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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후지와라 다쓰야 “또 악역…에너지를 주니깐 절로 끌렸죠”

    [인터뷰] 후지와라 다쓰야 “또 악역…에너지를 주니깐 절로 끌렸죠”

    “악인에 끌려요. 에너지를 주니까.” 후지와라 다쓰야(31)의 배역은 매번 강렬했다. 국내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배틀로얄’에서 그는 반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살아남는 고등학생 나나하라 슈야 역할이었고, ‘데스노트’에서는 이름을 적어 넣으면 사람이 죽는 데스노트를 입수해 전 세계의 범죄자를 죽이는 야가미 라이토를 연기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퍼레이드’에서는 연쇄 폭행범 이하라 나오키 역을 맡으며 마지막까지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29일 개봉하는 ‘짚의 방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연기하는 기요마루 쿠니히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으로 일관하는 연쇄 살인범이다. 후지와라에게 손녀를 잃은 재계의 거물이 기요마루에게 100억원을 내걸면서 전 국민이 그의 목숨을 노리게 된다. 26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후지와라는 기요마루를 두고 “이해하려 해도 좀처럼 이해되지 않고 점점 더 멀어지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인간 쓰레기’라는 말까지 듣는 인물인데, 약간 공감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던 캐릭터라고 할까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히 어린 시절에 생긴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강하고 악한 인물이 된 데는 역시 감독님의 영향이 가장 컸죠.” 지난 5월 제 66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화제를 모은 ‘짚의 방패’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연출했다. ‘오디션’ ‘착신아리’ 등으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그는 호러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작품마다 거친 에너지를 쏟아냈다. 지난 22일 먼저 국내 개봉한 ‘악의 교전’에서는 연쇄 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뤘다. 후지와라는 “무엇보다 미이케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점에 끌렸다”고 출연 배경을 밝혔다. ‘짚의 방패’는 기요마루를 축으로 악과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1조원 넘는 자산을 보유한 재계의 거물은 기요마루를 죽이려다 실패하기만 해도 10억원을 주겠다고 공표한다. 동료와 간호사, 심지어 경찰까지 기요마루의 잠재적 살인자가 된다. 경시청의 특수 요원 메카리(오사와 다카오)와 시라이와(마쓰시마 나나코)에게 기요마루를 경시청까지 호송하라는 임무가 떨어지면서 48시간의 호송 작전이 벌어진다. 메카리와 시라이와는 악인을 죽이려 달려드는 집단적 악인들 틈에서 악인을 보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100억원이라는 큰 현상금은 물질 만능주의에 익숙해져 있는 이 시대의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들 수 있겠죠.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란 무엇인지 종종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타인과 살아가는 게 역시 정의가 아닐까요. 메카리는 직업에 대한 신념이 강한 캐릭터죠. 기요마루조차도 메카리를 보고 ‘대단하다’고 여기는 면이 있어요.” 후지와라는 연기에 가장 몰입했던 장면으로 메카리와 기요마루가 처음 만나는 순간을 꼽았다. 동료에게 죽을 뻔하다 살아난 기요마루가 호송 작전을 설명하는 메카리에게 “당신들이 나를 지킬 수 있겠냐”고 묻는 장면이다. 기요마루의 질문은 정의의 한계를 시험하는 말로 들린다. 영화 속 악행을 거듭하며 악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고 있는 후지와라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인자 역이 또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네 저요!’ 할 겁니다. 물어보자마자 ‘저요, 저요!’”(웃음)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빈부격차의 비극 ‘설국열차’ 닮았다

    빈부격차의 비극 ‘설국열차’ 닮았다

    2154년, 인류는 특권층과 빈민층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지구에 버려진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이 없는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맥스(맷 데이먼)는 제조 공정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다. 작업 중 치명적인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면서 5일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그가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은 엘리시움에 들어가 최첨단 의료기기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절박해진 맥스는 무기 회사 사장 칼라일(윌리엄 피츠너)의 뇌 속 정보를 입수해 오면 엘리시움에 보내주겠다는 지하세계 지도자 스파이더(와그너 모라)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과는 달리 국방장관 델라코트(조디 포스터)의 사주를 받은 칼라일의 뇌 속에는 엘리시움의 판도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정보가 들어있다. 올여름 마지막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 할 만한 ‘엘리시움’은 노골적인 계급 영화다. 엘리시움을 상징하는 델라코트는 첫 장면에서 순백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화이트칼라이며, 맥스는 글자 그대로 푸른색 근로복을 입은 블루칼라다. ‘엘리시움’은 신자유주의가 극단으로 물화된 세계를 그린다. “당신이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공장 감독관의 엄포에 맥스는 방사능이 가득한 작업 공간으로 내몰린다. 근무 중 화장실 사용은 1회로 제한되고, 감독관은 작업이 지체된다며 노동자를 박대한다. 맥스는 산업 재해를 당한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회사가 건네는 것은 몇 알의 진통제뿐이다.‘산재 노동자의 체제전복극’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위해 닐 블롬캠프 감독은 SF적 상상력을 동원한다. 척추에 특수한 수트를 이식받은 맥스는 엘리시움의 기계 병사에도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진다. 맥스가 델라코트에게 고용된 지구인 용병 크루거(샬토 코플리)와 대결하면서 액션 영화의 쾌감이 발생한다. 영화는 양극화된 미래세계의 이미지도 충실히 재현한다. 엘리시움의 상류층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흐르는 공간에서 파티를 즐기지만 디스토피아적 지구에 사는 빈민층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악다구니를 벌인다. 하지만 단점도 적지 않은 영화다. 가장 큰 문제는 매력적인 악당의 부재다. 델라코트와 칼라일은 탐욕에 눈이 멀었을 뿐 전혀 지능적이지 않다. 덩치 큰 느림보에 불과한 크루거에게는 맥스의 상대가 될 만한 카리스마나 강력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칼라일은 대통령을 밀어내고 엘리시움을 차지하자는 델라코트의 위험한 제안을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맥스의 어린 시절 여자친구인 프레이(앨리스 브라가)는 별다른 맥락 없이 크루거에게 납치된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데 비해 엘리시움의 방어력은 턱없이 낮다. 감독의 전작 ‘디스트릭트 9’이 인종 문제를 SF적 서사로 풀어내며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엘리시움’의 완성도는 여러모로 아쉽다. 26일 현재 평점 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디스트릭트 9’이 90점의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엘리시움’은 68점에 그친다. 국내 관객이라면 ‘엘리시움’이 시스템의 탈취를, ‘설국열차’가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주를 꿈꾼다는 점에서 엇비슷한 주제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109분.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상류층 특식’이 대중의 간식 되기까지

