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신뢰 회복 “부실 대청소”
정부가 30일 은행과 투신·증권사의 부실규모 공개를 통해 시장 신뢰회복에나섰다. 원래 부실은 금융기관의 ‘치부’여서 감추는 것이 생리이다.그러나과감하게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시장의 투명성을 회복하고 투자자의 불신을 걷어내자는 것이다.
◆금융권 구조조정 가속화한다/ 이번 발표를 계기로 그동안 후퇴한 것으로 지적된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이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우선 정부는 이번에 나온 잠재손실을 반영한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을 8월 초순까지 받을 예정이다.이 비율이 8%에 미달하는 은행은 자구계획을 8월20일까지 제출하도록 해 계획의 타당성이 없을 경우 공적자금을투입,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통합한다는 방침이다.각 은행들로서는 앞으로 부실채권 정리 등 자체 경영개선을 강도높게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업 구조조정도 영향받는다 / 그동안 정부는 대우계열사,워크아웃 기업,법정관리·화의업체 등에 대해서는 자산건전성 분류(FLC) 및 이에 따른 충당금적립기준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그러나 앞으로는 이를 엄격히 적용,이들 기업에 대해서도 5단계(정상∼추정손실)건전성 분류 및 충당금 적립기준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들로서는 스스로 살릴 기업과 퇴출시킬 기업을 구분해 여신을줄 수 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쉽게 말해 신용등급이 ‘요주의’이던 기업이 ‘회수의문’등으로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그만큼 거래은행 입장으로서는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해 보수적 여신운용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량 금융기관은 투자자가 외면한다/ 우량은행과 비우량 은행의 격차가 가시화되면서 고객들의 예금인출 사태 등 자연스러운 시장재편이 예상된다.투신운용사도 마찬가지다.상품의 수익률에 따라 펀드매니저 교체와 회사간 자금이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펀드 수익률이 낮게 나오는 투신운용사의 경영진 교체 등도 예상된다.
◆고객피해는 없다/ 고객들로서는 신탁재산이 클린화됨으로써 피해를 보지 않는다.그러나 신탁재산의 부실을 투자신탁 운용사와 판매사인 증권사들이 떠안는 과정에서 손실 부담기준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문제점/ 투신운용사와 판매사의 신탁재산 클린화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면서도 정부가 대우담보 CP로 인한 손실 20% 가운데 10% 정도를 7월 중으로장기저리 자금으로 지원키로 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은행별 自救계획.
은행권은 상반기에 충당금을 상당액 쌓은데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추가충당금적립시한을 9월말까지로 유예해줘 자구계획을 발표하면서도 다소 느긋했다.
다만 예상보다 잠재부실이 많이 나온 한빛,서울,외환,한미은행 등은 자구계획의 강도를 한층 높일 방침이다.
가장 비상이 걸린 곳은 무려 1조7,000억원의 추가부실이 발생한 한빛은행.
기업구조조정기구(CRV)를 통해 워크아웃 채권을 1조2,000억원 회수하는 등연말까지 5조6,798억원을 털어낼 계획이다.지난 80년대말 스칸디나비아 금융권을 위기에서 구해준 ‘자본증권’(만기가 없는 영구 후순위채로 일반 후순위채보다 금리가 더 높다)을 7,000억∼8,000억원어치 발행할 계획이라지만자본증권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는 금융자산이다.금감위가은행감독규정 개정을 검토중이다.
추가충당금 규모가 한빛 다음으로 많은 서울은행은 올해 유상증자를 실시해자본금을 확충한 후 내년 1·4분기중 3억달러 규모의 GDR(해외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할 방침이다.하지만 이는 대주주(재경부,예금보험공사) 유상증자를전제하고 있어 공적자금을 더 달라는 얘기나 진배없다.
외환은행은 지난 28일 외화 후순위채 2억달러어치를 발행한데 이어 29일에는 체이스맨하탄은행에 해외부실채권 2억7,000만달러어치를 매각했다.
