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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반값 등록금/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값 등록금/이두걸 논설위원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낮춰주자는 ‘반값 등록금’이 처음 이슈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부터다. 대학생들은 매년 6% 넘게 오르는 등록금 부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천만원의 빚을 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에 정부는 2009년 대학에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할 것을 압박하고, 이듬해에는 물가 상승률의 1.5배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법제화했다. 그 결과 2009년 741만원이던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인 742만원을 기록했다. 등록금 부담 경감을 위한 또 다른 대표적인 정책은 2012년에 도입된 국가장학금 제도다. 학생에게 직접 지원하는 국가장학금 1유형의 경우 전체의 40%가 넘는 재학생이 혜택을 보고 있다. 대학생 평균 실질 등록금 부담은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실상 반값 등록금이 실현된 셈이다. 대학생의 학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도 있다. 경기 안산시는 ‘학생 반값 등록금 지원 조례’를 제정해 올해 2학기부터 관내 모든 대학생에게 본인 부담 등록금의 50%를 지원하기로 했다. 시 단위로는 전국 최초다. 대학생 1명당 지원 규모는 국가장학금 등을 제외한 연평균 자부담액 329만원의 절반인 평균 165만원, 최대 200만원이다. 저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해 시 거주 전체 대학생 2만명에게 장학금을 줄 계획이다. 이를 위한 예산은 올해 29억원, 최대 연간 335억원이다. 안산시는 해당 비용이 예산의 1.5% 수준인 데다 지방세 등 세입도 늘고 있어 큰 부담이 되지 않아 인구 감소에 대응한 미래 투자로 보고 있다. 대학생들의 학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반길 일이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겠다면 마다할 필요가 없다. 재정 부담 증가를 걱정하는 의견도 있지만 학생 숫자가 줄고 있는 데다 대학생들이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실보다 득이 더 크다. 다만 대학 교육 투자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현 정책 기조는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재정 국가 부담률은 36% 정도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회원국 평균인 66%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는 대학들은 교수 채용을 중단하거나 개설 강의수를 줄이고, 수년째 도서 구입비를 동결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교육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9% 정도인 고등교육 정부 지출을 OECD 평균인 1.1% 수준으로 높여 대학 지원을 늘리고, 대신 대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식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인적 투자 없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douziri@seoul.co.kr
  • [서울광장] 안중근 동양평화론과 한반도 평화체제/이두걸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중근 동양평화론과 한반도 평화체제/이두걸 논설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이틀 전인 지난 9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자리한 중국 하얼빈 역사를 찾았다. 2년 전 역 확장 공사에 따라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지난달 30일 다시 문을 열었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열린 ‘안중근을 만나다’ 연수 일정 중 하나였다.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자 안 의사의 전신 동상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일생 및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의거와 관련한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관 한쪽 끝 유리벽 너머로는 안 의사가 저격한 지점의 바닥 표지석 및 팻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록물들 사이로 ‘동양평화론’을 새긴 동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서전 격인 ‘안응칠 역사’(응칠은 안 의사의 아호)와 더불어 안 의사가 의거 직후 뤼순 감옥에 투옥됐을 당시에 저술했다. 동양평화론은 전체 5단계 중 서문 등 2단계만 쓰여진 미완성 논문이다. 히라이시 요시토 뤼순 고등법원장과의 면담 기록을 통해 주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동양평화론의 개요는 △일본은 뤼순을 중국에 돌려주고 중립화한 뒤 한ㆍ중ㆍ일이 공동 관리하는 군항 건설 △3국 동양평화회의 조직하고 재정 확보를 위해 회비 모금 △3국 공동 은행 설립 및 공용 화폐 발행 △3국 공동 군단 설립 △한중 두 나라는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의 발전 도모 등이다. 동양평화론에는 우리가 알던 안 의사의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일본과 일본 천황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다. “대저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동양평화론의 서론 등에서 안 의사는 동양평화회의나 공동 은행, 공동 군단 등을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회비 모금 등은 당시 청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재정난을 겪던 일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인다. 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는 논문 ‘안중근의 정치사상’에서 “안 의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는 초점을 이토 히로부미 개인에게 맞추고 정작 침략 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일본 천황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안 의사의 사상적 한계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 중심주의 역시 동양평화론의 맹점으로 지적된다. 최봉룡 중국 다롄대 교수는 “동양평화론의 일본 중심 인식은 서구에 대한 대항 논리지만, 동북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타자로 돌리는 또 다른 인종주의가 반영돼 있다. 동양평화론을 인류 평화와 연결할 때는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대항 민족주의’는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극복과 배척을 내포하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부인하기 어렵다. 20세기 초반까지 유대 민족의 대항 민족주의였던 시오니즘이 지금은 팔레스타인 등 중동 약소 민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까닭이다. 민중들이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민족 내부의 모순에 눈멀게 하는 것도 민족주의의 냉혹한 현주소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안 의사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이 아닌 21세기의 시선이라는 한계 역시 명확하다. 서양이 아시아를 침략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에 안 의사를 포함한 당대 동북아의 개화사상가들은 서양을 몰아내는 데 주력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반겼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시아의 맹주를 넘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던 일본을 배제하고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현실적인 요건들도 작용했다. 안 의사 인식의 한계는 인정하되 동양평화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동양평화론은 최근 남북 화해구도 형성 등 한반도 평화체제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3국 평화회의는 동북아 국제기구, 공동 은행과 공용 화폐는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논의하는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남북 화해 구도 정착의 열쇠이기도 하다. “남북이 모두 존경하는 안 의사의 황해도 생가 복원 등의 사업은 교착 상태인 남북 관계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이라는 의견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우리에게 평화는 생명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지정학적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 분단을 ‘강요’받았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의 고뇌를 성찰하고, 한중일 3국의 공동 번영을 꿈꾼 그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douzirl@seoul.co.kr
  • [길섶에서] 두 햇살/이두걸 논설위원

