프랑스), ‘페인 앤 글로리’(스페인) 등 10편이다. AMPAS는 91편의 영화를 심사해 이들을 예비후보로 선정했다. 지난해까지 내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최종 후보를 정했지만 올해부터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영화 10편을 모두 보고 최종 노미네이트 투표를 한다. 주제가상에는 극중 장남 기우 역을 맡았던 배우 최우식이 부른 ‘소주 한 잔’이 올랐다. 정재일 음악감독의 멜로디에 봉 감독이 직접 가사를 붙인 ‘소주 한 잔’은 영화의 엔딩곡이다. 봉 감독은 이 노래에 대해 “영화가 끝나도 극중 기우의 뒤를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가사를 썼다”고 설명한 바 있다. ‘소주 한 잔’은 ‘알라딘’의 ‘스피치리스’(Speechless), ‘겨울왕국 2’의 ‘인투 디 언노운’(Into the Unknown), ‘라이언 킹’의 ‘스피릿’(Spirit) 등 15곡과 함께 후보에 올랐다.‘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도 오를지 관심사다. 아카데미 레이스 예측 사이트인 ‘골드더비’는 17일 현재 ‘기생충’을 작품·감독·각본상 부문에서 3위권으로 예측하고 있다. 작품상 부문에서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 맨’,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뒤를 이어 8대1 확률로 3위를 기록 중이다. 아카데미 상의 전 부문 최종 후보는 내년 1월 13일에 공개된다. 시상식은 2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예비후보에 오른 것은 제91회 ‘버닝’에 이어 두 번째다. ‘버닝’은 최종 후보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기생충’의 전망은 꽤 밝다. 북미에서 진행된 영화상 수상 소식을 꾸준히 전해 오고 있다. 지난 10일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리는 골든글로브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감독상, 각본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 3개 후보에 지명됐다. 16일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영화비평가협회(SFBAFCC)로부터 감독·각본·외국어영화상을, 15일 미국 시카고 영화비평가협회(CFCA) 시상식에서는 작품·감독·각본·외국어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흥행도 이어지고 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지난 12일까지 미국에서만 2035만 달러(약 238억원)를 벌어들였다. 올해 외국어 영화 개봉작 중 1위에 역대 흥행작 중 11위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한국번역문학상 수상자 선정…윤선미·김소라·이상윤·김환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사인)은 제17회 한국번역문학상 수상자로 번역가 윤선미·김소라·이상윤·김환씨를 선정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윤선미씨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스페인어 번역본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김기택·백가흠·백무산·이승우·윤흥길·한강 등의 작품을 스페인어로 옮겨왔다. 김언수 장편소설 ‘설계자들’로 영어권 수상자가 된 김소라씨는 공지영·배수아·전성태·편혜영·황석영 소설을 영미권 독자들에 알려왔다. 2017년에는 편혜영 ‘홀’로 셜리잭슨상을 받았고, 올해는 황석영 ‘해 질 무렵’을 번역해 부커상 국제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상윤·김환씨는 천명관 ‘고래’와 김언수 ‘설계자들’,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를 러시아어로 함께 번역했다. 한국문학번역상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소통에 기여해온 우수 번역가를 격려하고 한국문학에 대한 대내외 관심을 높이고자 1993년 제정됐다. 올해는 외국에서 출간된 국내 문학작품 중 24개 언어권 153종 번역서를 대상으로 세 차례 심사를 거쳤다. 번역상에는 상금 1000만원과 부상이 각각 돌아간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흥행 공식 모두 갖췄는데 많은 서사에 시동 꺼질라

