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박철
    2025-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90
  • 민자내분 수습국면/노 청와대비서실장,어제밤 상도동 방문

    ◎11일께 노대통령­김영삼회동/김최고위원 “개혁ㆍ당풍쇄신 폭넓게 논의”「김영삼대표 단일체제」 의견접근 양계파 접촉 노태우대통령과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은 11일 또는 12일중 청와대에서 회동,김최고위원의 지난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으로 표면화된 계파간 갈등해소방안을 논의한다.〈관련기사3면〉 노­김회동은 8일 저녁 상도동 자택으로 김최고위원을 방문한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의 1시간50분간에 걸친 면담끝에 결정됐다. 민정­민주계 핵심인사의 잇단 막후절충에 이어 노­김회동이 마련됨으로써 내분으로 치닫던 민자당내 갈등은 수습국면으로 접어든 셈이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김우석비서실장을 통해 『지난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에 불참한 것은 4ㆍ3보선의 결과에 대한 반성과 함께 우리당이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노대통령을 만나 개혁을 통한 안정 및 안정속의 개혁이라는 통합정신을 구현하는 문제와 당풍쇄신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최고위원은 또 『김종필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과도 만나 충분한 의견교환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최고위원은 자신의 당직자회의 불참이 당권경쟁등과 관련된 내분으로 비쳐지고 있는 데 대해서는 당혹과 함께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민정ㆍ민주 양계파는 7일 상ㆍ하오와 8일 이견해소를 위한 접촉을 통해 김최고위원을 사실상 단일지도체제의 대표위원으로 선출한다는 데 대해 의견접근을 봤다. 민정계측과 절충작업을 벌인 민주계의 한 고위 소식통은 8일 『김최고위원을 대리하는 측근과 민정계최고위층간에 청와대당직자회의직후 이루어진 청와대면담을 계기로 7일 하오부터 양계파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고 밝히고 『사태발생의 한 원인이었던 방소성과를 둘러싼 이견부분에 대해서도 민정계측이 진의를 해명하는 유감표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최고위원이 민자당을 이끌어 나가기로한 당초의 약속은 통합자체를 성사시킨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이문제와 관련한 민정계의 확인도 최근의 절충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발혔다. 이에따라 민자당은 9일 당무회의를 열어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박준병사무총장을 준비위원장에 임명하는 한편 ▲당헌ㆍ당규 개정소위 ▲정강정책 개정소위 ▲행사준비소위를 준비위원회내에 설치할 예정이다. 이와관련,민정계측의 고위 소식통은 『김최고위원측의 방소성과 홍보과정 및 민주계의 이의제기 방법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융화와 결속이 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전제하고 『당헌개정과정에서 민주계의 요구를 수용,당의 단합된 모습을 갖추는 것이 국내외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길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박철언정무1장관의 당무 간여폭이 현재보다 다소 축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장관의 위상변화 내지는 2선후퇴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당주도권 겨냥,의도적인 불만표시/김영삼위원 청와대회의 불참 안팎

    ◎불편한 관계의 박정무 제압 모색/자파동요 방지,입지강화의 선수 김영삼최고위원의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으로 민자당내 민정-민주계 갈등이 표면화됐다. 청와대회의가 갖는 의전성격상 김최고위원의 고의적인 불참은 노태우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불만표시로 해석되고 있다. 청와대측이 6일 저녁 다양한 채널을 통해 김최고위원의 불참의사를 돌이켜보려고 했음에도 김최고위원이 이를 묵살한 점을 고려할때 이날 불참은 불참이후의 파장과 대책까지를 준비한 계산된 행동으로 보여진다. 