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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연구진 ‘근육감소증’ 치료 가능성 열어

     국내 연구진이 근육 줄기세포의 노화를 조절하는 ‘마이크로알엔에이’(miRNA)를 발견하는 데 성공해 노화에 따른 ‘근육감소증’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과학연구소 권기선 박사팀은 젊거나 나이가 든 생쥐에게서 근육 줄기세포를 분리해 miRNA를 비교·분석한 결과, 노화한 근육 줄기세포의 ‘분화능(分化能)’을 회복시키는 miRNA-431을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팀은 노화한 생쥐의 근육 줄기세포에서 miRNA-431이 두드러지게 감소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늙은 생쥐의 근육 줄기세포에 miRNA-431를 인위적으로 발현시키자 노화로 저하됐던 근육 분화와 재생이 다시 활성화한 것을 확인했다.  또 miRNA-431이 근육 줄기세포의 분화능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TGF-β’ 단백질의 하위 단백질인 ‘SMAD4’를 저해한다는 사실도 함께 규명했다.  근육 줄기세포가 노화되면 miRNA-431이 감소해 SMAD4를 증가시키고, 이 때문에 근육 분화와 재생을 막는 TGF-β가 활성화돼 근육 감소가 촉진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성명이다.  권기선 박사는 “노화에 따른 근육감소증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근육줄기세포의 노화 억제가 중요하다”면서 “근육 줄기세포의 회춘을 조절하는 인자인 마이크로알엔에이를 찾아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권기선 박사는 이어 “새로 찾아낸 miRNA-431를 이용해 SMAD4를 조절함으로써 근육 줄기세포의 노화를 억제한다면 효율적인 근육감소 치료제 뿐 아니라 근육 감소로 야기되는 2차 노인성 질환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진 앤 디벨롭(Genes & Development)’ 27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위 속의 친위쿠데타’ 위산 역류증

     위산은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가장 강한 독성 물질입니다. 물론, 위산이 일상적으로 몸 속에서 독성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한 산성입니다.  이런 위산은 사람이 먹는 음식물을 소독하고, 질기거나 딱딱한 음식은 삭혀 소화 흡수를 돕지요. 즉, 섭생에서 위산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지능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유기체인 인간의 몸은 만약 위산이 없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가진 생명체로 거듭 나는 적응력을 보이겠지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려 인류가 살아남을 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림잡아 추산을 해 볼까요.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400만∼500만년에 출현했습니다. 아마도 원숭이에 가까운 형태였을 것입니다. 그 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베이징원인이 나타났고, 지금부터 10만년 전에는 인류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이, 4∼5만년 전에는 호로 사피엔스와 크로마뇽인이 등장하며, 이 직후에 현생인류의 직계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나타났지요.  대략 이렇다고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위산을 분비하지 않는 쪽으로 집중적인 진화가 이뤄진다고 가정할 때 적어도 4∼5만년, 길게 잡아서 10만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요. 그러니 이런 황당한 상상보다는 위산의 문제를 알고, 여기에 대응하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위에서는 아군, 식도에서는 적군  이처럼 강한 위산이 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위벽의 세포에서 염산의 강한 산성을 중화시키는 중탄산염을 분비해 보호막을 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산이 위 속에서 항상 바람직한 역할만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가끔은 일탈적으로 독성 물질의 본성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만약, 위벽의 보호막이 어떤 이유로 뚫리면 위벽이 위산에 의해 손상을 입는데, 이렇게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이 위염과 위궤양입니다.  위염과 위궤양은 위산이 위장 속에 머물때 생기지만, 위산이 더러는 위를 벗어나 자기 경로가 아닌 곳으로 흘러들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바로 위산 역류현상입니다. 위산과 각종 소화효소가 느닺없이 윗쪽으로 역류하는 일탈을 자행하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위의 상부인 식도는 위산에 버틸 수 있는 보호막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여기에 강한 산이 흘러들어와 고이면 순식간에 화상을 입을 수밖에 없지요. 이를 의학적으로는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합니다.  타고난 기질 탓에 위산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분비되는 위산과다증이나 노화 탓이기도 하지만, 과식이나 야식, 비만, 음주, 흡연 등도 위산 역류의 요인이 됩니다. 위산이 인체의 소화 및 생리활동에 매우 중요한 물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게 식도로 역류해 일으키는 문제는 가히 친위쿠데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위나 사람이나 허술한 문(門)이 문제  일상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위에도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위의 상부 식도 쪽에는 분문, 하부 십이지장과 닿는 곳에는 유문이 있고 항문처럼 괄약근이 있습니다. 위산의 역류는 이 중에서도 분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 분문이 열려야 할 때 열리고, 닫혀야 할 때 닫히지만, 노쇠하거나 앞서 지적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면 닫혀야 할 때 닫히지 않고 열려 있어, 위에 들어가 위산과 버무려진 음식이나 위산의 역류를 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중년을 넘기면서 생기는 위산 역류의 상당수는 몸이 전반적으로 노쇠해지면서 덩달아 이 분문을 통제하는 근육까지 약해져 필요할 때 문단속을 못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뻔한 얘기지만, 문이 허술하면 나가지 말아야 할 것이 나가거나, 들어오지 말아야 할 것이 들어와 문제가 되지요.  이처럼 위산이 역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위의 근육을 조종하는 신경의 교란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즉, 뇌의 중추신경은 식도를 통제하고, 소화기의 자율신경은 위 운동을 조종하는데, 이 두 신경계 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종의 ‘사인 미스’가 발생해 문을 엉뚱하게 여닫거나, 위산과 소화효소를 질정없이 분비하게 하는 것이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기억입니다. 마을의 아주머니 한 분이 늘상 몸이 편치 않아 시난고난 했는데, 사람들은 묵은 가슴앓이 때문에 그렇다고들 말하곤 했습니다. 말 못하고 속을 끓이는 마음의 병을 가슴앓이라고도 하지만, 구체적인 병증을 뜻하기도 했는데, 그런 증상의 특성을 가져다가 붙인 이름이 바로 가슴앓이(heart burn)였던 것이죠. 그 아주머니는 한번 병증이 나타나면 토방마루에 걸터앉아 맹물 같은 침을 줄줄 흘리며 꺽꺽댔는데, 어떤 때는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루에 널부러져 몸을 뒤틀기도 했습니다.“살면서 하늘 보고 주먹질한 일도 없는데, 왜 맨날 가슴이 틀어오르는지 모르겄다”며 외꽃처럼 노랗게 가라앉던 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아주머니의 경우 기질적인 문제가 있었던 듯 하지만, 그렇지 않고도 쉽게 위산의 역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지리도 궁핍했던 예전에는 일년에 고깃국을 몇 번이나 먹고 나는 지 셀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러니 쥐구멍에 볕 들듯 맞은 제사나 명절 때면 부침이며 떡을 실컷 먹고는 목구멍을 차고 오르는 ‘쓴물’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기억 쯤이야 누구나 갖고 있지요.  참, ‘개대가리 등겨 털어먹듯이’ 살았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세상에 조석으로 독한 위산이 차고 올라 식도의 화상이 심해지다가 마침내 밥 한술도 넘기기 어려우면 고작 한다는 게 푸닥거리 굿판이나 벌리는 것이었지요. 그러다 더러는 명줄 끊기는 일도 없지 않았을 터이니, 요즘에야 ‘절대로’ 죽을 병이 아닌 역류성 식도염을 ‘지독한 귀신’이 달라붙은 것 쯤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기억도 우리가 살아낸 세상의 아픈 편린 아니겠습니까.  옛날 일만은 아닙니다. 왜 해운대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설경구가 만취해 잠들었다가 속이 쓰리다며 일어나 엉겁결에 1회용 삼푸를 짜먹고 곤욕을 치르는 장면, 기억나시는지요? 요즘도 야식을 즐기거나 음주·흡연을 자주 하는 사람들 중에 더러는 자다가 쓴물이 차고 올라 잠을 깨기도 합니다. 그러면 흔한 제산제를 먹어 속을 달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치료는 아닙니다. 분비된 산의 일부를 중화시켜 증상을 진정시킬 뿐,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거나 거꾸로 차고 오르는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또 이런 제산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할 경우 위의 반사반응 때문에 더 많은 위산이 분비된다는 연구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사소하거나 너무 심각하거나  이런 위산 역류는 증상이 다양해 헷갈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식도의 상부는 물론 울대 윗쪽 인두부까지 위산에 닿아 타는 듯한 작열감이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흉통처럼 느끼거나 헛배가 부르면서 트림을 할 때 역겨운 위산의 맛을 느끼기도 합니다. ‘신물이 넘어온다’거나, 폭음 후에 ‘똥물까지 다 게워냈다’고 할 때의 그 신물이나 똥물이 위산을 비롯한 위 속 소화효소지요.  증상이 항상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가슴이 쓰리거나 답답한 가슴앓이 증상을 보이는가 하면, 속쓰림과 신트림은 기본이고, 목에 뭔가 걸린 듯 하거나 식도 상부가 쓰리기도 합니다. 개중에는 역류한 위산이 성대를 건드려 쉰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위산 역류로 생긴 가슴 통증을 엉뚱하게 심장병이라고 오인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증상이 모두, 그리고 항상 위산과다나 위산 역류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식도열공, 헤르니아, 담낭염이 원인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만큼, 이런 증상을 사소하게만 여겨 간단한 제산제로 수습하는 일을 반복하지 말기 바랍니다. 심해진 궤양이 천공이 되거나 큰 혈관을 건드리면 위와 십이지장을 절제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위산 역류가 오랫동안 반복되다가 식도암으로 발전한 사례도 드물지 않으니까요.  더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위산 역류질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료계에서는 전체 인구의 40%인 2000만명 이상이 위산 역류를 경험했으며, 이 중 절반 가량은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치료가 잘 되지도 않습니다. 치료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들이 증상을 사소하게 여겨 자신의 나쁜 습관을 못 버리는 탓이 큽니다. 이 때문에 병원을 찾은 환자 중 최대 70%가 재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사소하게’ 시작하는 위산역류질환을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구형 식생활이 주는 속 쓰린 결과  ‘서구형 식생활’을 말하면 먼저 떠오르는 계층이 젊은 층입니다. 기성 세대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넓게 서구형 식생활을 수용하고 있지요. 바로 이 계층에서 위산 역류질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더 기이한 사실은 남성보다 여성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위·식도 역류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199만명이던 것이 5년 뒤인 2012년에는 336만명으로 늘었습니다. 연평균 14.2%씩 증가한 셈이지요. 또 이후 5년간 진료받은 위·식도 역류질환자는 여성이 58%로 남성(42%)보다 많았는데, 젊은 층인 20대의 경우 여성 위식도 역류질환자가 805만명으로, 남성(435만명)의 2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뒤를 50대와 40대 여성이 잇고 있더군요.  여기에서 흔히 말하는 서구형 식생활이 어떤 식생활인지 간단히 짚고 가지요. 흔히 쓰면서도 애매한 말이니까요. 서구형 식단의 대표적인 특성은 우리에게 패스트푸드로 익숙한 밀가루 음식과 저질 육류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커피, 콜라 등 카페인 음료와 초컬릿, 스넥류 등이 포함되겠지요.  물론, 충분한 단백질과 싱싱한 채소 및 과일 섭취 등 제대로 된 서구형 식단은 장점이 많지만, 햄버거와 피자로 대표되는 싸구려 서구형 음식은 다릅니다. 이걸 ‘패스트푸드’도 모자라 ‘정크푸드’(쓰레기 같은 음식이라는 뜻)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지요. 이처럼 입만 즐겁고,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에 길들여진 세대가 바로 젊은 층입니다. 간단히 먹고 치울 수 있는 데다 상당한 습관성까지 보이니 왠만 해서는 떨치기 어려운 버릇이지요.  물론, 이런 식습관과 무관한 중년 이후 여성의 위산 역류는 간혹 호르몬치료와 연관이 있기도 합니다. 유방암이나 골다공증 치료를 위해 에스트로겐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의 연구 결과, 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위식도역류질환 발병 가능성이 46%나 높았으며,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사용할 경우 그 가능성이 66%까지 높아졌다고 보고되고 있으니까요.  한국 전통음식이라고 이런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그 빈도는 높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카페인과 알코올, 초콜릿 등이 신경계에 작용해 분문의 식도괄약근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기름진 음식, 인스턴트 음식, 밀가루 음식과 불규칙한 식습관, 야식·편식과 비만이 훨씬 쉽게 위산 역류를 초래합니다.    ■모든 증상에는 대책이 있다  위산 역류는 초기 증상이 더부룩함이나 간단한 속쓰림 등 마치 소화불량 같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면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이나 작열감 등이 나타납니다. 이 정도라면 위와 식도가 더 상하기 전에 치료를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치료의 시작은 내시경검사입니다. 약물치료는 양성자펌프억제제(PPI)가 주로 사용되지만, 모든 약이 그렇듯 오래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마땅한 약제도 없는 한밤중에 위산 역류가 생겨 잠을 깼다면, 한 컵 정도의 생수를 천천히 마셔 식도의 위산과 소화효소를 씻어내린 뒤 바로 눕지 말고 얼마간 위장이 정리될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는 상체를 약간 높여주면 위산의 역류를 막는데 효과적입니다. 만약, 집에 생감자가 있다면 믹서 등으로 얼른 즙을 내서 마셔도 좋습니다. 이건 저의 경험담입니다.  명심할 점은, 이런 방법만으로 위산 역류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근치법은 식습관 등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 없이 알루미늄이 함유된 위산 중화제에만 의존하다가는 예기치 않는 위의 반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중화제의 존재를 깨달은 위가 위장 내부를 산성화하기 위해 더 많은 위산을 분비하게 되니까요.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위산 역류가 심각하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겪어본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귀찮고 짜증나는 일인지 압니다. 또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드물게는 매우 위중한 사태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몸에서 나타나는 모든 증상에는 대책이 있게 마련입니다. 만약, 이런 증상이 걱정이라면 곰곰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거지?’라고. 그런 다음, 문제가 손에 잡히면 그걸 과감히 폐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비만이든, 과식이든, 싸구려 서구형 식습관이든 모두.  jeshim@seoul.co.kr
  • ‘열정 스마트폰’의 끝은 ‘비만’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비만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민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결과이지만, 구체적인 조사 연구를 통해 밝혀져 스마트폰을 놓고서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되고 있다.  비만치료 전문 365mc의 비만클리닉(이하 365mc) 김남철·김우준(365mc 대전) 원장팀은 6월 24일부터 7월 10일까지 전국의 20~30대 일반인 124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이용실태와 비만도(체질량지수·BMI)의 상관성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1일 스마트폰 사용량이 3~5시간 이상(28.9%)인 그룹은 1~3시간 미만인 그룹(18.8%)에 비해 비만자 비율이 54%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량이 5~7시간 이상인 그룹의 비만율은 전체의 38.3%에 달했다.  특히, 고도비만율의 경우 스마트폰 사용량이 1~3시간 미만인 그룹은 해당자가 한 명도 없었지만, 3~5시간 구룹에는 4.4%, 5~7시간 이상인 그룹에는 19.2%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스마트폰 사용량은 운동량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스마트폰 1~3시간 사용하는 그룹의 경우 하루 운동량이 30분 미만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2%(7명)였으나, 3~5시간, 5~7시간 이상 그룹은 각각 44.4%(20명), 57.4%(27명)로 큰 차이를 보였다.  김남철 원장은 “추가 조사를 통해 원래 비만 성향을 가진 사람이 스마트폰을 더 많이 사용하는지, 아니면 스마트폰 사용이 결과적으로 비만을 초래하는 지를 밝힐 계획”이라면서 “어떻든 스마트폰에 집착할수록 비만하다는 이번 조사 결과는 성장기 청소년은 물론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건강과도 무관하지 않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365mc 대전 지방흡입센터 김우준 원장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는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어 일상적인 활동량과 운동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데다, 비만도가 높을수록 운동을 기피하거나 움직임이 적은 특성이 있어 스마트폰 사용량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준 원장은 이어 “하루 스마트폰 사용량이 많을수록 비만 등 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하기 쉽다”면서 “작업시간이나 취침 전에는 사용을 자제하는 등 스마트폰 이용 방식과 이용 시간에 제한을 둬야 하며, 주 3회 하루 30분 이상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비만 예방은 물론 전반적인 신체 건강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관절염 환자들의 휴가지 ‘산이나 계곡보다 바다’

