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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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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박물관 “석가탑 유물 반환불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위탁관리하고 있는 불국사 석가탑 수습유물을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15일 불교 조계종단에 통보해 파란이 예상된다. 박물관은 이날 ‘석가탑 삼층석탑 내 발견유물 이관 요청에 대한 회신’을 통해 “이 유산이 화재·도난·항온항습 문제에 있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과학적으로 보존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국민의 의무라고 판단된다.”고 반환 불가 입장을 밝혔다. 박물관측은 “2007년 3월2일 불교중앙박물관 현지점검을 실시한 바, 개관 24일 전임에도 불구하고 진열장 골조공사 중이어서 신축건물 자재의 유해성분이 무구정광다라니경과 같이 보존과학적으로 민감한 지류유물에 미칠 해독을 고려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전시를 위해 국보 2점과 보물 3점 등 총 11점은 대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조계종측은 “박물관측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으며 반환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0) 고려 태조의 사당 숭의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0) 고려 태조의 사당 숭의전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훗날 조선의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게 개성의 선죽교에서 참살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몽주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는 의창(義倉)을 정비하여 빈민을 구제하고, 함경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시키는가 하면, 긴장상태이던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킨 유능한 관료이자 뛰어난 시인·학자였지요. 하지만 정몽주에 대한 세상의 존경심이 깊을수록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도모하던 이성계 일파가 느끼던 위협도 커졌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몽주는 이성계를 추대하려는 모의가 감지되자 그 일파를 숙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하지요. 새로운 왕조를 여는 데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는 결국 제거됐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세워진 다음 정몽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왕조라지만, 출범하는 순간 ‘기존 왕조’가 되어버리는 것이 섭리이니까요. 조선에도 왕조를 지키고자 목숨까지 버리는 충신을 높이 받드는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입니다. 경기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숭의전(崇義殿)에는 자신들의 손으로 무너뜨린 전 왕조에 대한 조선 지배층의 복잡한 심사가 담겨있습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옛 마전(麻田) 땅 아미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숭의전은 고려의 태조·현종·문종·원종과 복지겸·신숭겸·서희·강감찬·윤관·김부식·정몽주 등 16공신을 제사지내는 사당입니다. 조선왕조가 이곳에 고려 태조 왕건의 사당을 처음 세운 것은 태조 6년(1397년)입니다. 왕건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이었던 앙암사(仰巖寺) 자리였다지요.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창한 지 불과 6년만의 일입니다. 당시엔 옛 왕조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겠지요. 게다가 왕조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얼마든지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이성계 일파가 확인시켜준 상황입니다. 조선왕조 쪽에서 보면 불온하기 이를데 없는 이런 분위기를 일신해야 했겠지요. 섭섭해하는 이들을 아우르는, 요즘 말로 사회통합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정몽주에게 영의정부사를 증직하고,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내린 것도 다름아닌 그를 살해한 태종이었습니다. 조선은 문종 원년(1451년) 이곳에 숭의전이라는 이름을 사액(賜額)한 이후 역대 시조의 사당에 차례로 같은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모신 평양의 숭령전과 신라의 혁거세왕을 제사하는 경주의 숭덕전, 백제의 온조왕을 추모하는 경기 광주 남한산성의 숭렬전이 그것입니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왕후 허씨의 신위를 모신 김해의 숭선전도 그렇습니다. 모두 숭(崇)자 돌림으로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숭의전은 주변의 풍광도 뛰어나지만 배신청, 이안청, 전사청, 고직사 등 부속건물도 갖추고 있어 그 자체로도 제법 볼 만합니다. 여기에 가장 말석이라고는 해도,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편치 않았을 조선 초기 지배층의 심기를 짐작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dcsuh@seoul.co.kr
  • 진은숙 독일서 오페라 초연

    작곡가 진은숙(46)씨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오는 6월30일 독일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극장에서 세계 초연된다. 이 극장에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되는 것은 1972년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이후 처음이다. 이 오페라는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1832∼1898)의 잘 알려진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데이비드 헨리 황이 대본을 썼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진씨는 14일 “원작의 내용이 재미있고 유머 있는 작품인 만큼 들어서 거부감이 없도록 곡을 썼다.”면서 “오페라와 뮤지컬의 중간쯤 되는 새로운 형태”라고 말했다. 초연은 독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연출을 맡고, 거장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다.‘오페라계 살아 있는 전설’ 귀네스 존스가 여왕 역을 맡는 등 출연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오페라 ‘앨리스’는 7월4일과 7일 두 차례 더 공연된 뒤 11월에도 4차례 무대에 오르는 등 올해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극장에서만 7차례 관객과 만난다.2008∼2009 시즌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공연된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국립극장 창극전용공간 생긴다

