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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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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아람누리 대형공연 ‘실험무대’

    고양아람누리 대형공연 ‘실험무대’

    KBS교향악단이 기존에 두 차례 갖고 있는 정기연주회를 수도권의 대형 공연장에서 한차례 더 치르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새달 16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 초청 연주회’는 그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시험하는 무대가 된다. 앞서 14일에는 예술의전당,15일에는 KBS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KBS교향악단은 정기연주회를 두 차례 갖는 이른바 ‘원 프로그램 투 콘서트’를 1992년에 도입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적인 악단으로 도약하려면 횟수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KBS교향악단의 황순용 차장은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보통 서너차례 공연해 단원들의 실력을 높이고 무대 적응력도 키운다.”면서 “나아가 신도시 개발에 따른 수도권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몫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부 논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에 수도권 공연장의 반응은 당연히 긍정적이다. 기본적인 수준이 보장되는 데다, 자체적으로 기획했을 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세계적인 연주자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달의 고양아람누리 연주회에도 네덜란드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 출신인 키즈 바클스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떠오른 힐러리 한이 나선다. KBS교향악단은 오는 10월에도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을 고양아람누리에서 한 차례 더 공연한다. 정기연주회는 한해 10차례 안팎. 관객의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전제로, 수도권 북부는 고양아람누리, 남부는 성남아트센터에서 각각 5차례 정기연주회를 갖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예산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지만,KBS홀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는 공사가 계획되어 있는 것도 ‘수도권 정기연주회’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지역 대형 공연장의 대관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칫 정기연주회를 한 차례로 줄여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권의 거점형 대형 문화공간들은 전에 없이 여유를 갖고 KBS교향악단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고양아람누리의 경우 31일 장윤성이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을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 연주회를 갖고,8월21일에는 정명훈이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하는 서울시향 연주회를 유치하는 등 우수한 교향악단들과 다양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놓았다. 게다가 자체 교향악단 설립도 검토하고 있는 만큼 KBS교향악단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심규선 고양아람누리 기획부장은 “올해는 오페라전용 아람극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내년에는 아람음악당에 좋은 연주를 유치하는 데 힘을 쏟을 방침”이라면서 “KBS교향악단과 협력관계가 진전된다면 중·장기적으로 정기연주회의 프로그램부터 공동기획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표시했다. 서울 밖이라고 해서 KBS교향악단이 이름만으로 연주회를 성공으로 이끌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주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려면 하나하나의 정기연주회가 이목을 끌 수 있도록 서울에서보다 오히려 수준을 높여야 할지도 모른다. 수도권 공연장에서 치르는 제3의 정기연주회는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혜택이 되기도 하겠지만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기대 이상으로 KBS교향악단의 연주 및 기획 능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1) 단원의 ‘포의풍류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1) 단원의 ‘포의풍류도’

    단원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조선 후기 서화와 골동품 수집 붐 속에 단원 역시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매화 화분 하나를 큰 병풍 두 개 값에 해당하는 2000전(錢)에 선뜻 사들일 만큼 호사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림값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얼마전 미술품 경매에서는 박수근과 김환기의 유화가 수십억원씩에 낙찰되기도 했지요. 그림 수집 열기는 그러나 요즘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18∼19세기 조선시대에도 서화와 골동품의 수집 붐은 상상을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라는 말이 있지요.‘서경(書經)’에 나온다고 하는데,‘물건에 집착하면 큰 뜻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문인(文人)은 서화나 골동을 도덕적 자기수양을 위한 방편으로만 써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명나라 말기에 시작된 수집 열기는 조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 청나라와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종로거리에는 베이징의 골동품시장인 류리창(琉璃廠)에서 들여온 호사스런 물건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고 하지요. 서화와 골동 수집에 광적으로 탐닉하여 재산을 탕진한 인물도 여럿이 나타났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서화와 골동을 ‘투자대상’으로 분명하게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요즘의 그림 수집 열기와 다른 점이겠지요. 실제로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1696∼?)는 장안에서 으뜸가는 감식안을 자랑했지만, 노경에 이르러 물건을 내놓았을 때 산 값에 팔린 것은 열에 두셋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의 수집 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가 지목된 것은 뜻밖입니다.‘흙벽에 종이로 창을 내고 몸이 다할 때까지 시나 읊조리련다.’는 화제(畵題)가 담긴 이 작품은 세속의 명리를 초탈한 문인의 일상을 그렸다는 해석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미술사학자인 장진성 서울대 교수는 ‘포의풍류도’가 ‘고동서화(古董書畵) 수집에 몰두해 있는 인물의 호사취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인물의 이미지는 ‘완물상지’를 유념하면서 아취 있는 문인생활을 즐기는 감상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집한 골동품이나 서화로 끝없이 정서적 기쁨을 만끽하는 호사가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지요. 그림 속에는 쌓아올린 서책과 다발로 묶여진 두루마리, 중국자기로 보이는 귀가 둘 달린 병, 벼루와 먹, 붓과 파초잎, 악기인 생황과 칼, 그리고 호리병 등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당시에는 여간한 사람이 소장하기 어려운 진귀한 재보(財寶)였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파초잎 옆에 놓인 나팔꽃 봉오리 모양의 고()는 기원전 11∼12세기 중국 상나라의 청동제기로 매우 비싼 값에 팔렸다고 하지요. 값이 치솟자 가짜가 나돌기 시작한 것은 요즘의 그림시장 상황과 비슷합니다. 서화나 골동을 수집하는 데 재산을 탕진하고도 진귀한 물건을 갖고 있는 데 스스로 만족하는 그림 속 인물의 모습은 당시 문인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풍속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포의풍류도’가 문인의 초탈한 심사를 가장했다고 하더라도, 조선 후기의 사회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서화나 골동품 수집열기는 물질문화를 긍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만큼 근대적 소비사회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dcsuh@seoul.co.kr
  • 경주남산서 5m짜리 통일신라 마애불