     바캉스 계획을 세우느라 한창 분주할 때다. 휴가 기간과 장소, 숙소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만 특히 가족 중에 무릎 관절염 환자가 있다면 장소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휴가를 보내느냐에 따라 무릎 건강이 좋아질 수도,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절염 환자는 산과 계곡 피해야  등산은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레저스포츠이지만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환자라면 산이나 계곡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여름에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많아 무릎 통증에 자주 시달리는데, 산과 계곡은 이런 증상을 악화시키기 쉽다. 물론 무릎이 건강하다면 등산이 하체 근력을 키우고, 무릎 관절을 튼튼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관절염이 진행 중인 상태라면 기압이 낮고 습도가 높은 산에서 반복적으로 무릎을 움직여야 하는 산행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관절 부담은 무릎에 체중이 실리는 내리막길에서 더욱 커진다.  여름의 찬 계곡물도 위험하기는 마찬기지다. 차가운 계곡물은 관절과 주변 근육을 경직시키고, 혈액순환도 방해한다. 인천 힘찬병원 김형건(정형외과 전문의) 주임과장은 “퇴행성 관절염 또는 만성 관절 통증을 가진 사람이 찬 계곡물에 들어갈 경우 통증이 악화되기 쉽다”면서 “찬 계곡욕이 혈류를 감소시켜 무릎이 더 시리고, 욱신거리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등산 중 무릎을 쉬어가기 위해서라든가, 가벼운 운동 후 무릎 통증이 있는 경우라면 짧은 시간 계곡욕을 즐긴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특히, 무릎 관절이 자주 붓고 열감이 나타나는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면 이런 피서법이 더 적당할 수도 있다.  불가피하게 산이나 계곡을 찾을 경우 무릎 등 관절 손상을 경계해야 한다.이끼 낀 바위를 디디거나, 발을 헛디뎌 넘어질 경우 무릎이나 발목·손목의 인대를 다치기 쉽다. 실제로 무릎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이 근력을 키운다며 무리하게 등산을 하다가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된 사례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맨발로 모랫길 걷는 일광욕이 뼈와 관절엔 ‘약’  바닷가는 관절에 좋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햇볕 아래서 즐기는 일광욕은 뼈를 튼튼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도와주는 비타민D를 충분히 합성하기 때문이다. 단, 자외선에 너무 오래 노출되면 피부가 상할 수 있으므로 하루 20~30분 정도 즐기는 것이 좋다.  이런 일광욕은 백사장을 걸으며 하는 것이 더 좋다. 푹신한 모랫길을 걸으면 평지를 걸을 때보다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이 적은 데다 다리 근력까지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뇨가 없다면 마사지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맨발로 모랫길을 걷는 것도 권할만 하다.  천연 물리치료 효과가 있는 모래찜질도 좋다. 햇볕에 데워진 모래를 덮고 10~15분 가량 휴식을 취하면 되는데, 이 때 관절이 눌릴 수 잇으므로 모래를 너무 많이 덮지 않아야 한다. 5~10cm 두께로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덮어주면 모래의 열기가 온찜질 역할을 해 혈액순환을 도울 뿐 아니라 근육과 관절을 이완시켜 통증도 줄어든다.  가벼운 해수욕도 관절 통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바닷물에는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신진대사가 촉진되고 관절염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관절염 환자에게 권장되는 수영도 바닷물에서는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염분 때문에 부력이 늘어 쉽게 몸이 뜨고, 그만큼 중력의 영향을 덜 수 있게 때문이다.    ■아쿠아슈즈 등 편한 신발 챙겨야  관절염 환자는 휴가 중 컨디션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승용차나 버스,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할 때는 틈틈이 자리에서 일어서 움직이거나 휴게소에 들러 전신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해야 관절 통증이 심해지지 않는다. 복장은 가볍고 편해야 하며, 특히 신발은 스포츠샌들이나 아쿠아슈즈, 운동화 등 최대한 가볍고 부담이 없는 종류를 선택해야 한다. 여름철에 흔히 신는 슬리퍼나 샌들류는 밑창이 미끄럽고 얇으며, 발을 완전히 감싸지 못해 발목과 무릎, 척추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강북 힘찬병원 한창욱(정형외과 전문의) 소장은 “휴가지에서는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걷게 돼 무릎 관절과 주변 근육들에 피로가 쌓이기 쉽다”면서 “휴가 후 충분히 쉰 뒤에도 무릎이 아프거나 다른 관절에 통증이 나타난다면 병원을 찾아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안젤리나 졸리의 주치의는 악마일까 천사일까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안젤리나 졸리의 주치의는 악마일까 천사일까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활동 무대인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세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영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세계 곳곳의 분쟁이나 빈곤, 난민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이다. UN난민 고등판무관이기도 한 그녀는 남편 브래드 피트와 함께 틈만 나면 지구촌 현장으로 달려가 자신의 열정과 재능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각성을 주곤 한다.  그런 안젤리나 졸리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면서 자신의 양쪽 유방을 절제한 사실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다. 그 때가 2013년이었다. 그런가 하면, 얼마 후에는 난소와 나팔관까지 제거했다고 다시 밝혔다.  그녀는 당시 뉴욕타임즈에 ‘안젤리나 졸리 피트: 수술 일기’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자신에게는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 위험이 높은 ‘BRCA1’ 변이유전자가 있으며, 이 경우 난소암 발병 확률이 50%나 돼 난소와 나팔관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친인척에게서 같은 종류의 암이 발생한 시점보다 10년 전에 예방적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가 있었다”면서 “나의 어머니는 마흔 세살 때 난소암 진단을 받았고, 나는 지금 서른 아홉살이다”고 덧붙였다.     ■가공할 암의 공포  확실히 암은 무섭다. 2013년에 국내에서 암으로 사망한 여성은 총 2만 8255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23.6%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유방암 사망자 2231명과 난소암 사망자 1038명이 포함돼 있다.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종은 폐암(전체 사망자의 16.5%인 4658명)이었으며, 대장암(12.7%), 위암(11.3%), 간암(10.6%) 등이 뒤를 이었다. 참고로, 같은 기간에 암으로 사망한 남성은 총 4만 7079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32.1%였다.  물론 국가나 인종에 따라 암은 발병 추이와 사망률이 큰 편차를 보인다. 당연히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다르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질환에 비해 완치율이 낮고, 치료가 어렵다는 점이다. 발병 부위도 열외가 없다. 머리카락 말고는 어디서든 생길 수 있다. 암을 말할 때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젤리나 졸리라고 암에 대한 태도나 시각이 우리와 다를 리가 없다. 어쩌면 현실에서 이룬 게 많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치명적으로 속박할 수도 있는 암에 대해 더 강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결정함으로써 그는 다른 중요한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난소 제거 후 그녀는 “수술은 유방절제보다 복잡하지 않았지만, 수술의 영향은 더 심각했다”며 “이 수술을 받은 여성은 폐경기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털어놨다. 덧붙여 그녀는 “(나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이고, 신체적인 변화도 느껴진다”며 자기에게 다가온 폐경기의 징후를 설명하기도 했다.  유방과 난소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여성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에 해당된다. 유방은 모체의 본질인 수유의 유일한 통로이자 자신이 여성임을 외부에 드러내는 기관이다. 난소는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부위로, 모두 여성에게만 있다. 한 여성이, 그것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여성이 특별한 병증도 나타나지 않은 단계에서 그런 유방과 난소를 모두 제거한다는 것은 강한 자기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졸리의 선택이 ‘용기 있는 결단’이든,‘무모한 선택’이든 돌이킬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졸리가 자신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했을 여성성을 포기할만큼 심각하고도 현실적인 암의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졸리의 어머니인 배우 마르셀린 버틀란드와 외할머니, 이모가 난소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런 가족력은 그의 결단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유방 제거술을 받은 뒤 그녀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에서 “의사는 내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50%라고 추정했다”며 “유방절제술을 받을 받고 난 지금은 그 확률이 5%대로 떨어졌다”고 적었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였을까  물론, 그녀가 유방과 난소를 제거한 데는 너무 일찍 요절한 어머니 마르셀린 버틀란드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어머니의 생애를 지켜보면서 가슴 속에서 키웠을 암에 대한 공포감과 그런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한 직접적인 요인은 분자생물학이라는 의과학이었다. 병원에서 분자생물학적 진단을 통해 자신에게도 유방암과 난소암을 일으킬 수 있는 ‘BRCA 1’이라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용단’을 내리게 된 것.  실제로, BRCA 1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킬 경우 70세까지 유방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최대 80%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라는 가능성은 산술적으로는 ‘열 명 중 여덟명’을 뜻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극히 예외적인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두’를 뜻한다. 예컨대, 중병으로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주치의가 ‘20%의 가능성’을 거론했다면 기대치가 희박하다는 뜻이고, 어떤 환자의 상태에 대해 ‘80%의 가능성’을 말했다면 ‘다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의사들은 직업적으로 환자의 가능성을 말할 때 대체로 보수적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면, 의학적 혹은 의료 측면에서 비전문가인 졸리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그녀를 잘 아는 주치의의 권고가 있었음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졸리의 주치의는 핑크 로터스 유방센터 크리스티 펑크 박사였다.  크리스티 펑크 박사가 당시 졸리에게 이런 사실을 전달한 장면을 추정해 재구성해 보자.  “안젤리나, 이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어 유감이지만, 당신이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에 대해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서둘러 만나자고 했습니다”  펑크는 진지하고도 약간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지난번에 의뢰한 유전자검사 결과, 당신의 몸 속에서 아주 위험한 ‘BRCA 1,2’ 유전자가 확인됐습니다. 물론, 암이 발병한 건 아니지만, 가장 신뢰할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성 유전을 하는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평생 유방암에 노출될 위험이 80%, 난소암에 걸릴 위험은 50%에 이릅니다. 따라서 저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치의의 설명이 이어졌고, 놀란 얼굴로 설명을 듣던 졸리가 물었다. “문제가 유방인가요? 아니면…” 졸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사는 손사레부터 쳤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장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래서 선제적으로 그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받아들일 것인지 묻고 있는 겁니다. 물론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주치의는 여기까지 말한 뒤 졸리와 피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졸리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피트가 물었다.“펑크 박사님, 아까 말씀하신 두 가지 가능성이라는 게 뭐죠?”  “물론 우리도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두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고, 결론은 정기적인 관찰을 좀 더 자주, 치밀하게 하는 방법과, 발암 가능성이 높은 부위를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두 방법의 차이는, 관찰의 경우 어떻든 암이 생긴 후에야 의료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고, 조직을 제거하는 방법은 신체를 훼손하는 대신 암이 생길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졸리의 유방을 제거하지요. 난소까지요”  펑크 박사와 마주 앉아 있던 졸리는 고개를 돌려 남편 피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피트가 말했다. “당장 암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방금 말씀 하신 내용이 틀림 없고,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도 고민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얼마의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  “제 생각엔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선택의 문제라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두 분께서는 우선 두 가지 방법이 가진 특성과 장단점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분이 어떻게 결정하든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만, 저로서는 두 분이 지금까지 확인된 의학적 가능성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제가 확실한 기대치를 가질 수 있는 시점에서 두 분께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점도 말씀 드립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졸리 부부는 다시 펑크 박사를 찾았다. 일부러 펑크가 한가한 시간에 맞췄다. 물론 그 주치의와 졸리 부부는 오랫 동안 교분을 나눠왔고, 두 부부가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함께 식사를 할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그 날도 그런 친밀함을 전제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졸리 부부는 며칠 동안 펑크가 제안한 두 가지 방안을 두고 숙고를 거듭했다. 가족은 물론 뉴욕의 의사 친구로부터도 자문을 구했고, 역시 절친한 영화사 대표와도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고민을 했지만 선뜻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피트가 “난 항상 당신 편이야.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해도 난 그 결정을 지지하고 지켜줄 준비가 돼있어”라고 말했고, 졸리는 “우린 그렇게 살고 있어. 지금도, 앞으로도.”라고 했지만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사실, 이들은 펑크 박사를 만날 때까지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트는 펑크를 보자 “박사님은 지난 번에 확언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유방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맞나요?”하고 물었다. 주치의가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물론 그 전에 저도, 병원도 당연히 심사숙고를 했고요” 그 때까지 말없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졸리가 입을 열었다.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표정은 결연했다. “졸리의 유방을 제거하지요. 필요하다면 난소까지도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저도 제가 어떤 상황인지를 잘 알고 있어요. 진지하게 말씀해 주신 박사님께 감사드려요”    ■주치의 펑크 박사, 천사일까 악마일까  펑크 박사는 수술 후 브리핑에서 “졸리의 가슴에서 유방조직을 제거하고 보형물을 삽입했으며, 그녀의 가슴은 아주 자연스럽게 치료가 완료됐다”고 전했다. 펑크 박사는 이어 이 수술의 적정성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세간의 논란을 의식한 듯 “모든 유방암 환자나 유방암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졸리와 같은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논란이 이어졌다. 아직 암이 생긴 것도 아닌데, 예방을 위해 멀쩡한 유방과 난소를 제거한 선택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암의 진단과 치료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수술 지상론과 불필요하고도 잦은 검사 등 과잉의료의 문제로 확대됐다.  일부에서는 “졸리의 수술이 과거 ‘치료중심 의학’에서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예방중심 의학’으로 추세가 변하는 모멘텀이 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는 “암을 조기에 발견해 빨리 치료해야만 완치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조기 치료의 성과가 좋은 사람도 있지만, 심각하지도 않은데 수술을 받아 건강을 해치고 경제적 부담을 떠안은 환자도 많지 않나”라면서 “하물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암을 예방한다며 유방과 난소를 제거하도록 제안한 그 주치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일본 니가타대학의 저명한 예방의학자인 오카다 마사히코 박사는 “이 의료행위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 선택을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말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수술을 권한 의사에게는 큰 불신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격노했다. 오카다 박사는 비판의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수술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암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도 한데, 유방암의 발생 원인이 꼭 유방에만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또 어디까지가 유방암 위험 부위인지도 딱 잘라 선을 그을 수 없다. 따라서 양쪽 유방을 모두 제거했다고 유방암 위험이 제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내에서도, “졸리가 유방을 제거함으로써 암 발병 확률을 5%까지 낮췄다고 하지만 무엇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수술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졸리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수백명의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유방을 제거하고, 다른 쪽은 그대로 두고 장기적으로 관찰해 어느 쪽에서 유방암이 많이 생기며, 어느 쪽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지를 비교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따라서 그런 검증 없이 졸리에게 유방과 난소 제거를 권유한 의사는 매우 위험한 곡예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비판론이 적지 않았다.  펑크의 결정이 아직도 발전 중인 분자생물학의 분석을 지나치게 맹신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에게 남다른 선견지명과 신념이 있어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알기는 어렵고, 따라서 그의 선택이 ‘선’인지,‘악’인지를 가늠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수술 후에도 남아 있다는 5%의 진폭도 의외로 크다. 이후 졸리에게 암이 생기지 않는다면 수술을 통해 안전한 부류라는 95%에 포함시킨 현명한 조치가 될 수 있지만, 만약에 그에게서 암이 발병한다면 그렇게까지 하고서도 결국 암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어떻든, 펑크는 부담이 큰 선택을 한 것이다. 졸리에게 암이 생기지 않을 경우, 수술과 관련 없이 원래 생기지 않는 조건일 수도 있고, 그 수술 때문에 암을 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암이 생겼을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펑크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여전히 남아 있는 과잉의료 시비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도 암 치료를 둘러싼 과잉의료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암이라는 병 자체가 가진 파괴력이 워낙 크다보니(실제로 파괴력이 큰 암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는 게 사실이다) 과잉의료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미처 그런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의사와 의료에 매달리는 형국이지만, 좀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더러는 의료인들의 무능과 무분별까지 더해져 과잉의료의 부피는 커져가기만 한다.  수술만 해도 그렇다. 그럴 수 있다면 인체를 훼손하는 수술을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일부 의사들은 수술로 환자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냉철하게 따지지 않고 환자만 보면 수술부터 하려고 대든다. 이런 의사들은 냉정하게 말해 환자보다 수술에 집착하는 부류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충분한 근거를 갖고 시도하는 수술에 시비를 걸 이유는 없고, 여기에 헌신하는 의사들이 많다는 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수술만이 암을 비롯한 질병의 가장 확실한 근치법이라고 믿는 의사들이 여전히 많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암 수술 과정을 도식화해 보자. 수술지상론자들은 폐나 간, 위나 대장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중요한 신체 부위를 포괄적으로 제거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뿐이 아니다. 암이 림프관을 통해 전이된다며 병변 주변의 림프절까지 깡그리 없애버린다. 이 상태로도 환자의 면역력은 최악의 상태에 빠지지만, 약으로 버티게 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수술 전부터 시행해 온 X-레이와 CT, PET-CT검사 등을 수술 후에도 계속 해야 하고, 강력한 항암제와 방사선요법까지 동원한다. 환자는 오랜 시간 병상을 떠나지 못해 몸은 급격하게 쇠하고 만다. 여기에 환자가 진단 단계부터 겪어온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보자. 도대체 어떤 철인이 이걸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인가.  졸리의 수술 소식이 전해진 뒤 국내 의료인들은 “유방암 가족력을 가졌더라도 예방적 절제보다는 검진을 자주 받는 것이 옳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졸리처럼 돌연변이 유전자에 의해 암의 발생이 예측되는 상황이라면 예방적 난소난관절제술을 시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답은 없다. 지금 우리가 모르는 답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 제시될 수도 있고,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의사들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치열한 고뇌의 산물이어야 하고, 의학적 근거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하며, 어떤 치료 방식이든 의료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확신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은 답을 내릴 수 없다. 졸리를 수술대에 눕힌 크리스티 펑크는 과연 악마일까, 천사일까.  jesh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의사들의 전쟁’