    만물은 햇살 아래서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그 어떤 인공조명도 햇빛만큼 사물의 제 모습을 드러내주지 못한다. 많은 건축가들이 자연과의 격리를 숙명으로 삼는 건축물 안에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이려는 역설을 꾀한 까닭이다. 지난 2월,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을 찾았다. 60년 전 개관한 미술관은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를 맡았다. ‘마쓰카타 컬렉션’ 등 제국주의 시절부터 끌어모았던 명작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중앙홀의 2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통로를 오르다 고개를 들었다. 천장의 구조물 사이로 초봄 햇살이 관람객과 작품들을 환하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지난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열린 ‘안중근을 만나다’ 연수 중 들른 중국 하얼빈의 ‘7ㆍ31부대 죄증 진열관’ 건물 역시 최대한 자연광을 제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돌출된 모양의 건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실험이 자행된 현장에 세워졌다. 어두컴컴한 내부를 지나 출구에 다다르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사방을 둘러싼 검은 대리석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생화학무기 금지 조약 문구들이 햇살에 드러났다. 1579㎞인 두 곳의 물리적 거리 만큼의 모순을 떠올리며 진열관을 나섰다. douzirl@seoul.co.kr
  • [길섶에서] ‘삑사리’/이두걸 논설위원

    ‘세상의 음악은 록과 록 아닌 것 두 종류만 존재한다’고 믿던 고교 시절. 워크맨의 단골손님은 한창 인기를 끌던 메탈 밴드 메탈리카였다. 번개 같은 속도감과 신기에 가까운 연주력, 거기에 탄탄한 곡 구성력이라는 삼박자를 갖췄으니 록 마니아라면 열광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어느 주말 새벽, 헤드폰을 낀 채 세운상가에서 어렵사리 구한 메탈리카 공연 실황 비디오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명불허전이었다. 실수는 물론 불협화음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의 실황을 찾아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인간이 아닌 로봇이 연주하는 듯한 ‘도저한 완벽주의’에 질렸던 것 같다. 즉흥성이 없으니 현장감도 사라졌다. 멤버들이 술과 약에 취해 온갖 ‘삑사리’를 내면서도 청중들을 극단의 열정과 황홀로 이끌던 레드 제플린 등 1960·70년대 하드록 밴드를 한 수 위로 치게 된 계기였다. “‘미스터치’(misstouch) 없는 연주는 없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건반을 잘못 누르는 일은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인터뷰 중 한 대목이 가슴에 와닿았다. 모든 것에 철두철미한 모습보다 약간 풀어진 모습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리라. 다른 이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은 내려놓고 살아도 될 터인데. douziri@seoul.co.kr
  • [서울광장] 민족주의는 어떻게 여러 목소리를 얻는가/이두걸 논설위원

    [서울광장] 민족주의는 어떻게 여러 목소리를 얻는가/이두걸 논설위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한국국제정치학회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소논문 ‘한국 민족주의의 다성적(多聲的) 성격에 관하여’가 파장을 낳고 있다. 역사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편향성을 경계하고 남북한 평화공존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등을 담은 후반부도 논쟁거리지만 논문의 첫 머리에서 “현 정부의 친일 잔재 청산 움직임은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밝힌 게 보수 진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오죽했으면 진보 정치학계의 큰 어른인 최 교수가 비판했겠냐”며 최 교수의 지적에 반색할 정도다. 최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문제 삼은 부분은 “‘친일 잔재 청산’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대목이다. 최 교수의 논지는 △잘못된 과거와 개혁된 미래를 구분하는 기준은 자의적이며 △적폐 청산을 주도할 정부가 역사 해석의 주역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관제 캠페인은 보수층을 몰역사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문화투쟁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라는 ‘좌우합작’을 통해 집권한 현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의 좌우 이념 갈등이 더 격렬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한때의 승자가 정치 지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려 한다면 조정과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주의가 위협받게 된다”고 우려한다. 최 교수의 지적은 경청할 지점이 적지 않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언급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모호하다. ‘친일과 잔재의 정의는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청산의 대상인가’라는 지극히 논쟁적인 의문들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박근혜 정권 당시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와 유사한 ‘관변 역사’의 행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안고 있다. ‘내가 아닌 타자를 배제한다’는 배타성이 똬리를 틀고 있는 민족주의를 통한 역사 청산은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역사 해석을 잣대로 대대적인 청산 작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역사 청산의 부정은 자칫 누구나 동의하는 그릇된 과거의 유산을 끊는 작업에 장애물이 될 여지가 농후하다. 시민사회 주도의 역사 해석과 이를 통한 최소화된 청산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준이 모호하다고 해서 적극적 부역 행위에까지 면벌부를 지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족해방 투쟁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원리주의적 민족주의’ 못지않게 일제의 폭력을 탈역사화하려는 시도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최 교수는 친일 잔재 청산이 보수에 대한 낙인과 배제의 결과를 낳고, 이는 그의 평소 지론인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고 본다.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새가 양 날개로 날 듯 오른손(보수)과 왼손(진보)이 국회 안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과 타협을 이룰 때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서의 보수와 우리 정치 지형에서의 보수는 마치 서구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간극보다 더 크다는 게 우리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했다”고 주장했다가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라고 말장난을 하고, 이에 대해 지적하자 “국어 실력들이 왜 이렇게 없는지 모르겠다”고 되묻는 이를 원내대표로 앉힌 한국당을 전통과 명분을 중시하는 보수주의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을 한 의원 징계는 미루면서 ‘역사 해석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오가는 정당마저 대의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대접해야 할지 의문이다. 최 교수가 ‘과잉 민족주의’로 비판한 ‘태극기 부대’가 오히려 최 교수의 주장을 유튜브 등에서 높게 평가하는 게 우리의 민낯이다. 그의 이론은 선명하나 공허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인류 역사는 특권계층에 맞서 제 목소리를 찾기 위한 시민계급과 노동자, 여성 등의 투쟁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목소리를 갖는다는 건 빼앗겼던 자신의 권리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독백과 침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몸부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성성은 독립된 주체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최 교수가 말한 한국 민족주의의 다성성은, 보수 기득권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에키타이 안/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에키타이 안/이두걸 논설위원

