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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엔지니어링 ‘현대 테라타워’ 비주거 상품 통합 브랜드로 확장

    현대엔지니어링 ‘현대 테라타워’ 비주거 상품 통합 브랜드로 확장

    현대엔지니어링은 자사의 지식산업센터 브랜드 ‘현대 테라타워’(로고)를 비주거 상품 통합 브랜드로 확장한다고 3일 밝혔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지식산업센터에 ‘테라타워’ 브랜드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새로운 가치와 열린 플랫폼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복합문화공간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브랜드 비전에 따라 현대 테라타워를 기존 지식산업센터 브랜드에서 비주거 복합시설과 오피스 빌딩 등 비주거 상품 통합 프리미엄 브랜드로 확장한다”고 소개했다.
  • 명품은 미디어가 빚어낸 정치적 단어… 현실을 직시하라

    명품은 미디어가 빚어낸 정치적 단어… 현실을 직시하라

    한정판 골프화를 사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백화점 고객들의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오픈런(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기 위해 뛰어가는 일), 노숙런(백화점 앞에서 밤새 기다리는 일) 등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한정판, 즉 희소성 있는 제품을 사기 위해, 그걸 산 가격보다 비싸게 되팔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되팔 마음이 있다면 진짜 명품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샤넬이 가격을 꾸준히 올리는 이유는 희소성을 더욱 강화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진짜 명품, 명품 위의 명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 판타지’는 명품이 일상을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명품의 의미부터 짚는다. 1990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럭셔리’라는 말은, ‘사치품’이라는 본래 뜻과는 달리, 명품과 동의어로 쓰였다. 그것을 파는 사람들이 ‘사치스럽다’는 뉘앙스를 빼고 명품이라는 말을 유행시켰기 때문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인데, “패션 브랜드와 연결된 미디어”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나의 영리한 작전”은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럭셔리가 명품으로 대체되면서 최고 기술의, 심지어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산다는 기쁨은 배가됐다. 명품이라는 말과 낭비, 파산 같은 말은 함께 설 수 없다. 명품이라는 말은 정치적인 단어라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럭셔리, 즉 명품에 돈을 쓴다. 그중 명품 패션은 입고 다니고 들고 다니면서 자신을 과시하기에 딱 좋다. 역사 이래 옷이 신분과 계층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현대의 명품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른바 명품 브랜드들이 한정 생산하는 이유는 비싼 값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고,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가격이 높아야 더 갖고 싶어 하기 때문에 더 비싼 값을 고수할 수 있다. 비싼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괜찮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은 비싼 가격에도 명품 구매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도 중산층인데 그까짓 것 하나 못 사겠냐는 의식에 더해, 그 유행을 따라가야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품을 구매하는 일은, 결국 명품 산업과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구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여 저자들은 보통 사람의 현실, 즉 은행 잔고라는 현실을 인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패배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과 미디어에 포위된 현실을 뛰어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할 명품이라는 것이다. 더더욱 명품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사치품이라는 뜻을 품은 럭셔리를 다시 사용함으로써 주위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런저런 사정을 몰라서 명품에 달려드는 것은 아닐 터. 우리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하는 임인년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 [만평] 조기영의 세상터치 2022년 2월 4일
  • 李·尹 ‘대장동’ 격돌…李 “특검 아닌 대통령 뽑아야”vs尹 “설계자 맞나”(종합)

    李·尹 ‘대장동’ 격돌…李 “특검 아닌 대통령 뽑아야”vs尹 “설계자 맞나”(종합)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3일 지상파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부동산·외교안보·일자리·일자리 및 성장 문제 등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4명의 후보가 한자리에 모여 TV토론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토론회는 오후 8시부터 KBS·MBC·SBS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부동산 해법…李‧安 “공급확대” 尹 “임대차 3법 개정” 沈 “서민들 우선” ‘가장 먼저 손 볼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 후보와 윤 후보, 안 후보와 정 후보는 ‘4인 4색’의 답변을 내놨다. 이 후보는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작동하는 시장에 의해 주택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공급을 억제하는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이 후보는 “대대적 공급확대를 위한 정책이 (집권시) 제1순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먼저 대출규제를 완화해서 집을 사는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7월이 되면 임대기한이 만료돼 전세가격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임대차 3법 개정을 먼저 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지금 현재 자가보유율이 61%인데 저는 임기 말까지 80%까지 올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어 심 후보는 “무엇보다 땅과 집으로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내겠다는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며 “공급정책은 무엇보다도 44%의 집 없는 서민들을 우선적으로 정책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尹 “대장동 설계 했나”VS 李 “이익 본건 尹” 이날 윤 후보는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을 고리로 이 후보를 압박했고, 이 후보는 윤 후보의 정책공약을 파고들었다. 윤 후보는 ‘부동산 주제토론’에서 이 후보를 겨냥해 “대장동 도시 개발로 김만배 등이 3억5000만원을 투자해 배당금 6400억원을 챙겼다”라며 “이 후보는 (당시)성남시장으로서 대장동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수익을 정확하게 가늠하고 설계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이 비록 방해·저지했지만 100% 공공개발하지 못해 국민에게 다시 사과드린다”면서도 “제가 일부러 국감을 자청해 이틀간 탈탈 털다시피 검증한 것이 사실이고 최근에 언론도 다 검증한 것이다. 이런 얘기를 다시 하며 시간 낭비하기보다 가능하면 국민 민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어떠냐”고 받아쳤다. 윤 후보는 “법정에서 김만배씨가 (대장동 개발 사업) 설계는 시장의 지시·방침에 따른 거라고 했다”라며 “개발사업에서 어떤 특정인이나 몇 사람에게 배당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캡을 안 씌우고 설계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부정부패는 그 업자 중심으로 이익을 준 사람이다. 윤 후보 이익을 주지 않았냐. 저는 이익을 빼앗았다. 공공환수 5800억원”이라며 “업자들은 ‘이재명 12년 찔러도 씨알도 안먹힌다’고 했다. 그분들이 윤 후보 보고는 ‘내가 한 마디 하면 윤 후보는 죽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는 “저는 이익 본 일이 없다. 윤 후보는 부친 집을 (대장동) 관련자가 사줬다. 그것도 이익이다”라며 “저는 아무런 이익이 없던 점을 보면 오히려 윤 후보가 더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싶다”고 주장했다.“국민연금 개혁”…대선 후보 4인 모두 동의 이날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후보는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원론적으로 동의했다. 안 후보가 “(연금 개혁에) 세 분이 다 동의하니까 국민연금을 개혁하겠다는 걸 4명이 공동선언하는 게 어떻냐”는 물음에 긍정적인 의사를 나타냈다. 이 후보는 “연금 격차, 부담률 등 차이가 매우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며 “연금을 통합해 불평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100% 동의한다. 다만 국민적 합의와 토론, 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대한 신속하게 하자고 합의하는 게 최선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안 후보는 윤 후보에 “연금개혁을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윤 후보는 “개혁해야 한다. 다만 연금개혁은 복잡하기 때문에 후보들이 대선 기간에 짧게 방향을 만들어 공약 발표하기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답변했다. 이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초당적으로 해야 할 문제여서 정권 초기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후보는 개혁의 필요성은 동의하면서도 “연금개혁의 문제는 수지 불균형”이라며 “안 후보는 주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국민연금 통합을 어떻게 하냐는 말만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沈 “북 보복능력 중점둬야”vs尹 “핵맞고 보복하면 뭐하나” 윤 후보와 심 후보는 ‘킬체인(Kill Chain)’ 등 안보 정책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심 후보는 윤 후보의 앞선 ‘선제타격’ 발언을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제타격인 킬 체인은 한계가 있다. 우리가 공격하면 북한이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북한이 인식하게 만드는 게 억지력”이라며 “킬체인이 아닌 보복능력이 중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제타격을 운운하는 자체가 전쟁하겠다는 선전포고”라면서 “대통령 후보가 그런 말씀을 하시면 불안 조성하는 안보 포퓰리즘이다”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윤 후보는 “핵 맞고 나서 보복하면 뭐하느냐”라며 “그런 말씀이 국민들에게 더 불안을 조성한다. 선제타격, 킬 체인 가동할 때 쯤 되면 사실상 전쟁 상태라고 봐야 한다. 이건 극초음속 핵미사일이 날라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미 전쟁상태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것 없이 먼저 공격하는 것은 예방 타격이다. 선제타격이랑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후보는 거듭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가 시간이 부족한데, 핵미사일 공격 시 대량 응징 보복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첫 4자 TV토론 마무리발언서 ‘차기 대통령상’ 언급 네 명의 후보는 마무리 발언에서 각기 자신이 내세우는 차기 대통령의 상(像)을 한 단어로 표현했다. 이 후보는 “지금 정말 위기다. 경제도, 코로나 위기도, 대전환의 위기도, 국제관계도, 남북관계도 정말 어렵다”면서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나고 있고 또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는 “3월 9일 이후에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겠나. 우리는 어디로 가야 되나”라면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 필요하다. 제가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대선은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대한민국의 CEO를 뽑는 선거”라며 “저는 새로운 산업전략을 통해서 우리의 역동적인 경제도약과 또 이를 통해서 따뜻하고 생산적인 맞춤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확실하게 바꾸겠다”고 역설했다. 안 후보는 “오늘 연금 개혁에 대해 모든 후보의 합의를 이뤘다는게 가장 큰 성과”라면서 “지금까지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 제게 일할 기회를 달라. 말 잘하는 해설사가 아니라 일 잘하는 해결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주류정치가 대표하지 않는 수많은 비주류 시민들과 함께 진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며 “서민이, 시민의 삶이 선진국인 나라를 만드는 첫 번째 복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 ‘곰표’ 대한제분 이종각 명예회장 별세

