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2) 파킨슨병
의사들은 파킨슨병을 일러 ‘오로지 악화만 있을 뿐 호전은 없는 병’이라고 말한다. 이런 파킨슨병은 희귀난치병이지만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나 영화배우 마이클 제이 폭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모두 이 병을 앓았던 병력을 가졌던 까닭이다.
파킨슨병은 영국 의사 ‘제임스 파킨슨’이 1817년에 처음 발견해 붙은 이름이다. 그는 ‘손발이 계속해서 떨리고, 몸이 굳어 가면서 움직임이 느려지는 새로운 임상 증상’을 처음 학계에 보고했다.
흔히 파킨슨병을 치매의 이종(異種)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치매를 동반해 그렇게 오해하는 것뿐이다. 이 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사멸하면서 주로 운동능력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줄어서 생긴다. 알츠하이머와 함께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정선주 교수는 “많은 파킨슨병 환자에게서 치매를 비롯해 우울과 불안, 불면증과 여타 정신병적 증상들이 함께 나타나는데 이는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도파민성 신경세포가 감정, 수면, 기억 등을 통제하는 다른 신경세포들과 함께 소멸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병률은 높지 않으나 일단 병증이 드러나면 치료를 통한 통제가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는 65세 이상 노년층에서 1% 이상,85세 이상의 연령대에서 3% 정도의 유병률을 보인다. 국내의 경우 고령화로 유병률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 교수는 “벌써 이 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10년 전의 3배에 이른다. 노인층의 증가로 65세 이상 노인이 430만명에 이르는 2020년에는 이 가운데 16만명,1100만명에 이를 2030년에는 25만명의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질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보다 크다. 환자는 인지능력이 정상인 까닭에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자신을 보면서 심신이 황폐화해 간다. 파킨슨병 환자가 겪는 고통이 치매보다 크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파킨슨병 환자인 김영현(69)씨는 현실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보다 죽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괴롭히는 일이 더 괴롭다고 털어놓았다.“발병 2년후부터 ‘오프 현상(전기의 스위치가 꺼지듯 몸의 운동기능에 장애가 시작되는 현상)이 시작되면서 장기(臟器)가 굳어 걸핏하면 체하고, 변의도 느끼지 못하게 됐고, 불면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면서 “이런 자신을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셔댔다. 술은 증상의 악화를 불러왔고 이런 악순환 속에서 나는 안타까워 하는 가족의 시선과 자존감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반적인 증상은 진전(떨림)과 서동(느린 행동), 경직으로 나타난다. 진전증은 주로 손발에 나타나며 환자의 75%가 경험한다. 특히 환자가 안정을 취할 때 나타나며, 서있거나 앉아 있으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 초기에 사지의 한쪽에만 나타나다가 점차 반대편으로 확산된다. 서동은 단추를 끼우거나 글씨를 쓰는 등의 미세한 움직임들이 점점 둔해져 눈의 깜박임, 얼굴 표정, 음식을 삼키는 일과 걸을 때의 팔 동작 등으로 이어지다가 아예 동작을 취하지 못하는 무동증으로 발전한다. 경직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근육 등의 조직이 굳어지는 현상이다. 허리 통증, 두통, 팔다리저림, 소화불량 등 다양한 양태의 중상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울증과 언어장애,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불안정, 수면장애는 물론 파킨슨병 환자의 40% 정도가 겪는 치매도 문제의 증상으로 꼽힌다. 특히 우울증은 환자의 50%가 겪을 만큼 흔하다.
정 교수는 이 병의 경과를 1∼5단계로 설명한다.“1단계는 무표정한 얼굴,2단계는 느리고 보폭이 준 총총걸음,3단계는 자주 넘어지는 보행장애와 자세 불안정,4단계는 부축이 필요한 행동장애,5단계는 부축해도 서거나 걷지 못하는 상태를 이른다.”면서 “유전적 소인이 확실한 5∼10% 이외에는 음용수, 살충제 같은 유해 환경물질에의 노출도 중요한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파킨슨병은 다른 질환에 의한 운동장애와 유형이 흡사해 운동행태를 통한 진단은 쉽지 않으며, 아직은 이 병을 확진할 수 있는 다른 검사법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환자의 병력 분석과 비전형적 파킨슨 증후군을 감별하기 위한 신경학적 검사와 진단기준의 적용, 도파민성 약제에 대한 반응 등을 통해 진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뇌의 퇴행에 따른 질환인 만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약물치료가 일반적이다. 정 교수는 약물치료의 일반적 원칙으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독립적,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고,▲최대한 활동적인 생활을 유도하며,▲환자에 따라 개별화된 치료를 시도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특히 그는 “환자가 젊을수록 초기 치료 때 장기적인 고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파킨슨병의 1차적인 치료는 도파민 물질을 보충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약제가 레보도파 계열의 ‘마도파’와 ‘시네메트’,‘미라펙스’ 등이다. 레보도파는 환자의 뇌에 부족한 도파민을 직접 보충해 주는 약물로, 모든 파킨슨병 환자에게 적용되는 주된 치료약이나 5년 이상 장기 투여할 경우 이상운동증, 운동동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므로 젊은 환자의 경우 투여에는 신중해야 한다. 미라펙스는 지난 97년 미 FDA에서 가장 먼저 승인한 도파민 효능제로, 초기 환자에는 단독요법, 레보도파와 병용해서 진행성 환자의 병용요법으로 사용하며, 파킨슨병 환자의 우울증 치료와 신경보호 효과도 검증됐다.
정 교수는 “파킨슨병은 서서히 진행하므로 치료시 약물의 조절이 필수적”이라면서 “증상 개선만을 겨냥해 처음부터 많은 약물을 투여하면 부작용도 빨리 나타날 수 있어 환자의 병증과 직업, 연령 등을 고려해 최적의 치료 방침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