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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성이 입었던 관절 부상…나도 조심해야

    박지성이 입었던 관절 부상…나도 조심해야

     남북 동반 월드컵 본선 진출로 2002년 이후 주춤했던 월드컵 열기가 재점화됐다. 오는 주말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이 있긴 하나 동네 운동장에서는 공 차는 소리가 드높을 것으로 보인다.  불타오르는 의욕에 축구공을 뻥뻥 찼다가는 특히 관절이 상하기 십상이다. 축구로 인해 입기 쉬운 부상 세가지를 소개한다.  첫번째는 전방십자인대파열.  축구처럼 전속력으로 달리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 갑자기 방향을 과도하게 바꾸거나 멈추는 동작을 할 때 무릎이 꺾이거나 비틀리게 되면 인대가 끊어질 수 있다. 이것이 전방십자인대파열이다.   K리그 스타 고종수, 이동국, 곽태휘 등이 당했던 것으로 축구로 인한 가장 흔한 부상이다.  사람의 무릎에는 4가지 인대가 무릎 앞뒤와 안팎에서 관절을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특히 앞에 있는 인대는 X자 모양이어서 ‘전방십자인대’라고 부른다. 전방십자인대는 우리 몸에서 무릎관절이 꺾이거나 헛도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면 무릎 속에 피가 고이게 되면서 손상 부위가 붓고 통증이 심해지게 된다. 이럴 경우에는 관절내시경 수술을 통해 인대를 재건해야 한다. 관절내시경 수술이란 해당 부위에 5㎜ 미만의 내시경을 삽입하고 손상된 인대를 직접 보면서 치료하는 시술법이다.  관절전문 강서제일병원의 송상호 원장은 “파열된 상태에서 오랜 시간 방치할 경우 관절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에 의해 연골이 닳아 연령에 상관없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몸싸움을 하다 발생하기 쉬운 반월상연골판손상이다.  ‘캡틴’ 박지성 선수도 2003년 네덜란드 ‘에인트 호벤’에서 뛰던 시절 반월상연골판손상을 당해 무릎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반월상연골판은 허벅지 뼈인 대퇴골과 정강이뼈인 경골 사이에 초승달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강이뼈 꼭대기 좌우편에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 무릎에 가해지는 마찰을 최소화시키는 쿠션 기능과 무릎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윤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주 임무다.  무릎을 오래 구부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무릎이 굳은 듯한 느낌, 걷는 도중 무릎이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면 반월상연골판손상을 의심해야 한다. 또한 계단을 내려갈 때 무릎 한 쪽이 시큰하게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세번째는 발목염좌.  축구를 하면서 한 번쯤 ‘발목이 삐는’ 현상을 겪어봤을 것이다.  이렇게 발목이 삐끗하거나 접질리는 것이 의학용어로는 ‘발목염좌’다.  가장 흔한 것은 발목 관절의 바깥쪽 인대 손상으로 발목의 바깥 부위가 붓고 멍이 드는 ‘외측인대손상’이다. 발목은 안쪽으로 쉽게 꺾이는 경향이 있고 외측을 지지해주는 인대가 비교적 약하기 때문이다.  발목염좌는 축구 시합 중 몸 싸움에서 밀려 넘어지면서 구르거나 발을 헛디뎠을 때 주로 발생한다. 발목 부상을 당하면 대부분 파스를 바르는 수준에서 처치를 끝낸다.  그러나 초기 고정을 소홀히 하면 발목 인대가 늘어나 만성적인 발목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발목을 반복적으로 삐게 만드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발목을 삐끗한 초기에는 가능한 한 빨리 냉찜질이나 소염진통제, 부목 등을 사용해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만약 인대가 손상되어 발목이 자주 삐는 경우에는 인대 복원술 또는 재건술을 통해 정상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오바마 MB 옆에 두고 시국선언 화제

    오바마 MB 옆에 두고 시국선언 화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을 옆에 두고 이란에 대해 언급한 것이 ‘오바마 시국선언’으로 불리며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백악관에서 공급한 기자회견 전문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어로 “환영합니다.”라고 직접 인사하며 회견을 시작했다.  공고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북한에 평화적인 협상을 제의하는 등의 공동 회견문 발표 이후 질문과 답변 시간이 이어졌고,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답변 이후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기자회견이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란?”이란 간단한 질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긴 답변을 이어나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7~8시간 전에 나는 선거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볼때 미국 대통령이 이란 선거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반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적인 시위에 대한 폭력을 나와 미국인들이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국민들과 소통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제가 강력히 지지하는 보편적인 원칙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라고 답변을 마무리했다.  네티즌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시국선언’이 표면적으로는 이란 사태에 대한 발언이지만, 단순히 이란만을 향한 말이었다면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꺼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측근을 인용, “백악관의 반응은 미국이 정권 교체를 강요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을 피하려 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순례자 자처한 고 엄영선씨 블로그에 추모글 이어져

