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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페라계 남성그룹’을 만나다

    ‘파페라계 남성그룹’을 만나다

    1990년대를 풍미한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스리 테너’는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나간 뒤 20세기 후기 음악사의 한 부분으로만 남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테너는 수없이 많지만 세 사람처럼 흥행 측면에서 파괴력을 갖는 조합은 앞으로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스리 테너’가 절정을 달리는 동안 그들에 못지않게 명성을 쌓은 소프라노가 적지 않았음에도 ‘스리 소프라노’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테너가 갖는 흡인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텐 테너스(The Ten Tenors)’의 성공은 정통파 발성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성량과 개성 있는 음색을 가진 대중적 남성 그룹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수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스리 테너의 면면과 텐 테너스의 구성원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텐 테너스는 1995년 호주 브리즈번 음악원을 졸업하기는 했지만, 오페라보다는 쇼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애송이들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아리아를 프로그램에 넣기는 하지만 이들의 성격을 한국식으로 구분하자면, 성악가라기보다는 대중가수라고 할 수 있다. 한두 사람의 역량으로는 다양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의 개성과 능력이 합쳐지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13명으로 이루어진 ‘슈퍼주니어’나 9명으로 구성된 ‘소녀시대’ 같은 국내 그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텐 테너스는 국내에 알려진 것도 스리 테너와는 다르게 21세기적이다. 팬들은 지난해 공연실황을 담은 DVD의 발매와 함께 티브이 홈시어터 광고에 출연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려진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금도 빠르게 여기저기로 퍼날라지고 있다. 텐 테너스의 내한 공연은 이런 과정을 거쳐 성사됐다.23일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시작으로 24일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5일은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27일은 대전문화예술의전당,28일은 다시 서울 KBS홀이다. 첫 내한에서 전국적으로 다섯 차례나 공연한다는 것은 그만큼 두꺼운 ‘지지세력’을 이미 확보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들은 내한 공연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가운데 ‘만물상의 노래’와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가운데 ‘저 타는 불꽃을 보라’,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가운데 ‘진주조개잡이 노래’ 같은 오페라 아리아와 ‘돌아오라 소렌토로’ 같은 이탈리아 칸초네 메들리를 들려준다. 여기에 ‘늑대와 함께 춤을’에 나오는 ‘Here’s to the Hero’와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Now we are free’ 같은 영화음악, 그룹 퀸과 비지스의 노래도 부르게 된다. 오늘날 텐 테너스의 성공은 초창기 호주의 시골 마을을 도는 부지런하고 끈질긴 연주여행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오지에서 오지로 이어진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투어에서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높이는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신들은 어떤 공연이라도 청중들을 졸지 않게 만드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큰소리친다.(02) 3463-2466.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를 전공한 송기호(52)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1990년 8월 서울신문의 발해 유적 답사단에 참여하여 자신의 표현대로 ‘꿈에 그리던’ 중국의 발해 유적을 처음으로 밟아보는 감격을 누린다. 이후 발해사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다룬 글을 한데 모아 1999년 내놓은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발해를 다시 본다’(주류성출판사 펴냄)이다. 그는 햇수로 다시 10년이 지난 올해 이 책의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그동안 중국이 발해를 고구려에 앞서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연구의 중심도 러시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개정증보판은 그 10년 동안 발해사 연구자가 겪은 우여곡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송 교수는 1975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 전국 수석으로 합격하여 서울대에 입학한 뒤 법대나 상대가 아닌 국사학과를 선택하여 화제를 모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발해를 전공으로 삼아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던 인물이다. 여기에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더해전 그는 우리나라 발해 연구의 권위자이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송 교수는 “그동안 TV드라마 ‘대조영’ 등의 영향으로 발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연구자도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서 연구자가 얼마나 늘어났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손꼽을 수 있는 정도”라면서 “학술적 의미가 있는 논문은 여전히 많지 않다.”고 멋쩍게 웃었다. ●발해 유적 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 송 교수는 서울대에서도 아직 제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발해에 관심을 가져 기대를 가졌던 제자도 논문을 쓰면서 고구려로 돌아섰다. 그래도 발해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발해사를 공부하려면 중국·일본어에 러시아어를 알아야 하는 데다 고고학 지식까지 갖추어야 한다. 문헌사료가 취약하다 보니 고고학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헌사학자와 고고학자는 의견차이가 많아 사이가 좋지 않다고들 하지만, 발해사만큼은 서로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민의 관심이 고구려에만 쏠려 있는 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중국은 1980년대에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마쳤고 그 다음이 고구려인 셈”이라면서 “지금은 고조선을 자신들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위만조선과 기자조선에도 손길을 뻗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현재 발해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있는 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고 했다.1990년대는 중국의 발해 유적을 몰래라도 둘러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발해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단독등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국 학자는 물론 중국 학자들에게도 공개를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 티베트 사태도 있었던 만큼 무리하게 등재를 시도하지는 않겠지만,1∼2년 사이에 발해 유적이 중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그런 만큼 한국과 북한의 공동보조는 사실상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해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북한 학자들은 공동등록을 준비하자는 제안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부여·북옥저 등에도 관심 기울여야 한편으론 중국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발굴 이후 중국학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놓았던 발해 왕비의 묘지명(墓誌銘) 2개가 햇빛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헌자료가 취약한 발해사 연구에 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돈을 끌어오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 맡아서는 안 될 자리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송 교수의 관심사를 반영한 듯 21일부터 ‘위성에서 본 고구려, 발해’특별전을 시작하는데, 함경북도 북청의 청해토성 같은 발해 유적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발해사 연구의 마지막 공백지대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북한으로, 우리 학자들은 함경도 지역의 유적을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면서 “아마도 남북간 교류의 폭이 넓어져 북한이 개방되기를 가장 염원하는 사람은 발해사 연구자일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송 교수는 마지막으로 “고구려나 발해는 물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부여와 북옥저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부여처럼 만주에서 일어나 만주에서 사라진 나라를 중국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들의 역사로 생각한다.”면서 “북방의 역사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정을 갖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조수미 ‘국제 푸치니상’ 수상

