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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 민예품 매력에 빠져 수집 시작”

    “민예품 수집에 반쯤 정신이 나가서 살아왔어요. 기증을 부탁받았을 때는 딸을 시집보내는 섭섭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벗을 만난 듯한 기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2200점의 민예품을 기증한 신상정(56)씨는 20일 “‘선조가 남긴 예술품을 흩어지고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집했기에 기증할 수 있었다.”면서 “제가 모은 작품이 박물관에 잘 전시되고 있으니 오히려 행운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제약회사 임원인 신씨는 1960년대 후반부터 40년 가까이 전통 민예품을 수집했다. 개인 박물관을 하나 갖는 것이 꿈이었지만,2001년 서울역사박물관이 개관을 준비할 당시 1900점을 비롯해 현재까지 꾸준히 수집품을 기증하고 있다. 그는 “수집은 제 힘으로 할 수 있어도 전시와 보존은 도저히 제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금전적인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문제로 보존방법을 고민할 무렵 서울역사박물관이 기증을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신씨가 기증한 민예품은 서울역사박물관이 지금까지 기증받은 2만점 남짓한 유물 전체의 10%가 넘는다. 서울역사박물관도 기증품 가운데 300점을 엄선해 23일부터 내년 2월18일까지 특별전 ‘우리네 사람들의 멋과 풍류’를 연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반가상·티베트 유물 ‘진짜 같은 가짜’ 즐비

    반가상·티베트 유물 ‘진짜 같은 가짜’ 즐비

    |베이징 서동철특파원|베이징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골동품시장이라는 판자위안(潘家園)을 찾았다. 류리창(琉璃廠) 골동품 거리가 서화와 도자기 중심이라면, 판자위안은 거대한 민속박물관을 연상시킨다. 골동품이나 민속공예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옛날 물건이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구, 북, 금강령 같은 티베트 유물이 먼저 눈길을 잡아끌었다. 판자위안은 1992년부터 이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서던 도깨비시장(鬼市)으로 시작됐다. 규모가 갈수록 커지자 1997년 4만 8500㎡(1만 4700여평)의 부지에 건물을 지어 정식 골동품 시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깨비시장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나도는 물건의 대부분은 출처 불문에 연대 불문이다. 실제로 시장 곳곳에서는 진품과 모조품, 요즘 만든 생활용품이 뒤섞인 채 팔리고 있었다. 청동기시대 유물들도 마치 방금 출토된 듯 진흙이 잔뜩 묻은 채 진열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짜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국보 제78호 일월식 반가사유상과 국보 제83호 삼산관 반가사유상도 진열되어 있었다.30㎝ 높이로 복제한 반가사유상은 1200위안(14만 2800원),60㎝짜리는 2800위안(33만 3200원)을 달라고 했다. 짝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케이스다. 판자위안에서 흥정을 할 때는 일단 절반 이하로 깎는 것이 상식이라고 한다. 자원중(賈文忠) 중국 문화부 예술품평가위원은 “판자위안에 있는 골동품의 90% 이상이 가짜라고 보면 된다.”면서 “새벽에 시장이 열리자마자 노점상 구역을 찾으면 뜻밖에 좋은 물건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전문가나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자위안의 상인은 4000여명. 짐꾼 등 시장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모두 합치면 1만명에 이른다. 상인의 60%는 베이징 밖의 18개 성·시·자치구에서 온 사람들이다. 판자위안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4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여름에는 오전 9시, 겨울에는 오전 11시쯤에 가장 붐빈다. 하루 평균 6만명 이상이 찾는다. 천펑차오(陳鵬橋) 판자위안 시장관리부 경리는 “류리창이 규모가 비교적 크고 점포에서 거래가 이뤄진다면 판자위안은 노천시장에 가깝다는 것이 다르다.”면서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상인들을 대상으로 바가지 씌우지 않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외국인을 위한 영어와 장애인 고객을 위한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dcsuh@seoul.co.kr
  • “中 박물관 벌써 올림픽 대비”

    “中 박물관 벌써 올림픽 대비”

