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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리뷰]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내한 연주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객석에 앉아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팸플릿을 펼쳐드는 순간 신음이 터져나왔다. 텔레만에서 헨델, 바흐, 하이니헨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진지했기 때문이다. 아이쿠, 오늘 공부하러 극장에 온 것이 아닌데….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음식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포만감을 안겨주었다. 기본적으로 요리의 재료인 오케스트라가 뛰어났던 데다, 소프라노 캐롤린 샘슨이라는 양념이 감탄스러울 만큼 맛깔스러웠고, 같이 요리를 나누는 청중들의 매너 또한 훌륭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27일에는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이들을 만나 보니,‘독일을 대표하는 시대악기 연주단체’라는 초청자의 안내문구가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20명 남짓한 단원 모두가 어느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협연자로 세워놓아도 하나같이 제 몫을 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부러웠다. 바흐의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에 독주자로 나선 카트린 트뢰거는 제2바이올린의 수석도 아닌 뒷줄에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 한 사람의 독주자로, 악장을 맡고 있는 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와 겨루어 손색없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지적인 폰 데어 골츠의 바이올린과 비교되는 감성적이고 화려한 음색의 트뢰거를 독주자로 선택하여 조화를 이루겠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헨델의 작품 4곡을 부른 캐롤린 샘슨은 바로크시대 노래는 어떻게 불러야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려는 듯했다. 그녀의 화려한 기교와 가수보다 배우에 가까울 만큼 섬세한 감정표현은 바로크 음악의 매력에 새롭게 눈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캐롤린 샘슨은 앙코르로 유명한 헨델의 ‘울게 하소서’,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여 학구적으로만 흐를 것 같았던 연주회를 말미에 즐거운 연주회로 탈바꿈시켰는데, 이 장면 또한 용의주도한 이들의 면밀한 연출의 결과였을 것으로 짐작됐다. 연주회를 성공으로 이끈 요소의 하나는 수준 높은 청중이었다. 감정의 끈이 이어져야 할 대목에서는 반응을 최대한 자제하고,‘때’가 되면 록음악 공연장의 젊은이들만큼이나 환호할 줄 아는 청중이 있다는 것은 우리 음악계의 큰 재산이라는 점에서 뿌듯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신미양요 전리품 수자기 전시회

    신미양요(1871) 당시 강화도 광성보 전투에서 미군에 전리품으로 빼앗긴 수자기(帥字旗)가 새달 1일부터 5월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특별 전시된다. 깃발 한가운데 장수를 뜻하는 ‘帥(수)’자를 적은 이 군기는 조선 후기 총지휘관이 머문 본영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미국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돼 오다 136년 만인 지난해 10월 장기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10월 25일 완창판소리 무대서는 김금미 명창

    10월 25일 완창판소리 무대서는 김금미 명창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는 1977년 판소리감상회로 출발한 이후 절정의 기량에 다다른 소리꾼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니 완창판소리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곧 소리판을 대표하는 명창의 반열에 올랐음을 뜻한다. ●‘무용가 출신의 가벼운 소리´ 지적에 마음고생 올해 완창판소리는 29일 박계향 명창의 ‘춘향가’로 막을 열어 12월까지 9차례 열린다. 송재영 성창순 송순섭 안숙선 최영길 왕기석 정의진 등 쟁쟁한 소리꾼들이 초대를 받았다. 이런 거목들 사이에서 ‘젊은 소리꾼’ 김금미가 이름을 올렸다. 올해 44세이니 어떤 기준으로도 젊다고 하기 어렵지만, 완창판소리 무대에 오르는 소리꾼으로는 젊디 젊은 나이이다. 이제 ‘명창’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진 그는 오는 10월25일 유성준제 ‘수궁가’를 부른다. 지난해 전주대사습 명창부에서 장원을 차지한 데 이어 완창판소리 무대에 오르게 됐으니 전성기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 명창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완창판소리 무대를 위하여 요즘 2시간씩 완창 분량의 절반가량씩 반창(半唱)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씩 연습량을 늘려나가 10월이 되면 3시간 반이 걸리는 ‘수궁가’를 ‘완성’시키겠다는 생각이다.‘수궁가’는 지난해 대사습 예선에서도 완창한 적이 있다. ●춤·소리 적극 활용 단점을 장점으로 이렇듯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 명창이지만 쉽지 않은 길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소리꾼이 되기 이전에 임이조 선생에게 승무와 살풀이를 전수받은 춤꾼이었다. 성창순 명창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25세. 이후 성우향, 김영자, 김일구 선생에게도 배웠다. 김 명창은 “‘무용가 출신의 가벼운 소리’라는 지적에 마음 고생도 있었다.”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통성을 내고자 노력했고, 그것을 이번에 보여주고자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소리가 좋아지면서 무용가 출신이라는 것도 장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국립창극단 단원인 그는 주요작품에서 단원들에게 안무를 지도한다. 감초역으로 단골 출연하며 연기력도 쌓았다. 김 명창은 “완창판소리 무대에 꼭 서고 싶다는 의욕이 받아들여져 좋은 기회를 얻었다.”면서 “소리는 물론 춤과 연극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한 발림(몸짓)으로 꽉 채운 듯한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박계향 명창 29일 완창 첫 무대 한편 29일 첫 무대를 여는 박계향 명창은 1987년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했으니, 김 명창보다는 꼭 20년 선배가 된다.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는 처음이지만, 그동안 인연이 닿지 않았을 뿐이다. 16세에 정응민 명창 문하에 들어간 박 명창은 이번에도 당시 물려받은 김세종제 ‘춘향가’를 부른다. 올해 완창판소리 일정은 29일 박계향에 이어 ▲4월26일 송재영 동초제 ‘춘향가’ ▲5월31일 성창순 박녹주제 ‘흥보가’ ▲6월29일 송순섭 박봉술제 ‘적벽가’ ▲8월30일 안숙선 보성소리 ‘심청가’ ▲9월27일 최영길 보성소리 ‘심청가’ ▲10월25일 김금미 ‘수궁가’ ▲11월29일 왕기석 박봉술제 ‘적벽가’ ▲12월31일 정의진 정광수제 ‘흥보가’. 전석 2만원.(02)2285-4115∼6.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한국문학에 나타난 외국의 의미/존 프랭클 지음