    흥행 공식 모두 갖췄는데 많은 서사에 시동 꺼질라

    충무로의 블루칩, 박정민·정해인과 뭘 해도 다 되는 마동석이 만났다. ‘극한직업’, ‘엑시트’ 등 연초부터 이어진 가벼운 코미디도 대세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시동’은 이처럼 흥행 공식 모두들 갖췄다. 그런데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유가 뭘까. 영화는 2014년 연재를 시작해 평점 9.8을 기록한 동명의 웹툰을 토대로 했다. 학교도 싫고 집도 싫고 공부는 더더욱 싫다며 배구선수 출신 엄마(염정아 분)에게 ‘1일 1강스파이크’를 버는 반항아 ‘택일’(박정민 분)은 무작정 집을 뛰쳐나간 뒤 우연히 찾은 장풍반점에서 남다른 포스의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 분)과 마주한다. “(마동석) 선배님이 가발 쓰신 거 보고 영화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는 배우 윤경호의 말처럼 단발 퇴치병을 부르는 마동석의 비주얼은 강력하다. 집채만 한 덩치에 엉덩이를 흔들어 가며 트와이스의 ‘노크 노크’(knock knock) 춤을 추고, 살벌하게 눈을 부릅뜨고 자는 거석이 형의 모습은 웃음을 유발한다. 다만 비주얼 폭격에 따른 웃음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거석이 형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후반부에 드러나는 형의 정체는 짐작 가능하다. ‘동주’의 독립투사 송몽규, ‘그것만이 내 세상’의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 역을 열연했던 박정민의 연기는 여기서도 빛난다. 반항아의 노란 머리 클리셰가 유치하지만 그의 디테일 연기 덕에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잘나가던 영화는 택일이 엄마의 가게에 추심하러 온 사채업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오열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다큐로 바뀐다. 동네 형 동화(윤경호 분)의 이끌림에 지하경제에 발 들이는 상필(정해인 분)은 청춘물보다는 ‘멜로’에 더 어울려 보인다. 유약한 눈빛 속 그 시절 겪는 치기나 지독한 불안은 실종됐다. 화려한 캐릭터에 미성년자 성매매, 조폭의 아귀 다툼, 사채, 재개발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얽은 영화는 결국 갈 길을 잃는다. 원작 웹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무인도에 가고 싶은 택일의 소망이나 등장인물들이 반복하는 ‘어울리는 일’이라는 말도 영화를 겉돈다. 최정열 감독은 지난 10일 언론 시사에서 “어울리는 일을 아직 찾지 못한 캐릭터, 어울리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닌 걸 알게 된 캐릭터, 하다 보니 어울리는 일이 된 캐릭터가 나온다”며 “무엇이든 간에 괜찮다, 다시 돌아가서 시동을 켜도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캐릭터 각자가 다 ‘부릉부릉’ 시동을 걸다 보니, 관객들은 주의 집중해야 할 시동을 잃었다. 102분, 15세 관람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세종대 관광산업데이터분석랩, ‘몽골 관광인력 역량강화’ 시범연수 성료

    세종대 관광산업데이터분석랩, ‘몽골 관광인력 역량강화’ 시범연수 성료

    세종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관광산업데이터분석랩이 운영기관으로 참여한 ‘몽골 관광인력 역량강화’ 사업의 시범연수가 지난달 11일부터 22일까지 몽골 라마다 울란바토르시티 센터 호텔에서 진행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하는 몽골 관광인력 역량강화 사업의 시범연수는 객실관리·접객서비스·문제해결능력(1주 차)과 부대시설관리·연회관리·가이드(2주 차) 총 6종으로 진행됐고 수료생들은 각 20시간의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학습했다. 호텔리어와 가이드 현업 종사자뿐 아니라 학생, 교수, 공무원 등 다양한 관광산업 종사자 123명을 수료생으로 배출했다. 시범연수 마지막날 열린 수료식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조성학 주무관, 한국관광공사 장유현 팀장, 박정웅 지사장, 몽골 환경관광부 바야스갈란 국장, 몽골관광공사 바르톨가 사장, 세종대 호텔관광대학 이희찬 학장, 관광산업데이터분석랩 이슬기 소장, 웰포인터컨설팅 박휘섭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조성학 주무관은 “한국의 첫 해외 관광 분야 ODA를 몽골에서 진행하게 되어 가슴이 벅차며, 많은 협조를 해주신 몽골 환경관광부 및 관계자분께 감사하다”면서 “이번 123명의 수료생이 몽골 관광산업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기를 희망한다”고 축사를 전했다. 바야슬갈란 국장은 환영사에서 “몽골 관광산업발전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이런 사업을 진행해주어 환영하고 반갑다. 또한 호텔관광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종대가 함께하고 있어 앞으로도 큰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이희찬 학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관광 분야의 인재 양성에 선도대학인 세종대가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되어 운명적으로 생각한다”면서 “미래의 몽골 관광 역군이 이 사업을 통해 양성되기를 바라며, 대학 차원에서도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축사를 전했다. 대표로 수료증을 받은 어던치맥 몽골 산업기술전문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서비스 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많이 참고하겠다”며 “학생들에게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영화 ‘호흡’ 개봉 전 주연 배우 부조리 폭로… “불행 포르노 그 자체”

    영화 ‘호흡’ 개봉 전 주연 배우 부조리 폭로… “불행 포르노 그 자체”

