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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미 장례식장…펑펑 울어버린 조카 한상진

    현미 장례식장…펑펑 울어버린 조카 한상진

    해외 촬영 도중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급히 귀국한 배우 한상진이 눈물을 쏟아냈다. 한상진은 7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수 고(故) 현미(김명선)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촬영차 미국에 머물던 중 이모인 현미의 부고를 접하고 곧장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직항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귀국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난 탓에 장례식장에서 이모의 사진을 마주하게 된 한상진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현미의 첫째 아들 가수 이영곤과 부둥켜안고 엉엉 울며 슬픔을 토해내는가 하면 어머니를 잃은 그의 손을 꼭 붙잡기도 했다. 지난 4일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현미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장례는 미국에 머물던 두 아들이 귀국하면서 7일 오전 10시부터 치러지고 있다. 오는 11일까지 5일간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며,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인 서수남이 맡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10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 30년간 소식끊긴 동생,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30년간 소식끊긴 동생,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비 등 치료포기 60대 ‘가족과 만남’천안시, 위기가정 발굴 ‘의료비’ 등 지원가족 만남도 잠시, 병환으로 사망“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30년간 소식 끊긴 동생을 만나게 해주고, 동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천안시는 지난달 27일 병마와 사투를 벌이다 세상을 떠난 A(61)씨의 가족이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7일 밝혔다. 천안시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사회적 고립 가구 발굴을 위해 1인 가구 일제 조사를 추진 중이다. 천안시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생활하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음식물을 전혀 섭취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A씨를 지난 14일 확인했다. A씨는 상급병원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방 한 칸의 월세·건강보험료 등의 연체와 의료비 부담으로 병원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다고 한다. 천안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직원은 홀로 생활하는 A씨의 집을 방문해 기력을 돕기 위해 A씨에게 건강식을 섭취하도록 돕고 대학병원에서 수술 등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천안시는 A씨에게 기초생활 수급 신청, 체납 월세와 건강보험료, 생계비와 의료비를 지원했다. 1일 3~4차씩 안부 전화를 비롯해 30년 이상 가족들과 연력을 끊었던 A씨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가족들과 만남도 잠시. A씨는 지난달 18일부터 병원 치료를 받던 중 혈관면역체계 이상으로 10일 만에 세상을 달리했다. A씨의 가족들은 “집을 떠나 30년간 소식도 모르고 지낸 동생을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며 “건강하게 퇴원했으면 좋았겠지만, 제대로 된 검사와 치료를 받으면서 마지막 순간을 혼자 맞이하지 않도록 마음 써준 천안시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달했다. 장상문 천안시 중앙동장은 “1인 가구로 등록된 1857가구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상시적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철저한 관리체계 구축으로 1인 가구의 건강한 독립생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난 심판자”-목표 200명 살인…‘악마의 일기’ 쓴 등산객 살해범[전국부 사건창고]

    “난 심판자”-목표 200명 살인…‘악마의 일기’ 쓴 등산객 살해범[전국부 사건창고]

    【전국부 사건창고】흉악범죄가 급증합니다. 사건은 사회의 거울입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 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봄을 맞아 산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는 공자 말씀도 있지만 산이 그리 안전하지는 않다. 홀로 멋진 풍경에 넋을 잃거나 호젓한 기분에 빠질 때 갑작스레 닥치는 악천후나 독사와 멧돼지 등도 공포지만, 훨씬 더 흉악한 ‘악마’와 마주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다. 차에서 잠 자던 50대 여성 등산객 흉기 피살설악산 주변 마을 20대의 ‘묻지마 살인’경찰, 소름 돋고 기괴한 ‘악마의 일기’ 발견 2020년 7월 11일 낮 12시 50분쯤 강원 인제군 북면의 설악산 등산로에서 승용차 운전석에 혼자 있다가 깜빡 잠이 든 한모(여·당시 56세)씨는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에 깼다. 그 순간 정체불명의 젊은 남성이 흉기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한씨는 남성을 발로 걷어차며 “왜 그래. 하지 마. 무슨 이유냐”고 연달아 소리쳤지만 흉기 속도는 더 빨라졌다. 한씨는 생면부지 남성의 난도질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한씨와 함께 산을 찾은 일행 2명은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산에서 내려와 승용차 옆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한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수도권에 사는 이들은 이날 오전 8시쯤 이곳에 도착해 버섯채취 겸 등산을 하려고 했으나 한씨가 “몸이 좋지 않다”고 해 둘만 산에 올라간 사이 이런 참변이 발생했다. 경찰은 차량 감식과 탐문 수사 끝에 인근 마을에서 외조부모와 살고 있는 이모(당시 22세)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이날 오후 11시쯤 자택에서 체포했다. 이씨는 범행을 자백했고, 한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실이 드러났다. 8일 서울신문 취재와 기사를 종합하면 이씨는 범행 당일 낮 12시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거주지 인근을 배회하며 ‘살인 대상’을 물색하다 강 건너편 공터에 쏘렌토승용차 1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씨는 강 건너편까지 걸어간 뒤 쏘렌토승용차의 잠금장치가 잠기지 않을 걸 확인하고 혼자 있던 한씨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 ‘묻지마 살인’으로 한씨 사체에는 흉기 자국 49곳이 나 있었다. 경찰은 이씨의 차량과 자택에서 범행에 사용한 흉기 등을 압수했지만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악마의 일기’였다. 일기장, 파란색·하늘색·베이지색·줄무늬 ‘노트’, 메모장에는 사람 아닌 악마의 글로 가득했다.“나는 사람 죽일 권리가 있다” “장대호가 롤모델”살인 날 일기 “흥분, 재미 못 느껴” “끝을 봐야지”그런데 정신감정은 ‘정상’, 대법원 ‘무기징역’ 확정 이씨는 글에서 “나는 깨끗한 백(白)이므로 사람을 심판하고 죽일 권리가 있다”며 “죽이고 싶고 닥치는 대로 죽이겠지만 기본 100~200명이 목표다”고 적었다. 이씨는 또 “인간은 대부분 무례하고 절대 교화될 수 없다. 한 번의 거만함과 무례함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면서 “장대호 사건이 롤모델”이라고 했다. 장대호는 자신이 일하던 모텔의 투숙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범인으로 이씨가 살인을 저지른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씨는 한씨 살해 직후 일기장에 “이미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라고 썼다. 강력한 살인욕구로 미뤄 사건 당일 못 잡았으면 첫 희생자 한씨 외에 피해자가 더 나올 수도 있었다. 이씨는 이동하면서 계속 죽이는 ‘연속살인’을 노렸다. 그는 “폐쇄회로(CC)TV 때문에 (간격을 둔) ‘연쇄살인’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은 일기장을 보고 이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했으나 ‘정상’으로 나왔다. 다만 문장완성 검사에서 “내가 믿는 내 능력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 “내가 젊어진다면 촉법소년이란 법의 구멍을 이용할 것이다”고 적어 살인의 후회나 죄책감이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드러냈다. 검찰은 1심과 항소심에서 이씨에게 모두 사형을 구형했으나 1·2심 재판부는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명령했다. 대법원이 2021년 7월 이씨의 상소를 기각하면서 이 형량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는 물론 대법원 상소까지 포기하지 않고 제기했었다.가정불화 부모에 적개심, 초등 때부터 살인 생각“할 말 없다”더니 2심서 “사죄”, 재판부 ‘진정성 제로’경찰 “혼자 있을 때 차 문 잠그고 휴대전화 필수”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제2형사부는 2020년 11월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개인에 대한 원한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개심과 살인욕구로 볼 때 재범 위험성이 높다. 이씨가 정신과 치료 후 새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하나 그럴 만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며 “반성문을 제출하면서도 부모나 유년시절 환경을 탓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내내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1심 판결문은 이씨와 관련 “초등학생 때부터 가정불화와 부모에 대한 적개심으로 살인을 생각했고, 고교 3학년 때 대검을 구입해 대상을 물색했다. 군 제대 후 자신이 고안한 살인 장치·계획·방법을 일기장에 상세히 그림으로 기록했다. 총기를 살인도구로 쓰기 위해 수렵 면허시험 공부도 했다”고 적었다. 또 “샌드백을 구해 공격연습을 했고 흉기, 톱, 진압봉, 인제군 지도를 준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1심 선고 직전 있은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이씨는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한씨의 여동생은 “이런 말을 하는 이씨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고 분노했다.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는 2021년 5월 “범행 직후에도 이씨는 ‘살인을 했는데 흥분이나 재미, 죄책감이 안 느껴져’ ‘내가 왜 이딴 걸 위해 지금까지 시간을 낭비했는지, 원’ 등 믿기 힘든 냉혹한 태도를 보였다”며 “초등학생 때부터 사람 죽이는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쉬워 보여 직업으로까지 삼고 싶다는 이씨가 뒤늦게 한씨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표시했으나 진정 속죄하고 참회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1심 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인제경찰서 관계자는 “이씨를 용의자로 특정하는 게 쉽지 않았으나 검거 후 범행을 순순히 시인하고 협조적이었다”며 “한적한 산, 도로, 시골 등에 혼자 있을 때 ‘묻지마 범행’을 피하려면 안전에 특히 유의하고 차량에서 쉴 때 최소한 문을 잠그고 휴대전화를 끼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 영등포구, 평생학습도시 위해 서울대와 손잡아