    국립극장에 창극 전용 극장이 들어선다. 국립극장은 기존의 427석짜리 달오름극장을 650석 규모의 창극 전용 극장으로 고치기로 했다. 특히 마이크나 스피커 등 전기시설을 쓰지 않고도 목소리가 객석 끝까지 잘 들릴 수 있도록 음향을 개선키로 했다. 2008년 1∼3월에는 객석확장과 음향개선 공사,2009년 1∼3월에는 무대확장 공사를 벌여 봄·가을 공연 시즌의 무대난을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국립극장은 또 별관에 있는 74석짜리 별오름극장도 250석짜리 사랑방극장으로 꾸미기로 했다. 기존의 달오름극장이 갖고 있던 소극장 기능도 충족할 수 있게 된다. 사랑방극장은 별관에 들어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떠난 뒤 2008년 세울 공연예술박물관과 연계해 운영한다. 이밖에 야외극장으로 쓰고 있는 600석 규모의 하늘극장은 눈·비가 내릴 때도 공연할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하고 객석도 800석으로 늘린다. 해외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음악·마임·서커스·퍼포먼스 등 21세기 예술장르로 청소년들에게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사계절극장으로 운영한다. 신선희 국립극장장은 “극장이 완공되면 한국적 총체 음악극으로서 창극의 발전이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국악 레퍼토리 개발과 판소리 및 창극의 대중화와 해외 진출 등을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새달 교향악 축제 春心 깨운다

    새달 교향악 축제 春心 깨운다

    2007 교향악 축제가 새달 1일 막을 연다. 전국 21개 교향악단이 참여하는 초대형 음악축제이다.23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개막 연주회는 임헌정이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의 브람스의 밤이다. 마지막 날에는 한국·중국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중국 랴오닝심포니가 코리안심포니와 합동연주회를 갖는다. 교향악 축제는 전국 교향악단의 수준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가 단체들은 부담감이 적지 않다. 올해는 16개 시·도 가운데 15개 시·도가 ‘대표선수’를 출전시켰다. ▲서울은 서울시향(2일) ▲대구는 대구시향(3일) ▲인천은 인천시향(10일) ▲광주는 광주시향(11일)▲부산은 부산시향(12일) ▲대전은 대전시향(14일)이 나선다. ▲경기는 부천필하모닉과 수원시향(13일), 군포프라임필하모닉(18일)이 참여한다.▲전북은 전주시향(4일)과 군산시향(8일) ▲경북은 포항시향(6일)과 김천시향(15일) ▲강원은 강릉시향(7일)과 원주시향(17일)을 각각 내보낸다. ▲충남은 충남교향악단(20일) ▲제주는 제주시향(21일) ▲경남은 마산시향(22일)이 나서지만, 여건이 워낙 열악한 전남은 빠졌다. 이밖에 KBS교향악단과 서울 강남구가 운영하는 강남심포니가 가세한다. 올해는 특히 피아노의 박휘암·강현주·권석란, 바이올린의 엄성용·임가진, 비올라의 강주이, 첼로의 문서영, 플루트의 박민상, 클라리넷의 채재일 등 교향악축제 협연자 오디션에서 선발된 9명의 젊은 연주자가 무대에 선다. 2005년 도입한 협연자 오디션은 28∼38세로 나이에 제한을 두었다. 일반 콩쿠르에 출전하기에는 늦고, 중견 연주자로 인정받기에는 경험이 다소 부족한 나이인 만큼 큰 무대에서 연주기회를 주자는 취지라고 한다. 창작곡에 대한 관심도 높다. 박정선의 ‘관현악을 위한 메나리’와 박인호의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형상 Ⅶ’, 이병욱의 ‘단오축전’ 서곡, 정윤주의 ‘까치의 죽음’, 서순정의 ‘관현악을 위한 유현’, 김솔봉의 ‘고덤 룹스’, 백영은의 교향시 ‘별밭’, 유병은의 ‘한’ 등 8곡을 선보인다. 1만∼3만원.(02)580-13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이호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콘트라베이스’ 음반 발매

    이호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콘트라베이스’ 음반 발매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맨 오른쪽에 줄지어 서 있는 덩치가 큰 악기이다.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 ‘콘트라베이스’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듯 오케스트라에나 필요한 악기쯤으로 치부되던 콘트라베이스이지만 최근 스타플레이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당당하게 독주악기로 대접받고 있다. 국내에서 콘트라베이스 붐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연주자가 이호교(40)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이다. 가장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는 그가 음반을 내놓았다. 국내 연주자의 콘트라베이스 음반은 유례가 드물다. ‘나의 사랑하는 클래식’(서울음반 펴냄)이라는 제목처럼 바흐와 헨델, 차이콥스키, 포레 등의 듣기 편한 소품을 모았다. 음악원의 동료 교수이기도 한 김대진이 피아노를 맡았다. 이 교수는 “국내에선 아직 콘트라베이스의 입지가 튼튼하지 않은 만큼 내가 좋아하는 음악보다는, 사람들이 이 악기를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음반을 펴낸 것도, 레퍼토리를 잘 알려진 소품들로 짠 것도 이 때문이란다. 이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에 유학하던 199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음악원 주최 국제 콘트라베이스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에서 1∼2년마다 꼭 독주회를 가졌고,2004년부터는 예술종합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이호교 더블베이스 앙상블’을 구성해 이 악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연주자로서는 뒤늦게 고 3년생 때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손에 잡은지 1년만에 현악부문 1등을 차지해 전액장학금을 받고 목원대에 입학하고, 대학 3학년 때는 대전시향에 최연소 단원으로 들어갔을 만큼 재능을 발휘했다. 빈국립음대에 들어가서도 테크닉에서만큼은 뒤질 게 전혀 없었다고 했다. 국내에서 자신을 가르친 스승들이 그만큼 고마웠다고 한다. 이 교수도 후진 양성에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성민제(17)군이 독일에서 열린 제4회 슈페르거 콘트라베이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이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 콘트라베이스의 미래는 밝다. 과거에는 첼로를 배우다 대학 입학 점수가 모자라면 바꾸는 악기가 콘트라베이스였지만, 지금은 코흘리개 시절부터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도 7명의 음악영재가 콘트라베이스를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콘트라베이스 팬을 늘리는 것은 여전한 숙제이다. 그의 꿈도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한번 들려주는 것”이다. 한번만 들어보면 매료되어 계속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콘트라베이스의 특징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꿈을 이루고자 음반에 담긴 레퍼토리를 들고 오는 28일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연해주에 ‘고구려 숨결’