    순례자 자처한 고 엄영선씨 블로그에 추모글 이어져

     ”나라를 사랑하고, 타지에서 봉사하며 순례자임을 자칭하던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주님께서 기억하실 겁니다.”  예멘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테러단체에 납치돼 숨진 엄영선(34)씨의 블로그(blog.naver.com/blue751214)에 16일 네티즌들이 잇따라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나는 순례자, 여행하는 영혼(I am a pilgrim, a travelling soul!)’이란 대문 제목에 ‘막달레나’란 아이디로 블로그를 꾸려 온 엄씨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블로그 메인 화면에 걸어놓았다.’우리는 자랑스런 조선인입니다.’란 제목으로 윤동주 시인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시구를 적어놓았다.  또 최근에는 ‘루이스vs프로스트’란 책을 읽었다며 “최근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자살’에 대한 신드롬(?)을 볼 때면 너무나 안타깝다. 자살을 부른 원인이 결코 그들 삶의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고라도 그들의 문제에 대한 태도와 결정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했다.  지난 1월 23일에는 예멘에서의 생활을 소개한 영문 포스트와 지프차에 올라탄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엄씨는 “예멘에 지난 10월 도착해 세은이란 한국인 소년을 가르치며 네덜란드 하우스메이트와 잘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달에 1~2건씩 외국인 납치가 일어난다. 예멘의 수도인 사나로 자주 여행하는데 그때마다 하느님께 보호를 청한다. 8월말에는 집으로 돌아가 연말에는 터키에 갈 계획이다. 아버지와 여동생의 건강을 빈다.”고 덧붙였다.  엄씨는 항상 납치의 위험을 걱정하고 대비했지만 테러 단체의 만행을 비껴가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2007년 6월에는 ‘한국 생활 적응하기’란 제목으로 “문화 충격에 대한 생각과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3년 가까이 공동체 생활을 해서 그런지 한국은 내가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당신의 수고로움을 우리는 이제서야 알았다.”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이선균 “한예종이 좌파라고? 군대도 아닌데…”

    장동건, 오만석, 유선, 이선균 등의 배우를 길러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가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로 인해 황지우 총장이 사퇴하는 등 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졸업생 등이 ‘한예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란 인터뷰 영상을 제작했으며 2001년 연극원 예술사 과정을 졸업한 이선균도 참여했다.    이선균은 인터뷰에서 “아이러니하다. 실기만 한다고 이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주체여야 하는 학교에서 정부나 외압적인 힘들이 작용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군대도 아닌데, 나라 현실이 화가 나고 마음아픈 일이 많은데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 축소판같아 졸업생으로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또 “학교 자체를 좌파라고 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반문했다.  영상원 전문사과정을 졸업했으며 ‘경축! 우리 사랑’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오점균은 “좌파의 온상이라면 졸업 작품이나 학교 행사에 좌파적인 것이 많아야 하는데 거의 없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예술학교에까지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하려는 생각 자체가…”라며 한탄했다.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는 이론 관련 학과 축소와 서사창작과 등 합동과정 폐지를 주요 골자로 하는 문광부 감사결과에 반발, 문광부 앞에서 학생과 학부형들이 1인 시위를 벌였다.  한예종은 11일 황지우 전 총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총장석에 대해 다음달 한예종 교수 135명의 비밀투표를 거친 후보자 2명을 문광부 장관에 추천할 것이라고 박혔다.  문광부는 이들 중 1명을 정해 대통령에게 제청하면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거쳐 임기 4년의 한예종 새 총장이 정해지게 된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부고]

    ●남상준(남영실업공사 대표)상숙(휘경공고 교사)상실(미국 거주)상은(〃)민수(현덕학원 실장)씨 부친상 권혁주(남영실업공사 감사)씨 시부상 박관식(솔라 대표)김세규(미국 거주)김희태(〃)고재영(한국환경자원공사 사장)씨 빙부상 11일 한양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2290-9442●고경문(고대안암병원)미향(연합인포맥스 마케팅 부장)진향(신한은행 과장)씨 부친상 윤창수(태영매니지먼트 과장)서한기(연합뉴스 전국부 차장)손석호(신한은행 전략영업본부 부부장)씨 빙부상 11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30분 (02)929-0099●전석봉(중소기업중앙회 감사실장)씨 부친상 10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30분 (02)2258-5973●최석영(서울경제신문 사회부 차장)지영(신일여중 교사)씨 모친상 구자호(한길 대표)씨 빙모상 11일 대전성모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42)220-9973●김현서(가요프로덕션 대표)씨 별세 현용(아이컴 대표)씨 형님상 11일 순천향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11-264-4227●고강인(전남일보 사회부 기자)씨 조모상 11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062)250-4407
  • 세븐, 박한별과 연인 인정