    영등포구, 평생학습도시 위해 서울대와 손잡아

    서울 영등포구가 지난 6일 구민의 평생학습 참여를 지원하고 평생학습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서울대 평생교육원과 ‘평생학습 진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7일 밝혔다. 구청 회의실에서 개최된 협약식에는 최호권 영등포구청장, 이찬 서울대 평생교육원장을 비롯해 양 기관 관계자 7명이 참석하여 평생교육 활성화를 위해 함께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4차 산업 혁명시대, 인공지능(AI) 등장 등으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평생교육의 중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구는 이번 협약으로 서울대 교수 등 우수한 인적 자원과 양질의 콘텐츠를 통해 구민 역량 강화와 명품 평생학습도시로의 도약을 기대한다. 덧붙여 구는 평생교육이 구민 삶의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민관협력, 거버넌스 구축 등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아울러 구는 오는 12일부터 6월 14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총 10회에 걸쳐 ‘묻고 답하고 나누는 릴레이 강연 영등포 지식人’을 진행한다. ▲교육 ▲디지털 ▲과학 ▲트렌드 등 각 분야의 서울대 교수가 고품격 강의를 릴레이로 펼친다. 강의의 첫 시작은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경제지표로 보는 세상:인구변화와 한국 사회’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극복 방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강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구민은 구 통합예약 페이지에서 사전 신청하거나 YDP미래평생학습관에 유선으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구는 지난달 31일 전국 지자체 최초로 연세대와 평생교육 활성화 협약을 체결하고, 구민 3500명에게 평생교육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평생학습도시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앞으로도 삶과 배움이 함께 하는 명품 평생학습도시 영등포구가 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펜타닐 칵테일 때문” 미 래퍼 쿨리오 사망 반년 만에 사인 판명

    “펜타닐 칵테일 때문” 미 래퍼 쿨리오 사망 반년 만에 사인 판명

    그래미상을 수상했던 미국 래퍼 쿨리오가 지난해 9월 목숨을 잃은 것은 펜타닐과 다른 약물들 때문이라고 매니저가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중독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펜타닐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하레즈 포시 매니저는 고인이 세상을 등진 지 반년이 지나서야 최근 유족들이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검시관의 사망 원인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 여덟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냈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한 차례 수상, 세 차례 MTV 비디오뮤직 상을 수상했던 고인은 한 친구의 LA 자택 욕실 바닥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 본명이 아르티스 레온 아이비 주니어였던 고인은 1995년 갱스타스 패러다이스란 노래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나중에 미셸 파이퍼 주연의 영화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s)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들어가면서 그야말로 역대 가장 히트한 랩 노래로 여겨졌다. 이 노래의 성공 덕에 힙합이란 장르가 주류 음악으로 진입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유튜브 조회 수는 10억회를 넘길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쿨리오는 심장 질환과 천식 증상 때문에 아주 고통스러워했다고 BBC의 미국 파트너인 CBS 뉴스는 전했다. 일반적으로 펜타닐 같은 처방된 향정신성 의약품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흡입하거나 다른 약물과 섞어 주입하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을 불러온다. 쿨리오는 펜타닐과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등을 칵테일하듯 혼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CBS는 보도했다. 검시관실은 그의 죽음이 사고로 보인다고 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인 그는 LA 근교 콤프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80년대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갱스터스 파라다이스가 히트하면서였으며 웨스트코스트 랩 장르를 선도했다. 블랙 네임스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랩 가사는 한 친구가 자신에게 물었다는 질문이었다. “넌 네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쿨리오 이글레시아스?” 풀타임으로 힙합에 뛰어들기 전에는 새너제이에서 의용 소방대원으로 일한 특이한 경력도 있었다. 프로듀서 겸 배우로도 활약해 2009년 영국의 ‘셀레브리티 빅 브러더’를 비롯한 수십 편의 TV 드라마와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쿨리오와 함께 요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다른 히트곡으로는 ‘판타스틱 보이지’, ‘롤링 위드 마이 호미스’, ‘1, 2, 3, 4(Sumpin’ New)’, ‘투 핫’ 등이 있다.
  • 대대로 근친결혼한 美가족 모습 충격…“짖으며 소통”

    대대로 근친결혼한 美가족 모습 충격…“짖으며 소통”