     최근 들어 국내 각급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앉은 자리’에서 질병을 치료한다는 고답적인 의료 개념을 적극적으로 확장한 결과다. 즉, 의료가 더 이상 병원이나 지역에서 보수적으로 영향권을 지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개척적 발상이고, 오는 환자만을 치료하는 과거의 진료권 행사 방식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시도다. 이런 변화는 의료의 산업화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까운 중국 시장을 겨냥했다가 패퇴한 아픈 기억들을 가진 우리지만, 의료의 해외 진출이 의료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개념의 영토 확장, 시장 확장이라는 점에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의료 해외진출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의료진이 직접 찾아나섰던 예전의 왕진(往診)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왕진이 아픈 환자만을 찾아가는 의료서비스였다면, 해외 진출은 환자를 찾아가는 왕진의료의 확대이자 동시에 적극적인 시장 개척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물론, 이런 의료 수출의 배경에는 단기간에 우뚝하게 성장한 우리의 의료, 그리고 그 의료와 연계된 자본이 존재한다. 사실, 자본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거창하다. 왜냐면, 해외 시장을 열겠다고 독하게 맘 먹고 ‘나라 밖의 전쟁터’에 나서는 의료인들이 가진 자본이라는 ‘전쟁비용’은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자금이나 대기업이 책정한 전략예산처럼 거액이 아니다. 그렇다고 병원이 대는 비용도 아니다. 오로지 의사 개인 돈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각오가 더 비장하고, 그들의 의지가 더 결연하다.  혹자는 “돈 까먹으러 가는 거지”라거나 “돈 많이 벌어놓은 모양이네”라고 쉽게 말하고 마는 의료인들의 그 답 없는 도전, 총성도 없는 살벌한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 본다. ■찾아오는 환자는 늘었지만…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는 한국브랜드병의원협회(회장 안건영) 주최로 의료 해외진출과 관련한 의미있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한 한림대 정왕교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김장욱 분석평가실장의 발표를 보면, 우리가 이 시점에서 왜 ‘의료’라는 상품을 들고 마치 ‘기업가’처럼 해외로 나가야 하는 지를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먼저, 정왕교 교수의 발표를 보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는 2012년 15만 9464명이던 것이 2013년에는 21만 1218명으로 늘었으며, 같은 기간 이로 인한 수익은 1030억원이서 3930억원으로 4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내용을 좀 더 상세하게 들여다 보자.  병원 이용 형태(2013년 기준)별로는, 외래진료가 17만 270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입원 2만 137명, 건강검진 1만 8379명 등이었다. 이들이 이용한 병원으로는, 7만 7738명(36.8%)이 상급종합병원을, 5만 2996명(25.1%)이 종합병원을, 4만 6366명(22.0%)이 의원을, 1만 8638명(8.8%)이 병원을 각각 이용해 이들이 전체의 93% 가량을 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활약이다. 규모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해외 환자 유치율이 22.0%라는 건 의사 수 등 규모의 불리를 이겨냈다는 점에서 ‘선전’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환자들의 국적 분포는 어떨까. 역시 중국이 5만 6075명(26.5%)으로 압도적이다. 이어 미국 3만 2750명(15.5%), 러시아 2만 4026명(11.4%), 일본 1만 6849명(8.0%), 몽골 1만 2034명(5.7%)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베트남 카자흐스탄 캐나다 필리핀 영국 호주 우스베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폴 아랍에미레이트 독일 프랑스 등이 0.4∼1.4%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를 국가별 증감 추이로 분석해 보면 우리 의료에 대한 각 나라별 선호도를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2011년 1만 9222명에서 5만 6075명으로 3배 가까운 증가율을 보였고, 러시아는 9650명에서 2만 4026명으로 2.5배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비해 미국 환자는 약간의 증가 수준이었고, 일본 환자는 2만 2491명에서 1만 6849명으로 오히려 상당히 감소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간단한 분석은 우리 의료의 해외 진출이 어느 곳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답은 중국과 러시아다. 사실, 미국 환자는 속을 들여다 보면 실상과는 약간 다르다. 미국에서 직접 우리나라를 찾는 환자라기보다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나 한국에 체류하는 주한미군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보면 중국이 우리의 의료 수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타깃임을 간파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든, 우리나라를 찾아 의료 서비스를 받는 해외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 현상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가 남는다. 이처럼 찾아오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으며, 이미 국내 의료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냉정한 평가가 그것이다. 또 인도적·선의적 관점에서도 의료 수준이 상대적으로 낙후한 곳을 찾아가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권장할 일이다.  이에 따라 국내 각급 병·의원들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아랍에미리트(UAE) 왕립 쉐이크 칼리파 전문병원 운영을 시작했는가 하면, 연세의료원·삼성의료원 등 대형 병원과 우리들병원을 비롯한 병·의원들의 해외 진출도 크게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 규제연구센터 김장욱 분석평가실장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 건수는 모두 125건으로, 2013년의 111건 대비 12.6%의 증가 추이를 보였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4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미국 35건, 동남아 18건, 몽골12건, 중동 5건 등으로 나타났다.  진출 형태도 눈여겨 볼만 하다. 진출 사례 125건 중 단독 진출이 31건으로 가장 많았고, 라이센싱(브랜드) 26건, 프랜차이징 25건, 연락사무소 21건, 합작 10건 등이었다. 나머지는 자선진료소나 위탁경영 등이었다. 특징적인 것은,미국의 경우 단독진출이 19건으로 가장 많았던데 비해 중국은 라이센싱과 프랜차이징이 각각 11,15건을 차지(단독 진출은 4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 진출한 의료기관의 진료과목에는 우리 의료의 강점과 약점이 함축적으로 투영돼 있다. 피부·성형이 39건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었고, 한방 23건, 치과 13건, 종합 10건, 건강검진 4건 등이었다.    ■‘의료’와 ‘산업’ 사이  문제는 이렇게 물꼬가 트였지만, 갈 길이 멀고 험하다는 점이다. 의료기관이 해외로 진출할 때는 대부분이 산업적 목적을 1차적으로 지향한다. 하지만 국내 의료 관련법에 따르면 의료법인으로서는 원천적으로 해외 진출이 어렵다. 이 때문에 중국 등지의 광대한 시장으로 노리고 진출하는 대부분의 병의원들은 개인투자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외 시장으로 나갔던 수많은 의료기관들이 패퇴했다. 개인 자격으로는 현지 협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의료행위에 대한 현지 신뢰도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정부의 보호 정책이 거의 없어 시쳇말로 현지 당국과 중간에 개입하는 거간꾼들의 쉬운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중국에 진출했다가 고전 끝에 철수한 한 의료인은 “법과 제도 때문에 인력 파견이나 송금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현지 정보 부재와 자금 등의 문제 때문에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의료법인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해외 진출은 현지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확보하기 어려워 분쟁 상황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데, 이는 곧 실패를 의미한다”고 털어놨다.  한국브랜드병의원협회 안건영 회장은 “많은 국내 의료기관들이 해외로 나가 시장을 확보하고, 앞선 의료를 통해 국위를 선양할 기회를 갖고 싶어 하지만, 국내 법과 현지 정보부족, 현지 지원체제 부재와 인력수급, 자금 조달 등의 문제로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면서 “국내에서 의료법인의 투자 규제 문제를 단시일 내에 전향적으로 풀어낼 수 없다면, 해외에 진출할 경우에만 산업적 기준을 적용하는 등 이원체제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의료는 규제나 법규정의 측면에서 서로 융합하기 어려운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우리나라는 의료가 수익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진료가 우선이라는 고전적 의료관이 의료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의료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또 현재의 국민건강의료보험 체계도 이같은 공공성을 전제로 구축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의료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해외에서의 의료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앉아서 찾아오는 환자만 치료하던 고답적 방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해외 진출 논의가 달아오르고, 실제로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의료가 아닌 산업적 관점으로 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김정욱 분석평가실장이 의료 해외진출의 애로사항으로 제시한 △정보 부족 △현지 네트워크 부재 △법과 제도 미비 △인력수급의 어려움 △자금 조달체계의 부재 등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 의료기관이 해외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기본 요소 중에서 의료인들의 의지 말고는 갖춰진 게 거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상태라면 ‘수출’로 표현되는 고부가 의료산업의 해외 진출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이 많았지만, 성공 사례가 손으로 꼽을 만큼 희귀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제약과 규제의 벽을 넘어 현재 중국 정부가 비준한 유일한 한중 합작병원으로 자리 잡은 상하이 서울리거성형미용병원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상하이 서울리거성형미용병원의 도전  상하이 중심가 동방명주와 월드금융센터, 상하이센터가 한눈에 보이는 황푸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리거병원은 한국의료수출협회가 공인한 의료수출 제1호 병원이다. 중국 철도 시설을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연건평 2000여 평의 이 병원은 한국 의료기관이 아니라 의료인 개인의 중국 진출이라는 불리를 극복하기 위해 3년여에 걸쳐 현지 규제기준 이상의 인력과 시설을 갖췄다. 반도체 공장 수준의 무균 시스템병원에다 심장 격인 수술실은 천재지변에 대비한 비상 동력 공급장치을 설치했으며, 최근 급신장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력을 감안해 최고 수준의 스파 치료시설도 마련했다. 이 병원의 목표는 간단하다. 중국 최고의 글로벌 미용성형 병원을 만들어 최고의 의료 수준과 서비스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앞선 의료시스템과 잘 훈련된 의료인력을 현장에 투입해 피부과, 성형외과, 모발이식 등으로 중국 현지 의료의 ‘거대한 틈새’를 공략했다. 현지인들의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이곳에서 치료받고 있는 한 중국인 환자는 “중국에서 가장 발전했다는 상하이에서도 지금까지 정도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기는 어려웠다”면서 “서울리거병원은 한국의 앞선 성형 및 피부 관련 의료서비스를 한국인 의사로부터 제공받는다는 점 뿐 아니라 중국 의료의 수준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사례”라고 말했다.  서울리거병원이 중국에서 주목할 성공을 거둔 것은 철저한 현지화 결과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홍성범 병원장은 중국 현지화의 관건으로 중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들었다. “이곳에서 중국을 단순한 시장으로만 보려고 하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부가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성실하게 진료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면서 “현지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 자본 등에서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라면 정착할 때까지는 물론 안정된 후에도 철저한 현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리거병원의 현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홍성범 병원장은 “한국의 의료라고 해서 당장 중국 환자들이 관심을 가질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면서 “중국 시장을 공략 대상으로 삼기보다 중국의 의료 발전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현지 의사들을 교육하는 등의 접근도 중요한 현지화 전략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리거병원은 한국의료수출협회로부터 ‘국제 성형외과 의사교육센터’로 공인받아 중국 의사들을 교육하고 있고, 이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국 의료기관의 중국 진출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안지에로펌 이수철 변호사는 “의료 수출의 전제조건은 철저한 현지 분석과 대응, 그리고 법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라면서 “이와 함께 정부의 금융지원은 물론 국내에서는 당장 현실화가 어려운 영리병원 문제에 대한 보완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제도 보완이 없으면 문화적·지리적으로 우리와 이질감이 적고, 시장이 큰 중국에서도 다른 경쟁국에 밀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  홍성범 병원장은 “법적 명의가 중국 측에 있어 권리 행사가 극히 제한적인 원내원(院內院) 방식이나 수익률 제고에 한계가 있는 기술제휴 컨설팅 방식이 아니라 서울리거병원은 투자자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합작병원 방식으로 중국에서 입지를 다졌다”면서 “이를 성공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일 뿐이며,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지적은 현장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13년에 한 조사기관이 해외 진출 경험이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시스템 해외 진출 현황 및 전망’조사 결과, 특별법 제정 등 법적·제도적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무려 49.8%에 달했다. 또 전문기관과 전문가 육성을 통한 지원이 45.4%, 전문 펀드 조성 등 금융 지원방안 마련이 33.8%에 이르렀다. 정부간 보건의료 협력외교(29.7%), 해외진출 병원에 대한 별도의 평가 및 인증절차 마련(23.1%)도 중요한 대책으로 꼽혔다.  사실, 영리병원 허용 문제는 국내에서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현안이다. 경제력의 격차가 의료 격차로 나타나는데 대한 국민적 거부감 때문이다. 여기에다 영리병원을 허용해서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수혜를 보는 집단이 민간보험사일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꼽힌다. 영리병원의 비싼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부유층은 사보험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어 사보험은 배를 불리는 반면 국민건강보험 체계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또 사회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자본이 대거 병원 경영에 유입되는데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선거가 있는 한 영리병원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필자는 지금도 국내에서의 영리병원 허용에 반대한다. 논리는 이렇다. 같은 감기 환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치료하는데, A 병원의 진료비는 1000원이고 B 병원의 진료비를 5000원이다. 이는 진료 수준이나 치료 방식, 약제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진료 외적 서비스에서 발생한 차별이라고 보는 게 옳다. 가뜩이나 양극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의료를 두고 이런 불평등이 현실화한다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내부 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건보 가입자가 속속 사보험으로 말을 갈아타면서 발생하는 건강보험 체계의 붕괴는 국민보건 차원에서 볼 때 재앙이다. 국내외 민간 보험사들이 영리병원 허용에 목을 매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 때문에 의료 수출까지 막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의료와 산업이라는 두 측면에서 볼 때, 국내 의료인력과 시설은 이미 포화 수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적절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의료에너지를 투입할 합리적인 용처가 필요하다. 의료수출을 통해 의료 영역을 확대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다른 관점은, 의료를 적극적으로 산업화해 국부 창출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 우리 의료는 임상 분야에 지나치게 치중해 왔다. 당장은 진료의 질과 양이 일정 수준 확대되는 효과를 보였으나, 기초연구를 통한 의료 수준의 향상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의료 신기술은 물론 의료와 밀접한 제약 및 의료기기 산업 분야에서도 비효율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의료 수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의료의 산업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관련 법령의 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결국 의료의 낙후와 건강보험 수급체계의 왜곡, 의료수익의 투자 기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개원의 원장 집에서 발견된 거액의 현금 다발은, 투자 등 선순환 체계로 끌어들이지 못한 의료수익이 어떤 문제를 낳을 수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하이에 터를 닦은 서울리거병원이 실패하면 적어도 의료 분야에 있어 중국은 더 이상 한국 의료의 이상향이 될 수 없게 된다”는 홍성범 원장의 비장함이 상징하는 한국 의료의 현실이 더 이상 의료선진화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한번 두드려보고 마는 식이 아니라 실효성있는 정책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국민적 합의를 끌어 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야심 만만한 우리 의료인들이 ‘의료’라는 무기를 들고 해외로 나가 전쟁을 벌이는 판에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되는 일이 아니다.  jeshim@seoul.co.kr
  • “비타민C, 흡연자 혈관노화 억제 기능 확인”

     비타민C가 흡연자의 혈관 노화를 억제하고, 피부 기능을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광동제약(대표이사 최성원)은 영남대학교 생명공학부 조경현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 흡연자의 고용량 비타민C 섭취가 혈관 노화를 억제하고, 항염증 능력을 향상시키며, 피부세포의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영남대 생명공학부 조경현 교수팀은 2013년 9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약 1년 10개월간 고용량 비타민C의 항동맥경화 및 피부노화 억제 효능을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비흡연 여성 및 남성, 흡연 남성 등 3개 그룹의 건강한 성인 42명에게 8주간 매일 1회 1250mg의 비타민C를 섭취하게 한 뒤 이들의 혈액과 피부 상태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피험자에게서 채취한 혈액으로 혈청 항산화력 분석(FRAP assay)을 진행한 결과, 3개 그룹 모두 혈액 내 항산화능력이 섭취 전과 비교해 30~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혈청 내 간 기능 관련 염증 수치인 AST, ALT 역시 남성 비흡연자, 남성 흡연자 그룹에서 비타민C 섭취 전 대비 20~30% 이상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신체 전반적으로 항산화 및 항염증 능력이 증가했다는 방증이다.  또, 피험자 혈청의 단백질을 대식세포(체내 면역세포)에 처리한 결과, 흡연자 그룹의 혈청에서 HDL(고밀도 지단백질)의 손상이 억제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HDL은 각 조직에서 사용하고 남은 콜레스테롤을 우리 몸 밖으로 배출시켜주는 혈관 청소기 역할을 하는 지단백질이다. 조경현 교수는 이전 논문을 통해 흡연자의 혈액 내 HDL이 비흡연자에 비해 산화가 심하고 기능이 훼손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 실험 결과는 비타민C의 섭취가 HDL을 형성하는 주요 단백질(아포지단백질 A-I)을 증가시켜 HDL의 손상을 억제하는 원리를 규명한 것으로, 비타민C가 혈관 노화를 억제, 궁극적으로 동맥경화 및 당뇨 발생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이와 함께 피부 멜라닌 측정기를 이용, 얼굴 피부의 멜라닌 수치 변화를 확인한 결과, 흡연자 남성 그룹의 멜라닌 수치가 섭취 8주 후 20%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타민C 섭취로 얼굴 피부의 멜라닌이 감소해 피부가 밝아지는 효과와 함께 피부 섬유세포의 노화 억제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조경현 교수는 “이번 시험 결과는 비타민C 섭취가 남녀 모두의 건강과 미용에 유익하지만, HDL 기능 훼손이 심한 흡연자에게는 더욱 유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혈액 내 HDL 수치가 높아지고 기능이 향상되면 혈액의 면역기능이 강해져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광동제약 우문제 이사는 “이번 연구는 비타민C를 매일 고용량으로 섭취하는 것이 혈관 및 피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과”라며 “잦은 음주, 흡연과 환경 오염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비타민C 섭취가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국내 의료진이 결장암 맞춤 수술법 개발