    문화재의 보고로 알려진 경주 남산의 열암곡(列岩谷)에서 통일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5m짜리 대형 마애불상이 발견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2일 열암곡에 있는 8세기 석불좌상의 주변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마애불을 찾았다.”고 30일 밝혔다.마애불이란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를 뜻한다. 이번에 발견된 마애불은 70t 남짓한 화강암의 한면에 여래입상이 높은 돋을새김(고부조)되어 있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는 현재 완전히 넘어져 있다. 또 조각된 면이 지면을 향하고 있어 여래입상의 모습은 일부분만 확인할 수 있는 상태이다.지병목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1000년 이상 땅속에 묻혀 있다시피한 만큼 풍화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그동안 발견된 어떤 마애불보다 보존상태가 좋다.”면서 “조만간 전체 모습을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학술적 가치도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31일 오후 2시 마애불을 발견한 남산 열암곡에서 현장 설명회를 갖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0) 강원 철원 도피안사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0) 강원 철원 도피안사

    부처님 오신 날 나들이 계획을 짜고 있다면 강원도 철원에 있는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솔깃해지는 이름입니다. ‘피안’은 번뇌에서 해탈한 열반의 세계를 일컫는다지만, 글자 그대로 ‘저 건너 기슭’이라고만 읽어도 왠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지요. 도피안사는 강원도 제일의 곡창인 철원평야를 끼고 있는 동송읍을 지나쳐 조금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냅니다.‘피안의 세계’에 너무나도 쉽게 도착했다는 것이 싱겁게 느껴지고, 정리되지 않은 절집 됨됨이를 지켜 보노라면 깨달음을 완성한 극락세계라고 강변하기에도 멋쩍습니다. 진면목은 바깥 풍경이 아니라 큰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엷은 미소에 인간미가 느껴지는 철조 비로자나불이 그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을 부처님의 말씀 그 자체를 형상화한 법신불(法身佛)입니다. 온몸을 뒤덮고 있던 금박을 얼마 전 벗겨내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특유의 검붉은 빛깔을 되찾았습니다. 이 철불은 신라 경문왕 5년(86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등에 오목새김(陰刻)되어 있는 139자의 명문(銘文)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나말여초에 유행한 철불은 흔히 호족과 연결지어집니다. 신라 하대에 왕위쟁탈전으로 왕권이 약화되면서 통제에서 벗어난 지방 호족은 선종(禪宗)과 제휴하게 되지요.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見性成佛·견성성불)는 이념을 가진 선종은 실력을 쌓으면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호족의 구미에 딱 맞아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 결과 호족이 위세를 떨치던 지역마다 선종이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비로자나불이 조성됐습니다. 당연히 불상의 모습도 중앙 양식을 답습하지 않았고, 현실을 떠난 이상주의를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났지요. 재료 또한 비싼 구리를 섞기보다는 지방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철을 이용했습니다.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은 이런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여느 철불과 다른 것은 민중의 의식이 각성되어 가는 모습이 뚜렷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명문에 따르면 이 철불은 1500명 남짓한 지역민이 ‘금석(金石)과 같은 굳은 마음으로 인연을 맺어’ 조성한 것입니다. 대좌를 제외한 철불의 높이는 사람의 앉은키와 비슷한 91㎝입니다. 아담한 대적광전에서도 작아 보이지요. 하지만, 아마도 철원평야의 농민들이었을 발원자들이 염출하기엔 이런 정도도 ‘굳은 마음’이 필요했겠지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화엄종을 개창한 의상(625∼702년)은 화엄십찰(華嚴十刹) 이전에 양양 낙산사와 영주 부석사를 먼저 일으켰습니다. 어려운 교리로 사람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기보다는 먼저 관음신앙이나 아미타신앙으로 쉽게 위안과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편(方便)이었겠지요. 이렇듯 당시의 보통사람들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던 손오공처럼 의식을 지배당하던 교화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도피안사 철불에 이르면, 평범한 이들이 ‘비천한 사람들이 창과 방망이를 스스로 내리쳐 긴 어둠에서 깨쳐갈 것이며, 게으르고 추한 뜻을 바꾸어 진리의 근원에 부합하기를 바란다.’고 새겨 놓을 정도가 됩니다. 민중의 신앙이 기복(祈福)으로만 흐르지 않고, 참다운 이치를 갈구하는 단계로 발전했음을 보여 줍니다. 왕조교체를 앞둔 극도의 혼란기에, 그것도 변방에서 보통사람들이 주도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dcsuh@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궁초댕기·울산아가씨는 대중가요”