    한국문학에 나타난 외국의 의미/존 프랭클 지음

    미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가 ‘은자의 나라, 한국(Corea-The Hermit Nation)’을 펴낸 것은 1882년이다.‘은자의 나라’란 당시 외부 세계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을 반영한 결과였을 것이다. 한국이 역사를 이어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문호 개방을 완강히 거부했다는 통념이다. 이 책은 이후 한국을 은둔의 이미지로 고착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존 프랭클 연세대 UIC(언더우드 인터내셔널 칼리지) 교수는 “이는 사실의 엄청난 왜곡이자, 별다른 생각 없이 한국 역사를 저평가해 버린 경솔한 행위였다.”고 비판한다. 역사 및 문학상의 기록들은 오히려 한국이 고립 정책을 폈던 시기는 단기간에 불과했고, 그리 흔한 사례도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피스의 시각은 한국을 저평가 프랭클 교수는 ‘한국문학에 나타난 외국의 의미’(소명출판 펴냄)에서 두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한국과 외부와의 관계가 과연 전적으로 적대적이었으며, 과연 한국인은 순종성을 가진 단일민족이냐는 것이다. 그는 ‘은자의 나라’가 허구이듯 이 두 가지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동앙언어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국문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학 ‘동양언어와 문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목처럼 우리 문학에 나타나는 외국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지은이는 독자들을 설득하고자 허균(1569∼1618)의 ‘홍길동전’과 이인직의 ‘혈의 누’(1906), 이광수의 ‘무정’(1917), 주요섭의 ‘구름을 잡으려고’(1936)라는 네 편의 소설을 꺼내 들었다. 지은이는 ‘홍길동전’에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폐쇄적인 ‘은자의 나라’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적대적인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대립한다는 오늘날의 세계관과 유사한 개념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혈의 누’에서부터 ‘외부 세계’ 혹은 ‘외국’의 범위는 미국이라는 구체적인 국가로 좁혀진다.‘혈의 누’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미국은 목표이며 꿈이기는 하나, 최종적인 목적지가 아니라 필요한 수단을 획득하기 위해 갔다가 다시 떠나올 장소이다. 하지만 1910년의 한일합방으로 ‘유학에서 돌아와 공부한 것을 쓸 수 있는 나라’는 사라지고 만다.‘무정’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은 더 이상은 나라가 아니다. 정치적 국가를 상실한 한국인들은 점차 민족의 중요성에 집착하게 되었고, 돌아올 나라가 없어지자 유학한 사람들은 미국에 정착하는 쪽을 택했다. ●홍길동전 등 문학작품 통해 고찰 ‘구름을 잡으려고’는 미국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희망을 얻었던 한국은 3·1운동으로 궐기했으나 미국정부는 한국인의 편에 서기를 거부했다. 이에 따른 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환멸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구름을 잡으려고’는 그 결과에 해당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의 하류층 출신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간다. 하지만 농장 노동자로 살아가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구름을 잡으려고’가 미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한국 최초의 소설로 규정했다. 지은이는 “19세기 후반부터 호전성을 더해가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자문화를 수호하고자 한국은 자구책을 취했고, 이에 일본과 서양은 한국에 완고한 은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면서 “결국 무력에서 밀린 한국은 바깥세상과 관계를 재정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오랜 세월 외부 세계와 호혜적 바탕에서 이루었던 한국의 교린 관계를 오늘날에도 타의적 강압의 역사로 보는 근원이 되었다는 것이다.1만 8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61)김해 김수로왕릉의 쌍어문(雙魚文)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61)김해 김수로왕릉의 쌍어문(雙魚文)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배필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모두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어떤 이는 김해 김씨가 되었고, 어떤 이는 김해 허씨가 된 것으로 전하지요. 허씨 가운데는 당나라에서 황제의 성(姓)인 이씨를 내려받은 이가 있어 인천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인천 이씨는 통혼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통계청에 따르면, 김해 김씨만 우리나라 인구의 10%에 육박한다니 동성동본의 혼인을 엄격히 금하던 시절에는 가슴 아픈 일을 겪은 김수로왕의 후손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 존재 국제적 관심사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조(條)’에 나오는 허황옥 공주의 존재는 이제 인도와 중국에서도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아유타국으로 추정되는 인도 아요디아(Ayodhia)의 왕손 미시라 부처는 벌써 1999년에 김수로왕 탄생 제사인 춘향대제에 참석했지요. 아요디아는 갠지즈강 중류에 걸쳐 있는 우타르프라데시주(州)에 있습니다.2001년에는 가락중앙종친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만들어 간 ‘허황옥 공주 유허비(遺墟碑)’를 현지에 세웠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호가 보주태후(普州太后)인 허황옥이 속했던 집단이 어떤 이유에선가 인도를 떠나서 자리잡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쓰촨(四川)성 안웨(安岳)현의 허씨 사당은 김수로왕의 후손은 물론 일반인도 즐겨 찾는 관광코스가 되었지요. 그러자 안웨현 정부가 ‘보주 허씨의 사당’이라는 한글 표지판을 붙이고, 입구에도 ‘한국 보주태후 허황옥 고향’이라는 한글안내판을 세워놓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의 혼인을 국제적인 ‘사건’으로 비화시킨 결정적인 역할은 두 마리의 물고기가 해냈습니다. 김해 김수로왕릉의 정문에 보이는, 인도의 초기불탑을 연상시키는 무엇인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그 물고기들입니다. 흔히 쌍어문(雙魚文)이라고 부르지요. 아유타국을 아요디아와 공개적으로 처음 연결시킨 사람은 아동문학가인 이종기 선생입니다.1977년 인도에 들렀다가 아요디아를 찾은 그는 수많은 건물에 쌍어문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수로왕릉을 떠올렸습니다.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고고학자인 김병모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가 아유타국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김해 김씨인 그는 대학생 시절인 1961년 김수로왕릉을 찾았을 때 눈길을 사로잡았던 쌍어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하지요. 이종기 선생의 탐방기는 그로하여금 쌍어문을 찾아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듯합니다. 이후 김 교수가 40년동안에 걸쳐 허황옥 공주를 추적한 과정은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방불케 하는데 바로 최근 발간된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역사의 아침 펴냄)에 실려있습니다. 한국의 김해와 인도의 아요디아, 그리고 중국의 안웨가 오늘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 것도 모두 그가 거둔 연구성과의 부산물이지요. ●神魚사상, 메소포타미아서 인도·중국 거쳐 한국 유입 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쌍어는 신을 보호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신어(神魚)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생겨난 이런 사상이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동한 흔적이 세계 곳곳에 쌍어문이나 쌍어에 얽힌 이야기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였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그렇고, 간다라로 알려진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지역에서 흔하다는 쌍어문으로 장식한 버스며 트럭이 그렇다고 합니다. 떡시루에 북어 두 마리를 걸쳐 놓는 우리의 고사 풍습도 신어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김씨 문중의 어르신들은 얼마전까지 쌍어문을 신어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김병모 교수 ‘쌍어문화권´ 확인 지난달 쌍어문의 흔적을 찾는 마지막 탐방지였던 이란으로 가는 김 교수와 동행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는 옛 페르시아가 현재의 이라크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를 잇는 길목인 만큼 당연히 쌍어문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요. 그는 결국 페르세폴리스에 앞섰던 페르시아의 수도 파사르가다에(Pasargadae)에서 커다란 쌍어를 찾아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 중국, 한반도, 일본으로 이어지는 ‘쌍어문화권’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dcsuh@seoul.co.kr
  • 한반도 철기문화 새 유입통로 발견