    조수미 ‘국제 푸치니상’ 수상

    소프라노 조수미(46)가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올해부터 국제적으로 확대된 ‘국제 푸치니상’을 받는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은 12일 그동안 이탈리아 오페라 보급에 기여하고 세계적인 무대에서 푸치니의 음악을 선보여온 조수미가 ‘국제 푸치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국제 푸치니 상은 푸치니가 작품활동을 한 이탈리아의 토레 델 라고에 위치한 ‘푸치니 페스티벌 재단’이 1971년 제정한 상으로 마리아 칼라스, 체칠리아 가스디아,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6인이 들려주는 비발디의 ‘四季’

    6인이 들려주는 비발디의 ‘四季’

    비발디의 ‘사계(四季)´는 이미 고전적 연주가 되어버린 이탈리아 실내악단 이 무지치에서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 다양한 ‘크기’의 악단이 뛰어난 연주를 남겼다. 일종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계’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독주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제1,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그리고 하프시코드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 독주 바이올리니스트를 제외한 악단은 최소한 12∼13명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20세기 옛음악연주의 역사를 사실상 주도한 라 프티트 방드(La Petite Bande)의 ‘사계’는 이런 상식을 초월한다. 이 악단이 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갖는 내한 공연에서 ‘사계’를 연주하는 사람은 독주 바이올린을 포함해도 6명에 불과하다. 이날 이 악단의 리더인 벨기에의 현악기연주자 지기스발트 쿠이켄은 ‘무반주 첼로를 위한 조곡 3번’으로 알려진 바흐의 작품을 첼로가 아닌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들려준다. 악기에 달린 끈을 목에 걸고 어깨나 가슴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비올라보다는 크고 첼로보다는 작은 현악기. 바흐가 악보에 ‘첼로(violoncello)용’이라고 쓴 것의 일부는 오늘날의 첼로가 아니라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가리킨다고 음악학자들은 주장한다. 쿠이켄의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사계’의 연주에도 일반적인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제치고 가세한다.‘사계’를 제1,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하프시코드 만으로 연주하는 것. 독주바이올린은 쿠이켄의 큰 딸 사라, 비올라는 부인 티에르 마를랭이 맡는다. 쿠이켄과 라 프티트 방드가 세계음악계에서 ‘뜨기’ 시작한 것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이치 그라모폰’의 옛음악 전문 레이블인 ‘하르모니아 문디’는 프랑스 작곡가 륄리의 ‘서민귀족’을 녹음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라 프티프 방드는 당시 지휘를 맡았던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륄리가 이끌던 프랑스 왕실악단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쿠이켄과 라 프티트 방드는 이후 해를 거듭하면서 바로크와 고전으로 레퍼토리를 확대하면서 고음악에서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쿠이켄은 해외의 어떤 유명 연주자보다도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바로 1973년과 1976년 셋째 딸 에바와 외동아들 시몬을 각각 한국에서 입양했기 때문. 쿠이켄 가족은 1989년에는 한국을 찾아 수소문 끝에 에바의 친엄마와 할머니, 동생을 만나 감격의 재회를 하기도 했다. 쿠이켄과 라 프티트 방드는 두 작품 말고도 비발디의 리코더 협주곡과 일종의 작은 리코더인 플라우티노(flautino) 협주곡, 바흐의 관현악 조곡 1번과 3번 등을 들려준다.4만∼12만원.(02)586-2722.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바이올리니스트 루세프 독주회