    세븐, 박한별과 연인 인정

    가수 세븐(본명 최동욱·25)이 10일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탤런트 박한별과 연인 사이임을 최초로 공개했다.세븐은 ‘다 말해줄게요’란 제목으로 “저 최동욱과 배우 박한별양은 그동안 좋은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데뷔전부터 현재까지 7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해온 연인관계가 맞습니다.”라고 밝혔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동기인 세븐과 박한별은 데뷔초부터 연인 사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븐은 “데뷔초부터 무성했던 소문을 항상 친구사이일뿐이라는 말로 덮어야만 했던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는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좋은 단짝친구로 지내며 데뷔 이후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연인 사이로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라며 그간의 과정을 털어놓았다.   소문을 숨긴 사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공개한 연예인 커플들 중 이별, 후회하는 모습을 간간이 지켜 보면서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사생활은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세븐은 YG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미국에서 가수활동을 준비 중이며 ‘인터넷 얼짱’으로 유명해진 박한별은 세븐과 같은 소속사에서 ‘여고괴담3’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으나 현재는 소속사를 옮긴 상태다.  세븐은 “이렇게 떠밀리듯, 해명하듯 공개하는 것은 원치 않았던 일인지라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만 오늘 이후로는 ‘한 남자로서 한 여자에게 조차 당당하지 못한 내 자신이 어떻게 수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죄책감과 불편한 마음은 이제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한편으로 홀가분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7년간 연인 사이임을 부인해 왔던 이들이 사실을 공개하게 된 것은 인터넷에 유출된 사진 때문이다. 이 사진에 대해 세븐은 “작년에 미국에 오랜 기간 머물 당시 박현별과 미니홈피에 ‘비공개’ 방을 만들어 서로의 사진을 올리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유출된 사진은 작년에 지갑 속에 넣어다니던 사진을 스캔해 ‘비공개’로 올린 것인데 해킹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미니홈피에는 연인 사이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세븐과 박한별의 사랑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들려주는 감동의 랩

    노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들려주는 감동의 랩

    신인 힙합가수 에스코(esco)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 직전 느꼈을 고뇌와 그의 이상과 꿈에 대한 독백들을 가사로 담아 만든 곡 ‘부엉이 바위에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30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부엉이 바위에서’는 뛰어난 완성도와 힙합 정신을 잘 살려낸 가사로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이들의 슬픔을 더하고 있다.    에스코는 “내가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최후의 순간에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생각해보다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면서 “이 노래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엉이 바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을 찾아온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공개 인사말로 시작된다.  가사는 “오늘은 5월 23일. 이른 아침. 잠이 오지 않아 일찍 일어났지. 나름 열심히 살았어 지금까지. 이렇게 죽기엔 아직 이른 나이. 하지만 이럴 수 밖에 없어. 난 대통령이자 사내로서 자존심은 지켜야만 했었어. 잠시 돌아볼까 나의 삶의 역경.  가방끈이 짧아 힘들었어. 가질 수 없었지 어떤 기득권도. 가진 사람들이 전부 나를 밀쳤어도 인권변호사로 정치가로 일어섰어. 난 정말 너무 복이 많은 사람. 가진 게 없어도 사랑받았잖아. 그때만 생각하면 설레여서 잠이 안와. 하지만 난 결단했어 이게 팔잔가봐.  기다려도 기다려도 좀 더 나은 내일은 아직이지만 나 없이도 잘살아줘. 겨울이 가고나면 봄이 오니까.  난 새 시대 첫 사람이 아냐. 구시대를 청산하는 마지막 사람. 젊은 친구들 다 내 자식들 같아. 잊지마 국민들께 바치는 사랑. 내가 원한 것은 평등한 식탁. 하지만 서민 표정은 왜 어두워질까.  주권은 어디있지? 높은데 있나? 지켜주고 팠어 모두의 희망. 끝을 내고 싶었어 밥그릇 싸움. 약속을 못 지켜 그저 한숨뿐야. 먼훗날 역사는 이런 나를 알아줄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싸워 왔을 뿐야. 운명이란 왜 이리도 잔인할까. 내가 바란 건 이런게 아니잖아. 여기 온지 일년만에 살맛이 안 나. 이 바위가 바로 마지막인가봐.  기다려도 기다려도 좀더 나은 내일은 아직이지만 나 없이도 잘살아줘. 겨울이 가고나면 봄이 오니까.  내가 떠나면 모두의 힘을 모아서 새로운 새상을 열어줘 꼭 도와줘. 우리는 과거의 기득권층에 속아서 가진것마저 힘없이 뺏겨왔어. 새로운 세상에 차별따윈 없어야 해. 학력 성별 재산에 차별둬선 안돼. 출신이나 학력따위가 어떻건 간에 차별받지 않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래.  속질말길 정치가의 거짓말에. 조심하길 멍청하게 속지 않게. 썩어빠진 권위주읜 버려야해. 부엉이 바위 여기서 삶을 정리할게. 내가 5년간 살았었던 그곳 청와대. 보이지 않게 이제 날 벼랑에 떠민다네. 평범한 농부로 산다는 건 욕심같애. 국민들게 너무도 미안해 먼저갈게.  기다려도 기다려도 좀더 나은 내일은 아직이지만 나 없이도 잘살아줘. 겨울이 가고나면 봄이 오니까.”로 이루어져 있다.  노래의 마지막은 MBC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배칠수 씨가 노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했던 “열심히 잘들 지내시구요. 건강들 하십시오. 좋은 날이 올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로 마무리되어 슬픔을 더 한다.  네티즌들은 “가사가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노래가 감동적”이라며 소감을 적고 있다. 최근 홍대앞 클럽에서 공연을 벌인 에스코(www.cyworld.com/gutterstyle)는 현재 데뷔 앨범을 준비중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 전 대통령 손녀의 ‘브이’,케네디 연상시켜