    러시아에서는 ‘모로제노예’, 프랑스에서는 ‘글라스’, 이탈리아에서는 ‘젤라토’라고 불리는 음식.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직접 요리법을 배워 손님들에게 대접했다는 음식.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법으로 금지된 식품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울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 음식.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는 상류층의 특별한 음식이었던 아이스크림이 20세기를 거치며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역사를 훑는다. 저자에 따르면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그리스·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스크림의 초기 형태는 얼음에 와인이나 꿀 등을 넣은 차가운 디저트였다. 하지만 얼음을 구하고 보관하기 쉽지 않았다. 냉각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이런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은 황제를 비롯한 특권층뿐이었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는 것은 냉각 기술이 발달한 16세기 이후다. 얼음이나 눈에 설탕과 과일즙 등을 섞고 딸기나 초콜릿 등으로 맛을 낸 ‘소르베토’가 이탈리아에서 개발되면서 아이스크림은 큰 인기를 얻는다. 다양한 기기가 발명돼 ‘허리가 끊어질 듯 힘들었던’ 제조 과정도 수월해진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이민자를 통해 아이스크림은 북아메리카 지역으로 확산된다. 미국에서는 1870년 독일 과학자 린데의 냉동 기술을 응용해 아이스크림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후 아이스크림 콘과 막대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차가 등장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스킨라빈스와 하겐다즈, 벤 앤드 제리스 같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도 탄생한다. 책은 1904년 만국박람회 당시 걸어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만들기 위해 아이스크림 콘이 고안된 일화나 폴란드 출신의 창업주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노려 하겐다즈라는 유럽식 이름을 채택한 사연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책을 감수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말처럼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아이스크림이 19세기 이후 산업화된 미국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미국에 편중될 수밖에 없는 책의 한계를 고려해 주 교수가 한국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따로 집필해 덧붙였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얼음과 불의 평화로운 공존… 신화의 나라 아이슬란드

    얼음과 불의 평화로운 공존… 신화의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의 대부분은 불모지다. 한반도의 절반 정도인 10만 3000㎢ 중 빙하와 호수, 용암 지대가 약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빙하 침식곡으로 생겨난 피오르 해안과 용암 지대는 이색적인 풍광으로 이름이 높다. 장엄하고 독특한 자연 경관 덕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오블리비언’과 ‘프로메테우스’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손꼽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호주의 경제·평화 연구소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평화지수(GPI)에서 아이슬란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를 차지했다. KBS 1TV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오는 25일 오전 9시 40분 ‘낯선 땅, 미지의 나라 아이슬란드’ 편을 방송한다. 수도 레이캬비크와 화산 지대를 방문하고, 아이슬란드의 다양한 문화도 엿본다. 제작진이 먼저 찾은 곳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항만’이라는 뜻의 소도시 레이캬비크다.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얼음(ice)의 땅(land)이라는 나라 이름과는 달리 지구상에서 활화산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온천 문화가 발달해 있을 뿐 아니라 지열이 풍부해 친환경 도시로 발전했다. 제작진은 40여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하들그림스키르캬 교회 등을 찾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도시를 살펴본다. 방송은 아이슬란드 최대의 간헐천인 게이시르의 모습도 담는다. 1294년에 화산 분화로 생겨난 게이시르에서는 지표 근처의 온천수가 부글부글 끓다가 지하 수증기압이 높아지면서 물이 솟구치는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80~100℃에 이르는 온천수는 최대 높이가 40m에 달한다. 주변에는 혹독한 기후와 지형에서도 야생화가 자라 묘한 경관을 선보인다. 중세 아이슬란드 문학의 한 장르인 ‘사거’(saga)도 살펴본다. 북유럽 신화와 역사적 인물들의 영웅담을 그린 사거는 이야기의 보고로 많은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됐다. 영국의 소설가 JRR 톨킨이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뒤 ‘반지의 제왕’을 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제작진은 ‘에이일의 사거’를 쓴 시인 스노리의 거주지를 방문해 사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태백산맥’ 건넌 중년, 정글사회 앞둔 청춘에 건네다

    ‘태백산맥’ 건넌 중년, 정글사회 앞둔 청춘에 건네다

    작가 조정래(70)의 새 소설 ‘정글만리’(해냄)가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글만리’는 올여름 문학 시장에서 독주할 것으로 보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세를 예상보다 쉽게 꺾었고, 정유정 등 고정 팬을 거느린 젊은 작가들의 신작도 눌렀다. 작가가 소설 시장의 주 소비층인 20~30대 여성 독자층을 포섭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데다 작품이 인터넷을 통해 이미 연재됐다는 점에서 ‘정글만리’의 저력은 연일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출간된 ‘정글만리’는 지난 6월 이후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켜 온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누르고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3권으로 묶인 단행본은 현재까지 10만 세트(30만권)가 팔려 나갔다.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와 정유정의 ‘28’ 등으로 여름 소설 시장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만큼 ‘정글만리’의 선전은 더욱 돋보인다. 예상을 깬 ‘조정래 현상’의 주요 배경에는 무엇보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으로 굳어진 기존 독자층의 높은 충성도가 첫손에 꼽힌다. 문학시장을 주도한 20~30대 여성 독자층보다 30~50대 남성 독자층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이다. 20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정글만리’의 구매층 가운데 40대 남성(19.5%)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연령대별로는 40대(32.9%)와 30대(27.6%), 성별로는 남성(57.6%)이 많았다. 반면 ‘색채가 없는’과 ‘28’은 각각 30대 여성의 비율이 25.7%와 23.6%, 30대의 비율이 41.9%와 35.7%로 가장 높았다(표 참조). 해냄의 이진숙 편집장은 “‘태백산맥’을 읽었던 386세대가 주요 구매층을 이루면서 젊은 자녀 세대의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면서 “부모의 권유로 책을 보게 됐다는 중고등학생 독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기 이유는 작품이 최근의 국내 소설에서 맛보기 힘들었던 빠른 스토리텔링과 대중적인 서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시장을 배경으로 한 ‘정글만리’는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과 철강회사 직원 김현곤, 중국인 관료 샹신원, 성형외과 의사 서하원 등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쉽게 읽히고, 흡인력 있는 전개로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든다는 평을 받는다. 황광수 문학평론가는 “3인칭으로 쓰인 ‘정글만리’는 사회·역사적 현실을 다루면서도 대중적인 성격이 강해 독자들이 순수문학보다 더욱 개개인의 삶과 연관돼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면서 “작가의 내면 세계에 치우친 1인칭 국내 소설에 독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정글만리’의 인기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자기 계발 코드가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이 국제 무대의 대세인 상황에서 ‘관시’(關係·연줄이나 뒷배, 네트워크 등을 뜻하는 말)나 부동산, 성형 문제 등 중국의 사회·문화적 현안을 본격적으로 다룬 점이 먹혔다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여러 대기업이 중국 전문가를 불러 잇따라 강의를 여는 데서 알 수 있듯 중국은 한국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면서 “특히 작품의 주요 독자층인 30~50대 남성 직장인들에게는 소설의 내용이 더욱 절실히 피부에 와 닿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아듀… 필름의 시대, 장인의 시대