    ‘성명: 안/에키타이(Ahn/Ekitai), 도쿄/일본 출생, 국적: 일본. 제국 영역 내 근로 허가 부여함.’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6월 독일 제국음악원(Reichsmusikkamer)은 한 일본인 지휘자이자 작곡가에게 회원증을 발급한다. 제국음악원은 나치의 선전장관이던 괴벨스가 음악을 통치의 선전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에키타이 안은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의 일본 이름이다. 당시는 나치 독일이 여전히 유럽을 자신의 군화 밑에 두고 있던 때였다. 안익태는 극동 식민지 출신의 음악가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셈이다. 그는 출생지마저 원래 고향인 평양이 아닌 도쿄로 바꿔 버렸다. 안익태는 일본 도쿄 구니다치 고등음악학원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미국 신시네티 음악원을 졸업했다. 미국 거주 시절까지가 ‘공인’된 안익태의 모습이다. “지난 11월 어느 날 아침에 하나님의 암시로 애국가를 마무리했다. … 음악적 표현과 애국심 표현이 충실히 되었다는 세계적 음악가의 평과 동포 여러분의 충고로 대한국 애국가로 발표하기로 하였다.” 1936년 1월 미주 한인독립운동 단체 ‘대한인 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에 실린 그의 인터뷰다. 이후 행적은 친일로 돌아선 당대 지식인들을 빼다 박았다. 안익태는 1937년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 이탈리아 등 당시 일본의 우방국에서 ‘일본인 지휘자’로 명성을 날린다. 나치의 나팔수였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 건립 10주년을 기념하는 ‘만주국 환상곡’을 작곡한 것도 이때다. 그의 친일 행적은 2006년 음악계에 처음 불거지면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올 초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저서 ‘안익태 케이스’에서 그가 일제의 스파이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본래 모습이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 중 어느 쪽이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한국 음악계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우려는 동의하기 어렵다. 안익태의 친일을 비판하더라도 그의 작품이나 영향까지 폐기 처분하자는 주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춘원이나 미당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빼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오히려 ‘홍위병식 역사 파괴’ 운운하며 ‘대한민국 국가법을 만들어 애국가에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자유한국당 등의 주장이 더 위협적이다. 색깔론에 기대 자신에게 불리한 역사 해석을 막으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반민특위가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최근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미래의 역사가는 역사를 파괴하는 게 어느 쪽이라고 판단할까. douzirl@seoul.co.kr
  • [길섶에서] 화양연화/이두걸 논설위원

    강의실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어렵사리 접속한 학교 홈페이지는 먹통이다. 교내 게시판에서도 수강표를 찾을 수 없다. ‘고등학교’라 불릴 정도로 아담한 교정 안 건물들은 왜 이리 미로 같은지. 그동안 얼마나 수업을 빼먹었을까.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꽉 쥔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그러다 우연찮게 찾은 강의실에 헐레벌떡 들어가기 직전, 문 앞에 붙은 안내문을 발견한다. ‘신규 FA 수강생 - 이두걸’. ‘출석일 부족으로 F 학점을 맞았다’는 뜻이다. 눈앞은 깜깜해지고 다리의 힘이 풀린다. ‘이게 현실이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잠에서 깬다. 1년에도 서너 번 꾸는 꿈이다. 트라우마로 남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탓에 언제나 예측 가능하면서도, 어제 일인 양 생생하다. 대학 생활은 평탄과 위태로움을 오갔다. 학점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럼에도 여전히 압도적이다. 모든 게 새로우면서도 뜨거웠던 시절의 경험은 현재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관계의 상당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꿈을 악몽으로만 여기지 않는 까닭이다. 출퇴근 길이면 입시지옥을 뚫고 한창 교정을 활보할 앳된 얼굴의 새내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누구보다 찬란하게 꽃피우길. 화양연화(花樣年華). douziri@seoul.co.kr
  • [씨줄날줄] MB 보석, 독일까 약일까/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MB 보석, 독일까 약일까/이두걸 논설위원

    보석(保釋)은 법원이 구속된 피고인에 대해 보증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석방하는 제도다. 형사소송법은 범죄 혐의자에 대한 구속과 더불어 무죄 추정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보석도 인정하고 있다. 이때 보석금은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에서 법정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내는 예치금에 해당한다. 피고인이 도주하지 않고 법정에 잘 출두하면 추후에 보석금은 돌려받는다. 그러나 반대로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등 보석 조건을 어길 경우 법원은 보석을 취소하고 보석금을 일부 혹은 전액 국고로 몰수할 수 있다. 재판부는 제외 사유가 없으면 보석 청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형소법상 제외 사유가 광범위하다. 10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거나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등 문턱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재벌총수 등 ‘빽 있는’ 피고인들이 종종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보석 제도가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많았다. ‘황제보석’ 논란이 불거졌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2012년 6월 병 보석 허가를 받은 뒤 외부에서 술 마시는 모습 등이 포착되면서 6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보석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뇌물·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보석 허가를 받고 풀려났다. ‘봐주기 결정’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재판부는 “수면무호흡증 등으로 돌연사 가능성이 있다”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구속 만기가 다가온다는 사유는 인정했다. 형소법에서 2심 재판의 피고인 구속 기한은 6개월이다. 그때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 풀어 주는 게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검찰은 다른 혐의를 더해 구속 기간을 늘려 줄 것을 요청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추가할 혐의도 마땅찮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재판 도중 풀려난 것도 구속 기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만기일까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는 불가능하고,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가 된다. 보석을 허가하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논현동 사저에만 머물러야 하고, 가족이나 변호인 외에는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다. 일주일 단위로 시간별 활동 내역도 보고해야 한다. 사실상 ‘자택 구금’(Home Confinement) 판결인 셈이다.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실형 선고가 내려진다면 이 전 대통령은 다시 구치소에 가야 한다. 실형이 확정되면 보석으로 풀려난 기간만큼 교도소에서 보내야 한다. 보석이 그에게 독일까, 약일까.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이두걸 논설위원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의 식구(食口)에 대한 정의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에 이은 ‘1인 가구’로 가족의 형태가 변모하고 있지만, 식구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예나 지금이나 각별하다. 식구는 개인이 타인과 유대감과 소속감을 공유할 수 있는 기초 단위이기 때문이다. 식구는 정감 어린 표현이지만, ‘제 식구 감싸기’로 활용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가 남이가’ 식의 배타적 순혈주의의 근거가 된다. 특정 기득권 집단이 자기 집단 구성원을 무턱대고 보호할 때 발생하는 폐해는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된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지난 4일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3월 법조계를 뒤흔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경찰이 검찰에 사건 기록을 넘기면서 3만건 이상의 디지털 증거를 누락한 채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사법기관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인가. 꼭 그렇지 않다. 검경의 수사권 조정 문제를 앞둔 터라 경찰은 열심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건 다름 아닌 검찰이었다. 경찰은 2013년 7월 성접대 동영상의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확정하고 특수강간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해 11월 김 전 차관을 불기소 처분했다. ‘접대를 제공한 건설업자 윤중천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동영상 속 여성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듬해 7월 ‘동영상 속의 여성이 자신’이라며 이모씨가 재수사를 요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역시 검찰은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경찰이 주요 증거를 누락한 데다 의혹의 초점이었던 뇌물 대신 강간 혐의를 적용한 터라 사건의 ‘스텝’이 꼬여 버린 측면이 있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검찰이 ‘잡범’이 아닌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에서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지 않은 건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 당시 사건을 허술하게 처리한 검찰도, 그 책임을 경찰에만 떠넘긴 조사단도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해당 사건은 ‘청와대가 사건 축소의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인사권을 독점한 청와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검경 입장에서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해법이다. 검찰도 공수처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니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권의 보루’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수처 신설 등을 논의하는 국회 사법개혁특위 활동 시한은 6월 30일이다. 국민의 인내심도 임계치에 다다랐다. douzirl@seoul.co.kr
  • [길섶에서] 고통과 구원/이두걸 논설위원

