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는 아·태/APEC,세계 최대 경제블록 도약
◎선진개도국 이해조정이 열쇠/아세안 일부서 견제… 경제관차 해소 시급
▷과제와 전망◁
아·태경제협의체(APEC)의 장애는 크게 보면 해당국가간 경제관의 차이에 비롯되고 있다.현재는 학자들간의 논의 수준이지만 서서히 해당국가의 「21세기 플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관은 두개의 큰 틀로 나뉘고 있는데 하나는 세계의 경제권을 3분하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태평양·대서양권으로 양분하는 시각이다.
먼저 21 세기의 경제권은 미국·캐나다·멕시코 중심의 북미무역자유협정(NAFTA)과 유럽공동체(EC),아세안 6개국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경제협력체(EAEC)등 3개의 경제권으로 재편되리라는 예측인데 주로 유럽공동체와 아세안국가들이 주창하고 있다.각 지역의 문화·교류빈도·언어등을 고려할 때 이같은 형태로 세계경제가 변할수 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논리이다.
EC나 NAFTA와 달리 아세안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EAEC는 아직 회원국들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구체적 윤곽을 잡지못하고 있으나 한국·중국·일본·대만등을 포함하는동아시아경제공동체 구성을 목표로 하고있다.이 협의체는 장기적으론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도 포괄하는 지역경제권의 형성을 염두에 두고있는 아세안국가들의 장기 플랜이다.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고 있는데,북미중심의 NAFTA와 아세안이 주축이 된 잠재력의 EAEC 모두 태평양을 경계로 하고있다는 점이다.즉 태평양 연안국가를 포괄,신태평양공동체를 구상하고 있는 APEC 전략과 상치되는 개념이며 APEC 장래에 대한 장애들은 바로 이 점에서 파생하고 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세안국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APEC와 조화가 가능하다는 논리로 「EAEC를 APEC내 소지역기구로 둘 계획」이라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이번 미 시애틀 각료회의에서도 의제와 관계없이 이 점이 논의될 게 확실시 된다.그러나 EAEC가 과연 APEC내에 둘수 있는지의 여부는 불투명하다.APEC 회원국들이 아닌 나라들이 가입하고 장차 APEC에 버금가는 회원국을 갖게 된다고 볼때 그러한 기구를 APEC내 지역단위의 소기구로 여기긴 어렵기 때문이다.따라서 각료회의에서는 외부로 노출되진 않겠지만 이 점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이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선 APEC 회원국이면서도 NAFTA와 EAEC,어디에도 낄수 없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반발이 예상된다.우리도 겉으론 태연하지만 내심은 이들 국가와 비슷한 것 같다.EAEC로 가게되면 결국 태평양이 경계가 돼 미국이 배제되고 지역내 경제·정치·안보의 주도권이 자연스레 일본이나 중국으로 넘어가는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일본과 중국이 드러내놓고 반대를 표명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우리는 미국이 배제된다고 볼때 안보와 경제면에서 큰 타격을 받을수 밖에 없다.미국도 같은 처지이다.역동성이 큰 아시아지역을 배제하고선 국가의 경영전략을 추진키 어려운 상황이다.클린턴행정부가 APEC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신태평양공동체」를 주창하면서 아·태중시 외교정책을 구사하는 저변엔 이같은 속내가 짙게 깔려있다.따라서 북미지역을 포괄하는 NAFTA도 크게 이 범주를 벗기 어려울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수상이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칠레등 아직까지는 지역성격상 별로 관계가 없는 나라를 신규 가입국으로 아세안이 적극 밀고있는 것도 어찌보면 미국을 배제한 동아시아경제권 형성의 연장선상에 있다.벌써부터 상당한 견제심리를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경제관 차이의 불협화음을 어떻게 여하히 해소하느냐가 APEC의 장래를 가늠할 최대의 변수이다.이번 5차회의는 바로 이같은 입장차이를 정리하고 논의해본다는 점에서 역대 어느 회의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우리를 비롯,많은 회원국들은 아세안과는 다른 경제관을 갖고있고 이번 회의에선 그 점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오는 21세기 북미지역과 동아시아지역간의 교역량은 세계교역량의 4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태평양 연안국가들은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 기초한 것이 태평양경제권과 대서양경제권이라는 이분법의 경제관이며,이는 APEC의 장래가 걸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그러나 구성국의 경제력과 역학구조상 태평양경제권으로 갈수 밖에 없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교역시장 안정적 확보 유리/통상압력 강도 완화에도 크게 도움
▷한국의 입지◁
「개방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는 우리의 대외 경제 여건에 비추어 아주 유리한 메커니즘이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의 불안정이나 EC(유럽공동체)통합 등 유럽의 요새화,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태동으로 국제 교역환경의 불확실성은 날로 높아간다.때문에 아·태지역의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골격으로 한 APEC의 진전은 우리에게 안정적 시장확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태지역은 70년대 이후 세계 GNP(국민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맡아 온 최대의 경제권이다.지난 해 이 지역의 GNP는 11조9천억달러,전 세계 GNP의 54.4%였다.최대 통상 파트너인 미국과 일본·중국·아세안이 포함돼 있어 이 지역의 성장은 바로 우리의 수출과 직결된다.우리 교역의 70%,투자의 80%가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APEC의 진전은 교역규모 확대로 나타나는 통상마찰을 지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다자간 틀을 제공,쌍무적 통상압력의 강도를 완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UR타결이 실패해 각국이 보호조치를 강화할 경우 이를 누그러뜨릴 새로운 다자규범을 마련하는 협상무대로서도 유용하다.
UR가 타결돼도 이를 아·태 차원에서 이행하고,GATT 체제를 넘어선 분야의 추가적 자유화를 위해서도 APEC의 활용도는 높다.이번 회의에서 논의될 저명인사그룹(EPG)보고서도 『각국의 독과점 금지 등 경쟁관련 정책과 환경문제 등 UR에서 다루지 않거나 합의가 어려운 분야의 자유화도 추구해 나가자』고 밝힌 데서 잘 나타난다.
우리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아세안 국가의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어 협상력이 높아지며,대만과 홍콩과의 관계에 흠을 내지 않고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궁극적으론 중국과 아세안의 개방을 유도하고 일본 건설시장에 진출하는 길도 열리게 된다.
자원 부문에서도 아·태지역과 협력을강화,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러시아 동부지역과 동남아 공산국가와의 협력사업을 기대할 만하다.EC통합이나 NAFTA에 대응한 보호장벽으로서의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밖에 지구온난화,산성비 등으로 태동조짐을 보이는 「녹색협상」(그린라운드)에 대비,회원국간 입장을 사전 조율함으로써 정책협조와 조화도 꾀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APEC가 새로운 경제공동체로 발전하기엔 선진국과 개도국간 이해조정이라는 「멀고 험한」 길이 놓여 있다.미국은 UR협상이 여의치 않자 APEC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아·태경제공동체로 EC를 견제하겠다는 속셈이다.
반면 개도국인 아세안국가들은 『UR협상에서처럼 급격한 시장개방이 태동 단계의 산업의 싹을 자를 소지가 크다』며 점진적인 접근을 선호한다.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이해조화가 아·태경제공동체의 관건인 셈이다.
우리로서는 APEC의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되 농산물이나 서비스 분야의 개방은 가능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APEC의 진전속도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