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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태안 마도 안흥정/서동철 논설위원

    고려는 송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면서 교역 규모도 늘릴 수 있었다. 사신의 왕래를 이용한 조공무역은 물론 개성 상인을 일컫는 송상(松商)의 사무역도 활발했다. 고려의 국제항은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예성강 하류의 벽란도였다. 당시 바닷길은 벽란도에서 대동강 어귀 초도를 거쳐 중국 산둥반도 등주(登州)에 닿는 북선항로와 벽란도에서 흑산도를 거쳐 중국 명주로 가는 남선항로가 있었다. 처음에는 북선항로를 주로 이용했지만, 북쪽의 거란이 송나라를 주눅들게 할 만큼 세력이 커지자 남선항로로 대체됐다. 남선항로를 이용한 교류의 모습은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구체적으로 서술해 놓았다. 그는 인종 1년(1123년) 뱃길로 고려에 다녀가면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담았다. 서긍을 비롯한 송나라 사신 일행은 5월 16일 오늘날의 저장성 닝보인 명주를 출발해 6월 3일에는 흑산도를 스쳐 지나간다. 이어 6일 요즘은 선유도로 불리는 군산도 군산정, 8일 마도 안흥정, 9일 자연도 경원정, 12일 예성항 벽란정에서 각각 묵은 뒤 10일 개경에 도착한다. 군산정과 안흥정, 경원정, 벽란정은 고려가 중국 사신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설치한 객관이었다. 사신단을 영접하고 연회를 베풀었던 중요한 외교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충남 태안 마도에 안흥정이 세워진 것은 고려 문종 31년(1077년)이다. 안흥정 이전에는 보령 고만도에 객관이 있었다. ‘고려사’에는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고 보내기에 고만도의 객관은 배가 정박하기에 불편하다. 청컨대 홍주 관하 정해현 땅에 정각을 창건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청을 문종이 받아들여 이름을 안흥(安興)으로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서긍은 이곳을 지나며 ‘앞으로는 바위 하나가 바다로 잠겨들어 있어 격렬한 파도는 회오리 치고, 들이치는 여울은 세찬 것이 매우 기괴한 모습이어서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배들이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 암초에 부딪칠까 염려하는 것이다. 여기에 안흥정이라는 객관이 있다’고 적었다. 조선 초기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예로부터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렸는데, 조운선이 여러 차례 패몰했으므로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매우 싫어하여 안흥량으로 고쳤다’고 했던 바로 그곳이다. 실제로 난파 사고가 빈번했던 태안 마도 주변은 지금 해양 고고학의 보고로 떠올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태안선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마도 1·2·3호선으로 각각 명명한 고려 시대 선박을 발굴 조사했다. 올해는 지난해 발견한 조선시대 선박을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도 바닷길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곳에 얼마나 많은 과거사의 흔적이 잠들어 있는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더불어 땅위 안흥정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발굴 조사도 본격화해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특별대우/서동철 논설위원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자는 후배를 구슬려 회사 뒤 냉면집에 갔다. 전국을 통틀어도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솜씨가 있는 집이다. 하지만 동료들은 이 집에서 있었던 폭주(暴酒)의 아름답지 않은 기억 때문인지 회사에서 가까운데도 흔쾌히 가려 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 후배가 가리키는 뒷자리를 보니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혼자 냉면을 드시고 있었다. 슴슴한 냉면 맛이 아직은 그리 익숙지 않아 보이는 후배는 그러면서도 “이북이 고향인 할아버지들이 혼자서라도 찾아와 긴 줄을 마다않는 집이 좋은 냉면집의 기준인 것 같다”고 제법 아는 척을 한다. 언젠가 냉면집 주인으로부터 “식당은 혼자 오는 손님을 박대하기 마련이지만 냉면집은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향민 어르신이 얼마나 고향 음식을 드시고 싶으면 혼자서라도 찾아오겠느냐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가끔 찾는 송추의 냉면집도 어르신들이 휠체어를 이용하기 쉽도록 램프를 정비했고, 일어서고 앉는 것조차 큰일인 어르신들도 불고기며 갈비를 즐길 수 있도록 방에도 탁자와 의자를 마련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특별대우’도 사라질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동의보감’의 인간관/서동철 논설위원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지체가 높고 귀한 존재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안목(眼目)이 있다. 하늘에 밤낮이 있듯이 사람에게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한열(寒熱)이 있고,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血脈)이 있다. 땅에 초목(草木)과 금석(石)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모발과 치아가 있다.” 허준(許浚·1539~1615)의 ‘동의보감’은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로 시작한다. 신체의 모양과 장기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인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요즘 감각으로는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귀중한 정보였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내보이고자 했던 인간의 정수가 바로 이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앞의 설명을 보면 우주와 인간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와 몸은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척추는 천지(天地)의 기운과 인체의 기운을 소통·순환시키고 있다. 우리는 ‘동의보감’을 병든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기능적으로 알려주는 의서(醫書)로만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이 땅의 오래된 경험적 향약(鄕藥) 전통에 중국의 새로운 의학 지식을 포괄한 16세기 후반 조선 의학의 결정판이다. 그러면서 ‘동의보감’은 인체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당대의 세계관인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륜(人倫)의 정당성으로 새롭게 정립한 의철학(醫哲學)의 명저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의 전편을 흐르는 가르침은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을 닮은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하고, 그 원리를 거스른다면 인체의 균형도 깨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자연스러운 삶이 인간의 도리인 만큼 인륜을 지키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성리학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동의보감’은 의술을 통치 수단의 하나로 격상시켰다. 편찬에 정작(鄭?) 같은 유의(儒醫)도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의는 의학 지식에 학식을 겸비한 관료를 뜻한다.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은 조선 의학이 독립성을 가졌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허준은 중국 의학을 북의(北醫)와 남의(南醫)로 나누고 우리 의학을 동의(東醫)라 불렀다. 조선 의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했으며, 중국 의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식을 보여 준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이다. 그 판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는 소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하이패스/서동철 논설위원

