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 얕보면 ‘큰코’
봄이 되면서 빈혈이 고개를 든다.겨우내 움츠렸던 혈관이 확장되면서 덩달아 빈혈 증상도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누구나 건강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우리와 가까운 빈혈이지만 의학적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대부분 “빈혈쯤이야…” 하고 생각한다.그러나 빈혈로 나타나는 숨겨진 질환은 결코 가볍지 않다.흔히 ‘현기증’과 혼동하는 빈혈의 원인과 증상,치료법 등을 살펴본다.
●빈혈
사람의 핏속 적혈구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이 있어 체내 조직에 산소를 공급한다.빈혈은 산소를 공급하는 헤모글로빈이 부족해 인체의 산소 요구량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세계건강기구의 기준에 따르면 성인 남자의 경우 헤모글로빈 수치가 13g/㎗(정상 13∼18g/㎗),여자는 12g/㎗(정상 12∼16g/㎗) 이하를 빈혈로 규정하고 있다.
빈혈은 어지러운 증상을 이르는 현기증과는 구별해야 한다.빈혈이 있으면 현기증이 흔히 나타나지만,현기증이 있다고 모두 빈혈은 아니다.
●원인 및 종류
주로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적혈구는120일 정도 활동한 뒤 비장에서 파괴된다.그러나 피가 몸밖으로 빠져나가거나,골수에서 적혈구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그리고 적혈구가 혈관이나 비장에서 수명보다 일찍 깨어지면 빈혈이 발생한다.
이 가운데 인체에 철분이 모자라 골수에서 정상적으로 적혈구를 생산하지 못해 생기는 빈혈을 ‘철분결핍성 빈혈’이라고 한다.대부분의 빈혈이 여기에 속한다.철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거나 위장관에서 철분을 잘 흡수하지 못한 경우,또 흡수된 철분이 적절히 이용돼야 할 대사과정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원인이 된다.신체 이상으로 철분 필요량이 갑자기 증가하거나 철분이 체외로 빠져 나가는 경우도 빈혈을 일으킨다.
이밖에도 엽산결핍성 빈혈,재생불량성 빈혈,급성 출혈성 빈혈,용혈성 빈혈,만성질환(만성 간염,신부전증,종양,내분비질환 등)에 의한 빈혈 등이 있다.
질환별로는 가임기 여성의 경우 월경으로 인한 철분 손실로 빈혈이 발생할 수 있으며,치질·위장관 종양·위궤양 등의 질환이 있는 사람은 만성적인 위장관 출혈로 철분 결핍이올 수 있다.특히,철분 결핍성 빈혈은 위암과 대장암의 징후일 수 있으므로 중년 이후 빈혈 증상이 나타나면 위장관의 악성종양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진단과 치료
보통은 혈액검사로 간단하게 판명되며,단순 빈혈일 경우 먹는 철분제재로 치료한다.철분제제를 복용할 때는 철분 함유량이 충분한 제제를 골라 사용하되 체내의 부족한 저장철을 회복하기 위해 빈혈 증상이 호전된 후에도 6개월 정도 계속해 철분 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철분 결핍성 빈혈 이외에는 철분 제제를 복용해도 치료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원인에 따른 치료를 받아야 한다.자가진단이나 원인도 모른 채 소위 종합치료제 따위의 약을 함부로 복용해서는 안된다.
특히 여성은 월경과 임신,출산 등으로 남성보다 50% 이상 많은 철분을 소모하며 다이어트로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기 쉬워 철분제를 적절히 복용하면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철분 결핍성 빈혈 외에 다른 질환으로 생긴 빈혈은 상대적으로 빈도가 적으나,발생하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원인을 밝히는 것이중요하다.
●한방에서의 빈혈
한방에서는 빈혈을 혈허(血虛),위황(萎黃),허손(虛損)의 범주에서 다룬다.
혈허는 쉽게 말해 피가 부족한 상태로 피로,무력감,어지러움,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림,식은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안색이 창백하고,손톱의 색깔이 옅고,잠을 잘 못이루거나,건망증 등의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허증(虛症)에 속하는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 보법(補法)을 적용하는데,기가 부족한 병증에는 보기(補氣)처방을 사용한다.인삼,백출,백복령,감초로 만든 사군자탕(四君子湯)이 대표적인 약이다.
또 피가 부족한 빈혈에는 숙지황,당귀,천궁,백작약을 넣은 사물탕(四物湯) 등으로 보혈(補血)처방을 한다.
체질적으로는 소음인에게 빈혈이 생기기 쉽다.비위 계통이 약해 소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소음인 빈혈에는 달걀 노른자로 낸 기름을 섭취하거나,닭고기,시금치,미역,비타민C,칠성장어 등이 좋다.한약재로는 당귀,천궁,하수오,작약,단삼 등이 혈을 보하는 작용을 한다.인삼이나 대추,꿀을 섭취하고 배꼽 및 관원혈에 뜸을 떠주는 것도 좋다.태음인과 소양인은 소화기능이 좋은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빈혈이 적다.그러나 커피,홍차,감 등 철분 흡수를 방해하는 타닌성분의 식품이나 위장관 출혈 증상으로 빈혈이 생길 수 있다.태음인은 소 간,사슴 피,무말랭이,콩,우유,다시마 등이 좋으며 한약재로는 용안육,녹용,삼지구엽초 등이 효과가 있다.소양인은 돼지 간,홍당무,딸기,토마토 등이 도움이 되며,한약재로는 숙지황,구기자,산수유 등이 좋다.
심재억기자 jeshim@
■ 도움말 서울아산병원 종양혈액내과 서철원 교수,주영한의원 김성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