    |베이징 서동철특파원|21세기 경제대국을 꿈꾸는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역점을 두어 정비에 나서고 있는 분야의 하나가 박물관이라는 사실은 조금 뜻밖이었다. 요즘 베이징은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라지만, 박물관들은 더욱 경쟁적으로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보수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BOCOG)가 박물관에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는 명쾌하다.▲중국 고유의 스타일(中國風格)로 ▲문화적 면모(人文風采)를 펼치면서 ▲현대적 감각을 살려(時代風貌) ▲국민들의 적극적 참여(大衆參與)를 이끌어낸다는 베이징 올림픽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근접한 분야가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서울시립박물관에 해당하는 서우두(首都)박물관은 1981년 베이징의 공묘(孔廟)에서 처음 개관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한 불과 다섯달 뒤인 2001년 12월 새로운 박물관 건설 계획을 확정지은 뒤 4년동안의 공사 끝에 지난해 재개관했다. 서우두박물관은 지상 5층, 지하 5층에 길이 152m, 폭 66m, 높이 41m의 초대형이다.5층에는 ‘베이징의 옛 이야기’라는 주제로 일종의 민속박물관을 만들었다. 다른 층은 고고미술사 박물관의 성격으로 불교미술실과 도자실은 중국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동편에서 인민대회의당을 마주보고 있는 중국국가박물관은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국가박물관은 2003년 중국 문화부가 주도해 중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을 합친 것이다.2004년 시작된 증축공사는 2007년에 끝날 예정이다. 6만 5000㎡(1만 9697평)인 박물관 면적을 두배가 훨씬 넘는 15만㎡(4만 5455평)로 넓히는 대역사이다. 국가박물관은 증축공사에 맞추어 소장품을 늘리고 전시의 질을 높이는 한편 각종 장비들도 초현대식으로 바꾸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박물관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고궁박물원(古宮博物院)은 회화관과 진보관 등 전시시설을 갖고 있지만, 자금성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자금성은 요즘 공사를 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최근 우리 국립민속박물관과 문화교류협정을 맺은 중국농업박물관은 지난 9월부터 아예 문을 닫고 33만㎡(10만평)에 이르는 부지의 전시 시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또 동악묘(東岳廟)에 있는 베이징민속박물관도 문화혁명 등을 거치며 파괴된 서쪽 터의 3분의1을 올림픽 이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원나라 시대인 1329년 세워진 동악묘는 중국 민간신앙의 보고이다. 리핑(李萍) 베이징민속박물관 서기 겸 상무부관장은 “동악묘에는 조선의 사신들이 들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현재는 많은 외국 대사관이 이웃해 있어 한 해 1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는다.”면서 “특히 주변에 올림픽 경기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어 중국의 민속을 외국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획전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dcsuh@seoul.co.kr
  • 중앙박물관 여래좌상이 주인?

    중앙박물관 여래좌상이 주인?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백제시대로 올라갈 가능성이 큰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普願寺) 터에서 대형 건물터와 불상대좌의 기단부가 확인됐다. 한변이 21.8m인 정사각형의 건물 터는 일단 보원사 터의 중심부에 있는 보물 제104호 5층석탑 주변에 있는 만큼 금당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발굴이 더욱 주목되는 것은 대좌의 주인공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에 전시되고 있는 철제여래좌상일 가능성 때문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후기 것으로 추정되지만, 백제의 옛 지역에서 만들어져 백제 특유의 미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원사 터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삼존불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수장품 카드에 ‘보원사 터에서 출토됐다.’고 적혀 있는 높이 257㎝에 무릎너비 217㎝의 대형 고려철불좌상도 전시되고 있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보원사와 관련이 적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많다. 지난 15일 발굴 현장에서 열린 자문회의에서는 일단 대좌 기단부 상단에 우묵하게 새겨놓은 장식인 안상(眼象)의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까지도 올려볼 수 있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또 대좌의 크기도 철제여래좌상은 물론 훨씬 더 큰 불상도 모실 수 있는 크기이다.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이규훈 학예연구관은 19일 “대좌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지만, 금당자리와 대좌 주변에서 당시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아직 초기 조사 단계인 만큼 발굴이 추가로 이루어지면 대좌의 조성시기도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산시가 시행하는 보원사 터 발굴조사는 올해 시작되어 2017년까지 12년동안 이루어질 예정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울신포니에타 24일 예술의 전당서 공연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독특한 음악회는 단연 서울신포니에타가 24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갖는 ‘병사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우선 ‘크리스마스 이브 콘서트’라는 타이틀과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음악을 선도한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라는 조합부터가 그리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병사의 이야기’는 연주에 내레이션과 연기가 더해지고 탱고·왈츠·재즈·행진곡이 곳곳에서 출현하는 흥미로운 총체극이지만, 머리를 싸맬 만큼 난해하지는 않더라도 마음편히 즐기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울신포니에타가 공연장 대관마저 하늘의 별따기인 크리스마스 ‘대목’에 관람객 동원도 미지수일 수밖에 없는 이런 작품을 올리는 데는 뭔가 깊은 뜻이 있을 법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인 김영준 서울신포니에타 음악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병사의 이야기’를 고른 이유를 물었다. 김영준 감독은 먼저 “이 작품은 1986년 바이올린 주자로 참여해 한 차례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하도 어렵고 함의가 많은 곡이라 연주가 만족할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20년 동안이나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번엔 작정을 하고 한달째 씨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병사의 이야기’에는 크리스마스에 딱맞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모르느냐.”고 웃으며 반문했다.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공주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던 병사가 고향을 찾아가지만, 과거의 행복까지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줄거리가 지금의 작은 행복에 만족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실제로 ‘병사의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궁핍하던 1918년에 씌어졌다. 많은 예산이 필요한 작품은 무대에 올릴 수 없었고, 작은 규모지만 내용은 결코 빈곤치 않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다.‘병사의 이야기’는 물론 배우들이 필요하지만, 연주에는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트럼본, 타악기 주자만 있으면 된다. 결국 1차 대전 당시의 유럽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따라서 지원도, 유료 관람객도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여건에 맞는 음악활동으로 ‘작은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가 김 감독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번 음악회에는 함축되어 있는 셈이다. 이번에 김 감독은 지휘자로 나선다. 연극인들도 참여하는데 노청연과 여무영이 연출, 유지연이 내레이션을 맡고 여무영이 악마, 김관진이 병사, 강하라가 공주로 출연한다. 오후 3시,8시 두 차례 공연.(02)732-0990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명품 고악기 무상임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13일 바이올리니스트 박예지, 첼리스트 변새봄·이정란에게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무상으로 임대하는 전달식을 가졌다. 재단은 지난달 두 차례 오디션을 거쳐 대상자를 선발했다. 이날 박예지에게는 1724년경 제작된 카를로 주세페 테스토레의 2분의1 사이즈 바이올린, 변새봄에게는 1861년 만들어진 주세페 로카의 첼로, 이정란에게는 1600년경 제작된 지오바니 파올로 마치니의 첼로가 전달됐다. 이들은 3년동안 악기를 무상으로 쓸 수 있으며, 보험금도 재단에서 부담한다. 재단은 1993년부터 유망 음악 영재들에게 고악기를 빌려주는 악기 은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악기 은행에는 과다니니, 몬타냐나, 과르네리, 테스토레, 세자르 칸디, 로카, 마치니 등 21점의 명품 고악기가 등록되어 있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권진규의 아틀리에·나주 한옥 영구 보존