    배급사 “안타까워… 확인 후 오늘 공식 입장 낼 것”오는 19일 개봉을 앞둔 영화 ‘호흡’의 주연 배우 윤지혜(40)가 촬영 당시 겪은 부조리를 폭로했다. 그는 지난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는 끔찍한 경험들에 대해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털어놓으려 한다”며 위험에 노출됐던 촬영 현장을 전했다. 윤지혜는 “컷을 안 하고 모니터 감상만 하던 감독 때문에 안전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주행 중인 차에서 도로로 하차했다”며 “요란한 경적소리를 내며 저를 피해가는 택시는 저를 미친 X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썼다. 지하철 촬영에 대해서는 ‘도둑촬영’이었다면서 “머쓱하게 서로 눈치만 보며 멀뚱거리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또 그는 “행인 하나 통제하지 못해서 아니 안 해서 카메라 앞으로 지나”가고 “감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고문인데 촬영 도중 무전기가 울리고, 핸드폰이 울리고, 알람이 울렸다”면서 열악한 환경을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윤지혜는 “이 영화는 불행포르노 그 자체”라며 “알량한 마케팅에 2차 농락도 당하기 싫다”고 일갈했다. “다른 배우들에게도 KAFA와의 작업 문제점을 경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권만기(36)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호흡’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받은 작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선정된 졸업작품으로, 제작비는 7000만원대다. 배급사인 영화사 그램 측은 15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윤씨의 발표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감독과 주요 스태프들 사이 사실 확인 이후 16일쯤 KAFA를 통해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고운 말, 고운 마음, 세상 향한 ‘선플’ 릴레이…날마다 새로운 세상 사랑, 자유, 평화를 보다

    고운 말, 고운 마음, 세상 향한 ‘선플’ 릴레이…날마다 새로운 세상 사랑, 자유, 평화를 보다

    이해인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 김용택 산문집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세밑을 따뜻하게 밝히는 두 시인의 산문집이 출간됐다. 이해인(74) 수녀의 ‘그 사랑 놓치지 마라’(마음산책)와 김용택(71) 시인의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난다)는 다사다난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복된 새해를 맞이하는 힘을 준다.시인으로 40년, 수도자로서 50년. 이 수녀는 지금도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해인글방’에 도착하는 편지들에 일일이 손으로 답장을 한다. 그의 신작은 세상을 향한 수녀의 ‘선플’ 릴레이다. 수녀는 순간의 소중함과 말빚의 무서움을 강조한다. 암 수술 이후 오랜 투병 생활을 견딘 수녀는 말한다. ‘상상 속에 있는 것은/언제나 멀어서/아름답지//그러나 내가/오늘도 가까이/안아야 할 행복은//(중략)//바로 앞의 내 마음/바로 앞의 그 사람’(시 ‘가까운 행복’ 일부, 7쪽) 고운 마음에서 고운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고운 말이 고운 마음을 키워 주기도 한다고 나직하게 말하는 수녀에게서 새해 다짐 한 가지를 또 얻는다.시력 37년의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신간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시와 산문 사이의 다리 같은 책이다. 시보다는 친절하고, 산문보다는 압축적인 글의 향연이다.칠순을 넘긴 시인은 날마다 새롭게 세상을 본다. ‘나무는 정면이 없다./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중략)/새가 날아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되고,/달이 뜨면 달이 뜨는 나무가 된다.’(14쪽) 시인에게 나무는 ‘출생과 신분,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자유, 고른 평화의 문제다’. 책은 제목처럼, 시인이 사람을 포함한 이 세상 살아 있는 것들에 부단히 가닿으려고 한 흔적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불행 포르노 그 자체”… 윤지혜, 영화 ‘호흡’ 부조리 폭로

    “불행 포르노 그 자체”… 윤지혜, 영화 ‘호흡’ 부조리 폭로

    오는 19일 개봉을 앞둔 영화 ‘호흡’의 주연 배우 윤지혜(40)가 촬영 당시 겪은 부조리를 폭로했다. 윤지혜는 지난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는 끔찍한 경험들에 대해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털어 놓으려 한다”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권만기(36)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호흡’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수상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선정된 졸업작품으로, 제작비는 7000만원대다. 윤지혜는 촬영 현장이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컷을 안하고 모니터 감상만 하던 감독 때문에 안전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주행 중인 차에서 도로로 하차해야 했다”며 “요란한 경적소리를 내며 저를 피해가는 택시는 저를 미친 X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썼다. 이어 “지하철에서 도둑촬영하다 쫓겨났을 때 학생 영화라고 변명 후 정처없이 여기저기 도망다니며 이것 또한 재밌는 추억이 될 듯 머쓱하게 서로 눈치만 보며 멀뚱거리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썼다. 윤지혜는 ‘호흡’의 촬영 현장이 배우가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행인 하나 통제하지 못해서 아니 안해서 카메라 앞으로 지나고 엔지(NG)가 뻔히 날 상황들은 제 눈에만 보였나 보다”라며 “감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고문인데 촬영 도중 무전기가 울리고, 핸드폰이 울리고, 알람이 울렸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윤지혜는 “이 영화는 불행포르노 그 자체”라며 “알량한 마케팅에 2차 농락도 당하기 싫다”고 일갈했다. 이어 “제가 느낀 실체를 호소하고 싶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KAFA와의 작업의 문제점을 경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영화사 측은 16일쯤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해인과 김용택… 세밑 밝히는 시와 산문 사이