    미국에서 가장 많이 근친혼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 가족이 심각한 유전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연을 전했다. 7일 영국 미러·데일리메일 등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오드에 사는 휘태커 가족을 조명했다. 2004년 휘태커 가족의 사진을 찍고 2020년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마크 라이타는 “처음 만났을 때 스릴러영화의 한 장면 같아 충격을 받았다. 가족 일부는 말 대신 끙끙대거나 짖는 소리로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말을 걸면 도망갔다”라고 말했다. 그의 다큐에는 로렌, 티미, 레이 삼형제가 등장한다. 형제들의 아버지 존 휘태커는 석탄 광부였고 어머니 그레이시는 주부였다. 두 사람의 아버지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로, 그로부터 이 가족의 복잡한 근친혼 역사가 시작됐다. 형제들의 부모와 조부모 모두 사촌지간이었다. 그레이시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촌으로, 삼형제의 외할머니도 사촌과 결혼했다. 사촌이자 조부모를 공유한 존과 그레이시는 1935년에 결혼해 15명의 자녀를 낳았고, 이 중 2명이 세상을 떠났고 다수가 장애를 가졌다. 계속된 근친혼으로 휘태커 가족은 유전병을 앓게 됐고, 이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결함이 생겼지만, 휘태커 가족은 유전적 문제가 근친혼으로 인한 것인지도 몰랐다.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이 자폐를 앓고 있으며 끙끙대거나 짖는 소리로만 의사소통을 하며,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휘태커 가족들은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이후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이 때문에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해외 사촌 결혼 대부분 합법 한편 한국에서 사촌 간의 결혼은 혼인 무효 사유에 해당하지만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촌 간 결혼이 허용된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는 3촌까지만,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은 4촌까지만 혼인을 금지한다.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도 사촌누나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친혼이 금지된 일부 나라는 유전병 발생 위험이 높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 때문에 사촌 간의 결혼이 합법인 국가에서도 한 번 사촌과 결혼을 했다면 다음 세대에서는 사촌끼리 결혼을 하지 않는다.
  • [내려다봄] 봄심 흔드는 예당출렁다리

    [내려다봄] 봄심 흔드는 예당출렁다리

    [내려다봄]은 하늘을 나는 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서울신문 멀티미디어부의 연재물입니다.충남 예산군 응봉면에 위치한 예당저수지는 예산군 및 당진군에 걸쳐 있는 홍문평야를 관개하기 위해 1929년 4월에 착공해 63년에 완공된 저수지다.저수지의 면적은 9.9k㎡에 둘레 40km 너비는 2km 길이는 8km에 이르며 저수지를 통해 제공되는 관개면적은 3만 7400k㎡ 달한다.충남 유수의 호수로, 상류 쪽 집수면적이 넓어 민물고기의 먹이가 풍부해 오래전부터 낚시터로 유명했다.낚시터로 유명했던 예당저수지를 지역의 관광 명물로 만들고 관광객을 발길을 이끈 것은 2018년에 완공된 출렁다리다.높이 64m 주탑을 가지고 있는 길이 402m 폭 5m의 다리로 강선에서 줄을 내려 상판에 연결하는 현수교 방식이 채택돼 사람들이 이동할 때마다 출렁이는 것이 특징이다.출렁다리를 따라 놓여 있는 음악분수도 볼거리다. 2020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분수대는 길이 96m 폭 16m로 분사 높이는 110m에 이른다. 면적은 1536㎡에 달해 호수에 설치된 가장 음악분수로 공식 기록에 올랐다. 음악분수는 금요일과 주말 공휴일 기존으로 주 4회 가동한다.출렁다리와 이어지는 5.4km의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수변 생태공원을 마주칠 수 있는데 이곳에 마련된 탐조대에서 황새와 청둥오리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호수 위를 따라 놓인 데크로드 주변에서는 습지식물인 매화마름, 수련, 연꽃, 부들, 창포꽃들도 감상할 수 있다.
  • “조현병·시선강박증”…‘한지민 쌍둥이언니’ 방송출연

    “조현병·시선강박증”…‘한지민 쌍둥이언니’ 방송출연

    정은혜 작가가 한지민과 친분을 공개, 또 한번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의 그림으로 힐링을 안겼다. 6일 방송된 KBS 2TV ‘노머니 노아트’에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를 연기한 정은혜 작가가 출연했다. 이날 정은혜 작가에 대해 전현무는 “특별한 분 응원이 있다”며 소개, 바로 정은혜와 함께 연기한 바 있는 배우 한지민이 깜짝 영상편지로 출연한 것이었다. 한지민은 정은혜 작가에 대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분, 세상을 안아주는 따뜻한 그림이 느껴진다’며 “내가 받은 감동 여러분도 느끼시길,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정은혜 작가를 소개한다 “고 말했다. 한지민 배우의 영상에 정은혜는 “언니다”라며 반가워했다. 전현무가 많이 친한지 묻자 정은혜는 “그렇다, 개인 연락도 한다”며 친분을 드러냈다. 큐레이터 김민경은 “정은혜작가는 배우보다 사실 작가로 유명, 올해 6월 뉴욕에서 전시 예정”이라며 7년차 미술작가로 활동 중 이라고 했다. 작품을 공개했다. ‘은혜씨가 사랑하는 것들’이란 제목의 그림이었다. 자화상과 함께 키운 개 한마리가 있었다. 정은혜 작가는 2016년 뜨거운 여름날 ‘니얼굴들’ 그리기 시작했다며 “모두 예쁘고 멋지고 사랑스럽다”며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림 그리기 전 매일 집에서 친구도 없고 갈데도 없어 외로웠다 나에게 그림을 새로운 시작이었다”며“그림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 그림을 그리는게 좋았다”고 했다. 정은혜 작가는 “그림 그리기 전 시선강박증, 조현병도 왔다 퇴행하면서 바닥을 쳤다”며 “저 때문에 엄마도 고생하셔서 뇌졸증도 오셨다 가족 모두가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 “심부름 다녀오니…” 현미 마지막 목격한 팬클럽 회장

    “심부름 다녀오니…” 현미 마지막 목격한 팬클럽 회장

    고(故) 현미의 임종을 지켜본 팬클럽 회장이 그를 회상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지난 4일 자택에 쓰러져 있는 현미를 처음 발견한 팬클럽 회장 김우일씨는 이데일리에 “대우그룹 창업주인 고 김우중 회장의 부탁으로 조용히 현미를 보필하고 있었다”며 “현미가 30여 년 전 김우중 회장의 노래 연습을 시켜줬다. 그 인연으로 김 회장이 저에게 ‘사기를 당해 삶이 힘들어진 현미 선생님을 돌봐달라’ 부탁하셔서 인연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현미를 처음 만났을 당시 사기로 인해 어렵게 지내고 있었다. 엉망인 상황이었다”며 “2년 전쯤 청소를 하다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는데 사기를 당하신 상태라 의료 보험도 없으셨다. 당시 제가 병원에 보증을 서서 수술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현미의 영화를 제작 중이었다고 밝힌 김씨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일대기를 영화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지난해 ‘남북이산가족’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 등록까지 마쳐 두었다”며 “영화 말미에 직접 출연하시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시게 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임종 순간을 떠올리며 “현미가 아침에 우유를 먹고 저에게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아달라면서 심부름을 시켰다”며 “그렇게 다녀왔는데 선생님이 부엌 옆 쓰레기 버리는 베란다에 쓰러져 계셨다. 지병은 없으셨다. 설거지하시다가 심정지가 와서 엎어지신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현미의 빈소는 7일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마련된다. 두 아들 모두 미국에서 지내고 있어 빈소 마련이 늦어졌다. 장례식은 대한협회장으로 거행되며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10시다.
  • 동물을 끔찍히 사랑했던 하타 마사노리