    연해주에 ‘고구려 숨결’

    러시아 연해주의 동북해안 산악지대에 발해시대에 쌓은 고구려계 석성(石城)이 집중분포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해주에서 고구려계 성곽이 조사된 것은 처음이고, 연해주 동북지역에서 발해 유적이 조사된 것도 처음이다. 러시아 극동과학원 역사고고민족역사연구소의 O V 디야코바(58) 박사는 연해주 지역에서 보고된 40여개의 산성을 조사한 결과 10여개가 고구려계 석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디야코바 박사는 고고학 전문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 2007년 봄호에 실린 ‘연해주 중세시대 성지에 보이는 고구려의 전통’이라는 기고문으로 조사 결과를 국내 학계에 소개했다. 디야코바 박사는 “연해주 일대 중세시대 성곽은 발해 이후 요·금 시대를 지나 동하국(東夏國·1217∼1234)에 이르는 시기에 쌓은 것”이라면서 “산성은 크게 구릉을 연결한 발해·말갈 축조 요새와 산비탈에 발견되는 여진·동하국 시대 성지로 나눌 수 있다.”고 밝혔다. 디야코바 박사는 특히 시미르코프 클류치, 자볼로트노예, 클류치, 바시코프스코예 석성은 고구려 산성기술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발해전문가인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연해주 동북부 산성의 존재는 우리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면서 “그 먼 곳까지 고구려 문화가 영향을 미치고, 발해시대 연해주에서도 고구려인의 활동이 감지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 준다.”고 말했다. 기고문을 번역한 러시아 고고학 전문가 강인욱 부경대 교수는 “그동안 우리는 만주지역에 견주어 연해주의 성곽은 주목하지 않았고, 연해주 고고학자들은 한국·러시아·중국의 국경 지역인 연해주 남부지역에만 집중했다.”면서 “디야코바 박사의 연구는 발해뿐 아니라 여진과 말갈 등 연해주 역사의 다양한 측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최고 목판 인쇄물 다라니경 제작연대 논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인정받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제작연대 논란에 휩싸였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위원은 지난 8일 1024년 씌어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重修記)’를 근거로 8세기 초반~중반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제작됐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중수기에 “두루마리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또 다른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넣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1966년 석가탑 해체·수리 과정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110여장의 종이뭉치도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묵서지편(墨書紙片)’으로 불리던 이 종이뭉치를 40년동안에 걸쳐 보존처리하고 최근 판독해 ▲중수기와 ▲보협인다라니경 ▲1038년 불국사서석타중수형지기 ▲보시명공중승소명기 등을 확인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내부검토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중수기의 일부내용을 외부로 유출해 연대를 무려 3세기나 끌어내리는 ‘자살골’을 자초한 중앙박물관은 “고려 제작설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성구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9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측천무후자(字)가 빈번히 발견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통일신라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측천무후자란 당나라 고종의 황후 측천무후의 집권기(690∼704)에 만들어진 기존의 한자와는 다른 508자의 글자로 당대에만 사용됐다. 하지만 유물관리부 실무자인 김상태 학예연구관은 “석가탑이 고려시대에 중수됐다는 사실 말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통일신라시대 것인지, 고려시대 것인지 추측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는 없다.”면서 “몇년이 걸릴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판독 결과가 나오면 종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9) 조선백자 기름받이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9) 조선백자 기름받이