    바이올리니스트 루세프 독주회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프가 14일 오후 7시30분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파리음악원에서 장 자크 칸토로프에게 배운 루세프는 오는 9월부터는 파리음악원 교수로 부임한다. 지난해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악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 엘레나 로자노바와 베토벤과 프랑크, 이자이의 소나타, 파가니니의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 생상의 론도 카프리치오소, 라벨의 치가느를 들려준다.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과는 임준희의 ‘춤추는 산조(Dancing Sanjo)´도 연주한다.2만∼7만원.(02)417-2345.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세계 종교 올림픽/샤피크 케샤브지 지음

    아주 먼 나라에 평화롭게 사는 백성이 있었다. 이 나라의 존경을 받는 임금이 갖고 있는 가장 탁월한 능력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임금과 현자(賢者), 익살꾼 광대는 동시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상한 꿈을 꾸고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인다. 불현듯 임금은 백성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종교가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종교 올림픽을 연다. ‘세계 종교 올림픽’(샤피크 케샤브지 지음, 김경곤 옮김, 궁리 펴냄)은 이렇게 모인 기독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유대교 등 세계 5대 종교와 무신론의 대표선수가 한데 모여 격렬한 토론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교리에서 부딪치는 쟁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가상의 경기대회이다. 종교가 그 가르침대로 서로 사랑하기는커녕 오히려 국제 분쟁의 중심에 서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자기 종교만이 우월하다는 선입견에서 탈피해보자는 뜻이다. 첫번째로 나선 무신론자가 종교의 이름 아래 빚어지는 폭력과 비이성으로 치닫는 종교계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신이 과연 존재하느냐.”고 일갈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각 종교의 대표선수는 해당 종교의 창시자와 기본개념, 그리고 핵심 문헌 한 가지와 중요한 우화 하나씩을 소개한다. 이렇게 각 대표의 발제가 끝나면 다른 경쟁자들을 질의를 할 수 있고, 청중 역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한 종교의 교리와 성격을 알려주고 다른 종교와 차이가 있는지를 드러내는 데 적절해 보인다. 청소년들에 유용할 이 책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번역되었다. 특히 유대교 회당과 이슬람교 사원이 방화로 타버리고 유대인과 무슬림의 묘비마저 훼손되는 사태가 일어났던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 책을 대본으로 ‘종교 간의 대화와 상호이해’를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케냐에서 출생한 인도인으로 스위스에 거주하면서 사회학·정치학·신학을 공부하고 개신교회의 목사를 15년 동안 역임한 다문화적, 다종교적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1만 1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풍납토성 ‘206호 유구’ 성격 엇갈린 견해

    풍납토성 ‘206호 유구’ 성격 엇갈린 견해

    한성백제시대 절의 목탑터일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의 경당연립부지 발굴현장에서 7일 지도위원회를 겸한 현장설명회가 열렸다. 확성기를 동원하여 풍납토성을 보존할 것인지, 개발할 것인지 하루빨리 결정하여 재산권을 보호해달라는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지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현장설명회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신대박물관의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교수는 206호 건물터가 네모난 평면구조와 중심부에 돌을 쌓은 직경 260㎝ 정도의 적석부가 있으며, 곳곳에서 기둥을 세운 구멍과 기둥을 받치는 적심토의 흔적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일관되게 목탑터일 것으로 추정했다. 권 교수는 특히 사도(斜道)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된 것도 목탑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사도란 글자 그대로 길고 무거운 중심기둥을 쉽게 세울 수 있도록 파놓은 경사로를 말한다. 일본의 목탑에서 몇 차례가 사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위원으로 참석한 윤근일 문화재위원은 “저런 정도의 적심이라면 상당히 큰 초석이 있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초석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바닥의 생토(生土)가 나올 때까지 파보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목탑터라는 206호 유구는 2000년 발굴되어 풍납토성이 사적으로 지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형 건물터인 44호 유적과 같은 축에 위치하고 있다.”면서 “206호 유구도 절이라기보다 44호 유구와 같은 백제 왕궁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발견되어 206호 유구가 목탑터일 가능성을 높인 연꽃무늬기와 2점은 중국 남조가 아닌 북조계통의 연꽃무늬인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백제는 중국의 남조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만큼 추정 절터가 한성백제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면 백제불교의 기원을 밝히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오영 교수는 “206호 유구가 목탑터인지를 밝히기 위하여 앞으로 적심석 아래로 3m에 이르는 토층을 파내려갈 계획”이라면서 “조사 과정에서 적심은 물론 절의 목탑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는 진단구(건조물을 지을 때 지신을 달래고자 넣은 장신구 등 귀중품)까지 나올 수 있을지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전곡 구석기축제’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전곡 구석기축제’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16회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에는 모두 1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 축제가 시작된 것은 1993년 5월5일. 당시 참석한 사람은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를 포함해도 200명을 넘지 않았다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관람객 100만명 몰려 역대 최다 당시 서울대박물관 학예사로 현장책임을 맡았던 배기동 한양대 교수를 비롯한 몇몇 고고학자들과 지난 3일 구석기축제를 찾았다. 발굴현장의 임시사무실을 개조하여 유적관을 만드는데 사재를 털고, 그 주변에서 옹기종기 첫번째 축제를 열었던 이들은 사적으로 지정된 77만 8296㎡(23만 5847평) 대부분이 축제장으로 탈바꿈한 모습에 감회가 적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고고학 체험행사는 뒷전으로 밀리고 대중가수가 나서는 축하공연이 축제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음에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고고학을 주제로 하는 축제가 이만큼 규모가 커졌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쉬움도 굳이 숨기려 하지는 않았다. 발굴단장으로 전곡리 발굴을 이끈 삼불(三佛) 김원룡 선생의 기념비가 퇴락해 가고 있는 모습도 그랬다. 기념비는 1994년 11월14일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유골이 뿌려진 장소에 세워졌다. 기념비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구석기축제 안내지도를 보면서 연천군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것도 고고학자 모두의 스승을 그렇게 대접한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었을 것이다. ●유적발굴 학자들 소홀한 대접 아쉬워 개막식에서 1978년 4월 한탄강에 놀러갔다가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를 처음 발견한 그레그 보웬 당시 미공군 상병의 이야기를 5분 이상이나 영웅담처럼 펼쳐 놓은 것은 그래서 고고학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올해 주먹도끼가 발견된 3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이후 주먹도끼의 진가를 알아 보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대전차지뢰가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전곡을 오늘날 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메카로 받돋움시킨 우리 고고학자들의 노력은 너무나도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었다. 같은 차원에서 전곡리의 오늘이 있게한 공로자의 한 사람인 고 임종태 씨를 기리는 데도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겸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는 당시 발굴현장의 인부반장으로 1979년 가을부터 지난해 4월 8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전곡리 유적 보존에 헌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문화훈장이나 문화유산상처럼 공로에 걸맞은 상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고고학계의 건의에도 정부는 고작 표창장 한장을 주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교육적 프로그램 늘려야 축제 더 빛나 배기동 교수는 “인간적인 체취와 교육적인 내용이 당장은 인기가 없다고 해서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해야 축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구석기시대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연천은 농업도시인 만큼 이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농업과 환경을 연결시켜서 관람객들이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충고했다. 연천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한국에 ‘엘 시스테마’ 노하우 전하는데 앞장”