    동물을 끔찍히 사랑했던 하타 마사노리

    삶의 목적을 인간과 동물의 연결에 뒀던 일본 영화감독 겸 동물학자인 하타 마사노리가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2021년 11월 분슌(문춘) 온라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생명과 함께 살아가면 서로에게 무언가 전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자신의 삶과도 좀 더 함께해보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무쯔고로란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고인은 고양이와 강아지의 우정을 그린 ‘마일로와 오티스의 모험’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28일 71세를 일기로 타계한 일본의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이어 두 번째로 작곡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날 자택에서 갑자기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결국 운명했고, 사인은 심근경색(myocardial infarction)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일본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 반려동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들에서 활약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후지TV의 ‘무쯔고로와 대단한 친구들’이었다. 홋카이도에 목장을 세워 부인과 함께 갈색곰, 말, 강아지 등과 어울려 생애 대부분을 지냈다. 그는 이곳을 “동물의 왕국”이라고 불렀으며 스스로를 무쯔고로(진흙물고기)라 불렀다. 1986년 이 목장에서 ‘마일로와 오티스의 모험’을 촬영했는데 어린이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홋카이도현은 그 영화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왔다며 현의 관광 홈페이지에 그의 목장을 소개하는 코너를 따로 마련했다. 프로필에는 하타의 눈동자는 “지혜와 친절함으로 빛난다”는 문구가 게재돼 있다. 고인은 평소 “내 비전은 천 마리의 재빠른 말들을 어린이들이 몰고 질주하는 것이다. 말들은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도 교류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몇년 동안 고인은 반려동물 주인들에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용적인 조언을 건넸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수십년 동안 크고 작은 동물들과 살갑게 접촉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1989년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마일로와 오티스의 모험’ 리뷰를 통해 하타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출연하는 비슷한 줄거리의 영화보다 훨씬 심오한 깊이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신문은 또 견공 오티스가 반려묘 마일로를 쫓아 넓은 들판과 거친 강물을 따라 달리는 장면을 보면 자연이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평했다. 고인은 남서부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에서 동물심리학 학위를 딴 뒤 교육 업체 각켄(Gakken)의 영화 부문에 입사해 2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마이니치 신문은 전했다. 1968년 ‘우리 동물들은 모두 친구들’의 영어 번역을 매끄럽게 했다는 공로로 일본 수필가클럽 상을 수상했다. 1977년 기쿠치 칸 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동물과의 교류에 힘쓴 명 수필가였지만 한편으로 도박과 경마에 중독된 어두운 면도 있었다. 한때 기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남에게 지는 것을 아주 싫어해 아사다 데쓰야란 인물에게 져본 적이 없다고 어린아이처럼 억지를 부리는 듯한 면모도 지녔다.
  • ‘거인의 숲’서 깔깔, ‘백두대간’에 진지… 즐거움이 방울방울[권다현의 童行(동행)]

    ‘거인의 숲’서 깔깔, ‘백두대간’에 진지… 즐거움이 방울방울[권다현의 童行(동행)]