    물건을 사면 거스름으로 받은 동전이 남는다.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게 성가셔 종이컵에 던져 둔다. 시간이 지나면 제법 묵직하게 쌓이는데, 고속도로를 타야 할 때면 이 동전 뭉치를 생각해 내곤 한다. 집 근처 외곽순환고속도로는 특히 통행료를 받는 곳이 많다. 같은 액수라도 지폐 대신 동전을 내면 할인이라도 받은 양 기분이 나쁘지 않다.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면서도 하이패스가 크게 부럽지 않은 이유의 하나다. 편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이패스 판매점을 지나친 이유는 더 있다. 요금 자동징수 시스템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일본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도 하이패스 보급이 늘어나는 만큼 톨게이트 근무자는 줄어들 것이다. 사실 귀찮아서 달지 않았으면서도 “기특한 생각 아니야?” 하면서 둘러댄다. 지금까지 문제 없이 다녔는데 앞으로도 못할 것은 없다. 최근에는 뇌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동선(動線)을 수사하는 데 하이패스 기록이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하겠지만, 이런 데까지 쓰이는 물건이라니…. 이 ‘문명의 이기’가 좋아 보이지 않는 이유가 갈수록 늘어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한국문학번역원/서동철 논설위원

    소설가이자 번역작가인 안정효는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사례로 들곤 한다. 미국 작가 마거릿 미첼에게 1937년 퓰리처상을 안겨 준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독백은 빅터 플레밍이 연출한 1939년 작 동명 영화에서도 마지막 대사로 쓰였다. 배우 비비안 리가 연기한 스칼릿 오하라의 유명한 대사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로 번역되면서 명대사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번역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 구절이 어려운 일을 참지 못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스칼릿 오하라의 입버릇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주인공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꼭 오늘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라는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멋을 부린 번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일본 속담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의심도 있다. 문화한류(文化韓流)의 시대 번역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역시 소설가이자 번역작가인 박찬순은 태국에 수출된 한국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애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대사가 “brother”로 나가기도 했으니 현지인들은 “한국에 이상한 풍속이 있는 모양”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허탈해한다. 이것 말고도 영화 대사의 김치찌개, 떡볶이, 장어구이는 아예 번역을 하지 않는가 하면 정(情)이나 한(恨) 같은 표현도 그저 ‘jeong’나 ‘han’으로 표기하니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번역의 취약성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한국 문학의 해외 소개와 교류’를 목적으로 한국문학번역원이 2001년 출범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19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설립된 한국문학번역금고가 발전적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번역원은 그동안 3000종에 이르는 성과를 해외에 내놓았다.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물량도 물량이지만 질을 높여 실질적인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반성은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시장의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출판사와 제휴하고, 번역 아카데미는 대학원 과정으로 승격시켜 체계적으로 인력을 길러내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뮤지컬 등 한류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원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통폐합시키는 기획재정부의 방침이 알려졌다. 오늘 열리는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에서 번역원 통폐합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담이 아마도 우리 문화의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화융성의 시대라고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삶의 질’/서동철 논설위원