    노 전 대통령 손녀의 ‘브이’,케네디 연상시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열린 29일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손녀였다. 노 전 대통령의 첫 손녀인 서은 양은 봉하마을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향해 윙크를 하고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인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아직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서은양의 천진난만함이 국민들의 비통함을 더했다. 올해 다섯 살인 서은 양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청와대에서 할아버지의 무등을 타거나 과자를 먹는 모습, 봉하마을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 등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전해져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개 연설에서 노 전 대통령은 “손녀가 참 예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은양의 이름으로 ‘노다지’와 ‘노생금’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지하게 “’다지’라는 이름도 예쁘지만 금덩어리인 ‘노다지’를 이름으로 갖는 게 얼마나 좋으냐. 노다지가 싫으면 한문으로 변형시킨 ‘생금(生金·캐 낸 그대로의 금)’은 어떠냐”고 하여 자식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서은 양의 브이는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장례식 때 세 살이던 케네디 주니어가 거수경례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젊은 나이에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케네디 주니어는 장례식 때 깜찍한 거수경례를 올려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전립선 수술 때문에? 5공 청문회 악연 탓? 北, 동해서 또 단거리 미사일 발사 “우리은행 명칭 독점 못한다” 9호선 당산역에 국내최장 에스컬레이터 “노통 따라 갈래” 여대생 목매 자살
  • 李대통령 헌화하자 “여기가 어디라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진행하던 중 소란이 일었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이 대통령이 헌화를 하려고 나가자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제지하려고 시도했다. 백 의원은 “여기가 어디라고” 외치며 영정이 있는 쪽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경호원에 의해 곧바로 제지당했다. 백 의원은 “이 대통령은 사과하라” “정치보복으로 살해됐다”고 외쳤다. 참석자들 가운데 일부도 “사과하라”고 같이 외쳤고 백 의원은 “정치적인 살인”이라면서 계속 소리 지르다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이 나와 제지하자 백 의원과 경호원 측도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 상황은 3~4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 대통령의 헌화 당시 백 의원 뿐만 아니라 추모객 사이에서도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 내외가 헌화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부 추모객이 야유를 보냈다. 소동이 일자 이 대통령은 주위를 둘러보며 머뭇거렸고, 이때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쌌다. 야유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자 사회자는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자리인 만큼 경건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잠시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보기도 했지만 경호원들의 제지로 상황이 중단되자 헌화를 마쳤다. 영결식에 참석한 이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 대통령 내외는 영결식 말미의 헌화 의식 순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족에 이어 두 번째로 영정 앞에 헌화했으며, 이는 이날 국민장에서 이 대통령이 유일하게 단독으로 치른 의식이었다. 한편 서울광장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며 노제를 준비하던 추모객들도 이 대통령의 헌화 장면이 나오자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29일 낮 경복궁에서 국민장 영결식이 거행되는 동안 서울광장 주변에서도 시민들의 주최로 영결식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광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실시간 광화문 영결식이 중계됐다. 12시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단상에 오른다는 사회자의 소개가 있자 서울 광장에서는 일제히 큰 야유가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수백여명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야유와 함께 “책임져라” “노 대통령을 살려내라” “누가 누구를 헌화하느냐”라고 고함지르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명박은 살인자” 등의 욕설도 난무했다. 격앙된 분위기는 이 대통령이 화면에서 사라진 다음에야 수그러들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李대통령 헌화하자 “여기가 어디라고”