    따스해진 바람결에 꽃소식이 들려오면 엄마는 조바심이 난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뛰어놀도록 봄나들이를 계획한다. 겨우내 한 살 더 먹고 한 뼘 더 자랐으니 견문도 넓혀 줘야지 싶다. 생태와 역사, 문화까지 알려 주고 싶은 게 너무도 많다. 경북 문경에 자리한 에코월드는 이런 엄마의 욕심을 단번에 해결해 준다.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거대한 놀이터는 물론 백두대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생태 콘텐츠도 체험하고 광부의 하루를 통해 석탄산업이 번성했던 시절을 경험한다. 삼국시대를 실감나게 재현한 드라마 세트장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에 더해 가심비까지 만족스러운 여행지랄까.에코월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자이언트 포레스트’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름 그대로 거인의 숲을 테마로 한 야외 놀이터다. 울퉁불퉁한 나무데크와 커다란 거인 발자국을 지나면 비탈을 활용한 대형 미끄럼틀과 나무줄타기가 기다린다. 경사가 꽤 심한 편임에도 아이들의 비명 소리는 금세 웃음소리로 바뀐다. 아찔한 속도에 겁을 냈던 둘째도 형과 함께 서너 번 도전하더니 깔깔거리며 가파른 언덕을 쉴 새 없이 오른다.미끄럼틀에 조금 익숙해질 무렵 거인의 손과 의자 사이를 연결한 출렁다리, 거인 옷 속에 숨은 미로가 아이들을 반겨 준다. 직접 물을 끌어올리거나 물길을 바꿀 수 있는 신기한 수도꼭지와 커다란 종이배에 올라 선장이 되어 볼 수 있는 연못은 여름이 오면 수영장으로 변신한다.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엄마, 여기가 아파트 놀이터보다 백 배쯤 좋아요!” 아이들은 여름에 꼭 다시 찾아오기를 단단히 다짐받은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생태의 소중함 일깨우는 ‘에코타운’ 자이언트 포레스트를 지나면 ‘에코타운’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낮의 햇살이나 더위를 잠시 피하기 좋은 이곳에는 백두대간의 생태를 주제로 한 미디어전시관 에코서클이 자리한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뜻하는 백두대간은 예부터 수많은 생명이 터전을 이뤘다. 울창한 숲이 자연스레 이어지며 생물이 옮겨 다니는 이동통로가 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주요 하천의 발원지로 산자락을 따라 넉넉한 물줄기가 뻗어 나간다. 때문에 백두대간은 우리 역사에서도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다. 에코서클에서는 다채로운 미디어콘텐츠를 통해 이 같은 백두대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전시내용을 바탕으로 한 퀴즈를 맞히면 백두대간 환경지킴이 임명장도 메일로 받을 수 있다. 둥근 천장을 디스플레이로 활용해 백두대간의 사계절을 보여 주는 영상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에코타운 1층 키즈플레이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에어바운스도 무료로 운영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날씨나 미세먼지에 상관없이 놀 수 있는 공간이라 반갑다. 시즌에 따라 블록이나 인형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2층에는 친환경 미래 농업기술을 눈으로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에코팜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자리한다. ●옛 은성광업소 자리에 ‘석탄박물관’ 이제 석탄박물관으로 향한다. 석탄이 주요 에너지원이었던 시절, 문경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탄전지대로 수천 명의 광부가 매일 갱도를 드나들었다. 연탄 모양의 외관이 인상적인 이곳은 1938년부터 1994년까지 석탄을 캐던 은성광업소 자리다.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던 날, 800여명의 광부들이 모여 아쉬움을 나눴다고 하니 문경에서도 꽤 규모가 컸던 탄광이다. 1999년 전문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이곳에는 석탄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함께 석탄 운반용 증기기관차와 연탄제조기 등 관련 산업유물이 다수 전시돼 있다. 에코월드의 전신이기도 한 석탄박물관은 지난달부터 노후 시설 정비와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을 위한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공사는 올해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그래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실제 갱도를 이용한 은성갱도와 거미열차, 탄광사택촌은 정상 운영된다. 1963년에 만들어진 은성갱도는 광업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사용됐다. 갱도의 깊이는 약 800m이지만, 석탄을 캐내기 위해 파고들어 간 전체 길이는 무려 400㎞에 달한다. 광부들은 석탄을 캐기 위해 이 갱도를 하루 3번 번갈아 드나들었는데, 이들의 검은 땀으로 해마다 질 좋고 열량 높은 석탄이 30만t 이상 생산됐다.●갱도 질주하는 ‘거미열차’로 시간여행 이제 은성갱도는 석탄을 채취하는 과정을 재현한 전시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광부의 하루를 영상과 노래로 재현한 실감콘텐츠에 아이들의 관심도 높았다. 갱내에서 작업하는 광부들의 안전을 위해 폭발성 가스를 측정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검정장비가 나오기 전까지 가스에 예민한 카나리아를 사용했다는 설명은 어른들에게도 흥미로웠다. ●‘사택촌’ 당시 고단한 생활상 생생 거미열차는 거미 모양의 열차를 타고 갱도를 이동하면서 다채로운 볼거리를 체험한다.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터널을 지나면 고생대 습지와 함께 지질운동을 통해 석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차례로 펼쳐진다. 이어 석탄의 발견과 이용, 굴진과 채탄 작업, 붕락 사고, 석탄 운반 장면이 실제 갱도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표현된다. 열차가 수시로 방향을 바꾸고 속도도 빠른 편이라 아이들은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즐거워했다. 은성광업소 직원과 그 가족들이 살던 사택촌을 모델로 만들어진 공간도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가족 위해 근면하고 나라 위해 증산하자’는 문구가 적힌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직원사택과 광원사택이 자리한다. 직원사택은 과장급 이상이 거주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사택을 보수·개조한 형태가 눈길을 잡는다. 사택 가운데에는 공동우물이 있는데, 당시에는 집집마다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공동우물이나 공동수도를 사용했다. 은성광업소에는 공동수도가 있어 비교적 편리하게 물을 길었다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구판장과 푸줏간, 주포, 목욕탕, 이발소가 이어진다. 구판장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곳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광부들은 인감증을 보여 주고 외상거래를 주로 했다고 한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몸에 잔뜩 묻은 탄가루를 벗겨 내던 목욕탕과 한잔 술에 피곤을 달래던 주포는 광부들의 하루에 없어서는 안 될 장소들이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사택촌 풍경에 호기심이 폭발한 모양이다. 엄마도 이 시절을 겪어 보지 않았건만 자꾸 질문이 쏟아진다. “그동안 광부는 옛날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우리 할아버지처럼 가까워진 기분이에요.” 맞다. 박물관에 갇힌 딱딱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네 할아버지 이야기다. 머리로만 이해했던 지식들이 가슴을 두드리는 애틋함이 됐다.마지막으로 귀여운 모노레일을 타고 ‘가은오픈세트장’에 올랐다. 드라마 ‘연개소문’, ‘광개토대왕’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이곳은 고구려의 옛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현존하는 고구려성을 직접 답사한 것은 물론 오랜 자료조사와 치밀한 고증을 통해 세트장을 완성했단다. 분단 상황에서 고구려 유적을 만나기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볼거리다. 특히 첫째는 평양성과 안시성 등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고구려의 흔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신라, 백제 못지않게 화려한 고구려궁과 철기문화가 중심이 된 대장간마을 등 세트장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연둣빛 새순과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른 봄꽃들도 시간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주민 사랑방 변신한 가은역 ‘필수코스’ 에코월드 입구에 자리한 가은역도 꼭 들러 봐야 한다. 1956년에 처음 영업을 시작한 이 역의 원래 이름은 은성역이었다. 은성광업소에서 생산된 석탄을 운송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깊고 어두운 갱도에서 힘겹게 캐낸 검은빛 희망을 싣고 화물열차는 부지런히 도시로 내달렸다. 광부만 수백 명에 사택촌 규모도 상당했으니 여객열차가 하루 12회나 운행될 만큼 북적이는 기차역이었다. 하지만 은성광업소 폐광과 함께 가은역도 운명을 다했다. 2004년 결국 폐역이 됐고, 이후 주거지로 사용되면서 숙직실 창호가 변형되는 등 훼손이 심각했다. 다행스럽게도 2006년 가은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건축물에 대한 보존이 결정됐다. 지금은 문경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만든 음료와 베이커리를 내는 카페로 변신해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석탄산업으로 번성했던 문경의 과거를 조금 더 경험하고 싶다면 철로자전거를 추천한다. 지금은 레일바이크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철로자전거가 이곳 문경에서 처음 선보였다. 폐선된 가은선을 활용해 진남역에서 구랑리역, 구랑리역에서 먹뱅이 구간을 각각 왕복한다. 과거 석탄을 싣고 나르던 철길을 두 발로 달리며 만나는 풍경도 특별하다. 대부분의 구간에서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여도 부담이 적다.●문경새재 역사가 한눈에 ‘옛길박물관’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가은역 근처에서 운행하는 꼬마열차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앙증맞은 기차 위에서 담박한 박공지붕을 얹은 가은역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근처에 광부의 도시락을 내는 식당도 있다. 계란프라이를 얹은 추억의 양은도시락도 정겹고, 검은색 연탄 모양 두부구이가 아이들은 물론 엄마 아빠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문경의 봄을 만끽하기엔 문경새재가 제격이다. 탁 트인 잔디밭과 싱그러운 초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완만한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아이들과 걷기 좋다. 이왕이면 초입에 자리한 옛길박물관부터 들러 보자. 문경새재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어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던 이곳은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보다도 길이가 짧았다고 한다.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향했던 이들 중에는 알려졌다시피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가 많았다. 그러나 당시 영남지역 과거 합격률이 13% 정도였다니, 장원급제의 길이라기보다 낙방의 길에 가까웠다. 하지만 낙방했다고 모두가 실망과 비관에 빠지지는 않았다. 이들 중 일부는 한양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 가운데 한 뼘 더 성장한 이들도 있을 테고, 길 위에서 깊은 성찰과 사유를 이룬 끝에 벼슬길로 나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첫째는 과거시험 없는 요즘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4월 마지막 주에는 문경새재를 배경으로 찻사발축제도 열린다.●가슴 뜨거워지는 ‘박열의사기념관’ 박열의사기념관도 놓치면 안 될 장소다. 영화 ‘박열’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일제의 심장 한가운데서 마음껏 그들의 불합리한 식민정치를 비판하고 희롱했던 인물이다. 3·1운동 당시 지하신문을 발행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그는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찾아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이곳에서 보다 급진적인 인식을 쌓게 되면서 무정부주의, 그러니까 아나키즘을 만나게 된다. 1923년 관동대학살이 발생하자 일본은 진상조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조선 유학생, 그중에서도 박열을 주동자로 지목하게 된다. 그는 일본 법정에 조선시대 관복에 예복으로 입던 사모관대를 하고 나타나는가 하면 재판관을 그대라고 호칭하는 등 일본 재판 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을 벌인다. 사형판결을 받고도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며 비웃고는 만세를 부르기까지 했다. 다행히 일본 패망과 함께 출감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면서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히다시피 했다. 장난기 가득했던 아이들도 이곳에서만큼은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몰랐던 독립운동가를 또 한 명 알게 되었고, 우리 가족 모두 또 한 번 가슴이 뜨거워졌다. 여행작가
  • [열린세상] ‘위장 탈당’의 복당/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위장 탈당’의 복당/유창선 정치평론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는 민형배 의원의 복당 여부가 정국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민 의원은 지난해 4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의 ‘비교섭단체 몫’이 되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에 따라 안건조정위원회의 찬반 구도는 4대2가 됐고, 검수완박 법안은 법사위 길목을 통과해 본회의까지 갈 수 있었다. 당시 민주당에는 탈당까지 해 가며 결정적 역할을 해 준 민 의원이 ‘수훈갑’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헌재는 검수완박 입법이 무효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안 처리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고 국민의힘 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맞지만 법을 무효화할 정도로 중대한 하자는 아니었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었다. 법의 효력은 인정됐지만 재판관 5대4의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렸고 ‘절차적 하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됐다. 재판부가 적시한 절차적 하자란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헌재는 지적했다. 이런 판단은 ‘위장 탈당’한 민 의원을 비교섭단체 몫의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한 사실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런데 헌재의 이 같은 판결 직후부터 민주당 안에서 민 의원의 복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안민석 의원은 “민형배 의원은 검찰 개혁의 희생자”라면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민 의원 복당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꼼수라는 식으로 평가됐는데, 법안 통과를 위한 민 의원의 결단이었다고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이제 복당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박주민 의원),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박범계 의원) 등의 복당 찬성 의견들이 이어지고 있다. 박용진, 이원욱 의원 등이 반성과 사과가 먼저라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민 의원의 복당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민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다. “제 탈당에 대해서 헌재가 어떤 얘기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판단하고 있지 않아요.” 헌재는 이미 입법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를 지적했고, 이것이 위장 탈당과 관련된 것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헌재 결정문에 위장 탈당이라는 정치적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민주당 안에서는 민 의원의 복당 문제를 놓고 ‘신청’이냐 ‘요청’이냐 하는 형식에 대한 고민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복당은 기정사실이고,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갈 방법이 무엇인지 저울질만 남은 모습이다. 국회법에 안건조정위원회를 두었던 취지는 과반 의석을 가진 다수당이 법률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수당과 소수당 의원이 동수인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당 의원이 일시적으로 탈당해 야당 몫으로 끼어들어 가는 것은 그런 국회법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행위다. 그런데도 위장 탈당을 한 의원이 금의환향하는 광경이 벌어진다면 이런 선례는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이다. 잘못한 일이 칭송받는 사회에서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가치들이 전복되고 만다. 정치적 특공대 역할을 했던 동료 정치인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선당후민’(先黨後民)하는 모습을 민주당이 보여서는 안 될 일이다. 위장 탈당은 벌을 받으면 받았지, 그렇게 격려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
  • [지방시대] 광주에 ‘오월의 봄’은 오는가/서미애 전국부 기자

