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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똥 튄 ‘1문화재 1지킴이’

    문화재에 대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1문화재 1지킴이’ 활동에 참여하여 숭례문 경비에 나섰던 KT텔레캅이 회사의 존립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문화재 시민운동 관계자들은 한숨을 쉬고 있다. 사회복지와 의료서비스에 편중됐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간신히 문화재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한 마당에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KT텔레캅은 ‘1지킴이’ 활동에 참여해 그동안 숭례문을 비롯, 흔히 동대문이라 불리는 흥인지문과 전주 풍남문 등 5곳에 무인경비시스템을 제공했다. 다른 30곳의 문화재에선 지역조직망을 활용해 순찰활동도 벌였다. 이 활동에는 현재 포스코와 삼성건설, 현대건설,KT,KTF 등 대기업에서부터 올림푸스 같은 외국기업, 한글과 컴퓨터 같은 벤처기업까지 모두 23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또 20개 기업이 참여를 준비하고 있었다. 포스코가 장단역의 녹슨 기관차를 복원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활동의 일환이다. 본점이 가까워 숭례문에서 KT텔레캅과는 별도로 ‘1지킴이’ 활동을 벌였던 신한은행도 마음을 졸이며 고객 모금 등 숭례문 복원에 기여할 대목이 없는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이제 조금이라도 책임이 수반될 수 있는 문화재 활동에 나서려는 기업이 있겠느냐.”면서 “이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을 두고 ‘이름이나 알리려고 한다.’는 시각만큼은 거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dcsuh@seoul.co.kr
  • 19일부터 베이징서 ‘대장금’展

    대장금이 중국 베이징으로 나들이를 간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주중한국문화원에서 ‘대장금 북경 나들이’기획전을 19일부터 한 달 동안 연다. 주중한국문화원과 MBC미술센터, 배화여자대학이 함께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방송의상과 음식도구 등 150여점과 세트장을 선보인다. 이밖에도 한국 전통음식을 시식하고 한국전통복식 차림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마련하고 영상물을 소개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5)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5)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

    쌍봉사는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다진 철감선사 도윤(798∼868)이 주석하던 절입니다. 사자산문은 통일신라시대 선종불교의 토대를 닦은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이지요. 쌍봉사의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습니다. 하지만 적인선사 혜철(785∼861)이 신라 신무왕 원년(839)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최초로 하안거를 이곳에서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839년 이전에는 창건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적인선사 혜철이라면 곡성 태안사에 동리산문(桐裏山門)을 연 그 인물입니다. 미술사학자들은 통일신라를 흔히 ‘부도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부도란 고승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뛰어난 부도가 많이 만들어졌다는 뜻이지요. 철감선사 부도는 통일신라 부도 가운데서도 명작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쌍봉사에는 철감선사 부도에 못지않게 매력적인 문화유산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웅전입니다.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는 유일하게 삼층목탑의 형태이지요. 높이 10m로 목조건축의 특징이 살아있으면서도 둔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숭례문이 전소되어 국민들을 가슴아프게 하고 있지만, 쌍봉사 대웅전은 일찌감치 1984년 4월에 같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기도하던 신도가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불이 났다고 하지요. 숭례문처럼 보상금에 눈이 먼 편집광의 방화가 아니었으니 부처님은 벌써 오래전에 용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대웅전이 불타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현판과 목조삼존불상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불상은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임에도 이웃 농부가 업고 나왔다고 하지요. 앉아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양쪽에서 제자인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호위하고 있는 단아한 모습의 이 삼존불은 지금도 대웅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쌍봉사 대웅전은 1962년 해체수리했다고 하니 숭례문을 다시 고친 시기와 비슷합니다. 해체 당시 상량문이 발견되어 조선 숙종 16년(1690)에 중창되고, 경종 4년(1724)에 3창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리 당시 작성한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1986년 복원한 새로운 대웅전은 그러나 사진으로 남겨진 옛 대웅전과 지붕의 모습이 다릅니다. 옛 대웅전은 지붕 양옆에 삼각형 박공이 만들어진 팔작지붕이었지요. 하지만 새 대웅전은 마치 석탑 최상층의 지붕처럼 네곳의 기왓골이 가지런히 꼭대기에 모이는 사모지붕의 형태입니다. 새 대웅전의 지붕에는 또 석탑의 꼭대기를 장식하듯 상륜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바뀐 것은 해체수리 과정에서 대웅전이 과거 사모지붕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원래의 모습을 살렸다고 할 수 있는데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과거 삼층전(三層殿)이라고 불리며 목탑으로 구실하던 이 건물의 기능을 어느 시기 대웅전으로 바꾸면서 지붕 모양 역시 그에 걸맞게 팔작지붕으로 개조했을 가능성이 큰 데도, 그런 선인의 지혜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옛 대웅전은 단정한 삼층목탑의 실루엣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목재의 질감과 잘 어울렸지만, 지붕을 바꾼 새 대웅전은 단청을 새로 입히기도 했지만 조금은 가벼워 보입니다. 그렇다 해도 숭례문은 역사적 의미 등을 감안하여 국보 제1호의 지위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쌍봉사 대웅전이 보물 제163호의 영예를 잃어버린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dcsuh@seoul.co.kr
  • 유청장 ‘숭례문 책임론’ 논란