    ‘곰표’ 대한제분 이종각 명예회장 별세

    ‘곰표’ 밀가루로 유명한 대한제분 이종각 명예회장이 3일 세상을 떠났다. 90세. 고인은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57년 대한제분에 입사했다. 대한제분은 고(故) 이한원 전 회장이 1952년 설립한 회사로, CJ제일제당과 동아원과 함께 국내 3대 제분업체로 꼽힌다. 이한원 전 회장이 1978년 별세하자 당시 부사장이던 고인이 1982년 대표이사 사장직에 올라 경영을 책임졌다. 고인은 2009년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의 장남인 이건영 당시 부사장이 자리를 이어맡아 현재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대한제분은 최근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한 밀맥주와 뉴트로(신복고) 컨셉의 ‘곰표 팝콘’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인기를 끌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5일 오전 8시 30분이다.
  • 호주 연구진 “제임스 쿡의 엔데버 호 잔해 발견” 미국 동료들 “성급한데”

    호주 연구진 “제임스 쿡의 엔데버 호 잔해 발견” 미국 동료들 “성급한데”

    영국 해군 장교이며 탐험가였던 제임스 쿡이 1768년부터 1771년까지 호주와 뉴질랜드를 탐험할 때 선장으로 이용했던 엔데버 호의 선체 잔해가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바다에서 발견됐다고 호주 연구자들이 주장했다. 이들과 함께 작업한 미국 연구자들은 발표가 성급했다고 반박했다고 AFP 통신이 3일 전했다. 엔데버 호는 미국 독립전쟁 때인 1778년 로드아일랜드주의 뉴퍼트 항구 앞 바다에서 침수된 뒤 두 세기 넘게 잊혀진 채로 있었다. 호주국립해양박물관(ANMM)의 케빈 섬션 관장은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1999년부터 우리는 엔데버 호가 가라앉은 곳으로 믿어지는 3.2㎢ 면적에 누워 있는 18세기 난파선 여러 척을 조사해 왔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증거에 근거해 난 이것이 엔데버 잔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로드아일랜드 해양고고학프로젝트(RIMAP)는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다. DK 압바스 RIMAP 사무총장은 일방적인 발표가 계약 위반이라면서 “호주인의 감정이나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적절한 과학 절차에 따라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주 박물관 대변인은 “우리가 축적한 광범한 양의 증거들에 대해 그녀(압바스)만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어떤 계약 위반도 없었다고 본다고 했다. 섬션 관장은 2018년 엔데버 호의 잔해가 로드아일랜드주에 있다고 믿고 있지만 좀 더 많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공표한 고고학 연구진의 일원이었다. 엔데버 호는 영국을 떠나 타히티 섬을 거쳐 뉴질랜드에 이른 뒤 1770년 호주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그레이트 환초 등을 탐험했다. 그는 지금의 시드니 근처 보타니 만을 영국령으로 선포했는데 당시는 원주민들이 훨씬 더 많이 그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침략자 근성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 배는 1778년 8월 뉴퍼트 항구에서 침수되는 운명을 맞는데 당시는 로드 샌드위치 2세 호란 이름으로 다시 불렸으며 미국 독립전쟁에서 체포된 포로들을 가두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다. 영국군이 다른 12척의 선박들과 함께 침수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프랑스 함대들이 미국 군대를 돕겠다고 이 항구와 나라간셋 만에 몰려드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에서였지만 정확한 침수 지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배가 침수되고 몇달 뒤인 1779년 2월 쿡은 하와이 섬의 원주민들이 빼앗으려는 소형 범선을 지키려다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두 세기 넘게 항구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엔데버 호의 잔해는 원래 크기의 15%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호주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섬션 관장은 “이제 초점은 이걸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어찌할 것인지에 집중된다”고 또 한 발 앞서갔다.
  • [길섶에서] 먹보 세상/진경호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먹보 세상/진경호 수석논설위원