    국내 의료진이 결장암 맞춤 수술법 개발

     아직까지 국제적인 표준수술법이 개발되지 않고 있는 결장암의 맞춤 수술법을 국내 의료진이 개발했다. 기존 수술법의 문제를 극복한 데다 개복수술은 물론 복강경·로봇수술에도 적용이 가능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수술법’이 유력시되고 있다.   연세암병원 대장암센터 민병소(사진) 교수팀은 2000년부터 2009년 7월까지 773명의 결장암 환자에게 새로운 맞춤형 결장암 수술법인 ‘변형완전결장간막절제술 및 중심혈관결찰술(mCME)’을 시행한 결과, 5년 생존률은 84%, 무병(無病) 생존율은 82.8%로 나타났다고 15일 밝혔다.  이같은 치료 결과는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독일 호헨버거 교수의 결장암 수술법인 ‘완전결장간막절제술 및 중심혈관결찰술(Original CEM)’의 5년 생존률 및 무병 생존률, 재발률 등과 비교할 때 최소한 비슷하거나 더 좋은 것이다.  결장암은 아직까지 국제적인 표준치료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결장암 수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호헨버거 교수의 수술법이 미국과 유럽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는 이를 약간씩 변용한 수술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호헨버거 교수의 수술법은 환자의 상태와 무관하게 비교적 많은 결장을 절제한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처럼 절제 범위가 넓어 수술 후 회복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예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췌장의 뒷면 등 접근이 어려운 부분을 많이 절제하기 때문에 개복수술 외에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에는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결장암 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곳이 소장에서 연결돼 위로 올라가는 오른쪽 상행결장이다. 이 부위 주변에는 예민한 혈관이 많이 분포돼 있고, 해부학적 변이도 많아서 수술이 까다롭다.  민 교수팀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절제 범위를 다르게 하는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했다. 민병소 교수는 “대상 환자들에게 이 수술법을 적용하고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생존률과 무병 생존률, 재발률 등이 호헨버그 교수의 수술법과 비슷했으나 호헨버그 교수의 수술법에 비해 수술 범위가 상대적으로 작아 진일보한 수술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이 수술법을 개복수술은 물론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에도 적용한 결과, 치료 성적이 거의 차이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기술 습득도 쉬워 대장외과 전문의들이 소정의 훈련만 받으면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 연구 결과는 외과 분야에서 인용지수가 가장 높은 학술지(Annals of Surgery, 인용지수=7.188)에 게재됐으며, 민 교수는 최근 미국 네쉬빌에서 열린 미국위장관내시경수술학회(SAGES)에서 이 수술법을 발표하기도 했다.  민 교수는 “결장암에 대한 표준수술법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개발한 수술법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되고, 미국 학회에서 초청해 발표하도록 했다는 것은 이 수술법을 결장암 표준수술법의 유력한 후보 치료법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연세암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들어 결장암 발병률이 직장암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암병원이 1991년부터 2014년까지 수술 환자 1만 1500여 명을 분석한 결과, 1995년까지는 결장암과 직장암 환자 비율이 50대 50이었으나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62.5대 37.5로 결장암 발생 비율이 급격히 늘어났다. 결장암은 전체 대장(약 150cm)의 90%(약 135cm)를 차지하는 결장에 생기는 암으로, 항문 근처에서 발생하는 직장암과는 따로 구분한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발톱이 자꾸 살을 파고 든다고요?”

     집안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가도 신발을 신고 걸을 때면 엄지 발톱 가장자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런 통증 때문에 걸음걸이나 발동작이 불편해지는가 하면, 발톱 옆부분에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사소한 듯 하지만, 발톱이 조금만 자라도 되풀이되는 통증 때문에 여간 불편하지 않다.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면 ‘내향성 발톱’을 의심해 봐야 한다. 내향성 발톱이란, 발톱의 가장자리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염증을 유발하는 피부질환이다. 정도가 심하면 보행이 힘들 정도의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잘못된 버릇이 문제  내향성발톱은 대부분 버릇이나 일상적인 취향 때문에 발생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볼이 좁게 만들어져 앞 굽이 뾰족한 구두나 앞 굽이 좁은 신발을 오래 신고 다니면 발톱 모양이 변형 되면서 발톱 끝이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내향성 발톱을 만들기 쉽다. 또 발톱을 너무 바짝 깎거나 발톱의 옆 부분을 둥글게 깎는 버릇도 내향성 발톱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밖에도 선천적으로 비만한 사람은 내향성발톱을 가진 경우가 많다. 발톱에 무좀이 있는 사람도 발톱 변형을 초래해 내향성 발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무좀이 있다면 변형이 생기기 전에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당뇨병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향성 발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사소한 염증이 자칫 족부궤양으로 발전해 심각한 결과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뇨 환자가 내향성 발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족부궤양으로 발전한 사례가 드물지 않다.    ■증상이 심하면 스트링 치료가 적절  내향성 발톱은 증상이 경미하다면 조갑거터술 같은 쉬운 치료로 해결이 된다. 하지만 증상이 심하면 수술을 통해 발톱의 일부나 전체를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발톱을 제거하더라도 나쁜 습관을 교정하지 않으면 발톱이 다시 잘못 자라는 내향성 발톱이 반복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발톱이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교정해 주는 스티링 치료를 해봄직 하다. 스트링 치료란, 변형된 발톱 부위에 특별히 제작된 형상기억 합금으로 만들어진 고리를 끼워서, 변형된 발톱이 정상적인 모양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교정해 주는 치료 방법이다. 발톱을 제거하는 방법에 비해 치료 기간이 짧아 일상생활로의 복귀 기간도 짧고, 발톱을 반복적으로 제거하는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어 치료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숙련된 전문의가 시술할 경우, 당뇨병 등 내과적인 질환의 합병 상태와 관계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증상이 중증인 경우에는 외과적인 부분 절제술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이 경우 치료 후 4주 정도가 경과 하면 1차 교정이 완료된다.  피부과 전문의 홍남수 박사(듀오피부과 원장)는 “스트링 치료는 시술 후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빠르고, 1회 치료만으로도 만족할 만큼의 교정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여기에다 재발률까지 낮아 환자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무좀 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치료 후 내향성 발톱을 잘 관리하려면 발이 편하고, 환기가 잘 되는 신발을 골라 신어줘야 한다. 또 발톱을 자를 때는 반드시 일(一)자로 잘라야 하며, 무좀이 있다면 확실하게 치료를 해야 한다.  발톱 무좀의 경우 발톱의 색깔과 모양을 함께 변형시켜 내향성 발톱을 만들기 쉽다. 따라서 무좀을 가졌다면, 발톱 변형을 초래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홍남수 박사는 “임신 등 특수한 상황 때문에 진균제를 복용하지 못할 경우 레이저를 이용한 무좀 치료도 가능하므로 미루지 말고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면서 “내향성 발톱을 만드는 잘못된 버릇이나 취향을 개선하면서 치료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반복되는 불편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7] ‘100세 시대’의 겉과 속