    “숭례문의 1차 관리 책임이 서울 중구청에 있다는 것은 빨리 고쳐야 한다.”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12일 발언을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효율적으로 문화재를 관리하려면 기구의 일원화는 불가피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문화재청이 숭례문 참사의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면서, 이참에 조직을 늘리려는 발상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3일 “숭례문처럼 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으면서 정부가 관리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이중삼중으로 복잡하게 되어 있는 관리체제는 단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문화재청이 지방청을 만들어 직접 관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문화재를 자신들이 관리하는 것은, 전국에 흩어진 문화재를 하부기관이 없는 중앙기관이 실질적으로 관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빚어진 특수한 상황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숭례문 화재와 같은 참사가 일어난 것은 정부가 관리권을 넘기면서 권한은 그대로 유지한 채 책임만 지방자치단체에 떠안기는 바람에 관리의 공동화 현상이 생겨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 문화재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권한을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작은 화장실을 하나 옮기는 데도 허가를 받으려면 6∼7개월이나 걸리는 상황에서는 문화재 관리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면서 “자치단체의 관리가 허술해 참사가 빚어졌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dcsuh@seoul.co.kr
  • 숭례문 현판 3개월이면 복구

    숭례문 현판 3개월이면 복구

    소실을 면한 ‘崇禮門(숭례문)´ 현판의 원형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판은 진화 작업 과정에서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일부가 손상됐다. 이 현판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보존과학실은 13일 “현판의 일부와 테두리목이 떨어져 나갔으나 현장에서 떨어진 조각들을 대부분 찾아왔다.”면서 “복구가 3개월가량이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권혁남 학예연구사는 “파편을 찾지 못한 부분은 새로 제작하게 되는데 대부분 손바닥 크기에 미치지 않아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숭례문 국보 1호 유지한다

    안휘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12일 “화재가 일어난 숭례문의 국보 제1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문화재위원회 건축·사적분과 합동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숭례문을 국보 제1호로 지정한 것은 목조건축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 등 복합적 요소를 감안한 것”이라면서 “목조건축이 부분적으로 훼손됐다고 해도 역사적 가치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데 더 뜻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숭례문 1층 문루 80% 재사용 가능

    문화재청이 불탄 국보 제1호 숭례문의 원형복원 방침을 밝힌 가운데 남아있는 부재(部材)가 얼마나 되고, 얼마만큼의 목재가 새로 필요한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김상구 문화재청 건축문화재과장은 12일 “숭례문의 2층 문루는 대부분 새로운 부재로 복원해야 하지만,1층 문루는 80%가량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화재로 훼손되거나, 강도가 크게 낮아졌을 가능성이 점쳐지던 석축도 “99%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당시 해체·수리 과정에서 새로운 부재로 교체된 뒤 현재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 보관되고 있는 350점 남짓의 주요 옛 부재는 직접 활용할 수는 없으나, 가공방법 등을 알아내는 데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과장은 말했다. 이에 따라 복원에 필요한 굵고 곧은 국산 소나무(대경목)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현재 문화유산 복원에 투입할 수 있는 소나무는 강원 강릉시와 삼척시, 경북 봉화군과 울진군 등 일대 9만㎡에 20만그루 정도이다. 하지만 기둥에 쓰일 지름 1m 이상의 대경목을 확보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국보 1호’를 복원하는 데 수입 목재를 쓰기도 난감한 상황이어서 목재 확보를 두고 문화재청이 또한번 큰 고민을 안게 됐다. 서동철·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숭례문 방화범 체포이후] ‘구설 메이커’ 임기 10여일 남기고 하차?

