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근대만 근대화라고?”
근대성이란 서구에서 나온 개념이다. 계몽주의적 합리성이 자본주의와 결합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 일어난 17세기론을 펴는 학자도 있고, 르네상스와 연관지어 12∼16세기를 제안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가하면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주의 연구자들은 서구의 근대성이란 아메리카의 ‘발견’ 및 식민지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본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근대성 논쟁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이라고 한다.1980년대 치명적 경제위기의 원인을 좌우 갈등에서 찾던 사람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념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처방으로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우파는 거대담론의 종말을 논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데올로기 갈등을 종식시킬 희망을 보았고, 좌파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다양성을 끌어안아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의 경직성을 완화시켜줄 ‘차이의 정치학’을 발견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 ‘근대 다운 근대’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근대 이후(포스트모더니즘)’를 논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었다. 근대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논의해 볼 필요가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성에 관한 논쟁은 식민시대를 겪었고, 해방 이후에는 군부독재를 경험하는 등 라틴아메리카와 여러모로 닮아 있는 한국도 피해갈 수 없었다.1990년대 식민지 근대화를 둘러싼 역사학계의 논쟁과 박정희 정권의 발전주의 담론을 근대화와 연결시킬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고, 서구화가 과연 근대화인가를 두고 지식인들 사이에 진행되었던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니콜라 밀러·스티븐 하트 편저,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옮김, 그린비 펴냄)는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지식인들의 논쟁을 담고 있다.
2005년 2월 런던의 아메리카연구소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가 언제부터 였는가’라는 주제로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은 물론 문학, 영화, 문화비평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참여한 워크숍이 열렸는데, 당시 모임의 성과를 담은 것이 이 책이다. 참가자들은 서구에서 만들어진 근대성 담론을 비판하면서, 서구에 의해 대상화되어 온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성찰하고 다양한 대안적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서구에 의해 이식된 역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출신으로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대서양비교연구학 교수인 주앙 세자르 데 카스트로 호샤는 동향의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사례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가 서구의 복제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호샤는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주변부’작가는 ‘중심부’인 서구의 서로 다른 역사적 시기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합리적인 연대순이나 정형화된 해석틀을 성실하게 따라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마샤두는 바로 역사적 시간이 뒤섞이고 문학적 장르가 뒤섞이는 ‘고의적인 시대착오’ 기법으로 기존의 ‘창조’라는 개념을 허물고 새로운 독창성을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런던대학 버크백 칼리지 스페인어학과 교수인 윌리엄 로우에게도 이어진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역사발전론이나 자본주의 근대화론자의 역사론이 모두 시간적 순서에 따른다고 비판하고, 페루 문학에서 근대성의 장면을 다룬 작품을 검토하면서 연속성과 순차성을 거부하고 시간성과 공간성을 함께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근대성을 새롭게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기획한 라틴아메리카 총서 ‘트랜스라틴’의 첫권이다. 서구 지식만을 중히 여기는 국내 학계의 풍토에서 주변부를 공부한 대가로 저절로 ‘마이너리그’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은 라틴아메리카를 체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일대 사건’에 해당한다고 기뻐하고 있다.1만 8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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