    “궁초댕기·울산아가씨는 대중가요”

    중학교 2학년 음악 교과서는 ‘궁초댕기’를 ‘100년 이상된 함경도 민요’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궁초댕기’는 ‘신고산타령’이라고도 불리는 ‘어랑타령’이 바탕이 되기는 했지만,1942년 불사조가 작사하고 김교성이 작곡해 모란봉이 부른 신민요이다. 불사조는 박영호의 다른 이름이고, 모란봉은 한때 ‘미스 코리아’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으나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자 바꾸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3학년 음악책에 나오는 ‘울산아가씨’도 마찬가지이다.‘울산아가씨’는 ‘울산 큰애기’라는 이름으로 고마부가 작사하고, 이면상이 작곡해 1943년 황금심이 ‘빅타레코드’에서 취입한 순수 창작 신민요이다. 작곡가 이면상은 광복 이후 월북하여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과 음악가동맹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 작곡가가 알려졌다면 당연히 금지곡이 되었겠지만, 민요로 알려지는 바람에 울산을 대표하는 인기있는 민요로 발돋움했다. 일제강점기에 탄생했지만, 전승이 단절되거나 모습이 달라진 채 전해오고 있는 신민요의 제모습을 찾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소리보존회가 오는 30일 오후 7시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갖는 ‘서울소리의 원류를 찾아서 1’ 공연이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민요에 바탕을 두었거나, 새롭게 창작된 신민요 16곡의 원형이 선을 보인다. 유성기음반에 담긴 원곡을 들어보고, 복원된 실제소리도 감상할 수 있다. ‘궁초댕기’와 ‘울산큰애기’는 물론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라는 가사의 ‘태평가’로 알려진 ‘태평연’과 ‘노들강변’도 오늘날에는 경기민요로 분류되지만 당초엔 신민요였다. ‘공연한 그 사람을 심중에 두었다가 평생을 못 잊어 웬수로다.’라는 가사를 가진 ‘개성난봉가’는 가사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가사가 상당 부분 바뀌었다고 한다.‘개성난봉가’와 ‘오돌독’,‘흥타령’,‘사발가’ 등을 원곡의 가사를 복원하여 부른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대구아리랑’은 명창 최계란이 1936년 밀리온레코드에서 취입한 음반이 발견됨에 따라 원형을 찾아 무대에 올려진다. 남혜숙·유명순 명창을 비롯해 서울소리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명창이 대거 나서며, 특히 서울소리보존회 대학연합과 청소년연합에서 활동하는 대학생과 청소년들도 공연에 참여한다. 음악회에 해설자로 나서는 국악평론가 김문성씨는 “교과서 등에 잘못 서술되어 있는 신민요의 역사가 바로잡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1960년대까지도 크게 유행했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상당수의 신민요를 발굴하여 학계에 연구재료로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무료.(02)353-5525.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만화, 고고학을 만나다

    선사고고학이 깊이있는 인문학적 콘텐츠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만화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고고학자인 이융조 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는 24일 서울국제무역전시장(SICAF)에서 ‘만화가를 위한 고고학 강좌’를 갖기로 했다. 만화가 박재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화백은 “고고학자들의 발굴작업은 그 과정이 하나의 드라마”라면서 “선사고고학에 대한 만화가들의 관심이 뜨거워 100개의 좌석을 준비해 놓았다.”고 소개했다. 고고학과 만화의 만남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뿌리째 캐는 한국미술’이라는 강좌가 계기가 됐다. 시사만화가로 이름을 날린 박 화백과 이문열의 ‘삼국지’를 만화로 옮긴 이희재 화백은 지난 3월13일 ‘한국의 구석기 시대와 문화’라는 이 교수의 강연을 들으며 무릎을 쳤다. 선사시대의 비밀을 밝히는 고고학자들의 발굴 과정을 만화로 만들면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 모두가 고고학에 흥미를 갖고 구체적인 지식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더 많은 만화가들과 선사고고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 상상력을 자극해 좋은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이 교수는 “고고학을 대중화하는 데 만화보다 좋은 것이 있겠느냐.”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지난 3월31일에는 1박2일 일정으로 10여명의 만화가를 한반도 구석기 유적의 보고인 단양으로 초청했다. 자신이 발굴에 참여한 구낭굴과 수양개 유적, 수양개에서 발견한 유물을 전시해 놓은 수양개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발굴 당시의 일화도 들려주었다. 박재동 화백은 “우리 만화는 인문학적 전문성에서 일본에 다소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고고학 강좌가 밑바탕이 되어 만화가들이 나름대로 전문적 분야에서 지식을 쌓아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표시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연주자 영혼 빌려 소리 만들래요”