    “한국에 ‘엘 시스테마’ 노하우 전하는데 앞장”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계 음악계를 주름잡고 있다고 하지만 남미에는 베네수엘라가 있습니다.‘엘 시스테마’가 성공한 것도 그들의 탁월한 예술감각이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의 한 사람인 곽승(66)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은 4일 “‘엘 시스테마’는 불우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의미있는 사회운동”이라면서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베네수엘라 사람들 이상으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갖고 있는 만큼 음악운동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가 1975년 시작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전국적 조직의 오케스트라 운동. 경제학자 호세 아토니오 아브레우가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당시 베네수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폭력과 마약에 빠져드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시작한 일종의 방과후 음악활동이다. 곽씨는 “친분이 있던 멕시코 지휘자 에두아르드 마타가 아브레우 박사와 ‘엘 시스테마’를 소개하여 1992년부터 참여하고 있다.”면서 “올해도 카라카스 아카데미에서 지휘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6주일동안 베네수엘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뉴욕 타임스는 ‘베네수엘라는 ‘엘 시스테마’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거나 범죄에 연루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들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였고, 외국의 투자도 끌어들였다.’고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음악적 성과는 더욱 놀라워 2개뿐이던 오케스트라가 135개로 크게 늘었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엘 시스테마’에서 배출된 연주자들로 구성된 시몬 볼리바 유스 오케스트라는 23세 이하로 구성되었음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인 스타도 배출되고 있다. 불과 26세의 젊은 나이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차기 상임지휘자에 내정된 구스타보 두다멜이 대표적이다. 곽씨는 “두다멜은 5∼6년 전 나의 지휘 마스터 클래스에도 왔었다.”면서 “두다멜이 대단한 천재이지만 베네수엘라에는 그 말고도 재능있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두다멜 등 세계적 스타 배출 ‘엘 시스테마’가 성공을 거두면서 로린 마젤이나 사이먼 래틀, 클라우디오 아바도 같은 지휘자들이 이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고,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베네수엘라로 날아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들은 아이들의 실력이 뛰어난 만큼 가르치는 것이 즐거워 많은 시간과 비용도 아깝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유네스코는 물론 뱅크 오브 아메리카, 도이체 방크 같은 회사들도 재정지원을 한다. 미국의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곽씨는 오는 23일부터 6월1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2회 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불우 청소년으로 이루어진 순수 아마추어인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한국과 중국·일본·독일의 연합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된다. 지난 2일 대구시향에 이어 9일에는 부산시향,15∼16일에는 KBS 교향악단을 잇따라 지휘하는 곽씨는 “이번 청소년관현악축제를 통하여 ‘엘 시스테마’를 본격적으로 국내에 알리고자 한다.”면서 “아브레우 박사를 비롯한 주도세력과 깊은 친분을 쌓은 만큼 한국에 그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앞장설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성남아트센터는 2010년 시몬 볼리바 유스 오케스트라를 초청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이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창극 맞아? 웃기고 젊어진 ‘춘향’