    한반도 철기문화 새 유입통로 발견

    한·러 국경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쪽으로 70㎞ 떨어진 러시아 바라바시 마을에서 초기철기시대인 BC 7∼5세기의 철기가공작업장이 발굴됐다. 그 동안에는 중국에서 BC 5세기에 이르러서야 철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됐다는 점 때문에 동아시아의 철기문화는 BC 4세기 이전으로 올릴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었다. 따라서 이번 발굴 결과는 동아시아의 철기가 중국에서 단선적으로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비중국적인 또 하나의 철기 전통이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국립 부경대 한·러 국경지역 선사유적발굴단은 지난해 6∼7월 연해주 남부 바라바시 마을의 주거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쇠도끼와 쇠화살촉을 비롯한 9점의 철기와 토기를 비롯하여 2000점 남짓한 유물을 찾아냈다. 조사 지역에서 400m와 200m 떨어진 지점에서는 각각 발해유적도 발견되어 이 유적이 한반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바라바시 유적에서 돌도끼는 전혀 발견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반면 철기 유물은 대부분이 쇠도끼와 쇠도끼의 파편이어서 이 시기에 이미 돌도끼의 역할을 쇠도끼가 대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라바시 유적이 속한 얀콥스키문화는 한반도의 고인돌문화와 함께 석검문화권으로 이번에도 석검이 나왔다. 동반 출토된 반월형석도도 동아시아에 폭넓게 분포하는 유물로 한반도와 관련성을 보여 준다. 러시아 고고학계가 연해주지역 철기시대의 기원을 BC 9세기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본 것은 이미 1950년대 후반이다.A P 데레비얀코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소 고고민족학연구소장은 중앙아시아에는 이른 시기에 철기가 유입되었고, 청동기를 거치지 않은 채 일찍부터 철기를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남규 한신대 교수는 이번에 출토된 철기가 회주철로 중국보다 적어도 2∼3세기가 빠르다고 보았다. 야철사에서 주철은 BC 5세기에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다는 것이 정설로, 흑연을 섞어서 철을 만드는 회주철은 백주철보다 발달된 기술로 중국에서는 BC 2세기에 등장하여 BC 1세기에 본격적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에 확인된 철기작업장은 장인들이 단기간 철기를 만들고 시설을 고의적으로 파괴한 뒤 다른 지역으로 떠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이 지역의 발해나 여진의 대장장이들도 자신들의 시설을 완전히 없애고 이동하여 노하우의 유출을 방지했다고 한다. 이번 발굴조사의 단장을 맡은 강인욱 사학과 교수는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 학계의 대응은 중국이 제공하는 자료를 재해석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 “연해주 지역의 선사문화 조사는 비중국적인 지역적 전통을 부각시켜 동북공정에 좀 더 발전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경대 발굴단은 올 상반기를 목표로 정식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으며, 보고서 발간에 앞서 대략적인 발굴 내용을 고고학 전문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 봄호에 실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춘천박물관 ‘가장 강원다운 전시공간’ 변신

    국립춘천박물관이 ‘강원도 박물관’답게 확 바뀌었다.‘산, 사람 그리고 문화’를 컨셉트로 한 새로운 전시는 26일부터 관람객을 맞고 있다. 강원지역 사람들이 험준한 산지에서 어떻게 삶의 터전을 가꾸고, 물자와 정보를 교환했으며 특색있는 문화를 가꾸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춘천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모두 4개. 이번에는 2층에 있는 3,4실을 완전히 뜯어고쳤다.1,2실의 전시도 개편을 적극 추진한다. 구석기시대에서 시작하여 명품 전시로 마무리되는 지방 국립박물관의 천편일률적인 전시형태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산촌박물관’으로 특성화한다는 계획이다. 3실은 ‘강원의 명산, 불교와 왕실’이 주제이다. 강원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 이래 꽃피워온 불교문화를 조명한다. 조선 왕실과 선비들이 이룩한 태실과 사고(史庫), 유배·은어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원주 출토 석조비로자나불과 숙종이 단종을 복위하면서 시호를 내린 옥책(玉冊), 강릉대도호부가 1469년 상원사에 산과 저수지 관리권을 주면서 세금을 면제한다는 내용을 기록한 ‘상원사입안’, 오대산사고에서 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상자 등을 선보이고 있다. 4실은 ‘강원과 인물과 생활’을 주제로 강원도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보았다. 춘천의 화전(火田)을 매매하였던 토지문서에는 글을 모르는 노비가 손바닥을 찍어 대신한 수결(手決·일종의 사인)이 눈길을 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금속활자장 명예보유자 오국진씨 별세