    아듀… 필름의 시대, 장인의 시대

    기계는 돌아가지 않았다.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영화진흥위원회 지하 1층의 필름 현상소. 6대의 필름 현상기들은 말 없이 해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업량이 급감하면서 영진위 현상소는 지난 6월 말 가동을 중단했다. 현상기 3대는 분해와 이전 작업을 거쳐 다음 달 말쯤 한국영상자료원으로 이관된다. 나머지 3대는 영진위가 보관하다 향후 영화 박물관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시대는 완전히 안녕을 고하고 필름이 보존과 복원에만 사용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상소의 폐쇄는 필름으로 찍는 영화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800만 관객을 돌파한 ‘설국열차’는 필름으로 촬영한 마지막 한국 영화가 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필름으로 찍은 ‘설국열차’를 필름으로 상영하는 국내 극장은 단 한 곳도 없다. 촬영에서 영사까지 영화 시스템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180도 변화했다. 100년 가깝게 이어진 한국 필름 역사의 내리막은 매우 가팔랐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08년 93.9%에 이르던 필름 영화 상영 비율은 2011년 19.6%로 줄어들었고 올해는 1.2%에 그쳤다. 영화용 필름을 제작하던 이스트만코닥은 지난해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후지필름은 올해 필름 생산을 중단했다.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필름 영화의 퇴출은 세계 영화인들의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영화 제작비는 크게 줄었지만 필름 고유의 질감에 대한 매력을 잊지 못하는 감독은 많았다. 필름이 없어질 때까지 필름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선언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내 영화는 컴퓨터로 만들어내는 마법이 아니라 실제적인 마법”이라며 필름을 옹호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아예 “필름이 생산되지 않으면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봉준호 감독은 “작은 차이지만 필름과 디지털의 질감은 분명히 다르다. 필름으로 영화를 배운 내게는 필름이 곧 영화”라고 말했다. 영진위 현상소는 영진위가 서울 남산에 있던 1980년 14억원을 들여 완공됐다. 현상 작업은 영화 한 편당 평균 30만 피트에 이르는 원본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원본 필름의 손상을 막기 위한 필름 복제와 편집, 색보정, 사운드 필름 현상 등 다양한 작업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1만~1만 2000피트 정도의 극장용 프린트 필름이 완성됐다. 각 공정은 적어도 2명 이상의 전문 스태프가 담당했다. 영진위 현상소의 직원은 한때 30여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과 세방, 제일, 헐리우드 등 민간 현상소 중 올해까지 필름 현상을 했던 서울은 지난달 현상 업무를 종료했고, 세방은 기기만 보유하고 있다. 최남식 영진위 기술지원부장은 “필름이 돌아가며 촬영이 시작될 때 느껴지는 현장의 집중력과 끈끈함은 마법 같은 것이었다”면서 “필름이 없어졌다는 건 영화 장인의 시대가 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름의 용도는 이제 ‘촬영’에서 ‘보존’으로 건너갔다. 자료 보존과 복원에 있어 필름은 여전히 디지털보다 뛰어난 매체다. 디지털은 파일에 이상이 생기거나 삭제되면 복구가 어렵다. 김봉영 영상자료원 보존기술센터장은 “3중 백업 서버를 두고 디지털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만 디지털의 가장 큰 문제는 보존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면서 “서버 증설이나 각종 유지 비용 등을 고려하면 필름의 이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영상자료원은 경기 파주시에 건립 중인 제2보존센터가 2015년 완공되면 기기를 이전해 현상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예산 제약으로 인해 필름으로 촬영된 영화의 보존, 복원 작업을 할 뿐 디지털로 완성된 영화를 필름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반면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디지털 영화도 다시 필름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기술이 사장된다는 점에서 필름의 퇴출은 보존 측면에서도 위기”라면서 “영화를 하나의 문화재로 본다면 디지털 영화의 필름 보존 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새 영화] 왕자웨이 감독 ‘일대종사’

    [새 영화] 왕자웨이 감독 ‘일대종사’

    왕자웨이 감독이 1994년 발표한 ‘동사서독’은 전통적인 무협 영화의 계보에서 멀리 떨어진 작품이었다.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는 복수심에 들끓는 주인공도, 처단해야 할 뚜렷한 악인도 등장하지 않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에 따르면 ‘동사서독’은 “무한히 많은 무협소설들이 서로 가로지르고 통과하는 일종의 교차로”였으며 “그 자체로 여러 개의 수수께끼를 하나로 만든 플래시백 영화”였다. 수수께끼가 남긴 의문들을 채운 것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촬영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의 탐미적인 영상이었다. 감독의 두 번째 무협 영화인 ‘일대종사’ 역시 그의 비주얼리스트적인 면모가 극한으로 끌어올려진 작품이다. 여러 명의 촬영감독을 갈아치우며 6년간의 기획과 3년간의 촬영으로 완성된 영화는 매 장면 유려한 영상미로 가득 차 있다. 실존 인물이었던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지만 견자단 주연의 ‘엽문’ 등 기존 무협 영화의 공식은 따르지 않는다. 영화는 엽문(량차오웨이)의 봄과 겨울을 보여준다. 영춘권의 대가인 엽문은 팔괘장의 제창자인 궁보삼과의 대결을 통해 중국 무술의 대가로 떠오른다. 엽문은 궁보삼의 딸 궁이(장쯔이)와 무예를 겨루면서 미묘한 연정을 품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1938년 일본군이 쳐들어오면서 그의 삶은 “하루 아침에 봄에서 겨울로” 바뀐다. 집은 빼앗기고, 친구들은 죽고, 아내(송혜교)는 떠난다. 혼자 남은 그는 홍콩으로 건너간다. ‘일대종사’에는 봄에서 겨울로 생명을 다해가는 것들에 대한 회한의 정조가 다분하다. 팔과 다리를 “내밀고, 올리고, 내리는” 것이 전부인 영춘권은 몸으로 살아가던 시대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감독은 고속촬영을 통한 슬로모션으로 주먹과 발의 일합(一合)마저 우아하게 잡아낸다. 인물의 얼굴을 쉼없이 비추는 클로즈업은 저물어 가는 중국 근대의 표정을 비춘다.다만 이야기가 다소 분산되고, 형식과 이미지는 넘치는 작품의 특성을 불편하거나 지루하게 받아들일 관객도 있을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 뒤에 추가 영상이 있다. 122분.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홍상수, 로카르노영화제 첫 감독상