    배 터져라 먹어 본 기억이 있다. 라면 5개…. 중2 어느 날 낮, 혼자 끓여 먹었다. 라면이 절반쯤으로 줄었을 때 배는 산만큼 솟았다. 라면 맛은 사라졌고, 허기는 오기(傲氣)로 바뀌었다. 남기면 지는 거다!! 면이 퉁퉁 불어 죽이 됐건만 뜻(?)을 세운 까까머리 소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간신히 이.겼.다. 앉은 자리에서 초밥 200개를 먹어 치우는 작은 체구의 젊은 여성을 유튜브에서 봤다. 아니, 저게 가능해? 보면서도 믿기질 않는다. 한데 ‘먹보 유튜버’는 이 청년만이 아니다. 다른 유튜버는 햄버거 20개를 뚝딱 해치운다. 놀라운 건 이들의 먹성만이 아니다. 이들이 꾸역꾸역 입에 욱여넣는 모습을 수십, 수백만명이 보거나 봤다는 사실이다. 몇몇 먹보 채널은 구독자가 500만명을 넘는다. 포만감을 소비하는 세상…. 배가 부른데도 배고파하는, 허기와 갈증의 시대라는 말은 아닌지. 우리 대신 배 터져라 먹어 주는 그들, 건강만은 해치지 않길 바란다.
  • [문화마당] 개막식으로 알 수 있는 올림픽 국가의 위상/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문화마당] 개막식으로 알 수 있는 올림픽 국가의 위상/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장르 불문, 흥미성과 화제성, 몰입도, 의외성, 전 세계 참여도까지 올림픽은 최소 3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그야말로 지구촌 최대의 축제다. 그런데 내일이 올림픽 개막이 맞긴 한 걸까. 역사상 이번처럼 기대치가 낮았던 축제가 또 있을지 의문이다. 사전에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다양한 뒷이야기나 뜨거운 현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온라인 이벤트도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때문에 축소 방침이라 하더라도 홍보 이슈들은 지속 생산되기 마련인데 말이다. 2022베이징동계올림픽은 축제 유형 중 가장 피해야 하는 전형적인 관제 축제, 그러니까 중국 정부가 원하는 목소리로만 일방 진행되는 전시성 축제의 표본처럼 보인다. 키워드는 ‘보이콧’과 ‘불통’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의 꽃이자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개막식은 그 예술적 수준과 완성도가 조금씩 다를지라도 하나같이 전 세계의 감흥을 일으키는 감동적 스토리와 과정,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120년의 근대 올림픽 역사상 지금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개막식을 꼽자면 문화 콘텐츠 종주국으로서의 위용을 가장 예술적으로 과시했던 2012 런던올림픽이 아닐까. 항상 엄숙한 이미지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늘에서 스카이다이빙으로 날아서 등장하던 대니 보일 감독의 기발한 연출력(대역이지만 여왕은 헬리콥터에서 007보다 먼저 뛰어내렸다)은 개막 초반부터 시선을 집중시켰다. 미스터 빈, 007의 나라답게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주요 인물들이 적절히 등장하고 오늘날 영국을 있게 한 대표적인 이야기가 3시간 동안 줄기차게 나열됐다. 산업혁명 시대를 불의 고리로 연결해 한 편의 뮤지컬을 보듯 재연하고 세계 최고 복지국가라는 위상까지 재치 있게 과시했다. 물론 팬데믹을 통해 복지국가 이미지를 선점한 영국의 실체가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여과 없이 드러났지만. 어쨌든 영국은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가장 영리하고 감동적으로 국가 브랜드를 자랑한 대표 사례다. 이와는 정반대로, 강력하고 매력적이었던 국가 위상이 형편없는 개막식으로 성장세가 확실히 꺾였음을 세상에 스스로 내보인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개최 포기가 낫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굳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1년씩 연기하면서까지 올림픽을 개최하더니 급기야 이슈도 없는 볼거리를 시작으로 부실한 스토리 구성에 내세울 만한 상징적 인물도, 자랑할 콘텐츠도 없고 결과적으로 멋진 이벤트를 빚어낼 기획력과 인재도 없음을 여실히 드러낸 최악의 개막식이었다. 차라리 취소했다면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류 국가 브랜드가 당분간 유지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올림픽 마케팅에 가장 열을 올리는 미국 NBC는 도쿄올림픽 시청률이 런던올림픽의 반토막으로 나왔고, 안타까운 비둘기 화형식으로 화제가 됐던 1988 서울올림픽보다 시청률이 더 낮았다고 발표했다. 이런 개막식을 일본은 왜 했을까. 내일이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이다. 2008년 하계대회 때는 1140억원을 쏟아붓고 1만 5000여명의 공연자가 등장하는 최대 규모의 개막식을 선보였으나 이번엔 3000명이 참여하는 100분짜리 미니 개막식으로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영화와 대형 야외공연으로 연출력을 인정받는 장이머우 감독이니 적어도 중국의 당당한 목소리와 인상적인 명장면은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특히 중국은 화약 기술의 최강국이다. 외교 보이콧으로 주목받지 못한 분풀이를 불꽃놀이로 물량공세하지 않을까.
  • [정은귀의 詩와 視線] 꿈을 꾼다는 건/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정은귀의 詩와 視線] 꿈을 꾼다는 건/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꿈은 나쁜 게 아니다시를 쓰고 싶다 아주 많은 것들이믿고 의지하는 -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메모 꿈을 잘 꾸고 또 꿈이 잘 맞는다. 친구의 취업 꿈을 대신 꾸기도 하고, 사고를 꿈으로 예감하기도 한다. 문제는 예감은 하되 예방은 못 한다는 것. 그래서 좋은 꿈을 꾸면 마음을 홀가분하게 덜고, 불길한 꿈에는 겸허한 마음을 챙긴다. 꿈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간밤에 꾼 꿈도 꿈이고, 실현될 가능성이 적은 헛된 기대도 꿈이다. “꿈 깨라”는 아픈 말은 현실을 돌아보라는 질책이고, “꿈이 뭐니?”라고 묻는 건 상대방의 희망과 이상을 묻는 관심이다. 나이가 들면 좋은 의미의 꿈을 묻는 일이 어색해진다. 혼탁한 세상에서 시시한 어른이 된 우리는 간밤의 꿈을 기억하며 혼자 해몽 사이트를 뒤질지언정 내 꿈이 무엇인지는 쉽게 잊는다. 비현실이고 낭만이고 불안과 두려움이고 또 희망이기도 한 꿈.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으로서 꿈은 미지(未知)의 영토에 있다. 꿈이 작아지는 것은 우리가 가능성으로 상상하는 삶의 영토가 줄어든다는 뜻. 학생들과 면담할 때 “제 꿈은 ○○였는데…”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말줄임표 속에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 꿈을 포기했다는 슬픈 체념이 있다. 꿈을 꾸는 게 어색해진 세상은 더이상 새로움이 자라지 않는 불모의 세상이다. 여기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1883~1963)라는 미국 시인의 메모가 있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의 원을 좇아 의사가 됐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미 성공했지만, 그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다. 바로 시를 쓰는 것. 그것도 ‘아주 많은 것들이/믿고 의지하는’ 시를. 현실적인 층위에서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시에 꿈을 걸고, 그는 만나는 이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청진기로 숨결을 살피고, 아기를 받으면서, 급하면 진료 카드에도 시를 썼다. 꿈은 나쁜 게 아니라니, 윌리엄스 시절에도 현실은 척박하여 꿈은 불가능한 몽상으로 자주 폄하됐다. 시인이 되고픈 꿈을 그는 일상을 돌보는 시선을 말로 그리며 차곡차곡 이루어 간다. 세상을 살피고 사람을 보듬는 살뜰한 시선에서 많은 것들이 믿고 의지하게 된 언어, 그만의 독특한 돌봄의 시선이 완성된다. 시인의 시 ‘그 빨간 외바퀴 수레’가 일상의 노동에 대한 오롯한 헌사인 것은 그런 이유다. 영화 ‘패터슨’에서 주인공 버스기사도 그런 세심한 살핌의 시선을 시로 쓴다. 그에게 꿈은 시였고, 시는 현실을 추동력 삼아 이루어졌다. 꿈이 현실이 된 사례는 또 있다. 며칠 전 받은 편지. 문장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아보라는 내 권유에 글로 밥 벌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거두고 노력한 결과 꿈을 이루었다고 한다. 선생의 믿음을 자기 믿음으로 만든 학생, 참 고맙다. 그러니 믿음과 의지와 꿈과 현실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각자의 꿈을 포기 않고 기쁘게 품는 세상, 시인도 나도 같은 꿈을 꾼다.
  • [만평] 조기영의 세상터치 2022년 2월 3일
  • [단독] 세상과 거리두며 자기 찾다… 100쇄 찍는 ‘새의 선물’

    [단독] 세상과 거리두며 자기 찾다… 100쇄 찍는 ‘새의 선물’

    소설가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이르면 3월 100쇄를 찍는다. 1995년 출간된 이 작품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인기 작가의 작품이라도 5000~1만부를 넘기기 힘든 요즘 출판계 상황에서 100쇄 출간은 오랜 기간 꾸준히 독자에게 읽혔다는 방증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박경리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아리랑’·‘한강’, 김훈의 ‘칼의 노래’·‘남한산성’ 등이 100쇄를 넘긴 대표작이다. 문학동네에서도 100쇄 출간은 2007년 안도현 시인이 쓴 우화소설 ‘연어’ 이후 15년 만이다. 작가는 지난달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은 게 아니라 27년간 꾸준히 관심을 받아 100쇄가 됐다는 게 정말 소중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작품을 현시대에 맞춰 손보고 있다. 그는 “‘앉은뱅이책상’과 같은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는 표현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그때는 몰라서 썼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든 불편하지 않은 표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섬세한 사회가 돼 너무 좋다”고 했다. ‘새의 선물’은 ‘더는 성장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조숙한 열두 살 여자아이가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자기 자신을 분리한 뒤 자신을 포함한 군상들의 모습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작품이다. 30대 중반 등단하자마자 발표한 첫 장편은 ‘환상 너머의 이면을 들춰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 줬다’는 평을 받았다. ‘새의 선물’부터 지난달 나온 연작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까지 작가의 주인공들은 타인 혹은 세상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아이러니에 놓여 있다. 그는 “익숙한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얼굴이 되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상도 갑자기 나로부터 멀어지고 비밀에 싸인 것 같은 순간이 많다”며 “타인과 세계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고 끊임없이 경계심을 가져야 하고 그게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기본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낯선 환경이 주어질 때 편견이나 선입견이 드러난다고 생각해 낯선 조건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주로 썼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문학동네 대표는 “100쇄 출간이 3월 예정돼 있고 늦어도 상반기 중 출간될 예정”이라며 “오랜 시간 독자에게 읽힌다는 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시대를 넘어 독자층이 공감한다는 점에서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우리 삶이 곧 기적”… 두 원로가 짚은 생사고락의 지혜