    [숭례문 방화범 체포이후] ‘구설 메이커’ 임기 10여일 남기고 하차?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2일 오전까지만 해도 “숭례문 화재의 책임은 내가 지겠지만 사후 수습이 우선”이라는 뜻을 고수했다. 하지만 오후들어 ‘외유성 출장’ 논란이 확산됨에 따라 사표를 내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임기를 불과 두주일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사실상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이다. 유 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3년6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소신껏 일한 것이 영원한 보람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국보 제1호 숭례문을 소실시켰다는 불명예, 어쩌면 죽은 뒤에도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떠나게 되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재임기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가 이번에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불타오르고 있던 지난 10일 네덜란드에서 휴가를 즐겼다는 구설에까지 올랐다. 공무출장에 부인을 대동한 데다, 항공사에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이에 대해 유 청장은 “이번 8박9일 유럽 방문(6∼14일)은 첫 3일간의 개인휴가와 유네스코 출장을 묶어서 간 것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도 결재를 받았다. 집사람의 여행비도 공적인 자금에서 집행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여행비는 차관급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라 9일치인 1680만원이 배정됐으나, 실제로 사용한 것은 250만 3000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12일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여는 한국어 안내 음성서비스 개통식을 후원한 대한항공으로부터 자신과 부인의 항공편 및 파리 체류비를 지원받은 것은 명백한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다. 문화재 참사의 뒤끝에 유 청장이 구설에 오른 것도 처음은 아니다. 취임 이듬해인 2005년 4월5일 영동지역 산불로 보물 제479호 동종이 녹는 등 양양 낙산사가 잿더미로 변한 뒤 1년6개월 만에 복원한 동종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말썽이었다. 또 지난해 5월15일에는 경기도 여주에 있는 조선 효종의 영릉에서 숭모제에 참석한 손님들을 대접한다고 재실 앞마당에 액화석유가스(LPG)통을 들여놓고 음식을 만들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구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유 청장이 문화재관리국 시대를 포함해 문화재청 역사상 가장 커다란 족적을 남긴 수장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지은 미술사학자에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에서 비롯된 소신있는 ‘부총리급 차관급 청장’으로 문화재청의 위상을 높여 놓은 것도 사실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분신 잃은 듯 가슴 아파”

    “분신 잃은 듯 가슴 아파”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大木匠) 기능보유자인 전흥수(69)·신응수(66)·최기영(63) 도편수는 11일 숭례문 화재 현장을 찾아 “너무도 처참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문화재청의 요청이 있다면 보수 공사에 참여할 것”이라고 일제히 밝혔다. 최기영 대목장은 “숭례문의 화재 모습을 10일 밤부터 현장에서 지켜보았다.”면서 “내 선조가 세운 숭례문이 붕괴된 현장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최씨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판사를 지내면서 숭례문 축조를 지휘했던 최유경(1343∼1413)의 후손. 그는 “숭례문의 원형 복원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면서 “옛 장인들의 솜씨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복원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경복궁 복원 사업의 총감독격인 신응수 대목장도 최 대목장과 함께 이날 문화재청이 화재 현장에서 소집한 문화재위원회 긴급회의에 참석했다.1962년 숭례문을 대대적으로 해체 보수공사를 할 때 도편수를 맡았던 조원재 대목장의 제자로 당시 복원공사에도 직접 참여한 신 대목장은 “내 분신을 잃은 것 같다.”며 복원공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전 대목장은 자신이 세운 충남 예산의 한국고건축박물관에서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로 올라와 현장을 둘러보고는 “너무도 가슴 아프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광화문 복원공사의 도편수 자리를 손아래인 신 대목장에게 양보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는 “숭례문의 옛 모습을 되찾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라진 숭례문] 방심이 부른 火…역사가 타버렸다