    홍상수, 로카르노영화제 첫 감독상

    홍상수 감독이 영화 ‘우리 선희’(9월 12일 개봉예정)로 제66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감독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18일 제작사 전원사와 영화제 홈페이지에 따르면 홍상수 감독은 17일(현지시간) 스위스 티치노주 로카르노에서 폐막한 제66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홍 감독이 받은 감독상은 로카르노영화제에서 2등 상에 해당한다. 1등 상인 최우수작품상은 스페인 출신 알베르트 세라 감독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돌아갔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8년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가 젊은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이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으며,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1946년 시작된 로카르노국제영화제는 칸·베를린·베니스 국제영화제 등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 선희’는 영화과 졸업생 선희(정유미 분)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학교에 들러 최 교수(김상중)와 과거의 남자들인 문수(이선균), 재학(정재영)을 차례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어린왕자·파브르 곤충기·해저 2만리…책으로 엿보는 거장의 상상력 발원지

    “어린이 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 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가는 문’은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상상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2010년 이와나미 소년문고의 창간 60주년을 맞아 감독이 오랫동안 읽어 온 어린이책 50권을 뽑았다. 석 달간 이 책들을 다시 읽으며 직접 짤막한 추천사를 썼다. 그가 고른 작품들은 낯설지 않다. ‘어린 왕자’와 ‘파브르 곤충기’, ‘해저 2만리’를 비롯해 명작 동화로 꼽히는 ‘하늘을 나는 교실’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주문 많은 요리점’ 등이 목록에 포함됐다. ‘어스시의 마법사’나 ‘마루 밑 바로우어즈’처럼 그의 애니메이션 원작이 된 작품들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그림이라며 삽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고양이 일러스트에서는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가 떠오르고, ‘바람의 왕자들’이나 ‘플램바즈’ 같은 작품에서는 비행기에 대한 그의 오랜 애정이 엿보인다. 2부와 3부에서는 책과 어린이 문학에 대한 생각을 개인사와 함께 풀어낸다. 처음으로 읽은 책이 ‘인어 공주’였던 기억을 떠올리고, 대학 시절 ‘어린이 문학 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감독의 팬이라면 그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사한 뒤 기획을 위해 닥치는 대로 어린이 책을 읽었던 일화나 ‘치폴리노의 모험’ 일러스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등에 재미를 느낄 법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작 ‘바람이 분다’의 뒷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당신이 들은 신의 목소리, 뇌의 착란은 아닐까

    어느 미국인 여성이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던 경험을 설명한다. “마치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처럼 엄청나게 큰 소리였어요. 목덜미를 강하게 누르는 손길이 느껴졌죠. 목소리가 들렸어요. ‘넌 내게 속해 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당신이 신이시라면 저는 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모든 게 환해졌어요.” 잠자코 있던 저자가 묻는다. “음…. 혹시 측두엽 간질 발작이라고 생각해 보진 않았나요?” 영적 체험은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일까, 뇌가 만들어 낸 정신적 착란에 불과할까. 저자는 1995년 비슷한 체험을 하면서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영적 체험의 강렬함을 잊지 못한 저자는 스스로 답을 찾기로 한다. 현재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의 대표 기자로 있는 그가 선택하는 방법은 흥미롭게도 과학이다. 그는 먼저 영성을 느꼈다는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담을 듣는다. “갑자기 뭔가가 등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뒤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다거나 “운전 중에 문득 신과 완전한 일체감을 느꼈다”는 간증이 이어진다. 유체이탈이나 임사체험을 통해 신을 느끼고 왔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체험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뇌과학과 유전학, 신경신학 등을 동원한다. 취리히대의 프란츠 폴렌바이더는 영적 체험이 세로토닌 같은 화학물질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로렌시언대의 마이클 퍼싱어는 측두엽을 자극하면 신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마이애미대의 게일 아이론슨은 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대한 면역 세포를 2배 오래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영성을 옹호하는 결론을 낸다. 자신의 영적 체험에서 탐사를 시작한 만큼 저자는 애당초 유신론자에 가깝다. 그는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고 결론 내린다. 과학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다시 믿음의 문제로 돌아온다. 선택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속편 쓴다면 더 희망적인 메시지 담고 싶어”

    “속편 쓴다면 더 희망적인 메시지 담고 싶어”

    “마법 같은 영화다. 목 밑까지 감동이 차올랐다.”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자 장 마르크 로셰트(57)와 뱅자맹 르그랑(63)이 제16회 부천국제만화축제를 맞아 한국을 찾았다. 15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처음 관람한 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면서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영화의 성공으로 원작 만화를 다시 보는 사람도 늘어난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서점에 선 채로 읽고 바로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밝힌 ‘설국열차’는 1984년 1권이 출간된 프랑스 만화다. 1권은 1990년 작고한 자크 로브가 이야기를 구상했고, 로셰트가 그림을 그렸다. 로브가 세상을 떠난 뒤 이야기를 이어갈 방도를 찾던 로셰트가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르그랑을 만나면서 1999년과 2000년 2, 3권이 연이어 출간됐다. 국내에는 2004년 처음 소개됐다가 절판된 뒤 중고 시장에서 원가의 3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원작은 ‘멈추지 않는 열차가 영원한 겨울의 백색 세상을 가로지른다’는 설정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와는 크게 다르고 결말도 훨씬 비관적이다. 영화 관람 전 기자들을 만난 르그랑은 “‘설국열차’의 설정은 로브가 생각했는데 하나의 시스템이 어딘가를 향해 굴러간다는 상징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면서 “원래 그림을 그리기로 했던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작품의 분위기도 더욱 어두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말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 1권에 이어 글을 쓰다 보니 다른 탈출구를 찾기는 어려웠다”면서 “지금은 3권으로 끝나지만 4, 5권을 통해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을 생각이었다. 4, 5권 집필은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영화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두 사람은 촬영 당시의 일화도 전했다. 르그랑은 “커다란 수염을 달고 모래를 뒤집어쓴 채 엑스트라로 참여했는데 어쩐지 러시아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고 무척 재미있었다”며 웃었다. 극 중 꼬리칸 화가의 손 대역을 했던 로셰트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손이 덜덜 떨릴 만큼 스트레스가 컸다”면서 “감독으로서 그토록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책임을 지는 일의 부담감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로셰트는 영화에 등장하는 화가의 그림(작은 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이들은 만화의 영화화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르그랑은 “봉준호처럼 위대한 감독의 손에 영화로 만들어져 기쁘다”면서 “상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만화만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그 ‘표현’을 하는 건 나인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말로 좌중을 웃긴 로셰트는 “기술의 발전으로 만화에서만 가능하던 것이 영화에서도 가능하게 돼 전 세계적으로 만화의 영화화가 늘어났다. 투자나 자본의 문제에서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만화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너훈아·태쥐나, 두 모창 가수의 10여년 앙금 그리고 화해