    TV 드라마를 보면, 조선시대 국왕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종종 고려청자가 등장합니다. 조선시대라도 국왕이라면 귀한 청자 술병과 술잔쯤은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조선왕조로서는 고려청자가 이어받아야 할 유산이라기보다는 극복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소품 담당자가 잘 몰랐던 탓이겠지요. 고려를 무너뜨리고 일어선 조선의 지배층에게 화려한 고려청자는 과거의 소수 귀족이 자행한 부패의 산물로 낙인찍기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왕조가 앞장서 장려한 백자에는 구시대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백성들에 대한 정치적 약속이 담겨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장식을 배제하고 덤덤하게 절제와 품격을 드러내는 조선백자는 지배층이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 이념의 형상화니, 선비다운 절조와 자부심이니 하고 다양한 의미가 부여됐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백자에도 서민적인 생명력이 투영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소탈하고 재미있다는 것이 조선 후기 백자가 가진 특징의 하나라고 합니다. 하지만 백자 기름받이는 그런 단계를 훨씬 뛰어넘은 듯합니다. 여성의 신체곡선과 가장 닮았다는 고려청자 매병(梅甁)의 풍만한 어깨선조차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기름받이는 젊은 여성의 가슴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했습니다. 기름받이란 글자그대로 등잔 아래 걸어 두어 심지에서 떨어지는 기름이나 찌꺼기를 받는 데 쓰는 일종의 그릇입니다. 양쪽 가장자리에는 노끈을 달아 등잔대에 매달 수 있도록 두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지요. 처음엔 쇠뿔을 자른 뒤 속을 파내어 만들기도 했지만, 오래 쓰면 기름 얼룩이 지워지지 않아 나중엔 백자로 만든 것이 유행했습니다. 백자 기름받이는 침을 뱉는 그릇과 비슷한 모양의 타구형(唾具形)도 있었다지만, 유방형(乳房形)이 더욱 널리 쓰였다고 합니다. 가슴 모양의 기름받이는 뒤집어 보지 않고 등잔대에 제대로 걸어 두었을 때는 형태의 사실성을 별반 느낄 수 없다는 데 묘미가 있습니다. 도공은 어떻게 하면 막 성숙한 여인의 가슴과 똑같이 빚을까 고심했겠지만, 쓰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꼭 기름받이를 염두에 두고 한 얘기는 아니겠지만,“중·후기 백자는 간결·소탈하고 단정·정직하며 유머와 해학이 있다.”는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설명은 그래서 돋보입니다. 나아가 가슴 모양으로 빚은 조선백자 기름받이는 등잔대가 쓰여질 절조 있는 선비의 사랑방이나, 마당 깊은 안채에서도 본연의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잃지 말라는 익살 속에 교훈을 담아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dcsuh@seoul.co.kr
  • 완창 판소리 9차례 공연

    완창 판소리 9차례 공연

    판소리 완창이 공연 형식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1968년 박동진 명창의 ‘흥보가’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판소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옛 명창들도 짧으면 3∼4시간, 길면 7∼8시간에 이르는 완창판소리에 도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완창판소리는 옛 공연문화의 재현이라기보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국립극장은 1985년부터 190차례에 걸쳐 완창판소리 공연을 이어왔다. 그동안 웬만한 공력으로는 불가능한 완창이 소리를 공부하는 이들에겐 당연히 도전해야 할 과제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22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가 올해는 3월18일 조통달의 ‘수궁가’로 막을 올린다.12월31일 안숙선의 심야 완창판소리 ‘흥보가’까지 모두 9차례 펼쳐진다. 올해 완창 무대에서는 다양한 소릿제(制)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3월엔 임방울에서 시작된 조통달의 ‘박초월제 수궁가’,4월엔 김여란에게 물려받은 최정희의 ‘정정렬제 춘향가’,5월엔 김일구의 ‘박봉술제 적벽가’가 올려진다.8월엔 성창순의 ‘보성소리 춘향가’,11월엔 염경애의 ‘유성준제 수궁가’,12월엔 안숙선의 ‘강도근제 흥보가’를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특히 국립창극단의 초대 단장이었던 동초 김연수의 탄신 100주년이다. 동초의 애제자인 오정숙이 6월 ‘동초제 춘향가’, 오정숙의 애제자인 김성예가 11월 ‘동초제 심청가’로 동초소리의 진수를 펼치는 것은 어떤 기념행사보다 의미있는 일이다. 올해는 또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안숙선의 판소리 입문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야완창으로 소리인생 50주년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게 됐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국내 첫 장례역사박물관 문연다

    국내 첫 장례역사박물관 문연다

    장례역사박물관이 오는 5월13일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근남리에서 문을 연다.‘죽음’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국내 최초의 박물관이다. 1만 5400평의 부지에 전시관과 수장고, 사무동 등 건평이 2267평에 이르는 3개 건물로 이루어졌다. 같은 부지에는 통과의례체험박물관을 짓는 공사도 한창이다.2008년 11월 준공 예정으로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통과의례를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장례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30개국에서 3000점의 상·장례 및 제례 관련 유물을 수집한다.2만 4000점에 이르는 사진자료도 보유하고 있다. 두 개층으로 이루어진 전시관의 1층에선 먼저 한국의 장례문화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3∼5세기 영산강유역에서 출토된 옹관을 비롯해 조선시대 파평 윤씨 무덤에서 출토된 관, 고령 최씨 문중의 3단식 상여를 기초로 복원한 상여 등이 전시된다. 일본 고데라현의 히메지주민회가 기증한 1850년대 좌식상여를 비롯해 각국의 운구 및 묘제와 관련한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독수리에게 죽은 이의 육신을 먹게 하면 영혼이 하늘로 오르게 된다는 믿음을 가진 티베트의 조장(鳥葬)과 절벽에 굴을 파고 관을 모시는 인도네시아 슬라웨시의 굴장묘(窟葬墓) 등 아시아 및 아프리카 소수민족의 장례의식도 소개된다. 2층에는 정조의 장례 행렬을 재현해 눈길을 끈다. 1800년 6월 장례 행렬을 그린 서울대 규장각 소장 정조국장의궤의 반차도(班次圖)를 바탕으로 했다.353필의 말과 1384명의 인물, 국상에서 쓰던 큰 상여인 대여(大輿)를 미니어처로 제작했다. 장례역사박물관은 임준 전 삼포실버드림 대표 가족이 사재를 털어 세우고 있다. 임 전 대표는 장례용품제조회사로 돈을 벌었으니,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사회환원이 당연하다는 소신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김보옥 현 대표가 남편의 뜻을 물려받았다.5월13일은 임 전 대표의 1주기이기도 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문화재 해외대여 대담해졌다