    권진규의 아틀리에·나주 한옥 영구 보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조각가 권진규의 아틀리에를 권씨의 동생인 권경숙씨로부터 기증받았다. 앞서 문화유산기금은 전남 나주의 전통마을에 있는 한옥을 매입해 보수 및 복원을 거쳐 영구보존키로 했다. 동선동 아틀리에는 권진규가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한 뒤 197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품활동을 한 예술의 산실이다. 작업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134호로 지정됐다. 문화유산기금은 이번에 생활공간과 작업실은 물론 유품 일부도 기증받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나주 한옥은 풍산 홍씨의 집성촌인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에 있다. 본채와 사람장, 부엌이 근대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 가옥 및 마을 전체적인 보전 차원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1억원의 매입 비용은 재단의 모금과 유한킴벌리의 후원으로 충당했다. 기금은 권진규의 아틀리에는 미술가들이 머물며 작업을 할 수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Artist-in-Residence) 용도로 활용하고, 주기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또 나주 한옥은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원형을 복원한 뒤 지역 특산물의 나주반을 일부 전시하고 지역의 생활상과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사장 윤상구)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공동대표 문국현·양병이)가 2004년 ‘최순우 옛집’을 복원하면서 소유권을 출연받아 설립한 공익법인이다. 그동안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최순우 옛집, 동강 제장마을을 각각 시민유산 1,2,3호로 명명하고 보전활동을 벌여 왔다. 문화유산기금은 13일 나주 한옥은 시민유산 4호, 권진규 아틀리에는 시민유산 5호로 각각 선포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중앙박물관에 클래식이 흐른다

    중앙박물관에 클래식이 흐른다

    국보 제83호 삼산관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조각실에서도 별도의 전시공간에 모셔져 있다. 사라져가는 희망을 상징하는 캄캄한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미소를 지으며 관람객을 맞는다. 앞에는 두 사람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관람석이라기보다는 예배석이라고 해야 할 이 작은 의자의 존재로 전시실은 그대로 법당이 된다. 중앙박물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용산에 새로 지은 박물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이 전시공간이 아닐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 만큼 인상적이다. 토요일인 지난 9일 저녁 중앙박물관은 어둠에 잠긴 산사(山寺)처럼 고요했다. 야간개장이 이루어진 이날 오후 6시 이후 박물관 관람객은 모두 149명에 그쳤다고 한다. 불교조각실이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동안 박물관 입구의 으뜸홀에서는 목관오중주가 특유의 단아하면서도 빛나는 음색을 뽐내고 있었다. 코리아목관앙상블이 들려주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피치카토 폴카’와 스코트 조플린의 ‘디 엔터테이너’가 흥겨웠지만, 청중은 스물 다섯명을 넘지 않았다. 중앙박물관은 지난달 8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밤 9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앞서 지난 3월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야간개장’을 했다. 목관오중주 연주회가 포함된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 프로그램도 야간개장을 확대함에 따라 관람객을 늘려보겠다는 뜻에서 마련했을 것이다. 지난달 확대 이후 야간개장 관람객은 모두 2332명으로 전체의 0.9%에 머물렀다. 지난 6일 하루의 낮 관람객이 1만 5029명이니, 하루 평균 333명이라는 야간개장 실적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물관의 부담은 커졌지만, 관람객에게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은 16일과 30일에는 국악실내악단 스케치,23일에는 오아시스현악사중주단을 초청해 오후 6시와 7시30분 미니 콘서트를 갖는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의 박물관 입장료만 내면 콘서트도 즐길 수 있다. 더 큰 혜택은 낮이라면 불가능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산관반가사유상은 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품이지만, 오후 8시를 넘어서면 10분 이상 ‘독대’할 수도 있다. 이번 주말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야간개장이 ‘실패’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보자. 관람객이 차츰 늘어나 야간개장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 관람객의 즐거움은 훨씬 줄어든다는 역설이 재미있는 중앙박물관이다. 글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오골계 피난작전