    창극 맞아? 웃기고 젊어진 ‘춘향’

    ●극의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도창의 역할 극대화 도창(導唱)은 창극에서 극의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도창의 사설과 소리는 특히 해학적인 표현이 많다. 국립창극단이 5일부터 10일까지 무대에 올리는 ‘춘향’은 ‘웃음 가득한 창극’을 내세운다. 김효경의 연출은 해학미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면서 도창의 역할을 극대화시켰다. ‘춘향’에서 도창은 남녀 각 2명씩 모두 4명이 나선다. 이들은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웃음을 불러오고 극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도창을 맡은 단원들은 이런 컨셉트에 부응하고자 독특한 몸짓이 많은 ‘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는 물론 애크러배틱까지 배웠다고 한다. ‘춘향’은 모두 2부로 1부는 춘향과 몽룡의 탄생과 만남·이별을,2부는 변학도의 부임부터 춘향과 몽룡의 상봉까지로 꾸며졌다. 도창이 활약하는 대목은 해학적인 장면이 많은 1부. 춘향이 옥에 갇히면서 비장미가 부각되는 2부에서는 상대적으로 도창의 역할이 축소된다. 2004년 ‘심청’을 연출하면서 김효경은 도창을 아예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기도 했다. 해설적인 도창의 사설과 소리가 오히려 비장감이 절정으로 치닫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춘향’은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창극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국립창극단의 ‘우리 시대의 창극’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현존하는 여러 가지의 ‘춘향가’ 창본에서 각 유파별 진수를 재구성하여 한자리에서 들을 있도록 하겠다는 뜻에서 김연수 창본을 토대로 김소희제와 정정렬제를 참고했다. 여기에 김용범이 ‘사랑가’와 ‘단오풍경’,‘변학도 부임 중 노래’,‘옥중 춘향의 편지’,‘역졸들의 합창’ 등의 가사를 창작하여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었다. ●연출자 김효경 “현대감각에 맞는 무대와 영상언어로 시대 투영 ” 연출자 김효경은 “관객이 공연 시간 내내 해학적인 작품에 몰입하려면 그만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라면서 “판소리 어법이 과거의 언어라면 현대감각에 맞는 무대와 영상언어를 통하여 지금 시대를 투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춘향’의 예술감독은 유영대, 작창은 안숙선, 작곡과 지휘는 이용탁, 안무는 이문옥이 맡았고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나선다. 춘향에 김지숙과 박애리, 이몽룡에 왕기철과 임현빈, 변학도에 왕기석과 윤석안, 월매에 임향님과 김미나, 방자에 김학용과 남상일, 향단에 김유경과 서정금이 더블 캐스팅됐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및 공휴일 오후 4시.2만∼7만원.‘가정의 달’을 맞아 궁중음식점 ‘지화자’나 이탈리안 레스토랑 ‘해와 달’에서 식사도 즐길 수 있는 7만원짜리 특별 패키지도 마련했다.(02)2280-4115∼6.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전쟁도 기아도 축구는 막지 못했다