    이해인과 김용택… 세밑 밝히는 시와 산문 사이

    따뜻한 세밑을 밝히는 두 시인의 산문집이 출간됐다. 이해인(74) 수녀의 ‘그 사랑 놓치지 마라’(마음산책)와 김용택(71) 시인의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난다)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책들에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복된 새해를 맞이하는 힘을 얻어보자. ●수녀님이 세상에 다는 선플… 이해인 ‘그 사랑 놓치지 마라’시인으로 40년, 수도자로서 50년의 길을 걸어온 수녀는 지금도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해인글방’에 도착하는 편지들에 일일이 손으로 답장을 한다. 그의 신작 시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는 본인에게로 오는 편지들 뿐 아니라 세상에 다는 수녀님의 선플 릴레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희망’이라는 병상에서 쓴 글을 인용했다가, 몇 개의 ‘악플’이 달린 것을 보았다. 사는 일에 지치고 힘들어 죽겠는데 삶이 어찌 희망이 될 수 있느냐며 짜증 섞인 반응들. 수녀는 ‘숨을 못 쉴 정도로 아프다 보면 숨을 쉴 수 있는 것만도 희망으로 여겨진다’고 댓글을 달았다.(23쪽) 삶의 희망과 사랑의 기쁨, 작은 위로를 건네는 그의 편지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순간의 소중함이다. 암 수술 이후 오랜 투병 생활을 견딘 수녀는 말한다. ‘상상 속에 있는 것은/언제나 멀어서/아름답지//그러나 내가/오늘도 가까이/안아야 할 행복은//바로 앞의 산/바로 앞의 바다/바로 앞의 내 마음/바로 앞의 그 사람’(시 ‘가까운 행복’ 일부, 7쪽) 더불어 그가 강조하는 것은 말빚의 무서움이다. ‘어떤 고백’이라는 시에서 그는 말한다. ‘싫어/하고 네가/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은/나도 네가 싫다’고. ‘미워/하고 네가/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은/나도 네가 밉다’(103쪽)고. 절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 것 같은 수녀님도 싫다고, 밉다고 말하는 순간 만큼은 그 말을 하는 당신이 밉다. 고운 마음에서 고운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고운 말이 고운 마음을 키워주기도 한다고 나직하게 말하는 시인 혹은 수녀에게서 새해 다짐 한 가지를 또 얻는다. ●세상을 새로 보는 혜안… 김용택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시력 37년의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신간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난다)의 서문엔 이렇게 적혀 있다. ‘시와 산문 사이에/다리를 놓았다./왕래하라.’(7쪽). 이해인 수녀의 책이 시에 산문을 붙였다면, 김 시인의 책은 시 같은 산문, 산문 같은 시의 향연이다. 시보다는 친절하고, 산문보다는 압축적인 글이다. 김 시인의 글에서는 세상을 새로 보는 혜안이 두드러진다. ‘나무는 정면이 없다./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중략)/새가 날아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되고,/달이 뜨면 달이 뜨는 나무가 된다.’(14쪽) 시인에게 나무는 ‘출생과 신분,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자유, 고른 평화의 문제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라는 제목처럼, 책은 시인이 사람을 포함한 이 세상 살아있는 것들에게 부단히 가 닿으려고 한 흔적이다. 시인은 젊은 여성들의 시에 대해서, 장정일의 칼럼에 대해서 기다리고 흠모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세상을 뜬 선배 비평가에 날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잘생긴 돌들은 서로 아귀가 맞지 않고, 사람들은 자기에게 소용 없었던 말을 남에게 해준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일들이, 시인의 안경 너머를 통과하자 다르게 읽힌다. 군데 군데 그린 여백이 많은 그림은 김 시인의 딸인 민해씨가 그렸다. 아버지에게 쓴 세 통의 편지도 책에 함께 실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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