    조선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연전에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가 산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절대 지존이라는 왕 27명의 평균 수명이 46.1세에 불과했고, 이들 중에 회갑연을 치른 사람이 20%도 안 됐답니다. 용상에 올라 잘 먹고, 잘 입고, 온갖 호사를 누렸을 왕의 수명이 이 정도였으니 백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황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35세 이하였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 시대의 실상이었지요. 그러니 누군가가 태어나 60년을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거하게 회갑연을 열어 장수를 축하하고, 더 오래 살라고 축원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환갑이 기본이어서 회갑연조차 의미 없다고 피하는 세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100세 시대’는 꿈이 아니다 그 조선시대의 끝자락에서 세자면 불과 100여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은 어떨까요. 1970년대의 우리 국민 평균 수명은 61.9세였습니다. 이만 해도 조선시대와 견주면 거의 2배에 가까운 수명 연장을 이룬 것입니다. 이후 1980년대에는 65.7세, 1990년대에 드디어 70대에 진입해 71.3세를 기록하더니 2000년대에 76.0세, 2010년대에 80.8세, 2012년에는 이보다 더 늘어난 81.4세를 기록합니다. 가장 최근 기록인 81.4세를 기준으로 보면 조선시대 왕의 수명보다 두 배 가까이 오래 살게 된 것이지요. 단순히 수명 만을 기준으로 보자면 정말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무엇이 좋은 일인지는 주관적이어서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지만, 한사코 죽음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의지이고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지요. 예전에는 입에 발린 말로 백 살까지 살라고 덕담이라도 건네면 “벽에 똥칠 해가면서 뭐하러…”하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백 살을 그저 기대나 할 수밖에 없는 ‘꿈의 나이’로 쳤던 것이지요. 그 꿈에 도달하기 직전의 나이인 아흔 아홉살을 백수(白壽)라고 불렀는데, 100을 뜻하는 ‘百’자에서 ‘一’을 빼면 ‘白’ 자가 되는 데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백수를 세속에서는 선계(仙界)의 경계 쯤으로 봤다니, 요즘 모두가 현실로 받아들이는 ‘100세 시대’가 얼마나 대단한 변화이고, 발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0세’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통계로 단순화된 수명 연장의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명이 늘어난 것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합니다. 우선, 잘 먹고 사는 덕분에 영양 상태가 좋아진 탓이 크겠지요. 인체는 무한히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유기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도 누구는 10의 생산성을 보이고, 또 누구는 100의 생산성을 발휘합니다. 이 생산성은 기본적 필요조건인 ‘먹음’에 기초합니다. 생산성을 고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항상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몸이 그런 필요에 부응할 만큼 먹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먹음’의 문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잘 먹고 잘 생산한다’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못해 생산성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만큼 수명 연장의 일차적인 요인은 치명적인 영양 결핍이 없도록 잘 먹고 산 결과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다음 요인으로는 위생상태의 개선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인간의 수명을 결정적으로 위협한 것은 세균 감염과 이로 인한 질병, 그리고 기생충이었습니다. 실제로 콜레라나 이질, 장티푸스 등이 해마다 창궐해 수많은 사람들을 요절냈지만 사회적으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했습니다. 수인성 전염병은 물이 전파 경로에서 매우 중요한 매개물질로 작용하지만, 그래서 먹는 물만 잘 관리해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오염된 물이 문제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지요. 기생충도 그렇습니다. 요즘처럼 사회적 위생관이 확립돼 기생충의 생리가 낱낱이 드러나 있고, 보건 분야에서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다양한 필터가 작동하며, 효과적인 구충제가 개발돼 있는 세상과 그 때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기생충의 알과 성충이 바글대는 인분을 밭에 뿌리고 맨발로 들어가 밭일을 해댔으며, 회와 쌈 등 생식문화가 보편화돼 기생충 감염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한 상황이었다고 봐도 틀리지 않지요.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위축시킨 절대 왕정 체제에다 지배계급인 양반과 관료들의 수탈, ‘사농공상’으로 집약되는 계층 인식에서 보듯 농업이나 상공업을 통한 사회적 부의 축적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이렇듯 총체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질병과 기생충을 경계하고, 차단할 인식조차 갖지 못했고,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화급한 터에 위생을 따질 엄두 조차 내기 어려웠던 게 그 때의 실상이었던 것이지요. 다음으로 꼽는 요인은 의료의 발전입니다. 누가 뭐래도 인간의 수명을 지금 수준으로 연장시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의학과 의료의 기여라고 봐야 합니다. 윤리나 상식을 배제한 채 단순히 의료의 관점에서만 말하자면 이미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은 100세에 거의 도달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생명체는 죽어야 비로소 죽는 것인데, 현재의 의료 수준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는 못 해도 절명에는 이르지 않도록 하는 많은 장치를 갖고 있으며, 더러는 이런 장치를 의료수입 확대의 방편으로 악용하기도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말이야 인륜과 윤리성을 앞세우지만 의료인들이 의료적으로 도저히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환자들이 지금도 연명치료에 의존해 아예 기대해서는 안 되는 가능성에 기대어 돈을 쏟아붓는 것이지요. ●‘100세’의 이면 의료인들은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환자를 포기해야 하느냐?”거나 “그런 환자에게 아무런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이냐?”고요. 일리가 있는 문제 제기입니다. 당연히 모든 환자는 천부적으로 ‘치료 받을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나 치료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행해지는 것입니다. 의료적으로 단 1%의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는 환자를 끌고 다니며 온갖 비싼 검사를 다 받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단 최선을 다해 봅시다”라거나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친절이나 열의가 아니라 기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만적이지 않은 유일한 처방은 “이미 의료적으로는 회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원한다면 다른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의 견해입니다. 이제 선택은 보호자의 몫입니다” 정도일 것입니다. 일부 의사들은 이 경계 지점에서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말하곤 합니다. 가능성이 없음에도 “어쩌면…”이라고 일말의 미련을 갖도록 하는가 하면 이미 결과가 뻔한데 “좀 더 지켜보자”는 식이지요. 이런 경우 가족들은 대부분 의사의 판단을 따른다는 일반적 통념이 그들에게서는 돈으로 환산되는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한 것이 바로 의료계이고, 병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의료 발전과 의료인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간의 생명은 놀랄 만큼 길게 연장되기에 이르렀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생명 연장에 따른 삶의 질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는데, 의료적인 수명만 기형적으로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보장책이 없는 사회에서 수명만 연장하는 것은 축복이라기 보다 재앙에 가깝습니다. 국가는 노령화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려 하지 않는데, 자꾸 수명이 연장되니 노후에 걸맞는 개개인의 삶은 그야말로 진창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되기 십상인 것이지요. ●‘돈’이 항상 삶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흔히 듣는 ‘고독사’는 이런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전염병도, 기생충도 없고, 먹고 마시는 일에 별다른 구속이나 제약도 없고, 사소한 고통만 느껴도 병원을 찾는 현실, 그러나 일단 나이가 들어 일터에서 배제되고, 그래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사라지면 조막만 한 몸뚱이 하나 의탁할 곳이 없어 습한 곳을 전전해야 하는 또다른 현실이 바로 오늘날 보편적인 한국인의 삶의 겉과 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허덕이며 내일이 없는 삶을 산 데다, 약삭 빠르지도 못해 돈도 못 불린 그렇고 그런 사람들, 겨우 모은 재산을 주식이네, 펀드네 다 털어 부자들에게 고스란히 상납하고 난 뒤 그들의 삶은 시쳇말로 허무맹랑해지고 맙니다. 물신주의가 아니라 몸을 움직여 돈을 벌기가 어려운 노후에는 돈이 좀 있어야 복락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이 노후에 들면 더 많은 실효적 상징성을 갖습니다. 아무리 고고한 삶을 살았어도 아침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면 고고함이 깃들 자리에 비루함이 자리잡게 마련이고, 그런 비루함이 곤궁을 넘어 가족 해체와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면 그 삶을 누가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노후의 행복이라든가 복지도 결국은 돈의 문제로 귀결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노인이란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 말에는 ‘건강이 취약하다’, ‘경제적 자율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풍족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의탁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등 많은 부정적 의미를 함께 포괄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한국적 해석이지만, 이 같은 의미를 되짚어 보면 적어도 한국에서 나이 든다는 사실이 축복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축복이 아닌 점이 약점이 됩니다.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적 복지의 수준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산다면 늘어난 수명이 여락을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비탄과 무기력의 시간이기 쉽고, 그렇다면 수명 연장은 복지나 의료의 개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도 균형을 잡지 못하는 외발로 거친 강을 건너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수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불여사’의 삶은 지금, 우리의 문제입니다. 토대가 견고하지 못한 장수의 시대, 수많은 노인성 질병과 취약한 신체 조건, 의식주의 곤궁에 노출된 많은 노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만들어 내는 음울한 풍경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현대 복지국가의 허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죽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살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죄악이라는 의미 없는 계몽 탓이기도 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이기도 할텐데, 어떻든 “여러분의 노후가 늘어난 수명만큼 늘어나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세상인 것은 사실입니다. ●장수가 축복인 사회를 위해 확실히 노인은 사회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류임에 틀림없습니다. 생산성의 향상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산업사회에 어울리는 부류가 아니지요. 게다가 산업사회에서 작동하는 국가의 기능 역시 그런 산업사회에 걸맞는 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자조는 여기에서 배태됩니다. 모든 산업사회는 이윤의 극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국가도 그런 가치 추구에 편승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렇다보니 산업사회가 가진 가장 심각한 인간 소외, 노인 소외의 문제가 우리에게서 너무나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이고, 여기에서 발아된 각성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주목할만 한 어젠더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현실의 인간 소외는 연령과 성별, 계층을 가리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 즉 예전의 농경사회에서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가치였던 인간 존중의 가치를 되살리자고 말하는 것은 시대 역행의 발상일 뿐입니다. 이래서는 오래 산다는 것이 자랑할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닙니다. 요양병원의 한 의사가 제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더군요. “나이가 많으면 병도 많아지는 게 당연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픈 노인들’의 문제가 처음부터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에 빠져 어디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고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나이 들어 이런 저런 질병에 노출된 노인들 중에 더러는 자식들이 부양할 형편이 못돼 요양병원에 맡겨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가족들의 관심이 멀어지다가, 종국에는 아예 경제적인 지원을 끊어버리기 일쑤라는 겁니다. 이런 설명에 딱 어울리는 환자가 한 명 있었답니다. 이 환자는 초기 치매에 중증 노인성 질환을 가져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는데, 어느 순간 이 환자를 부양해 온 외아들로부터 연락이 끊기고 말았답니다. 수소문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았는데, 사업에 실패해 집까지 날리고, 가족들과도 따로 사는 형편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더랍니다. 흙 파서 병원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의사도 난감했겠지요. 그래서 시한을 정해 두고 환자를 집으로 모셔가도록 안내했는데, 그 후로는 아예 연락도 되지 않더랍니다. 자식 키우느라 ‘몰빵’을 하는 바람에 돈도 못 모았지, 가족은 벌써 해체돼 자식도 같이 살려 하지 않지, 남은 것은 빈궁과 병 뿐이어서 혼잣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데, 정부의 지원이라는 것도 이래 저래 꼬이기만 하는 빛 좋은 개살구이니 악순환이랄 밖에요. ●‘복지 망국’이 아니라 ‘복지 부국’을 이뤄야 그렇다고 정부더러 ‘복지 망국’으로 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두선으로 복지를 말하지 말고 실질적인 복지를 실행하라고 주문하기를 주저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 땅의 선각자들이 “나라는 백성의 안온한 삶을 위해 ‘이용’ ‘후생’에 힘싸야 한다”고 외쳤던 게 벌써 200년쯤 된 얘기입니다. 그 이용(利用)은 공자왈 맹자왈만 하지 말고 제도와 물산과 이기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활용하지는 뜻이겠고, 후생(厚生)은 그렇게 해서 백성들 삶을 요족하게 만들어 주자는 의미입니다. 그 후생의 가치가 바로 오늘날의 복지 개념과 일치합니다. 북학파였으며, 실학의 씨를 뿌린 박제가의 말을 듣지요. “이용과 후생은 둘 중 하나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정덕(正德)을 해친다. 공자도 백성을 넉넉하게 한 다음에 가르치라고 했고, 관중도 의식주가 갖춰져야 예절을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 백성들의 삶이 날로 곤궁해지고, 나라 살림은 궁핍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사대부들은 팔짱만 낀 채 백성들을 외면하는 것인가.” 박제가의 이 질타에서 겉돌 뿐만 아니라 선거용으로 선심 쓰듯 주어지는 우리의 복지를 떠올리는 건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고도의 산업사회란 ‘이용’이 왕성하게 번창한 사회일 터인데, 그런 점에서 우리는 확실히 많은 것을 이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용과 맞물려 가야 할 후생은 답도 없고, 길도 없습니다. 국부는 크게 팽창했는데 여전히 가난한 국민들은 차고 넘칩니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관행이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 은밀하게 장려되고 권장되는 사회, 그래서 사회정의의 큰 축인 분배의 질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에 ‘화염지옥이라도 이만 하겠느냐’는 절망의 대꾸가 터져 나올 법 하지요. 누구에게나 오랜 산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누구든 필요하면 의료와 복지의 수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있지요. ‘한국인은 병원 안에 있는 사람과 병원 밖에 있는 사람, 치료 받고 있는 사람과 치료 받을 사람으로 나뉜다’고요. 이에 걸맞게 병원도 많고 의료의 질도 수준급입니다. 그러나 그 수혜가 최소한에 머물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살만 한 사람이라면 까짓 것 신경 쓸 필요도 없을 터이지만, 나이는 들었지, 벌어놓은 것도, 벌 일도 없지, 남은 건 중증 질환 뿐인 곤궁한 노약자들에게는 ‘새발의 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복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오래 살아서 좋은 세상”이라고 하려면 이에 걸맞는 삶의 질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 이 삶의 질을 오로지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개선할 수는 없다는 점, 그러니 국가의 몫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국가가 그렇게 제 몫을 다 할 때라야 겉과 속이 딱 맞아 떨어지는 ‘100세 시대’가 될 테니까요. 심재억 기자 jeshim@seoul.co.kr
  •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의 장마철 고비 넘기기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의 장마철 고비 넘기기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은 고통에 시달린다. 습하고 기압까지 낮아지면서 부쩍 통증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장마는 예년과 달리 무더운 여름철인 7~8월에 많은 비와 함께 시작될 전망이어서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메르스 사태의 여파로 외출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더해져 관절염 환자들 중 상당수가 실내 생활을 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이들의 장마철 넘기기가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내에서라도 조금씩 운동을 해야 통증 덜해  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90% 이상이 장마철에 더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흐리거나 비가 이어지는 일기 탓에 야외 활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운동량이 부족하게 되고, 이 때문에 통증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이처럼 장마철에 통증이 심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마철에는 저기압의 영향을 받는 데다 기온까지 떨어져 혈액 순환이 느려지게 되는데, 이 때문에 근육과 인대로 가는 영양분과 통증 완화물질의 양이 줄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습도가 높아지면 연골이 관절액으로부터 흡수하는 영양분이 줄어들고, 체내로 수분 흡수가 원활하지 않아 부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량까지 부족하면 근력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뼈와 뼈 사이의 마찰을 줄여주는 윤활액이 제 역할을 못해 관절 통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미 관절염을 가진 환자는 물론 관절이 약해지기 시작하는 중년 이후 세대는 장마철이라도 실내에서 간단한 운동을 해주는 것이 좋다. 하루 30분 정도의 가벼운 걷기 운동이나 무릎이나 팔을 중심으로 하는 간단한 스트레칭은 통증이 주로 발생하는 관절 부위의 온도를 높여 통증을 예방해주며, 근육을 이완시키고 관절 주변 근력을 강화해 관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보건복지부 지정 관절 전문 바른세상병원의 임홍철(정형외과 전문의) 원장은 “장마철에는 기압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관절 속의 압력이 증가하는 탓에 관절 주위 인대와 근육이 수축되고, 관절액이 줄면서 관절 전체가 뻑뻑해진다”면서 “특히 최근 메르스 여파로 야외활동이 줄어든 가운데 장마까지 시작되면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내에서라도 자주 관절을 움직여 적당한 운동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볕이 날 땐 잠깐씩이라도 바깥으로 나가 움직여야  장마철이라도 볕이 날 때는 산책 등 바깥 활동을 해주는 것이 관절 건강에 도움이 된다. 물리적인 운동 효과 말고도 외부 활동을 통해 비타민D를 합성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D는 암, 당뇨병, 심장병 등 주요 질환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줄여주며, 근골격 강화에도 도움이 되는데, 90% 이상이 햇볕을 받아 피부에서 합성되며 나머지 10%만 음식 등으로 보충된다.  또 뼈를 만드는 칼슘이 체내에 잘 흡수되도록 돕는 역할도 하는 비타민D가 부족하면 골연화증에 노출되기 쉽다. 골연화증이란, 칼슘이 부족해 뼈가 물러지는 질환인데, 이 경우 뼈가 휘고, 통증이 따른다.  임홍철 원장은 “노인에게서 비타민D가 부족하면 체내 칼슘이 부족해 2차적으로 부갑상선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게 되고 이런 상태에서는 뼈에서 칼슘이 많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임홍철 원장은 “특히 퇴행성 관절염을 앓기 시작하는 노년층의 경우 피부의 표피가 퇴화해 비타민D를 합성하는 능력이 20대의 30~50% 정도까지 떨어지므로 장마철이라도 볕이 날 때는 적당한 실외활동을 병행, 자외선을 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면역력 강화’가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메르스 사태로 감염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외출을 삼가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라는가 하면 외출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기도 하고, 손을 자주 씻으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전문의들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면역력을 키워 질병에 맞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예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히 ‘면역력’은 개념 자체가 복잡해 얼른 와닿지가 않는다. 면역력은 ‘최고의 의사이자 최고의 치료제’라고 불릴 만큼 인체의 건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어떻게 강화해야 하는 지를 명쾌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의학적 관점의 면역력은 복잡다단한 개념이지만, 실생활에서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런 전문 지식이 아니라 상식적인 수준의 생활수칙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운동, 스트레스 회피 및 해소, 골고루 먹는 식습관, 풍부한 야채와 과일 섭취 등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일상적으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다. 이런 면역력 강화 방법에 대해 서울아산병원 전문의들로부터 듣는다.    ■면역력을 높이는 생활습관  1. 충분한 수면  충분한 수면은 면역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이다. 수면이 불충분하면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해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쉽다. 또 누적된 피로감이 우울증 등 합병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단기적인 수면장애라도 사소하게 여길 경우 수면패턴이 망가져 만성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정신 건강도 챙겨야  일상생활에서 쓸데없는 걱정을 줄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 신경호르몬에 영향을 미쳐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이게 어려워 마음의 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항우울제, 안정제 등의 약물 치료를 받는 것도 궁극적으로 면역력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수면부족과 정신 건강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문제가 있을 경우 2가지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3.과도한 청결을 피하라  다양한 종류의 세균에 노출되면 위험하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반대로 더 건강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고 보는 게 옳다. 따라서 ‘깔끔을 떠는’ 정도로 청결한 것은 좋지 않다. 실제로, 항생제 등을 많이 사용해 장내 세균을 죽이면 결국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건강을 위해 위해 유산균을 일부러 먹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피부의 세균을 없앤다며 세정제로 닦고, 때를 미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장과 함께 우리 몸에서 세균이 가장 많은 곳이 피부이며, 장내 유산균처럼 건강한 피부 상재균이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 최근 3~4년 간 국제면역학회에서는 장 및 피부의 정상 세균들이 우리 몸의 면역력 성숙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들이 발표됐다. 학계에서는 머지않아 피부에 좋은 균을 바르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런만큼 과도한 청결은 피하되, 손은 과도할 정도로 자주, 꼼꼼히 닦는 것을 권장한다.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    ■면역력을 높이는 운동  최근 들어 건강을 위해 운동을 일상화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면역력 연구들을 살펴보면, 중간정도의 강도로 운동을 하면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 감염성 질병에 걸리는 비율이 낮지만, 자신이 가진 최대 능력의 80% 이상을 쏟아 붓는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면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리기 쉽다. 또 이미 질병을 앓고 있다면 병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운동과 면역력의 관계를 설명하는 ‘J곡선’이라는 개념 그래프가 있는데, 이는 일정 강도 이하의 운동은 감염 가능성을 낮추지만 너무 심한 강도의 운동은 오히려 몸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격렬한 운동 직후에는 1~2시간 정도 혈액 속 면역세포의 숫자가 감소하고, 기능이 저하될 수 있으며, 면역기능을 낮추는 스트레스 호르몬도 증가한다.  그러면, 적당한 운동이란 어느 정도일까. 연구 결과, 주당 5일, 하루 40분씩 걷기 운동을 한 노인들의 면역력이 2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에 운동을 자주 하지 않다가 요즘 같은 여름철에 운동을 시작하는 경우에는 적응을 위해 5~8일 정도 점증적인 운동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좋다. 첫날은 약 20분 정도의 운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며, 이틀째부터 운동시간과 운동강도를 조금씩 늘려나가는 방식이다. 단, 가능한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며, 오전 10시~오후 3시 사이에는 야외운동을 삼가는 것이 좋다.  -건강한 운동 수칙  1.충분한 수분을 섭취한다.  2.장시간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3.새벽 및 햇볕이 강한 한낮의 운동은 피한다.  4.통풍이 잘 되는 운동복을 착용한다.  5.축구 등 실외 운동보다 수영, 스쿼시 등 실내 운동이 좋다.  6.운동 전 준비운동과 마무리 운동은 충실하게 한다.  7.어지럽거나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무리하지 않는다.  8.운동 중 따로 소금을 섭취하지 않는다.  9.비타민 C나 과일을 적당량 섭취한다.  10.땀을 많이 흘렸을 때는 사우나 대신 샤워만 한다.  [스포츠의학건강센터 진영수 교수]    ■면역력을 높이는 영양  1.비타민 C는 많은 양을 나눠서, 식후 바로 복용해야  동물들은 대부분 포도당을 통해 비타민 C를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비타민 C의 식약처 1일 권장량은 100mg 정도 인데, 이는 구루병 등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양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비타민 C는 항염증·항산화·항노화·면역력 증진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비타민 C가 면역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많다. 하지만 비타민 C는 고용량을 섭취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주변에 저명한 면역학자 중에는 비타민C를 매일 6~12g씩 복용하는 사람도 있다.  비타민 C는 많이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화되지 않은 비타민 C를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타민 C는 빛에 노출되면 파괴되는데, 일반적으로 흰색의 정제가 노랗게 변했다면 산화됐을 가능성이 크므로 안 먹는 게 좋다.  더러는 비타민 C의 부작용을 걱정하기도 하는데, 비타민 C는 수용성이어서 과량을 섭취해도 남은 성분은 모두 소변으로 배출돼 체내에서 독성을 유발하지 않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 임상연구에서도 비타민 C 때문에 신장결석 등이 발생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단, 속쓰림, 설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식후 음식과 같이 복용하거나 적절한 용량을 여러 번 나눠 먹으면 된다.    2.햇볕을 쬐기 어렵다면 비타민 D3 제제 복용이 도움  최근 면역학계에서 강조되고 있는 영양소가 바로 비타민 D이다. 많은 면역세포에는 비타민 D를 인지할 수 있는 수용체를 갖고 있으며, 만성 염증성질환이 비타민 D의 부족과 관련이 있다는 역학 연구 결과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런 비타민 D는 체내에서 면역력을 높여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사멸 기능을 강화한다. 또 NK세포와 T-림프세포 등 백혈구의 기능을 증강해 감염에 의한 발병률을 줄여주며,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을 감소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비타민 D가 이렇게 중요하지만,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은 햇빛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함으로써 체내 비타민 D 합성율이 매우 낮아 만성적인 비타민 D 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실내생활을 많이 하는 현대인들은 비타민 D3 제제를 복용하는 것이 장기적인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3.아침 식전에 물 한잔과 함께 유산균을  좋은 장내 세균들은 지속적으로 면역세포를 자극해 면역 성숙 및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유산균이 면역체계 성숙이 미치는 긍정적인 결과들이 제시되고 있다. 유산균을 섭취할 때는 여러 종류가 든 복합 유산균제가 단일 유산균제보다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유산균제는 아침 식사 30분 전에 공복 상태에서 물 한잔과 같이 복용하는 것이 식후에 먹는 것보다 장으로 내려갈 확률이 더 높다.    4.언제나 든든한 건강식품 마늘과 양파  마늘 및 양파가 면역력을 높인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뚜렷하지 않지만 일정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마늘이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한다고 보고되기도 했다. 마늘과 양파는 비타민 B, C 함량이 매우 높고, 섬유질이 많아 좋은 장내 유산균 증식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건강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5.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를 먹어야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를 고루 먹으면 여러가지 비타민 및 필수 미량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어 면역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 채소는 한 종류보다 여러가지를 섞어 먹는 것이 좋다. 생야채가 싫을 경우 살짝 데쳐 먹거나, 60~70도 정도의 저온으로 요리를 하면 질긴 촉감을 부드럽게 하면서도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간편하게는, 밥솥을 보온 상태로 놓고 야채를 기호에 따라 10분에서 1시간 정도 넣어 적당하게 익혀 먹으면 영양소 높은 야채를 맛있게 섭취할 수 있다.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심재억기자의 헬스토리-6] 커피는 정말 몸에 좋을까