    첼리스트 장한나(26)가 오는 27일 지휘자로 데뷔한다. 그는 제1회 성남 국제청소년 관현악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인 이날 성남아트센터에서 한국, 중국, 독일 단원으로 이루어진 연합청소년 관현악단을 지휘한다. 그는 2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휘란 다른 연주자 100명의 몸과 마음, 영혼을 빌려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자신의 지휘관(觀)을 피력했다. 장한나의 지휘는 일회성 퍼포먼스가 아니다.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과 교향곡 7번,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1번으로 짜여진 프로그램도 신예 지휘자의 데뷔 레퍼토리로 손색이 없다. 그는 “얼마전 돌아가신 스승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얘기는 못했지만 첼로뿐 아니라 지휘, 피아노까지 하시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충분히 채우시는 모습도 제가 존경하는 부분”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장한나가 본격적으로 지휘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제임스 드프리스트가 줄리어드음대 지휘과 학과장으로 부임한 4년 전. 캐나다 퀘벡심포니와 미국 오리건심포니 음악감독을 지낸 드프리스트의 지도를 받아 처음 지휘한 곡이 베토벤 7번 교향곡이었다고 한다.그는 데뷔 이후에는 더욱 바쁜 ‘지휘자’가 될 것 같다.MBC와 올해 여름부터 2년 동안에 걸쳐 베토벤 교향곡 9곡을 모두 지휘할 계획이기 때문. 교향곡 1번은 제주시향,7번은 서울시향과 녹화가 예정되어 있다. 장한나는 지휘자 데뷔무대와 ‘MBC 베토벤 스페셜’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해설도 직접 맡는다. 그는 “아이들이 과일이나 야채에 들어 있는 비타민이 몸에 좋으니 먹으라고 하면 잘 먹느냐.”고 반문하면서 “음악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음악 그 자체를 전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상은 현대적인 연미복을 준비했다.”면서 “기대해 달라.”고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문화재청 “왕릉재실 화기이용은 관행”

    문화재청이 지난 16일 경기 여주에 있는 조선 효종의 영릉(寧陵)에서 취사도구를 동원해 음식을 조리한 사실을 두고 비판이 일자 17일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왕릉의 재실(齋室)에서 화기를 이용한 취사는 관행”이라는 문화재청의 주장에 비난여론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격화되고 있다. 많은 네티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 등에 글을 올려 ‘성의있는 사과’를 요구했고,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유홍준 청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박영근 사적명승국장 명의로 ‘효종대왕릉 재실에서의 오판 관련 보도에 대한 문화재청의 입장’을 내고 “사적지에서 음식 등을 제공해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하여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예부터 왕릉의 재실은 제례를 지낸 뒤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숙식제공과 제사음식 장만, 제관들이 음복을 하는 장소로 관행에 따라 음식을 장만하고 데우기 위해 부득이 화기를 이용하여 행사를 치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안전관리규정은 사적지에서는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또 “16일 오찬은 문화재청장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지역국회의원, 여주군수,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 등 여러 외부인사를 위한 오찬이었음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고궁과 왕릉 행사에서 다례 절차와 조리·식사 범위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심층적인 연구 검토를 통해 일반 국민들도 납득이 가능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최근 발굴한 백제유적/최병식 지음

    전남 광양시 광양읍에 있는 마로산성(馬老山城)은 3차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2004년 실체를 드러냈다. 백제가 6∼7세기에 처음 쌓아 사용하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가 성을 보수하여 경영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마로현(馬老縣)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또 마로관(馬老官)이라는 명문을 돋을새김한 기와가 발견되었다. 마로산성이 백제시대 마로현의 중심 성곽이었음을 보여준다. 마로현을 다스리던 치소(治所)이자, 현성(縣城)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백제는 패망한 나라여서 남아있는 자료가 너무나도 적다. 따라서 백제사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고대사를 복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처럼 사료가 빈곤하다는 현실의 돌파구로 한가닥 기대를 갖는 분야가 고고학이다. 역사학자인 최병식 주류성 대표가 펴낸 ‘최근 발굴한 백제유적’에는 백제사의 빈틈을 메워줄 고고학 발굴의 성과가 집약되어 있다. 과거 백제의 영향이 미치던 지역 61곳에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이루어진 문화유적 발굴성과를 한데 모았다. 지은이는 백제역사 전문출판사인 주류성을 이끌며 그동안 30여권의 백제 관련 연구서를 집중적으로 펴냈다. 척박한 토양에서 전문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을 발간하고 있기도 하다. 지은이는 “전국적인 개발 붐에 따른 고고학 발굴의 증가는 백제의 문화발전 단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고고학 자료의 축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고고학이 백제사의 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길을 조금씩 더 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성 펴냄. 백제문화개발연구원 역사문고 별책 3. 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9) 이차돈순교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9) 이차돈순교비

