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길의 부산업계 실태 점검(심층취재)
◎신발생산 고품질·다품종화 시급/불황으로 1천여업체중 백90곳 문닫아/정부,합리화업종 지정… 2천억원 지원/중·비 등 저가품공세 큰 타격… 협미화단지 조성 필요
부산의 신발산업이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불과 2∼3년전까지만해도 우리나라의 신발산업은 섬유·조선·철강·전자산업과 함께 5대 수출 전략산업으로 군림했다.특히 부산의 신발산업은 한동안 우리나라 전체생산량의 75%,전체수출량의 85%를 차지,「신발왕국」으로까지 불렸다.그러나 최근들어 부산지역 종업원 50인이상 신발업체 1천80여개 가운데 18%에 가까운 1백90여개 업체가 경기 침체로 인한 경영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다.특히 지난해에는 굴지의 삼화·진양·성화 등을 비롯,71개 업체가 문을 닫아 지역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안겼다.이처럼 신발산업이 사향길에 접어든 것은 밖으로는 세계적 불황인데다 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후발국의 중저가품 공세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시설의 노후화와 자체브랜드 개발 부진,고임금 등의 내부적 요인 등도 몰락을 부채질하고있다.국내 신발업계의 메카인 부산지역의 실태를 점검하고 향후 진로를 찾아 본다.
▷실태◁
부산에는 현재 종업원 50명 이상을 기준으로 할때 전국의 75.9%에 해당하는 2백20개의 신발업체가 있으며 생산라인과 수출비중은 전체의 77%,85.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수치들은 국내 신발산업에서 차지하는 부산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부산의 신발산업은 7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지난 20년 시작된 신발산업은 50년 도입기를 거쳐 도약기인 77년 한햇동안 무려 2억4천만족을 생산하는 가파른 상승세가 지속됐다.이 숫자는 전세계 신발 총생산량의 6%를 차지하는 것이다.
○70년대 황금기 누려
고용면에서도 내수위주로 생산하던 70년대까지는 종사자가 2만2천명에 불과했으나 수출산업으로 전환된 75년에는 6만명,77년엔 7만9천명까지 늘어나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의 신발산업은 90년를 고비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지난 3년간 신발산업의 경기퇴조로 인한 불황을 이기지 못해 폐업한 업체수는 종업원 50명 이상을 기준할때 모두 1백90개에 이른다.이는 현재 부산지역에 남아있는 신발제조업체 8백89개업체(부품제조업체포함)의 21.3%에 해당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내 굴지의 삼화고무·성화·진양 등이 잇따라 문을 닫아 지역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신발산업의 이같은 연쇄 도산에 따른 부도액 규모는 지난 90년 31억원에 머물렀으나 91년 2백47억원,지난해에는 무려 5백13억원으로 급증해 신발산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올 1·4분기중 부산지역 신발업체의 생산실적은 1억3천4백80만족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5% 줄었다.
최근의 수출 또한 크게 줄어 90년 35억2천4백만달러,91년 30억7천6백만달러,지난해에는 24억7천만달러를 나타냈다.
수출 주문이 계속 줄어 들면서 각 업체의 조업률도 함께 떨어져 현재 정상조업률은 85%에 불과하다.이같은 조업률은 공장가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치로 조업률이 여기서 더 떨어지면 휴·폐업이 불가피하다.
▷부진원인◁
이처럼 신발산업이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원인은 여러가지로 분석된다.
가장 큰 원인은 신발업계에 불어닥친 세계적 불황을 꼽을 수 있다.국내 신발업계의 큰 시장이었던 미국이 지난 91년이후부터 경기침체에 빠지면서 수출주문이 급격히 줄어들어 부산신발업계를 강타했다.
이 여파로 주요 바이어들의 주문량도 해마다 감소,90년 1억1천3백여만족에서 91년 8천7백여만족,92년에는 5천5백만족으로 뚝 떨어졌다.
이같은 주문량 감소는 외국바이어들이 중저가품을 중심으로 값싼 인도네시아·태국·중국 등으로 수입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최근 3∼5년동안 기술을 축적한 후발국들은 이제 한국의 독무대인 고가품에까지 파고 들어 위기감을 더해가고 있는 어려운 실정이다.
○고채에 경쟁력 악화
결국 주문 물량부족은 우리업체들의 생산라인 축소를 강요했고 이 과정에서 하청에 의존해 온 신발부품업체들의 연쇄 도산이 꼬리를 이었다.