    [사라진 숭례문] 방심이 부른 火…역사가 타버렸다

    소방관들이 숭례문(崇禮門)의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떼어내어 참화를 면한 편액은 조선 태종의 큰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의 글씨인지는 조선시대부터 이론이 적지 않았지만, 요즘엔 대체로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과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양녕대군설(說)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도성 사대문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인 정도전으로 전해진다. 그는 유교의 오덕(五德)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바탕으로 동쪽은 흥인문(興仁門), 서쪽은 돈의문(敦義門), 남쪽은 숭례문(崇禮門), 북쪽은 홍지문(弘智門)이라고 이름지었다. 보신각(普信閣)의 신(信)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숭례문의 편액은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도성의 다른 문과는 달리 세로로 썼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곡성 돌실나이’ 김점순씨 별세

    [부고] ‘곡성 돌실나이’ 김점순씨 별세

    ‘곡성 돌실나이’(중요무형문화재 제32호) 보유자 김점순씨가 지난 5일 오후 10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90세. 돌실나이의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 또는 삼베 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곡성 돌실나이는 예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해 삼베의 대명사로 불렸다.1970년 7월 곡성 돌실나이 보유자로 인정받은 고인은 2002년 10월 보유자작품전을 열었고,2004년 10월엔 전남무형문화재보존회 공개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슬하에 2남1녀를 뒀고,6일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 선산에 묻혔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라진 숭례문] 방재시설 전무…화재 속수무책

    국보 1호 숭례문의 붕괴는 화재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국내 목조 문화재의 방재관리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소방설비 설치 등을 강제하는 세부규정이 없는 현행 문화재보호법으로는 목조문화재들이 사실상 화재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소방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화재에 대처하지 못하는 문화재가 부지기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숭례문 참사 이전에도 화재로 심각하게 훼손된 문화재들은 이미 많았다. 쌍봉사 대웅전, 낙산사, 수원화성 서장대, 창경궁 문정전 등은 대부분 목재 건축물인 데다 숭례문의 경우처럼 문화재 훼손을 우려해 적극적 진화장치를 해놓지 못했다. 문화재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에 화재예방 장치 설비가 어려웠고, 그로 인해 방재관리는 오히려 일반건물보다 더 취약했던 셈이다. 그나마 목조문화재 방재 대책 마련 움직임이 일어났던 것은 지난 2005년 4월 낙산사 동종이 화재에 소실된 이후. 문화재청은 지난해 직원 10명으로 문화재 안전과를 신설해 문화재 재난 방지 등을 전담케 하고 있다.2006년 실시한 중요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중요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 중이다. 문화재청이 예산을 배정하면 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업을 시행하는 구조로, 지난해 총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해인사, 봉정사, 무위사, 낙산사 등 4곳에 수막설비와 경보시설 등을 설치했다. 그러나 목조문화재 방재의 제도적 수준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관련 예산은 18억원. 숭례문도 우선 방재시설 구축대상인 중요 목조문화재 124개에 포함됐으나, 산불 위험이 높고 소장 문화재가 많은 사찰 문화재 등에 밀려 순위가 48번째로 밀려 있었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전국의 주요 목조문화재들은 관리주체마저 불명확해 유사시 대처능력이 형편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숭례문과 비슷한 구조의 수원 팔달문과 장안문에도 소화전이 도로에 설치돼 있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목조에 불이 붙으면 건물내부에서 진화해야 하나,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를 규정상 설치할 수 없어 진압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인 남한산성내 수어장대의 방재시설은 소화기 몇대가 고작. 최근 도립공원 관리주체가 광주시에서 경기도로 이관되면서 책임소재조차 모호해졌다. 지방의 형편은 더 심각하다. 전남도의 경우 목조문화재는 무려 303개동. 여수 진남관, 송광사 국사전, 화엄사 각황전 등 5점이 국보이나, 이들 건물안에는 화재진압 장치가 전무하다. 전등사, 보문사 등 문화재급 지방사찰들의 방재시설도 모두 사찰이 자체 관리하는 데다 간이 소화기만 배치된 수준이다. 서동철 김병철 기자 dcsuh@seoul.co.kr
  • [사라진 숭례문] 복원 어떻게