    20년 전, 학부 샤머니즘 수업 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만신 김금화 선생이 강의실을 찾았다. 오랫동안 수행 생활을 한 종교인들의 공통점은 형형하면서도 평안한 눈빛이다. 김 선생이 딱 거기에 들어맞았다. 강연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속인은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이들의 고통을 떠안는 자들”이라는 고백이 생생하다. 무속에 대해 어렴풋이 가졌던 빗장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목도한 서구 그리스도교는 갈 길을 잃는다. 홀로코스트가 저질러지는 순간에도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극단의 역설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함께 눈물 흘리는 그리스도’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자전소설 ‘나이트’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10대 소년이 교수대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절규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그때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소년과 함께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영화 ‘사바하’를 보며 가슴이 저미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등장인물들은, 고통의 무게만큼 구원을 갈구했다. 우리의 모습이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자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헤겔, 법철학 비판)이라는 마르크스의 경구를 떠올렸다.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약산 김원봉/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약산 김원봉/이두걸 논설위원

    조승우와 이병헌. 한국 영화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배우들이다. 이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동일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이 바로 그다. 조승우는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내가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는 대사로 짧지만 굵은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이병헌은 이듬해 ‘밀정’에서 강인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약산을 보여 준다. ‘암살’은 최동훈, ‘밀정’은 김지운 등 한국 영화계의 거장들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문화계가 바라보는 약산은 이미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거인이다. 오는 5월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TV 드라마도 방영된다. 김원봉은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義烈團)과 따로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의열’은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뜻이다. 1919년 11월 결성한 의열단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군부, 친일파 등을 주적으로 삼고 폭력 투쟁을 전개한다. 이들의 행동강령은 1922년 단재(丹齋) 신채호가 저술한 ‘조선혁명선언’에 집약돼 있다. 단재는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고,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라고 설파한다. 종로·부산·밀양경찰서 및 총독부 폭파 사건, 일본 도쿄 황궁 니주바시교 폭파 사건 등이 의열단의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약산은 이후 조선의용대 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냈다. 그를 빼놓고는 1920년대 이후 독립운동사가 설명되지 않는다. 일제는 백범 김구 선생보다 두 배 많은 100만원의 현상금을 그의 목에 걸 정도였다. 해방 뒤에는 좌우합작을 추진하다가 1948년 북으로 넘어갔다. 여운형과 김구가 암살되고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이 본격화된 이후였다. 친일파 고등경찰 노덕술에게 고문을 받은 게 월북의 계기라는 분석도 있다. 북에서는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냈지만 1958년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남과 북 모두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지우려 한 까닭이다. 2015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페이스북에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남겼다. 국가 중심 보훈혁신위원회도 최근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권고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현행 서훈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독립운동에 대한 최종적 평가 기준은 1945년 8월 15일 시점”이라는 혁신위의 권고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일생을 민족해방에 바친 신산(辛酸)했던 그의 삶을, 해방 이후의 행적을 이유로 부인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 [씨줄날줄] 통상임금 신의칙/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통상임금 신의칙/이두걸 논설위원

    #1. A는 관련법상 거래를 할 수 없는 땅을 자식에게 증여하고 등기 이전까지 마쳤다. 그러나 자식과의 사이가 틀어지자 ‘해당 거래가 법률을 위반했으니 무효하다’는 소송을 냈다. #2. 회사원 B씨는 5년 전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에 회사는 B씨에게 사직을 권고했고, 그 역시 순순히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갔다. 그러나 얼마 전 B씨는 회사를 상대로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두 재판의 결론은 동일하다. 법원은 A씨와 B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모두 ‘신의성실(信義誠實)의 원칙’이 인용됐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 줄여서 신의칙(信義則)이라고 부른다. 앞서 인용한 판례의 A씨와 B씨는 모두 ‘꼼수를 동원해 비겁한 짓’을 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신의칙은 경제 분야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인 통상임금과 관련해서다. 2013년 12월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하며 “미지급 임금의 소급 청구는 신의칙에 따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추가 부담에 따라 회사가 경영난에 빠질 가능성이 있을 경우 신의칙에 어긋나는 만큼 소급 청구는 제한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후 회사를 상대로 한 노동자들의 줄소송이 이어졌지만 판결은 엇갈렸다. 신의칙 적용 여부를 판단할 경영 위기의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통상임금 신의칙의 적용 잣대가 명확해지는 추세다. 대법원은 14일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 기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신의칙 위반 여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회사가 추가 법정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회사가 부담할 추가 법정 수당 규모는 4억원 정도이고, 이는 회사 연간 매출액의 2~4%, 총인건비의 5~10% 이자 이익잉여금으로 충당할 수준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법정 수당이 회사 경영난을 따질 기준으로 대법원이 연간 매출액과 총인건비 등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도 상당한 진전이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메가톤급 소송’의 2심 결론도 조만간 나온다. 서울고법은 22일 기아자동차 노동자 2만 7000여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를 한다. 1심은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 줘 기아차는 1조원대의 부담을 지게 됐다. ‘일한 만큼 받는다’는 노동의 가치는 언제 어디서든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산업의 추락을 지켜보자니 노사가 윈윈할 ‘솔로몬의 지혜’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douzirl@seoul.co.kr
  • [길섶에서] 불관용/이두걸 논설위원