급격한 임금상승도 국제경쟁력약화를 초래해 업계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었다.지난 87년이후 신발업계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14.2%를 기록했다.이는 인도네시아·중국등에 비해 5∼10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제조원가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국내신발업계의 경우 31.5%로 중국의 6%,인도네시아 8% 등에 비해 크게 높아 이들 국가와의 가격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우리업체들은 채산성이 없는 중저가품 생산을 기피,오히려 이들 후발국으로부터 중·저가 제품을 대량 역수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부산세관에 따르면 올 2월말 현재 국내에 수입된 신발은 모두 33억원어치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업체의 방만한 생산시설 확충과 자체브랜드 개발부재,생산자동화 시설외면,홍보에 대한 투자인색 등도 쇠락의 원인으로 지적된다.현재 전체생산시설 가운데 6년이상된 노후시설이 37·6%에 달하고 있으며 자동화 설비보유율은 2.3%에 불과하다.
공정별 자동화율도 6.9%밖에 되지않아 선진국들의 50%와 비교할때 큰 차이가 난다.
이밖에 자체브랜드 개발부재도 한 원인.지난해 12월 부산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고유상표 부착수출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발업의 고유상표부착률은 16·7%로 부산의 다른 제조업과 비교할 때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
정부당국은 신발산업의 회생을 위해 지난해 4월 신발산업을 산업합리화 업종으로 지정하고 3년간 모두 2천여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합리화자금은 92,93년에 각각 7백억원씩 책정됐으나 지난해 사용실적은 8억4천만원에 불과했다.이처럼 사용실적이 저조했던 이유는 경영난에 허덕이는 업체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운전자금 지원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시설자금은 차후의 문제라는 지적이 업계 일각에서 일자 정부는 해외시장 판로개척을 위해 산업합리화자금중 일부를 해외시장 판로개척비로 전환,투자키로 했다.
그러나 업계는 판로개척비의 대대적인 확충을 바라고 있다.
○공장자동화 급선무
부산의 신발산업이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시장의 경기회복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업계의 자체 경쟁력 강화도 절실히 요구되고있다.신발산업 합리화자금의 적절한 운용과 함께 앞으로 예상되는 추가 소요자금에 대해서 정부와 제도금융권에서 어느정도의 자금지원을 뒷받침 한다면 얼마든지 현재의 어려움을 이길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밖에 자체브랜드 개발과 고품질·다품종의 소량 생산체제를 갖추는 일도 업계가 시급히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또 하나의 방안은 인건비를 제외한 기타 비용의 절감이다.이를 위해서는 부산지역에 흩어져있는 신발관련 업체들을 한곳에 모은 협업화 단지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신발협업화단지가 조성되면 원·부자재의 운반비절감과 신발골 등 일부 생산부품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어 10%가량 원가를 절감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고급기술을 전제로한 것이나 최근 숙련된 기능공의 3D 기피현상으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든데다 여성근로자의 고령화가 늘고 있어 생산자동 설비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신발산업의 부흥을 위해서는 업계자체의 군살빼기,경쟁력 강화 등 자구책마련과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그리고 근로자들의 애사심 등이 일치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처방이다.
◎당국자 의견/소상보 부산시 지역경제국장/“다각적 활성화대책 마련중”/업계의 시장개척 등 자구노력 절실
『신발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닙니다.아직도 단일 품목으로는 수출액이 연간 30억달러에 이르는 등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소상보부산시지역경제국장(55)은 현재의 불황은 호황기를 거친 조정국면일 뿐이며 신발산업이 결코 한물 간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소국장은 그 증거로 우수한 기능인력과 세계 정상의 기술 및 생산시설을 꼽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출 감소세가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는 등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맥락에서 업체들의 자구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뒤따른다면 세계시장을 석권한 옛 명성을 반드시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부산시 역시 신발산업의 회생이 부산지역경제 활성화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아래 다각적인 활성화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소국장은 밝혔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3월 신발산업을 산업합리화업종으로 지정하고 오는 95년 3월까지 시설개체자금 2천억원을 지원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않고 있어 신발산업의 회생은 시간문제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는 또 업계의 가장 큰 숙원인 녹산공단내 신발산업협업화 단지 조성을 위해 관계기관에 건의해 놓은 상태이며 이 단지가 조성되면 10∼20%정도의 생산비를 절감시킬 수 있어 업계에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부산의 신발산업이 오늘과 같은 불황을 겪고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비즈니스의 기술부족에 있다고 지적한 소국장은 『업계도 이번 기회에 시장개척과 판촉부문의 근본적인 기술개선책을 함께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국장은 선진비즈니스 기술도입과 인력개발을 위해 업계 관계자의 해외연수를 비롯,각종 지원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해외판매망구축을 위해서는 업계가 해외판매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시장개척기금도 지원할 계획이다.아울러 부산에 국제신발박람회를 개최하고 신발상품 홍보강화를 위해 신발상설 전시관등을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소국장은 근로자들도 현재의 난국을 무사히 넘길수 있도록 사용자측과 한마음이 되어 적극 동참해 줄 것을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