    전북 익산과 김제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함에 따라 우리나라 전통 닭으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충남 논산의 연산 화악리 오골계가 분산 배치된다. 문화재청은 익산 및 김제와 가까운 논산에서 천연기념물 제265호 화악리 오골계를 사육하고 있는 지산농원(대표 이승숙)과 협의해 오골계를 멀리 떨어진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보호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1000여마리의 화악리 오골계는 당분간 경북 봉화와 인천 중구에 각 300마리, 경기 동두천에 400마리가 분산되어 사육된다. 앞서 문화재청은 AI 발생 직후부터 충남도, 논산시, 농림부와 방역대책을 세웠고, 화악리 오골계 농장에서는 면역성이 강한 특수사료를 주고, 출입자를 통제하는 등 예방에 노력해 왔다.AI에 감염되면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에 있는 모든 가금류는 폐기해야 한다. 따라서 직접 감염되지 않는다해도 주변 농장에서 AI가 발생하기만 해도 천연기념물 오골계는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서동철 기자 dcsuh@seoul.co.kr
  • ‘나비부인’ 이유있는 흥행

    ‘나비부인’ 이유있는 흥행

    지역 문예회관들이 힘을 합쳐 스스로 살 길을 찾아보겠다는 절실한 노력이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경기지역문예회관협의회(경문협) 회원 극장들이 공동 제작한 오페라 ‘나비부인’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지난달 8∼9일 부천시민회관 공연이 만원사례를 이루었고,16∼17일 고양 어울림극장 공연은 85%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했다. 입소문을 타고 지난 8∼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 이어 오는 16∼17일 의정부예술의전당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지역 문예회관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오페라를 개별적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웃한 문예회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면 제작 비용은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이다. ‘나비부인’의 제작비는 5억원이다.2억 5000만원은 복권기금에서 지원받고,2억 5000만원을 4곳에서 똑같이 나누어 냈다. 부천은 마케팅, 고양은 홍보, 안산은 제작감독, 의정부는 행정과 예산집행 등 역할도 분담했다. 예술감독 임헌정에 연출가 김학민, 지휘자 김덕기, 이제는 ‘빅3 오케스트라’의 하나로 떠오른 부천필하모닉, 소프라노 김유섬과 테너 이현, 바리톤 최종우 등 화려한 제작·출연진에도 1만∼7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티켓값을 책정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시설은 훌륭한데 내용이 빈약하다.’는 가슴앓이에 한결같이 시달리는 문예회관들에 ‘시장원리에 근접한 우수 콘텐츠의 개발’이라는 풀리지 않던 방정식의 해법이 제시된 셈이다. 경기지역 13개 문예회관의 공연기획 실무자가 주축인 경문협은 2004년 8월 출범했다.‘공공극장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으로 시장을 형성하면 비용을 절감하고,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은 그동안 극단 사다리의 ‘이중섭 그림속 이야기’를 초청한 공동구매, 의정부 이미숙 무용단의 창작 무용극 ‘귀천’과 안산의 국악뮤지컬 ‘반쪽이전’의 지역예술단체 프로그램 교환, 프라하 마리오네트 인형극단의 ‘돈조바니’를 초청한 해외프로그램 공동기획 사업 등을 펼쳐왔다. 공동제작 사업도 ‘나비부인’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록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6곳의 회원 문예회관에서 모두 15차례 공연했다. 전체 객석점유율은 70% 정도였지만, 공동제작의 의미를 살리고 성과도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내년에는 중소극장용 가족뮤지컬 ‘개구리 왕자’를 제작할 계획이다. 규모를 줄이려는 것은 되도록 많은 극장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나비부인’도 당초에는 7곳의 극장이 공연을 희망했지만, 오케스트라 연주공간이 좁아 포기하고 만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개구리 왕자’는 회원 극장뿐 아니라 서울지역에서도 장기공연해 ‘가외수익’을 올린다는 구상이다. 경문협의 출범을 주도한 소홍삼 의정부예술의전당 공연계장은 “우리가 가능성을 보임에 따라 영남권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권역별 모임이 활성화되어 문예회관들이 제자리를 잡고, 지역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프로그램들도 많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동대문운동장 역사는 이어질까

