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허블이 발견한 ‘우주’…또 다른 변혁을 위한 지금 [이광식의 천문학+]
만약 101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학자들이 여전히 은하가 우리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대를 만날 것이다. 100년 전이라면 대부분 과학자들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어딘가에서 인간은 우주가 우리은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나선 성운은 사실 그 자체로 다른 은하라는 사실을. 우주의 규모는 하룻밤 사이에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기록으로 보면 우리는 한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바로 에드윈 허블(1889~1953)이다. 그의 발견은 이를 위해 길을 닦아준 주변 사람들의 천재성이 있었기에 이뤄낼 수 있었다.
“허블과 은하수 너머의 우주를 발견한 것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기는 쉽지만, 그의 연구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어깨 위에 있었다.”
지난 12~1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에서 열린 제245회 미국 천문학협회(AAS) 회의 기자회견에서 카네기 과학천문대의 천문학자 제프 리치는 이렇게 말했다.
리치의 발언은 상징적이었다. 1세기 전인 1925년 1월 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33회 AAS 회의에서 허블의 연구가 공식 발표됐기 때문이다.
허블이 어깨를 가장 많이 딛고 섰던 두 사람은 헨리에타 스원 리빗과 할로 셰플리였다.
우주의 무한 확장 발견한 허블과 그의 조력자들리빗은 하버드대학 천문대에서 하버드 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판을 분석하는 임시직 ‘컴퓨터’로 일했다. 특히 소마젤란운과 대마젤란운의 이미지를 면밀히 조사했고, 그 안에서 1800개 변광성(밝기가 변하는 별)을 식별해냈다.
리빗은 1908년과 1912년에 쓴 두 논문에서 변광성 중 다수가 독특한 주기-광도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녀는 별이 수축하고 확장하면서 규칙적으로 맥동하고 더 밝고 희미하게 보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별의 광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엄청난 발견이었다. 변광 주기와 절대광도 사이에 정확한 관계성을 가진 변광성(후에 세페이드 변광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들을 연구하면서 별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리빗의 주기-광도 관계는 과학자들이 우주의 거리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핵심 개념이다.
셰플리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허블의 발견에서 셰플리의 역할을 감안할 때 그가 은하수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20세기 초에 망원경은 다른 은하의 개별 별을 분해할 만큼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선은하는 나선 얼룩처럼 보였고 나선성운이라고 불렸다. 셰플리는 나선성운이 단순히 은하수 가장자리에서 형성되는 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셰플리의 목표는 최초의 공식적인 우주 거리 사다리를 만들어 우리은하의 크기(그가 본 우주)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 첫 단계가 우리은하에서 발견한 세페이드 변광성이었고, 다음은 RR형 변광성이었다. RR형은 세페이드 변광성과 비슷한 주기-광도 관계를 가진 또 다른 종류의 변광성이며, 세페이드 변광성과 비교하여 거리를 교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RR형 라이레 변광성을 사용해 은하수 가장자리 근처의 일반 거대하고 밝은 별까지의 거리를 보정했다.
셰플리는 우리은하의 크기가 30만 광년이고 우리 태양계가 은하 중심에서 5만 광년 떨어져 있다고 결정했다. 오늘날 정확한 크기와 거리가 각각 10만 광년과 2만 6000광년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셰플리의 추정치는 우주 거리 사다리를 처음 사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셰플리는 1920년 4월 워싱턴 DC 국립과학아카데미에서 동료 천문학자 히버 커티스와 함께 나선성운의 본질에 대해 논의한 토론에도 참여했다. 커티스는 나선성운이 그 자체로 은하라고 주장한 데 이어, 우리은하는 단지 1만 광년 크기밖에 안된다고 주장했다. 셰플리는 그 반대를 주장했다.
캘리포니아 윌슨에서 이룬 엄청난 발견허블은 1919년 캘리포니아의 마운트 윌슨 천문대 팀에 합류했는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이었던 후커 망원경이 첫 빛을 본 지 불과 2년 후였다.