    李대통령 헌화하자 “여기가 어디라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진행하던 중 소란이 일었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이 대통령이 헌화를 하려고 나가자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제지하려고 시도했다.  백 의원은 “여기가 어디라고” 외치며 영정이 있는 쪽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경호원에 의해 곧바로 제지당했다. 백 의원은 “이 대통령은 사과하라” “정치보복으로 살해됐다”고 외쳤다.  참석자들 가운데 일부도 “사과하라”고 같이 외쳤고 백 의원은 “정치적인 살인”이라면서 계속 소리 지르다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이 나와 제지하자 백 의원과 경호원 측도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 상황은 3~4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 대통령의 헌화 당시 백 의원 뿐만 아니라 추모객 사이에서도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 내외가 헌화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부 추모객이 야유를 보냈다.  소동이 일자 이 대통령은 주위를 둘러보며 머뭇거렸고, 이때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쌌다. 야유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자 사회자는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자리인 만큼 경건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잠시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보기도 했지만 경호원들의 제지로 상황이 중단되자 헌화를 마쳤다.  영결식에 참석한 이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 대통령 내외는 영결식 말미의 헌화 의식 순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족에 이어 두 번째로 영정 앞에 헌화했으며, 이는 이날 국민장에서 이 대통령이 유일하게 단독으로 치른 의식이었다.  한편 서울광장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며 노제를 준비하던 추모객들도 이 대통령의 헌화 장면이 나오자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29일 낮 경복궁에서 국민장 영결식이 거행되는 동안 서울광장 주변에서도 시민들의 주최로 영결식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광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실시간 광화문 영결식이 중계됐다.  12시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단상에 오른다는 사회자의 소개가 있자 서울 광장에서는 일제히 큰 야유가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수백여명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야유와 함께 “책임져라” “노 대통령을 살려내라” “누가 누구를 헌화하느냐”라고 고함지르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명박은 살인자” 등의 욕설도 난무했다.  격앙된 분위기는 이 대통령이 화면에서 사라진 다음에야 수그러들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만든 ‘盧 전 대통령 동영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때의 사진이 지난 27일 공개된 데 이어 ‘청와대 출입기자 송년회 동영상’이 28일 새벽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27일 공개한 사진에는 ‘노간지’라 불리며 사랑받았던 고인의 소탈하고 국민과 함께 하려 했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기자 송년회 동영상은 지난 2007년 12월 27일 노 전 대통령이 5년간 청와대 생활 마감을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가진 마지막 송년회때 제작된 것으로, 미공개 사진들과 자막 등으로 구성됐다.이 동영상은 행사장에서만 상영됐고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다음은 출입기자들이 동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남긴 편지 글이다.배경음악인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석방을 허락합니다. 일로부터, 구속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그리고 비판으로부터.... 2007년12월27일 청와대 출입기자 일동’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 최영훈기자 geo@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윤태영 전 대변인 “보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윤태영 전 대변인 “보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떠난 고인에 대한 애정을 절절히 표현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어떤 책을 읽고 생각을 했는지를 ‘미래를 말하다’ ‘유러피언 드림’ 등의 짧은 독서목록과 함께 소개했다. 다음은 윤태영 대변인이 쓴 글의 전문이다.  1.사저 안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대문이 입주한 이래 항상 열려있었던 기억을 지워버릴 정도로 굳게 닫혀 있었다. 뒤편 가운데 위치한 대통령의 서재는 유난히 어둡고 침침해졌고, 남과 북으로 면한 통창의 절반 이상까지 황갈색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담고 지붕 낮은 집을 찾던 남녁의 햇살은 대문 밖에서 서성이거나 안마당 위의 허공을 맴돌았다. 창문 틈의 그림자까지 잡아채려는 취재진들의 렌즈가 내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조치가 만들어낸 사저의 분위기였다.  4월 중순, 대통령의 사저는 생기를 잃어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 그 안에 선 대통령은 유난히 머리가 희여 보였다. 사저를 둘러싸고 형형색색들의 꽃들이 피어나 울적한 대통령을 위로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시야에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특유의 농담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이제는 부산 사투리의 억양마저 없어진 듯 나지막하고도 담담한 대통령의 어조가 서재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형님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대통령은 지인들의 사저 방문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대통령의 만류에 많은 참모와 지인들이 발길을 돌렸지만, 2009년 새해 첫 날에는 그래도 적지 않은 손님들이 사저를 찾았다. 이어지는 설 명절, 대통령의 만류는 더욱 강해졌고 손님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서울로부터 여러 명이 참모들이 내려오는 일이 있으면 대통령은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로 다녀갈 것을 주문했다. 긴 외로움으로 생겨난 마음 속 빈 자리를 그렇게 해서라도 채워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4월, 봄이 되면 재개될 것으로 생각했던 방문객 인사는 고사하고 대통령은 오히려 사저 안으로 안으로만 갇혀질 수밖에 없었고, 사저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더욱 더 뜸해졌다. 5년 전 탄핵의 봄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유폐생활에 대통령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는 위로와 격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이 커지고 있는 듯했다. 원래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기약 없이 계속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길었을 법하다. 재임시절 내내 은밀한 독대는 거부하면서 회의실 의자가 동이 나도록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대통령에게 홀로 앉은 텅 빈 서재는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뇌하는 캐릭터,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워크홀릭, 대통령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진보주의 연구’ 등에 대한 생각을 천착하고 다듬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은 예상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틈틈이 대통령은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겠나?’, ‘이렇게 된 내가 이 이야기를 한다 해서 설득력이 있겠나?’라는 회의를 스스로에게 때로는 참모들에게 던지곤 했다.  4월초의 어느 날, 대통령을 둘러싼 파란이 시작되기 1주일여 전, 대통령은 구술회의를 마치고 서재를 나서다가 무언가 아쉬움이 남은 듯 출입문 앞에서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던졌다.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도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  차마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 채 서재를 나선 대통령. 그 뒤에서 참모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거나 아니면 뒤돌아서서 소리 없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2.길고 고독한 시간들. 그 피폐한 시간들 속에서도 서재 안 대통령의 자리 앞에는 언제나 수북이 책들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책과 자료를 찾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다시 두 권의 책을 찾았고, 심지어는 외신에 등장하는 기고들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독서가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생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그 주제 속으로 파고들어 애초의 줄거리에서 일탈하는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엔 그다지 흔치 않았던 일이었다. 작은 주제 하나를 이야기하는 데 인용되는 책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인간의 기원으로부터, 유전자, 국가의 기원과 역할, 지나간 우리 역사에 대한 회고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탐구하는 주제와 소재들은 방대했다. 방대한 넓이만큼이나 그 천착의 깊이도 땅속으로 끝없이 뻗친 큰 나무의 뿌리와도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식의 수준과 양의 측면에서 대통령과의 격차를 느끼던 참모들은 이 시절을 거치면서 그 격차가 더욱 커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쉽고 편안한 대중적 언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이었지만, 이미 그 철학과 사상의 깊이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책을 향한 깊은 몰두를 보며 오죽하면 고시공부 할 때 독서대를 개발했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단순히 혼자만을 위한 지적 호기심 충족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은 책 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강력히 추천했다. 아니, 직접 수십 권을 구입해서 나눠주곤 했다. 작년에는 폴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회보장체제를 설명한 [유러피언 드림]. 대통령은 특히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며 이런 책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  말 잘하는 대통령이란 세평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확실히 말보다 글을 선호했다. 독서를 좋아한 이상으로 글을 잘 쓰고 싶어 했다. 글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대통령의 수많은 욕심 가운데 최대의 것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기막힌 카피도 종종 튀어나오고 또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즐겼다.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언어를 구사하다가 수많은 공격을 받아 시달린 경험 탓이었을까? 대통령은 말로서 사람을 설득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설득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집착 이상의 것이었다. 글을 잘 정리하는 사람을 옆에 앉혀두고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집념이었다.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카페를 열고 시스템을 만들어 공동창작을 모색했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각종의 문제를 제기하고 댓글을 다는 순간, 대통령은 분명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공동창작을 위한 시스템이 뼈대를 갖추었던 날, 사저의 모든 비서들이 참으로 오랜만에 대통령의 생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글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약한 허리에 상당한 무리를 주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수록, 허리를 비롯한 육체의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밖으로부터 다가오는 힘겨움과 그 긴 시간들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책과 글에 대한 집념이 건강을 갉아먹는 악순환의 늪으로 대통령을 서서히 끌어들이고 있었다.    3.2004년 하반기.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순방의 강행군은 대통령의 건강을 무력화시켰다. 대통령은 극도로 지쳤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치의와 진료의는 금연을 강권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흡연과의 전쟁이었던 셈. 번번이 대통령은 패배했다. 후보 시절의 금연 패치가 그러했고, 이 때의 금연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오면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내심으로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한 두 개비씩 조심스럽게 피우던 담배는 2005년 대연정 제안으로 인한 상처가 깊어지면서 이전의 애연가 수준으로 완전히 회귀하고 말았다.  봉하마을로의 귀향. 어쩌면 그것은 대통령이 금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만 비서로부터 개비로 제공받는 제한적 공급에 동의했다. 이 방식이 얼마나 담배를 줄이는 데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나마의 끽연조차도 작년 말 건강진단 후에는 의료진의 강력한 금연 권고 앞에서 다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건강은 완벽한 금연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작년 말부터 시작된 상황은 대통령의 손에서 담배가 끊어지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 어쩌면 그것은 책, 글과 함께 대통령을 지탱해준 마지막 삼락(三樂)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남긴 글에서 말했듯이 책 읽고 글 쓰는 것조차 힘겨워진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기댈 수밖에 없는, 유일하지만 허약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담배로는 끝내 태워 날려버릴 수 없었던 힘겨움.  지금이라도 사저의 서재에 들어서면 앞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다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누르며 ‘담배 한 대 갖다 주게’하고 말하는 대통령, 잠시 후 배달된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대통령이 ‘어서 오게’ 하며 밝은 미소를 짓는 대통령.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모습이 영결식을 앞두고 다시금 보고 싶어진다. 미치도록….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중 비공개 사진