    전쟁도 기아도 축구는 막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베를린올림픽경기장에서 가까운 독일의 룰레벤포로수용소에는 4000명 남짓한 영국군이 갇혀 있었다. 이곳에서는 각종 축구대회가 열렸고, 징계위원회와 고충처리위원회까지 갖추었다. 큰 경기가 열리면 1000명에 이르는 관중이 몰려들었는데, 처음에는 비웃던 독일군 경계병들도 나중에는 열렬한 서포터가 되었다. 소련에서는 1942년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포위되어 매일 시민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어 나가는데도 축구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는 라디오로 중계되어 소련국민에게는 희망을, 독일인들에게는 절망을 주었다. 양쪽에서 200만명 이상이 사망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끝난 직후인 1943년 5월2일에도 지역 연합팀과 스파르타크는 1만명의 관중 앞에서 축구시합을 가졌다. 오늘날 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는 축구로 날이 새고 지며, 축구로 한 해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한국과 일본도 축구 영향권에 들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은 북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축구는 종교보다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이끌고, 민족이나 지역 사이 대결과 화해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정치적 선전도구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중단될 수 없었다. ‘축구의 역사’(빌 머레이 지음, 이정환 옮김, 일신사 펴냄)는 오늘날 축구가 왜 전 세계적으로 일개 스포츠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종교보다 더 강한 축구 공동체 파헤쳐 지은이는 호주 라트브로대학의 교수로 축구의 역사를 통해 이면에서 드러나는 민족의 갈등과 통합, 전쟁과 정치의 역학 관계를 해명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호주 이민자인 ‘변방의 축구전문가’답게 특정 국가의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영국이 축구의 종주국이라고 알고 있지만, 지은이는 축구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최초의 축구경기’가 어디서 벌어졌는지 규명하는 것은 불확실하다고 고백한다. 발로 공을 차는 경기 형태는 고대 중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일부, 그리고 유럽인들이 들어가기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볼을 둘러싼 정치와 갈등, 통합의 역사 유럽에서도 프랑스에는 술(soule), 이탈리아에는 칼초(calcio)가 있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모인 브리튼섬에서는 지역마다 다른 형태의 축구가 성행했다. 1860년대가 되면 영국과 호주, 미국에서 각각 독특한 규칙을 고안했는데, 브리튼섬의 각 축구협회가 1863년 런던에 모여 합의한 규칙이 효시였다. 이 규칙에 따르는 축구를 협회축구(association football)라고 불렀는데, 영어의 사커(soccer)는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다른 축구 역사와는 달리 이 책은 아시아 축구에도 세계 축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칠레와 비긴 다음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3골을 이기다 에우제비우의 활약으로 5대3으로 무너진 상황도 자세히 소개했다. 하지만 당시는 북한의 선전이 ‘투철한 목표의식 아래 국가대표팀을 최대한 지원하고 철저히 훈련시킨 결과일 뿐’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유럽 진출 아시아권 넘버원은 차붐” 평 눈길 지은이가 유럽에 진출한 아시아 출신 가운데 최고로 지목한 선수는 1970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스타가 된 한국의 차범근이다. 일본의 오쿠데라 야스히코나 미우라 가즈요시도 유럽에서 뛰었지만 차범근만큼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1994년 미국 월드컵까지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증보판을 낸다면,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은 어떻게 평가할까.1만 3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파바로티 앞에서 노래할 때 가장 떨려”

    “전에는 그저 동네에서 몇 마일을 왔다갔다 했는데 이제는 해외로 수만 마일을 돌아다니지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휴대전화 외판원 출신으로 지난해 6월 영국 ITV1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깜짝 우승하며 감동적인 인생 역전 스토리를 일궈낸 영국 가수 폴 포츠(37)가 한국에 왔다. 그는 3∼5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과 7일 부산 KBS홀에서 공연할 예정. 레퍼토리는 지난해 8월 내놓아 세계적으로 300만장, 국내에서도 5만장이 팔린 음반 ‘원 찬스(One Chance)’ 수록곡이 중심. 소프라노 김은경과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는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무대를 첫 무대라는 생각으로 임한다.”면서 “한국 공연은 뮤지컬과 오페라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의 북한결핵어린이돕기 홍보대사로 임명된 그는 “결핵은 도움을 받으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폴 포츠는 “내 인생에서 가장 떨렸던 순간은 7년전 루치아노 파바로티 앞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라면서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숨막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백제 불교 대중화 실마리 풀리나

    백제 불교 대중화 실마리 풀리나

    ‘풍납토성의 목탑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적힌 대로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이듬해인 385년에 세운 백제 최초 절의 흔적인가.’ 한성 백제의 왕성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절의 목탑터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서울신문 4월30일자 8면 보도>됨에 따라 학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한성 백제 지역에서는 당시의 불교유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에 불교가 전해져 절이 처음으로 세워진 곳이 어디이고, 또 불교가 어떻게 정착할 수 있었는지가 모두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한 변이 10m 남짓한 추정 목탑터는 깊이 3m가량의 네모난 구덩이를 판 다음 내부를 점토와 사질토로 교대로 다지고 다시 그 위에 점성이 적은 모래질 점토를 채웠다.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신대박물관의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교수는 “이런 형태의 축조방법은 사비시대 백제 목탑터 등에서 보이는 것과 같다.”면서 “절에 흔히 쓰이는 연꽃무늬 기와가 나온 것도 백제 목탑터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유적이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4세기 후반이라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언급된 침류왕 시절 불교 전래 및 사찰 건립 기록과 일치한다. 두 사서는 ‘백제 제15대 침류왕이 즉위한 384년에 호승 마라난타가 동진(東晉)에서 오자 그를 궁중에 두고 공경했으며, 이듬해 새 도읍 한산주(漢山州)에 절을 세우고 열 사람을 뽑아 스님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백제 불교의 시초’라고 적고 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이 유적이 절의 목탑터로 확인된다면, 왕궁의 내원(內院·부속사찰) 기능을 한 왕실사찰로 사비(부여)의 정림사보다도 격이 높은 것”이라면서 “백제 불교의 호국적 성격으로 볼 때 왕실의 비호와 장려를 받으며 불교의 번창을 이끈 사찰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목탑터가 경우에 따라서는 백제 최초의 사찰일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목탑터가 절의 흔적으로 확인된다면 백제 초기 불교의 발전 양상뿐 아니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으로 혼선을 빚고 있는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몇몇 일본학자들은 ‘일본 서기’의 기록에 따라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를 침류왕 시절이 아닌 동성왕(재위 479∼501년)으로 한 세기 이상 늦춰잡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 규슈대학의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 교수가 대표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낙랑군을 떼어내 대수(帶水) 남쪽에 대방군을 설치했다.’는 중국 기록을 근거로 대수를 한강으로 간주하면서,‘풍납토성은 대방군의 치소(治所)’라고 엉뚱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풍납토성의 목탑터가 백제 특유의 건축기법으로 조성된 절의 중심 건축물로 밝혀진다면 이런 주장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길상탑서 나온 소탑의 조형미에 감탄