    통영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부터 역사의 향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은 데다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고장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어느 해 통영국제음악제를 위해 찾았을 때 남망산 아래 부두의 골목 장터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이 계기였다. 골목은 빨간 고무 양푼에 활어를 담아 파는 아주머니들 차지였다. 그런데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듯한 동네 주부가 다가가 흥정을 시작하는가 싶더니, 생선 아주머니는 대뜸 도다리 몇 마리의 옆구리에 큼직하게 칼집을 넣는 것이었다. 간장에 조려 먹을 도다리라고 했다. 펄펄 뛰는 고급 횟감을 조려 먹는다니…. 그것은 서울 언저리에서는 상식적일 수 없는 삶의 모습이었다. 부산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부럽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특히 싱싱한 멸치가 넘쳐나는 기장에 가고 싶다. 서울에서는 멸치 구이를 보기 어려운 데다 물간 멸치회조차 흔치 않다. 하지만 멸치철을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 지난해 여름 기장에서도 멸치젓만 한 통 사들고 왔다. 부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는 있는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죽은 임나 되살려 내는 일본/서동철 논설위원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에 수많은 한국 문화재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 용무늬 고리자루칼(單龍文 環頭大刀)을 보자. 유물 카드는 한글, 일문, 영문으로 각각 ‘6세기 삼국시대’ 것으로 ‘전(傳) 한국 창녕 출토’라고 명시했다. ‘창녕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는 뜻이다. 고리자루칼을 비롯해 이곳에 전시된 창녕 유물 모두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유물 카드를 적어 놓았다. 반면 일본 문화청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같은 유물을 소개하면서 ‘임나(任那) 시대의 유물’이라면서 출토지 역시 ‘임나’라고 표기해 놓았다.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수용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 야마토(大和) 정권이 이런 이름의 통치기관을 만들어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고대 역사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이런 기록이 나오지만 일본 학계조차 벌써부터 곧이곧대로 인정하기에는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문화청 홈페이지의 ‘고대사 유물 도발’은 당연히 아베 정권의 과거사 행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반도 식민지배의 명분을 고대사에서부터 꿰어 맞추려던 제국주의 역사관을 사실상 물려받은 아베 정권에도 임나일본부설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 ‘창녕 유물 도발’에는 한 가지 의도가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문화유산 보호단체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이 도난품인 오구라 컬렉션 유물을 소장하는 것은 국제박물관협회 윤리강령을 위반한 불법행위’라는 취지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오구라 컬렉션이란 일제강점기 남선합동전기회사 사장이던 오구라 다케노스케(1896~1964)가 1922년부터 한반도에서 반출한 1100점 남짓의 유물을 일컫는다. 오구라가 죽은 뒤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가 관리하다 1981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이 가운데 불법 도난품으로 우선 확인된 34점의 유물 환수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용무늬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경남 창녕 출토 유물 13점도 목록에 들어 있다. 문화청 홈페이지의 유물 설명에 ‘임나’가 들어간 것은 오구라 컬렉션이 당초 작성한 유물 카드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없지는 않다. 문화청은 소장 기관이 제시한 내용을 기초로 홈페이지의 유물 설명을 붙이기 마련이니 빚어진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도적이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과거사 왜곡을 가속화하면서 한국의 유물 환수 노력마저 희석시키려는 의도일 가능성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임나에서 나온 임나 시대 유물’의 행간에는 한국 유물이 아닌 일본 유물이라는 억지 논리가 읽힌다. ‘임나’를 무덤에서 꺼내 어디까지 활용하려는지 모를 일본이다. 웃어 넘기자니 유쾌하지가 않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무정한 손님/서동철 논설위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음식점 골목이 형성되면서 닭강정집이 하나 생겼다. 주인 할머니가 직접 만드는데 값은 조금 비싼 듯했지만 좋은 재료를 쓰는 데다 솜씨도 있는 듯 깔끔한 모양에 맛도 좋아 대학생 딸아이가 특히 즐겼다. 하지만 배달을 하지 않으니 별 수 없이 직접 가서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 닭강정집에 갔더니 할머니 남편인 듯한 할아버지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딸아이를 들여보냈지만 주문이 밀린 듯 한참이나 나오지 않았다. 차에 앉아 가게를 건너다보니 인상이 좋아 보이는 어르신은 쉬지 않고 딸아이에게 뭔가 얘기를 건네는 것이었다. 얼핏 보아도 오랫동안 기다리는 손님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가 분명했다. 몇 주일 뒤에도 그랬다. 그런데 이후 딸아이는 닭강정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처음에는 큰 닭을 쓰더니 장사가 잘되니 작은 닭을 쓴다는 둥 하며 트집을 잡았다. 그런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먹을 만하던데…. 너무 친절한 그 집 어르신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딸아이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좋은 뜻인데, 뭘 그래” 하려다 참았다. 자고로 주인 생각하는 손님은 드문 법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울광장] ‘평창 스타일’ 문화 올림픽을 위하여/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평창 스타일’ 문화 올림픽을 위하여/서동철 논설위원