김최고위원의 상도동캠프는 불참의 이유에 대해 이미 6일의 당직자회의에서 보선패배에 대한 대책협의가 있었고 청와대회의라고 해서 다 참석해야 하는 법은 없지 않느냐는 말로 핵심을 건너뛰고 있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회의 불참의 배경이 그동안 당운영에서 누적돼온 민주계의 불만의 표시이자 당권장악을 위한 분위기조성용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최고위원의 청와대의 불참은 단기적으로는 방소기간중과 당운영과정에서 계속해 자신을 견제해온 박철언정무1장관의 「거세」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인 목적은 민자당의 당권장악에 있고 박장관 거세요구도 당권장악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말하자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박장관과의 불편해소를 명분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목표는 당지도체제 개편을 통한 김최고위원의 당장악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민주계가 7일 김동영총무를 통해 『조직책인선등을 뒤로 미루고 지도체제에 대한 문제부터 풀어갈 것』이라면서 오는 12일의 당무회의에서 이를 공식거론하겠다고 밝힌 점은 이번 사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 민정계에 대한 공세외에도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은 진천ㆍ대구보선 패배를 통해 거의 한계선상에 달한 민주계의원들의 위기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양지역 보선에서 드러난 가칭 민주당의 대약진에 민주계의원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고려,김최고위원이 선수로 민주계의원들에 대한 지도력손상 방지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김최고위원은 합당이후 노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대 민자당 절대우위가 계속되는한 자신의 미래입지가 극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박철언정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민정계의 대 민주계 우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민주계의원들의 불만인 「14대총선에서의 고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왔다. 이같은 위기의식 위에서 김최고위원은 일종의 「동반자살」을 배수진으로 치고 노대통령에게 자신에 대한 확실한 입지보장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최고위원이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보장이 행정부와 당간의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정부를 노대통령이 맡고 자신이 당을 맡아야 한다는 것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노대통령을 포함한 민정계가 김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김최고위원에 대한 무마책을 최소한 김최고위원의 부산지구당 개편대회날인 10일 이전에 발표하지 않겠느냐 하는 관측이 유력한 상태다. 노대통령과 김최고위원간의 공개된 불화가 이날까지도 적정선에서 해소되지 않을 경우 지구당 개편대회 연설이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보다 악화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최고위원측은 청와대회의 불참과 함께 즉시 개편대회 다음날인 11일 아침 부산에서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음을 공표,간접적으로 이날안에 납득할 만한 수습책을 노대통령이 제시할 것을 요구해 왔다. 민정계의 고민은 김최고위원의 행동을 방치할 수도 없는 데다 그렇다고 김최고위원의 불만을 풀어줄 묘책발견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민정계가 김최고위원의 불만표시를 방치할 경우 김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등의 극단적 자해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통합의 정치적 이득이 이경우 일시에 없어지는 만큼 민정계로서는 방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박장관을 2선으로 돌리는 것 역시 김최고위원의 궁극목표가 당권장악에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민정계의 약세만 노출하는 형국이 돼 선뜻 내주기 어려운 카드다. 결국 김최고위원의 불만표출과 이에대한 민정계의 대응은 여론이 요구하는 선에서 접점을 찾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로가 속마음을 노출하지 않고 「명분」만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내분이자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김영만기자〉 ◎「토요일의 반기」 대책찾기 부심/청와대 구체적 언급없이 당내분파주의 지적/민주계 측근들과 밀담… “뭔가 행동이 나올것”/민정계 보선책임 떠넘긴 타계보에 강한 불만 민자당 김영삼최고위원의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으로 그동안 내연해 오던 김최고위원과 박철언정무1장관간의 갈등,민정계와 민주계의 불협화음이 표면화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토요일 반기」를 둘러싼 이상기류가 확산되는 가운데 청와대와 민자당내 민정계와 민주계는 나름대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7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노태우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민자당 당직자회의는 김최고위원의 불참에 관한 청와대 참모들의 노대통령에 대한 사전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대한 거론은 없이 대구 서갑 및 진천ㆍ음성보궐선거의 「패배」에 따른 사후수습책과 조직책선정,임시국회대책 등에 대해서만 논의. 