    [부고] 금속활자장 명예보유자 오국진씨 별세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의 명예보유자인 오국진씨가 24일 오전 7시 별세했다.64세. 고인은 각종 서적을 인쇄하는 데 필요한 금속활자를 만드는 장인으로,1992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복원했다. 고인은 1996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보유자로 인정됐으나, 지난해 9월 병환으로 전승활동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명예보유자가 됐다. 유족은 부인 이상란씨와 아들 춘영(문화재청 직원)·하영(만도기계 직원)씨, 딸 선아씨가 있다. 빈소는 충북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7시.(043)279-2768.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현행 고등학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해방 전후사의 인식’으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를 ‘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하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대안교과서’를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교과서포럼’은 23일 기존 역사 서술의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 곳곳에 보이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기파랑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에 대하여 일본에 의존한 경거망동으로 식민지화 위기만 불러일으켰다는 기존의 역사 서술과는 달리 청나라에 대한 조공과 문벌폐지 등을 시도했다는 점을 들어 근대화를 추구했던 선각자로 적극평가를 요구했다. 반면 ‘동학란’ 당시 농민군이 요구했다는 탐관오리 처벌 등의 폐정개혁안은 1940년 출간된 ‘역사소설 동학사’에 수록된 내용일 뿐으로, 실제 봉기는 유교적인 근왕주의(勤王主義)에 입각하여 서민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성격이 강했다고 언급했다. ●“동학은 혁명아니라 복고운동에 불과” 또 일제 지배체제인 1910∼1945년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로 ‘정치적 차별과 억압을 동반한 야만의 정치체제’였지만, 일제의 지배는 총칼로 한국인의 재산을 빼앗는 전근대적 폭력적 수탈이 아니라 근대적 재산제도와 시장경제의 원리에 준하는 것이었다고 서술했다. 앞서 ‘대안교과서’ 편찬은 시작단계에서부터 반발에 부딪혔다.‘교과서포럼’이 2006년 11월30일 학술심포지엄을 열었으나,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4·19 관련단체 회원들이 몰려들면서 폭력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4·19는 민주혁명,5·16은 쿠데타로 정리했다.10월유신은 정변으로 박정희의 비타협적 귄위주의의 정점이었으며, 정통성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고 비판했다.12·12는 하극상,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서술했다.6·25는 남침전쟁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세습왕조나 다름없는 체제이고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정치집단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제주 4·3사건은 좌익무장 반란” 역사용어의 선택도 파격적이어서 ‘명성황후’는 ‘민왕후’로 격하시켰고,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은 ‘좌파세력의 무장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후쇼사 교과서의 한국판”이라면서 “이들의 주장은 한국 근현대사를 오로지 경제시장주의와 반공주의로만 설명하려는 것으로 과거 조선총독부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이영훈 교수를 비롯하여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12명이 참여했다. 서동철 이문영기자 dcsuh@seoul.co.kr
  • 이 무지치 ‘사계’에 홀리다

    이 무지치 ‘사계’에 홀리다

    이탈리아의 이 무지치(I Musici) 실내악단이 지금 전국을 순회하며 연주회를 갖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에서 시작하여 새달 6일 부산에서 끝난다. 지난 12일 입국하여 새달 7일 돌아가기까지 12차례 연주회를 치르는 강행군이다. 해외의 유명 연주단체가 거의 한 달에 가까운 기간 우리나라 전역을 돌며 순회 연주회를 갖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전국적으로 이 많은 연주회의 객석을 채울 만큼 팬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실제로 이 무지치는 고양아람누리와 18일 광주문화예술회관,20일 대전예술의전당,21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 모두 1000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작곡된 시기의 연주법과 악기를 쓰는 이른바 정격연주가 일반화된 요즈음 이 무지치의 ‘현대적인’ 연주는 오히려 낡은 스타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무지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음악칼럼니스트인 이지영 성남아트센터 과장은 “이 무지치의 힘은 곧 ‘사계(四季)’의 힘”이라고 단언했다. 비발디의 ‘사계’는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무엇인지를 묻는 국내의 각종 조사에서 수십년째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사계’는 이 무지치”라는 이미지가 굳게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모았고, 장영주도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각 방송국에서 ‘사계’가 필요할 때는 여전히 이 무지치의 음반을 고르고 있다고 이 과장은 설명했다. 친숙하지만, 내한할 때마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팬들을 이끄는 요인의 하나가 된다. 이 무지치를 초청한 공연기획사 아카디아의 김재연씨는 “티켓을 예매하는 음악팬 가운데는 이 무지치의 ‘사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무지치는 이번 내한에 앞서 2003년부터 악장을 맡고 있는 안토니오 살바토레가 독주자로 나선 ‘사계’ 음반을 새로 내놓았다. 초대 악장 펠릭스 아요와 로베르토 미켈루치, 피나 카르미렐리, 페데리코 아고스티니, 마리아나 시르부를 잇는 여섯번째 사계 음반이다.1995년 시르부 이후 13년만의 새로운 녹음이기도 하다. 이번 내한에서도 물론 안토니오 살바토레가 독주자로 ‘사계’의 활을 잡는다. 이 무지치가 이번에 준비한 프로그램은 3가지. 모차르트와 차이콥스키, 요한 슈트라우스, 파야, 피아졸라의 소품에 우리동요 ‘우리 집에 왜 왔니?’ 등 소품으로 꾸민 ‘프로그램 A’와 제미니아니와 타르티니, 리스트로 구성한 ‘프로그램 B’, 그리고 모차르트와 로시니, 파가니니로 이루어진 ‘프로그램 C’가 있다. 하지만 세 프로그램 모두 피날레는 비발디의 ‘사계’가 장식한다. 이 무지치의 내한 연주회에 ‘사계’가 빠지는 날은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다. 남은 일정은 ▲22일 전주 소리문화의전당 ▲23일 순천문화예술회관 ▲24일 천안시청 봉서홀 ▲2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28∼29일 서울 예술의전당 ▲4월 1일 성남아트센터 ▲6일 부산문화회관.(031)932-8370∼2.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크기의 과학/존 타일러 보너 지음