    신라는 국사시간에 배운 대로, 법흥왕 14년(527년)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신라의 불교 공인이 ‘대사건’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중국을 거쳐 인도에서 들어온 이 종교가 훗날 민심을 한데 모아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이차돈의 순교 설화를 담은 높이 106㎝의 아담한 비석이 하나 전시되고 있습니다. 헌강왕 10년(818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6각형 조각입니다. ‘스토리를 새긴 순교비’란 전례가 없습니다. 불상이나 석탑처럼 전통적인 양식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식 표현을 빌리자면, 조각가는 자신의 조형세계를 그야말로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었겠지요. 한 면에는 순교 설화가 전하고 있는 대로, 이차돈이 처형되는 순간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잘린 목에서는 젖빛 피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땅이 울리는 모습이 돋을새김되어 있습니다. 조각가는 이런 장면을 비면의 아래쪽에 집중배치했는데, 전통 조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도가 참신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다섯 면은 둘러가며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 설화의 내용을 글자로 새겨놓았습니다. 순교비는 경주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의 백률사(栢栗寺)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옛 이름이 자추사(刺楸寺)인 백률사는 순교 당시 망나니의 칼에 잘려나간 이차돈의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자리라고 설화는 기록하고 있지요. 경주박물관에는 1914년 3월에 찍은 사진이 남아있는데, 처형 장면을 조각한 비면이 하늘을 향한 채 순교비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입니다. 방치되는 동안 순교비의 지붕돌도 사라져 여태껏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순교비는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의 공인을 설화의 형태로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실이 설화로 각색되어 전승되는데 얼마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이차돈의 순교 설화는 순교비 말고도 몇가지가 더 전합니다.‘삼국사기’와 ‘해동고승전’ ‘삼국유사’ ‘도리사 아도화상사적기’ 등입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법흥왕이 토착신앙을 고수하려는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국가적 이념으로 정착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을 희생시켰고, 그 결과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으로 압축됩니다. 특히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법흥왕과 뜻을 같이하던 이차돈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이유로 ‘해동고승전’ 등에 등장하는 천경림(天鏡林)의 존재에 주목했습니다. 천경림은 당시 사회적으로 널리 일반화되어 있었던 토착신앙의 성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이차돈이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사를 일으키려 했으니 갈등과 마찰은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법흥왕은 불교의 단계적 정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반면 이차돈은 처음부터 토착신앙의 본거지에 사찰을 지음으로써 일거에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장악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염촉(厭觸)이라고도 불린 이차돈은 순교 당시 22세였습니다. 순교비는 죽음으로 신라사회를 바꾸어놓은 젊은 ‘혁명가’를 조명하는 데 모자람이 없을 만큼 역사성과 조형미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dcsuh@seoul.co.kr
  • [Metro] 국회의원·여주군수…효종릉서 취사 ‘물의’

    문화재청이 사적지인 왕릉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해먹은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16일 KBS 9시 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전날 유홍준 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여주의 조선시대 효종 왕릉 개방행사를 마치고 재실 인근에서 LP가스통까지 갖다 놓고 점심을 해 지역 국회의원·여주군수·여주군의회 의장 등 관계자 30여명이 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이 오찬은 왕릉 관리를 맡고 있는 유적관리사업소(소장 주정습)가 마련했으며, 식사준비에는 전자레인지·냉장고·숯불 등이 동원됐다. 특히 유 청장은 조리장소 옆을 지나면서도 불을 피우는 행위를 막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찬행사는 세종대왕 탄신 610돌을 기념하는 숭모제 직후 벌어졌다. 효종 왕릉은 사적 제 195호로 사적지 안에서는 문화재청 안전관리규정에 따라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돼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세상에 짓밟힌 남자’ 보체크의 아리아

    ‘세상에 짓밟힌 남자’ 보체크의 아리아

    국립오페라단은 올해부터 ‘마이 넥스트 오페라’라는 이름의 기획공연을 갖겠다고 일찌감치 공표해 놓았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현대 작품이나, 높은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품을 해마다 한편씩 무대에 올리겠다는 약속이었다. 당연히 걱정도 많았다. 이태리 낭만파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 오페라 무대의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칼’을 뽑아들기는 했지만, 자칫 관객동원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시장’만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장고 끝에 선택한 작품이 현대음악에 선구적 역할을 한 오스트리아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의 ‘보체크’이다. 폭력적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약자의 모습을 격렬하고, 불안한 불협화음으로 드러내는 작품인 만큼 뜻밖의 선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페라로는 한국 초연인 ‘보체크’가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독일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원작으로, 연극으로는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보이체크’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보체크’의 팬은 많지 않지만,‘보이체크’는 우리 문학도에게도 필독서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데다, 연극으로 접한 팬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전략도 일단 뷔히너와 연극 ‘보이체크’의 팬들이 오페라 ‘보체크’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최대한 초점을 맞춘 듯하다. 연출자 양정웅은 연극배우로 ‘보이체크’에 두차례 출연한 적이 있다. 그는 “오페라 ‘보체크’는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라면서 “관객 개개인의 해석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비유와 상징을 통해 시적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연출의 방향을 설명했다. 현대무용가 홍승엽에게는 단순한 안무가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으로 배역의 심리상태를 최대한 내보이도록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장식을 배제하고 각각의 재질을 그대로 살려 사건의 진실과 직면토록 하겠다는 임일진의 무대미술 컨셉트도 스케일은 훨씬 커졌지만, 연극적이다. 정은숙 예술감독은 “‘마이 넥스트 오페라’는 마니아 층을 위한 기획으로 작품 선정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보체크 역에는 오승용·김종화, 마리에는 김선정·이지은, 군악대장에는 임제진·김경여, 대위에는 이인학·황태율, 의사에는 함석헌·김진추가 더블캐스팅됐고, 안드레스 역은 박웅이 맡는다. 정치용이 지휘하는 TIMF(통영국제음악제)앙상블과 국립오페라합창단이 나선다. 새달 14∼17일 LG아트센터.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4시.1만∼9만원.(02)586-5282.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안국동별궁 이전 복원