    동대문운동장 역사는 이어질까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도가 야구인들의 가두시위로까지 번진 서울 동대문운동장 철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야구인들은 6일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디자인 콤플렉스’와 녹지공원을 만들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계획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야구인들은 동대문운동장이 한국 근대체육의 상징적 장소이자, 한국 야구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만큼 역사유적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도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의 범위를 ‘개화기를 기점으로 6·25전쟁 직후까지 건설·제작·형성된 문화재를 중심으로, 그 이후에 생성된 것일지라도 멸실 훼손의 위험이 커 긴급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도 당연히 해당한다는 논리이다. 문화재청은 이미 전문가 3명을 동대문운동장에 보내 현지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 현재 풍물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종합경기장은 1926년에 준공됐다. 반면 동대문야구장은 1959년 본부석 및 내야스탠드에 이어 1962년 외야 스탠드가 만들어졌다. 보존 요구가 큰 야구장의 역사성이 종합경기장에 크게 못미친다는 사실이다. 보존한다면 오히려 종합경기장 쪽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현지조사도 종합경기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문화재청은 나아가 종합경기장 전체를 보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생각이다. 상징적으로 스탠드 일부를 남기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의 근대문화유산 등록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철거문제에 문화재 전문가를 참여시킨 가운데 문화재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여론의 추이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문화재청으로서는 새로 선출된 서울시장이 내놓은 역점사업에 앞장서 제동을 거는 데 적지 않은 부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관계자의 얘기는 동대문운동장이 ‘패션의 메카’로 탈바꿈하기보다 생명력 있는 구장으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여론이 강력하게 조성되기만 한다면, 부담을 덜어내고 ‘적극적 보존정책’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암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서울시측은 “이미 발표된 정책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한국 고고학 1906년 시작됐다

    근대적 의미에서 한국 발굴의 역사는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가 경주 북산고분군을 발굴한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올해는 한국 고고학의 발굴 역사가 100주년을 맞는 해가 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8일 경주 교원드림센터에서 갖는 ‘신라고분 발굴조사 100년’ 학술 심포지엄은 주제를 ‘신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한국 고고학 발굴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라 해도 좋다. 발굴의 역사가 한 세기,1946년 우리 손으로는 처음인 경주 호우총 발굴도 6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기초적인 발굴 조사 연구의 기반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다. 윤형원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경주지역에서 그동안 발굴한 고분이 1500개에 이르지만, 신라 고분의 종합적인 양상을 알 수 있는 기초연구는 답보 상태”라면서 “봉분이 있는 신라 고분이 몇개나 되는지도 모르는 만큼 학술조사를 위한 기초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색해 보자는 것이 행사의 취지”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은 원로들의 회고로 시작된다. 사이토 다다시(齋藤忠) 일본 다이쇼 대학 명예교수가 ‘일제하의 신라고분 발굴조사’,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발굴한 김정기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국가에 의한 신라고분 발굴조사’, 윤용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대학에 의한 신라고분 발굴조사’를 발표한다. 특히 우리 나이로 99세인 사이토 교수는 1930년대 경주박물관의 연구원을 역임하며 황오리1호분 등 신라고분을 여럿 발굴했고, 부여 군수리절터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백제 금동보살입상과 납석제좌불을 직접 수습했다. 신라 고분 발굴의 역사도 정리된다. 요시이 히데오(吉井秀夫) 일본 교토대학 교수가 ‘일제강점기 경주 신라고분 발굴조사’, 차순철 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주 신라고분 발굴조사’를 발표한다. 새로운 과학적 발굴조사 방법의 정보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오현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연구원은 ‘신라고분에서의 지하물리탐사’, 박동일 드림Tns 대표는 ‘신라고분에서의 3D스캔측량 적용’을 소개한다. 윤형원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심포지엄에선 신라 고분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들을 계획”이라면서 “경주지역에는 지금도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고분이 수없이 많지만 발굴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의견을 모아 보겠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3000년전 인도인 한반도서 벼농사?

    3000년전 인도인 한반도서 벼농사?

    강원 정선군 아우라지 유적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출토된 사람 뼈가 백인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신동훈 교수가 5일 아우라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고 있는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의뢰로 인골을 분석해 보니 영국인과 비슷한 DNA 염기서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백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인골이 나온 것은 1965년 충북 제천 황석리 13호 고인돌에 이어 두번째. 당시 BC430년이라는 방사선 연대 측정 결과가 나왔다. ‘아우라지 사람’은 3000년 전에 해당하는 BC970년 정도로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추정한다. 황석리와 아우라지는 남한강으로 연결되는 동일생활권이다. 얼굴 전문가인 조용진 한서대 교수는 황석리 사람을 복원해 본 결과 완전한 서양인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황석리 사람처럼 생긴 사람들이 지금도 남한강변인 원주와 충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동훈 교수는 아우라지 인골이 백인의 것인지 확신을 갖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조심스러워 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벌써부터 백인의 유전인자와 고인돌 문화를 전해받은 인도인들이 바닷길로 한반도에 건너와 벼농사를 지었고, 죽어서는 고인돌에 묻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김병모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이 인골의 주인공이 인도에서 벼농사 전래 경로를 따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말 가운데 400여개 어휘는 인도토착어인 드라비다어에서 유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쌀은 살(Sal), 풀은 풀(Pul), 벼는 비야(Biya), 메뚜기는 메티(Metti), 농기구인 가래는 가라이(Kalai) 등이 그것으로 벼농사 기술과 함께 소개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아우라지 사람’의 존재는 청동기시대 한반도와 인도를 비롯한 남방과의 교류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직접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학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강승민양 카사도 첼로콩쿠르 우승