    프랑스어 ‘톨레랑스’(tolerance)는 ‘관용’이나 ‘용인’으로 번역된다. 프랑스 정치학자 필리프 사시에는 “나의 자유뿐 아니라 남의 자유를 인정하는 윤리이자, 개인이 원칙을 위해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덕목”으로 정의한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톨레랑스의 정신은 역사 해석에도 적용된다. 특정 사건에 대한 평가는 유동적일 수 있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거나 해석이 달라지면 오늘의 정설이라도 내일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면 새로운 역사 해석은 언제든 가능하고, 마땅히 소수의견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는 객관성이다. 형법의 명예훼손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여기지만, 객관성을 잃은 주장까지 표현과 사상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공공의 인식을 무너뜨린다면 그것 자체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력이 된다. 특히 잘못된 역사 인식이 미래 세대에게 미칠 해악은 넓고도 깊다. 언제든 되풀이될 비극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다. 5·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의 궤변에 대해서는 단호한 ‘앵톨레랑스’(불관용·intolerance)가 필요한 까닭이다. douziri@seoul.co.kr
  • [씨줄날줄] 영빈관/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영빈관/이두걸 논설위원

    영빈관(迎賓館)은 ‘손님을 맞이하는 건물’이다. 여기에서의 손님은 외국 정상이나 주요 인사 등 ‘VVIP’를 뜻한다. 세계 각국은 이들이 숙박을 하며 만찬 등 접대를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영빈관을 운용하고 있다. 영빈관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조어대)다. 금나라 제6대 황제 장종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해 붙여졌다. 총면적이 43만㎡에 달할 정도로 광활한 면적과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지금까지 다녀간 외국 정상급만 1200여명에 달한다. 한·중 수교 이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이곳에서 묶었다. 이곳을 포함해 중국 전역에 산재한 국빈관들은 일반인들도 이용이 가능하지만 5성급 호텔 이상의 숙박료를 내야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영빈관은 도쿄 아카사카 이궁(迎賓館赤坂離宮)이다. 왕세자의 거주지인 동궁어소(東宮御所)로 1909년에 건설됐고,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거쳐 1974년에 영빈관으로 문을 열었다. 총면적 11만 7000㎡에 건평 1만 5000㎡의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로 구성됐다. 2009년에는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일반인 관람도 허용된다. 미국의 영빈관은 워싱턴 백악관 건너편에 자리한 ‘블레어하우스’다. 당초 19세기에 지어졌지만, 1942년 미국 정부가 건물을 매입해 국빈용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4층 건물 4동에 119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주요 국제회의도 종종 열린다. 지난해 11월 타계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장례 기간 동안 이곳을 숙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청와대 영빈관은 1978년 준공됐다. 1층은 외국 국빈의 접견 행사, 2층은 대규모 행사나 회의가 열린다. 그러나 일반적인 영빈관으로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숙소가 따로 없는 터라 방한한 외국 정상들은 이곳에서 환영 만찬 등을 한 뒤 시내 호텔로 이동해 숙박해야 한다. 한국의 특색을 알릴 만한 장식물 등도 없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청와대 영빈관의 문제를 지적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빈 행사장을 둘러봤지만 청와대 영빈관이 최악이다. 구민회관보다 못한 시설에 어떤 상징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와 인구 5000만명을 동시에 달성한 한국이 그에 걸맞은 옷을 입는 것은 낭비보다는 격식을 갖추는 것에 가깝다. 탁 전 행정관에 대한 호불호나 당리당략과 관계없이 “국격은 국민의 격이다. 멋지고 의미 있는 공간(영빈관)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경청할 만큼 우리 역시 성숙하지 않았을까. douzirl@seoul.co.kr
  • [서울광장] 촛불정부, 읍참마속 두려워해선 안 된다/이두걸 논설위원