    화재로 무너져내린 숭례문의 원형 복원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성급하게 복원하기보다는 제자리에, 제대로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숭례문에서 불이 번져나간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여 목조 문화재 전반에 걸쳐 화재 예방 대책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재 방재 대책 자료로” 문화재청은 11일 오전 문화재 수리 전문가 및 문화재위원회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피해 진단 및 향후 복구 계획 등을 논의했다. 그 결과 1960년대 발간된 숭례문 수리 보고서를 참고하면서 2006년 만든 182쪽 분량의 정밀 실측도면을 토대로 최대한 숭례문의 원형을 복원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일제강점기에 변형된 양쪽 성벽도 원형을 찾아준다는 방침이다. 또 문화재위원과 소방 전문가 등으로 복원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존 건축자재를 얼마나 재사용할 것인지 등의 사항을 논의해나가기로 했다. ●“복원 2~3년… 200억 들듯” 그러나 구체적인 복원 사업은 정밀 구조안전 진단을 거친 뒤에야 최종 확정된다. 문화재청은 숭례문을 복원하는데 일단 200억원 정도의 예산과 2∼3년의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치 모양을 한 홍예(虹霓) 윗부분의 석재를 비롯해 석축까지 대거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면 복구 예산과 기간은 늘어날 수도 있다. 숭례문 복원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울 중구청이 주도하게 된다. ●“손상 안된 부재 재활용해야” 이에 대해 김홍식(문화재위원) 명지대 건축과 교수는 “금산사 대적광전처럼 불탄 부재(部材)를 그냥 치워버리지 말고 3%, 아니 50분의1이라도 살아있는 부재는 다시 활용해야 한다.”면서 “손상되지 않은 부재는 오려붙여서라도 반드시 재활용해야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목조 문화재에서 불이 번져나갈 때의 양상은 숭례문에서 보듯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꼴보기 싫다고 하루빨리 치워버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면밀하게 화재의 양상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목조 문화재의 화재 방재 대책과 일단 불이 났을 때 신속한 진화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기초 자료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라진 숭례문] 소실 심하면 국보지위 박탈

    불에 탄 숭례문이 복원 이후에도 국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문화재 전문가들은 일단 불에 타지 않아 복원에 사용될 수 있는 부재(部材)가 얼마나 될지가 국보 지위 유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보물 163호였던 쌍봉사 대웅전과 보물 제476호였던 금산사 대적광전은 1984년과 1986년에 각각 불에 타버린 뒤 복원되었지만 보물에서는 해제되었다. 문화재청 엄승용 문화유산국장은 11일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지는 않았으나 일단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밀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인 만큼 국보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무엇보다 국보와 보물에 직접 일련번호를 붙이는 기존의 문화재 등급·분류체제를 개선하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숭례문이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재라서 ‘국보 제1호’로 지정된 것이 아님에도 지나친 상징성이 부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기존의 ‘국보 제1호 숭례문’을 ‘국보 숭례문(건축문화재 제1호)’으로 지정 방법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홍식(문화재위원) 명지대 건축과 교수도 국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성급하게 결론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남아 있는 부재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조사하여 복원에 어느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지가 제대로 밝혀진 뒤에야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너무나 많은 부재가 화재로 손실되어 과거에 숭례문이 갖고 있는 가치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면 국보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유창종 변호사 기와유물집 나와