    [지방시대] 광주에 ‘오월의 봄’은 오는가/서미애 전국부 기자

    반세기 전 광주의 봄은 잔인했다. 1960년 4·19 광주학생의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광주의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다가 목숨을 잃고 몸을 다쳤다. 이들의 항쟁과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켰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실은 그들 덕분이다. 광주항쟁 당시 현장을 취재한 월스트리트저널 노먼 소프 기자는 “앞 세대가 자유선거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우려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지금의 젊은 세대는 배우고 진심으로 감사하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의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라는 표현에 깊은 떨림이 있다. 그때 당시나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살상이고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잊고 있다. 내가 20대였을 때 ‘4·19’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세상을 몰랐기 때문이다. 43년이 지난 5·18도 저 멀리에 있다. 세월의 무게가 마음마저 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4월과 5월이 오면 가슴이 저린다. 기념식과 추념식이 열리면 당시의 아픔이 되살아난다. 올해 ‘광주의 봄’에는 화해와 용서가 화두가 됐다.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았다. 최근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광주를 찾아와 5·18 피해자와 유족을 만나 큰절하고 사죄했다.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 전국적인 관심거리였다. 전두환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자식도 아니고 손자가 대신했다. 전씨는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18 민주화운동 학살 주범입니다. 사죄할 기회를 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국민 대다수는 전두환씨가 주범이라는 사실을 이미 안다. 하지만 본인의 고백을 들으려고 기다렸지만 실패했고 손자의 고백을 듣게 됐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올해 광주의 봄은 전씨의 ‘사죄’와 5·18 유족들의 ‘따뜻한 포옹’으로 화창하게 맑아졌다. 전씨 일가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5·18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었으니 갈증이 심했다. 광주시민들은 “4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18을 잊지 못하고 전두환씨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의 손자를 품어 줬다. 고맙다고도 했다. 아픈 상처를 다시 후빈 듯 아프고 시리지만 전우원씨의 광주 방문과 사죄의 마음을 반겼다. 광주시민들은 5·18 진상을 모두 밝힐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적인 사죄와 포용을 넘어 냉정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광주시민들은 바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5·18의 비극과 아픔을 치유하는 화해의 길은 이제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5월이 되면 광주시민들은 다시 ‘도청 분수대 광장’에 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함께 나가자’를 노래할 것이다. 서로를 북돋울 것이다. 새롭게 다가올 광주의 ‘오월의 봄’을 기다려 본다.
  • 故 현미 장례 ‘가수협회장’…오늘부터 5일간 일반 조문

    故 현미 장례 ‘가수협회장’…오늘부터 5일간 일반 조문

    지난 4일 85세를 일기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가수 현미의 장례식이 7일부터 11일까지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된다. 6일 대한가수협회에 따르면 유족과 협의한 끝에 서울 중앙대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에서 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조문은 7일 오전 10시부터 받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가요계의 큰 별이 진 것이 아니라 밤하늘에 여전히 빛나며 후배들을 지켜보리라 믿는다. 고인께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자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1987년 먼저 세상을 떠난 작곡가 이봉조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영곤·영준)이 있다.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기도 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유족이 귀국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장례 일정 협의가 늦어졌다.
  • 느티 샘의 위로… 협력과 공존만이 우리를 지탱한다

    느티 샘의 위로… 협력과 공존만이 우리를 지탱한다

    손으로 만든 배낭을 항상 메고 다니는 느티 샘(선생님)은 커다란 느티나무 근처에서 휙 사라져 버리곤 한다. 이상한 일은 또 있다. 느티 샘은 새봄이 고모가 초등학생이었던 20년 전에도 기간제 교사로 일했는데, 졸업식 사진과 지금 모습이 똑같다. 샘은 혹시 도깨비가 아닐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대포읍’에는 수백년 전부터 마을을 지켜 온 느티나무가 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본 헌병이 숲으로 도망간 이들을 찾아내려 불을 질렀다. 느티의 정령은 이때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100여년 동안 대포읍 사람들과 살고 있다. 소설은 느티나무의 정령인 느티 샘의 도움으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창비)을 쓴 김중미 작가 신작 소설로, 가난한 삶 속에서도 연대를 이뤘던 20여년 전 괭이부리말의 이야기를 대포읍으로 옮겨 온 듯하다. 베트남 엄마를 둔 중학생 도훈이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목숨을 끊으려던 아빠를 쫓아갔다가 느티 샘을 만나 위로를 받는다. 대포읍에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고, 느티 언덕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도훈이는 친구들과 함께 댄스 동아리 ‘레인보우 크루’를 다시 결성하고 대회에 출전해 이를 알리기로 마음먹는다. 느티의 정령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가져왔지만, 다문화가정 아이들로 복작이는 대포읍의 모습은 더없이 현실적이다. 베트남 빵집이라든가, 맵지 않은 떡볶이 개발에 나선 한국 분식집, 민주화를 바라는 안내문을 부착한 미얀마 식당을 비롯해 나이지리아에서 온 니카, 중국 교포 금란이, 베트남에서 태어난 민용이 등의 사연을 생생하게 펼친다. 느티나무는 둘레가 10m나 되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면 훨씬 커다란 방이 나온다.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 모여 동생들의 공부를 돕고, 그림책을 읽어 주고 다 같이 밥을 먹고 놀기도 한다. 저자는 실제로 30년 넘게 인천 지역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영락없는 공부방 같다. 저자는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에서 소설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공동체의 연결고리는 희미해졌다. 소설 속에서 이를 복구하는 건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협력하고 공존하는 것밖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안에 그런 욕구와 힘이 있다는 걸 깨닫고 소설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소설은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 시대에 다문화가정을 보는 시선에 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주요 도시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에 관한 우리의 눈길은 여전히 싸늘하지 않는지 묻는다.“새봄이 아빠 말로는 대포읍 주변이 도시화하기 시작한 80년대부터 이미 전통문화는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오히려 이주민들 덕분에 대포읍은 다른 지방 도시처럼 쇠락하지 않고 활력이 생겼다”(135쪽)는 말처럼, 마을을 살린 건 어쩌면 이들 ‘이방인’일 수 있다.
  • “어쩌다 보니, 모두 다 내친김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말하다