    제자리를 떠난 안국동별궁의 현광루와 경연당이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옮겨져 복원된다. 안국동별궁은 고종 17년(1880년) 세자의 혼례를 위해 지금의 풍문여고 자리에 건립됐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왕실의 재정난으로 부분 매각됨에 따라 제 모습을 잃었다. 안국동별궁은 일부가 학교 건물로 쓰이면서 명맥을 유지했으나 1965년 경연당과 현광루가 경기 고양시 한양컨트리클럽으로, 정화당이 강북구 우이동 현 메리츠화재연수원 자리로 옮겨지면서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한양컨트리클럽(대표 이승호)으로부터 무상기증받은 현광루와 경연당을 2009년까지 30억원을 들여 복원키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8) 태안 마애삼존불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8) 태안 마애삼존불

    충남 태안에 있는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은 중앙의 아담한 관음보살을 이례적으로 우람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좌우에서 협시하는 모습입니다. 보살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하고 실천하는 존재이지요. 이미 진리를 깨달아 절대적인 존재가 된 부처보다는 당연히 위계가 낮습니다. 그러니 삼존불은 보통 가운데 여래가 크고, 양옆의 보살은 작습니다. 그럼에도 백제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삼존불을 만든 것은 관음도량(觀音道場)으로 상징성을 살리기 위한 파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안반도는 당진(唐津)이라는 땅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백제시대 중국을 오가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에 뱃길로 큰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겠지요.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풀고, 고통에 빠지면 구원의 손을 내미는 관음보살이라는 존재가 뱃사공들에게는 커다란 용기를 주고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백화산(白華山)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태안반도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284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관음보살은 작고 흰꽃이 피는 바닷가 봉우리에 살고있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으니 관음도량으로는 최적지이지요. 흰꽃이 피는 산이라는 백화산(白華山=白花山)이란 이름도 그래서 지어졌겠지요. 나아가 김주성 전주교대 교수는 관음도량으로서 백화산과 마애삼존불이 전북 부안 죽막동 유적이 갖고 있던 백제의 국가적 제사터로 기능을 이어받았을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변산반도 끝자락의 높은 벼랑 위에 자리잡은 죽막동에서는 1991년 대규모 해양 제사유적이 발견되었지요. 이곳에선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항해의 안전을 비는 제사가 이뤄졌지만, 불교가 보편화되면서 결국 부처와 보살이 토속신의 역할을 대체했다는 것입니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큰 바다를 오가는 뱃사람들이 안전을 기원하고자 만들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김 교수는 특히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풍랑으로 죽음의 고비를 맞았던 백제 귀족층이 살아돌아온 데 대한 고마움을 담아 조성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태안 삼존불은 백제시대 대중국 교섭의 양상과 불교가 백제 사회를 파고 들어 토속신앙을 대체해 나가는 과정의 일단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백제가 불교라는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독자적인 신앙 형태를 정립하고, 불교미술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백제의 문화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dcsuh@seoul.co.kr
  • 아람누리 무대에 주민 설자리 없다