    첼리스트 강승민(사진 왼쪽·19·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양이 일본 하치오지에서 3일 폐막한 제1회 가스파르 카사도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5일 알려왔다. 상금은 150만엔(약 1200만원). 홍은선(오른쪽·18·서울예고 3년) 양은 3위에 입상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금호 영재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강승민 양은 동아일보 콩쿠르 1위, 요한슨 콩쿠르 1위,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 등을 차지했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 … 내년 사상 초유 전곡 연주회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 … 내년 사상 초유 전곡 연주회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전국 10곳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이번 독주회는 3년 동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모두 음반에 담는 대장정의 두번째 해 작업을 결산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이번에 독주회와 함께 베토벤의 초기 소나타를 묶은 2세트 4개의 콤팩트디스크(CD)도 내놓는다. 앞서 전곡 녹음을 시작한 지난해 소나타 16∼26번을 3개의 CD로 펴냈다. 이로써 베토벤 전곡 녹음은 소나타 27번에서 32번에 이르는 6곡만 남겨두었다. 내년 가을엔 9개의 CD로 이뤄진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 세상에 나온다. 백건우는 이를 기념해 내년 12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7일 동안에 베토벤의 소나타를 모두 연주하는 한국 음악사상 초유의 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순회 독주회에서 백건우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톡하우젠, 바그너의 작품을 들려준다. 베토벤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영향을 받은 이의 작품을 모아 독일음악사에서 베토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눈길은 베토벤의 작품에 쏠린다. 작품번호 90번의 소나타 27번과 작품번호 101번의 28번은 아직 녹음하지 않은 작품들이다.27번은 백건우가 “분명히 후기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설명한 작품이다. 베토벤이 고전파 작곡가에서 낭만파 작곡가로 변모해 가는 초입에 있는 작품이다.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 연주가 ‘피아니스트의 에베레스트산 오르기’라면 백건우가 남겨놓은 후기의 6곡은 ‘정상등정’에 해당하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녹음한 사람은 빌헬름 박하우스와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클라우디오 아라우, 알프레드 브렌델 등 모두 20세기 음악사를 장식한 명연주가들이다. 백건우가 ‘데카’(DECCA)라는 메이저 음반 레이블로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펴낸다는 것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뜻한다. 올해로 진갑(進甲)을 맞은 백건우도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길 때 비로소 녹음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언제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그는 관심을 끊을 수 없게 만드는 존재이다.(02)751-9607.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주 R석 10만원… 경남 양산선 2만5000원

    원주 R석 10만원… 경남 양산선 2만5000원

    ◈ 티켓값 지역따라 희비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전국 순회 독주회는 14일 울산 현대중공업 예술관에서 시작해 30일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백건우 독주회가 열리는 10곳의 티켓값을 비교해보면, 수도권 밖 주민들은 여전히 문화적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전국이 똑같지만, 원주, 전주, 광주, 울산 주민의 부담은 수도권 주민보다 훨씬 크다. 반면 서울 2곳과 경기 수원·안양·의정부 등 모두 5차례 공연이 열리는 수도권에서는, 조금만 발품을 팔면 더욱 저렴한 가격에 골라서 즐길 수 있다. 티켓값이 가장 비싼 원주 치악예술관의 26일 공연은 R석이 10만원,S석이 8만원이다.21일 전주 소리문화의전당도 R석이 9만원,S석이 7만원으로 원주를 뺨친다. 학생석이 1만 5000원인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28일 광주와 14일 울산은 가장 비싼 티켓이 각각 8만원과 6만원이다. 반면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은 R·S·A석이 각각 6만·4만·2만원이다. 같은 서울이라도 노원문예회관의 23일 공연은 R·S·A석이 6만 5000·5만 5000·4만 5000원으로 예술의전당보다 오히려 비싸다. 의정부는 서울 노원구와 맞붙어 있다.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30일 열리는 공연은 R·S·A·B석이 각각 5만·3만·2만·1만 5000원이다. 노원구 주민들이 ‘역류’할 수도 있다. 가까운 수원과 안양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수원 경기도문예회관의 29일 독주회는 R·S·A석이 각각 5만·4만·3만원이나 16일 안양문예회관은 4만·3만·2만원으로 1만원씩 싸다. 형편에 맞는 공연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눈길을 끄는 곳은 경남 양산이다.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15일 공연은 R·S·A석이 각각 2만 5000·2만·1만 5000원이다. 원주 공연의 평균 4분의1도 되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넓히고자 이번만큼은 양산시가 파격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산시라고 모든 공연을 이렇게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티켓값의 차이는 지역의 음악 수요 및 공연장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2523석이지만, 원주 치악예술관은 660석에 불과하다. 백건우는 사정이 어려운 중소도시에선 개런티를 깎아주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비슷한 제작비에 객석이 적으면 그만큼 티켓값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음악회를 주최하는 지역의 영세 매니지먼트는 큰 공연장이라고 하더라도, 관객이 들어찬다는 보장도 없는데 무작정 티켓값을 낮출 수는 없다. 이처럼 지역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격차’를 메워주는 것이야말로 문화정책이 수행해야 할 일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이 음악팬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티켓값의 30%를 지원하는 CJ문화재단의 ‘위 러브 클래식’ 캠페인에 힘입었다. 노원문화회관 공연이 더 비싼 것도 이 때문이다.CJ문화재단이 세상의 눈이 모이는 곳에 지원을 집중하기보다 원주·전주·광주에 눈을 돌렸더라면 훨씬 더 큰 칭찬을 받을 뻔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55년동안 쓴 일기장 박물관 기증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한약방을 하는 박래욱(68)씨가 55년 동안 쓴 일기장 98권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1950년부터 2005년까지 기록한 박씨의 일기는 1997년 한국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박씨는 1961년부터 2003년까지 금전출납부 10권,1971년부터 2001년까지 한약처방전 16권과 도민증, 국민병역신고증, 인감증명원 등 산업화에 따른 사회격변 속에서 쓰여진 갖가지 자료를 함께 기증했다. 193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일기를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 그는 1971년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하고 한약방을 열었다. 그의 일기에는 12살 소년이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가 나온다.1950년 8월25일 금요일에는 “분주소에서 유격대라는 사람들이 왔다. 반동분자의(박씨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가산을 몰수하여 위대한 수령 동지의 사업에 써야 한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가산을 몰수해 갔는데 그때는 식량만 가져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옷과 살림살이 일체를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박씨의 일기에는 당시의 물가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1956년 당시 물가는 돼지고기 반근 100환, 목욕 50환, 이발비 60환, 영화관람료 30환, 필름 400환, 버스요금 10환, 신문대금 300환, 혈액검사 40환, 성냥 10환, 학생배지 60환 등이었다.400환짜리 필름값이 돼지고기 한 근의 두 배나 되는 등 공산품이 농·축산품보다 훨씬 비쌌음을 알 수 있다. 신광섭 민속박물관장은 4일 “우리 박물관에 가장 부족한 자료가 바로 20세기 것”이라면서 “박씨의 기증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광화문 해체 돌입…‘제모습 찾기’ 3년 대공사