    故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에서 27일 재임중 비공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한장 한장 마다 인터넷에서 ‘노간지’라 불리며 사랑받았던 고인의 소탈했으며 국민들과 함께하려 했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전 대통령 비공개 영상과 사진들

    노무현 전 대통령 비공개 영상과 사진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때의 사진이 지난 27일 공개된 데 이어 ‘청와대 출입기자 송년회 동영상’이 28일 새벽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27일 공개한 사진에는 ‘노간지’라 불리며 사랑받았던 고인의 소탈하고 국민과 함께 하려 했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기자 송년회 동영상은 지난 2007년 12월 27일 노 전 대통령이 5년간 청와대 생활 마감을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가진 마지막 송년회때 제작된 것으로, 미공개 사진들과 자막 등으로 구성됐다.이 동영상은 행사장에서만 상영됐고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다음은 출입기자들이 동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남긴 편지 글이다.배경음악인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석방을 허락합니다.  일로부터, 구속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그리고 비판으로부터....  2007년12월27일 청와대 출입기자 일동’ 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 최영훈기자 geo@seoul.co.kr
  • 유시민 “내게는 영원한 대통령”

    유시민 “내게는 영원한 대통령”

     25일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부 공식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팬클럽 사이트인 ‘시민광장’에 ‘서울역 분향소에서’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유시민 전 장관은 시(詩)처럼 짧은 문장들로 이뤄진 글에서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이 떠났다.”고 가슴 아픈 심정을 내비쳤다.  이어 “스무 길 아래 바위덩이 온몸으로 때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껴안고 모두의 존엄을 지켜낸 남자 그를 가슴에 묻는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유 전 장관은 전날 노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던 사실 때문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영전에 바쳐 눈길을 끌었다.그를 따라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들이 담배에 불 붙여 영전에 올리는 모습이 잇따랐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국장, 국민장 무슨 차이?