    [서울광장] 촛불정부, 읍참마속 두려워해선 안 된다/이두걸 논설위원

    설 연휴 이후에도 김경수 경남도지사 1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 지사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사법개혁을 제대로 안 해서 사법농단에 관여된 판사들이 법대에 앉아 있다는 (설) 민심이 많다”(윤호중 사무총장) 등 재판 불복을 시사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야당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식으로 대선 불복성 발언을 외친다. 사법부에 대한 여당의 분노는 ‘말’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검찰을 상대로 이달 안에 완료될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기소의 폭과 강도의 수위를 높일 것을 ‘음양’으로 ‘주문’할 게 명약관화하다. 국회 차원의 법관 탄핵 절차도 기다리고 있다. 마침 검찰은 11일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핵심 주동자에 대해 1차 기소를 한 뒤, 이달 안에 나머지 연루자에 대해서도 기소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 지사의 1심 판결에 대해 판사들 사이에서는 “김 지사의 유죄 혐의가 향후 재판에서 뒤집어지지 않을 정도로 명확한 것으로 재판부가 본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현직 광역자치단체장을 처음으로 법정 구속시켰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유죄 선고와 더불어 법정 구속하는 경우는 증거를 조작하거나 증인을 회유하는 등 이른바 ‘파렴치범’들에게나 해당됐기 때문이다. 실형 선고 때 법정 구속 사유를 엄격히 적용하는 원칙이 향후 사법농단 재판에서도 유효할지 여부는 법원에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판사들은 최근 인권을 명분으로 밤샘 수사 금지와 더불어 불구속 수사 원칙과 불구속 재판을 권유하지 않았던가. 유죄 선고 역시 몇몇 대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김 지사의 유죄 성립은 드루킹 일당의 진술은 전적으로 사실이고, 김 지사의 진술은 전적으로 거짓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재판부가 선고에서 “드루킹 일당의 일부 진술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대목과 부합하지 않는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드루킹의 경제민주화 보고서가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연설문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보고서는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을 통해 순위 1~20위 재벌 오너 일가를 교체한다’는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2012년 18대 대선 전부터 정립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여론 조작’ 여부다. 김 지사 측은 ‘킹크랩 개발을 지시하지 않았고, 선플(좋은 댓글) 달기 운동을 하는 줄만 알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사실로 받아들여도 ‘조직적’으로 선플을 달고, 그 결과 여론 형성 과정에 개입하는 행위를 용인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권 당시 자행된 댓글 조작 사건은 국가정보원이라는 국가기관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드루킹의 여론 조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하고 무겁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으로 공론장을 혼란에 빠뜨린 행위는 동일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여론은 독립한 개인 의견의 집합체다. 그러나 개인의 의견은 정치인이나 전문가 등 강력한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강하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는 미국의 비판적 지성 노엄 촘스키의 발언은 공론장의 취약함을 드러낸다. 헌법재판소도 익명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댓글실명제 위헌), 타인에게 명백한 해가 없는 말을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허위사실 유포죄 위헌)고 판단하는 등 여론 형성 행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 아닌 특정 조직이 특정 목적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까지 용납될 수는 없다. 독일 나치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한 계기는 ‘유대인이 독일 민족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다’는 혐오·증오 프레임을 작동시켜 여론을 선동한 탓이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선거의 정당성으로부터 획득된다. 선거의 승패는 여론에 근거한다. 그러기에 여론 형성 과정의 정당성은 선출 권력의 정당성과 연결된다. 김 지사는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현 정부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김 지사의 사법적 유무죄는 향후 재판에서 확정할 문제이지만, 여론 조작의 정치적 정당성 여부는 문 대통령에게까지 맞닿아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주주의의 복원’을 외친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라면 더더욱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문제가 아니다. 답은 문 대통령 자신이 갖고 있다. douzirl@seoul.co.kr
  • [길섶에서] 뒤돌아보기/이두걸 논설위원