상오 8시부터 조찬을 겸해 약 1시간가량 계속된 이날 회의에서 노대통령은 김최고위원의 불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김최고위원은 연세에 비해 건강이 매우 좋은 것 같다』고 말하고 『소련에서도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않으면서도 매일 조깅을 했다고 하니 건강이 탁월하다』고 말해 김최고위원이 이날 아침 당직자회의에는 참석치 않으면서 조깅을 했다는 사실을 꼬집은 느낌. 노대통령은 또 이번 보선에서의 패배와 관련,『누가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의 부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책임의 일단을 자신에게 돌리면서도 김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주계측이 이번 보선의 책임을 전적으로 민정계에 돌리고 있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 한편 이날 회의말미에 노대통령은 김종필최고위원에게 『할 얘기가 있으면 해보라』고 권유했으나 김최고위원은 『별다른 얘기가 없다』고 사양했으며 김영삼최고위원의 불참에도 불구,회의분위기는 여느 회의와 마찬가지로 진지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전언. ○…김영삼최고위원이 7일의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을 통보한 것은 6일 하오 2시쯤. 김최고위원은 불참의 구체적인 배경설명없이 『내일 그시간(상오10시)에 약속이 있어 참석 못하겠다』고만 측근을 통해 청와대에 통보. 청와대측은 김최고위원의 낌새가 이상하다 싶어 곧바로 회의시간을 상오 10시에서 8시 조찬으로 변경,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이 김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인 김우석의원에게 재차 참석을 요청. 김의원으로부터 이를 전해들은 김최고위원은 『한번 안간다고 했으면 그뿐이지 무슨 말이 많느냐』며 짜증. 이에 청와대측은 김최고위원의 완고한 불참의사가 단순한 불참이 아님을 알고 대책마련에 동분서주. 청와대는 김최고위원이 6일 저녁 만찬을 겸해 방소단 해단식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박준병사무총장과 김최고위원의 「직계」인 김동영원내총무를 보내 회의참석을 간곡히 요청했으나 김최고위원은 『나를 떠메고 간다면 모르되 내발로 걸어서는 갈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해 2차설득에도 실패. ○…7일 청와대회의에 불참한 김영삼최고위원은 상도동자택에서 오전시간을 보내며 김동영총무,황명수 박용만 김동규 박관용 서청원의원 등과 만나 당운영과 관련한 향후 대응책을 논의. 김최고위원은 특히 이날 청와대 당직자회의 참석후 상도동자택을 찾은 김총무와 2시간10분간에 걸쳐 독대하며 청와대의 분위기에 대한 보고를 받고 민주계의 입지강화방안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청와대회의 참석거부이유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할 얘기는 어제 다했고 오늘은 말을 듣기만 했다』며 일체의 답변을 거부 이날 김최고위원을 만나기전 박철언정무1장관이 퇴진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박용만행정위원장은 면담을 마치고 나와 『생각한 그대로』라면서 『앞으로 뭔가 행동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여 계파간 갈등의 파장이 확대될 것임을 예고. ○…이날 청와대 당직자회의가 끝난뒤 박철언정무1장관ㆍ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등과 별도의 대책회의를 약 1시간가량 갖고 당사로 돌아온 박준병사무총장은 김동주사무1부총장ㆍ조부영사무2부총장과 강재섭기조실장 등을 총장실로 불러 『나는 다음주부터 당무에서 손을 뗄테니 부총장들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지시,보궐선거 과정에서 함께 참여하고도 민정계 쪽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타계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 ○…청와대는 노재봉비서실장과 최창윤정무수석비서관을 중심으로 김최고위원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기 위한 방책을 궁리하고 있으나 당장 묘방이 없어 곤혹. 김최고위원이 표면상으로는 보선패배를 계기로 당의 자세를 문제삼아 회의에 불참했으나 실은 최근 방소를 전후로 한 박철언정무1장관의 행태와 여권내부 역학관계에 있어 박장관의 「무소불위」에 대한 제동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뾰족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 청와대주변에선 YS가 오는 10일 자신의 부산서구 지구당개편대회에서 한번 더 「정치적 태클」을 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안달하고 있는데 결국 노대통령과 YS의 독대로 문제의 판가름이 나지 않겠느냐고 추측. 그러나 최정무수석은 『노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이 별도로 만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대통령께서 대단한 포용력과 함께 융화력을 갖고있으므로 잘 풀어나갈 것』이라고 부언.〈이경형ㆍ김교준기자〉