    문화재 해외대여 대담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해외 박물관에 대한 문화재 대여가 대담해졌다. 대여 규모가 커지고, 유물 수준도 높아졌다. 오는 12월 한국실이 문을 여는 미국 휴스턴미술관에는 금관총 금관과 금제허리띠 등 국보 2점을 포함해 37건 59점의 문화재가 나간다. ‘한국미술 5000년전’처럼 국가적 차원의 해외 순회 전시가 아닌 단일 박물관을 위해 국가지정문화재를 대여하는 것은 유례가 드물다. 중앙박물관은 오는 5월 문을 여는 체코국립박물관에도 80여점을 빌려주기로 했다. 한국문화의 전반적인 양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선사시대 토기에서 조선시대 생활용품까지 망라한다. 200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는 한국 문화와 한국 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유물을 다수 출품한다는 계획이다. 김홍남 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은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발신지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문화재의 해외 대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중앙박물관이나 산하 지방박물관이 전시하지 않고 있는 유물은 앞으로도 적극 대여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휴스턴미술관은 유물 대여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실 개관이 불가능하다. 한국실은 새로 개관하는 아시아관의 일부. 아시아관은 한국실·중국실·인도실·일본실로 구성된다. 중국·인도·일본 것은 소장 유물이 많고 기증도 받아 전시실을 꾸미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휴스턴미술관이 갖고 있는 한국 유물은 가야토기 등 4점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모두 23곳의 박물관에 한국실이나 한국 코너가 설치돼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실 설치가 더딘 남부지역의 중심 도시에서 한국문화만 소외될 수도 있었다. 체코박물관은 동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실을 갖는다. 체코는 한 해 1억명이 찾는 관광대국이다. 여기에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설립됐다는 유서 깊은 체코박물관은 필수 관광코스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여가 필요하다고 중앙박물관은 설명한다. 중앙박물관은 현재도 419점의 유물을 해외에 대여하고 있다. 영국박물관에 20점, 일본 규슈국립박물관에 186점, 뉴질랜드 오클랜드미술관에 206점, 호주 퀸즐랜드미술관에 7점이다. 규슈국립박물관은 ‘동북아시아 교류 박물관’의 성격을 갖고 있어 다양한 관련 유물을 빌려줄 수밖에 없다. 오클랜드미술관의 유물도 뉴질랜드의 컬렉터가 세상을 떠나면서 중앙박물관이 소유권을 갖되 전시는 현지에서 하는 조건인 만큼 일반적 대여와는 다르다. 문화재 해외 대여는 좋은 일이지만, 대여 기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성구 학예실장은 “해외 대여는 지정문화재급이 3개월, 나머지는 2년이 보통”이라면서 “휴스턴박물관도 대여 기간 동안 한국 유물을 적극적 수집해 장기적으로는 자체 소장품으로 한국실을 꾸밀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해외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한수 학예연구사는 “문화재 대여가 단시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적극성을 갖고 추진하다 보면 조만간 한국문화를 보는 해외의 시각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봄과의 설레는 ‘만남’

    봄과의 설레는 ‘만남’

    ‘2007년 통영국제음악제’의 봄시즌 공연이 오는 23일부터 7일 동안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다. ‘만남(Rencontre)’을 주제로 한 음악제에서 단연 주목되는 연주단체는 미국의 크로노스 콰르텟이다. 1973년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해링턴이 창단한 크로노스 콰르텟은 현악사중주의 연주범위가 과연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 왔다. 그 결과 예술적 성과를 거둔 것은 물론 대중적으로도 인기 있는 현대음악 연주단체로 성장했다. 크로노스 콰르텟은 23일 개막연주회에서 윤이상과 인도의 라울 데브 부르만, 중국 작곡가 탄둔의 작품을 연주한다. 한국 작곡가 이도희에게 위촉한 작품 ‘뉴욕’도 초연한다. 중국의 여성 비파 연주자인 우만은 2002년 음악제에 이어 다시 초청됐다. 크로노스 콰르텟은 24일에는 ‘선 링스(Sun Rings)’를 아시아에서 초연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미니멀리즘의 거장 테리 라일리에게 위촉해 2002년 처음 연주된 작품이다.1977년 발사된 우주탐사선 보이저호가 감지한 우주의 시그널을 이용해 작곡했다. 록그룹 U2와 롤링 스톤스의 비디오 작업에도 참여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데이윌리 윌리엄스가 NASA의 비주얼 자료를 넘겨받아 창조한 이미지들도 연주 내내 무대에 영사된다. ‘선 링스’는 ‘우주경치(spacescapes)’라고 불리는 10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휴식시간 없이 90분 동안 연주된다. ‘외계인의 눈에 띄게 될지도 모르는 지구인들’을 상징하는 2개의 악장에선 합창이 등장한다. 이번 공연에는 박신화가 지휘하는 안산시립합창단이 나선다.‘선 링스’는 27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도 공연된다. 또 음악제 기간 동안 크로노스 콰르텟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 3개 학생 현악사중주단이 25일 현대음악으로 이루어진 워크숍 콘서트를 갖는다. 29일 폐막 연주회는 독일의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줄리 알버스가 장식한다. 알버스는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의 하나인 경남국제음악콩쿠르의 2003년 우승자다. 통영국제음악제의 가을시즌은 10월26일부터 11월4일까지 경남국제음악콩쿠르와 함께 펼쳐진다.(055)645-2137.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황병기 감독의 ‘반가운’ 혁신