    길상탑서 나온 소탑의 조형미에 감탄

    불교에서 탑(塔)을 세우는 것은 석가의 유골을 봉안하여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 위함이다. 그런데 석가는 열반에 들기 전 “나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가 설한 법(法)과 네 자신에 의지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흔히 신사리(身舍利)라고 부르는 유골뿐 아니라 설법을 담은 경전, 즉 법사리(法舍利)도 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하 무구정경)이 집중적으로 탑에 법사리로 넣어진 것은 통일신라시대이다. 황복사라고 전해지고 있는 경주 구황동 절터 삼층석탑의 사리갖춤이 출발점이다. 이 사리갖춤의 외함에는 99개의 작은 탑이 새겨져 있다.‘이 주문을 99벌 써서 탑 속에 넣고 공양하면 모든 죄를 멸하고 일체 소원을 이룰 것’이라는 무구정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석가탄신일을 맞아 기획한 ‘탑 안에 들어간 탑 이야기-전(傳) 황복사 삼층석탑 사리갖춤’은 바로 법사리로 무구정경을 봉안한 통일신라 조탑(造塔)공양의 역사를 보여준다. 상설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박물관 3층의 금속공예실 공간을 이용한 테마전시회로 지난달 29일 막을 열어 오는 8월3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황복사 삼층석탑의 사리함에서 나온 금제여래좌상과 금제여래입상이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높이가 각각 12.4㎝와 14㎝로 극도로 정밀한 세공기술을 보여주면서도 조형성이 뛰어나다. 이어 99개의 탑이 새겨진 금동외함과 은합, 금합으로 이루어진 사리용기를 비롯한 한 세트의 사리갖춤이 전시되어 있다.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과 합천 해인사 길상탑은 무구정경 사리신앙의 발전단계를 보여준다.8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나원리 오층석탑의 금동제 사리함에는 무구정경과 불상, 금동제 삼층소탑과 3개의 구층소탑이 들어있었다. 해인사 길상탑에서 나온 소탑 176개는 그 흔치 않은 조형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데,176은 다라니경에 나오는 극락왕생의 숫자 77과 99를 합친 것이다. 무구정경은 진흙으로 작은 탑 77개를 만들어 탑 속에 공양하면 99개를 넣은 것과 같이 온갖 죄업이 소멸된다고 가르친다. 테마전시를 사리장엄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전시와 곧바로 연결시킨 것도 관람객들에게 사리가 무엇이고, 사리갖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아이디어이다. 경주 감은사 동탑에서 나온 한국 사리장엄의 백미를 감상할 수 있고, 이어 안성 장명사명(銘) 고려시대 청동제 사리갖춤과 조선시대 백자 사리갖춤까지 시대에 따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고려 고분 5기 중장비로 파괴

    문화재 발굴조사 때문에 공장 건축이 늦어진다며 시행업체가 중장비를 동원해 발굴조사 현장을 파괴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문화재청은 반도체업체 S공정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등 강경대응한다는 방침이다. 30일 문화재청 등 관계 당국에 따르면 반도체업체 S공정은 전날 오후 2시쯤 충남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 공장예정지에서 대형 굴착기 1대를 동원해 고려시대 고분 5기를 파괴했다. 이날은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시작한 날이었다. 관계자들은 업체 측이 조사원들을 협박해 현장에서 몰아내고 사진기도 빼앗아 부수었으며, 현장조사를 나온 충남도 공무원도 사실상 감금상태에서 협박했다고 전했다. S공정은 인천공장이 산업단지 용지로 선정되자 당진에 새 공장 건설을 추진해 왔으며, 미국 업체와 500억원의 수출계약을 맺어 납기일을 맞추려면 10월까지는 공장을 완공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은 최근 한 언론에 이 업체의 사정이 보도되자 “현장조사를 통해 문화재 조사를 즉시 실시토록 현지 지도하고, 시업시행자에 대해서는 문화재 조사지역 이외의 지역은 즉시 공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는 해명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이번 일은 업주의 무지에서 비롯된 문화재 테러”라면서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건축주들이 개발의 광풍에 휘말려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을 무방비로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임시정부 90주년 행사를 국민축제로”