    아람누리 무대에 주민 설자리 없다

    예술의전당을 경쟁상대로 하는 최고의 공연장을 목표로 밀어붙일 것인가,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참여형 문화공간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인가. 수도권 북부의 최대 복합문화공간인 고양아람누리가 지난 4일 경기도 고양 일산신도시에서 문을 열었다. 개관 첫 주말에 열린 4차례 공연에는 모두 60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발레 ‘춘향´ 등 수준급 공연은 많아 유니버설 발레단의 ‘춘향’은 1887석의 오페라 전용 아람극장에서 4∼6일 세 차례 공연됐다. 초대손님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개막공연임에도 85%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한 가운데 전체 객석의 55%가 유료 관람객으로 채워지는 성황을 이루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뮤지컬가수 김선경·엄기준 등이 나선 ‘스타즈 온 클래식’은 5일 1449석의 아람음악당에서 열렸다.‘국내 최고 수준의 음향’이라는 평가 속에 1300여명의 관람객 가운데 1160여명이 티켓을 구입했다.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에서 지하로 연결된다. 고양과 이웃한 파주와 김포는 물론 홍은동과 불광동, 연신내 등 서울 서북부 지역의 주민들도 40분 이내에 닿을 수 있으니 예술의전당보다 훨씬 가까운 셈이다. 뿐만 아니라 바로 길 건너에 백화점과 할인점,2개의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쇼핑과 외식의 거리 ‘라 페스타’가 지척이다. ●3개극장 65일간 가동률 15% 이하 하지만 수준에 집착한 나머지 ‘주민배제형’ 문화공간이 되어버린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실제로 아람누리는 지난 4일부터 7월7일까지 개관기념예술제에서 고양의 문화예술단체가 참여하는 단독공연은 단 한건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아람극장과 아람음악당, 실험무대인 새라새극장에서 65일 동안 금·토·일요일에만 30차례 공연이 이루어질 뿐이다.3개 극장을 합친 가동률은 15%에도 못 미친다.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을 따로 짓는 것이 과잉투자라는 그동안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다. 복합문화공간은 공연이나 전시가 아니더라도, 언제 찾아도 무엇인가는 즐길 것이 있는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람누리는 공연을 관람하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배려가 아직은 크게 부족해 보인다. ‘투어 매니저’를 새로 뽑을 것이 아니라, 낮동안 일손이 비는 공연장 안내원들로 하여금 호기심에서 나들이 나온 시민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시설을 소개하여 친근하게 다가가고, 어린이들에게는 비용도 그리 들지 않는 무료 솜사탕이라도 준비했다면 지금처럼 아람극장 광장이 썰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람누리는 오는 6월 러시아 스타니슬라브스키극장의 오페라 ‘카르멘’과 ‘스페이드의 여왕’ 등 예술성 높은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에 대한 배려가 앞으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과 6차로의 중앙로 건너 백화점 거리에서 아람누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심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소외감을 느끼면서 아람누리의 운영비로 충당할 세금을 내고 싶은 고양 시민은 아무도 없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매장문화재 발굴 쉬워진다

    앞으로 발굴기간이 연간 200일 미만이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도 발굴조사가 가능하게 됐다. 대학의 박물관은 한해 150일, 면적 4000평을 초과해 발굴할 수 없다는 현행 제한이 폐지돼 연중 발굴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조치는 그동안 정부가 펴온 엄격한 문화재 발굴 관련 정책이 상당 부분 후퇴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문화재청은 7일 ‘매장문화재 조사업무 처리지침’을 개정하고 이날부터 시행토록 했다. 이성원 문화재청 차장은 “발굴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나 발굴을 할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하고, 문화재위 심의규정에 따라 개발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데 따른 개선책”이라며 “기존 제한규정은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도 철폐대상으로 지적됐다.”고 설명했다. 발굴기간이 100일 이상이면 문화재위의 심의를 받도록 하던 기존 지침이 200일 이상으로 개정됨에 따라 문화재위의 발굴심의 안건은 지난해 기준 72%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따라서 대규모 발굴의 심의기간도 1개월 정도 단축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또한 대학 박물관의 발굴제한이 폐지됨에 따라 연중 발굴조사가 가능한 기관도 기존 56개에서 16개 대학이 추가로 늘어나게 된다. 발굴조사가 끝난 뒤 2년 이내에 내야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관은 그동안 일체 발굴조사를 할 수 없었으나, 앞으로는 소규모 민원성 발굴은 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문화재위원회의 일부 위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혁신도시 등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문화재 발굴에 따라 늦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지나치게 규제를 완화한 게 아니냐며 우려를 제기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5~10년후 세계적 아트센터 만들겠다”

    “5~10년후 세계적 아트센터 만들겠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세계적인 공연장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5∼10년 후 세계적인 아트센터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공연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신현택(55) 예술의전당 신임 사장이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는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 사장은 “예술의전당을 클래식, 연극, 무용 등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가꾸어갈 것”이라면서 “관람객뿐 아니라 예술인들에게도 서비스하는 자세로 다가가겠다.”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는 계층간, 지역간 문화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데도 우려를 표시하면서 “서민들도 고급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예술의전당이 앞장서 연구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신 사장은 문화관광부 예술진흥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거치는 등 30여년 동안 문화행정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뒤 여성가족부 차관을 역임한 정통 행정관료 출신. 특유의 친화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낙후된 시설을 개보수해 나간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신 사장은 “오페라하우스는 입구가 너무 좁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처럼 열린 공간으로 만들겠다.”면서 “의자를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페라하우스에 500억원, 서예관에 100억원이 필요한 만큼 임기 3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사장은 예술의전당이 재정자립도를 높여 가야 한다는 경제부처들의 ‘압력’에 대한 소신도 피력했다. 그는 “정부산하기구의 일반적인 재정자립도는 80% 수준”이라면서 “예술성과 공익성을 강화하려면 예술의전당의 재정자립도는 오히려 낮춰야 한다. 선진국 아트센터와 우리 현실을 종합적으로 반영했을 때 예술의전당의 재정자립도는 70%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인 김용배 전임 사장이 ‘11시 콘서트’를 직접 진행한 것과 관련, 신 사장은 “김용배 교수님을 몇차례 만나 앞으로도 ‘11시 콘서트’를 맡아 발전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한 명이라도 내 음악 즐기면 족해”