    유창종 변호사 기와유물집 나와

    ‘기와검사’ 유창종(63) 변호사가 수십년 동안 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국내외 옛 기와와 전돌 1875점이 도록으로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증자별 유물을 망라한 도판 목록집 발간 사업의 첫 결실로 유 변호사의 기증 유물집을 출간했다고 3일 밝혔다. 서울지검 검사장과 대검 마약부장을 지낸 유 변호사는 1978년 충주지청 검사 시절부터 기와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와 수집에 몰두해 ‘기와검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퇴임 후에도 한국기와학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는 등 기와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그는 그동안 모은 기와와 전돌들을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유 변호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기증실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가 기증한 기와 중에는 고신라의 세련미와 우아함을 갖춘 충주 탑평리 출토 6엽연화문수막새를 비롯해 학술적 가치가 높은 명품 와당들이 적지 않다. 이번 도록에는 기와와 전돌들이 시대와 지역별로 수록돼 있어 다양한 형태와 양식의 기와들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다. 박물관측은 지금까지 모두 240여명의 기증자들이 내놓은 2만 5000여점의 유물에 대해 앞으로 해마다 도록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환상의 문화콤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창립한 고 박인천 회장이 1977년 세운 장학재단으로 출범한 뒤 1982년 문화재단으로 범위를 넓힌 대표적인 공익재단의 하나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갖고 있는데, 이 항공사의 존재가 문화재단이 사업을 펼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 재단은 새달 26일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평양공연을 후원하는 데 이어 28일 열리는 서울공연을 주최한다. 역시 아시아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뉴욕필하모닉은 타이완과 홍콩, 상하이,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들어가게 되는데, 북한이 서방 오케스트라를 초청한 경험이 없는 만큼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적지 않아 금호아시아나재단에 ‘SOS’를 쳤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재단은 먼저 베이징에서 평양, 평양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뉴욕필의 이동코스에 아시아나의 ‘보잉 747 콤비’를 투입하기로 했다. 콤비는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수송할 있도록 내부를 꾸민 항공기로, 팀파니나 콘트라베이스처럼 덩치가 큰 악기가 많은 오케스트라가 이용하는 데 제격이다. 아시아나는 또 공항에서 보잉 747의 높은 화물칸에 악기를 싣고 내릴 수 있는 작업차도 평양에 보내기로 했다. 더불어 악기를 공항에서 공연장까지 나르는 과정에서도 추운 날씨에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항온항습장치가 되어 있는 화물차도 보낸다. 재단은 오는 11월20일과 21일에는 베를린필하모닉을 초청하여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회를 갖는데, 역시 아시아나항공이 전체 비용을 줄이는 데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베를린필의 서울공연에 전세기를 띄우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베를린까지는 일반 여행객을 태우고, 베를린필의 왕복 여정에 활용한 뒤 베를린에서 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다시 일반여행객을 모집하는 방법이다. 이 재단이 펼치는 음악가에 대한 항공권 지원 사업도 아시아나가 있기에 가능했다. 현재 지휘자 정명훈과 작곡가 진은숙,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과 권혁주,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김선욱, 손열음 등이 혜택을 받고 있다. 금호음악인상 수상자와 수상자의 스승에게 주는 금호음악스승상을 받은 음악가에게도 각각 5년과 3년 동안 같은 혜택을 주고 있다. 이 밖에 재단이 주최하는 각종 음악회에 초청되는 해외 음악인들에게도 항공권을 제공하여 티켓값을 낮추는 데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음악사업팀 김수연씨는 “정명훈이나 진은숙씨처럼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분들은 해외에서 초청을 받으면 항공권까지 함께 보내오기 때문에 잦은 해외연주에도 불구하고 항공권 지원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면서 “그러나 김선욱이나 권혁주, 손열음같은 신진들에게는 이 혜택이 국제적으로 커리어를 넓혀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古음악’이 몰려온다