    “어쩌다 보니, 모두 다 내친김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말하다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난 일본의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자서전이 개정을 거치고 출판사를 바꿔 재출간됐다. 사카모토는 2007년부터 일본 잡지 ‘엔진’의 스즈키 마사후미와 인터뷰한 것을 술회하듯 정리해 2009년에 자서전을 냈다. 개정판이 나온 건 5년 후다. “내가 어떻게 현재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적잖이 흥미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나 자신의 일이니까. 어떻게 이런 인생을 보내게 되었는지 나로서도 무척 궁금하다”로 책을 시작한다. 유치원에 다니던 네다섯 살쯤 숙제로 ‘토끼의 노래’를 만들며 생애 처음 곡을 썼던 강렬한 기억, 10대 시절 드뷔시와 비틀스에게 반했고, 민족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학교 친구들을 규합해 학생운동에 나섰던 일,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를 결성해 데이비드 보위 등과 어울린 일,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영화음악에 뛰어들어 ‘마지막 황제’(1986)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소회 등을 풀어낸다. 특히 ‘마지막 황제’에 배우로 출연했다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강압 속에 곡을 만든 일이 흥미롭다. 촬영이 끝난 지 반년 뒤에 전화를 걸어 와 “당장 즉위식 음악을 만들라”고 해 2주에 걸쳐 밤을 새워 가며 곡을 썼다고 했다. 탈원전을 주장하고 삼림 보호단체를 결성하며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의 어린이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등 사회참여 활동을 펼친 것에 대해 “음악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어쩌다 보니 다양한 일에 관여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는 처지가 됐다”며 “뭐랄까, 모두 다 내친김에 했다고나 할까”라고 덤덤하게 털어놓는다. “내가 만들어 내는 음악은 인간 세계나 현재의 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보다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가만가만 늘어놓고 찬찬히 바라본다.”
  • 국립마한역사센터 고대 마한 심장에 나주 ‘100년 노력’

    국립마한역사센터 고대 마한 심장에 나주 ‘100년 노력’

    광주시와 전남도, 전북도, 충남도 등 광역자치단체 4곳이 문화재청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경쟁이 시작됐다. 문화재청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고대 문화를 꽃피운 마한의 역사를 복원하고 관광문화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설립한다. 그동안 ‘고대 마한의 수도’를 자처했던 전남 나주시는 지난달 17일 도에 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6일 밝혔다. 나주가 가진 마한의 역사성과 상징성, 당위성을 신청서에 담았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나주를 빼놓고 영산강 유역 마한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주는 마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나주에 유치하는 것은 마한 역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립하려고 노력한 나주 시민들의 노력과 성과의 마침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한 역사 실리콘밸리 나주나주는 ‘내륙의 바다’ 역할을 한 영산강의 물길을 통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한 고대 문명 교류의 거점이자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의 핵심 지역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나주는 국보 295호 ①금동관을 비롯해 보물 ②금동신발과 같은 마한 관련 지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금은 장식 위세품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다.특히 마한 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대형 옹관고분,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큰 3.28m의 옹관(왕곡면 마산 화정일 1호구분 출토 옹관)이 2008년 발굴됐다.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 유적도 나주 오량동에 있다. 옹관 가마는 마한 시대에 옹관을 생산하고 유통했던 생생한 유적이다. 이 때문에 나주는 ‘마한의 실리콘밸리’로 손색이 없다. 2021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영산강 유역 마한역사문화권 12개 지방자치단체별 관련 유적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총 2567개 유적 가운데 나주시에만 403개가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독보적으로 많다.●마한 복원사업 주도 100년 마한 관련 역사성도 남다르다. 나주의 마한사 복원 최초 기록은 10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에서 발굴한 반남 신촌리 고분 9호분에서 금동관, 금동신발을 비롯한 지배층의 위세품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공주 무령왕릉, 경주 금관총의 발굴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때 한반도 내 최상위 지배자의 상징인 금동관이 나주에서 처음 발굴돼 의미가 크다. 정부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 국가와 공존했던 가야역사문화의 역사적 중요성을 뒤늦게 알고 국정과제로 채택해 체계적인 복원·정비를 추진했다. ‘잃어버린 역사’로 등한시했던 마한역사문화를 2020년에 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포함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주시의 숨은 노력이 작용했다. 어느 지역보다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마한사 복원사업을 추진했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나주시는 1988년 반남고분 종합조사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잃어버렸던 마한사 조사와 연구를 사실상 주도했다. 특히 국립나주박물관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등 나주에 모여 있는 국립 학술연구조사 기관과 협업해 성과를 거뒀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1996년 영산강 유역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을 발굴·조사했다. 그 결과 유례없는 일명 ‘아파트형 고분’ 형태의 다양한 묘제를 발굴해 냈다. ●마한 새로운 100년 불굴의 도전 나주시는 2016년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의 크기와 구조를 국내 최초 1대1 비율로 복원해 놓은 복암리 고분전시관을 설립했다. 2002년에는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를 발견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70기의 옹관 가마와 각종 유구를 출토했다. 옹관 제작에 관한 궁금증도 이때 풀렸다. 옹관 재현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 고고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나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촌 고분을 발굴·조사했다. 2014년 정촌 고분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 한 쌍이 금동관 편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나주시의 노력은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해야 하는 당위성과 연결된다.●‘잃어버린 역사’ 재정비 최적지 반남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80년 만인 1997년 국보 제295호로 지정됐다. 나주시는 금동관 출토 100주년인 2017년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특별전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를 연 데 이어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재조명’을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며 나주에서 출토된 마한 시대 금동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조명했다. 나주시는 검인정 교과서에 3~4줄 설명에 그쳤던 마한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5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마한 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여기에 마한문화제(6회)와 마한 관련 학술대회(14회)를 열고 마한 유적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준비하는 등 지금도 마한 역사를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렇듯 나주는 마한사 복원 노력의 흔적과 정책적 성과가 있어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독보적인 지역이다. 나주시는 대표 축제인 마한문화제를 개최해 2000년 전 영산강 유역에 융성했던 고대 마한의 역사·문화 중심지임을 알리고 있다. 시는 오는 10월 국립나주박물관 일원에서 ‘제7회 대한민국 마한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윤 시장은 “마한문화제가 역사문화관광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며 “잔칫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함께 즐기고 힐링하는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 [만평] 조기영의 세상터치 2023년 4월 7일
  • 나주 마한을 탐(探)하다 “국립마한역사센터 유치 나섰다”