    스키 시즌이 끝난 평창, 그것도 주말이 아닌 주중의 평창은 드라마 촬영이 끝난 거대한 세트장 같았다.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을 나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황태 덕장의 풍경부터가 그랬다. 눈발이 날리는 덕장에 끝없이 널어 놓은 황태의 모습을 겨우내 TV에서 수도 없이 본 탓인지 ‘황태 농사’가 끝나고 제철 농사를 위해 덕장을 철거하는 광경조차 드라마 세트를 뜯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동계 스포츠의 고장답게 스키숍이 줄지어 있지만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얼마 전까지 스키 관광객으로 북적였을 식당도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은 듯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리는 횡계는 고속도로에서 5분만 가면 나타난다. 횡계는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면사무소 소재지다. 과거에는 도암면이었지만 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잘 알려진 이름으로 바꾸자는 데 의견을 모아 2007년 대관령면이 됐다고 한다. 대관령면에서 평창군청이 있는 평창읍은 제법 멀다. 대관령면은 평창군의 동쪽 끝, 평창읍은 남서쪽 끝이다. 횡계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여 있다. 조용한 산촌(山村)의 모습과 용평리조트가 들어서면서 난개발이 이루어진 1970년대의 흔적이 공존한다. 스키 관광객을 겨낭해 지었을 고층의 리조텔이나 같은 용도로 쓰이는 듯한 오피스텔도 드문드문 보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다. 다시 동계올림픽 설상 종목이 열리는 알펜시아 리조트에 접어들면 30~4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듯 초현대적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세트장이 아니라면 공존하기 어려운 모습이 공존하는 곳이 평창이다. 평창올림픽은 말할 것도 없이 결함 없는 대회가 되어야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낸 것이 평창올림픽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30년 전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몇 차례의 아시안게임을 비롯해 그동안 치러 낸 굵직한 대회만 해도 하나하나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경기장 건설이 다소 논란을 빚었음에도 우리가 쌓은 노하우를 생각하면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교통과 숙박은 물론 경기 진행까지 아무런 무리 없이 준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다. 단순히 올림픽을 차질 없이 개최하는 차원이라면 해당 지역민의 삶과 그 삶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은 개최국이 가진 문화적 역량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문화전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미래의 격전지를 둘러보면서 ‘평창 문화올림픽’에서도 성공을 거두려면 가장 평창다운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대간 대관령 분지의 작은 마을 횡계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폐회식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유럽과 북미에는 흔하디흔한 알펜시아 스타일보다는 소박한 평창 스타일의 토속적 산촌 문화가 오히려 세계인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누가 뭐라 해도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은 성공적이었다. ‘강한 러시아’를 추구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이 맞물리면서 ‘러시아의 영광’을 보여 주는 데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아직도 많은 세계인이 화려했던 소치의 개·폐회식을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창이 그들의 뒤를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소치와는 완전히 다른 콘셉트의 문화행사가 평창에 거는 세계인의 기대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새달 임명될 예정이라는 개·폐회식 총감독은 평창 스타일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주민들에게는 올림픽이 지역 문화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올림픽은 평창, 강릉, 정선에서 나뉘어 열린다. 세 곳이 갖고 있는 문화적 자산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정선아리랑이나 강릉단오제, 둔전평농악 같은 민속문화가 아니더라도 감자, 메밀, 옥수수 같은 먹거리부터 세계적 축제로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평창군이 ‘세계 누들 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이 축제에 북한 주민 사이에 맛 품평이 한창이라는 평양의 냉면 라이벌 옥류관과 청류관도 참여시키면 좋겠다. 평창올림픽을 남북 화해의 장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냉면 애호가라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평창으로 몰려들 것이다.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일회삼매이상불가/서동철 논설위원

    시·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절의 화장실로는 순천 선암사 측간(厠間)과 영월 보덕사 해우소(解憂所)가 있다. 모두 산지 사찰의 지형적 특성을 이용해 누각식으로 지었다. 용변을 보는 곳과 배설물이 쌓이는 곳의 고저 차이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선암사에는 ‘정월 초하루에 힘을 주면 섣달그믐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게다가 산바람이 사시사철 부니 코를 막는 수고로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해우소 배설물은 퇴비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언젠가 찾은 남원 실상사의 해우소는 새로 지었음에도 이런 원리를 살려 놓아 기억에 남아 있다. 월정사 원행 스님의 산문집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 겨울을 나는 김장 채소는 해우소 거름으로 큰다는 것이다. 그의 은사는 구겨진 포장지를 일일이 다리미로 다린 뒤 손바닥만 하게 오려 해우소에 매달아 놓았다고 한다. 옆에는 ‘일회삼매이상불가’(一回三昧以上不可)라고 적었다. 한 번에 석 장 이상 쓰지 말라는 검약의 가르침인데, 삼매(三枚)가 아니라 깨달음의 경지인 삼매(三昧)라고 쓴 것이 묘미다. 해우소에서도 수행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농중진담(中眞談)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한지와 화지/서동철 논설위원