    회사나 대형 건물에서 현관문을 열 때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다. 유리창의 반사로 등 뒤를 확인하기도 한다. 혹시 뒤의 누군가를 위해 문을 잡아두려는 의도에서다. 감사인사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가벼운 목례도 없이 지나치면 살짝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인간 자동문’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언제까지 문을 잡고 있어야 하나’ 망설일 때도 종종 있다. 이 습관은 오래되지 않았다. 5년 전 해외연수차 머물렀던 짧은 미국 생활에서 기인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남이 잡아놓은 문에서 몸만 쏙 빠져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내 뒤의 이들은 이런 밉살스러운 행동에 얼마나 불쾌했을까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진다. ‘선진국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강하다’는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난폭운전 등은 뉴욕이 서울 뺨친다. 소매치기가 옆 사람 주머니를 털어도 그냥 지나치는 게 파리나 런던의 일상이다. 그래도 체면과 명분을 중시한 전통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옛것을 지킨다’는 보수(保守)를 자처하는 이들이 정작 배려할 줄도 나눌 줄도 모르면서 심지어 부끄러움조차 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울 뿐이다. 뒤주를 가난한 사람이 열어 배고픔을 면하게 하라는 의미로 써붙였다는 타인능해(他人能解)를 떠올린다. douzirl@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文대통령,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 직언하는 참모 있어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文대통령,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 직언하는 참모 있어야”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안 나오는 건 최저임금만 가파르게 올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확장적 재정정책과 복지 증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84%(2017년 6월 2일)와 45%(2018년 12월 11일).’ 문재인 정부 지지율의 최고치와 최저치다. 집권 1년 반 만에 절반 가까이 빠졌다. 이는 상당 부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충격과 고용 악화, 경기 하락 등 경제정책의 실패에 따른 결과다. 이에 야당 등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첫 정책실장을 지낸 국내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 이정우(68)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서울 남대문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 이사장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등에서 “정부가 당장의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조급증을 버리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최근 경기 하락은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요인과 더불어 정부 정책의 실책도 원인으로 꼽히는데.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로는 부동산 폭등 등 불평등 심화와 불로소득 팽창에 따라 혁신성장이 이뤄지지 못하고, 대·중소기업 간의 공정경제 구조가 미흡하며, 증세 등을 통한 적극적 재정정책이 부족하다는 걸 꼽을 수 있다. 이를 위한 처방으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라는 정책 방향을 설정했고, 이는 잘 잡았다고 본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옳았는데 처방 약을 너무 약하게 썼다. 그래서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계속 고통을 받고 병은 낫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토지 보유세 강화와 복지 증세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앞서 밝혔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면 중산층 서민의 소비 진작 효과가 커지면서 지난해 우리 경제는 3~4% 성장도 가능했을 것이다(실제로는 2.7% 기록). 국가 경제정책의 핵심인 성장과 분배, 고용이 살아나려면 순서가 중요하다. 분배가 잘되면 성장이 일어나고 고용이 따라오게 돼 있다. 정권 초반에 “마차(일자리)를 말(경제성장) 앞에 둘 수 없다고 지적한 까닭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평가는. -적정 수준은 5~10% 인상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합친 명목GDP 성장률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 바람직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보완하기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가 정부의 ‘실적 쌓기’용으로 변질되고, 정작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영국이 1795년 저임금 농업 노동자의 빈곤을 보전해 주기 위해 마련한 스피넘랜드(Speenhamland) 제도다. 자본가는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주면서 부족액은 보조금으로 메우려 했고, 노동자는 최저임금이 보장되니 노동생산성이 급속히 떨어졌다. 생산성이 하락하자 자본가는 임금을 올리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200년이 지난 뒤 한국에서 스피넘랜드 제도와 유사한 정책이 시행됐다는 건 잘못된 일이다. 한국의 시간당 임금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이젠 중간 정도는 되는데도 과도한 인상으로 몰아갔다. 대선 공약 중 하필 1만원 공약만 너무 충실했다. 선거 과정에서는 일부 지나친 공약을 내놨어도 선거 이후에는 냉정을 되찾았어야 했다. →정권 초반에 소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일관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균형재정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목표에 해당한다. 경기가 바닥일 때는 적자 재정정책을 쓰고, 경기가 좋아질 때는 흑자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계속 흑자가 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두 해 연속 대규모 흑자가 발생한 것은 다소 실책이 아닌가 싶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투자, 수출, 재정이 아니라 소비의 저조이고, 그것은 분배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이 문제를 타개하는 유효한 수단이 소득주도성장이다. 정부 재정이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역할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기재부는 대단히 유능한 관료 집단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드물고 늘 비슷한 대책만 갖고 온다. 대표적인 게 예산의 조기 집행이다. 예산을 앞당겨 쓴다고 무슨 큰 효과가 있나. 그보다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 복지를 위한 증세, 대기업 갑질 근절 등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재부는 수술실에 들어온 중환자에게 환부에 소독약 바르는 정도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참여정부 때 근로장려세제 도입 직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당시 모 경제 부처 장관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엉뚱한 시비를 걸고 나왔다. 이미 오래전에 미국이나 영국에서 성공한 근로장려세제에 대한 이해조차 없던 거다. →문 대통령이 경제 면에서 편향된 정보만 보고받아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관측도 있다. -문 대통령은 경청하는 열린 귀를 갖고 있는 건 확실하다.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다. 다만 최근에는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외부와의 소통을 굉장히 많이 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청와대 안이 외부의 학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학자들의 발길이 끊긴 것 같다. 청와대에 다녀왔다는 학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경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대통령이 (외부에) 전화라도 해서 자문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아쉬운 점이다. 현재 청와대 비서진 중에서는 유능하면서도 선량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직언하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 당장은 옳은 말을 하는 게 어렵지만, 지나고 보면 누군가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화된 경제지표를 올리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성과가 안 나오는 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기조를 버리고 경제활성화나 투자 촉진, 기업 기 살리기 등으로 돌아갈까봐 걱정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줄곧 봐 오던 모습이 아닌가. 혁신성장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중요하다. 소득주도성장은 한국처럼 불평등이 심해서 중산층 서민의 소비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잘 듣는 약이라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불평등이 해소되고 소비가 올라가고 경제가 살아나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약이 안 들을 것이다. 그때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엔진은 필요 없고, 혁신성장 한 개의 엔진만으로도 갈 수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참여정부 직후 한 심포지엄에서 당시 김상조 교수는 “재벌 개혁과 관련해 참여정부가 한 게 하나도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하더라. 이에 대해 참여정부 첫 공정위원장이던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아마 맞는 말이겠지요”라며 더이상 변명을 하지 않았다. 몇 년 뒤 젊은 학자가 김 위원장을 향해 “문재인 정부는 재벌 개혁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공격할까봐 걱정이다. 본인은 열심히 재벌 개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왜 아무것도 안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반발로 못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법을 고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청년 실업은 세계적 문제이자 한국의 문제다. 과거에 비해 청년의 구직이 매우 어려워졌다. 제조업의 고용탄력성이 하락한 것도 있지만, 산업구조 변동에 때맞춰 적응하지 못한 면도 있다. 제조업을 대체할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구조 변동에 따른 이직을 촉진하되 새 일자리의 구직과 훈련을 강화해 일자리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을 조속히 갖춰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된 택시 카풀 문제도 먼 장래를 내다보는 국가의 적절한 개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새 기술은 적극 받아들이되 그늘은 보살피는 국가의 역할이 요구된다.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과 투자 보장을 위해 차등의결권이나 가중의결권 등을 인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가중의결권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우리 상황에서 총수 일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동의하기 어렵다. 재벌 개혁 중 외부 개혁이 대기업의 갑질 근절이라면 내부 개혁은 지배구조 개혁이고, 그 수단으로 노동이사제도 고려해 봄직하다.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외부 교수들이 용돈을 타 쓰는 대신 99.9% 찬성하는 거수기로 왜곡됐다. 미 코닝사나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기업들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면서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다. →민주노총이 오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결정할지 관심이 쏠린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강경파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내걸고 등장한 지도부다. 정부가 노동계를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은 노동에 대한 이해가 높지만, 청와대 안에 노동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까지 고향인 대구를 거의 떠나지 않은 게 눈에 띈다. 성향이 보수적인 대구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대구에서만 50년을 살았다. 서울(서울대 경제학과 등)에서 12년, 미국 보스턴(하버드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6년 지낸 게 타지 생활로는 유일하다. 유학을 끝낸 뒤에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 전에 교편을 잡던 경북대로 다시 돌아왔다. 원래 대구는 혁신적인 움직임이 활발했던 도시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도 4·19혁명 이후 교원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수업 시간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부친(고 이종하 영남대 법대 학장)도 노동법을 전공해 진보 성향에 가까웠고, 그 때문에 고초도 겪으셨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덕분에 분배 문제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대구 사람들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인간적으로 상당한 매력이 있다. 의리와 체면을 중시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지탄하는, 일종의 선비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한 문화는 우리가 보전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두걸 논설위원 douzirl@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인간 중심 경제학 지향… 역대 개혁정부 싱크탱크 역할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인간 중심 경제학 지향… 역대 개혁정부 싱크탱크 역할