    “우리 삶이 곧 기적”… 두 원로가 짚은 생사고락의 지혜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은 인간답게 사는 노력, 과정, 그 성취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중략) 그런데 행복을 욕심내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잃어버려요.”(‘김형석의 인생문답’ 34쪽) -기적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지금 기적 속에 살고 있어요.(중략) 오늘 하루 살아서, 특히 나처럼 병을 앓는 사람은 ‘아침 해가 또 뜨는구나’ 하고 감사해하지요. 내가 어제 죽었으면 절대 (이 태양을) 못 봐. 이게 기적이죠.”(‘메멘토 모리’ 228쪽) 새로운 시간을 다짐하는 지금, 이 시대 어른들의 지혜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책들이 독자들을 찾는다. 끊임없는 탐구와 통찰력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김형석(102) 연세대 명예교수와 이어령(88) 전 문화부 장관이 삶과 죽음, 종교와 신 등 다양한 주제의 식견을 풀어내는 문답집이 잇따라 출간됐다. 김 교수는 20~60대 일반 독자 100명에게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질문을 받아 공통된 물음 31가지를 추려 답한 ‘김형석의 인생문답’(미류책방)을 통해 한 세기를 살아온 철학자의 지혜를 전한다. ‘인생을 후회 없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은 왜 하는 걸까요’처럼 쉬울 것 같지만 막상 뚜렷한 답을 내기 막막한 질문들에 김 교수는 “내가 살아 봤더니 이렇던데, 여러분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요”라고 권한다. “생각해 보면 각자 무거운 짐을 지고 허락된 시간을 걷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진리라도 다정한 노교수의 목소리에 담으면 더욱 와닿는다.‘메멘토 모리’(열림원)는 죽음과 신, 종교를 핵심 키워드로 과학과 예술, 문명, 문학 등 여러 영역으로 뻗어 간 이 전 장관의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죽음에 대면했을 때 가톨릭 신부에게 전한 24가지 질문에 30여년이 지난 현재 암 투병 중인 이 전 장관이 다시 답한 내용을 엮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등 철학과 신학을 관통하는 물음들이 이어진다.누구나 의문을 품어 봤을 질문들에 대한 답에 이 전 장관의 오랜 경험을 녹였고 특히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보내고 있는 고통의 시간을 버티게 해 주는 희망의 메시지도 건넨다. 이 전 장관은 이 책을 시작으로 그간 인터뷰를 통해 세상과 나눈 방대한 문답을 모아 총 20권의 대화록을 낼 예정이다.
  • “美메트 주역 감격… 한국인만이 가진 힘 있어요”

    “美메트 주역 감격… 한국인만이 가진 힘 있어요”

    ‘사랑과 삶’ 주제로 클래식 노래“작년 오페라 마술피리, 인생 무대8일엔 뉴욕필에서 새타령 불러”“코로나19로 해외 지인들이 세상을 뜨기도 했는데, 삶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 많은 위로를 줘 다행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주역 데뷔의 감격을 품고 잠시 귀국한 소프라노 박혜상(사진·34)이 오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랑과 삶’을 주제로 리사이틀을 연다. 최근 전화로 만난 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다르게 들리는 게 클래식의 매력”이라며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시대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곡가들의 음악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1부에서는 비련의 주인공이 부르는 애달픈 아리아인 헨리 퍼셀의 ‘내가 대지에 묻힐 때’, 루차노 베리오의 ‘춤’ 등을 선보인다. 박혜상은 “퍼셀 등 바로크 음악은 언어 안에 들어 있는 내면 세계가 잘 표현되는 곡들”이라며 “베리오는 20세기 중요한 현대 음악가로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2부에선 사랑에 집중하며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저녁 노을’, 쿠르트 바일의 ‘낮은 목소리로 말하다’ 등을 들려준다. 그는 “‘저녁 노을’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죽게 되는 이야기로 외로움과 감동을 나누고 싶었다”며 “바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고통을 겪은 유대계 독일인이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풀어내는 깊은 의미가 팬데믹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박혜상은 지난해 12월 뉴욕 메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딸인 파미나를 연기해 갈채를 받았다. 메트 오페라 주역을 고교 시절부터 막연하게 동경해 왔다는 그는 “코로나로 주역 데뷔가 1년 늦춰져 속상했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더 오래 남을 것 같다”며 자신의 인생 무대로 꼽았다. 다채로운 음색에 뛰어난 성량과 표현력을 갖춘 그는 미국뿐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다양한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무대에서 활약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이어 세계 최대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 본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두 번째 한국인이기도 하다. 오랜 해외 생활 동안 인종 차별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한국인만이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한국인임을 많이 드러내려고 했다는 그는 “마음에 많이 와닿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한국 가곡도 좋아한다”고 했다. 오는 8일 뉴욕 필하모닉 공연에서 ‘강 건너 봄이 오듯’, ‘새타령’을 부른다는 박혜상은 “작곡가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애쓰면서도 제 영혼 또한 잘 풀어 나가 생동감을 주는 진솔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최종 점수~ 몇 대 몇?” 국민오락관장 하늘로

    “최종 점수~ 몇 대 몇?” 국민오락관장 하늘로

    ‘허 참, 자기 이름 모르나’서 예명 따 말솜씨 좋아 50년간 진행자 활약 주위 걱정 우려… 병환 알리지 않아 장수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비롯해 50년간 진행자로 활약한 ‘국민 MC’ 허참이 간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73세.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한 고인은 서울의 음악 다방을 거쳐 라디오에서 활동하다 1970년대 중반 TBC ‘7대 가수쇼’로 TV에 입문했다. 재치 있는 말솜씨와 유머 감각으로 사랑받던 고인은 1977년 TBC의 인기 프로그램 ‘쇼쇼쇼’의 진행을 맡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1984년 4월부터 2009년 4월 종영까지 진행한 KBS ‘가족오락관’이 대표 프로그램이다. 1980년대 중반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던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을 뿐 25년 동안 줄곧 자리를 지켰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종점수 몇 대 몇”이라고 외치는 우렁찬 멘트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가족오락관’ 이후에도 SBS ‘트로트 팔도강산’, KBS ‘도전 주부가요스타’, 경인방송 ‘8도 노래자랑’, 엠넷 ‘골든 힛트송’ 등 음악 프로그램을 맡아 꾸준히 활동을 이어 갔다. 2005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TV진행상, 2006년 KBS 연예대상 공로상을 받았다. 본명 이상용 대신 예명을 쓰게 된 과정은 유명한 일화다. 방송 데뷔 전인 1973년 겨울 DJ 이종환이 운영하던 음악 다방 쉘부르에 들렀던 고인은 우연히 무대로 올라갔다가 “이름이 뭐냐”는 진행자 물음에 “기억이 안 난다”며 능청을 떨었다. 진행자가 “허 참,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자 “아, 제 이름이 바로 허참”이라고 답한 것을 계기로 예명을 정했다. 1978년 앨범 ‘허참 새노래 모음’, 2007년 싱글 ‘추억의 여자’를 발매하며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KBS ‘불후의 명곡-전설의 명MC 특집’,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등에 출연했고 지난 1월 방송된 JTBC ‘진리식당’에서 근황을 알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것을 우려해 투병 사실은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들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6년간 ‘가족오락관’에서 호흡을 맞춘 방송인 손미나는 소셜미디어 계정에 “아나운서 1년 차 때부터 진행자의 모범적인 모습을 몸소 보여 주신 제 롤모델”이라며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힘찬 응원을 보내는 영원한 치어리더 같았던 분”이라고 썼다. MBN ‘엄지의 제왕’ 등을 함께한 오정연은 “당신이 하는 일에 기쁨과 책임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늘 좋은 영향을 풍기셨다”며 “어딜 가나 어른이신데도 무게를 잡지 않고 후배들을 배려하셨다”며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5시 20분.  
  • 가슴 시린 ‘파베리아’라더니… 책 향기 품은 겨울 풍경화인 듯