    건칠불(乾漆佛)은 일반적으로 삼베로 감싸고 옻칠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한 뒤 단단히 반죽한 옻칠로 세부를 표현해 마무리한다. 나무를 깎거나 금속을 틀에 부어 만드는 불상보다 훨씬 섬세한 조각이 가능하다. 다른 재질의 불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벼워 화재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 어렵지 않게 대피시킬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유행했는데 경주 기림사와 영덕 장륙사의 건칠보살반가상은 특히 삼베가 아닌 종이를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륙사 것은 조선 태조 4년(1395), 기림사 것은 연산군 7년(1501)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지(韓紙)는 1000년을 간다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 불상’의 수명은 짐작조차 어려운 일이다. 식물의 잎면을 기록 용도로 쓰기 시작한 것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보듯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물성 섬유를 분리한 뒤 다시 모아 만드는 오늘날의 종이는 중국에서 기원을 찾아야 한다. 초기의 종이는 거울 같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한 완충재로 썼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이미 개발되어 보편화된 식물성 섬유의 활용방법을 2세기 초 기록 용도로 넓힌 사람이 후한(後漢) 시대 채륜이다. 중국의 제지술은 이후 동쪽으로는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다. ‘일본서기’에 610년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승려 법정과 일본에 종이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반도에 종이가 전래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 기록 이전에 이미 고구려에는 제지법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지의 주원료는 닥나무다. 닥나무 섬유는 가늘고 길어 종이의 조직이 조밀하고 일정하다. 닥 섬유는 빛 반사율이 높아 광택이 좋고, 물이 잘 들어 아름다운 색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수명이 긴 데다 섬유 조직 사이로 통기성 또한 좋아 최근에는 환상적인 자연 섬유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의 전통 종이 화지(和紙)도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 주원료인 삼지닥나무 또한 닥나무처럼 섬유가 길어 화지 또한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습기에 강하다. 오늘날 한지와 같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종이의 용도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유럽에서는 미술이나 패션, 인테리어에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물론 특히 옛 문서와 회화, 벽화, 조각 등의 보존처리와 복원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로 떠올랐다. 문제는 화지가 오래전부터 ‘동양을 대표하는 종이’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반면 한지는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바티칸의 교황청이 ‘요한 23세 박물관’의 지구본을 복원하는 데 한지를 쓰기로 했다는 어제 서울신문 보도 내용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많은 사람이 한지를 해외에 알리고자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종이 전쟁’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이치의 400 무명 의병

    왜군의 선단이 부산포 앞바다에 모습을 보인 것은 1592년 어스름 녘이었다. 한밤이 되자,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가 이끄는 1만 8700명의 왜군을 태운 배가 바다를 가득 메웠다. 이튿날 아침 안개가 걷히자 왜군은 깃발을 앞세우고 상륙해 부산진성을 3면에서 포위했다. 이때 부산진첨사 정발을 비롯해 500명 남짓한 조선군은 성을 지키다 전원이 장렬히 전사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을 4월 13일이라고도 하고, 4월 14일이라고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대진첨사 윤흥신이 13일 한 차례 왜군과 접전을 벌였다는 주장도 있다. 윤흥신도 이튿날 왜군의 전면 공격을 방어하다 부하들과 함께 순국했다. 4월이 되면 다시 임진왜란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특히 임진왜란을 다룬 TV드라마 ‘징비록’이 인기를 끌고 있어 더욱 관심이 높아진 듯하다. 당시 부산에 상륙한 왜군이 이후 파죽지세로 북상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왜군은 호남평야를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당연히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호남으로 가는 방법은 병선으로 해안선을 타고 들어가거나, 경상도에서 진주를 공략한 뒤 서진(西進)하거나, 북상하는 길에 충청도 방면에서 금산을 거쳐 전주로 향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왜 수군은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 대패한 뒤 기세가 꺾였고, 경상도의 왜 보군(步軍)은 곽재우, 김면, 정인홍 등이 이끄는 의병에 가로막혀 쉽사리 서쪽으로 발을 내딛기 어려웠다. 결국 왜군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1만명의 병력을 금산에 집결시켜 이치(梨峙)를 거쳐 전주를 공략하려 했다. 7월 8일 광주목사 권율은 1500명으로 이치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한 복병전을 벌여 왜군을 격퇴했다. 권율은 이 공으로 전라도 순찰사에 발탁됐고, 훗날 행주대첩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다. 다시 금산성으로 물러난 왜군에 큰 타격을 입힌 것은 의병이었다.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7월 3일 관군과 합동으로 금산성을 공격하다 순국한다. 옥천 의병 조헌은 8월 18일 금산성을 공격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700명 의병이 전원 순절하고 만다. 8월 27일 이보와 소행진이 이끄는 익산 의병 400명이 이치에서 왜군과 백병전 끝에 모두 순국한다. 이치는 충남 금산과 전북 완주를 가르는 고개다. 완주 쪽에는 ‘이치 전적비’가, 금산 쪽에는 또 다른 ‘이치 대첩지’가 만들어졌으니 부자연스럽다. 두 곳 모두 관군을 이끈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최근 지역에서부터 ‘관군의 승전’보다는 오히려 ‘400명 무명 의병의 순국’을 먼저 기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성이 일고 있다. 이치의 순국현장을 공원화하여 무명 의병 추념비와 기록 조각을 남기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늦었지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잡고기의 최후/서동철 논설위원