    너훈아·태쥐나, 두 모창 가수의 10여년 앙금 그리고 화해

    ‘너훈아’ 김갑순씨는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 넘은 중견 가수다. 그가 주로 노래를 부르는 곳은 나이트클럽 등의 ‘밤무대’이지만 가수 나훈아를 빼닮은 얼굴과 모창 솜씨로 나훈아보다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가 처음부터 모창 가수를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부모가 키우던 소까지 팔아 가며 무리해서 냈던 1집 앨범이 관심을 끌지 못하면서 생계를 위해 모창 가수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모창’보다 ‘가수’에 방점이 찍혀 있는 만큼 그가 무엇보다 섭섭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에게 ‘짝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일이다. 밤무대 사회를 보던 윤찬씨에게 서운한 감정이 쌓였던 것도 그래서다. 인천의 공연장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까워지지만 윤씨는 매번 김씨를 ‘짝퉁 가수’라고 소개했다. 윤씨 덕분에 모창 가수로서의 입지는 다져졌지만 김씨는 자신을 가짜 취급하는 윤씨에게 미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된다. 김씨는 “나중에 두고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결정적인 사건은 2001년에 벌어졌다. 윤씨가 오토바이 사고를 크게 당하면서 일을 계속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윤씨는 가족도 명성도 잃는다. 그러나 앙금이 쌓여 있던 김씨는 “150만원만 빌려 달라”는 윤씨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이후 두 사람은 10년 이상 연락을 끊고 지냈다. 윤씨는 김씨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윤씨는 1년 반 전 김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살 길이 막막해지자 모창 가수로 활동할 방도를 찾게 된 것이다. 김씨에게 사과한 윤씨는 ‘태쥐나’라는 이름으로 밤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윤씨의 속마음은 달랐다. “김씨를 밟고 일어나야 하니까 거짓으로 사과했다”는 윤씨의 머릿속에는 보란 듯이 성공해서 김씨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이들의 사연은 15일 밤 9시 50분 EBS ‘용서-가면을 벗은 우정, 모창 가수 너훈아와 태쥐나’ 편에서 방송된다. 두 사람은 베트남을 함께 여행하면서 10년 넘게 쌓인 앙금을 풀어놓는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박찬욱 감독 영화라면 지금이라도 출연”

    “박찬욱 감독 영화라면 지금이라도 출연”

    “박찬욱 감독 작품이라면 바로 출연할 수 있다.” 할리우드 배우 맷 데이먼(43)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엘리시움’의 홍보를 위해 방한한 그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할리우드의 모든 사람이 한국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첫 방문인 만큼 무척 흥분된다”고 밝혔다. 동료 주연 배우 샬토 코플리(40)와 함께 내한한 그는 한국영화 예찬론을 펴는 코플리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나타냈다. 코플리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에 출연했다. 데이먼은 ‘본 아이덴티티’를 비롯한 첩보 액션 영화 ‘본 시리즈’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의 작품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 중퇴한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진보 성향의 배우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공상과학(SF) 영화 ‘엘리시움’의 주제에 대해 “단순히 오락 영화로 즐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계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실의 빈부 격차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기 때문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사능에 노출된 뒤 치료를 위해 필사적으로 지배 계급의 공간인 엘리시움에 들어가려 하는 생산직 노동자 맥스 역을 맡았다. 영화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디스트릭트 9’의 닐 블롬캠프 감독이 연출을 맡아 국내외의 큰 관심을 받았다. ‘굿 윌 헌팅’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받기도 한 그는 연출에 대한 의지도 나타냈다. 지난해에는 각본을 쓴 ‘프라미스드 랜드’를 직접 연출하려 했으나 감독은 구스 반 산트에게 맡기고 제작과 주연만 맡았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굉장히 운이 좋아 최고의 감독들과 작업할 수 있었다. 훌륭한 영화 학교를 다닌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면서 “딸 넷이 너무 어려 스케줄 잡기가 어렵지만 빨리 연출로 데뷔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생략·침묵으로 전하는 삶의 근원

    생략·침묵으로 전하는 삶의 근원

    손보미(33)의 경이로운 첫 번째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의 표제작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길광용이라는 스타 감독이 5년에 걸쳐 ‘댄스, 댄스, 댄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뒤 자살한다. 맥락 없이 잡다한 춤이 뒤섞인 영화는 혹평을 받는다. 몇 년 뒤 ‘댄스, 댄스, 댄스’의 조감독을 맡았던 문정우가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영화를 내놓는다. 처음에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평론가 성일정과 감독의 오랜 팬 윤주윤이 두 영화의 기묘한 공통점을 지적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성일정은 ‘그들에게 린디합을’이 알려지지 않은 길광용의 유작이며 ‘댄스, 댄스, 댄스’에 대한 주석일지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윤주윤은 두 영화에 동일한 스윙 댄서가 출연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작가는 표면적 사실을 설명할 뿐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문정우는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길광용의 전 아내이자 ‘그들에게 린다합을’의 공동 연출자로 오른 허지민이 참석한다. 허지민은 길광용이 죽기 전 자신에게 필름과 콘티를 주면서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영화를 완성해 달라 부탁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창작자는 길광용일까 문정우일까.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댄스, 댄스, 댄스’의 모호한 결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댄스홀에 들어온 남녀가 서로를 바라본다. 여자가 남자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고 춤을 추려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책에 실린 9개의 단편 중 작가의 세계가 가장 압축적으로 제시된 작품이다. 여기에는 불가해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한 소설가의 근원적 고민이 담겨 있다. ‘린디합’이라는 스윙 댄스에 대한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보르헤스 풍의 단편에는 가짜 인터뷰와 주석, 기사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심지어 길광용을 인터뷰하는 ‘손보미’라는 소설가가 등장하고, 정성일 평론가를 연상시키는 성일정의 글이 제시된다. 거짓과 진실, 허구와 현실이 교차할 때 독자는 소설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필연적으로 되묻게 된다. 작가는 결정적 순간 진술을 중단함으로써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댄스, 댄스, 댄스’의 남녀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독자는 끝내 알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성일정과 ‘손보미’와 화자의 글을 통해 대상을 해석하고, 인터뷰하고, 다시 쓴다.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인 ‘애드벌룬’이 첫 단편 ‘담요’를 다시 쓴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작가는 “이 두 소설은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간 동일 인물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쓰고, 또 쓰고, 그것을 읽는 행위를 통해서야 우리는 심연 같은 우주를 가까스로 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2009년 등단(계간 21세기문학)해 지난해 ‘과학자의 사랑’으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무게’서 꼽추 열연한 조재현 몬트리올 영화제 남우주연상