    크기의 과학/존 타일러 보너 지음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레무엘 걸리버의 키는 174㎝이다. 소인국 사람들의 키는 걸리버보다 12배 작다고 했으니 14.5㎝ 정도가 된다. 생쥐 정도의 크기이다. 소인국 사람들의 다리는 도요새만큼이나 가늘어야 한다. 걸리버의 몸무게를 68㎏으로 추정한다면 소인국 사람들은 500g 남짓이다. 하지만 도요새 정도의 가느다란 다리로는 그만한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 따라서 소인국 사람들의 신체구조는 걸리버와는 매우 달라야 한다. 반면 거인국 사람들은 걸리버보다 12배 크다고 했으니 인간과 신체 구조가 같다면 키는 21m, 몸무게는 12∼13t이 나간다. 코끼리보다 10배 정도 무거운 셈이다. 이런 무게를 지탱하려면 거인국 사람들의 다리는 인간의 다리가 아닌 코끼리 다리와 비슷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크기의 과학’(존 타일러 보너 지음, 김소정 옮김, 이끌리오 펴냄)은 ‘왜 모든 생명체의 크기는 서로 다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생명체 크기는 왜 서로 다를까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생태 및 진화 생물학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이 과학에세이에서 크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인류를 비롯한 생물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지은이는 다리를 예로 들었다. 한 건축업자가 다리를 두 개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뉴욕주 동부에 있는 허드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너비가 9m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하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두 다리는 생김새가 다르고, 건축 방식과 건축 자재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는 순전히 다리를 놓아야 하는 환경 때문이지 건축업자의 미적인 취향과는 상관이 없다. 그는 형태가 바뀐다고 해서 반드시 크기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크기가 바뀌기 위해서는 형태가 바뀌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무생물인 다리나 생명체인 걸리버의 사례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크기가 가장 커다란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크기가 변하면 생명체는 자신의 크기에 맞는 구조와 기능을 갖추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조의 변화에 따라 결과적으로 크기가 변한다는 그동안의 통념을 뒤엎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크기에 영향 안받는 유기체는 없다 그는 작은 세균에서부터 거대한 고래에 이르기까지 크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유기체는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크기는 형태를 결정하고 생명체의 기능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크기야 말로 한 생명체를 존재하게 만들고 생명체의 기능을 결정하는 최고 결정자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동안 생물학계가 크기의 역할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이유는 크기가 어떤 식으로 생명체의 모든 특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면서 “그러나 크기는 유기체의 모든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크기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생명체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1만 2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목조문화재 123곳 방재시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국보나 보물과 같은 국가지정 목조문화재 123곳, 궁·능 21곳 등 전국 144개 문화유산에 내년까지 방재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청장은 1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올해 196억원을 들여 경보장치와 수동 소화설비를 갖추고, 내년에는 594억원을 들여 자동 진화장비까지 설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중요 목조문화재에는 2인1조 3교대, 궁·능에는 야간에 3인1조 2교대로 상주 감시인력을 배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日 교토 문화재 방재시설 탐방기

    日 교토 문화재 방재시설 탐방기

    |글 사진 교토 서동철특파원|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문화유산 보호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갖가지 문화재 테러로 중요한 문화유산을 적지 않게 잃어버린 나라.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소장 김홍식 교수)의 ‘일본 교토지역 문화유산 방재시설 탐방’은 그들의 ‘앞선 경험’에서 참고할 대목이 없는지 확인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숭례문에서 불이 났을 때 왜 초기진압에 실패했는지 아주 이상했다. 엄중한 경비태세가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놀랐다.”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건축도시디자인학과의 야마자키 마사후미(山崎正史) 교수는 탐방단을 교토의 전통적인 게이샤 거리인 기온신바시(祗園新橋)로 안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옛 목조건물 주변에 무질서하게 얽혀있는 전깃줄을 바라보면서 “일본은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보면 아직도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불나면 곧바로 통보… 5분내 소방차 출동 같은 대학 역사도시방재연구센터의 마스다 가네후사(益田兼房) 교수는 “교토는 종이와 목재의 도시”라고 했다. 일본은 분명 문화유산 방재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절감한 나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건축문화재의 대부분이 목조인 그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여전히 적지 않은 듯했다. 역대 덴노(天皇)의 영정이 있는 진언종(眞言宗)의 총본산 닌나지(仁和寺)는 1993년 폭탄테러를 겪었다. 입헌군주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금당 밑바닥에 일종의 시한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발화장치를 설치한 것이다. 닌나지는 이후 경내 96곳에 감지기를 설치했다. 불이 나면 곧바로 종무소와 소방서에 통보하여 소방차가 3∼5분이면 출동한다. 전각에는 전기설비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방화총과 소방호스를 설치했다. 소방당국이 주관하는 정기 훈련 말고도, 자율적인 방재훈련을 해마다 10차례 이상 갖는다. 탐방단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이런 대책을 세워놓았다고 해도 숭례문처럼 휘발성이 높은 인화물질을 대량으로 뿌려놓는다면 아무도 진화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요 문화재에 24시간 인력 배치해야 김홍식 명지대 교수는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숭례문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닌나지에 자동발화장치를 설치한 것을 일본에서는 테러로 못박고 있듯이, 숭례문 방화도 분명한 테러”라면서 “우리도 테러에 노출된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그 대상 목록에 문화재가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건축전문가인 윤홍로 문화재위원은 “결국 설비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라면서 “중요한 문화재에 인력을 배치하여 24시간 경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돌아본 료안지(龍安寺)나 기요미즈테라(淸水寺)처럼 양동이에 담아놓은 방화수와 방화용 모래만으로도 초기진화가 가능하다.”면서 “실제로 우리도 법주사 팔상전의 화재를 양동이만으로 초기에 진압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dcsuh@seoul.co.kr
  • 긴카쿠지 복원의 교훈

