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시 꿈꾸는 ‘대전시향’
지방자치단체가 유능한 지휘자를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교향악단 지원에 나서자,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후원조직을 결성하여 활동을 뒷받침했다.
공연이 화제를 모으고 청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치단체는 다시 지원을 늘릴 수 있었고,교향악단은 그동안 꿈도 꿀 수 없던 세계적인 협연자를 초청하는 등 도약을 시작했다.
지금 대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주역은 물론 대전시립교향악단과 음악감독 함신익이다.그러나 대전시 당국과 대전시향의 후원회를 자임한 사단법인 ‘높은음자리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연이다.
교향악단의 운영체계는 크게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나눌 수 있다.유럽의 유수한 교향악단들은 운영비용 대부분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반면 미국 교향악단은 기업의 후원과 독지가의 기부,그리고 매표수입 등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공공적인 성격을 지닌 기관에 속해 있거나 지원을 받는 KBS교향악단과 코리안심포니,그리고 서울시향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교향악단은 유럽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식이 될 수밖에없는 민간 교향악단들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문화지원이 빈약하고 국민의 기부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데다,표를 사서 음악회를 관람하는 문화도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간 교향악단의 성장을 가로막는 문제점은 공공 교향악단에 그대로 적용된다.지역 교향악단은 정기연주회에,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해도 고작 100∼200명,많아야 300여명의 관객이 찾아오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 쪽에서 보면 관람객도 찾지 않는 교향악단에 무한정 예산을 쏟아부을 수 없는 노릇이다.결국 지원을 늘리기 어렵고 수준도 높일 수 없으며,따라서 청중이 외면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전시향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유럽식 교향악단에 미국식 운영체계가 가미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피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시향은 지금 한국 교향악단 운영체계에 하나의 전범을 만들어가는 시험을 하는 셈이다.
변화는 지난해 1월 대전시가 음악감독 함신익을 영입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상당한 개런티를 지출해야하는 만큼 초빙부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혁명적 변화’를 예상한 것도 아니었다.단순히 ‘청중을 연주회장에 모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지휘자’정도로 기대했다.함신익은 물론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그러나 대전시향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높은음자리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부터 민간 교향악단을 꾸려와 대전시향에 미국식 민간지원 조직의 도입 필요성을 느끼던 함신익과,제대로 된 음악회를 보고자 서울로 가야 했던 지역 음악애호가들의 뜻이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결성된 뒤 올해 사단법인으로 본격 출범한 ‘높은음자리표’는 아직 시향의 재정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그러나 구성원들이 대전시향 회원으로 대거 가입하여 벌써 연주회에 빈자리 걱정은 안해도 될 정도가 됐다.
‘높은음자리표’는 지난 11∼12일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염출하고,기업의 협찬을 끌어모아 ‘다락방의 베토벤’을 주제로 ‘베토벤 페스티벌’을 열었다.
12일에는 예일대학장을 지낸 피아니스트 로버트 블로커가,함신익이 지휘한대전시향과 협연했다.
연주회가 끝난 뒤 염홍철 대전시장은 시향단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전국지방자치단체 교향악단 가운데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예산심의에서 언제나 ‘도로포장’보다 우선순위에서 뒤지는 ‘교향악단’이지만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고,시의회를 설득할 명분도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대목이었다.
대전 서동철기자 dcsuh@
■함신익 대전시향 지휘자“팔리는 교향악단 만들어야죠”
지난해 1월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맡은 지휘자 함신익(45)은 대전시민들에게 과거와 다른 두가지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오는 20일과 8월3일 엑스포아트홀에서 잇따라 갖는 ‘함신익과 함께하는 가족음악회’처럼 ‘음악은 재미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점이다.20일은 러셀 펙의 ‘스릴 만점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란 누구인가’를 들려주고,새달 3일에는 ‘토끼 이겨라,거북이 이겨라’라는 주제로 빠른 템포의 음악과 느린 음악을 비교한다.
8월10일에는 팝스콘서트,10월17일에는가을음악축제,12월19일에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연다.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연주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악단이 됐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두번째는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중량급 협연자를 초청한다는 것이다.지난 3월21일에는 첼리스트 조영창과 만났다.또 오는 25일 충남대국제문화회관에서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와 협연한다.9월27일에는 세계적인 연주자의 반열에 든 바이올린 양성식과 첼로 양성원,피아노 문익주를 초청한다.
함신익은 기본적으로 ‘팔리는 교향악단’이 되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나아가 교향악단은 ‘시장경제’안에 완벽히 편입해야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그는 스스로 만든 깁스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예일대심포니와 그린베이,에벌린 교향악단 등의 전임지휘자를 맡았다.이같은 경험은 그를 ‘자생력’을 최선의 덕목으로 삼는 미국 교향악단의 생리를 가장 확실히 체득한 한국 지휘자로 만들었다.
“청중이 없어도 망하지 않는 오케스트라가 누구의 오케스트라이며,100명이오나 1000명이 오나 똑같은 월급을 받는 오케스트라는 누구를 위한 오케스트라냐.”라고 그는 꼬집는다.
대전시향은 한해 50차례 연주회를 갖는다.일주일에 한번 꼴이다.그 결과 대전시향은 이제 한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연습하는 교향악단이 됐다.그는 “지금까지는 대전에서 서울로 연주회를 보러갔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서울·부산에서 연주회를 보러 대전에 오게 될 것”이라면서 “두고 보라.”고 장담했다.
서동철기자
■후원단체 '높은음자리표'””대전시향의 붉은악마 될것””
‘높은음자리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민들의 자발적인 교향악단 후원단체다.지난해 음악애호가 50여명으로 발족한 뒤 올해 108명의 회원을 거느린 사단법인으로 본격 출범했다.
어떤 이들은 “대전이 아니라면 ‘높은음자리표’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만큼 대전시민들의 문화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이 단체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출범 초기엔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소 및 벤처기업 종사자와 의사·치과의사들이 이끌었다.해외유학파가 적지 않아 문화예술단체 후원활동이 낮설지 않았다.‘우리 고장 교향악단’을 육성하자는 뜻을 모으기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높은음자리표는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대전시향 후원에 머물지 않고 각종 음악회 개최와 후원은 물론 비영리 음악교육기관을 세우고,국내외 음악단체들과 교류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높은음자리표는 지난 11∼12일 ‘베토벤 페스티벌’을 연 데 이어 오는 11월23일에는 ‘대덕연구단지와 대전시민의 하나됨을 위한 음악회’를 연다.외지인이 적지 않은 대덕단지주민과 대전시민들이 음악회를 통하여 동질감을 높여가자는 취지이다.그야말로 ‘시민이 주최하는 페스티벌’이어서,대전시향에 대한 시민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임채환(블루코드 테크놀로지 대표) 높은음자리표 회장은 “우리는 함신익이란 걸출한 지휘자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우리가 사는 고장의 교향악단이 세계적 수준이 될 수 있도록 ‘대전시향의 붉은악마’가 될 것”이라면서 “뜻을 같이하는 시민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적극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동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