    ‘무게’서 꼽추 열연한 조재현 몬트리올 영화제 남우주연상

    배우 조재현(48)이 영화 ‘무게’로 제17회 몬트리올 판타스틱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제작사 트리필름이 12일 밝혔다. ‘정씨의 슬픈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무게’에서 조재현은 ‘꼽추 정씨’ 역을 맡았다. ‘댄스 타운’ 등 ‘타운 3부작’으로 알려진 전규환 감독의 작품이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예뻐 보이는 데 관심 없네요… 자기 일 멋지게 해내면 그만”

    “예뻐 보이는 데 관심 없네요… 자기 일 멋지게 해내면 그만”

    예쁜 모습은 아니었다. 배우 문정희(37)는 지난 9일 트위터에 자신의 발 사진을 찍어 올렸다. 영화 ‘숨바꼭질’(14일 개봉) 촬영 중 빠졌다는 발톱 자리에 검푸른 멍 자국이 여전했다. 그날 서울 중구 회현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액션 장면이 많았지만 발톱 몇 개 뽑힌 것 말고는 무난한 편이었다”며 담담했다. 뼈라도 부러지길 각오했던 듯한 배우의 근성이 느껴졌다. 문정희가 주희 역을 맡은 ‘숨바꼭질’은 스릴러 영화다. 남부러울 것 없이 중산층으로 살아가던 성수(손현주)는 어느 날 형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는다. 형이 머물던 어느 항구도시의 다세대 아파트에는 주희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형의 행방을 찾는 성수 가족에게 차를 대접하게 된 주희는 성수의 형이 누구인지를 듣자 “당장 이 집에서 꺼지라”고 악을 쓴다. 주희를 비롯한 이웃들이 형에 대해 입을 닫으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주희는 영화의 전반과 후반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관객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치안이 위험한 동네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주희는 집도, 먹을 것도 없는, 삶의 조건이 제대로 갖춰진 게 없는 인물이에요. 사회적으로도 배제돼 있고요. 그래서 삐뚤어진 구석이 있어요. 속으로는 모두 꼬여 있고, 여러 가지가 감추어진 인물이죠. 집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말도 더듬고, 다른 사람과 눈도 못 마주치고, 움직임도 산만해요.” 주희는 강박증적인 인물이다. 내면은 불안하고 외부에는 배타적이다. 후반부에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문정희는 “여자 배우들은 보통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여자로 나올 뿐 이런 성격을 가진 역할은 거의 없다. 매우 드문 캐릭터라 욕심이 났다”고 했다. “후반의 변화를 설명하려면 전반에 공을 들이는 게 맞을 것 같았어요. 이 여자의 전사(前史)를 세밀하게 보여 주려고 했죠. 얼굴이나 행색이 사람의 과거를 보여 주잖아요. 주희는 눈도 항상 찌그려 뜨고 어딘가 비대칭이죠. 그래서 눈썹도 마구잡이로 길렀고, 기미나 주근깨도 내버려 뒀어요. 내 안에도 어두운 면이 있을 텐데 그걸 극대화하려고 했죠.” 그는 설정상 항구도시에 머물고 있는 주희를 준비하기 위해 어렸을 적 살았던 인천의 부두를 여러 번 찾았다. 주희의 남루한 옷차림이나 어두운 표정은 그렇게 완성됐다. 그는 논리적으로 인물을 쌓아 올리지 못하면 연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감정에 빠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성적 판단이 먼저다. “객관적으로 보면 감정에 완전히 빠져서 할 때보다 살짝 아쉬운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더 좋은 경우가 많아요. 물론 이번에도 몰입해서 할 때는 감독님이 ‘아 또 도셨네요’ 하면서 웃었죠. 어떤 때는 100만큼 빠져야 하지만 어떤 때는 10만큼만 해야 돼요. 카메라의 움직임이라든가 현장에서 고려할 게 수만 가지는 되니까요. 저도 학교에서 스타니슬랍스키나 메소드 연기 같은 걸 배웠지만 옛날 얘기죠. 지금 그렇게 하면 아마 대빵 촌스러울 거예요.” ‘숨바꼭질’이라는 영화 제목과 달리 문정희는 숨기는 게 없었다. “시나리오와 영화가 달라 아쉬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편집상 주희의 중요 장면이 생략돼 아쉽다는 말도 했다. “예쁘게 보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 역시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류현진과 박지성이 언제부터 모든 여자들의 연인이 됐느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을 멋지게 해낼 때가 가장 멋지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예쁜 역할요? 그건 다음에 할게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새 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