  • 민자 계파갈등 노출/김영삼위원,청와대 보선대책회의 불참

    ◎“책임전가 말고 당융화 수범” 노대통령/김최고위원 11일 부산회견에 관심집중/전당대회뒤 당내역학관계 재정립 될듯 민자당이 4ㆍ3보궐선거에서 「사실상의 패배」를 계기로 각 계파간의 내부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보궐선거의 결과가 민자당의 교만과 개혁의지의 후퇴,농정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한 김영삼최고위원이 7일 상오 노태우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 당직자회의에 의도적으로 불참함으로써 지난 2월9일 3당통합이후 내연되어 오던 민자당의 내분이 불과 2개월도 안된 시점에서 표면화됐다.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은 민자당운영및 금융실명제 유보등 주요정책 결정에 대한 불만과 함께 박철언정무1장관이 당운영 및 여권 내부 의사결정에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민주계의 반발에 따른 것으로 해석돼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의 불참은 또 박장관의 독주를 허용하고 있는 노대통령에 대한 간접적인 항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오는 10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서구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한 뒤 이튿날인 11일 부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의 당내 분열조짐 및 당운영방안에 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회견에서 당의 체질개선및 개혁의지수용이 이뤄져야함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최고위원은 이미 『당일부에 구태의연한 수구세력이 있고 정책개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세의 개혁』이라고 민정계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뒤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11일의 회견내용이 주목되고 있다. 한편 노대통령은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에서 보선결과와 관련,『원인과 책임에 대해 지나친 논란을 벌여 분열인상을 주면 반대세력이 이용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한 뒤 『책임을 전가하거나 분열되어서는 절대 안되며 나를 비롯한 여러분 모두의 책임이라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라며 선거결과를 둘러싸고 민주계를 중심으로 내분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상을 우려했다. 노대통령은 또 『과거 어떤 계파나 소속을 떠나 모두가 책임이 있다는 자세로 융화와 결속을 위해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당지도부가 솔선수범하여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오랜 여야생활로 인한 체질에서 벗어나 상호 이해하고 융화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당의 결속과 화합을 당부했다. 여권의 소식통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자당 내 역학관계가 재정립될 것으로 본다고 말해 박철언정무1장관의 여권내 위상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 민자 충격… 인책론에 책임공방까지/대구ㆍ진천 보선결과 3당반응

    ◎“자만반성을”ㆍ“민의소재 알아야”침통 민자/겉으론 “환영”… 조기총선 호재로 활용 평민/“선거기적 이뤘다”입지강화 큰 기대 민주 ○…청와대는 4일 충북 진천ㆍ음성보선에서 민자당이 완패하고 대구서갑구에서도 득표율이 저조 했던데 대해 상당한 당혹감을 보이면서 수석회의를 통해 패인 등을 분석,노태우대통령에게 즉보. 노재봉비서실장 주재로 이날 상오 열린 회의에서는 『모든 정보기관이 보고한 예상득표율이나 현지분위기가 현실과 엄청나게 동떨어져 적절한 대응책을 수립치 못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선거결과가 앞으로 큰 자극제가 될 것이며 이를 계기로 진실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나가야 겠다』고 자성. 청와대의 일각에서는 『대구서갑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바람에 진천에서의 뜻밖의 참패를 당했다』고 풀이하면서 『노대통령이 3당통합까지 만들어 주고 정호용씨의 후보사퇴를 설득하는 등 온갖 뒷바라지를 해주었는데 결국 당이 방심함으로써 망신을 당하게 됐다』고 당에 화살. ○민주ㆍ공화계서 비판 ○…민자당은 4일 진천ㆍ음성 보궐선거 결과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참패」라고 자인 했으나 이를 「3당통합에 대한 심판」으로 단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 박준병사무총장은 이날 진천ㆍ음성 선거결과가 참패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당이 합당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진 것이기 때문에 3당통합에 대한 평가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피력. 