    [심재억기자의 헬스토리-6] 커피는 정말 몸에 좋을까

     가히 ‘커피공화국’ 다운 소비량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이 세계 30위권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연간 국민 한 사람 당 마시는 커피도 적게는 240잔에서 많게는 480잔 정도로 통계가 나오더군요.  이처럼 통계에 편차가 있는 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게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 각각 조사해 발표한 것이어서 그럴 겁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최근 들어 국내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통계로 잡고 보니 더 대단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저의 경우, 아침 출근 전에 집에서 한 잔, 점심 후 또 한 잔 하는 게 루틴한 ‘커피타임’이고, 혹시 사람들을 만나거나, 돌연 커피가 생각나 돌발적으로 또 한 잔씩 마시는 정도이니 이를 연단위로 환산하면 800∼900잔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시는 커피가 얼마나 우리의 생활 깊숙히 들어왔는지를 이해하려면 밥을 먹는 횟수와 견줘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출근할 때나 공휴일에도 아침에는 거의 밥을 먹지 않고 요거트와 샐러드 등 다른 음식으로 대체합니다. 그러니 1일 2식이 기본이어서 연간 700여 식, 조찬 모임 등이 있을 때 먹는 등 예외적인 경우가 50∼80식 정도라고 치면 커피를 마시는 횟수와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셈을 하고 보니 ‘커피, 참 대단하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국가별 연간 커피 소비량에서도 우리나라는 11만 2000톤으로 일본과 러시아를 앞질렀고, 프랑스나 이태리와 견줘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미국과 브라질이 70만톤 내외를 소비하지만, 단순한 소비량만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인구가 3억을 넘으니 말이지요.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잠시 의탁하던 고종 황제가 당시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의 권유로 ‘가배’라 불리던 커피를 처음 마셨다니, 그로부터 100여년 만에 지배적인 커피공화국으로 변모해 온 나라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의 마성에 빠진 것이지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아랍,유럽,그리고 세계로  알고 보면 커피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지 않습니다. 6세기를 전후해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처음 식용했다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볶은 원두를 분쇄해 액상 커피를 추출해 마시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원두를 씹는 수준이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런 커피가 아랍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음료로 개발됐답니다. 아랍에서 처음 커피를 기호식품으로 활용한 부류는 신비주의적 이슬람 종파인 수피교도들이었는데, 이들은 밤을 세워 기도를 하면서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우려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커피 세계화의 기반이 이 때 마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겠지만, 당시의 아랍은 세계 교역의 중심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잘 아는 실크로드 역시 중국 등 아시아와 아랍, 유럽을 잇는 교역통로였지요.  유럽의 귀족사회는 향락적이었습니다. 항상,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중세의 유럽 귀족들은 부와 권력을 장악해 거의 모두가 향락적인 삶을 살았고, 그러기를 갈망했습니다. 확실히 당시의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그래서 세계의 모든 물산이 유럽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래도 특정 물산이 부족해 성에 차지 않자 땅으로, 바다로 나서 새로운 교역로를 확장하고, 세계 곳곳에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멜표류기의 그 하멜이 바로 우리에게 남겨진 ‘세계적 유럽’의 한 증거이지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권위와 이해가 충돌한 것으로 알려진 십자군 전쟁도 해를 거듭할수록 문명의 교류와 교역의 특성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커피가 그 증거입니다. 유럽의 십자군과, 십자군의 보급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거상들이 아랍에서 찾아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커피였습니다.  당시 르네상스라는 거센 변혁기를 맞은 유럽사회는 왕과 귀족이 지배적 지위를 독점했던 이전의 세상과는 달랐습니다. 바로 자본과 자본가가 르네상스 변혁의 중심에 선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돈이 되는 것들을 찾아내려는 욕망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습니다. 동양의 향신료가 돈이 되자 그들은 군함과 상선을 보내 모든 향신료를 가차없이 약탈, 유럽 귀족의 기호욕을 충족시켜주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커피의 유럽 전파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를 해야겠지요. 실제로, 르네상스시대 유럽의 귀족과 지식인, 부호들은 커피의 맛과 향기, 그리고 각성효과에 홀딱 반했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세계 교역이 커피의 부흥을 이끈 셈이지요.    누구나 커피에 관한 추억은 있다  필자도 커피에 관한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무렵으로 기억됩니다. 동네 장정 하나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제대하고 귀향을 했지요. 김추자의 노랫말에도 있듯이 그가 제대해 돌아오던 날, 온 마을이 잔칫집 분위기였고, 새까맣게 탄 얼굴로 집에 들어선 그에게서 제가 얻은 선물이 바로 C-레이션 깡통에 든 봉지커피였습니다.  누룽지 끓인 숭늉만 마시던 촌놈이 커피를 알 턱이 없었지요. 동무들 앞에서 자랑 삼아 봉지를 뜯고 까만 커피가루를 조금 입에 털어 넣었는데, 그 순간의 황당함이라니요. 마치 테라마이신 가루처럼 된통 쓰기만 한 맛에 전율하다 못해 얼른 그걸 다시 뱉아내고는 입까지 헹궜으니까요. 그러고는 봉지 주둥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어뒀는데, 나중에야 그걸 물에 타서 마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적당히 설탕을 넣어서요. 그걸 알고 봉지를 열어보니 몇날을 주머니에 넣어둔 탓에 진득하게 엉겨붙어 물에 풀어 녹이기도 어려웠던, 그런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원두커피를 마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법 격조 있는 커피점이나 돈 좀 드는 음악감상실 정도라야 사이폰으로 내린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흔한 다방에서는 죄다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냈지요. ‘설탕 하나 프림 둘’은 ‘파 송송 계란 톡’처럼 인스탄트 커피의 일상화를 웅변하는 레시피이자 구호였으니까요.  대학 새내기 시절, 미팅이랍시고 학교 앞 ‘다방’에 짝지어 앉은 선남선녀들이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키득거리며 마시던 커피 맛이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그 무렵,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갈 즈음이 커피문화에 빠지는 시기였고, 그러니 그 찬란한 청춘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커피와 연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사 잘 되는 집 이유가 있듯이  이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오랫동안 커피가 없어서는 안될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커피가 소비되는 것은 많은 커피 애호가들이 커피를 통해 뭔가를 얻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상식적인데,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 한 취업포털이 실시한 커피 관련 설문 중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눈길을 끕니다. 직장인들에게 ‘커피를 왜 마시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25.7%가 ‘습관’을 들었더군요. 또 18.3%는 ‘기분 전환을 위해’, 16.9%는 ‘잠을 깨기 위해’, 12.9%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라는 응답을 내놨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커피를 마시는 이유로 ‘건강’을 꼽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커피의 선호 이유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건강에 좋으니까’와 같이 구체적 이득에 해당하는 항목을 들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커피가 보편적으로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넘어 커피가 신체는 물론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오늘날의 ‘커피 트렌드’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기호라도 커피를 이렇게 많이 소비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지요.  실제로 국내외에서 이뤄진 많은 연구에서는 커피의 긍적적인 효능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커피가 잠을 쫓아준다’는 단편적인 효능은 이제 상식이고, 보다 실체적으로 ‘커피 건강학’이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이지요. 마치 ‘장사가 잘 되는 집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듯이’ 커피가 폭발적으로 소비되는 배경에도 그럴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이유를 건강에 대한 이로움에서 찾자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지요.    커피가 건강에 좋은 점 세 가지  물론, 저도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지만, 이제부터 말하는 ‘커피 건강론’이 저의 체험 결과는 아니고, 학계에서 정리된 커피 관련 연구 중에서 신빙성이 있는 부분을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커피를 통해 가장 많이 섭취하는 성분은 카페인입니다. 이 카페인 성분은 졸음을 쫓아 정신이 또렷해지게 하는 각성 효과를 가졌는데, “난 커피 마시면 잠을 못 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카페인에 민감한 탓입니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피곤한 신경을 쉬게 하는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왜 원두에는 카페인 성분이 많이 들어있을까요? 커피 뿐만이 아니라 홍차, 녹차, 보이차 등 대부분의 차에 다 들어 있는 카페인은 식물의 자기방어 기제에 활용되는 물질입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식물이 수많은 포식자나 곰팡이, 세균 등으로부터 씨앗을 지키기 위해 카페인을 다량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카페인을 섭취한 거미는 거미줄을 엉성하게 치기 때문에 모기를 거의 잡지 못한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해충들이 커피 열매를 탐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겠지요. 편백나무에서 방출하는 피톤치드가 사실은 해충을 물리치기 위해 내뿜는 자기방어 물질인 것과 흡사한 원리지요. 이처럼 커피가 대표적인 기호식품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먼저, 커피와 만성질환의 상관성을 살펴보지요. 일본 국립암센터가 실시한 대규모 코호트 조사 결과, 하루에 커피를 3∼4잔 정도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뇨병 발병 위험이 최고 40%까지 낮았으며, 연구 결과를 따로 다룬 메타분석에서도 하루에 6잔을 마시면 33%까지 당뇨병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더군요.  이런 연구 결과는 커피가 가진 지방 분해효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시된 연구에 따르면, 커피가 지방을 효과적으로 분해하도록 도와 인체의 활동에너지를 보강하는데, 이 때문에 필요한 양의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인체의 에너지 대사량을 10% 정도 높일 수 있답니다. 커피가 당뇨 발병을 억제하고,고혈압 예방 및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는 가설은 이같은 논거에 따른 것입니다. 또다른 사람들은 커피의 이뇨작용을 들어 콩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더군요.  또다른 이점은 커피에 함유된 항산화물질입니다. 사실, 인체의 산화는 정도의 문제일 뿐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호흡을 통해 산소를 끌여들여 대사작용을 하는 한 말입니다. 이 인체 산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는 호흡을 통해 빨아들인 산소가 쓰이고 남은 것인데, 누군들 숨을 안 쉴 수 없으니 그로 인한 산화 역시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건강염려증을 가진 분들은 혹여 숨쉬기조차 꺼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안정된 상태의 호흡으로는 생성되는 활성산소가 많지 않아 그런 정도는 감당하도록 인체가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자주 하는 경우라면 여기에 대응하는 항산화물질의 보완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지요. 요즘에는 항산화 기능을 강화한 영양보충제도 많이 나와있지만, 바람직하기로는 자연스러운 섭생으로 섭취하는 게 가장 좋을텐데, 여기에 도움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커피라는 말입니다.  학계에서는 세포의 변이에 작용해 암을 유발하는 많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산화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고, 노화의 주범이 활성산소라는 논거는 너무도 많아 기정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여왕벌의 먹이로 알려진 로얄젤리도 프로폴리스라는 강력한 항염·항산화물질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커피가 암을 예방한다는 믿음의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커피 다이어트도 실질적인 효능 여부를 떠나 논리적으로는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커피의 에너지 소비 촉진은 장운동과도 연관이 있어 배변을 촉진하는데, 이런 효능이 다이어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오로지 좋기만 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커피를 ‘만병에 좋다’거나, 특정 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이나 치료 목적으로 활용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아무리 커피라도 효능이라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반드시 따르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커피의 효능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이탈리아 의사 시니발디는 “커피는 신경쇠약과 위장장애를 유발하고, 사지가 떨리는 경련과 중풍을 일으킨다”고 주장했지요. 카페인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인체에 해로운데, 커피에는 많은 카페인이 들어있으니까요. 사실, 카페인의 과다 문제는 모든 의학자들이 동의하는 문제이지만, 일상적으로 즐기는 커피 정도라면 카페인이 따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도 의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격언은 커피 기호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아예 텀블러에 커피를 담거나 커피잔을 들고 출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점심시간에 커피하우스에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은 이제 익숙한 도시 풍경입니다. 이런 문화를 두고 “5000원짜리 점심 먹고 5500원짜리 커피 마시는 세태’라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고, 또 지금의 커피 문화가 ‘소비를 부추기는 상술이 만든 폐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문화는 다양한 시각으로 조감되는 현상입니다. 그런 냉소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으며, 이런 추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고 보면, 지금의 세상에서 커피를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접근이라는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이 글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적당하게 마시는 양질의 원두커피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특정 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이나 치료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면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양질의 커피는 어떤 커피이며, 적당한 양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가”라고.  필자가 말한 양질의 커피란,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커피콩을 억지로 먹여서 얻는 비싼 루왁커피 따위가 아니라, 풍부한 햇볕을 받고 자란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서, 곰팡이가 슬거나 쥐나 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게 잘 관리했다가 내려 마시는 모든 커피를 말합니다. 단, 요새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가면서 광고해대는 인스탄트 커피는 제가 말한 양질의 커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적당량’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에 따라 커피를 잘 받는 경우도 있고,아예 한 잔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걸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냥 마셔서 속이 불편하지 않은 정도, 밤에 잠드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 문득 당겨서 기분 좋게 마시는 정도가 바로 개개인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적당량 아니겠습니까. 꼭 커피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도 스스로 좋으면 그게 최고입니다.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메르스 겁나 병원 가기가” 만성질환자들을 위한 조언

     메르스 사태가 이어지면서 당뇨병·고혈압·천식·신부전 등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병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약 복용 기한이 지났거나 신장 투석 일정이 지나도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아 의료진이 애를 태우고 있는 것.  이런 만성질환자들은 평소 앓던 질환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과 함께 감염성 질환 예방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전문의들은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꾸준히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병이 악화되기 쉽고, 치료 시기를 놓치면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예정된 일정에 맞춰 의료진을 만나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처방을 받는 것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만성질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도움말을 참고 삼아 정리했다.  질환의 종류에 관계없이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는 병원을 찾는 등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수시로 손을 씻는 습관을 생활화하면 감염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당뇨병  당뇨병 환자가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거나 인슐린 주사를 자주 거를 경우 혈당치가 높아져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물론, 몇 회 정도 약을 거른다고 당장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평소 혈당 조절이 잘 안되거나 인슐린을 사용 중인 환자는 단기간 약을 인슐린 투여를 중단해도 혈당이 급격히 치솟아 ‘당뇨병성 케톤산증’이나 ‘고삼투압성 혼수’와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하기 쉽다.  이런 당뇨병 환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약이나 인슐린의 이름 등 평소 사용하는 약의 정보가 적힌 처방전을 잘 보관해 둬야 한다. 당뇨병을 집이 아닌 병원에서 받고 있는 환자의 경우 처방전을 잘 보관해 두면 요즘처럼 전염성 질환 등으로 병원을 찾기가 어려울 때 집 근처 병원에서 일정 기간 약을 처방받아 복용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가 지켜야 할 일상적인 생활수칙  1.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특히 약 복용시간, 인슐린 주사를 맞는 시간, 식사시간을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하도록 한다.  2.식사요법과 운동요법을 철저히 해 표준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3.규칙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정기적으로 혈당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합병증을 조기 발견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  4.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은 약물은 함부로 복용하지 않아야 한. 특히, 인슐린 주사나 경구 혈당강하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임의로 복용하는 약물 중에 인슐린과의 상호작용으로 혈당치를 크게 떨어뜨리거나 높일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5.당뇨병 환자가 저혈당 증세를 느낄 때는 절대 운전을 금해야 한다. 인슐린 주사요법으로 치료 중인 환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인슐린 제재의 최고 효과시간을 미리 알아둬야 한다.  6.당뇨병 환자는 진료카드나 수첩을 항상 휴대해야 한다.  [내분비내과 이우제 교수]    ■고혈압  순환기질환 중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질환이 고혈압니다. 고혈압은 일반적으로 성인의 경우 안정 상태에서 두 번 이상 측정한 혈압이 140/90mmHg를 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내 성인의 약 25%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고혈압 환자들은 증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혈압을 측정해보지 않고서는 자신이 고혈압인지도 모르고 있다. 흔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뒷목 부위가 뻣뻣하다든지 하는 증상을 호소하면서 혈압이 오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혈압을 측정해보면 대부분의 경우는 혈압과 이런 증상들이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단순한 증상으로 고혈압 여부를 가늠하려 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이런 고혈압을 방치하면 여러 가지 심각한 합병증이 생기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진과 적절한 치료가 필수적이다. 고혈압을 방치하면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순환기 질환, 예컨대 협심증·심근경색증·심부전증·동맥경화증·뇌졸중(중풍) 등의 질환이 잘 발생한다.  신장도 고혈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고혈압과 신장의 관계는 상관성이 높아서 고혈압이 신장병을 유발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신장병이 고혈압을 일으키기도 한다. 눈의 망막 출혈을 유발, 시력장애를 가져오는 것도 고혈압의 흔한 합병증이다.  이런 고혈압은 완치보다 평생 조절해야 하는 병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혈압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환자마다 맞는 약이 따로 있고, 한 가지 약제만 먹어야 한다.  치료약은 워낙 종류가 많고, 약에 따라 다양한 효능과 부작용이 있으므로 환자의 고혈압 상태와 환자가 가진 질병, 환자의 직업이나 연령 등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단 약제를 선택하면 꾸준히 복용해야 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효과적이다.  약물요법으로 치료하는 환자들의 경우 약의 반응도를 높이고 혈관합병증의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해 식이요법 등 비약물요법도 매우 중요한데, 특히 저염식을 잘 지켜야 한다. 특히, 우리 나라 음식은 비교적 짜기 때문에 가능한 염분 섭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적당한 운동과 체중조절, 금연, 절주 또는 금주, 스트레스 해소 등이 혈압의 조절에 중요할 뿐 아니라 동맥경화증의 위험요인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고혈압 환자들이 병원을 방문할 때 주의할 점  고혈압 환자들은 본인에게 맞는 특정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므로, 약이 떨어진 경우 병원 방문을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약을 타러가기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평소 복용하던 약의 정보가 기록된 처방전을 잘 보관해 놓는 것이 좋다.  [심장내과 박덕우 교수]    ■호흡기질환  대표적인 호흡기질환은 비염·후두염·인후염·만성기침·기관지 천식·기관지확장증 등이며, 기침과 함께 가래, 호흡곤란 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질환이 호흡기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면 폐세포가 손상되거나 파괴되는데, 이렇게 발생하는 질환들로는 폐섬유화·간질성폐질환·COPD(만성폐쇄성폐질환)·만성기관지염 등이 있다. 이 경우 폐실질이 파괴되는 만큼 가스교환에 문제가 생겨 대부분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하며, 한번 진행되어 손상된 폐세포는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  호흡기질환 역시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 호흡기질환은 수술 한번으로 완치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한 치료로 증상을 호전시키거나 진행을 막아야 한다. 환자 대부분은 처음 치료를 시작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증상이 많이 호전되는데, 이 때 병이 나은 것으로 여겨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면 상태가 악화되기 쉽다.  호흡기질환의 원인·증상·치료 경과 등이 환자마다 다르므로 개인별로 치료 방침이 다르며, 각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증상을 조절하게 된다. 특히 천식은 매우 역동적인 병이어서 순간적인 기도 수축으로 심각한 호흡곤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환자 스스로가 악화 증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를 해둬야 한다.  이런 경우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병원을 선정해 꾸준히 다니는 것이 중요하며,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개인 상태에 대해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법과 개개인에게 적합한 치료 방침을 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호흡기질환자가 병원을 찾을 때 주의할 점  천식·COPD 등의 질환자들은 폐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와 경계가 필요하다. 이런 만성 폐질환자들은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염증으로 인한 기도수축 등으로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런 환자들은 요즘처럼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는 외출을 자제하고, 손위생을 철저히 해 감염을 예방해야 한다. 또 병원을 찾을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    ■만성신부전 -  만성신부전은 노폐물을 제거하는 신장의 기능이 쇠퇴해 정상으로 회복될 수 없는 단계를 말한다. 최근에는 당뇨병에 의한 신부전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감각 및 운동장애, 피로, 졸음, 의식장애, 혼수 등 신경계 증상이나 고혈압, 동맥경화증 등 심혈관계 증상, 폐부종 등 호흡기계 증상, 식욕감퇴, 구역질, 구토 등 소화기계 증상이나 면역기능 저하 등 전신에 걸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신부전 환자들은 육류 섭취를 줄이고, 싱겁게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단백질이 신장 부담을 키우고, 염분이 고혈압을 악화시키고, 폐부종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양상태가 나쁜 환자들은 식이제한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므로 전문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좋다.  특히, 만성신부전의 경우 투석 전이라면 고혈압 치료와 식이요법이 매우 중요하며, 신장기능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투석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만성신부전 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때 주의할 점  투석이 필요한 만성신부전 환자들은 주기적으로 병원에 내원해 같은 공간인 투석실에 5~6시간씩 머물게 된다. 따라서 환자와 보호자 모두 손씻기, 마스크하기 등의 감염관리 예방이 중요하며, 발열이나 기침, 가래 등의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신장내과 김순배 교수]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5] 메르스 사태를 보는 또다른 시선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5] 메르스 사태를 보는 또다른 시선