    붕어 낚시를 자주 다니던 시절 지렁이 미끼를 끼우면 다짜고짜 덤벼드는 게 꾸구리였다. 색깔은 거무튀튀하고 무늬는 얼룩덜룩하니 그리 아름답지 않은 민물고기다. 손가락 크기를 넘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 바늘을 배 속 깊숙이 삼켜 대니 결코 반가울 수 없다. 하지만 낚시터가 아니라 매운탕 집이라면 잡고기가 좋았다. 양식이 대중화됐다지만 별볼일없는 작은 고기라면 여전히 자연산을 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예전엔 잡고기가 메기나 동자개 매운탕보다 쌌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은 것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겠지 하고 짐작했다. 언젠가 냄비 안에 담겨 있는 꾸구리를 보고 ‘이렇게 작은 것도 넣었나’ 하면서도 반가웠다. 실제로 예전에는 매운탕에서 피라미는 물론 눈치, 모래무지, 돌고기를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꾸구리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놀랐다. 지난주 오랜만의 잡고기 매운탕에는 피라미뿐이었다. 크기도 한결같았으니 피라미도 이제 양식을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맛이 신통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잡’(雜) 자가 ‘더 좋은’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드문 사례였는데….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아버지 손맛/서동철 논설위원

    1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경기도 평택에 유명세를 떨치던 냉면집이 있었다. 남쪽으로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면 아무리 피곤해도 이 집에서 냉면을 먹곤 했다. 고속도로 나들목과 평택 시내 냉면집 사이의 거리가 웬만했으니 동행한 동료들은 극성깨나 떤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즐겨 찾았지만 냉면집을 일으켜 세운 주인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준 것인데, ‘신세대식 경영 합리화’가 시작된 이후 이 집의 명성은 조금씩 퇴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냉면을 먹겠다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는 일도 하지 않게 됐다. 내가 사는 파주에는 그럴듯한 막국수집이 하나 있다. 주인 영감은 그동안 추워지는 11월 말이면 가게 문을 닫고, 이듬해 봄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주변을 지나다 보니 문을 열어 놓은 것이 아닌가. 영감 대신 아들이 막국수를 만들고 있었지만 맛은 전과 같지 않았다. 그런데 따뜻했던 며칠 전 다시 찾으니 옛날 맛이 돌아와 있었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주인 영감이 보였다. 지난 겨울에는 문을 열었으되 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면 중년의 아들은 기분이 어떨지 모르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우리’사전에 연패는 없다

    [여자프로농구] ‘우리’사전에 연패는 없다

    샤데 휴스턴(우리은행)이 전날 쉐키나 스트릭렌(KB스타즈)에게 당했던 그대로 되갚아 줬다. 휴스턴은 23일 강원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이어진 KB와의 여자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2차전에 29분23초를 뛰며 38득점 9리바운드 활약으로 81-73 승리를 이끌었다. 박혜진이 17득점, 이승아가 13득점으로 뒤를 받쳤다. 1승1패 균형을 맞춘 우리은행은 오는 26일 충북 청주체육관으로 옮겨 3, 4차전을 치른다. 휴스턴은 모두가 공수에 뜻이 없던 종료 직전 혼자 골밑슛을 욱여넣었다. 전날 1차전에서 38득점 16리바운드로 활약한 스트릭렌에게 한 점도 뒤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스트릭렌은 이날 25분30초를 뛰고도 5득점 6리바운드로 꽁꽁 묶였다. 전날 3점슛 9개를 터뜨렸던 KB는 이날도 8개를 뽑아냈으나 상대의 강력한 질식 수비에 턴오버를 16개나 남발하며 자멸했다. 휴스턴은 경기 뒤 “내가 1차전에서 스트릭렌에게 그렇게 많은 점수와 리바운드를 내줄지 몰랐다”며 “경기가 끝난 뒤 생각을 많이 했다”고 분발의 배경을 밝혔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3~4분을 남기고 이겼구나 싶었는데 KB가 마지막까지 따라왔다. 긴장감을 안고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돌아봤다. 서동철 KB스타즈 감독은 “스트릭렌이 거친 수비에 평정심을 잃었는데 경기에 집중해 달라고 주문했으나 어려웠다”며 “변연하가 1쿼터 파울트러블에 걸리면서 우리 맥이 끊겼다”고 아쉬워했다. KB로선 2쿼터 시작 후 7분 동안 턴오버 7개를 저지르며 한 점도 올리지 못하고 허둥댄 것이 뼈아팠다. 반면 우리은행은 4쿼터 종료 3분53초를 남기고 휴스턴, 박혜진, 임영희, 이승아가 모두 4반칙이 돼 위기를 맞았지만 이승아의 드라이브인과 박혜진의 자유투 셋으로 빠져나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우리’ 아닌 우리가 진짜 별

