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짓밟힌 남자’ 보체크의 아리아
국립오페라단은 올해부터 ‘마이 넥스트 오페라’라는 이름의 기획공연을 갖겠다고 일찌감치 공표해 놓았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현대 작품이나, 높은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품을 해마다 한편씩 무대에 올리겠다는 약속이었다. 당연히 걱정도 많았다. 이태리 낭만파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 오페라 무대의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칼’을 뽑아들기는 했지만, 자칫 관객동원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시장’만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장고 끝에 선택한 작품이 현대음악에 선구적 역할을 한 오스트리아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의 ‘보체크’이다. 폭력적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약자의 모습을 격렬하고, 불안한 불협화음으로 드러내는 작품인 만큼 뜻밖의 선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페라로는 한국 초연인 ‘보체크’가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독일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원작으로, 연극으로는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보이체크’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보체크’의 팬은 많지 않지만,‘보이체크’는 우리 문학도에게도 필독서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데다, 연극으로 접한 팬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전략도 일단 뷔히너와 연극 ‘보이체크’의 팬들이 오페라 ‘보체크’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최대한 초점을 맞춘 듯하다. 연출자 양정웅은 연극배우로 ‘보이체크’에 두차례 출연한 적이 있다. 그는 “오페라 ‘보체크’는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라면서 “관객 개개인의 해석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비유와 상징을 통해 시적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연출의 방향을 설명했다.
현대무용가 홍승엽에게는 단순한 안무가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으로 배역의 심리상태를 최대한 내보이도록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장식을 배제하고 각각의 재질을 그대로 살려 사건의 진실과 직면토록 하겠다는 임일진의 무대미술 컨셉트도 스케일은 훨씬 커졌지만, 연극적이다.
정은숙 예술감독은 “‘마이 넥스트 오페라’는 마니아 층을 위한 기획으로 작품 선정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보체크 역에는 오승용·김종화, 마리에는 김선정·이지은, 군악대장에는 임제진·김경여, 대위에는 이인학·황태율, 의사에는 함석헌·김진추가 더블캐스팅됐고, 안드레스 역은 박웅이 맡는다. 정치용이 지휘하는 TIMF(통영국제음악제)앙상블과 국립오페라합창단이 나선다.
새달 14∼17일 LG아트센터.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4시.1만∼9만원.(02)586-5282.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