    |교토 서동철특파원|교토의 택시운전사에게 “긴카쿠지에 가자.”고 하니 “골드냐, 실버냐.”하는 물음이 돌아왔다. 교토에는 ‘긴카쿠지(金閣寺·금각사)’와 ‘긴카쿠지(銀閣寺·은각사)’가 있는데, 일본인도 구분이 쉽지 않을 만큼 발음이 비슷하다. 긴카쿠지(금각사)의 정식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 금을 입힌 전각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흔히 긴카쿠지라고 불린다. 입구에는 ‘경내에서는 금연’이라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보였다. 3층짜리 사리전인 긴카쿠(金閣)는 일본에서도 가장 방화(防火)설비가 잘 되어 있는 문화재로 꼽힌다. 하지만 일본이라고 재난관리 의식수준이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1950년 7월2일 스물한 살의 행자승이 불을 지르는 바람에 뼈대만 남기고 모두 타버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긴카쿠는 현재 2층과 3층에 금박이 입혀져 있다. 하지만 화재 이전에는 3층만 금빛이었다고 한다. 긴카쿠의 2층에서 나온 부재(部材)를 살펴보니 금박의 흔적이 있었고,1953∼1955년 복원하면서 2층에도 금박을 입혀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 긴카쿠의 부재는 절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1897년 제정된 고사사(古寺社·옛 절과 신사)보존법은 부재를 소유자가 처분할 수 있는 허점이 있었다. 이 조항은 1950년 문화재보호법으로 관련 법령이 통합되면서 비로소 정비되었다고 한다. 현재 긴카쿠 주변에서 관람객이 방재설비를 직접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물을 뿜어내는 방화총(防火銃)이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뚜껑에 이끼가 덮인 땅밑에 숨겨져 있다. 뒷산의 지하수조와 펌프가 방화총에 충분한 물을 공급한다. 방재센터는 관람객이 알 수 없는 곳에 세워졌다. 폐쇄회로TV로 주변을 24시간 감시한다. 시스템 설치와 인력에 필요한 비용은 긴카쿠지가 책임진다. 실제로 절 주변에서는 푸른색 제복을 입은 자체 경비요원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른 400엔(약 4000원), 어린이 300엔(약 3000원)을 받는 입장료에 절을 보호하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dcsuh@seoul.co.kr
  • 조선왕실 굿당 ‘금성당’ 중요민속자료 지정예고

    조선왕실 굿당 ‘금성당’ 중요민속자료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18일 서울 은평뉴타운 터에 있는 ‘금성당’과 경북 영덕에 있는 ‘화수루 및 초가까치구멍집’의 중요민속자료 지정을 예고했다. 금성당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금성대군의 혼을 모신 굿당으로 민속 신앙과 관련된 건축물로는 수도권에서 드물게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화수루 및 초가까치구멍집’은 경북 유형문화재 제82호 ‘화수루’와 경북 민속자료 제2호 ‘갈천동 초가까치구멍집’을 묶은 것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대중 곁으로…국악관현악&교향악축제

    대중 곁으로…국악관현악&교향악축제

    ●20일 국립극장서 ‘국악관현악 명곡전Ⅲ´ 작곡가 이건용의 ‘산곡(山曲)’은 1992년 서울대 국악과 정기연주회를 위하여 위촉된 작품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의 이미지를 담으려 했다는 ‘산곡’은 이달에만 두 차례 연주된다. 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관현악 명곡전Ⅲ-춘무(春舞)에서 산맞이까지’와 2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명곡으로의 초대-네번째 이야기’가 그 마당이 된다. 창작 국악관현악 작품이 이렇게 일주일 간격으로 다른 단체에 의해 잇따라 연주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국악기를 서양음악의 오케스트라를 모델로 다시 편성한 국악관현악은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동안 적지 않은 작품이 발표되었고, 지금도 속속 연주되고 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곡이라도 다시 연주되기란 쉽지 않다. ‘국악관현악 명곡전’과 ‘명곡으로의 초대’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초연(初演)이 곧 종연(終演)이 되어 버리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마련된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반복하여 연주함으로써 ‘고전’으로 정착시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것은 사실 대중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국악관현악단의 ‘살길’이기도 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번에 ‘산곡’을 비롯해 김희조의 합주곡 1번과 박범훈의 ‘춘곡’, 나효신의 ‘길을 찾는 동안’, 김성국의 ‘심(心)’, 김대성의 ‘산맞이’를 연주한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도 ‘산곡’과 박동욱의 합주협주곡 ‘취타’, 원일의 ‘나비·꿈’, 최경만이 구성하고 계성원이 편곡한 ‘호적풍류’, 이준호의 ‘시선뱃노래’, 김대성의 ‘청산’을 들려준다. 김대성의 ‘산맞이’와 ‘청산’도 두 단체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곡가들에게도 자랑스럽겠지만, 어떤 음악을 골라들어야 하는지 고민스러울 수도 있는 음악 팬들에게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기에 충분하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명곡으로의 초대’는 올해로 네번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관현악 명곡전’은 세번째이다. 한해에 한 차례만 열리니 ‘낙점’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두 단체가 모두 ‘명곡’의 반열에 올려 이 기획공연에서 연주한 작품은 이상규의 ‘대바람 소리’가 유일하다. 이건용의 ‘산곡’은 두번째 영예를 차지하는 것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연주회의 지휘자는 각각 김홍재와 노부영. 창작악단 연주회에는 호적명인 최경만과 소리꾼 김용우와 곽동현, 그리고 한국전통타악연구소 ‘판’이 협연자로 나선다. 티켓값은 국립국악관현악단(02-2280-4115)이 2만∼5만원, 국립국악원 창작악단(02-580-3300)이 8000∼1만원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새달 1~23일 예술의 전당 전국교향악단 한자리 전국의 교향악단이 한자리에서 저마다의 색깔을 보여주고, 지역 출신 인사들도 오랜만에 친목을 다지는 ‘교향악 축제’가 새달 1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다. 1989년 시작되어 20회째를 맞는 올해 ‘교향악 축제’에는 전국의 20개 교향악단이 참여해 한국 교향악계의 현주소를 가늠케 할 예정이다. 지난해까지 ‘교향악 축제’에서는 304차례 연주회가 이루어졌고, 모두 436명의 협연자가 나섰다. 지휘자 박은성은 17차례, 임헌정은 16차례 참여했고,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은 11차례 협연자로 나섰다. 피아니스트 김용배와 김대진·이경숙도 각각 5차례 무대에 올랐다. 새달 1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개막연주회에는 ‘기록보유자’인 박은성과 김남윤, 이경숙이 출연해 의미를 더한다.15일에는 김대진이 베토벤의 작품으로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고 피아노도 친다. 19일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에는 재미있는 볼거리가 더해진다. 프랑스의 무대미술가인 제라르 에코노모스가 라흐마니노프의 교항곡 2번이 연주되는 동안 커다란 막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게 된다. 정일련의 ‘고요한 비’, 진규영의 관현악을 위한 ‘나의 회상’, 백승우의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상반된 통일’은 이번 축제를 위하여 새로 위촉된 작품. 임지선의 ‘충돌과 화해-잃어버린 문명을 추모하며’와 신수정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Verkleidet’도 무대에 오른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후 8시, 일요일에는 오후 5시에 시작한다.1만∼3만원.(02)580-13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우리 역사 한눈에… 소통하는 박물관으로”

