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1050 세대를 말하다] “우리는 ㅁ 세대다”
삶을 이루는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세대갈등은 화두가 된다. 하지만 ‘갈등은 또 다른 힘’이다. 갈등이 있어 서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세대 소통’이 생기고 ‘화합’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반대로 갈등을 인지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발전의 동력을 꺼버리는 결과를 낳는다.15명의 시민들이 나름의 단어를 통해 자신의 세대에 대해 정의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게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표현했고, 중장년층은 자식세대에게 알아주지 않는 희생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사회 곳곳에 갈등이 넘친다고 말하지만 정작 마음 속에는 표현하지 못한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작고도 큰 세대 갈등이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무한도전] ●김동현(16·황지고 1학년)군
10대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20대부터 100세까지 자신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다. 우리는 때묻지 않은 하얀 캔버스지와 같은 세대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좋지만 골프·바이올린·만화·컴퓨터 게임 등 무엇이든 목표를 정하고 달려갈 수 있다. 한두 차례 실패도 용인된다. 무한도전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특권이다. 대한민국을 이끌 재목이며,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 주역들인 10대,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실험대상] ●강우주(16·의정부 영석고 1학년)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우리 세대의 교육에 대한 거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사라졌던 0교시가 부활했고 우열반이 생겼다. 우리의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교육이 아니라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누구보다 먼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우리 세대의 자율성을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죄수] ●남용우(17·경기상고 2학년)군
대학입시라는 원죄 때문에 학교와 학원에 갇혀 산다. 학교는 학생이 아닌 선생님 중심이다. 수업은 국·영·수 위주다. 고등학생 정도면 0교시 수업, 광우병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웬만큼 안다. 하지만 의견을 개진하면 어른들은 ‘어린 게 뭘 안다고 말하느냐.’며 무시한다. 우리를 ‘어리다.’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있다. 우리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다. 촛불집회도 처음에는 우리를 주목하는 척했지만, 지금은 10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슈퍼맨] ●김지윤(24·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씨
2008년을 사는 20대는 슈퍼맨이 되기를 강요당한다. 학점관리, 영어, 한자, 컴퓨터에서 취업을 위한 스펙(학력·학점·토익 점수 등을 합한 것) 관리까지 뭐든지 다 잘해야만 한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아르바이트 한두 개는 기본이다. 하루 24시간은 짧고 20대의 낭만은 사치다. 하지만 우리를 희망 없는 ‘88만원 세대’로만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는 미선·효순 사건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까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배운 세대다. 취업에 눌려 살지만 불의에는 결연히 나선다. 마치 슈퍼맨처럼.20대, 여전히 희망은 있다!
[안습] ●김차준(27·경남대 북한대학원생)씨
경제가 어려워서 학생운동도 못 해보고, 대학의 낭만도 누려보지 못하고, 학점과 외국어에만 몰두했다.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하면 쉽게 취직이 될 줄 알았는데, 다시 청년 실업에 직면했다. 비정규직 안 하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그것마저 정규직 세대에게 ‘처지를 모르는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당한다. 이런 우리 세대를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차지 않을 수 있나. 우리 세대는 마음 깊은 곳에 설명하기 힘든 박탈감을 갖고 살아간다.
[창조적] ●김혁근(22·서울시립대 경제학부)씨
대졸자가 넘쳐나는 지금 기업들은 창조적 인재를 선호한다. 어려운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창조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창조적이라는 말은 ‘최고’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단어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힘인 것은 분명하다. 창조를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 여행 등을 통해 얽매이지 않는 지성을 길러야 한다. 어차피 기업에 들어가면 다시 비창조적으로 변할 테지만.