    가슴 시린 ‘파베리아’라더니… 책 향기 품은 겨울 풍경화인 듯

    디지털 세상이다. 넓고 빠른 세상. 하지만 공간이 워낙 방대해 길을 잃기도 쉽다. 디지털에 밀려 곤욕을 치르는 아날로그 분야가 여럿인데, 그중 하나가 출판계다. 한데 아이러니하다. 출판 분야에 사람의 온기는 옅어지는데 경기 파주출판도시를 찾는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니 말이다. 아마 디자인이 빼어난 건물들이 잔뜩인 데다, 책 향기 맡으며 쉴 만한 북카페 등도 많기 때문이지 싶다. 여기에 방학 중인 아이들을 하루 종일 풀어놓을 만한 공간도 부지기수다.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은 슬며시 내려놓고 여유 있게 쉴 수 있다. 굽이굽이 도시 중심을 흐르는 갈대 샛강, 겨울 철새들의 낙원 문발습지, 감성 넘치는 건물들 그리고 그 너머 한강. 도시 전체가 공원이다. 겨울 끝자락에 파주출판도시를 찾을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파주의 겨울을 상징하는 단어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군사도시, ‘파베리아’(파주+시베리아)라고 불리는 압도적 추위, 출판도시 특유의 차갑고 무덤덤한 단색조 건물들. 얼핏 살풍경한 듯하지만, 안에서 밖을 보면 시린 겨울조차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그게 예술이 가진 여러 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파주출판도시는 출판인들이 모여 조성한 출판산업 단지다. 여기에 독특한 문화를 입힌 건축물들이 더해지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출판도시 조성에 참여했다. 대형 출판기업들만 몰려 있는 건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연예기획사, 아틀리에를 마련하려는 미술계 인사들의 발걸음도 잦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종국에 어떤 문화예술콘텐츠의 도시로 변모할지 현재로선 짐작하기 어렵다. 출판도시가 깃들인 곳의 지명은 문발리다. 한자는 ‘文發’이다. ‘글월 문’(文)에 ‘필 발’(發) 자다. ‘문자가 피어나는 곳’이라니, 공교롭지 않은가. 과장 좀 보태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출판도시의 랜드마크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다. 책장에 꽂힌 크고 작은 책을 보듯, 극도로 단순화된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이른바 ‘서가 유형’의 건물이다. 너무 단순해 오히려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서가 유형’은 출판도시 조성 당시에 구역별 기준이 됐던 여러 유형 가운데 하나다. 미니멀리즘이 구현된 ‘서가 유형’의 건물들은 출판도시를 도는 동안 매우 빈번하게 마주친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엔 웅장한 서가를 자랑하는 ‘지혜의 숲’, 북스테이 ‘지지향’, 활판인쇄박물관 등 다양한 공간이 어우러져 있다. 건물 바깥 구경에 내부 콘텐츠까지 즐기려면 반나절 정도는 금방 지난다.바로 옆엔 한옥 한 채가 덩그러니 앉아 있다. 2000년 전북 정읍에서 옮겨 온 김명관 가옥 별채다. 거대한 현대 건축물 사이에서 실낱같은 숨을 내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주변 건축물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해 보인다는 견해도 있다. 글쎄, 어느 쪽인지는 오롯이 보는 이의 몫이겠다.고택 맞은편엔 ‘이게 뭐지?’ 싶은 건물이 있다. ‘도서출판 동녘’ 사옥이다. 소개 자료 대부분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 부부의 설계작”이라 적혀 있다. 정확히는 조성룡 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와 이 부부가 협업한 건물이다. 동녘 사옥은 매우 독특하다.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넣고 건물 한 채를 찍어낸 것처럼 보인다. 건물을 보면 단박에 알게 되는 ‘몇 층짜리’란 개념이 이 건물 앞에선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몇 개 있지도 않은 창문이 그마저 불규칙하게 배치됐기 때문이다. 지상의 출입문은 북쪽 귀퉁이에 옹색하게 마련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뭔가 묵직한 메시지가 있을 텐데, 장삼이사의 시선으로는 그저 퉁명스럽고 완고한 건물로 보여 안타깝다.‘들녘’ 사옥은 영국 출신의 작가 마크 어빙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의 하나로 꼽은 건축물이다. 정면에서 볼 때 건물 왼쪽은 차가운 느낌의 콘크리트, 오른쪽은 따스한 느낌을 주는 목재로 마감했다. 그는 이를 자신이 쓴 동명의 책을 통해 “대화가 통하는 설계”라고 표현했다.파주출판도시를 관통하는 갈대 샛강 건너에도 근사한 건물들이 수두룩하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대표적인 인증샷 명소다. 역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출신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과감한 곡선이다. 건물 전체를 휘감아 흐르는 우아한 선을 보며 ‘시적인 건축’을 추구한다는 그의 명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건물 내부엔 작품을 비추는 조명이 없다.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자연광이 조명 구실을 한다. 당연히 날씨와 빛의 변화에 따라 작품을 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뒤따른다.한길사 건물도 놓쳐선 안 된다. 예의 ‘서가 유형’으로 지은 건물이다. 네 권의 거대한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건물 외부는 녹이 잔뜩 슨 듯한 코르텐 강판으로 마감했다. 거칠면서도 빈티지한 느낌이 일품이다. 아울러 책의 품위를 느낄 수 있는 열화당 책박물관, 웅장한 계단과 굽은 벽체의 나남출판사, 피노키오 박물관 피노지움, 마분지를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생능출판사, 보림책방 등도 꼭 찾아보길 권한다.헌책방도 있다. 저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헌책에서 나는 세월의 향기를 좋아라 하는 이들도 있다. ‘문발리헌책방골목블루박스’는 낡은 느낌을 좋아하는 이들이 찾을 만한 공간이다. 헌책방 ‘문발리헌책방골목’에 카페 ‘블루박스’가 합쳐져 이름이 길어졌다. 내비게이션엔 ‘블루박스’를 입력해야 찾기 쉽다. ‘이가고서점’은 전형적인 헌책방이다. 실내가 방대한 양의 헌책으로 꽉 차 있다. ‘지혜의 숲’ 2층의 ‘보물섬’에서도 헌책을 판다.북카페 역시 다양하다. 출판사 건물 대부분에 북카페가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눈’(NOON)은 출판단지에 처음 생긴 북카페다. 북유럽의 디자인을 떠올리게 하는 효형출판 건물 안에 있다. 출판사 돌베개에서 운영하는 ‘행간과 여백’도 널리 알려진 곳 중 하나다. 실내에만 있어 갑갑한 느낌이 들면 문발습지를 찾으면 된다. 여기는 철새들의 도시다. 규모는 작아도 늘 겨울 철새들로 붐빈다. 기러기는 흔하고 개리(천연기념물) 같은 귀한 철새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파주출판도시를 관통하는 갈대 샛강을 산책하는 느낌도 좋다. 중간중간 ‘김소월 시의 다리’, ‘러브리지’ 등 예사롭지 않은 이름의 다리도 만난다. 다만 현재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니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이후에 다시 찾기로 한다.출판도시에서 한 블록 너머에 있는 명필름아트센터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다. ‘건축학개론’, ‘접속’ 등의 영화를 매개로 책, 건축 등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다. 지하 1층엔 주말에만 문을 여는 영화관도 있다. 촌구석의 작은 영화관쯤으로 깔봐선 곤란하다. 디지털 4K 영사시스템에 돌비 애트모스 3D 사운드 시스템까지 갖췄다.
  • 헌재 미제사건 급증… 국민 기본권 침해 심각