    ‘古음악’이 몰려온다

    올해 음악계의 최대 화두는 고(古)음악이다. 작곡된 당시의 이른바 원전악기로, 당시의 연주법을 구사하는 음악가와 단체가 대거 내한한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대표급이 망라되어 있어 음악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2008년 고음악 붐을 선도하는 단체는 영국의 계몽시대 오케스트라(Orchestra of the Age of Enlightenment). 클레어 칼리지 합창단과 내한해 마크 패드모어의 지휘로 27일 예술의전당에서 바흐의 ‘요한수난곡’을 들려준다. 바로크 바이올린의 선주주자인 영국의 존 홀러웨이는 새달 2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 이어 24일에는 통영국제음악제에 참여하여 통영시민문화회관 소강당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바흐의 파르티타 2번 등을 연주한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새달 25일 통영시민문화회관과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이다. 리더인 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지휘한다. 모든 프로그램이 바흐로,‘오보에와 바이올린, 현악오케스트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협주곡’ 등이 들어있다. 솔로이스트의 한 사람인 소프라노 캐롤린 샘슨은 이달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도 출연한다. 영국의 헨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5월4일 예술의전당이다. 헨델이 태어난 할레에서 헨델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단체로, 단원들은 모두 슈타츠카펠레 할레 소속. 슈테츠카펠레에서는 현대악기, 헨델 페스티벌에서는 고악기로 연주한다. 소프라노 신영옥이 협연한다. 원전연주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벨기에 바이올리니스트 지기스발트 쿠이켄이 이끄는 라 프티트 방드는 같은 달 21일 같은 장소이다. 최근에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와 ‘라 폴리아’ 등을 들려준다. 영국의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앤드루 맨지와 하프시코디스트 리처드 이가는 6월14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1984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난 뒤 악보와 연주기법을 함께 연구하며 아무나 넘볼 수 없는 파트너십을 이루었다. 맨지는 트레버 피노크에 이어 잉글리시 콘소트(English Consort)를 이끌고, 이가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후임으로 고음악 아카데미(Academy of Ancient Music)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10월에는 바로 리처드 이가가 고음악 아카데미를 이끌고 다시 내한하여 23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29일에는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같은 장소에서 비발디의 ‘사계’ 등을 연주한다. 11월 2일엔 ‘사계’의 혁신적인 해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끈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가 2004년에 이어 다시 찾아온다.LG아트센터.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첼로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비올라 다 감바 연주의 거장인 호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나시옹은 12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퍼셀의 ‘요정의 여왕’,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등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는 바로크 음악의 진수를 마련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지음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지음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중국지사 이사였던 존 우드는 엄청난 업무에 짓눌려있었다. 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휴가를 받아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로 트레킹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라는데도 그 학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잘 나가던 직장 던지고 과감한 도전 교실 바닥은 그대로 흙이었고, 책상도 모자라 아이들은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도서관은 더욱 가관이었다. 책은 캐비닛에 잠가 보관하고 있었으나, 그것도 외국 등산객이 버린 것 같은 성인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들은 “책 좀 가져다 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우드는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메일로 친구들에게 이같은 사연을 알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차고를 가득채운 3000권 남짓한 책을 가지고 이듬해 네팔을 찾았다. 그는 두 번째 히말라야 여행에서 자신의 인생을 어디에 걸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바닥으로 떨어질 은행잔고, 스톡옵션과 회사가 제공하는 고급주택을 포기할 수 있을까 번민하던 그는 “일회용 반창고를 제거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또는 빠르고 고통스럽게. 너의 선택이야.”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결단을 내린다.2000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사직하고 비정부기구(NGO)인 ‘룸투리드(Room To Read)’를 설립한 것이다.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지음, 세종서적 펴냄)은 바로 룸투리드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에 학교와 도서관을 지었는지를 보여준다. 네팔에서 시작된 룸투리드의 활동은 곧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라오스, 스리랑카, 아프리카에 이르는 많은 나라에서 학교 200곳, 도서관 3000곳을 짓고 책 150만권을 기증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세계를 변화시키려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다.’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 룸투리드가 ‘자선사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별명을 얻은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얻은 경영방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직원과 델 컴퓨터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 골드만삭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가 돈 리스트윈, 심지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경쟁자인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과 개인은 룸투리드의 후원자로 만들었다. ●자선사업에도 철저한 경영원리 도입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시절 상사였던 스티브 볼머의 경영방식을 룸투리드에 적극적으로 녹여내고자 했다.‘결과에 집중하고, 토론을 권장하고, 숫자에 강하고, 서로에게 충성하는’ 이른바 볼머주의 경영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도서관과 학교를 지으며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요구하는 것도 룸투리드 사업의 특징이다. 자선단체가 마을에 들이닥쳐 시설을 지어주고는 방치하고 떠나는 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룸투리드가 도서관 건축에 필요한 자금을 대면 지역사회는 노동력과 땅을 내도록 한다. 도서관이 문을 연 3년 뒤에는 지역사회가 도서관 운영기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도록 자립기반을 만들어주는 데 힘을 기울인다. 지역사회의 참여는 도서관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드는 한국판의 서문에서도 “많은 한국계 기업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선사업을 펼치며, 소비자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고 있다.”면서 “세계적인 한국계 기업들이 언젠가 룸푸리드의 주요 후원자로 등장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고 자선사업에 경영원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인물로서의 자질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1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추재기이/조수삼 지음