      최근의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옛날에도 바이러스 질환이 있었을까’라는 황당한 의문을 가져봅니다. 이런 생각이 왜 황당하다고 여기느냐 하면, 바이러스라는 생명체는 지구와 생존의 역사를 같이 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옛날을 떠올리는 건 지금의 사태가 주는 많은 시사점과 교훈 때문입니다. 좀 나이가 드신 분들은 예전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비루스(Virus)’를 생각하시기도 하겠지요. 바이러스의 독일어식 발음인 그 비루스가 바로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는 괴물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지구 탄생의 순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해 왔듯이 바이러스도 꾸준히 진화했지요. 진화라는 게 ‘환경에 적응하려는 변화’를 말하는데, 인간의 환경이 계속 바뀌었고, 거기에 우리가 적응해 지금의 문명을 이룩했듯이 바이러스의 세계에서도 지금을 황금기라고 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우선, 종류가 다양합니다. 숙주의 종류에 따라 식물 바이러스, 동물 바이러스, 세균 바이러스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생명체의 증식에 있어 결정적인 핵산의 종류에 따라 크게 DNA바이러스 계열과 RNA바이러스 계열로 나누고,여기에서 다시 유형별로 세분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바이러스는 증식에 필요한 효소를 못 가져 외부의 조력이 없으면 증식을 하지 못합니다.그래서 반드시 숙주 생물을 이용하는데,최근 국내에서 문제가 된 메르스 역시 사막지역의 낙타를 숙주로 한다고 알려져 있더군요.바로 이 놈이 RNA바이러스 계열의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창한 이름이 사람들에게 더 큰 공포감을 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이 명칭은 현미경으로 볼 때 모양이 태양의 겉면인 코로나와 비슷해서 붙여졌을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사람 등 포유류와 조류에서 코감기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제가 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가 사스(SARS)라고 불렀던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입니다.    알고 보면 특성도 재밌습니다.이 놈들은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만 기생하고,증식도 잘 하는 생물적 특성을 가졌지만,이걸 생물이라고 딱 부러지게 단정하기에는 다른 특성도 있습니다.그런 탓에 20세기 초에 처음 발견됐을 때는 학자들 사이에서 “생명체다” “아니다”를 두고 열띤 논쟁도 있었습니다.     먼저,생물적 특성을 보면 숙주의 효소를 이용하지만 그래도 물질 대사를 한다는 점,증식·유전·적응 등 생명체의 특성을 보인다는 점,자기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흔히 말하는 바이러스의 변신 역시 자기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무생물적인 특성도 또렷합니다.먼저,세포의 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또 세포막 등 일반적인 세포의 구성 요건도 못 갖추고 있으며,효소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다는 점도 그렇습니다.다시 말해,숙주 세포 안에서는 확실한 생명체로 존재하지만,숙주를 벗어나서는 미세한 결정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무생물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놀라운 환경 적응력  이처럼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죽도,밥도 아닌 바이러스이지만 의료 영역으로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일단 바이러스가 만드는 질병이 간단치 않습니다.바이러스가 원인인 질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독감과 감기일텐데,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고,감기는 리노 바이러스나 아데노 바이러스가 가장 흔한 유형이며,이번의 메르스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은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가 원인이고,소아마비와 마마라고 불렸던 천연두,아프리카를 공포에 빠뜨린 에볼라와 국내에서 숱하게 가축의 생명을 앗아간 구제역 등이 모두 바이러스 질환에 속합니다.    질병의 이름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하지만,더 두려운 것은 바이러스의 변신 능력입니다.요즘 세상에 단순한 세균 질환은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쉬워 일단 원인균만 알아내면 치료나 예방이 어렵지 않지요.가장 대표적인 결핵의 경우 정상적인 치료 과정만 거치면 거의 대부분 완치에 이를 수 있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바이러스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독감을 한번 볼까요.국내에서도 해마다 독감이 한,두 차례씩 유행하지만 아직도 맞춤형 백신은 만들지 못합니다.같은 독감이지만 바이러스가 자주 변신해 매년 유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만들어낸 백신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형 백신’이지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A·B·C형 3종으로 구분하는데,이 중 주로 A형과 B형이 주로 유행을 일으킵니다.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해마다 거의 반복적으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중에서 이 A형과 B형의 항원성과 유사한 바이러스주를 사용해 백신을 만들지요.즉,이 유형의 바이러스가 올해도 독감을 유발할 것이라는 예측을 전제로 미리 백신을 만들어 놨다가 접종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같은 독감이지만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신을 하기 때문에 특정 유형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백신을 만들기 어렵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한 예방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것이지요.    메르스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앞에서도 말했지만,메르스에 대한 필자의 사견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 병이 아니다’는 것입니다.물론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메르스 때문에 고통을 겪은 분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하는 게 좀 저어하지만,그렇다고 저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메르스에 대한 저의 사견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메르스는 생소한 병명에도 불구하고, 흔한 감기와 견줘 특별히 가공스러운 파괴력을 가진 질병은 아니다.단,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 만성질환자나 노약자,임신부 등이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다.’    물론 견해가 다른 사람도 있겠지만, 엄청난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상당 부분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거나 잘못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 이렇게 판단한 첫째 이유입니다.지금까지 발생한 사망자의 경우 대부분 면역력이 취약한 고령의 기저질환자였으며,따라서 이들에 대한 보도는 ‘메르스에 의한 사망’이라기보다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사망했다’는 식으로 전하는 게 옳습니다. 사인이 메르스인지, 아니면 다른 기저질환인지 가려서 보도하는 것은 질병 보도의 기본입니다.메르스 감염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항상 사인이 ‘메르스’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감기의 사망률을 따지지 않습니다.그것은 감기가 사소해서가 아니라 감기라는 감염질환이 평균적인 수준에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런 감기지만 중증 폐렴 환자가 걸렸다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마치 메르스가 그런 것처럼.    그런데도 메르스 감염이 국내에서 처음 문제가 됐을 때 치사율이 40%라는 엉뚱한 통계가 제시돼 사람들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습니다.만약 치사율 40%인 감염질환이 지금처럼 퍼지고 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겠지요.학교는 물론 극장,시장,경기장은 모두 폐쇄되고,폭동과 약탈에 대비해 전국 곳곳에 군인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펴야 할지도 모릅니다.당연히 대중교통도 멈춰야 하고,동물원의 낙타는 살처분될 겁니다.그 와중에 또 누가 마음 편히 직장에 출근을 하며,또 누가 손님 맞아야 하는 영업을 하겠습니까.    상황이 이런 데도 치사율이 40%라는 이 희대의 ‘구라’에 대한 진위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그 바람에 사람들은 잔뜩 주눅이 들고, 급기야 국내 5대 종합병원 중 한 곳이 사실상 진료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았습니다.    외국의 전문가들이 본 한국의 메르스 사태  그렇다면 시선을 좀 바꿔볼까요.지난 8일부터 6일간 서울 코엑스에서는 메르스 파동 속에서 세계과학기자대회가 열렸습니다.조직위원장을 맡은 필자로서는 걱정이 태산같았지요.‘이걸 계속 강행해야 할까’ ‘그럴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과연 예상처럼 국내외 과학기자들이 찾아올까’ 등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회는 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40여개 국에서 450여명의 해외 과학기자와 과학자들이 서울을 찾았고,국내에서도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 아침부터 등록대에는 장사진을 이뤘습니다.더 놀라운 사실은 야마나까 신야 박사와 팀 헌트경 등 2명의 노벨상 수상자,그리고 데보라 블럼 박사와 덴 페이긴 등 3명의 퓰리처상 수상자 등을 포함해 당초 방한을 약속한 인사들이 예외없이 서울을 찾았다는 점입니다. 메르스 때문에 계획을 바꿔 방한을 취소한 외국인은 5명에 그쳤습니다.내국인은 100명이 넘게 취소했는데도 말이지요.취소자는 모두 중국 쪽 인사들이었는데,이 중 홍콩대 의대 교수는 “메르스가 두려운 게 아니라 병원쪽에서 한국 방문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졌고,이 지침을 어기고 서울에 갈 경우 돌아와 다시 2주간 격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설명을 곁들이기도 하더군요.    메르스 사태를 보는 이들의 시각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부를 소개할까 합니다.저명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의 국제뉴스 편집장인 리처드 스톤은 “메르스를 이겨내려는 한국 측 노력은 이해하지만,통제가 가능한 상황에서 행사를 미루거나 학생들에게 휴교조치를 내린 것은 난센스”라고 하더군요.그는 “일반적으로 메르스는 두려움을 느껴야 할 질병이 아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역시 사이언스지에서 활동하며,이번 대회에서 에볼라 세션을 주도한 마틴 엔서링크 기자는 서울에 오기를 망설였지 않느냐는 물음에 “만약 망설일 정도로 걱정했다면 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겠느냐”면서 “나는 에볼라가 창궐할 때 아프리카 취재 현장에 있었던만큼 이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 지를 충분히 알고 있고,그래서 이번 서울방문을 두고 한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영국 BBC에서 활동하는 런던 시티대 코니 세인트루이스 교수도 “오기 전에 한국의 상황을 알았지만,그것이 나의 방한을 포기할 이유가 될 수 없었다”면서 “WHO에서도 한국의 메르스 사태가 잘 통제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더군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의학 담당 부국장인 론 윈슬로의 지적도 귀담아 들을만 합니다.그는 “한국 보건당국이 메르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밝히고 시민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면서 “보건 당국은 병원내 상황이라고 발표하면서 학교 휴교나,단체 행사를 미루도록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꼬집더군요.“메르스가 그렇게 두렵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감염질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요.    이들 말마따나 일주일간 이어진 행사 기간 중에 기침이나 발열 등 유사 증세로 현장 응급의료단을 찾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이런 메르스 탓에 시민활동이 극도로 위축돼 급기야 내수경기마저 바닥을 치고 있다니,초장에 너무 호들갑을 떨다가 수습도 못하는 상황에 이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물론 적극적,선제적으로 감염 차단에 나선 것까지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심정으로  일부에서는 메르스 공포의 상당 부분이 언론 탓이라고도 말합니다.첫 발병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보도 패턴이 마치 봇물 쏟아지듯 해 시민들의 두려움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부분적으로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더러는 사안에 말초적으로 접근해 본질을 밀쳐두고 지엽적인 문제를 침소봉대하거나,근거없는 보도로 공포감을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는 단순한 양이 아니라 질과 영향력으로 평가하는 게 옳습니다.그런 점에서 언론보도가 있어 대규모 감염질환의 감시체계 부실이나,환자 및 병·의원 허술한 관리시스템과 보건행정의 대책없는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옳겠지요.물론 언론의 지대한 관심이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속성이 이번에도 반복되겠지만,그렇더라도 언론의 역할은 이번에도 중요했습니다.그런 신문이나 방송이 없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요.바로 그 느낌이 언론의 존재 이유일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의 행정은 한 마디로 ‘이게 국민 보건을 책임진 정부 부처가 맞나’ 싶은 수준입니다.‘저 사람들은 국록을 먹으면서, 저 자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했나’하는 게 메르스 사태를 보는 시민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우왕좌왕,갈팡질팡 정신을 못 차려 심지어는 지방자치단체의 힐난까지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됐으니 말입니다.보건 행정을 실질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이런 사태가 반복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그 사람들 행태를 보면,병·의원과 의료인들 윽박지르는 수준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그러니 시민들 사이에서 “브리핑 말고는 잘 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기관”이 되고 만 것이지요.이 사태를 겪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어떻게 혁신의 방향을 잡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시민들의 행태도 변해야 합니다.‘이 나라에 국민은 있어도 시민은 없다’는 자조적인 말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한 지식인의 한탄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도처에 국민정신은 끓어 넘치는데,시민정신은 바닥 수준이라는 뜻이지요.여기에서 국민이니,시민이니를 두고 논쟁할 생각은 없습니다.그러나,감염 의심자가 통제에 반발해 난동을 부리는 무책임하고,이기적인 사회, 대책없이 격리하면서 그 사람의 생계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회라면 누가 시민 자격을 말하며,또 누가 정책에 순응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외국의 사례를 들먹일 것도 없는 일인데,우리나라의 병원에는 무슨 문병객이 그렇게나 많은지 한숨이 나옵니다.‘환자가 하나면 문병객은 열’이라는 병원 관계자들의 말은 애당초 방향을 잘못 잡은 우리나라 문병문화의 한 단면입니다.병원은 환자가 병을 치료하는 곳인데, 환자가 병상에 누워 문병객들을 세고, 어떻게든 환자의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듯 전국에서 몰려와 장사진을 치고 병실의 문을 여는 문화는 반드시 고쳐야 할 병폐이지요.이럴 바에야 차라리 우체국에 값 싼 ‘문병 엽서’ 같은 것 비치해 거기에다 마음을 담아 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병원발 감염이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게 분명합니다.병원의 선물가게가 호황을 누리는 우리의 문병의식에 대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병원과 의료인들도 정신 차려야 합니다.외형에만 집착해 멀쩡한 건물부터 짓고, 곳곳에 광고 도배를 하면서 정작 안을 들여다 보면 감염 관리는 가관입니다.적어도 감염 대책에 관해서라면,어디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왜냐 하면,처음 등록 때부터 병실,수술방,회복실까지 모두가 엉성하고,허술하기 때문입니다.이번 메르스 감염사태가 ‘병원 내 상황’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병원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팩트인데,상황이 이렇다면 병원 폐쇄 등의 조치와는 다른 축에서 정부 차원의 감염관리 대책이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이런 일에는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이제는 ‘병원들의 어려움을 고려해서’ 등등의 기만적인 언사를 제발 거둬들이기 바랍니다.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jeshim@seoul.co.kr
  • 국내 의학자, 혈액형 변환 기술 세계 첫 개발

     국내 연구팀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Rh D+’ 혈액형을 ‘Rh D-’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 원천기술이 안정적으로 활용되면 희귀혈액형 보유자에게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이후 ‘만능 혈액’ 개발 가능성도 크다는 전망이다.  연세대 의대 약리학교실 김형범 교수와 김영훈 연구원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Rh D+ 혈액형을 Rh D- 형으로 전환시키는데 세계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유전학 분야 전문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실렸다.  연구팀은 Rh D+ 형의 적혈구 전구세포에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Rh D 유전자를 제거하여 Rh D-형으로 전환시켰다. 이어 Rh D 유전자가 제거된 적혈구 전구세포를 적혈구로 분화시켜 Rh D- 혈액형으로 변환된 것을 확인했다. 유전자 가위란 동식물의 유전자와 결합하여 특정 DNA 부위를 자르는 ‘유전자에디팅(Genome Editing)’ 기술로 인공효소가 가위 역할을 한다.  연구를 주도한 김형범 교수는 “과거에도 효소를 이용해 A형과 B형 적혈구 표면에 나타나는 혈액형 항원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O형의 혈액형 전환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그 때마다 적혈구가 깨지면서 헤모글로빈이 유출되는 ‘용혈현상’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면서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적혈구 전구세포 단계에서 유전자 교정을 시도해 성공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김형범 교수는 이어 “적혈구는 우리 체내에서 유일하게 핵이 없는 세포로, 핵이 존재하는 상태인 적혈구 전구세포 단계에서 유전자 조작을 하더라도 최종 산물인 적혈구에서는 탈핵이 되어 핵이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유전자 변이의 부작용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Rh D+ A형 적혈구 전구세포를 대상으로 성공했지만, 모든 Rh D+ 혈액형에 대한 Rh D- 변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힌 연구팀은 관련 유전자 기술을 국내 특허 출원 중이라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세브란스병원 혈액원장 김현옥(진단검사의학) 교수는 Rh D- O형 혈액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Rh D+ O형은 물론 Rh D+와 Rh D-의 A형, B형, AB형 등 모든 사람에게 수혈이 가능한 만능 혈액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이 활용 단계에 이를 경우 인공혈액 대량생산으로 이어져 수혈의학에 큰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인에서 빈도가 0.15%인 희귀혈액형 Rh D-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이 응급으로 수혈이 필요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니 해설  -국내 혈액형 분포: 우리나라 전체의 혈액분포는 Rh D+의 A형 34.2%, O형 27.1%, B형 26.9%, AB형은 11.5% 이며, Rh D-의 A형, O형, B형, AB 형은 각각 0.1% 이하로 보고되고 있다.  -수혈 관계: 지금까지 알려진 적혈구의 혈액형 항원은 285종이나 되지만 수혈을 할 때에는 면역성이 가장 높은 ABO 혈액형 및 RhD 혈액형 검사만을 시행하여 혈액형을 맞추어 준다.  만약 ABO 혈액형이 맞지 않게 수혈되면 용혈성 수혈부작용으로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으며, O형 혈액은 모든 혈액형의 사람에게 수혈할 수 있다. Rh D 혈액형은 Rh D+인 경우에는 동형의 Rh D+와 Rh D- 혈액을 양쪽 모두 수혈 받을 수 있지만, Rh D-인 사람은 반드시 ABO 동형의 Rh D- 혈액을 수혈받아야 한다. 따라서 Rh D- O형 혈액은 누구에게나 수혈 가능한 만능 혈액이 될 수 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발암 가능성 줄인 유도만능 줄기세포 만들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의 임상 적용 가능성을 한층 높이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국내 연구팀에 의해 발표됐다.  2012년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박사가 만들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유도만능줄기세포 방식과 비교해 암 유발 가능성을 크게 줄였을 뿐 아니라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서울대병원 내과 김효수 교수와 의생명연구원 권유욱 교수팀은 이같은 연구 결과가 생물 재료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Biomaterials) 5월호에 게재됐다고 17일 밝혔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은 2006년 환자로부터 채취한 체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하여 인체의 모든 장기로 분화가 가능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신야 교수는 이를 ‘유도만능줄기세포(역분화줄기세포)’라고 명명했다.  문제는 체세포에 주입하는 특정 유전자 중에는 ‘c-Myc’라는 발암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어 암 유발 및 세포 기능 변화의 위험성 때문에 임상 적용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10년 배아줄기세포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체세포에 주입하여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방법은 발암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기 때문에 암 유발 및 세포 기능 변화의 위험성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 핵심”이라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배아줄기세포 대신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체세포에 주입하면 역분화 과정의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 단백질에 포함된 ‘Zscan4’라는 물질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도 새롭게 규명했다.  실제로 체세포에 Zscan4를 주입한 결과, 배아줄기세포의 단백질을 주입한 그룹에 비해 유도만능 줄기세포로 역분화하는 속도가 10배 이상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김효수 교수는 “이 연구 결과는 유도만능 줄기세포의 임상 적용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였던 암 유발과 낮은 제작 효율을 한꺼번에 해결함으로써 유도만능 줄기세포의 상용화 및 임상 적용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국내 의학자, 아토피 피부염 치료 가능성 제시