    [새 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

    “속보입니다. 소행성 마틸다를 폭파하려던 우주 왕복선이 목표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마틸다와 지구의 충돌까지는 정확히 21일이 남았습니다. 반복합니다. 소행성 마틸….” ‘세상의 끝까지 21일’(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은 이런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한다. 인류는 피할 수 없는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상은 크게 달라지기도 하고 변함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차를 몰아 직장에 출근한다. 도지(스티브 카렐)는 후자에 가깝다. 그는 다소 무기력하게 종말을 기다리는 중년의 보험회사 직원이다. 도지의 삶이 달라지는 건 우연히 쾌활하고 낙천적인 페니(키이라 나이틀리)를 만나면서부터다. 3년 만에 이웃에 사는 페니와 말을 트게 된 도지는 그동안 페니의 집으로 잘못 배달됐던 편지들을 건네받는다. 꾸러미 안에는 도지의 첫사랑이 보낸 편지 한 통이 숨어 있다. 역시 종말을 앞둔 편지의 주인은 “당신이야말로 내 삶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뒤늦은 고백을 전한다. 때마침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가까스로 탈출한 도지와 페니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떠난다. 종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아마겟돈’이나 ‘멜랑콜리아’ 같은 작품과는 다른 밝은 성격의 로드무비다. 도지는 옛 여자 친구, 페니는 영국에 있는 가족에게 향한다. 이 과정에서 판이한 두 남녀가 티격태격 사랑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우연과 사건이 지나치게 남발된다는 점이다. 이들의 여정이 급작스러운 우회와 중단을 반복하면서 이야기는 목적지를 잃고 산으로 간다. 도지의 첫사랑도 페니의 가족도 이들의 관계를 엮기 위한 가벼운 영화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두 사람에게 이입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지고 결국에는 미국 남자와 영국 여자의 사랑이라는 진부한 클리셰만 남는다. 종말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에는 버킷리스트에 대한 비유가 자주 등장한다. 도지의 친구들은 생애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급 시가를 연신 피워 대고 매일 밤 다른 상대와 잠자리를 갖는다. “종말 덕에 훨씬 살기 좋아졌다”는 농담 섞인 대사를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지구에 종말이 찾아왔을 때 이 영화를 버킷리스트에 올려 두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 같다. 102분.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흥행 부진한 스타 다독이는 팬… 호텔방 몰카 찍어 괴롭히는 광팬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흥행 부진한 스타 다독이는 팬… 호텔방 몰카 찍어 괴롭히는 광팬

    ‘팬은 스타를 닮아간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요즘 입을 모으는 말이다. 스타의 성향에 따라 팬덤의 성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가수나 배우 등 장르에 따라 팬덤의 활동 영역도 다르다. ‘스마트 팬덤’으로 팬들의 정보교류가 빨라지고 욕구도 그만큼 더 다양해졌다. 연예기획사에서는 팬들만 관리하는 팬매니저나 팬 관리 부서를 따로 두고 이들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처한다. 빅뱅, 2NE1 등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을 둔 YG 소속 가수들의 공연장에 가면 유독 예술적 성향이 강한 팬들이 몰려든다. YG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나이대는 10대부터 다양하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예술적 성향이 짙은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이고 자유분방한 팬들은 스타의 위기 앞에서는 한마음으로 뭉친다. 2011년 빅뱅은 대성의 교통사고로 중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빅뱅의 팬들은 똘똘 뭉쳐 이들이 MTV 유럽뮤직어워드에서 한국 최초로 수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황민희 YG 과장은 “당시 전 세계의 팬들이 합심해 네티즌 투표에 참여했고, 빅뱅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북미 대표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수상으로 멤버들은 컴백에 큰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스타와 팬덤은 함께 성숙해 가는 공생 관계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사회 공헌의 의미를 배워 나간다. 대부분의 기부나 봉사활동은 스타들의 권유나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10~20대 팬층이 두꺼운 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대표적이다. 윤두준이 ‘일밤-단비’에서 아프리카에 우물을 지어주는 봉사 활동에 참여하자 그의 팬들은 이후에도 꾸준히 아프리카 봉사 활동에 나섰고, 양요섭은 평소 팀 내에서도 소아암 어린이 돕기 활동에 앞장서 ‘개념 아이돌’로 불린다. 특히 양요섭은 최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팔찌를 차고 나왔고 한순간에 팔찌를 구입하려는 팬들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빅뱅의 멤버인 태양과 지드래곤은 자신들의 생일을 앞두고 SNS에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 대신 좋은 일에 써달라”며 사회 기부를 독려하기도 한다. 팬덤은 젊은 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돌 가수나 배우의 경우 20~40대 팬들이 폭넓게 포진해 있고 이들의 세심한 활동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상당한 주부 팬까지 확보한 이들은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더욱 세심하고 적극적인 팬덤으로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다. 가수 김범수는 콘서트를 앞두고 ‘겟 올라잇 서포터즈’를 모집했는데 10명 정원에 수백명이 몰려들었다. 30~40대 누님 팬들이 몰렸고 이들은 직접 SNS를 배워 김범수의 공연 소식 등을 리트위트하는 열성을 보였다. 재력을 갖춘 50~60대 팬덤도 영향력이 크다. 한 대형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를 수십장 사서 직원들에게 돌리는 사장님이나 판매가 부진한 시야 장애석을 단체 구입해 직원들의 문화 체험 기회로 삼아 일석이조를 노리는 기업 회장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배우들의 팬덤은 작품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수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세 과시보다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려는 실속형 팬들이 많다. 영화배우들의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의 영화가 개봉되면 첫주에 관객수를 올려주기 위해 영화관을 통째로빌려 작품을 관람하는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배우의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거나 스타의 공백기가 길어질 때도 팬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준기의 팬들은 그의 군 제대 후 컴백작 ‘아랑사또전’이 예상보다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는데도 달동네에 연탄나르기 봉사활동을 함께 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했다. 비의 팬클럽은 그의 입대 중에도 데뷔일에 맞춰 언론사에 떡을 돌렸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팬덤은 친언니나 가족처럼 다정다감한 것이 특징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국내활동 공백기에도 온라인 중심으로 활동하며 원더걸스 멤버들을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배우에게만 팬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상어’의 경우 이례적으로 연출자인 박찬홍 감독의 팬클럽이 움직였다. 이들은 박 감독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단체 티셔츠와 도시락, 음료 등을 들고 촬영 현장을 찾았다. 박 감독의 전작 ‘부활’ ‘마왕’을 거치며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팬들이다. 이들은 촬영장 주변과 화장실 청소까지 도맡았다. 드라마 관계자는 “감독의 작품을 변함없이 응원하는 팬들이 있어 정말 고맙고 힘이 났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날엔 피로가 싹 풀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똑해진 팬덤에는 그늘도 있다. 팬덤이 진화한 만큼 부정적 파급력도 커졌다. 팬덤 내부에서도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보다는 스타에 대한 맹목적 애정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 스타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배우 A의 팬들이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에 대한 비방글을 올려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한 아이돌 그룹이 해외에서 불성실한 인터뷰로 논란이 되자 한 극성팬이 “온라인에서 이 그룹에 대한 자살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허위 글을 올려 동정론을 이끌어 내려 했던 것도 단적인 예다. 팬덤 간의 소모적인 싸움도 반복된다. 다양한 아이돌 그룹이 동시에 출연하는 대형 콘서트의 경우 좌석 경쟁 때문에 상호 비방전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행사 뒤에는 트위터 등 온라인을 통해 “B그룹의 팬들이 C그룹의 팬을 무차별 폭행했다더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기도 한다. 한 아이돌 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어떤 작품이 물망에 올랐더라도 회사 내부적인 스케줄에 따라 출연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로 전화를 걸어 경쟁 팀과 비교하면서 출연 여부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막무가내형 팬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터넷상에서 비대해진 팬덤의 영향력 행사로 시장이 왜곡될 우려도 있다. Mnet 아시아 뮤직 어워드, 서울 드라마 어워즈 같은 시상식의 투표 참여 등에 특정 팬덤의 조작 논란이 반복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 선정 기준에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포함되면서 논란은 점차 가열되고 있다. 해외의 팬덤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저작권 침해다. 자체 자막 제작을 통한 드라마 공유에만 열을 내면서 저작권이나 공식 수입 자료 등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태국에서 유통 중인 국산 콘텐츠 가운데 음악과 영화의 불법 콘텐츠 비율은 9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 남성 배우의 소속사 대표는 “해외에서 상대배우 매니저나 보조 출연자로 둔갑해 나타나기도 하고 호텔에 수술용 내시경을 몰래 카메라로 넣는 사생팬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및 일본 팬들 등 사생팬들도 비슷한 양상으로 변해가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한류 이끄는 글로벌 팬덤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한류 이끄는 글로벌 팬덤