    “임시정부 90주년 행사를 국민축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는 2009년에 전국적으로 대규모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기념행사는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13일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펼쳐진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서울신문사는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 대회의실에서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한 협약식을 가졌다.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과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협약서에 서명하면서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나무인 임시정부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도록 힘을 합쳐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노진환 사장은 “민간 차원에서 임시정부의 얼을 기리는 사업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기념사업회에 감사드린다.”면서 “90주년 기념행사를 국민축제 차원으로 승화시켜 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해나가자.”고 말했다. 김자동 회장은 “대한매일신보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서울신문이 임시정부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데 적임이라고 판단했다.”면서 “헌법에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문화했지만, 그동안은 말로만 계승한 것이 사실인 만큼 90주년 기념행사가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기념행사는 기념식을 비롯해 국제학술세미나, 독립군가 합창제, 제3세계독립영화제, 독립운동사 창작판소리 공연, 독립운동 미술전, 임시정부 사진전, 어린이를 위한 독립운동사 만화책 발간 등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한성도읍기 백제 절 목탑터 최초 발굴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직후 세워진 절의 목탑터로 추정되는 유적이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발굴됐다. 한신대박물관은 경당지구를 발굴조사한 결과, 그동안 연못터로 추정되던 제206호 유구가 목탑의 기단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29일 밝혔다. 경당지구는 아파트 건축이 추진되다가 2000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보존되고 있으며, 한신대박물관은 2005년 주민들과의 마찰로 중단되었던 유구를 지난 2월부터 조사하고 있다.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이 유적은 노출된 토층으로 미루어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축조된 것”이라면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단언키는 어려우나 목탑터로 확인되면,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유적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유적이 목탑터로 확인되면, 한성도읍기 백제(BC 18∼AD 475)에서 처음으로 발굴되는 불교유적이 된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로 국악학자 이혜구 100세 축하모임

    원로 국악학자 이혜구 100세 축하모임

    국악계 원로 만당(晩堂) 이혜구(1909∼)옹의 100세를 축하하는 자리가 새달 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다. 올해 100세를 맞는 이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마련한 자리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옹은 경성제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경성방송국에 프로듀서로 입사, 국악 프로그램 등을 담당했으며 해방 후에는 방송국장을 역임했다. 이때 국악과 인연을 맺어 전통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옹은 1948년 ‘국악연구발표회’를 시작해 현재의 사단법인 한국국악학회의 초석을 놓았다.1954년에는 한국국악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옹은 서울대 음대 학장을 거쳐 1974년 정년퇴임한 뒤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 명예교수, 한양대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그동안 여러 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이옹은 현재도 ‘한국음악이론’ 개정판과 ‘국악사’를 집필 중이다. 새달 열리는 축하 모임에서는 후학들이 1060쪽에 이르는 ‘만당 이혜구박사 백수 송축논문집’(민속원)을 봉정한다. 논문집 봉정에 이어 1998년 이옹의 구순을 맞아 제정된 ‘이혜구 학술상’ 제6회 시상식과 축하 연주, 국악계 관계자들이 함께 하는 축하 잔치가 이어진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순천만 등 6곳 ‘명승’ 지정

    문화재청은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전남 순천시 안풍동 일대 순천만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29일 예고했다. 순천만은 연안 습지가 넓게 발달하여 대규모 갈대밭과 갯벌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S자 해수로가 길게 형성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남한강이 흐르는 충북 단양 및 제천 일대의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사인암, 옥순봉 등 단양팔경 가운데 5곳도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김진수 국립오페라단장 별세

    [부고] 김진수 국립오페라단장 별세

    국제오페라단 단장으로 활동해온 테너 김진수씨가 27일 오전 7시30분쯤 경기 안양시 인덕원 자택에서 별세했다.61세. 김 단장은 지병인 당뇨 합병증에다 공연 준비에 따른 과로가 겹쳐 잠을 자다 타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에서 성악을 공부한 김씨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뒤 부산여대 교수 등을 지냈다.1982년 국제오페라단을 설립한 김씨는 창단 기념공연으로 올린 ‘나비부인’에 특히 애착을 가져 이 작품을 갖고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진출하기도 했다.2002년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에서는 일본 게이샤를 사랑한 남자 주인공인 미 해군 중위 ‘핑커튼’ 역으로 출연했다.2004년에는 이탈리아의 유명 오페라축제인 푸치니 페스티벌 무대에 한국 오페라단으로는 처음으로 참가해 ‘나비부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1972년 성악가로 데뷔한 김씨는 한국민간인오페라단장협회 부회장, 계간 ‘오페라’ 발행인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이탈리아에 유학 중인 범석, 현석씨 등 2남이 있다. 빈소는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 발인은 29일 오전 8시30분.(031)386-2345.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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