    국장, 국민장 무슨 차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의식으로 결정된 국민장은 국장과 어떻게 다를까.  국장(國葬)은 대통령을 역임하였거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하였을 때 거행하는 장례의식이다.  국민장(國民葬)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적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때에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거행하는 장례의식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에 비해 국민장은 김구 전 임시정부 주석를 시작으로 장면 전 부통령, 신익희 전 국회의장, 조병옥 박사, 육영수 전 대통령 영부인 그리고 1983년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순국한 17인의 합동국민장 등 12차례가 있었다.  한편 이승만, 윤보선 두 전직 대통령들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을 치렀다.  1989년 12월 20일 개정된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국장은 9일 이내, 국민장은 7일 이내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정한다.”고 규정한다.  국장은 소요 경비 일체를 국고에서 부담하지만 국민장은 일부를 국고에서 보조할 수 있다.  현재 법령에 따르면 고인에게 가장 큰 명예는 9일간의 국장이다.  조선 시대의 국장은 오늘날의 국장이나 국민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조선의 왕과 왕비의 국장은 무려 다섯달에 걸쳐 이뤄졌다.  태조 이성계의 국장 이후 왕과 왕비의 국장기간을 5개월로 정했고, 국장 이외의 장례기간은 국법에 정4품 이상 사대부는 3개월, 그 밖의 사람은 1개월로 못 박았던 것.  현재의 국장과 국민장에 관한 시행령에 대해서는 “전직 국가 원수나 유명 인사들에 대한 예우에서 치르는 장례라면 국장인지 국민장인지, 9일인지 7일인지에 대해 대통령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최초의 국민장인 김구 선생의 장례식 절차를 놓고도 논란이 벌어졌는데 김구 선생 쪽에서 민족장을, 이승만 정부에서 국장을 하자고 맞섰다가 결국 국민장으로 타협됐다.  1947년 극우파에 의해 저격당해 숨진 당시 근로인민당 당수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여운형은 15일장을 치렀다. 이때 경찰은 “부의금과 조문을 강요하지 말 것”이라며 경고문을 발표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잘못 입금된 670만달러 이체하고 튄 중국인

     뉴질랜드 은행의 실수로 하루 아침에 ‘돈벼락’을 맞은 중국인과 현지인 여자친구 커플을 인터폴과 현지 경찰이 쫓고 있다고 원뉴스(One News)가 22일 보도했다.  유명 관광지 로토루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중국인 레오 가오와 여자친구 카라 영은 지난 5일 웨스트팍 은행이 실수로 가오의 계좌에 입금한 돈 1000만뉴질랜드달러(약 76억원) 가운데 670만달러를 어디론가로 송금한 뒤 종적을 감췄다.  현지 경찰은 이 커플이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트럭이 오클랜드 국제공항 주차장에 주차된 점을 들어 이 커플이 이곳 공항을 통해 홍콩이나 중국 베이징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오가 돈벼락을 맞은 전말은 우습기 짝이 없다.지난 5일 웨스트팍 은행은 1000만달러 한도의 당좌대월 약정을 가오의 계좌에 설정했다.가오는 주유소가 자금난에 봉착하자 10만달러 한도의 당좌대월 약정을 신청했는데 계좌 승인이 떨어지는 동안 한도를 기재하던 은행원이 실수로 1000만달러로 기재하는 바람에 한도가 100배로 늘어나게 됐다.  은행은 다음날에야 직원의 실수를 확인하고 계좌를 폐쇄했지만 가오 커플은 이미 670만달러를 다른 계좌로 이체한 뒤였다.경찰은 가오가 어느 나라로 이 돈을 송금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웨스트팍 은행이 이날 한 일은 계좌를 폐쇄한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은행은 7일에야 비로소 가오 커플은 물론,주유소를 함께 운영했던 후안 디 장과 함께 종적을 감춘 것을 확인했다.주유소는 재산관리인에게 넘어간 뒤였다.주위 친구들에겐 “돈이 조금 생겼는데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휴가나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경찰이나 은행 모두 가오가 계좌 이체에 성공한 시점으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이제와 이들을 추적 중임을 공개하는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웨스트팍 은행의 공보담당 크레이그 다우링은 “지금까지 (가오가 이체한 670만달러 가운데) 290만달러를 회수했고 나머지 380만달러를 되찾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은행의 최고경영자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실수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것”이라고 직원들을 다독인 뒤 ”(가오의 돈을 회수하느라) 바쁜 며칠을 보낸 뒤에는 직원들이 가족,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자친구 영이 한때 한국인과 사귀었다는 소문을 들어 가오가 한국인일지 모른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1990년대 웰링턴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부동산 개발업을 하던 앤디 커란은 어느날 고객 중 한 명으로부터 수표를 받았는데 받기로 돼있던 6만달러 대신 6000만달러가 수표에 기재돼 있었다.커란은 수표를 복사해 놓았지만 “(가오처럼) 도망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검찰 조사 이후 자살 빈번…국가 배상안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개인 비리와 관련된 검찰 조사 끝에 투신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검찰의 조사를 받다 끝내 죽음을 택한 저명 인사들의 사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검찰의 조사를 받다 자살해 국민들에게 가장 충격을 준 사건은 2003년 8월 4일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온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서울 계동 집무실에서 투신한 일이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 이후 “전화번호부처럼 두꺼운 책으로 머리를 맞기도 하는 등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인격적 모멸감을 느겼다.”는 고인의 발언이 측근을 통해 언급되기도 했으나 검찰은 예의를 다해 수사했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었다. 검찰 수사의 주요 조사자인 유명 인사가 자살한 첫 사례는 ‘정현준 게이트’를 규명할 핵심 인물로 기대를 모았지만 2000년 10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여관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장래찬 당시 금융감독원 국장이다. 또 2004년 2월에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수감 중이던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사회적인 수모를 모두 감내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 전 시장 사망 한 달여 만인 2004년 3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투신해 숨졌다. 남 전 사장의 죽음 이후 “인사 청탁을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말해 자살 계기를 제공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다. 남 전 사장이 숨진 지 한달 보름만인 2004년 4월 29일, 국민건강보험공단 비리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남지사도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또 2004년 6월 4일 한강에 투신자살한 이준원 파주시장도 주변 인물들이 뇌물을 받은 혐의와 관련해 연루 여부에 대해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었다. 2005년 11월에는 불법도청 관련 검찰수사를 받아오던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 10월 10일에는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 대상에 올랐던 김영철 전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이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주요 피의자가 목숨을 끊는 경우에 기소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검찰은 ”수사에서 당한 모욕 때문보다 확대 진행되는 수사에 압박을 느꼈기 때문은 아닌가 추측한다.”는 식으로 해명해왔다. 검찰 수사 도중 사망하더라도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수갑을 차지 않고 자유롭게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사망한 경우 국가는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미국의 두번째 안면 이식 수술 성공

