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체험…‘함께하는 세상’ 열어
“‘우리’가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느끼게 해 주려고 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7일 저녁 남편·딸과 함께 청계광장에서 돗자리를 깔고 촛불을 밝힌 송해영(35·서울 노원구 공릉동)씨는 “촛불집회는 먹고사느라 이웃을 바라보지 않고 무조건 달려 왔던 시민들에게 ‘공동체의 힘’을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됐다.”면서 “7살 된 딸의 기억 속에도 촛불의 추억은 어렴풋하게 오래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르는 이웃과 김밥 나누고 인사도
전 국민의 MT가 된 ‘72시간 촛불행진’은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수년간 옆집에 살아도 이웃을 모르고 지냈던 시민들은 광장에서 김밥을 나눠 먹으며 ‘내 주위에 이렇게 많은 이웃이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집회가 계속되면서 “또 나오셨어요?”라는 인사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촛불집회에서 재발견된 공동체는 ‘개인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강요된 공동체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다른 사람을 설득해 이뤄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자유롭게 제각각의 뜻을 유지한 채 큰 물줄기를 만들었다.‘나의 참여’가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참’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는다.
●강요보다는 개인의견 존중
집회 현장에서 만난 김보렴(21·인천 서구)씨는 “촛불행진은 막히면 돌아가는 강물 같다.”면서 “남을 끌어내지 않고 남에게 끌려가지 않는 행렬 속에서 같고도 다른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퇴진, 미국산 쇠고기 반대, 대운하 반대,0교시 반대, 비정규직 보호, 장애인 인권 등 집회 현장에서 나오는 구호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일부는 청와대로 향하고, 일부는 서울광장에 남아 춤과 노래를 즐겼다. 새로운 공동체의 뿌리는 상당 부분 온라인에 근거한다.
기존 언론들이 이른바 ‘논조’대로 여론을 형성하려고 애쓰지만 온라인에서는 시민 개개인이 기자이고, 미디어다. 회사원 이경환(36·경기 안산시)씨는 “온라인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순식간에 ‘번개’처럼 모여 각자의 의견을 내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며, 허위사실을 걸러낸다.”면서 “기존 언론들은 아직도 이런 현상을 철없는 ‘놀이’나 근거 없는 ‘유언비어’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 공동체의 뿌리는 온라인
대학생 안주현(21·서울 강동구)씨는 “온라인에서 토론하고 시위 생방송을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한다는 느낌을 갖는다.”면서 “언제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 탈퇴할 수 있다는 것도 시위 참여에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하는 매력”이라고 밝혔다.
광우병 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촛불집회에서 기존 시민단체는 새로운 공동체의 지원자 역할만 하고 있다.”면서 “개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발현하면서도 최소한의 공동목표를 위해 소통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전의 계몽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정당이나 언론, 시민단체는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황비웅기자 kdlrudw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