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봄철 ‘안전 산행’ 하려면/최득영 대한적십자사 외설악산악구조대원
산이 좋아 산 사나이로 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적십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십자의 인도주의 정신에 감동하게 되었고, 적십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산악구조 봉사활동이 벌써 5년이 되었다.
매년 이맘때면 반복되는 유사한 산악사고를 접하면서 때로는 인명구조 봉사활동에 대한 보람도 느꼈지만, 등산객들이 산행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알고 있었더라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늘 가지게 된다. 유달리 시샘이 많은 봄 산에는 위험요소가 적지 않다. 떠나기 전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산중에서 뜻밖의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봄은 겨울에 비해 따뜻하지만 산의 일교차나 당일 일기에 따라서는 느닷없는 눈이나 비, 겨울과 진배없는 추위와 맞닥뜨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해빙기에는 겨울산 같은 낙엽 밑 빙판길이나, 여름철 특징인 진창의 흙길도 만날 수 있다. 특히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한 지표면은 맥없이 들떠 있어, 바위나 나무 등을 생각없이 잡았다간 쏟아지는 낙석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봄철 산행을 나설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장비, 이를테면 구급약·장갑·랜턴·비상식량 정도는 생존과 직결된 것들로 사시사철 언제나 배낭에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봄철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한 방수·방풍복과 혹시 모를 추위에 대비한 보온 재킷을 배낭 아래 챙겨 넣었다면 일단 안심이다. 빙판에 대비한 아이젠도 꺼내기 쉬운 곳에 챙길 필요가 있으며,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요즈음에는 스패츠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보통 지팡이처럼 사용하는 스틱은 그 용도가 굉장히 다양한데, 가능하다면 한 쌍을 동시에 사용하고, 평지에서는 지표면의 상태를 확인하는 용도로, 경사면에선 지형물을 잡지 말고 스틱에 의지해 오른다면 혹시 있을 낙석을 예방·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장비의 적절한 사용법을 몸에 익히는 것 또한 필수다. 늘 하고 있지만 산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옷을 입고 벗는 방법이다. 일교차가 극심한 봄철 산행에서는 체온유지와 보온을 위해 그 중요성이 특히 강조된다. 레이어링시스템이란 거창한 말로 속옷·중간옷·겉옷을 적절히 겹쳐 입는 방법을 설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체질에 맞게 입고,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팔만 입어도 땀이 나는 체질의 사람은 과감히 벗어야 하고, 세겹을 겹쳐 입어도 추운 사람은 더 입어야 한다. 흔히 산행 중에는 두껍게 입고 땀을 흘리며 걷다가, 쉬는 시간에는 옷을 벗어 땀을 식히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가능하면 걸을 때는 조금 춥더라도 덜 입고, 휴식시간엔 하나 더 챙겨 입어서 따뜻하게 해 주어야만 체온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다만 산행 중에 땀과 한기로 몸이 영 불편하다면 뒤처지거나 귀찮더라도 즉시 입고, 벗어 주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버티다간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산을 즐기기 위해서는 몸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평소 적당한 운동으로 단련하여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가끔씩 하는 산행으로 운동을 대신하려 했다간 오히려 관절 등의 무리로 몸을 해칠 수 있다. 산행은 절벽 위의 서커스가 아니다. 포근한 봄날 넉넉하고 여유롭고 안전한 산행을 꿈꾼다면 그것이 장비가 됐든, 몸이 됐든 항상 준비하여야 한다. 아무리 등산에 자신이 있다 할지라도 완벽한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떠나라!
마지막으로 평소 짬을 내어 대한적십자사가 교육하는 응급처치법을 익혀두자. 불의의 사고가 났을 때,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긴요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최득영 대한적십자사 외설악산악구조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