    헌재 미제사건 급증… 국민 기본권 침해 심각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미제사건’의 규모가 지난해 1500건을 돌파한 것으로 2일 나타났다. 9명의 헌법재판관이 매년 2000~3000건가량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접수 건수도 폭증하면서 미제사건이 계속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재가 판단이 시급한 사안을 다루지 못하는 경우까지 벌어져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에 따르면 접수 이후 결론을 내지 못해 미제 상태로 남은 사건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51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000건을 넘긴 이후 2년 만이다. 이 중 헌법소원 사건이 1442건으로 전체 약 95%에 해당한다. 헌법소원은 헌법정신에 어긋난 법률 때문에 기본권 침해를 당했을 때 헌재에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다. ●박근혜 탄핵 이후 헌소 청구 급증 영향 헌재법 제38조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헌재가 사건을 마무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권고 사항인 탓에 심리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처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해 1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자영업자 단체들은 정부의 코로나19 영업제한 조치에 반발하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청구대리인을 맡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김남주 변호사는 “헌재에 사건이 많고 심리 부담이 크긴 하지만 이번 일처럼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사안은 신속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며 “헌재 결정이 늦어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헌재의 미제사건은 특히 최근 5년 사이 급증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헌재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헌법소원 청구 건수 자체가 증가하며 미제 건수도 늘었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헌재의 평균 사건처리 기간은 현재 1년 2개월에 달한다. ‘대기줄’이 길어지면서 수년간 심리 과정도 없이 기다리다가 뒤늦게 소송 요건의 흠결 등을 이유로 각하 결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한 헌재의 2019년 12월 27일 결정도 그런 경우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자 이듬해 3월 헌법소원을 냈다. 그런데 헌재는 3년 9개월 뒤에서야 “국가 간 비구속적 합의는 헌법소원 심판청구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사이 사망한 청구인에 대해서는 심사절차가 자동으로 종료됐다. 헌법소원을 낸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세상을 떠난 이들은 모두 15명이었다. 직접 피해 당사자 중 절반 이상이 법적 판단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한 셈이다. 헌재에 남은 미제사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노동조합 쟁의행위를 업무방해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제기된 현대자동차 노조의 헌법소원 심판이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조합 간부들은 2010년 3월 비정규직 해고 통보를 받고 휴일 특근을 세 차례 집단거부해 업무방해 혐의로 3심까지 유죄가 확정됐다. ●현대차 노조 헌소는 10년째 결론 안 나 그러자 이들은 2012년 2월 17일 휴일 특근 거부가 업무방해에 해당하는지 헌재에 판단을 구했지만 헌법소원 사건은 10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헌재가 계속 판단을 미루자 일각에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사건을 헌재가 다시 보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의 경중이나 난이도를 따지지 않고 획일적으로 모든 사건에 대해 날짜를 정해서 특정 기간 안에 심리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그럼에도 국민들로서는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 권리구제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만큼 사건 우선순위를 정하는 규칙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제사건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심리 요건에 맞지 않는 사건이 헌재로 너무 많이 접수되고 있는 점이 꼽힌다. 실제 헌재가 지난해 접수한 사건 2827건 중 2161건은 각하 결정을 받아 76.4%가량이 본안 심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전체 사건처리 건수 대비 각하율은 연평균 74.8% 수준이었다. 헌법재판소는 9인 재판관을 3명씩 나눠 3개의 지정재판부를 운영하고 있다. 지정재판부는 사건을 사전심사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판단한 경우 청구를 각하하는 역할을 한다.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까지도 헌법재판관이 일일이 심사를 하기 때문에 각하 결정을 내리는 데만도 시간이 상당히 소비되는 구조인 셈이다. 각하 사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청구가 부적법하고 그 흠결을 보정할 수 없는 경우’다. 다른 구제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았거나 청구기간이 지난 경우, 대리인 선임이 없는 경우에도 각하된다. 지난 10년간 헌재의 연평균 사건 인용률은 약 3.9%에 불과했다. 이에 헌재가 본래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건 선별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에서 다루는 헌법은 법원의 법률해석과 달리 추상적 규범인 만큼 그 사회의 분위기와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해 해석과정이 복잡하고 심리기간도 길 수밖에 없다”며 “헌재는 국가의 기본권 침해와 같이 특정 요건을 갖춘 사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받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군인 오빠 요새 바쁜가봐요” 이유빈 ‘거수경례’ 또 볼 수 있을까

    “군인 오빠 요새 바쁜가봐요” 이유빈 ‘거수경례’ 또 볼 수 있을까

    약 53만명의 현역병과 약 275만명의 예비역(2021년 기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빈(21·연세대)의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또 볼 수 있을까. 현역병인 이유빈의 친오빠 하기 나름이지만 이대로라면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유빈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빛낼 준비된 스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에서 넘어진 선수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이제는 세계무대에서 가장 높이 오를 정도로 성장한 덕분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위상을 지키는 임무는 최민정(24·성남시청)과 이유빈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일 동료와 함께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훈련을 소화한 이유빈은 “대관 시간이 매일 다른 것만 빼고는 괜찮은 것 같다”며 컨디션이 좋다고 전했다. 매일 미세하게 달라지는 빙질 적응에 어려움은 있지만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기억이 있는 만큼 이유빈의 활약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번 올림픽 한국의 첫 메달은 5일 열리는 쇼트트랙 혼성 계주일 가능성이 크다. 대표선발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상위 2명의 선수가 나가는 만큼 금메달을 기대해볼 만하다. 이유빈 역시 혼성 계주 멤버로 참가한다. 이유빈은 “월드컵 끝나고 대표팀 선수들이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연습하면서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 “준비한 대로 실수 없이 잘 보여드리면 좋은 단추를 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2000m를 달리는 혼성 계주는 각자 두 번씩만 타는 짧은 경기인 만큼 이유빈도 ‘빠른 속도’를 포인트로 짚었다.혼성계주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쇼트트랙은 물론 다른 종목 선수들까지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유빈도 개인 종목과 여자 단체전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느 종목이든 메달을 딴다면 이유빈의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또 볼 가능성이 있다. 이유빈은 지난해 군대에 간 오빠를 위해 월드컵에서 거수경례를 세리머니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이유빈은 “오빠가 전부터 거수경례 부탁을 했었다”고 말했다. 월드컵에서 한 번 거수경례를 안 했더니 이유빈의 오빠는 “올림픽에서 해주려고 아낀 거지?”라고 애정 섞인 핀잔을 줬을 정도로 동생의 세리머니에 대한 욕심이 크다. 다만 이유빈의 거수경례를 보려면 오빠가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이유빈은 전에 “오빠 하는 거 봐서 고민하겠다”고 귀띔했는데 지금은 소홀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오빠 소식을 묻자 이유빈은 “요새 군생활 잘 즐기는 것 같다. 나보다 바쁜지 연락이 잘 안 된다”고 웃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지라 이렇게 소홀하다가는 세리머니 선물을 못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쇼트트랙도, 취미인 춤도 즐기는 흥 넘치는 이유빈은 즐길 수 없게 폐쇄적으로 진행되는 이번 올림픽이 조금은 아쉽다. 그러나 그런 잠깐의 아쉬움보다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외신에서 금메달 후보로 꼽았다는 소식에 이유빈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예상한 만큼 준비해서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외국선수들도 성장했기 때문에 월드컵에서도 월등하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준비한 것을 토대로 뺏어와서 다시 강세를 잡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남겼다.
  • [단독] ‘죽암사 살인사건’ 사형수 암으로 사망…25년째 사형 집행無

    [단독] ‘죽암사 살인사건’ 사형수 암으로 사망…25년째 사형 집행無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인 한국에서 지난해 ‘죽암사 살인사건’의 범인인 60대 사형수가 암에 걸려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병사나 자살 등으로 생을 마감한 것은 이번이 12번째로 남은 55명의 사형수도 자연사할 가능성이 커 사형제 존속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사형수 임모(사망 당시 67세)씨가 지난해 1월 29일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2019년 7월 사형수 이모씨가 옥중 사망한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임씨는 1995년 10월 새벽에 귀가 중이던 40대 여성을 자신과 헤어진 연인으로 착각해 살해했고 이후 충남 공주(현재 세종시)에 위치한 죽암사에 숨어 지내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60대 여성 신자 두 명을 추가 살해했다. 2003년에는 주변 재소자에게 “내가 경기 화성에서 아줌마를 죽였다. 한두 명 죽인 게 아니다”라고 말한 게 빌미가 돼 1986~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했다.임씨는 1996년 사형이 확정됐지만 병사하기 전까지 25년간 집행을 피했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뒤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된 것도 2015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세모녀 살인사건’을 저지른 김태현씨에 대해 지난달 항소심 재판부는 “사형은 형벌로서 실효성을 상실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도 했다. 법원에서 사형 선고 자체도 이뤄지지 않고 정부 역시 사형 집행에 나서지 않으면서 옥중에서 사망하는 사형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 사망한 임씨까지 포함해 병사한 사형수는 7명이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형수는 5명이다.법조계 관계자는 “사형수도 수감 중에 질병이 발생하면 다른 재소자와 똑같이 병원에서 충분한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다만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25년쯤 됐기 때문에 고령인 사형수 중에 자연사하는 이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형제 폐지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정치적 논란이 큰 이슈인 탓에 이번 대선에서도 사형제 존속 문제는 본격 논의되지 않고 있다. 경선 당시 홍준표 국민의힘 경선후보가 “흉악범 사형 집행”을 주장한 것이 전부다.  
  •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한 부산 청년, 국민MC로 날다...허참 별세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한 부산 청년, 국민MC로 날다...허참 별세