    정명훈 예술감독을 지난해 영입해 단기간에 체질개선을 이룬 서울시교향악단은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에도 지난해 2월 예술감독을 맡은 뒤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가야금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황병기다. 사실 황병기는 과거를 답습하던 가야금에 20세기적인 감수성을 불어넣어 21세기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런만큼 인맥이 뒤얽혀 무슨 일을 해도 구설이 뒤따르는 국책연주단체의 ‘감투’를 쓰는 데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원로에 대한 상징적 예우’로 받아들이고 그저 즐길 수도 있었을 예술감독 자리를 수락한 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달라졌다. 무엇보다 새로운 장르인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개척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올해 모두 8편의 신작을 위촉했다. 오는 10월16∼17일 초연되는 ‘네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는 한국 대표 공연상품을 목표로 한다. 기독교, 불교, 도교, 무교를 주제로 나효신, 김영동, 박영희, 박범훈에게 각각 지난해 10월 주문했다. 작품완성에 1년의 말미를 준 것도, 지난 2일 ‘창작발표회’에서 작곡가들이 작품구상을 설명하고 작품의 일부분을 시연토록 한 것도 유례가 드물다.11월29일 열리는 ‘창작음악회’를 위해서도 백대웅, 이해식, 백병동, 이혜성에게 신작을 위촉했다. 창작곡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연주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국악관현악의 부재현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이다. 연장선상에서 이달 31일 여는 ‘국악관현악 명곡전-회혼례에서 만선까지’도 음악적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선별해 ‘국악관현악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토록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8월31일과 9월1일의 ‘젊은 예인들을 위한 협주곡의 밤’은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젊은 국악인의 범위를 학생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실력있는 연주자들에게까지 확대했다. 이렇듯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국악적 색채가 짙은 진보진영의 애창곡을 전문으로 반주하는 단체’라는 한동안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있다. 그렇다고 ‘황병기 체제’가 곧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보수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례로 8년째를 맞은 ‘겨레의 노래뎐’은 오는 6월3일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북한 음악으로만 꾸미기로 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추사 대표작 ‘명선’ 초의선사에 준 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 서예작 ‘명선’(茗禪·57.8×115.2㎝)은 한국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1786-1866)에게 추사가 직접 지어 선사한 호(號)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한양대 정민(국어국문학) 교수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1788∼1863)의 문집 ‘치원유고(梔園遺稿)’에 실린 ‘걸명시(乞茗詩)’에서 확인한 것으로, 이 작품의 해묵은 위작 논란을 가라앉힐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한국학 전문계간지 ‘문헌과 해석’ 2007년 봄호에 기고한 논문 ‘차를 청하는 글:다산의 걸명(乞茗)시문’을 통해 “황상은 초의 스님에게 보낸 걸명시에서 ‘명선(茗禪)이란 좋은 이름 학사(추사)께서 주시었고…’라 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특히 이 걸명시에서 황상이 ‘추사가 명선이란 호를 (초의선사에게)주었다.’고 부연설명까지 한 사실을 들어 ‘명선’을 추사의 진품 서예작으로 못박았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명선’은 세한도(歲寒圖)와 함께 추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예서체 작품으로 현존 추사 글씨 중 가장 큰 것이다.‘명선’이라 쓴 글씨 옆에 ‘초의가 자신이 만든 차를 부쳐왔는데 몽정차나 로아차에 못지않으니 이를 써서 보답한다.’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미술사·서예사 연구자들은 그동안 이 작품을 막연히 초의선사의 차(茶=茗)와 선(禪) 일치 정신을 높이 산 추사가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라는 뜻으로 써 준 글씨로만 여겨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나주는 ‘제4의 고대문화권’

    나주는 ‘제4의 고대문화권’