    [여자프로농구] ‘우리’ 아닌 우리가 진짜 별

    KB스타즈가 3점슛 9개를 꽂아 넣으며 정규리그 우승 팀 우리은행을 격침시켰다. KB스타즈는 22일 강원 춘천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1차전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쉐키나 스트릭렌(38득점 16리바운드)과 변연하(17득점)의 활약에 힘입어 78-73 승리를 거뒀다.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으로 신한은행을 잡은 데 이어 챔프전 첫 경기도 승리로 장식하며 창단 첫 우승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역대 챔프전에서 1차전 승리 팀의 우승 확률은 66.7%(24회 중 16회)에 달한다. KB스타즈는 1쿼터 11점을 몰아 넣은 스트릭렌을 앞세워 21-12 리드를 잡았다. 2쿼터에서는 우리은행의 반격을 받았으나 정미란과 스트릭렌의 3점슛이 터져 전반을 37-35로 앞섰다. KB스타즈는 정규리그에서 경기당 평균 6.9개의 3점슛을 터뜨려 1위에 오른 팀. 3쿼터에서 KB스타즈의 장기가 발휘됐다. 변연하와 스트릭렌, 강아정이 3점슛 5방을 합작하며 우리은행을 몰아붙였다. 4쿼터 들어 우리은행이 샤데 휴스턴을 앞세워 반격을 펼쳤지만 KB스타즈도 물러나지 않고 승리를 따냈다. 서동철 KB스타즈 감독은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초반에 분위기를 끌어오는 게 중요했는데 선수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출발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휴스턴(20득점)과 임영희(18득점)가 분전했으나 빛이 바랬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스트릭렌을 막는 선수가 좀 부족한 면이 있었다. 선수들 책임이라기보다 내가 전략을 잘못 세웠다”고 밝혔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길섶에서] 영월 단상/서동철 논설위원

    강원도 영월에 가면 서부시장에서 메밀전병을 맛봐야 한다. 수십 곳 가게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특산물인 메밀전병을 경쟁적으로 부쳐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뛰어난 관광자원이다. 물론 영월을 찾는 여행자는 단종을 외면할 수 없다. 이 고장은 사실 숙부에게 목숨을 잃은 어린 단종을 기리는 거대한 기념물이라고 해도 좋다. 단종이 살아서 영월에 머문 기간은 넉 달 남짓이지만 단종 이전과 이후의 영월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영월 곳곳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많은 단종 유적이 대부분 20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단종의 체취가 직접적으로 담긴 유적은 장릉과 절해고도와 다름없는 유배지 청령포, 목숨이 끊어진 현장으로 알려진 관풍헌 정도다. 굳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밖의 기념물은 사실 단종이 아니라 단종에 충절을 바쳤다는 사람들을 기리는 성격이 짙다. 결국 충절을 기리는 듯 자기 조상을 기리고, 자기 조상을 기리는 듯 그 영예를 나누어 갖겠다는 후손들의 욕심이 상당 부분 개입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메밀전병을 먹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영월여행의 재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뒤집은 KB “우리은행 나와라”…여자농구 PO 신한은행에 2연승

    뒤집은 KB “우리은행 나와라”…여자농구 PO 신한은행에 2연승

    KB스타즈가 짜릿한 역전승으로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손에 넣었다. KB스타즈는 17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2차전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쉐키나 스트릭렌(29득점)과 강아정(14득점)의 활약에 힘입어 65-62로 이겼다. 1~2차전을 연달아 승리해 ‘업셋’(하위팀이 상위팀을 잡는 것)에 성공한 KB스타즈는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오는 22일부터 5전3선승제로 정규리그 1위 우리은행과 우승컵을 다툰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로 신한은행에 무릎을 꿇었던 수모를 완벽하게 되갚았다. KB가 36-33으로 앞선 채 돌입한 3쿼터. 신한은행이 김연주의 득점포가 가동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반면 KB는 스트릭렌 외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친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4쿼터 들어 KB의 반격이 펼쳐졌다. 강아정이 연달아 3점슛을 꽂아 넣었고, 스트릭렌과 변연하의 외곽포까지 터지면서 순식간에 점수 차를 좁혔다. 종료 1분 17초 전 홍아란의 득점으로 마침내 역전에 성공했다. 승부의 갈림길에서 KB는 샷클락을 유도하며 신한은행의 공격을 한 차례 막아 냈다. 상대의 반칙작전을 받은 스트릭렌이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쳐 위기에 몰렸지만, 정미란이 가로채기로 다시 한번 신한은행의 공격을 저지했다. 종료 6초 전 또 한번 자유투 2개를 얻은 스트릭렌이 모두 성공하며 승부를 마무리했다. 서동철 KB스타즈 감독은 “3쿼터에 점수 차가 벌어질 때 강아정이 3점슛 2개를 넣어 준 것이 컸다. 선수들이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수비와 리바운드에 최선을 다하면서 버텨 준 점을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김단비(13득점)가 분전했으나 빛이 바랬고, 허무하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3점슛만 10개… KB, 2분 남기고 3점차 역전승