    ‘‘내 나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 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했다.…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바로 고본(古本) 경서(經書)였다.’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층의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고 존대하지 못하고,“내 나무!”라고 하대함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추재기이(秋齋紀異·조수삼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조선 후기 기이한 언행으로 장안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인물 71명을 소개한 ‘저잣거리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추재 조수삼(1762∼1849)은 화가로 유명한 조희룡이 ‘호산외기(壺山外記)’에 실은 ‘조수삼전’에서 그의 복 열두 가지를 들면서, 여덟 번째 복으로 담론을 들었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내 나무’에서 보듯 ‘추재기이’에는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돈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조선의 거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전기(傳奇)를 읽어주는 늙은이를 그린 ‘전기수(傳奇)’의 주인공은 ‘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등을 외워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초하루는 (청계천의)첫째 다리, 초이틀에는 둘째다리에 앉고,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청계천 4가 배오개다리 일대), 초나흘에는 교동 어귀, 초닷새에는 대사동 어귀, 초엿새에는 종루 앞에 앉는 식이었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잠시 입을 다물었는데, 이때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원숭이를 구경시켜 빌어먹는 거지와 거리에 앉아 소리를 하여 먹고 사는 장님 악사, 팔뚝만 한 검은돌을 맨주먹으로 깨는 차력사, 안경알을 가는 절름발이 노인 등 조선 후기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95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육의전 시전행랑터 이번엔 지켜야”

    “육의전 시전행랑터 이번엔 지켜야”

    서울 종로2가의 탑골공원과 이웃한 영동빌딩 신축부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육의전 시전행랑 유적을 이번에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적을 흙으로 덮고 위에는 건물을 짓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적으로 지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조선상업사박물관’ 등으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상업유적 파괴 안돼 육의전은 조선시대 국가가 공인한 상점을 말한다. 시전은 상설점포, 행랑은 가게건물을 뜻한다. 조선은 태종 10∼14년(1410∼1414년) 서울 중심가에 대규모의 시전행랑을 지었다.2004년 종로1가 청진6지구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이번에 확인된 것과 비슷한 형태의 시전행랑 유구가 대규모로 발견되었으나 보존하지 못하고 지금은 초대형 건물이 들어섰다. 학계에서는 조선시대 상업사의 복원을 위해서 그 핵심을 이루는 육의전 유적의 보존은 불가피하며, 특히 ‘친기업 정부’를 내세우며 경제살리기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마당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상업 유적을 파괴하는 잘못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영동빌딩 신축부지는 넓이가 500㎡에 못 미치는 등 규모가 작은 만큼 보상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현재 영동빌딩 신축부지는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가 지하유구에 흙을 덮어 보존하라는 결정을 내려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다. 건물의 신축 여부는 1차적으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검토한 뒤 문화재위원회 경관심의분과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르메이에르 종로타운’빌딩이 들어선 청진6지구의 전례가 있는 만큼 서울시나 경관심의분과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완전 보존’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시전행랑은 종로만 해도 과거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만큼 작은 규모라도 한번 보존 결정을 내리면 주변의 재개발사업이 쉽지 않은 문제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조유전(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토지박물관장은 “사적으로 지정한 뒤 국가가 사들여 보존하는 방법말고 다른 방법은 모두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면서 “문화재청은 친기업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이때를 기회로 삼아 유적 곳곳이 파헤쳐지고 아파트가 들어선 풍납토성의 재판이 되지 않도록 앞을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서 적극적인 보존대책 강구해야 조 관장은 또 “서울시도 많은 비용을 들여 한강을 개발하고 공원도 늘리는데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시전행랑의 보존은 사대문안에 역사문화공간을 늘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토지 소유자들에게는 서울시가 개발하는 다른 지역의 상업용지와 과감하게 교환해주는 등 불이익이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영동빌딩 부지를 발굴조사한 김홍식(명지대 교수) 한울문화재연구원장도 “조선시대 경상(京商·서울지역 상인) 유적은 종로뿐 아니라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만큼 보존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시전행랑은 완전보존이 어렵다면 유구를 지하통로에서 유리창으로 볼 수 있도록 보존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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