    전남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에서 백제는 물론 신라와도 교섭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형고분군이 발굴됨에 따라 영산강 유역이 고대문화의 보고로 다시 한번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나주는 삼한시대 이후의 대형 무덤이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여럿 발굴되어 반남면 대안리·신촌리·덕산리와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 등 4곳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고분 밀집지역이다. 이에 정부는 가칭 국립영산강고고학박물관을 오는 2011년까지 나주에 세운다는 계획을 확정했다.10억원의 기초조사용역비도 올 예산에 반영했다. 앞서 2005년에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경주와 부여·창원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4번째 지역 연구소이다. 한반도 구석기 연구의 중심지가 될 중원문화재연구소가 올해에야 충주에 신설될 예정이라는 것도 영산강 유역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이렇듯 나주를 중심으로 하는 영산강 유역 문화권이 경주의 신라문화권과 공주·부여의 백제문화권, 김해의 가야문화권에 이은 제4의 고대문화권으로 빠르게 발돋움하고 있다. 이웃한 영암 월출산 기슭의 다양한 문화유적과 한국 도기문화의 중심지인 구림에 세워진 영암도기문화센터를 묶는다면 어느 고대문화권에도 뒤지지 않는 관광자원까지 갖추는 셈이다. 영산강고고학박물관은 나주와 영암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으나,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평가단의 현지실사를 거쳐 나주 반남면 신촌리가 예정지역으로 확정됐다. 대안리·신촌리·덕산리 고분군이 밀집한 지역이다. 반남면 일대 무덤 39기에서는 그동안 국보 제295호 금동관을 비롯해 모두 1만 2573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영산강고고학박물관은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고대유물을 전시테마로 하는 전문박물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 기원전 4세기 이후 삼한시대의 유물과 옹관묘로 특징지어지는 영산강 유역의 매장문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게 된다. 이세섭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은 “영산강고고학박물관은 건립단계에서부터 중앙박물관의 지역박물관 특성화 계획이 적용될 것”이라면서 “박물관의 이름도 고고학 발굴성과와 발맞추어 전시와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26일 영동리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에서 최성락 목포대 교수를 비롯한 지도위원들은 3세기 옹관묘에서부터 7세기 석실묘에 이르는 30여기의 매장시설이 드러난 또 하나의 ‘벌집형 고분’인 영동리 보호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동리 고분군은 하나의 무덤에서 4세기에 걸쳐 41기의 매장시설이 발견되어 ‘벌집형’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복암리 3호분에서 1.5㎞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영동리 고분군을 사적 제404호 복암리 고분군에 추가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발굴책임자인 이정호 동신대 교수는 “영동리 고분군은 야외 고분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사유지인 만큼 보존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면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8) 정림사터 오층석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8) 정림사터 오층석탑

    충남 부여에 정림사터 오층석탑이 없다면 사비시대(538∼660년) 백제의 흔적은 낙화암 전설로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탑이 사비성에서 제 모습을 유지한 거의 유일한 유적일 만큼 백제 문화는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도 나당연합군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잘 알려진 대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반도의 오랑캐가 만리 밖에서 천상을 어지럽게 하여…일거에 평정하였다.’는 글을 1층 탑신에 새겼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오만한 낙서로 훼손되지 않았다면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라군사 쪽에서 보면 정림사는 사비성의 한복판에서 백제왕조의 안녕을 빌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겠지요. 그럼에도 정림사를 폐허로 만들었을지언정 ‘소정방 기념탑’으로 탈바꿈해 버린 오층석탑은 허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가 융성했던 백제라지만 남아 있는 석탑은 2∼3기에 불과합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요즘 해체 복원작업이 한창인 익산의 미륵사터 서탑이 그것이지요. 학자에 따라서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도 백제시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백제 석탑은 신라의 황룡사 구층석탑처럼 목재로 짜맞추던 탑을 석조로 번안한 것입니다. 정림사탑만 해도 부재가 149개에 이른다고 하네요. 백제 석탑의 모습을 본받은 이른바 백제계 석탑은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과 서천 비인 오층석탑,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강진 월남사터 삼층석탑 등 10여개가 꼽힙니다. 모두 백제의 옛 땅입니다. 백제계 석탑이 한결같이 고려시대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 석탑의 기술이 그대로 계승되었겠지만, 이 시기에 세워진 백제계 석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윤용혁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신라의 옛 백제땅에 대한 지배정책이 매우 완고하여, 백제계 석탑의 건립조차 불온시되는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불국토(佛國土)를 표방한 통일신라에서 석탑이 갖는 대중적 영향력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백제계 석탑을 세우는 것은 백제계 주민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반국가활동’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고려시대에 백제계 석탑이 여럿 세워진 배경에도 정치적 해석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천득염 전남대 건축과 교수는 “나말여초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견훤을 비롯한 백제 추종세력에 고무 자극된 지역민들의 백제문화에 대한 향수의 발로였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통일신라를 비롯한 후대 석탑에 영향을 미친 한국 석탑의 출발점입니다. 더 이상의 조형적 발전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백제 석탑의 완결판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수백년 동안이나 백제 국권회복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정림사탑이 가진 또 하나의 가치입니다. 문화적 산물이 꼭 문화로 한정된 영향력만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벌써 1400년 전에 보여주었습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세상으로 唱을 열다

