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책인 줄 알았는데”...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 ‘앤서니 브라운展’ [여니의 시선]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앤서니 브라운展: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이 어른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8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50년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고릴라』, 『우리 형』, 『동물원』 등 대표작 원화 250여 점이 전시되어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아이의 시선, 어른의 질문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어른들에게는 사회에 대한 통찰과 풍자를 담은 메시지로 읽힌다. 예를 들어, 대표작『돼지책』은 어릴 적에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작품으로 재해석된다. 집안일을 외면하는 아빠와 아들, 그리고 그 부재 속에서 혼란을 겪는 가족의 모습은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없는 사회적 은유를 담고 있다.
이처럼 한 작품을 두고 아이와 어른이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양면성’은 앤서니 브라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고릴라: 인간을 비추는 거울
앤서니 브라운 작품의 상징은 단연 ‘고릴라’다. 그는 인간과 가장 닮은 존재인 고릴라에 힘과 위엄은 물론, 외로움과 따뜻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냈다. 『고릴라』 시리즈는 아빠와 아이 사이의 서먹함과 애정을, 『우리 형』은 열등감과 비교를, 『동물원』은 권위주의와 감시 사회를 풍자한다.
관람객들에게 고릴라는 단순히 친근한 캐릭터를 넘어, 우리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동물 친구지만, 어른에게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숨겨진 디테일, 살아있는 상상력
앤서니 브라운 작품의 독특한 사실성은 그의 이력과도 관련이 깊다. 젊은 시절 의학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던 경험은 인물의 표정이나 근육 묘사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그의 그림 곳곳에는 작은 사물이나 그림자의 형태 등 ‘숨은 장치’가 있어 관람객들이 작품을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는 단순한 아동용 그림책을 넘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영상관, 독서 라운지, 체험 공간 등 다양한 구성은 아이와 어른 모두가 함께 즐기며 그림책이 세대를 연결하는 문화적 경험임을 보여준다.
앤서니 브라운 전시는 그림책이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에게는 웃음과 상상을, 어른에게는 성찰과 질문을 던진다. 이 전시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상상력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