    허참을 만난 것은 2016년 11월 말 그의 남양주 농장에서였다. 농장을 자신만의 휴식, 휴양 공간으로 활용하다가 외부 손님을 받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리뉴얼해 ‘참스팜스’라는 간판으로 새로 문 연 직후였다. 마당 한켠에서는 아직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자기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사들의 삶을 긴 호흡으로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MC계 거목인 그를 연예담당 기자를 통해 어렵사리 섭외할 수 있었다. 그는 농장 건물 내부를 1층부터 2층까지 안내하고 자신이 아끼는 뒷마당 텃밭도 구경시켜 주었다. 밭에서 채소들을 직접 길러 먹고 손님들에게도 내놓는다고 했다. 2층에는 MC, 가수, 배우로서 다양한 인생 궤적이 담긴 사진과 포스터 등이 전시돼 있었다. 수많은 전시물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25년간 진행했던 KBS ‘가족오락관’의 네온사인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쉴새 없이 풀어내는 인생 이야기는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잠시 쉬어갈 때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자신의 건강지식을 풀어놓았다. 당시 그는 종편채널에서 ‘엄지의 제왕’이라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정 제품 홍보가 될 수 있어서 방송에서는 말하기 어렵지만, 김 기자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라며 몇가지 ‘건강비책’을 일러주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에는 “언제 가족들과 한번 놀러 오세요. 우리 농장에는 없는 게 없어요. 꼭 오세요 꼭.”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가 1일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73세. 그가 5년 전 풀어 놓았던 자신의 인생역정을 약간의 가필을 거쳐 다시 싣는다. 기사의 지면 게재일은 2016년 12월 8일이었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허참(67)은 얼마 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자기 농장을 일반에 오픈했다. 음식을 먹고 노래를 듣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꾸미고 ‘참스팜스’라는 간판을 세웠다. 2층은 일종의 기록실로 만들었다. 자신의 예능 40여년 역사가 담긴 사진, 포스터, 앨범들을 한데 모았다. 자신이 직접 그린 회화 작품들도 걸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 여의도 KBS 녹화홀에서 25년 동안 실제로 썼던 ‘가족오락관’ 네온사인이다.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냥 썩는다고, 방송국에서 선물로 주더군요. 그걸 여기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하니까 불이 들어오는데, 눈물이 납디다. 그 오랜 시간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느라 고생했다. 이제는 내가 널 지켜봐 줄게, 이렇게 다짐했어요.”●1973년 여동생 결혼 밑천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 -기차가 덜컹거리며 부산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무 대책 없는 ‘무작정 상경’의 주인공이 내가 되다니. 군에서 막 제대한 1973년의 어느 날이었다. 지갑 속엔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오빠가 나중에 돈 벌면 몇 배로 갚아줄게.” 결혼 밑천 삼는다고 고이 모아 온 여동생의 돈이었다. -서울살이는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애초부터 내집 같은 것은 없었으니 군대나 고향 친구들 집을 번갈아가며 하루하루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정동 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는데, 자전거로 채소나 생선 같은 것들을 배달해 주며 공짜 숙식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고 있다 보면 코미디언이 됐든, MC가 됐든, DJ가 됐든 뭐라도 하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그해 겨울 군대 친구와 함께 종로에 나갔다가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를 지나치게 됐다. 문앞에 탄산음료 ‘오란씨’ 시음 행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공짜 음료수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 유난히 코가 큰 사람이 서 있었는데, 쉘부르의 주인이자 당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PD 겸 DJ로 활동하던 이종환 선생이었다) 무대에서는 이태원, 전언수씨로 구성된 통기타 듀오 ‘쉐그린’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노래를 마친 그들이 객석 손님들에게 경품을 나눠주는 행운권 추첨을 시작했다. 내가 당첨됐다. -“무대로 잠깐 올라오세요.”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 말 몇 마디에 공연장은 폭소와 박수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웃던 이태원씨가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그게…기억이 안 나네요.” “허 참, 자기 이름도 몰라요?” “앗,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허참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이종환 선생이 나를 불렀다. “여기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월급은 없었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니 그걸로 감지덕지였다.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틈틈이 손님들 신청곡 받아 노래를 틀어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러다 잠깐씩 무대에 올라 짤막하게 MC를 볼 일이 생겼는데, 차츰 “쉘부르에 명물이 하나 들어왔다”고 입소문이 났다. 날 보러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늘면서 몇 달 후에는 어니언스, 쉐그린, 김정호, 김세화, 권태수 같은 포크 스타들의 공연을 진행하는 정식 MC로 승격이 됐다. 스탠딩 코미디와 노래를 섞은 ‘허참쇼’라는 코너도 만들어졌다.-MBC의 라디오 PD 겸 DJ였던 박원웅 선생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우리 회사에서 ‘청춘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DJ 한번 해 볼 생각 없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전거에 동태 궤짝이나 채소 꾸러미를 싣고 지날 때 그토록 높게만 보였던 MBC 사옥. 그곳에 내가 입성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쉘부르의 객석에서 소파 몇 개 붙여놓고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다. 노래 ‘편지’의 성공으로 형편이 나아진 어니언스 임창제가 물려준 슬리핑백이었다. 방송 DJ를 시작하면서 동대문 근처에 방을 얻은 나는 임창제의 슬리핑백을 의기양양하게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고 쉘부르 시대를 마감했다. ●남다른 입담…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서 운명의 MC 제안 -우리 집안의 뿌리는 황해도다. 나도 1949년 거기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6·25 전쟁이 나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월남을 했다. 어쩌다가 땅끝인 부산까지 와서 부민동에 터를 잡고, 부산지방 법원에 주사로 취직을 했다. 공무원 아버지를 둔 덕에 생활은 적당히 풍족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소고기 반찬을 싸 주면 나보다 못사는 아이가 배급받아온 옥수수빵과 바꿔 먹기도 했다. -그 당시 법원 주사 정도면 마음 먹기에 따라 엄청난 재산을 모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정한 청탁으로 위에서 압력이 들어오자 신분증 집어던지고 며칠 동안 출근을 안해서 같은 부서 동료들이 와서 겨우 모시고 갔던 기억도 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대쪽처럼 살면 뭐하냐. 실속 좀 차리지”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1956년 부민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려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미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면 남다른 끼와 말솜씨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소풍 가서 사회를 보는 일은 늘 내 차지였다. 그래선지 말이나 행동에 남다른 스타 의식이 강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교문에서부터 영화배우처럼 겉멋을 부리며 걸었다. 저 멀리 3층 교실 창문에서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여자애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과장되게 폼 잡으며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했다. 그때 사진을 지금 보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주위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나의 성우 흉내였다. ‘삼국지’, ‘수호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외워 성대모사를 하면 식구들, 친구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국어 시간에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으로 시작하는 고전 ‘조침문’을 ‘전설 따라 삼천리’의 성우 유기현씨 목소리로 읽어주면 교실은 난리가 났다. -웅변도 좋아해서 영도섬 등대 앞에 가서 소리 높여 목이 쉴 정도로 연습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한번은 중학교 때 ‘북괴 공산주의’를 타도하자는 주제의 웅변대회에 나가 목청 높여 “이 어린 연사 소리높여 외칩니다”를 말하고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학교 바깥에서 철조망에 개를 매달아 놓고 사정없이 몽둥이질을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때 개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 팔고 멍하니 서 있다가 고배를 마신 적도 있다.-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할머니가 등대 쪽에서 꼼장어 장사를 하셨는데 매일 같이 달려가서 꼼장어 먹고, 딱딱한 알사탕 입에 넣고 책가방 던져 놓고 물놀이를 했다. 앙장구(성게), 해삼, 멍게 이런 게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중학교 입학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무렇지 않게 싸가지고 다녔던 소고기 구경을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할 수가 없었다. “크면 반드시 정육점을 할 거야. 그래서 소고기를 실컷 먹으리라.” 공부도 못했고 가세도 기울어서 대학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영남상고에 들어갔는데, 막상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아버지는 “네가 장남인데 대학을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재수를 시작했는데, 길게 하지는 못했다. 안 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크다. -1972년 군 복무 중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박정희 정부는 전군에 ‘문화선전대 경연 행사’를 열어 유신의 필요성을 병사들에게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단 웅변대회 선수로 뽑힌 나를 대대장이 불렀다. “이상용, 너는 오늘부터 웅변 대신에 유신헌법을 홍보하기 위한 문선대 경연 준비를 해라.” -유신헌법이 뭔지 내가 알 리 없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 몸에는 우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유신헌법이야말로 우리 몸에 맞는 옷이다’란 내용을 주제로 코미디를 구성해 연기했고, 그걸로 사단에서 1등을 했다. 그때부터 MC 겸 코미디 담당으로 예하부대를 돌며 유신 홍보 공연을 다녔다. MC와 코미디언으로서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얼마 후에는 사단 내 방송 DJ도 맡게 됐는데, ‘쌀’을 ‘살’로 발음하고 ‘의사’를 ‘어사’라고 말하는 억센 부산 사투리가 문제가 됐다. 문선대 공연에서야 사투리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수단이었지만, 방송에선 아니었다. 교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매일 책과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또한 나중에 사회에 나와 큰 도움이 됐다. ●‘수그려라’가 제 좌우명… 저를 방송인으로 남게 한 건 8할이 ‘노력’ -박원웅 선생의 스카우트로 MBC 라디오 데뷔를 한 이후 몇몇 프로그램이 나를 더 따라왔다. 사람들은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말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위기가 찾아왔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가요계를 평정할 때였으니 1976년쯤인 듯한데, MBC 라디오의 간부 한 분이 나를 호출했다. “라디오 진행자를 모두 전문 아나운서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 미안하다.” 교통정보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에서 하차하라는 말이었다. 방 한 칸 신혼살림에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한 상태. 세간이라곤 쌀통 하나뿐이고, 찬장도 없어 사과상자로 대신하고 있던 우리 부부였다. “저, 좀 더 잘하겠습니다. 이거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소용 없었다. 다시 실업자가 됐다. 폭음을 하고 들어가 아내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방송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안 불러 주면 끝이다. ‘푸른 신호등’에서 졸지에 잘린 뒤 나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MBC 근처에 신발가게를 차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패션구두 같은 것을 떼어다 아내와 같이 팔았다. 조용필이나 이은하 같은 당대의 스타들이 찾아와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망했다. 장사는 말주변만 갖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묘하게도 신발가게를 폐업하자 연달아 방송 요청이 들어왔다. 잠깐 동안의 실업자 생활과 신발가게 실패를 통해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간단한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라디오로 주가가 오르면서 TBC ‘7대 가수쇼’ MC로 TV 데뷔를 했다. 운현궁 공개홀에서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 당대의 스타들과 인사를 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고려진씨와 짝을 이뤘는데 최초의 남녀 공동 MC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150명 정도의 여성 MC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얼마 후에는 MBC ‘토요일 밤에’와 함께 주말 저녁을 양분하고 있던 TBC ‘쇼쇼쇼’의 MC로 위키리(이한필)의 뒤를 이어 발탁됐다. 쇼쇼쇼에서 나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정소녀씨를 만났다. ‘허참’ 하면 ‘정소녀’, ‘정소녀’ 하면 ‘허참’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이 MC를 보던 정혜경씨는 내 이름에 이어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서에서 돌연 ‘정소녀’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기 드문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한창 때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방송을 했다. 아침에 ‘푸른 신호등’ 2시간 진행하고, 잠깐 쉬었다가 ‘싱글벙글쇼’ 2시간, 좀 있다가 ‘허참의 가요앙콜’ 2시간. 이런 식이었다. 방송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극심한 스트레스다. 수십년을 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 고독감을 술로 달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무교동 식당들에서 배달시킨 짬뽕, 짜장면에 소주를 마셔가면서 방송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청취자들은 내 옆에 배달음식 빈 그릇과 소주병이 수북이 쌓여있는지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방송이 끝나면 심신이 헛헛해져 또다시 무교동 낙지골목 등을 훑고 다녔다. 그렇게 일에 술에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갔다가 새벽에 나오는 생활이 이어졌는데, 방송국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나를 대표하는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3일 벚꽃이 한창일 때 처음 전파를 탔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1237회 녹화일이 2009년 4월 2일이었다. 하루도 어긋나지 않는 만 25년. 나의 청춘과 중장년이 그대로 녹아 있는 사반세기와 좀 더 따뜻하게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참 아쉽다. 새로운 포맷의 참신한 가족오락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관두게 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KBS는 가족오락관 후속으로 ‘가정오락관’이란 프로그램을 편성했지만, 몇 번 내보내고는 시청자 반응이 안 좋다며 폐지해 버렸다. 지금은 온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수그려라’가 나의 좌우명이다. 남을 존중하고 경청하려고 애쓴다. 남들 앞에 과하게 나서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항상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무대에 오른다. 후배들한테 말한다. 분위기 뜨고 흥겹다고 해서 객석에 마이크 들이대며 반말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방송인으로서 나의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끼’는 타고났을지 몰라도 나머지를 채운 것은 나의 부단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젊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유머집을 구입해 외우고 또 외웠다. 소설이건 수필이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메모해 암기했다. 교수, 의사, 성악가, 요리사, 언론인 등 자기 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과의 얘기는 모두가 살아 있는 공부였고, 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될 수 있었다. ■허참은 누구 본명은 이상용.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MC’ 중 한 명이다. TBC 동양방송,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에서 수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26년 동안 진행한 KBS ‘가족오락관’은 그의 이름과 동일시된다. 코미디언, 가수,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남상고, 동아대,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수료 ▲TV 프로그램 TBC ‘7대 가수쇼’ ‘쇼쇼쇼’ ‘전국 TOP10 가요쇼’, KBS ‘가족오락관’ ‘도전! 주부가요스타’ ‘왕건오락관’ ‘지구촌 노래자랑’, MBC ‘젊음은 가득히’ ‘지붕뚫고 하이킥’, 대전MBC ‘허참의 토크&조이’, SBS ‘빙글빙글 퀴즈’ ‘잉꼬부부 재치부부’, MBN ‘엄지의 제왕’ ▲라디오 프로그램 MBC ‘싱글벙글쇼’ ‘푸른 신호등’ ‘청춘은 즐거워’, SBS ‘허참의 즐거운 저녁길’ ▲음반 ‘왜 몰라주나’(1976년) ‘추억의 여자·소낙비’(2007년) ▲제29회 한국방송대상(2002년) 제12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2005년) KBS 연예대상(2006년)
  • 메트 오페라 박혜상 “코로나에 삶 허망함 느껴…깊이 있는 음악 나누고파”