    광화문 해체 돌입…‘제모습 찾기’ 3년 대공사

    ■ 담장 330m 복원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광화문을 철거하고 일대를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4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는 2009년 말까지 복원되는 건물은 광화문을 비롯해 용성문, 영군직소, 수문장청, 군사방 등 모두 12동 169평이다. 임금이 다니던 폭 7.7m, 길이 100m의 어도(御道)와 안팎의 담장 330m도 평균 3.5m 높이로 옛 모습을 찾는다. 정부는 이날 오후 2시 경복궁 흥례문 앞 마당에서 ‘경복궁 광화문 제모습 찾기 선포식’을 갖는다. 12월4일은 1394년(태조 3년) 경복궁을 창건하고자 땅을 파기에 앞서 지신(地神)에게 제사 지내는 개토제(開土祭)를 했던 날이기도 하다. 선포식에서는 광화문의 용마루를 들어내는 이벤트와 함께 공사기간 동안 가림막으로 사용될 설치미술가 양주혜씨의 상징조형물 제막식도 베풀어진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으로 북문인 신무문, 동문인 건춘문, 서문인 영추문과 함께 1395년(태조 4년)에 지어졌으며,1426년(세종 8년)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광화문은 14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이래 1867년(고종 4년) 다시 지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안에 들어서면서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 다시 불탔고,1968년 현 위치에 불완전한 모습으로 세워져 오늘에 이르렀다. 광화문 제모습 찾기 사업이 마무리되면 모두 129동 6207평의 건물이 복원돼 고종 당시 원형의 40%를 회복하게 된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으로 ▲1990년 침전 권역 ▲1999년 동궁 권역 ▲2001년 흥례문 권역 ▲2005년 태원전 권역을 복원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은 이웃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새로운 현판은 광화문 복원이 마무리되는 2009년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현판은 1867년 중건 서사관인 임태영의 현판글씨를 모사하거나, 아예 새 글씨를 의뢰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형 되찾을까? 향후 3년간 ‘광화문 제모습 찾기’로 경복궁이 상당부분 옛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보이지만 ‘원형’에 이르기까지에는 갈 길이 멀다. 먼저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의 원형 회복이 쉽지 않다. 동십자각은 광화문에서 삼청동길로 접어드는 경복궁 남동쪽 모서리에 있는 건물이다. 경복궁의 남동쪽 망루였지만, 궁궐의 담장 일부를 허물어 길을 내는 바람에 지금은 섬처럼 남아 있다.1929년 일제가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열면서 궁장(宮墻)을 헐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남서쪽 망루인 서십자각은 아예 사라졌다. 역시 일제가 1923년 광화문에서 영추문 쪽으로 전차선로를 깔면서 철거했다. 동십자각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것과 달리 서십자각은 원래의 위치조차 불분명하다.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서 지금보다는 남쪽과 서쪽으로 각각 10m 정도는 바깥쪽에 서있던 것으로 추측한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면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문화재청은 경복궁의 남동쪽 담장을 동십자각에 잇거나, 서십자각을 옛 자리에 복원하는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다. 복원했을 경우 ‘교통대란’을 넘어 일대 도로의 기능이 사실상 중단되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모습 찾기’에 따라 광화문을 현재보다 남쪽으로 14.5m, 서쪽으로 10.9m 옮겨 짓고,5.6도 틀어졌던 축을 원래대로 되돌린다고 해도 경복궁의 남동쪽과 남서쪽 모서리는 현재의 위치와 달라지지 않는다. 복원될 경복궁의 남쪽 외곽 담장 역시 옛 자리가 아닌 ‘현실’을 수용해 세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궁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광화문 앞에 배치했던 넓고 높직한 섬돌인 월대(月臺)도 제모습을 찾기 어렵게 됐다. 길이 52m인 월대를 복원하면 광화문 앞의 자동차 통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물론 정부중앙청사도 일부 침범할 수 있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궁궐 안의 주차장 문제도 해결해야 할 장기 과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3일 “경복궁 복원정비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동·서양 도자기 교류사 한눈에