    듣던 대로였다.‘바이올린의 이단아’ 나이젤 케네디는 7일 기자회견장에 빨간색과 회색의 짝짝이 양말을 신고 나타났다. 팬이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애스턴 빌라 축구팀의 붉은색 셔츠에 무릎을 간신히 덮는 헐렁한 7부 바지는 족히 서너해는 입은 듯했다.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혼자 맥주를 한잔 따라놓고는 ‘굿럭(행운)’을 외친 것도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올해 만 51세인 케네디에게서 또 하나의 별명인 ‘악동’의 면모는 찾기 어려웠다. 대신 “연주회장에는 양말을 제대로 신고 나갈 것”이라고 농담을 섞어 ‘다짐’한 데 이어 “다만 한두 사람의 한국 관객이라도 나의 음악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피력하는 대목에선 달관한 경지조차 느껴졌다. 파격적인 복장과 펑크 머리로 연주회장에 나서 세계 고전음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아일랜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가 한국에 왔다.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케네디는 “한국 관객에게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케네디는 한·일월드컵대회가 열린 2002년 예정됐던 내한 연주회를 갑자기 취소한 적이 있다. 대신 일본에서 아일랜드의 축구경기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이날 “축구를 본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프셨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변명했다. 케네디는 연주회장에 참치초밥을 대기시켜 놓고, 공기청정기도 특정상표의 제품을 준비시키는 등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는 “초밥은 연주회가 끝나면 친구들이 많이 찾아오니 필요하고, 공기청정기는 내 바이올린을 위한 것”이라고 비교적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클래식음악으로 경력을 쌓은 케네디지만 이번에는 재즈로 레퍼토리를 짰다. 그는 “기본적인 틀이 있는 클래식은 기계적으로 따라가면 되지만, 재즈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귀로 들으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지적인 능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케네디는 베이시스트 아담 코발레프스키를 비롯한 폴란드 출신의 재즈연주자 네 사람과 9일엔 성남아트센터,10일엔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한다. 내년에는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폴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레퍼토리로 내한 연주회를 갖기 위해 일정을 짜고 있다.(02)586-2722.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석가탑 유물 불교박물관에 전시키로

    문화재위원회는 2일 동산·국보분과 합동회의를 열고 1966년 불국사 석가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습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 사리장엄구 관련유물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석가탑중수기 등이 들어 있는 종이뭉치인 묵서지편(墨書紙片)은 전시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구체적인 전시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불교중앙박물관이 협의하도록 했다.전시가 끝난 뒤 출품된 문화재는 중앙박물관으로 다시 이관하여 보존처리한 뒤 종합학술조사보고서를 간행하며, 이 과정에는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가 참여하도록 했다.문화재위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28건 70점의 지정문화재와 1건 12점의 비지정문화재의 소유주가 불국사라는데 이견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위 결정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석가탄신일인 24일 이전에 조계종에 이관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가락 희롱하는 명인의 풍류 ‘생생’

    가락 희롱하는 명인의 풍류 ‘생생’

    한적한 주택가의 한옥인 듯 미닫이문 여닫는 소리에 뛰노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개 짖는 소리와 설겆이를 하는지 달그락거리는 그릇소리, 게다가 방안에서 두 사람의 연주자 말고도 이날의 풍류에 가세한 사람이 더 있는 듯 때로는 두런두런 말소리도 들린다. 한범수(1911∼1984)가 타는 해금은 이 모든 주변의 소음조차 잘 짜여진 하나의 연출인 듯 자연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그는 장구채를 잡은 서공철과 밀고당기며 느릿느릿 가락을 희롱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두줄짜리 작은 해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세게 휘몰아친다. 1968년 3월3일 한범수와 서공철은 점심상을 물린 뒤 악기를 꺼내든다. 한두 잔의 반주를 서로 권하며 조금은 얼굴색이 붉어졌을 두 명인은 대화 대신 해금산조와 대금산조를 번갈아 타며 오후 한때를 즐긴다. 국악중심이 펴낸 ‘한범수 1968’에서 초봄의 햇살이 따뜻한 어느 명인의 집 사랑방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녹음된 한범수의 해금산조와 대금산조는 한동안 잊혀졌으나, 현장의 분위기와 세밀한 소리까지 복구하는 작업을 거쳐 음반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해금산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용구가 짤막한 시나위 가락을 더러 연주했고, 광복 이후 지영희가 경기시나위의 가락으로 한바탕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독립된 바탕의 해금산조는 대금과 퉁소의 명인으로 더욱 잘 알려진 한범수에서 비로소 정립된다. 이 음반은 한범수가 1955년부터 짜기 시작한 대금산조,1957년 무렵부터 짜기 시작한 해금산조를 담은 최초의 녹음이라는 점에서도 자료적 가치가 크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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