     국내 연구진이 유전자 제어를 통한 피부 면역반응 조절 가능성을 확인했다. 아토피피부염 등 알레르기 피부염 치료제 개발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세대 의대 환경의생물학교실 김형표 교수와 김태균 연구원팀은 피부 면역세포에 있는 ‘CTCF’ 유전자가 세포의 항상성(Homeostasis) 및 면역기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고 15일 밝혔다. 이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면역학 분야 학술지인 ‘미국알레르기천식면역학회지 최근호에 게재됐다.  피부는 우리 몸의 가장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으며, 지속적이고 다양한 외부 자극에 맞서 정교한 면역 방어체계를 가동해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피부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외부 자극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토피 질환이나 알레르기 피부염 등 염증성 피부 면역질환을 일으키게 된다. 면역질환인 만큼 원인치료가 어려워 지금까지 많은 질환자들이 지속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의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합병증은 물론 삶의 질에도 심각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부 상피에 존재하며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다양한 세포 중 수지상세포인 ‘랑게르한스(Langerhans) 세포’에 주목했다. 랑게르한스 세포는 피부에 침입하는 다양한 외부자극(항원)을 인지하고, 면역세포에게 공격을 지시하는 세포다. 수지상세포는 인체에 감염 또는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기거나 침입했을 경우 면역세포인 T-세포에 공격을 요청하는 세포로, 현미경으로 보면 마치 나뭇가지처럼 보여 수지상세포라 불린다. 외부의 환경과 접하는 신체 조직인 피부와 코, 폐, 위장관 등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연구팀은 랑게르한스 세포 기능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이 세포 내에서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CTCF’라는 유전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로, 연구팀이 CTCF 유전자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실험용 쥐의 피부상피에 있는 랑게르한스 세포에서 CTCF 유전자를 제거한 뒤 일반 쥐와 함께 두고 다양한 피부자극을 가했다.  귀에 자극을 주어 접촉성 피부염증을 유발시킨 실험에서 일반 쥐는 5일째 대부분의 염증이 사라지고 피부 두께도 정상치를 회복했으나, CTCF 유전자가 제거된 실험용 쥐는 염증이 계속 악화되고, 피부도 갈수록 두꺼워졌다. 또 알레르기 반응에서도 CTCF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용 쥐가 일반 쥐에 비해 염증 반응도와 회복에 있어 큰 차이를 보였다.  김형표 교수는 “만약 랑게르한스 세포 내의 CTCF 유전자 활성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알레르기 및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어 관련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면서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CTCF 유전자의 용도에 대해 국내 특허를 출원 중”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이민걸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도 “건선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의 피부 수지상세포가 분비하는 염증성 물질을 억제하는 표적치료제가 이미 나와 있다”며 “이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 아토피와 알레르기질환자에 대한 표적치료제 개발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과학의 지평을 넓혀라”… 과학자·언론인 지식 한마당

    “과학의 지평을 넓혀라”… 과학자·언론인 지식 한마당

    전 세계 과학·의학 언론인과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가 9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나흘간의 일정으로 열린다. 세계과학기자연맹이 2년마다 개최하는 이 행사는 언론계 국제행사로는 최대 규모로, 1992년 일본 도쿄 대회 이후 23년 만에 아시아에서 열린다. ‘우리의 지평을 넓히자’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이머징 아시아: 가능성과 갈등 ▲기술, 사회 그리고 언론 ▲과학언론의 다양성 ▲과학·과학언론의 윤리와 진실성 등 다양한 세션이 마련됐다. 대회 조직위원장인 심재억(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내 과학언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국내 과학기술을 외국에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막식에서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이 디지털 시대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에 대해 기조연설을 한다. 이어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는 ‘유도줄기세포(iPS)를 활용한 의학의 새 시대’라는 주제로 일본의 iPS 활용기술 개발 현황에 대해 강연한다. 특히 신야 교수는 이번 대회를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대회 조직위는 개막식에 앞서 국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메르스를 주제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 제주대 의대 이근화 교수, 서울아산병원 김성한 교수, 한국파스퇴르연구소 홍기종 박사 등이 참여한다. 이어 10일 열리는 ‘에볼라 보도의 교훈’이란 세션에서는 서아프리카 에볼라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과 ‘국경 없는 의사회’ 윤주웅 홍보이사가 위기 발생 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건강한 노후에 대하여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일년감 할매’의 주름이 깊어 쪼그라든 얼굴이 떠오르거나, 문득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일년감 할매가 돌아가신 게 30년도 전이니, 지금쯤 하늘 어디에선가 어설픈 작대기 하나로 굽은 등 버티며 바지런히 일년감 밭을 일구고 계시겠지요. 요새 흔한 토마토를 예전에는 흔히 일년감이라고들 불렀습니다.  나이가 들어 ‘노친네’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어른’ 노릇 대신 한사코 세상에 대거리를 하려고 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그 할매 얼굴이 떠오릅니다. 너무 바싹 말라붙어 불씨라도 얹히면 금새 활활 타오를 듯 살벌하고 강퍅한 세상이어서 나이 잘 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가 봅니다. 나이 든다는 건 건강 상태가 점차 취약해진다는 뜻이니, 누구라도 건강한 노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얘기이지요. 그런데, ‘건강한 노후’라고 하니 자꾸 신체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예전의 체육정책의 슬로건이 틀린 건 아니지만, 뒤집어서 정신이 건강하면 몸의 건강이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 다 생각 나름인 것 같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양보와 배려를 안다는 것  나이 드신 분들은 체력은 물론 면역력이나 섭생 등 건강의 기초가 취약한 데다 자칫 세상의 일에서 배제되고 소외됐다고 여기기 쉬워 잘 살펴야 하는데, 요즘의 세상을 보면 뭐가 그리도 바쁜지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따로 돌아보는 일도 없어 뵈고,그래선지 더러는 한사코 엇나가 세상일에 버럭질이나 하려고 드는 노인들이 더 많아지는 듯도 합니다.  ‘경로(敬老)’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이 들어 근력이 약해진 고령의 노인들을 고된 일터에서 물러서게 해 노후를 편하게 맞으라는 기성세대의 배려이기도 하고,이제는 몸을 내세워 일하기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삶의 경륜을 잇게 하는 소위 ‘어른 노릇’을 하시라는 주문일텐데, 어른 노릇을 하려는 쪽이나 가르침을 받으려는 쪽이나 다 그런 염의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온몸으로 아이들 지키려다가 그만 실신해 자빠진 옛날의 그 일년감 할매가 두고 두고 그리울 밖에요.  이웃에 사셨던 그 할매는 노인 반열에 들어서도 여전히 숫기가 없어 말도 가려서 하셨고, 오지랖 넓게 이 일, 저 일 설치지도 않는 그냥 찬찬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세가 풍족해 몸을 놀리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이 어렵지 않은 살림이 못 됐던 탓에 종일 들에 나가 하다 못해 밭두렁에서 쇠비름이라도 뜯어야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간다는 타고난 농투산이 일꾼이기도 했지요. 워낙 말수가 없어 하루 종일 들일을 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는데, 젊은 아낙들이 “아니, 고되실텐데 죙일 입 막고 무슨 일만 그렇게 하시느냐”고 농이라고 건넬라치면 그제서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며 “쉰소리 해봐야 배나 꺼지지”라고 내뱉듯 대꾸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잘 가꿔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  아마 제가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 할매가 한 해는 마을 초입의 텃밭 귀퉁이에 토마토를 심었는데, 조석으로 돌보고 갈무리한 덕분에 어떤 놈은 어른 주먹을 둘쯤 보태놓은 것처럼 크고 실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오가면서 발그레 맛이 들어가는 토마토를 볼 때마다 한 입 베어물고 싶은 생각에 한참씩 그걸 바라보곤 했는데, 코흘리개가 입맛을 다시며 토마토를 쳐다보는 모양이 그랬던지 그 할매는 “다 익으면 너도 한 개 줄테니 좀만 기다려라”시며 오져 하곤 했지요. 그 뒤로 학교가 끝나면 굴렁쇠를 굴리며 부리나케 집으로 향해 그 집 텃밭에서 익어가는 토마토를 곁눈질하며 지나치곤 했는데, 하루는 어린 나이에 그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나서 또래 동무와 둘이 슬그머니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일부러 마을을 멀리 돌아 나간 뒤 다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잡아 들어오면 그 텃밭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라도 상당한 지능범 수준이어서 요즘 신문, 방송에서 뉴스 보도하는 식으로 말하면 ‘계획 범행’임에 틀림없습니다. 벌써 어두워졌지만 어둠이 눈에 익어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가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주변을 쓱, 살핀 뒤 날다람쥐처럼 생울을 비집고 텃밭으로 들어가 손에 잡히는대로 토마토를 서너개 따 들었는데, 아뿔싸, 마을쪽 텃밭 어귀에서 할머니의 쇠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눔들, 가만 있거라. 그거 먹으면 안 된다”며 토마토밭 고랑을 타고 후적후적 달려오는 소리에 그만 오금이 얼어붙었습니다.  어느새 이마에는 찐득하게 진땀이 배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는데, 그 때 밭고랑에 바싹 엎드려 있던 동무가 다급하게 나를 잡아끌고는 냅다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 와중에 간이 쪼그라들어 토마토는 어디다 내던졌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어둑한 밭두렁을 타고 걸음아 날 살려라 내달리는데, 참 일이 난감하게 됐습니다. 그 할매가 한사코 뒤쫓아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들 다람쥐같이 뛰는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참을 뛰다가 돌아보니 멀리 신작로 어귀에서 그 할매가 가쁜 숨을 내쉬며 여전히 고함을 질러대고 계셨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그거 먹지 말고 이리 가져와라. 내가 사탕 주마”라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할매는 숨길이 가빠 몇 걸음 떼다가 이내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 때까지도 숨을 헐떡거리며 “그거 갖고 이리 와라”고 쇠된 소리로 외치고 계셨습니다. 부리나케 뛴 덕분에 잡힐 걱정은 없었습니다. 사방이 어두워 우리가 누군지 알 턱도 없고, 이 길로 뽕밭은 가로 질러 마을 뒷편으로 돌아 집으로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를 일이었지요.  막 따 쥔 토마토를 내버리고 튀는 동무도 마찬가지여서 둘 다 헛웃음만 내뱉으며 몰래 마을 뒤 고샅길로 들어섰는데, 마을 어귀에서는 그 할매의 고함소리에 놀란 아낙들이 두런거리며 눈을 꿈벅이고 있었습니다. 텃밭이 마을 입구여서 요요한 저녁에 할매가 내지른 고함소리가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갔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집으로 들어왔는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머니가 닥달을 하십니다.  “이눔아, 토마토 어쨌어. 당장 내놔” 불문곡직 불호령부터 쏟아내는 어머니에게는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웅얼대다가 마침내 전말을 죄다 토설해야 했는데, 그 때 골목 어귀에 나와 있던 아낙들이 두런대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박혔습니다. “찬호 할매가 실신해 신작로에 나자빠진 걸 찬호 아부지가 업어왔대. 이게 무슨 일이래” 뜻밖에 사단이 지경이 되고 보니 당장 제 멱살을 거머쥐고 찬호 할매한테 달려가 이실직고라도 할 태세이던 어머니도 목소리를 낮추고 가만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어쩔래”라며 연방 머리통을 쥐어박았는데, 저는 낯이 뜨겁고 가슴이 울렁거려 숨도 크게 쉴 수 없었습니다.  웅숭 깊었던 그 할매의 배려  그 밤, 찬호 할매가 기를 쓰고 우리를 뒤쫓았던 사연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날 해질녘, 찬호 할매가 토마토밭에 농약을 쳤는데, 요즘처럼 기능성이 강화된 농약이 없던 시절이어서 무식하게 독성만 센 DDT를 뿌렸다는 겁니다. 그 시절에야 분무기도 없어 그냥 하얀 DDT를 삼베주머니에 넣은 뒤 밭고랑을 따라가며 막대기로 툭툭, 쳐서 뿌리곤 했는데, 낮이라면 허연 DDT 가루가 금방 눈에 띄어 따먹을 엄두도 못 냈겠지만 밤에 일을 벌였으니 그게 눈에 보일 리도 없고, 그래서 철부지들이 주린 배에 그걸 맛있다고 따먹었더라면 아마 개거품 물고 나자빠졌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서 힘이 빠지며 왈칵,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세견머리’에 토마토가 아까워 그렇게 악다구니를 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혹시라도 토마토를 먹고 어찌 될까봐 당신은 실신하도록 우리 뒤를 쫓으며 “그거 먹지 말고 가져와라. ‘아메다마’(사탕) 줄테니 이리 와라”시며 한사코 우리 뒤를 쫓으신 거지요. 찬호 할매가 절규처럼 토해낸 외침이 밤새 귀 속에서 징징 울렸습니다.  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다시, 그 날을 생각합니다. 다들 잠자리에 드는 저녁까지 혹시 농약 사단이라도 날까봐 텃밭을 떠나지 못한 그 할매의 심지 깊은 사려가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 곳에 있지도 못했겠지요. 그 어른스러운 마음씀이 자꾸 지금의 노인들과 겹쳐 새삼 가슴이 아려옵니다. 막말로, 누군가 야밤에 토마토를 서리해 먹고 죽어나가도 요즘 정서로 말하자면 그 할매는 책임질 일이 없는 일이지요. 그 시절에야 그냥 서리였지만 요즘으로 치면 절도니까요.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 그 수준을 넘어 아름답게 늙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노탐의 무게에 짓눌려 아귀처럼 남의 것 뺏으려고만 들거나,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젊은 사람을 마치 변종 바이러스처럼 여기는 건 천박하고 강퍅해 보여 싫습니다.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았길래 나이 들어서도 젊은 사람에게 충고는 언감생심 권고 한 마디 건넬 요량을 못 갖췄으며, 이념에 대한 생각은 또 왜 그렇게 꽉 막혀 있는지 한심합니다. 나이 들어 수수함의 격을 잊고 비싼 옷, 값진 장신구로 겉치장만 해대 돈자랑 하려고 드는 것도 저급하고, 뭘 그리 세상을 올곧고 바르게만 살았는지 허구헌날 목에 핏대만 세우려 드는 관용을 모르는 노후도 안타깝습니다.  찬호 할매야 초등학교도 못 나왔으니 당연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고, 평생을 빈천하게 살았으니 노탐이라야 이밥에 쇠고깃국 한번 원없이 먹어보거나,안 아프고 편하게 죽는 것이었을테고, 주제를 아는 탓에 그 나이토록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가르치려는 생각도 꿈에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살면서 무시로 그 할매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런 추억이 몰래 토마토 하나 따먹으려다 들통 나 뽕밭 어름에 납작 엎드려서 들었던 개구리 울음이 그리워서라기엔 그 분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곱습니다. 저의 철 없는 서리 행각이 부끄럽다고만 여기기에는 그 분의 정이 너무 이타적입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는 당연히 몸의 건강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좋은 것 찾아 먹고, 운동도 열심이지요. 그런 노후가 보기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나이 들면서 마음 건강을 도모하는 지혜도 몸 건강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아서 제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면 이기심, 노탐, 벽창호 같은 옹고집을 좀 덜어내고, 그 자리에 배려와 양보, 넉넉한 포용과 비움의 미덕 같은 걸 채워넣고 싶습니다. 정신 건강에는 그런 것들이 약이니까요.  아마도 찬호 할매는 하늘에서도 자그마한 땅에 일년감을 키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이 지상에서든, 천국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노후를 고민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피할 수 없는 게 많고, 한사코 운명을 회피하려다 추해질 수도 있을 터이니 너무 애 닳아 하지 말고, 찬호 할매가 그랬듯 주변도 돌아보면서 사는 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선택 아닐까요. 내려 놓을 것 조금씩 내려 놓으면서….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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