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코리아] ‘터널안전’ 이대로 좋은가
산악지형의 도로에서는 터널을 자주 만나게 된다. 터널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험한 산길을 곡예운전하며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필요악’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터널은 운전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화재 등 사고발생시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운전자의 경각심은 높지 않은 실정이다. 더욱이 1997년 이전에 만들어진 터널의 상당수는 스프링클러 등 각종 소방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노후 터널에 대한 꾸준한 시설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화마(火魔)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시령 터널 소화전 186개·소화기 372개
최근 완공된 대표적인 터널은 미시령 터널이다.2001년 7월 착공,4년 9개월 만인 지난 4월30일 완공됐다.5월3일 임시개통에 이어 7월1일부터 공식개통됐다.
미시령 터널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부터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까지 이어지는 3.69㎞ 길이다. 죽령터널에 이어 국내에서 두번째로 긴 도로 터널이다. 이 터널이 뚫리면서 강원도 동북쪽 해안까지의 거리가 20여분이나 단축돼 차량통행량이 부쩍 늘었다.
터널을 관리하는 미시령동서관통도로㈜ 측은 성수기인 7월부터 11월까지 하루 평균 2만대의 차량이 오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지어진 터널답게 이곳의 방재시설은 수준급이어서 안전모델로 꼽힌다. 화재가 발생하면 센서가 미리 감지, 천장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스프링클러는 기본사양으로 갖춰져 있다. 또 소화전과 소화기도 각각 186개,372개로 40m,20m 간격으로 설치돼 있다.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운전자들이 소화전 등을 이용해 초기진화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화재 때 운전자가 대피할 수 있도록 피난공간을 275m 간격으로 13곳이나 설치했다. 고속도로 상의 대부분의 터널에서는 피난연락갱이 750m마다 설치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안전공간’을 대폭 확보한 것이다. 이밖에 비상주차대, 비상전화기 등도 완비돼 있다.
강원도소방본부 관계자는 “지난달 9일 강원소방본부와 군·민 합동 긴급구조훈련을 갖는 등 터널 화재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어 최신 시설을 갖춘 미시령 터널은 국내에서 가장 안전한 터널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시령 터널 운전자 피난공간 13곳
일반적으로 도로 터널은 일반 도로보다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낮다. 운전자들이 주변이 막힌 터널 안에서는 안전 운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 터널 교통사고가 화재로 번졌을 때 터널 안 온도는 보통 1000도를 넘는다. 알루미늄 등은 물론 구리도 녹일 수 있는 수준이다.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때 전동차가 녹아내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존 터널의 방재 시스템은 낙제점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일어난 대구 달성2터널 미사일 추진체 탑재차량 화재 사건은 터널 내 방재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 상행선의 환풍시설은 30㎾짜리 6대. 그러나 추진체 폭발과 동시에 전력시설이 녹아내려 무용지물이 됐다. 비상조명등과 소화전 표시등 역시 전선이 녹으면서 작동을 멈췄다. 비상 안내방송도 없었다. 터널 입구에서 불어온 바람이 차량 진행방향으로 연기를 밀어내지 않았으면 자칫 대형 참사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았다.
이에 앞서 2003년 6월에 발생한 홍지문터널 화재 때도 환기시설이 20여분 동안 작동을 멈췄다. 이에 따라 연기가 빠지지 않고 유도등마저 꺼지면서 터널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40여명은 연기 등에 질식돼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방재시설 설치지침 소급안돼 옛터널 무방비
기존 터널의 가장 큰 문제는 옥내소화전, 비상경보등, 무선통신설비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 터널 대부분은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기 전인 97년 9월 이전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당시에는 방재시설을 갖추는 것은 필수사항이 아니었다.
또한 2004년 12월 각종 방재시설 설치 기준이 1000m에서 500m로 강화된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지침이 내려졌음에도 상당수의 지방터널은 시설 보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률의 소급적용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 등 관리 주체들이 예산 부족으로 터널 방재시설 확충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자체가 표시나는 사업에만 예산을 집중하기보다 안전문제 개선에 투자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터널사고 대처방법은
유럽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의 길이는 상당수가 10㎞를 넘는다. 때문에 터널에서의 화재는 엄청난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터널 대형참사는 스위스 중부 고타르 터널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이다. 알프스 산맥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고타르 터널은 전장이 16.3㎞로 세계에서 두 번째 긴 터널이다.
2001년 10월 터널 남쪽 출입구로부터 약 1㎞ 떨어진 곳에서 연쇄 차량 추돌사고가 난 뒤 화재가 났다. 이로 인해 11명 사망,28명 실종이라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알프스 일대 터널 화재는 이전에도 자주 발생했다.99년 3월 프랑스 동부와 이탈리아 북부를 연결하는 전장 11.6㎞의 몽블랑 터널에서 화재로 39명이 희생됐다. 화물 트럭에서 불이 난 게 원인이었다.
또한 그해 5월 페인트 등을 싣고 오스트리아 타우언 터널을 지나던 트럭이 사고를 내면서 불이 나 12명이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터널은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덕분에 아직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터널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터널들은 대부분 소방서에서 10분 이상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화재의 초기 대응이 가능한 시간은 5분임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 소방서에 의존하기보다 운전자와 인근 주민들의 대응이 중요하다.
터널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차량과 함께 일단 밖으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터널 화재는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엄청나게 뿜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차량을 터널 내에 두면 소방차 진입에 방해가 된다. 차를 몰고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량을 최대한 터널 내 벽쪽으로 붙여 정차시키고 키를 꽂아둬야 소방·구급구난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터널 내 화재 발생신고는 소화기함이나 소화전함에 비상벨을 누르거나 휴대전화로 119에 알린다. 초기 진화가 가능하다면 20∼50m 간격으로 설치돼 있는 소화기나 소화전을 이용해 불길을 잡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터널 운행시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앞 차량과의 간격을 충분히 유지하는 운전습관이 중요하다. 그래야 터널에서 화재가 났을 때 차량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