    나주 마한을 탐(探)하다 “국립마한역사센터 유치 나섰다”

    광주시와 전남도, 전북도, 충남도 등 광역자치단체 4곳이 문화재청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경쟁이 시작됐다. 문화재청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고대 문화를 꽃피운 마한역사를 복원하고 관광문화자원으로 활용하려고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설립한다. 그동안 ‘고대 마한의 수도’임을 주창했던 전남 나주시는 지난달 17일 도에 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6일 밝혔다. 나주가 가진 마한의 역사성과 상징성, 당위성을 신청서에 담았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나주를 빼놓고 영산강 유역 마한 역사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주는 마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나주에 유치하는 것은 마한 역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립하려고 노력한 나주시민들의 노력과 성과에 마침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한역사 실리콘밸리 나주나주는 ‘내륙의 바다’ 역할을 한 영산강 물길을 통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고대 문명 교류의 거점이자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의 핵심 지역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나주는 국보 295호 금동관을 비롯해 보물 금동신발과 같은 마한 관련 지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금은 장식 위세품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다. 특히 마한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대형 옹관고분,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큰 3.28m의 옹관(왕곡면 마산 화정일 1호구분 출토 옹관)이 지난 2008년 발굴됐다.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 유적도 나주 오량동에 있다. 옹관 가마는 마한시대에 옹관을 생산하고 유통했던 생생한 유적이다. 이 때문에 나주는 ‘마한의 실리콘밸리’로 손색이 없다. 2021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영산강 유역 마한역사문화권 12개 지자체별 관련 유적알 총괄한 결과 총 2567가지 중 나주시에만 403가지가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독보적으로 많다. ● 마한 복원사업 주도 100년 마한 관련 역사성도 남다르다. 나주의 마한사 복원 최초 기록은 10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에서 발굴한 반남 신촌리 고분 9호분에서 금동관, 금동신발을 비롯한 지배층의 위세품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이 시기에는 공주 무령왕릉, 경주 금관총의 발굴조차 이뤄지지 않은 때로 한반도 내 최상위 지배자의 상징인 금동관이 나주에서 처음 발굴돼 의미가 크다.정부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 국가와 공존했던 가야역사문화의 역사적 중요성을 뒤늦게 알고 국정과제로 채택해 체계적인 복원·정비를 추진했다. ‘잃어버린 역사’로 등한시했던 마한역사문화를 2020년에 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포함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주시의 숨은 노력이 작용했다. 어느 지역보다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마한사 복원사업을 추진했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나주시는 1988년 반남고분 종합조사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잃어버렸던 마한역사 조사와 연구를 사실상 주도했다. 특히 국립나주박물관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등 나주에 모여 있는 국립 학술연구조사 기관과 협업, 성과를 거뒀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6년 영산강 유역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을 발굴·조사했다. 그 결과 유례없는 일명 ‘아파트형 고분’ 형태의 다양한 묘제를 발굴해냈다. 나주시는 2016년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의 크기와 구조를 국내 최초 1대1 비율로 복원해놓은 복암리 고분전시관을 설립했다. 2002년에는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를 발견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고 70기의 옹관 가마와 각종 유구를 출토했다. 옹관 제작에 관한 궁금증도 이때 풀렸다. 옹관 재현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 고고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13년부터 2016년에는 나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촌고분을 발굴·조사했다. 2014년 정촌 고분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 한쌍이 금동관 편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나주시의 노력은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해야 하는 당위성과 연결된다. ● ‘잃어버린 역사’ 재정비 최적지 반남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80년 만인 1997년 국보 제295호로 지정됐다. 나주시는 금동관 출토 100주년인 2017년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특별전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를 연 데 이어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재조명’을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 개최하며 나주에서 출토된 마한시대 금동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조명했다. 나주시는 검인정 교과서에 3~4줄 설명에 그쳤던 마한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5년 전국에서 처음 마한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여기에 마한문화제(6회)와 마한 관련 학술대회(14회)를 열고 마한유적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준비 등 지금도 마한역사 규명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이렇듯 나주는 마한사 복원 노력의 흔적과 정책적 성과가 있어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독보적인 지역이다. 나주시는 대표축제인 마한문화제를 개최해 2000년 전 영산강 유역에 융성했던 고대 마한 역사·문화 중심지임을 알리고 있다. 시는 오는 10월 국립나주박물관 일원에서 ‘제7회 2023년 대한민국 마한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윤 시장은 “마한문화제가 역사문화관광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며 “잔칫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함께 즐기고 힐링하는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준비해가겠다”고 말했다.
  • 이집트서 발굴된 3500년 전 12개의 잘린 오른손의 비밀 [핵잼 사이언스]

    이집트서 발굴된 3500년 전 12개의 잘린 오른손의 비밀 [핵잼 사이언스]

    과거 이집트 북부 궁전에서 잘린 채 발굴된 12개의 사람 오른손의 비밀이 드러났다. 최근 독일 고고학 연구소 등 공동연구팀은 고대 이집트 중심지였던 아바리스의 힉소스 궁전에서 발굴된 '잘린 오른손'에 대한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신호에 발표했다. 지난 2011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잘린 손들은 약 3500년 전의 것으로 당시 고대 이집트를 지배했던 힉소스 궁전 앞 알현실 앞뜰에서 발굴됐다. 힉소스는 서아시아에서 기원한 인종으로 고대 이집트를 침략한 후 기원전 1650~1550년 경 이집트에 지배 왕조를 세웠다. 100년이 넘는 통치 기간 동안 힉소스 왕조는 아바리스를 수도로 정하고 철제 무기와 야금술 등을 도입해 이집트에 군사적,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연구팀에 따르면 12개의 손은 모두 성인의 것으로 그중 1개는 여성이며, 손이 팔에서 깨끗하고 정교하게 잘린 것이 특징이다. 다만 이 손들이 사람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절단됐는지 혹은 죽은 후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힉소스인들은 손, 그것도 오른손만 정교하게 절단해 알현실에 둔 것일까? 이에대한 해답은 힉소스 왕조가 전쟁 후 세운 묘비 비문에 있다. 당시 이민족인 힉소스는 고대 이집트인의 사후 세계관에서 육체의 온전함이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라 믿었다. 이 때문에 오른손이나 종종 머리, 귀 등을 잘라야 적군의 힘이 영원히 무력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 12개의 잘린 오른손은 포로로 잡은 적군의 것으로, 이를 알현실에 둔 것도 궁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섬뜩한 경고인 셈이다. 연구를 이끈 줄리아 그레스키는 "적군의 손을 자르는 것은 처벌이 아닌 일종의 트로피 수여식"이라면서 "이같은 관행은 무덤 비문 등에 새겨져 있었으나 그 물리적 증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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