    “우리 연구실(학현연구실)이 지향하는 방향은 ‘인간 중심의 경제학’이었습니다. 주류경제학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빈곤하고 소외된 계층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진 연구자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변형윤 교수 대화록 ‘냉철한 머리, 뜨거운 가슴을 앓다’ 중) ●조순·서강학파와 더불어 3대 학파로 꼽혀 김태동(성균관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실장, 홍장표(부경대 교수·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전 경제수석 등은 모두 이른바 역대 ‘개혁 정부’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경제학자다. 김 전 수석은 국민의정부, 이 전 실장은 참여정부에서 일했다. 홍 전 수석은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론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은 일종의 ‘동학’(同學)에 해당한다. 성장 일변도의 한국 경제학계에 분배의 중요성을 알렸던 학현학파에 몸담았다. 조순학파, 서강학파와 더불어 한국 경제학계의 3대 학파로 손꼽히는 학현학파가 개혁 정부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셈이다. ●변형윤 교수 설립… 진보 학자들 요람으로 학현(學峴)은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호다. 변 교수는 1980년 5월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을 주도해 신군부에 의해 해직된 뒤 서울 광화문에 개인 연구실인 학현연구실을 열었다. 당초 계량경제학자였던 변 교수는 해직 기간 동안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 쪽으로도 관심을 넓혔다. 학현연구실은 1984년 9월 변 교수의 복직을 계기로 정식 연구 공간으로 출범했고, 이후 1993년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확대 개편되면서 한국 사회 진보 경제학자들의 요람이 됐다. 학현연구실의 주요 참여자는 강남훈(한신대), 강명헌(단국대), 강신욱(통계청장), 강철규(전 공정위원장, 전 우석대 총장), 고 김기원(한국방송통신대), 김윤자(한신대), 김태동, 박복영(경희대), 양우진(한신대), 원승연(명지대, 금융감독원 부원장), 윤원배(숙명여대), 고 윤진호(인하대), 이병천(강원대), 이정우, 이제민(연세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홍장표 등이 꼽힌다. 국내파와 유학파가 골고루 안배돼 있다. 변 교수는 “연구실 멤버들은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자로부터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까지 학문적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했지만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분배 없이는 성장 없다’ 강조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학자들을 기반으로 한 학현학파와 조순학파를 칼로 무 자르듯 나누는 건 쉽지 않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중시한다는 면에서 이론적인 이질감도 크지 않다. “학현학파는 ‘분배 없이는 성장 없다’를 강조하고, 조순학파는 ‘성장 없이는 분배 없다’를 더 강조한다”(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지난해 6월 홍 전 수석이 교체되면서 학현학파의 위상이 축소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민 교수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최근 임명되면서 현 정부 경제정책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두걸 논설위원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노딜 브렉시트/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딜 브렉시트/이두걸 논설위원

    40년 넘게 한 이불을 썼던 부부에게 ‘아름다운 이별’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혼도장(브렉시트)도 찍고 재산분할 협의(브렉시트 합의안)까지 끝냈으면서도 결별은 지지부진하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이야기다. 영국 하원이 15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결시키면서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자칫 영국이 아무 협정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가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영국은행(BOE)은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8% 감소하는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상의 충격이 가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 하원의 브렉시트 합의안 표결 결과는 반대 432표로 찬성 202표를 압도했다. 노동당 등 야당은 물론 집권 보수당에서도 100명 이상이 반란표를 던진 탓이다. 이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백스톱’(안전장치)이다. 영국은 그레이트브리튼섬(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과 아일랜드섬 북쪽의 북아일랜드로 이뤄져 있다. 아일랜드섬은 신교 위주의 북아일랜드와 구교 위주의 아일랜드로 분단돼 있다. 양측에서는 254곳의 이동 통로를 통해 하루 4만명과 막대한 물류가 통관 절차 없이 오간다. 영국과 아일랜드 모두 EU 회원국인 까닭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에는 국경이 되살아난다. 아일랜드는 EU에 남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과 함께 EU를 떠난다. 백스톱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 통제를 하지 않고 북아일랜드는 EU의 관세동맹 안에 남기기로 한 조항이다. 아일랜드가 다시 나뉘어지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국경을 사실상 없애기로 한 1998년 ‘벨파트스협정’이 무력화될 수 있어서다. 이 협정을 계기로 20세기 후반 영국은 물론 전 유럽을 공포로 떨게 했던 구·신교도 간의 유혈 분쟁과 테러가 종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당 안 브렉시트 강성 지지자들은 백스톱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경제 주권을 EU에 넘기는 건 물론 영국이 EU의 정책에 뒤따라가는 등 새로운 주권 침해를 감내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노딜 브렉시트가 차라리 낫다’는 의견까지 표출되는 까닭이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더라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전체 수출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그친다. 16일 주가와 환율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건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선진국 경기 침체 가능성과 미·중 무역분쟁 여파에 더해 노딜 브렉시트가 세계 경기 침체의 ‘방아쇠’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더 높아진다. 수출 국가인 한국이 ‘8900㎞ 밖의 대혼란’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douziri@seoul.co.kr
  • [길섶에서] 적멸(寂滅)/이두걸 논설위원

    “이○○님 순환기내과 진료예약이 1월 4일(금) 09시 40분 있습니다.” 며칠 전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선친(先親)의 병원 예약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다니던 병원에는 부음 소식을 따로 전하지 않았으니 환자의 부재를 알 리가 없다. 오래전부터 선친은 거동이 불편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언덕배기는 중학생 아들의 부축을 받고서야 오를 수 있었다. 베트남 정글에서 모기를 쫓는다고 머리 위로 들이부은 고엽제는 천천히 신경과 면역체계를 갉아먹었다. 몇 해 전부터는 운전대도 놓아야 했다. 입원과 통원치료를 반복하는 사이 갓난쟁이 손주들은 어느새 당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 주말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찾았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그곳을 찾은 유일한 이유는 ‘고요하게 꺼진다’는 뜻의 ‘적멸’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등산로에는 염불과 목탁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불자(佛子)들은 서너평 남짓한 공간에서 간절한 표정으로 합장한 채 절을 올리고 있었다. 순간 부러웠다. 마지막 순간에 삶의 의지와 체념 중 무엇을 선택했을까. 석양을 뒤로한 채 다리를 절뚝이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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