    변연하가 빼어난 활약을 했지만 김보미(이상 KB스타즈)도 못지않았다. KB스타즈는 15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PO) 1차전에서 팀 컬러를 그대로 살려내며 3점슛 10개를 집어넣어 54-51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적지에서 기분 좋은 1승을 챙긴 서동철 감독은 17일 충북 청주로 이동해 홈에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매듭지을 수 있게 됐다. 여자프로농구(WKBL)에 PO가 도입된 2000년 여름리그 이후 역대 PO에서 첫 승리를 거뒀던 팀은 39차례 중 6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KB는 84.62%의 확률을 가져갔다. 정인교 감독이 지휘하는 신한은행은 막판 2분을 못 버텨 궁지에 몰렸다. 김보미는 시즌 정규리그 32경기에서 평균 14분 29초를 뛰며 2.5득점 1.4리바운드 0.7어시스트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을 갚겠다는 듯 변연하가 벤치로 물러날 때 생긴 공백을 잘 메웠다. 특히 2쿼터 처음 코트에 나와 6분 44초를 뛰며 3점슛 한 방 등 7점을 올리고 리바운드를 셋이나 잡아내며 팀이 전반을 29-27로 앞서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KB는 리바운드에서 27-33으로 밀렸지만 변연하가 3쿼터 3점슛 세 방을 작렬하면서 역전승에 발판을 만들었다. 서 감독은 김보미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는데 잘해 줬다. 오늘 이기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 오늘 경기가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변연하는 PO 통산 3점슛 103개로 은퇴한 박정은 전 삼성생명 코치의 101개를 제치고 최다 3점슛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대학로 문화지구/서동철 논설위원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1900년 시어터 리퍼블릭이 대형 극장으로는 처음으로 문을 열면서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공연예술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 극장은 벨라스코 극장과 빅토리아 극장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는 뉴빅토리 극장으로 불린다. 1903년 동시에 개관한 리시엄 극장과 뉴암스테르담 극장도 여전히 ‘더 비짓’과 ‘알라딘’을 각각 장기 공연하고 있는 ‘현역’이다. 1920년대 브로드웨이의 대형 상업 극장은 80개까지 늘어나지만, 이후 줄어들어 현재는 30개 남짓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공연 문화가 쇠퇴한 것은 아니다.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형 극장 건물주들이 더 나은 수익을 기대하며 업종을 전환했을 뿐이다. 브로드웨이 공연 문화는 오프 브로드웨이와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를 포괄한다. 브로드웨이가 상업화로 치닫자 예술성을 추구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외곽에 생겨난 것이 오프 브로드웨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프 브로드웨이의 상업성 또한 짙어지자 실험성 강한 예술인들은 다시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로 나갔다. 단계적 개념이 형성된 것은 공공기관의 지원도 한몫했다. 당국은 500석 이상의 극장은 브로드웨이, 100~499석은 오프 브로드웨이, 99석 이하는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로 규정해 세금 및 지원금에서 차등을 두었다. 3단계 개념이 극장의 물리적 위치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예술성에 대한 열망이 강한 극장일수록 외곽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다. 문화의 거리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치솟은 부동산 값에 밀려난 문화는 다시 외곽에 재편되기 마련이다. 전통 문화의 거리 인사동이 그렇고, 인디밴드 문화의 본거지인 홍대앞이 그렇다. 상업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 전통 문화와 인디 문화는 벌써부터 카페와 레스토랑, 옷과 신발 가게, 화장품과 장신구 가게로 대치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사동 문화는 삼청동으로 흘러가고 서촌으로 넘어가면서 대형 전통 문화권으로 발전하고 있고, 홍대앞 특유의 문화 역시 분위기를 주변으로 크게 넓혀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제 신문에는 ‘대학로는 죽었다’면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위를 벌이는 연극인들의 사진이 실렸다. 동네 터줏대감인 대학로극장이 호되게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을 위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한 정부에도 반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문화지구 정책은 브로드웨이처럼 문화가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을 막고 있다. 지금처럼 문화가 집중된 곳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가 없는 곳, 있어야 할 곳을 문화지구로 지정해야 한다. 상업화한 대학로는 시장 원리에 맡기고, 또 하나의 연극 거리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문화지구 정책이 필요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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