    동·서양 도자기 교류사 한눈에

    옛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어 터키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된 이스탄불의 톱카피 궁전 박물관(Topkapi Sarayi Muzesi)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동양도자기 컬렉션으로도 유명하다. 줄잡아 1만 2000여점에 이르는 중국과 일본의 명품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톱카피의 동양도자 컬렉션은 중국과 일본의 ‘내수용’이 아닌 유럽 및 이슬람권 수요자의 취향에 맞추어 만든 ‘수출용’이다. 수출자기의 양상을 문화교류사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톱카피 궁전 박물관이 갖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수출자기 80여점이 한국에 온다.‘동서도자교류의 접점-터키’라는 주제로 제4회 국제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 내년 4월28일부터 6월24일 사이에 경기도 광주에 있는 조선관요박물관에서 전시된다. 터키가 자랑하는 국보급 유물이지만 6·25전쟁에 참전한 데 이어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에서도 우의를 과시한 ‘형제국’인 만큼 2007년 한·터키 수교 50주년을 맞아 흔쾌히 반출을 허가했다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오는 톱카피 도자기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중국의 명·청대 청화백자가 주류를 이룬다. 또 몇몇 일본 백자가 시대별·양식별로 조명될 예정이다. 당시 이슬람문화권을 겨냥해 중국과 일본이 제작한 수출자기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특별히 이번 전시회는 동아시아의 수출자기가 터키의 전통 도자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 보는 기회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과 치니리 키오스크 타일미술관, 터키&이슬람 미술관, 사드베르크 하님 미술관, 코냐 카라타이 박물관의 대표적인 터키 자기 80여점도 출품된다. 유례가 없는 전시회지만, 관계자들은 고민도 없지 않았다. 전시회가 한국 도자기에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자문(自問)하면 더욱 그랬다. 최건 조선관요박물관장은 “중국은 앞선 기술로 이슬람과 유럽을 석권했고 일본도 명·청이 교체되는 혼란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조선은 교류에서 단절되어 있었다.”면서 “이후 중국과 일본은 수요자의 취향에 부응하느라 쇠퇴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침체기였던 조선은 오히려 훗날의 시각으로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백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동철 기자 dcsuh@seoul.co.kr
  • 안익태 ‘친일논란’ 약될까

    새달 5일 열리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는 때맞춰 다시 불거진 주인공의 친일논란으로 유쾌하기만 한 잔치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하지만 이번 논란이 소모적인 신경전에 머물지 않고,‘안익태 연구’의 방향타를 올바르게 돌리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갈길이 멀기는 하지만 기대도 갖게 한다. 안익태는 1906년 12월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일에 열리는 기념음악회는 최근 발굴된 교향시 ‘마요르카’를 한국 초연하고, 역시 알려지지 않았던 성악곡 ‘아리랑고개’와 ‘이팔청춘’을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이다. 피날레는 물론 애국가가 들어있는 ‘코리아 판타지’가 장식한다. 그럼에도 음악회가 다소 풀이 죽은 분위기 속에 준비되고 있다는 것은 안익태기념재단이 지난 23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질문은 음악회의 내용보다 친일논란에 따른 재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데 집중됐다. 재단도 주인공이 일제의 꼭두각시정권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축전음악’을 작곡·지휘하는 등 ‘협조적’이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짙은 자료가 공개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주인공이 남겨놓은 다양한 양상의 애국심을 애써 강조하는 모습이었다.하지만 주인공에 대한 열정적인 변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만 나열해도 국민들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선생의 활동을 담은 각국의 신문·잡지·공연기록·동영상을 2∼3년이 걸리더라도 모두 정리하겠다.”는 재단의 의지였다. 안익태기념재단은 1992년 출범했지만, 그동안에는 일종의 친목단체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세상에 없는 마당에 온갖 논란은 재단으로 수렴하기 마련이었다.사실 안익태의 자료 수집과 정리는 주인공의 이름을 건 기념재단이라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벌써 끝마쳐 놓았어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단을 이끌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저 음악이 좋아 한해 수억원씩 지원하는 경제인 출신 이사장과 보수도 없이 일한다는 피아니스트 사무국장이다. 결코 체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일회성 행적 추적에 머물고 있는 우리 음악학계가 조금은 미안해해야 할 일은 아닐까. “선생의 긍정적인 모습뿐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까지 드러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재단의 뜻이 이번에는 빛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친일논란을 불러일으킨 자료를 발굴한 이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치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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