    “우리 역사 한눈에… 소통하는 박물관으로”

    “국립박물관이 문화복지의 선도적 역할을 하겠습니다.5월부터는 관람료를 받지 않을 것이며,4월 중순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최광식(55)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3일 “소통하는 박물관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면서 “관람료를 받을 때보다 더욱 수준 높은 전시와 사회교육, 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으로 역할을 확충해 가겠다.”고 밝혔다. 최 관장은 “무료라고 무조건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적정 관람 인원으로 질서를 유지하고자 무료 티켓을 발급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면서 “관람객이 몰릴 때는 한동안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는 만큼 이해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립박물관의 무료화에 따라 관람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립박물관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에서 종합 육성책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특별전시회를 지원하거나 학예인력을 양성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출신이라는 점이 이번 임용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 관장은 “고대 출신인 것은 맞지만,(대통령이 나가는) 소망교회가 아니라 봉은사에 나가는 불교신자이고, 서울이 고향으로 ‘고·소·영’이 아닌 ‘고·봉·서’”라고 농담을 던지며 “오해가 없도록 공명정대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고·미술사 전공자였던 역대 관장들과는 달리 첫 역사학자 출신인 그는 “우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책무인 것 같다.”면서 “용산박물관 출범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지만 전시가 내 생각과는 달랐다.”고 말해 전시내용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고구려연구재단의 상임이사로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에 맞서는 선봉장 역할을 했던 최 관장은 “당시에는 급박한 상황에 맞서기 위한 즉자적 대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 문화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음주부터 산하 지방 국립박물관을 순방한다는 최 관장은 “지방박물관의 열악한 상황은 지역별 특성화로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공기위를 걷는 사람들 / 가브리엘 워커 지음

    공기위를 걷는 사람들 / 가브리엘 워커 지음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한 카네기홀의 내부에 들어 있는 공기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3만㎏이라고 한다.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엄청난 무게가 아닐 수 없다. 처음으로 공기의 무게를 잰 사람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믿었지만 종교재판관들 앞에서는 부정했고, 그러면서도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고 했다는 그 사람이다. 갈릴레이는 먼저 목이 좁은 큰 유리병의 입구를 가죽 마개로 꽉 막았다. 마개를 통하여 풀무가 달려 있는 주사기를 병 속으로 집어 넣고는, 힘차게 풀무질하여 원래 병 속에 들어있던 양보다 많은 공기를 집어 넣었다. 그러고는 저울에다 모래 알갱이 몇 개를 더하거나 빼면서 유리병의 무게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뚜껑에 달린 밸브를 풀어 압축된 공기가 빠져나오게 하자, 병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갈릴레이는 일련의 실험에서 공기의 무게는 같은 부피 물 무게의 400분의1 정도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실제 값보다 두 배 정도 크지만 역사상 첫 실험에서 얻은 수치로는 놀라울 만큼 정확한 것이었다. ‘공기 위를 걷는 사람들’(가브리엘 워커 지음, 이충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하찮아 보이는’ 공기가 실제로는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하여 얼마나 특별한 인물들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을 이루어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지은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기후변화 담당 편집자와 ‘뉴사이언티스트’의 특집 담당으로 일한 과학저널리스트. 공기에 얽힌 과학사라고 할 수 있는 ‘공기 위를 걷는 사람들’(원제 An Ocean of Air)로 대중과학서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은이는 미 공군의 시험 비행 조종사인 조 키팅어 대위가 1960년 8월16일 오전 7시 헬륨기구를 타고 뉴멕시코 32㎞ 상공에 올라가 지상으로 점프하는 영국 BBC TV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구해 보면서 공기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영상은 이랬다. 해가 떠오른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하늘은 한밤중처럼 캄캄했고, 아래로는 지표면이 곡선을 그리며 지평선까지 뻗어있는데, 위로는 파르스름한 헤일로(Halo)가 빛나고 있었다. 바로 지구가 받은 최고의 축복인 대기이다. 지표면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대기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얇은 파란 선으로 보이는 대기가 우리가 사는 행성을 황량한 암석 덩어리 상태에서 생명이 가득한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이라는 취약한 존재를 치명적인 우주 환경으로부터 지키고 있는 유일한 보호막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수은을 사용한 실험으로 공기가 짓누르는 힘을 증명한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공기가 소리를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밝힌 로버트 보일, 산소를 발견한 조지프 프리스틀리와 앙투안 라부아지에, 이산화탄소를 발견한 조지프 블랙이 공기에 도전한 모험의 역사를 담았다. 그런가 하면 이산화탄소량 변화가 심각한 기후변화를 야기할 수 있음을 밝혀내 오늘날 환경보호론의 선구적 업적을 남긴 스반테 아레니우스, 오존이 상층 대기의 구성성분으로 자외선을 차단한다고 설명한 W M 하틀리와 그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인 프레온을 발명한 토머스 비즐리도 등장한다. 지은이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과학사의 숨은 인물을 재조명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 지금은 노르웨이의 화폐에 등장할 만큼 명망 있는 과학자가 되었지만 생전에는 자기폭풍과 태양 흑점 사이의 관계를 증명한 엄청난 결과를 내놓았음에도 인정받지 못했던 크리스티안 비르켈란이 그렇다. 지구의 자전과 대류의 관계를 밝힌 ‘코리올리 효과’를 일찍이 주장했음에도 지나치게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으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윌리엄 페렐의 명예도 되찾아 주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코리올리 효과’를 고집스럽게 ‘페렐 효과’로 부르고 있다.1만 38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0) 연담 김명국의 ‘은사도(隱士圖)’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0) 연담 김명국의 ‘은사도(隱士圖)’