    민주화운동 시대에만 재야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21세기 국악계에도 재야인사들이 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흐름을 타기보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법통을 올곧게 지켜가면서 제 갈길을 가는 명인·명창들이다.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일컬어지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라는 ‘제도권’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음악사를 쓰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이런 ‘거물급 재야명창’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주인공은 바로 판소리의 박초선과 시조의 서현숙, 경서도소리의 남혜숙. 이들은 3월15∼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3인의 가인(歌人)’에서 만날 수 있다. 재능을 묻고 살아온 명창들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여 우리 소리의 다양성을 보여주자는 것이 국립국악원의 기획 취지이다. 이른바 주류 소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같고도 다른 멋과 깊이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세 사람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질 두 차례 공연에서 각자의 장기를 펼쳐놓게 된다. 특히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정선아리랑을 판소리, 경서도소리, 시조의 세 명인이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박초선(76)을 재야인사로 분류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다. ‘애기명창’으로 자라 김소희, 박록주, 김여란 등 당대 명창에게 두루 배운 뒤 탁월한 기량으로 소리판을 주름잡은 대표적 명창의 한 사람이기 때문. 그는 1960년대 완창 판소리를 음반으로 내자는 제의에 “전통예술을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며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국극이 관객을 불러모을 때도 “판소리 대중화에는 기여할 수 있겠지만, 쉽게 소리를 하는 탓에 목 쓰임새와 타는 길이 변질된다.”고 주장해 논쟁을 불렀다. “소리꾼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면서 “권력주변을 기웃거리며 아부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후배들을 다그친다. 그는 정정렬제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아닌 보유자 후보로 22년을 보내고 있다. 남혜숙(65)은 경기민요의 전설적인 명창 김옥심의 제자이다. 김옥심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에서 탈락한 뒤 제자들의 ‘줄서기’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다른 욕심 없이 그저 선생님의 소리가 좋아 배웠을 뿐인데 왜 떠나겠느냐.”며 곁을 지켰다. 남혜숙은 크고 높은 소리를 배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덜미청과 비단실을 뽑아내듯 가느다란 속청이 뛰어나고 방울목으로 소리를 굴려서 내는 김옥심의 기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남혜숙의 경서도잡가와 민요가 중요성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현숙(67)은 임춘앵 일행의 여성국극 ‘열녀화’를 보고 국악에 입문한 뒤 23세에 마산 전국시조경창대회 명인부에서 1등을 차지했다. 같은 해 전국의 시조경창대회를 모조리 휩쓸다시피 했다. 이듬해에는 스승인 유종구와 가곡·시조를 담은 음반을 펴냈다. 하지만 단시간에 명창의 반열에 오른 것이 부담이었는지, 한동안 경남 남해에서 두문불출했다.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1985년에는 부여백제문화제 시조가곡 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정경태와 유종구를 거쳐 서현숙에게 이어진 향제 시조는 아기자기한 맛이 매력이다. 서현숙의 타고난 성음은 편안하고 단아함을 느끼게 한다. 공연시작은 오후 7시30분.1만∼2만원.(02)580-3333.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백제땅’ 나주서 신라토기 발굴

    독널무덤(옹관묘)으로 특징지어진 영산강 유역 세력권인 전남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의 5세기 말∼6세기 초반 무덤에서 신라토기가 여럿 발굴되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영동리 고분군을 발굴하고 있는 나주 동신대 문화박물관(책임연구원 이정호 교수)은 지난해 10월부터 실시한 제3차 조사에서 적어도 37기의 무덤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신라토기 5점은 모두 뚜껑접시(蓋杯·개배)로 제3호분에서 나왔다.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고분)의 입구에 장례의식을 치른 뒤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삼각집선문과 반원문이 결합된 전형적인 신라시대 것이다. 백제의 색채가 짙은 세발토기(삼족기)도 여러 점이 나왔다. 피장자가 백제 및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로 짐작할 수 있다. 앞서 1996년에는 나주 복암리 제3호분에서 신라의 영향이 짙은 말재갈과 말 장식인 행엽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발굴단은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강유역의 위례성을 점령당하자 웅진으로 천도한 뒤 493년 신라와 국혼을 하고 동맹관계를 긴밀하게 다진다.”면서 “이 관계는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기까지 60여년동안 지속되는데, 복암리 3호분과 이번에 출토된 신라토기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과 잘 부합한다.”고 설명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백제부흥’ 아닌 ‘백제복국’이 맞다

    백제는 660년 신라와 당나라 군대의 기습적인 협공을 받고 항복했다. 하지만 백제 세력은 곧 이어 왜(倭)에 머물고 있던 풍 왕자를 국왕으로 옹립하여 국가체제를 수립한 뒤 조직적으로 나·당군에 항전한다. 그동안 이런 움직임을 백제부흥(復興)운동, 나·당군에 항전하던 세력을 백제 부흥군(復興軍)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세였다. 하지만 ‘백제 부흥’이라는 용어는 왜가 천황권의 역사적 승리를 과시하고 미화시키기 위해 편찬한 ‘일본서기’ 속의 천하관에 보이는 용어이기 때문에 쓰지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최근 발간된 ‘전통문화논총’ 4호에서 “‘일본서기’는 임나제국이나 임나 재건과 관련하여 한결같이 부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서 “왜의 역할과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구절에서 ‘부흥’이 나타나는 만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백제 부흥의 개념은 나라가 망한 뒤 국권을 되찾는 투쟁으로, 한 국가가 쇠퇴했다가 다시 흥기하는 개념의 부흥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면서 “당시 백제의 움직임은 당나라와 신라가 강점하고 있는 자국 영토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일종의 독립투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차라리 ‘부흥’보다는 ‘삼국사기’에 보이는 ‘흥복(興復)’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볼 때 부흥운동은 복국운동(復國運動)으로, 부흥군은 복군군(復國軍)으로 일컫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백제가 멸망한 뒤 주민들이 국권회복 투쟁을 전개한 것을 부흥운동으로 일컬은 것은 1923년 오다 쇼고(小田省吾)가 ‘조선상세사(朝鮮上世史)’에서 쓴 것이 가장 오래된 용례”라면서 “하지만 이전에 사용한 사례가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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