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든 김정호’ 서해안을 재발견하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출사(出寫)가 보편적인 취미로 자리잡았고, 사진을 올리는 미니홈피나 블로그 하나쯤은 누구나 갖게 됐다.
하지만 일반인이든 예술가든 개인의 소소한 사변을 담아내는 것은 ‘지루한 혼잣말의 반복’이라고 미술평론가 김준기는 말한다.
1997년부터 대한민국 국토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야말로 ‘발로 찍은 사진’을 내놓고 있는 박홍순은 ‘카메라를 든 김정호’라 할 만 하다.
2년간 백두대간을 찍어 1999년 사진집을 냈을 때 그의 시선은 장엄한 우리 산의 기상보다는 ‘이성적 시선’으로 산꼭대기의 헬기착륙장·송신탑·기상대와 산허리의 스키장·공원묘지·도로를 찍어냈다.
구석구석 산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 간첩으로 오인받은 적도 있다. 저쪽 산봉우리에 있던 군인들이 헉헉대며 달려 와 뭘 하느냐고 확인하고 가기도 했다.
2005년 전시회를 가진 한강의 풍경 역시 마찬가지다.
박홍순이 찍은 한강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만이 아니었다. 한강 유역의 큰 줄기인 남한강과 북한강의 현재를 원류에서부터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 사진은 강과 그 강에 닿아있는 인간을 담았다.
러브호텔의 공사판인 듯 굵게 패인 타이어 자국과 강물 위를 비행하듯 지나가는 수상스키 보트와의 대조, 댐과 댐 공사로 끊어진 물줄기, 홍수가 만들어낸 풀숲, 채 완공되지 않은 끊어진 다리 등이 그가 찍은 한강의 풍경이었다.
2006년에는 인간이 만든 서울 풍경이 박홍순의 카메라에 어떻게 보면 지극히 환상적으로 담겼다. 핀홀카메라로 찍은 서울의 풍경에 에펠탑, 스핑크스, 자유의 여신상, 풍차 등도 보인다.
실은 서울의 답십리, 청담동, 천호동과 송도, 양평, 퇴촌, 양수리, 천안, 충주, 청원 그리고 군산 등에서 발견하고 찍은 레스토랑이나 웨딩 홀의 유럽풍 외관이나 유원지의 조악한 짝퉁 조형물들이다.
바늘구멍 사진기(핀홀 카메라)로 찍은 탓에 흐릿하게 담긴 하와이,파라다이스,몰디브 등으로 이름붙여진 모텔의 풍경은 비루한 일상지만 환상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2008년 박홍순의 발이 간 곳은 기름이 휩쓸고 간 서해안이다. 하지만 기름때를 닦아내기에 여념없는 자원봉사자들과 시커먼 기름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 아니라 갯벌을 갈아엎은 현장을 포착했다.
냉정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 본 서해안은 거기 그렇게 있는 자연과 조악한 인공의 다스림이 공존하고 있다. 그가 담아 낸 ‘서해안’ 사진전은 2월21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제 3갤러리 20층에서 열린다.(02) 418-1315
박홍순은 풍경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들에게 “풍경은 많이 간 사람에게 좋은 풍경을 보여준다.”면서 “자주 마음의 문을 열고 자연을 볼 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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