    팬덤의 진화는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한 글로벌 팬덤은 한류의 저변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 가수가 자국을 찾고 드라마가 공식 수입되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자발적으로 한국 문화를 생산, 공유하고 확산시킨다. 2011년 프랑스의 한국 문화 동호회 ‘코리안 커넥션’이 온라인 서명 운동과 플래시몹 등을 통해 SM타운 콘서트의 연장 공연을 성사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글로벌 팬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곳 중 하나는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유튜브를 통해 유통된다. K팝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춤을 따라하는 커버 댄스(cover dance) 동영상을 찍어 올리며 팬덤을 확장한다. 이 같은 팬덤이 음반 기획사들을 움직인 덕분에 상대적으로 한국 가수의 진출이 적었던 유럽과 남미 등에서도 잇따라 공연이 열릴 수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는 ‘팬섭’(fan subtitling)이라 불리는 팬들의 자막 제작을 통해 전파된다. 중국의 한국 드라마 마니아를 뜻하는 ‘한쥐미’(韓劇迷)는 한국 드라마를 가장 먼저 수용하고 확산시키는 집단이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한쥐미를 연구한 이경숙 고려사이버대 미디어홍보영상학과 교수는 논문을 통해 “피라미드 구조의 최상위층에 위치한 자막 생산 집단을 통해 한국 드라마가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전파된다”면서 “다른 드라마나 배우 커뮤니티와의 수평적 연결을 통해 한쥐미들은 한국 드라마와 스타의 팬덤을 더욱 공고히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드라마 팬덤이 커지면서 장나라나 추자현처럼 한국보다 중국 활동에 집중하는 배우도 생겨났다. 해외 팬들 역시 국내 팬덤과 마찬가지로 언론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배우 이준기와 그룹 카라 등의 일본 팬클럽 홈페이지는 TV와 전국의 라디오 방송국에 이들의 노래를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코리안 커넥션이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주류 매체에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것도 비슷한 예다. 글로벌 팬덤의 영향으로 해외 수출도 늘어났다. 지난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2 해외콘텐츠시장 동향조사’에 따르면 음악산업은 2010년 7703만 달러에서 2011년 1억 7601만 달러로, 방송산업은 같은 기간 7754만 달러에서 1억 3037만 달러로 각각 43.7%와 59.4% 수출이 증가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페트병 배’로 1만 6000㎞ 바닷길 왜 나섰나

    ‘페트병 배’로 1만 6000㎞ 바닷길 왜 나섰나

    2010년 3월 20일, 플라스틱 페트병 1만 2500개로 만든 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출발한다. ‘플라스티키’라 불리는 이 배의 목적지는 호주 시드니.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드니까지의 거리는 약 1만 6000㎞, 배의 속력은 시속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속 2노트다. 이 무모해 보이는 항해의 목적은 뭘까. 게다가 배의 주인은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막내아들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다. 플라스티키의 항해를 따라가기 전에 우선 그의 특이한 이력을 살펴보자. 1978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10대를 말 위에서 보낸 승마 선수였다. “삶에는 말 위에서의 시간보다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대학에 진학해 정치학을 공부한다. 스무살에는 음악에 관련된 사업에 손을 대고, 스물세살에는 뉴질랜드 유기농 농장을 매입한다. 그러다 2006년 우연히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극지방 탐험에 동행한다. 탐험가의 삶에 매혹된 그는 환경단체 ‘어드벤처 에콜로지’를 설립하고 환경운동가가 된다. 가끔 캐머런 디아즈 같은 유명 배우와 염문설을 뿌리기도 하면서. 로스차일드가 플라스티키를 구상하게 된 것은 바다 위 플라스틱 폐기물이 1㎢당 1만 7800개에 달한다는 유엔의 보고서를 읽으면서부터다.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통이 됐다. 북태평양 환류에 쌓인 쓰레기 더미는 미국 텍사스 주의 2배에 이른다. ‘플라스틱트로스’는 이런 환경오염의 결과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고 위장과 식도가 막혀 죽는 앨버트로스 새끼가 매년 전체의 30~40%로 추정된다.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는 플라스틱은 체내에서 호르몬 이상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플라스틱에게는 죄가 없다”는 말처럼 로스차일드는 플라스틱 폐기론 같은 극단적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이들이 플라스티키를 통해 증명하려는 것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함으로써 환경오염을 줄이고 산업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레텍스라는 재생 가능한 플라스틱 물질을 만들고, 강화된 탄산 음료수병을 이용해 배를 건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완벽한 배가 아닌 만큼 여정은 쉽지 않다.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조롱도 받는다. 그러나 여섯 명의 선원을 실은 배는 마침내 7개월의 항해를 끝내고 시드니에 닿는다. 로스차일드는 플라스티키의 건조와 항해 과정, 선원들의 사연과 환경문제 등을 다양한 사진과 함께 풀어낸다. 수조원대의 자산가에 환경보호도 실천하는 ‘개념남’이지만 너무 질투할 필요는 없다. 신이 그에게 글솜씨까지 주지는 않았으니까.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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