    메트 오페라 박혜상 “코로나에 삶 허망함 느껴…깊이 있는 음악 나누고파”

    “코로나19로 해외 지인들이 세상을 뜨기도 했는데, 삶이 너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 많은 위로를 줘 다행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주역 데뷔의 감격을 품고 잠시 귀국한 소프라노 박혜상(34)이 오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랑과 삶’(Amore&Vita)을 주제로 리사이틀을 연다. 최근 전화로 만난 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다르게 들리는 게 클래식의 매력”이라며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시대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곡가들의 음악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1부에서 사랑의 고통을 애절하게 노래한 존 다울랜드의 ‘다시 돌아와요, 달콤한 연인이여’와 비련의 주인공이 부르는 애달픈 아리아인 헨리 퍼셀의 ‘내가 대지에 묻힐 때’, 루치아노 베리오의 4개 민속 음악 중 ‘춤’ 등을 선보인다. 박혜상은 “퍼셀 등 바로크 음악은 언어 안에 들어 있는 내면 세계가 음악으로 잘 표현되는 곡들”이라며 “베리오는 20세기 중요한 현대 음악가로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2부에선 보다 사랑에 집중하며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저녁 노을’, 쿠르트 바일의 ‘낮은 목소리로 말하다’, 빅터 허버트의 오페레타 ‘키스 미 어게인’ 등을 들려준다. 그는 “‘저녁 노을’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죽게 되는 이야기로 외로움과 감동을 나눠보고 싶었다”며 “바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고통을 겪은 유대계 독일인이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풀어내는 깊은 의미가 팬데믹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부연했다.박혜상은 지난해 12월 뉴욕 메트 오페라 ‘마술피리’애서 밤의 여왕의 딸인 파미나를 연기해 갈채를 받았다. 스스로 인생 무대로 꼽은 순간이었다. 메트 오페라의 주인공 역할을 고교 시절부터 막연하게 동경해왔다는 그는 “코로나로 주역 데뷔가 1년 늦춰져 속상했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더 오래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다채로운 음색에 뛰어난 성량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박혜상은 미국뿐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무대에서 활약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이어 세계 최대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DG) 본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두 번째 한국인이기도 하다. 오랜 해외 생활 속에서 인종 차별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한국인만이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한국인임을 많이 드러내고자 했다는 그는 “마음에 많이 와 닿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한국 가곡도 좋아한다”며 오는 8일 뉴욕 필하모닉 공연에서 ‘강 건너 봄이 오듯’, ‘새타령’을 부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박혜상은 또 “작곡가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작곡가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애쓰지만, 제 영혼 또한 잘 풀어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진솔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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