7,000억원 규모의 국내부실채권을 9월까지 추가 매각할 예정이다.당초 예상보다 추가 충당금액이 늘어난 한미은행은 ‘카알라일컨소시엄’과의 5,000억원 DR 발행 추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신한·주택·조흥·제일 등 4개 은행은 추가충당금 적립액이 ‘0원’을 기록해 다른 은행들의 부러움을 샀다.이들 은행은 지난해말까지 부실여신을 대거 털거나 충당금을 기준치 이상으로 쌓아둬 ‘0원’을 기록할 수 있었다.특히 신한은행은 추가부실이 오히려 마너스 408억원으로 드러나 ‘우량은행’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국민·하나·수출입·산업은행 등은 추가손실을 처리하더라도 당기순이익흑자가 예상돼 부실여신 정리외에 특별한 자기자본 확충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지방은행 가운데 추가부실이 가장 많은 광주은행은 금융지주회사로의 편입을밝혀 눈길을 끌었다.
안미현기자 hyun@.
*주식시장 반응.
주식시장은 은행·투신의 잠재부실 공개에 일단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부실 규모가 당초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투자자들을 안도케했다.
30일 거래소시장에서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에 힘입어 은행·증권·보험·종금 등 금융주들이 일제히 강세를 탔다.증권주는전날보다 무려 5.0%나 올랐다.은행과 보험주도 각각 2.45%와 1.82%의 상승률을 기록했다.종금은 0.02% 오르는데 그쳐 금융주 가운데 상승률이 가장 낮았다.특히 최근들어 주가변동폭이 두드러지고 있는 한빛은행은 거래량이 1억1,866만주에 달해 단일종목으로 사상 처음 1억주를 넘어섰다.
LG투자증권 황창중(黃昌重) 투자전략팀장은 “금융권 부실에 따른 후유증이 이미 증시에 반영된데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부실 규모가 당초 예상치를빗나가지 않았다”며 “이번 발표로 일단 금융권 부실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해소된 만큼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권의 부실규모가 공개됐는데도 종합주가지수가 보합세를 보이자 투자자들이 아직 정확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일었다.
이를 두고 부실 규모가 정확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시장 나름대로의 확인작업이 진행중이라는 해석이 나왔다.다른 쪽에서는 부실 규모가 예측 범위를벗어나지 않으면서 재료로서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박건승기자 ksp@.
*어느 투신사에 돈 맡길까.
어느 투신(운용)사에 돈을 맡기는 것이 유리할까.
30일 투신사의 부실펀드 내역이 공개된 가운데 부실자산을 상각(償却)한이후의 펀드 수익률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6일 현재 부실자산을 상각한 투신사의 펀드별 평균 수익률은 시가평가 펀드의 경우 채권형 8.03%,혼합주식형 7.72%,혼합채권형 6.37% 등이었으며 장부가 펀드는 채권형이 7.94%,혼합주식형이 5.23%,혼합채권형이 6.10%등의 순이었다.
채권형 펀드가 주식형 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것은 상반기 주식시장의침체로 주식 편입비중이 적은 채권형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풀이된다.또 시가평가 펀드가 장부가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은 것은 시가평가 펀드의 경우 최근에 생겨나 상대적으로 부실규모가 적은데다 높은 금리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펀드의 경우 개별 투신사의 운용 능력에 따라수익률에 차이를 보였다.
장부가 펀드의 경우 대신투신운용의 혼합주식형이 12.11%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나타냈으며 한빛투신운용의 혼합채권형(11.62%),조흥투신운용의 채권형(10.41%),국은투신운용의 채권형(10.20%) 등의 순이었다.시가평가 펀드 중에는서울투신운용의 혼합주식형이 12.73%로 가장 높았고 이어 대한투신의 채권형(12.61%)·혼합주식형(10.40%),한빛투신(10.31%),교보투신 채권형 (10.10%) 순이었다.
조현석기자 hyun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