[재테크] ●이복무(35·LG파워콤 대리)씨
좀 진부하지만, 이 말처럼 우리 세대를 잘 나타내 주는 말도 없는 것 같다.30대는 한창 가정을 꾸려 갓 낳은 아이와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할 시기다. 지금 세 살 난 아이가 있는데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다. 그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재테크뿐이다. 사실 월급만으로 여유있게 살기란 쉽지 않다. 많은 동료들도 모두 어떻게 하면 재테크를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경쟁도 치열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재테크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시스템 트레이딩’이란 것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 ●이정민(35·주부)씨
30대가 아이러니 세대인 이유는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장 힘든 삶을 사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때 한창 취업을 위해 땀흘렸던 세대다. 취업난, 경제난 등 힘든 시기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가정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세대라는 점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는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로 경쟁에만 몰두했던 세대로서, 번영의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사회에서는 가장 치열하고 가정에서는 가장 행복한 것이 30대다.
[샌드위치] ●유환선(39·교원그룹 홍보디자인팀)씨
우리는 직장과 가정이라는 무거운 빵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한다.30대 초반에는 적금·펀드 등에 몰두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결혼 후에는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허리띠를 꽉꽉 졸라맨다. 직장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기 위해 구슬땀, 아니 식은땀을 흘린다. 밤샘 야근도 불사한다. 결국 직장과 가정에서 오는 중압감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게 30대를 잘 보내는 핵심인 듯하다.
[동네북] ●이영숙(47·주부)씨
우리 세대에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모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셔도 그냥 꾹 참고 살았다. 하지만 요즘엔 아이들도 부모를 무척 쉽게 본다. 너무 오냐오냐 키운 부모 책임도 크지만 가끔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마치 우리 세대를 마냥 ‘동네북’처럼 여기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겹쳐 있는 5월이면 그런 갑갑함이 최고조에 이른다. 어린이날이라고 아이들 챙겨주고 나면 3일 뒤 다시 부모님을 챙겨드려야 했으니까.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언제쯤 ‘동네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버림받은] ●이계숙(43·자영업자)씨
40대는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다. 다음 세대가 우리가 늙으면 보살펴 줄지 의문이다. 우리는 대가족과 핵가족의 과도기에 끼여 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과도기 사이에 불안하게 서 있다. 한마디로 외로운 세대다. 홀로 살던 노인이 자살하고 신(新)고려장이 시작됐다는 등의 기사를 가끔 접하곤 한다. 하지만 ‘20∼30년 후에도 독거노인이 기사거리가 될까?’라고 생각한다. 이미 버림받을 것을 알고 살고 있지만 자식에 대한 온갖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비참한 세대인 셈이다.
[건곤일척] ●이성호(47·인천 현대유비스병원 원장)씨
인간은 인생을 걸고 한판 승부를 펼쳐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30대에 가정을 이룬 뒤 안정적인 기반 마련과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쉼 없이 내달렸다. 레지던트에서 한 병원의 원장이 되기까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환자와 병원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가정에 소홀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이제야 가정적인 남편,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절제] ●우석만(52·KT 파주지점장)씨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참 표현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얘기할 줄 아는 당당함이 보기 좋다. 이번 촛불집회도 젊은이들의 힘이 컸다고 들었다. 하지만 때론 그 표현력이 다소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KT에서 일하면서 인터넷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은 데 절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많이 나와 당황할 때가 많다. 우리는 ‘절제’의 세대다. 쉽게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우리 세대의 장점을 잠시 배워보는 게 어떨까.
[기도] ●김정자(56·주부)씨
우리는 자녀를 건강하고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나는 못먹고 못 입어도 아이들을 잘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 그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이제 자식들이 사회로 나갔지만 아직도 기도하며 살아간다. 이런 마음을 자녀들이 몰라줘 슬플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어제와 비교할 수 없는 오늘은 우리 세대의 수도자와도 같은 근면함의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좁게는 내 자식의 오늘과 미래를 걱정하고 넓게는 그에게 영향을 미칠 대한민국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기도한다.
[거름] ●박정덕(59·주부)씨
우리 세대 특히 여성들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끝없이 희생했다.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들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땅을 비옥하게 하지만 드러나지 않고, 결국 흔적없이 사라지는 거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희생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하지만 사회는 달디단 열매에만 주목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 따 먹는 열매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경주 이경원 김정은기자 kdlrudw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