“허블의 획기적인 발견은 윌슨 산의 100인치 후커 망원경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리치는 “허블은 이 최첨단장비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발견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후커 망원경은 천문대 책임자인 조지 엘러리 헤일의 아이디어로, 캘리포니아의 자선가 존 후커가 4만 5000달러를 기부한 덕분에 나선성운 퍼즐을 풀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밀턴 휴메이슨이다. 휴메이슨은 천문대를 건설할 때 노새를 타고 건축 자재와 장비를 운반했다가 이후 천문대 관리인이 됐고, 이후 천문학자의 조수가 됐다. 휴메이슨은 박사 학위가 없었지만 많은 천문학적 발견을 했고 허블이 받는 공로의 상당 부분을 공유할 만하다.
허블과 휴메이슨은 후커 망원경으로 나선성운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1923년에 안드로메다 나선성운인 메시에 31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리치는 이 장면을 “허블은 이 사진에 너무 흥분해서 흑백 유리판에 ‘VAR!’라고 썼다. 세페이드 변광성의 증거를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했다. “그 세페이드 변광성은 단순히 ‘V1’로 알려졌다. 그는 리빗과 셰플리가 한 작업 덕분에 그가 나선성운까지의 거리를 처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강조한다.
허블은 93만 광년(실제로는 250만 광년)이라고 측정했지만 큰 오차에도 안드로메다 나선은 셰플리가 측정한 우리은하 크기인 30만 광년을 훨씬 초월하는 거리 너머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메시에 31은 나선성운이 아니라, 엄연한 나선은하였던 것이다.
허블은 셰플리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발견 사실을 알렸다. 셰플리는 편지를 읽은 후 그것을 동료들에게 흔들어 보이며 그는 “이 편지가 내 우주를 파괴했다”고 탄식했다.
허블은 1924년 11월에 뉴욕타임스에 자신의 발견 소식을 ‘유출’했다. 그래서 다음해 1월 AAS에서 허블 자신이 아니라 천문학자 헨리 노리스 러셀이 발표한 프레젠테이션이 공식적인 공개가 되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가 은하, 은하수와 안드로메다와 같은 나선은하, 거대한 타원은하, 그리고 작은 왜소은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마지막 계산으로는 관측 가능 우주에 최대 2조개 은하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리치는 허블의 획기적인 발견이 실제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게 놀랍다 말한다.
“100년은 그렇게 길지 않다”고 리치는 말한다. 사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오래 산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은 우리가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전에 태어난 셈이다. “이것은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발견이 얼마나 빨리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이라고 리치는 덧붙였다.
허블 발표 이후 100년…인류의 발견은 어디까지오늘날 허블이 ‘VAR!’이라고 휘갈겨 쓴 세페이드 변광성 V1을 포착한 사진건판은 귀중한 발견의 유물이며,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가 1000년 후에 찾아갈 만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것을 찾기 위해 그렇게 힘든 여정을 떠날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이 판은 비공개로 보관되었지만, 현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박물관의 ‘무한을 매핑한다: 문화 간 우주론 전시회’에서 몇 달 동안 전시되고 있다.
허블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후 은하 형태를 분류하는 모양에 대한 허블 소리굽쇠 다이어그램을 창안해냈다. 허블소리굽쇠도에서 은하들은 형태학적으로 크게 타원은하, 나선은하, 불규칙은하로 나뉜다. 이 허블소리굽쇠도는 여전히 천문학자들에게 교육도구로 남아있다. 허블 소리굽쇠가 묘사하는 은하의 진화가 앞뒤로 바뀌었지만 전문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소리굽쇠의 초기·후기 은하라는 명명법을 사용한다.
1929년에 허블은 우주의 다른 거의 모든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고 밝혔는데, 20세기 천문학의 최대 발견이라 일컬어지는 속도-거리에 대한 허블-르메트르 법칙이다.
우리는 은하수가 전부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무한하고 확장되는 우주를 풀어내는 것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1915년에 발표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어, 닐스 보어가 이끄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양자 물리학의 영역을 알아내던 거의 같은 시기에, 그것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현재 이해를 형성한 과학의 변혁적 시대의 초석이었다.
암흑물질, 암흑 에너지, 중력의 양자 이론에 대한 탐구, 허블 텐션, 빅뱅의 원인과 같은 새로운 미스터리가 물리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지금은 1세기 전과 유사한 과학의 또 다른 변혁을 위한 좋은 시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