    미국의 두번째 안면 이식 수술 성공

     안면 이식(페이스 오프) 시술로 새 얼굴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안면 이식 시술을 통해 새 얼굴을 찾은 남성이 21일(현지시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동영상 보러가기 제임스 맥키(59)는 2005년 보스턴 지하철 역에서 사고로 철로에 추락해 고압 전기에 얼굴의 상당 부분이 타버렸다.  지난달 9일 브리검 여성 병원의 임상의 36명은 17시간에 걸친 수술을 통해 맥키에게 코, 윗입술, 피부, 근육과 신경을 이식했다.  맥키는 수술 이후의 붓기때문에 말하기 조차 힘들었지만 자신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세계와 나누고 싶어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맥키가 수술 이후 새 얼굴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자신의 새 코가 예전의 코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었다.  맥키에게는 수술 이후 혹시 있을지도 모를 감염 부작용이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맥키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치료됐다고 감동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수족구병 탈수가 더 무서워 편의점-우체국 “우리가 더 싸요” 그린데이-월마트 누가 이기나 보자[동영상] 루시 고든 목맨 주검으로…일부 타살설 제기 “동갑·연하 미혼 OK” 200억 자산 40대女 공개구혼
  • 수족구병 탈수가 더 무서워

     수족구병으로 지난 5일 영아 1명이 사망하면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소아과 전문의가 블로그(latro.egloos.com)를 통해 20일 “기저귀를 간 후에 더욱 손을 철저히 씻고, 아기 아빠들도 위생지침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수족구병은 4세 이전 특히 2세 이전의 아이들에게 잘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질병명 그대로 손(수), 발(족), 입(구)에 발진이 생긴다.  수족구병에 걸리면 아이들은 발진이 생긴 입안이 아파서 잘 먹지 못하게 되고 이때문에 탈수가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병에 걸리면 열은 대개 심하지 않고 먹는 문제만 괜찮다면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일주일 정도 후에 모든 증상이 사라진다고 소아과 전문의는 설명했다.  병의 원인인 바이러스는 장바이러스계로 콕사키 A형 5, 7, 9, 10, 16, 콕사키 B 2, 5, 장바이러스 71(EV71) 이 있는데 이중 콕사키 A16 가 가장 흔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수족구병은 콕사키 A16 에 의한 것이지만, 간혹 발생하는 장바이러스 71에 의한 수족구병은 위험한 합병증이 비교적 잘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중국에서 수족구병으로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뉴스에 아기 엄마들이 걱정하면 의사는 자신있게 “그건 한국에는 없는 바이러스랍니다. 이건 약해요. 안심하셔도 되요.”라고 했는데, 중국에서 유행했던 바이러스가 바로 장바이러스 71였던 것.  올해 한국에서도 수족구병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는데 원인이 바로 중국에서 유행했던 장바이러스 71이었다.  전문의는 “수족구병은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방법이 없고 예방정종도 없으며 입원도 필요없다. 입원을 하는 이유는 탈수를 교정하기 위해서다.”라며 “수족구병에 걸린 환자와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 수족구병에 걸렸다고 해서 격리가 필수사항은 아니지만 최근의 양상을 볼때 급성기의 격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수족구병에 걸렸을 때 자꾸 잠만 자는 등 의식이 저하되거나 심한 구토, 경련, 3일 이상의 고열이 있다면 심각한 합병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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