    조선 중기의 화가 연담 김명국(1600∼?)에게는 술에 얽힌 일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청구영언’의 서문을 쓰기도 한 정내교(1681∼1757)의 ‘화사(畵師) 김명국전’에도 그런 이야기가 전하지요. 어느날 한 스님이 연담을 찾아와 명사도(冥司圖)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명사도란 명부전에 걸리는 불화로 저승에서 염라대왕에게 심판받는 일종의 지옥그림이지요. 스님은 고운 삼베 수십 필을 사례금조로 건네주었는데, 연담은 아내에게 건네고는 몇 달 동안 마실 술로 바꾸어 오도록 했습니다. 어느날 통음을 한 연담은 술기운이 오르자 한 붓에 휘둘러냈습니다. 그림은 생동감이 넘쳤지만 불에 타거나 칼로 베이고, 절구에 짓이겨지는 자가 모두 중이었다지요. 스님이 깜짝 놀라자 연담은 “일생동안 지은 악업이 혹세무민이니 지옥에 갈 자가 너희들이 아니고 누구겠느냐.”고 일갈했습니다. 그리곤 “술을 더 사오면 그림을 고쳐주겠다.”고 했지요. 취기가 오르자 다시 붓을 잡더니 잠깐 사이에 머리와 턱에는 숱을 그려넣고, 승복에도 빛깔을 넣어 스님을 탄복하게 했습니다. ●평소 호방함 대신 경건한 분위기 풍겨 이런 연담이지만 규장각이 소장한 각종 의궤에는 그의 이름이 明國(명국)뿐만 아니라 鳴國(명국)과 命國(명국)으로도 남았습니다. 국가기관인 도화서에 소속되어 있다고는 해도 신분이 낮은 화원(畵員)의 이름쯤은 밝을 명이든, 울 명이든, 목숨 명이든 상관없었던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지요. 명사도에 얽힌 일화는 천대받던 환쟁이로서 왜곡된 현실에 대한 연담의 조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담의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반영합니다. 명부전의 후불탱을 새로 모시는 불사(佛事)를, 제아무리 도화서 화원이라고는 해도 불교의 교리와 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연담은 훗날 신필(神筆)로 떠받들어졌지만 도화서 화원 시절 그의 진면목은 오히려 일본사람들이 알아봤지요. 그는 1636년과 1643년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건너갔습니다. 수행화원이란 통신사의 활동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직책이지만,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선승화(禪僧畵)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힘차게 내닫는 몇 가닥의 붓질로 깊은 정신세계를 형상화해내는 연담의 달마도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요. 묵필을 잡은 사람에게는 사람의 본성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선종의 종지인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경지를,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마음 비우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달마도의 의미를 제대로 구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담의 달마도 일본인들이 먼저 알아줘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연담의 ‘달마도’는 우리나라 달마도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김명국의 이름은 몰라도 이 달마도는 누구나 기억해낼 수 있을 만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요. 중앙박물관은 ‘달마절로도강도(達摩折蘆渡江圖)’라는 연담이 그린 또 하나의 달마그림을 갖고 있습니다. 달마가 양무제에게 남의 칭송을 바라는 공덕은 이미 공덕이 아니라는 깨우침을 준 대가로 죽임을 당한 뒤 환생하여 서쪽으로 가다가 갈대를 꺾어 들고(折蘆) 강을 건넜다(渡江)는 불교설화를 알지 못하면 손댈 수 없는 주제입니다. 통신사 수행화원 시절 그렸을 두 점의 달마그림은 중앙박물관이 일본에서 사들여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만년의 작품인 ‘은사도(隱士圖)’에서는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재주가 다 나오지 않았고, 또 술에 취하면 취해서 제대로 그릴 수가 없었다는 연담의 호방한 기운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달마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철학적 경지마저 느껴지지요. 이 그림의 주인공이 제목처럼 속세를 떠난 선비(隱士)가 아니라 죽음을 향하여 무거운 걸음을 내딛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설명한 사람은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입니다.‘내가 그림으로 그릴망정 유언으로 전하겠는가.’라는 발문의 한 대목을 제대로 해석함으로써 이 그림의 성격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그림에 대한 연구가 더욱 진전되면, 김명국의 대표작은 ‘달마도’가 아니라 언젠가는 이름이 다시 붙여져야 할 ‘은사도’가 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dcsuh@seoul.co.kr
  • 매듭 명장 김희진 ‘아름다운… ’ 출간

    매듭 명장 김희진 ‘아름다운… ’ 출간

    ‘매듭이나 다회는 그 낱말조차 요즈음 사회에서는 서먹서먹해져 버린 망각의 분야이다. 어느 구석엔가에 그래도 실낱 같은 가냘픈 명맥이 어설프게 부지해 있어서 10년 공부를 했고, 놀랍게도 조선 매듭의 정통기법과 조형적인 높은 격조를 분명하게 되살려낸 신기로운 여류 전승공예작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매듭을 다룬 책이 첫선을 보인 것이 1974년이다.‘매듭(每緝)과 다회(多繪)’라는 제목이었는데,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문에서 언급한 ‘신기로운 여류 전승공예작가’가 이제는 원로가 된 김희진(74) 한국매듭연구회 회장이다. 그는 “양손에 끈을 쥐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듯 몰입하게 된다. 매듭은 각기 나름대로 음률을 품고 있다. 그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끈을 매만지는 나의 우주는 남모르는 희열로 채워진다.”는 천상 매듭장이다. 김 회장은 1963년부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매듭을 찾아 숨은 노(老)명장을 어렵게 찾아갔고, 그분들에게 자존심과 긍지를 다시 불어넣으면서 전통의 맥을 다시 짚어내고 복원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매듭이 ‘망각의 분야’에서 벗어나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을 만큼 보급이 늘어나고, 세계로 아름다움이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공로이다. 그가 ‘아름다운 우리 매듭’(그라픽네트 펴냄)을 새로 내놓았다.‘매듭과 다회’의 증보판에 해당하는 ‘한국매듭’ 5판(1982년) 이후의 연륜이 고스란히 더해졌다. 작품활동과 해외전시,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매듭장으로 전수교육 때문에 미루었던 작업이지만, 최근 3년 동안은 이 책을 쓰는 작업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매듭이 단지 손끝에서 벌어지는 가벼운 놀이라거나 취미가 아니고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가진 예술이란 걸 후대에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매듭의 역사에서부터 전국의 숨은 명장들을 찾아다니며 복원한 38가지 기본형과 염색법,4∼36가닥으로 짜는 법에 이르기까지 ‘매듭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도 있단다. 동다회, 광다회, 세조대, 유소, 노래개가 요즘은 ‘매듭’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진 데 손끝에서 손끝으로 솜씨를 이어준 역대 장인들에게 두 손 모아 사죄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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