박총장은 『우리는 조직과 정책에 역점을 두고 조용히 선거를 치르고자 했으나 무소속등 야당은 바람에 의존했고 결국 바람이 조직보다 영향이 컸던 것 같다』면서 『특히 박찬종의원 사건을 둘러싼 선동이 크게 먹혔던 듯하다』고 진천ㆍ음성에서의 패인을 분석. 박총장은 그러나 『대구서갑의 경우는 정호용후보가 사퇴하는 것과 관련,기권표가 늘어나 접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말해 민자당 후보의 고전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치. 이날 상오 당무회의에 참석했던 이종찬의원은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고 박철언정무1장관도 『말하고 싶지않다』고 밝히는 등 민정계는 대체로 침울한 분위기. 반면 민주ㆍ공화계는 이번 선거결과가 「개혁거부」「농정실패」「공천잘못」 등에 있다고 은근히 민정계를 비난하면서 인책론까지 거론.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당무회의에서 『3당통합이후 치러진 이번 보궐선거결과는 민자당이 교만하고 오만한데서 비롯된 패배이므로 크게 반성해야 한다』면서 『선거패배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다음을 대비해야하며 민의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 김동영원내총무는 『민자당에게 겸허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농정에 소홀했던 여파』라고 민정계를 겨냥 했으나 박관용의원은 『벌써부터 하는 짓을 보니 이럴 줄 알았다. 이 사람들이 충고도 듣지않아…』라고 노골적으로 민정계를 비난. 박종률의원은 『소속의원을 50∼1백명씩 내려보낸 결과가 이같이 나온데 대해 통렬한 자체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김덕용의원은 『자기 개혁이 없는데 대한 국민들의 거부반응』이라고 불만을 터뜨렸으며 강인섭당무위원은 『나눠먹기식 당운영에 대한국민의 엄중한 심판』이라고 코멘트. 김종필최고위원은 김영삼 최고위원과는 달리 『여기저기서 이 사람 저 사람 애기하는 것은 좋지않다』면서 『유구무언』이라며 노코멘트로 일관. 그러나 공화계의 한 당직자는 『진주ㆍ음성지역에 우리가 4.26총선에서 차점낙선했던 이재철씨를 공천하자 했을때 들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민정계의 「독식」에 대한 불만을 토로. ○국민분노 알수 있다 ○…평민당은 4일 진천ㆍ음성과 대구서갑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3당야합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진 것』이라면서 『3당야합에 대한 불신이 확인된 만큼 이제는 의원직을 총사퇴한 뒤 총선을 실시해 민의를 담은 국회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정치공세. 김대중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4.26총선에서 보여주었던 국민역량이 또다시 승리했다』고 보궐선거결과를 총평하고 『여당의 본거지라고 할수 있는 대구에서조차 민자당이 고전한 것을 보면 3당합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수 있다』고 분석. 김총재는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야권통합의 당위성이 또다시 제기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차차 생각해 보겠다』고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우리 당은 이번 선거결과를 교훈삼아 국회의원 사퇴후 총선재실시를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 한편 김총재는 이날 진천ㆍ음성보선에서 승리한 민주당(가칭)의 허탁당선자에게 『선전분투로 위대한 승리를 차지한 것을 축하하며 귀하를 당선시킨 진천ㆍ음성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축전과 화환을 전달. ○폭행사건 한몫 했다” ○…민주당(가칭)은 대구서갑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충북 진천ㆍ음성보선에서 허탁후보가 「당선」을 낚아 올리자 「선거기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들뜬 분위기. 민주당측은 진천ㆍ음성에서 승리한 원인이 이기택 창당준비위원장과 「청문회 스타」인 김광일ㆍ노무현의원 등의 헌신적인 선거지원에 있고 특히 유세 막바지에 박찬종의원 폭행사건이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고 자체분석. 민주당은 거대여당인 민자당과 유일야당임을 자처하는 평민당과의 틈바구니에서 서러움을받아왔던 만큼 이번선거에서 의석1석증가라는 사실보다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던 평민당과 크나큰 이미지 손상을 입은 민자당에 비해 정치권의 명실상부한 한 야당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했다는데 만족. ○어제 하오5시 끝나 ○…개표부정시비로 무려 7시간동안 개표가 중단되고 재검표하는 소동을 벌였던 대구서갑보궐선거의 개표작업은 4일 상오7시20분부터 속개돼 10여시간 후인 하오 5시45분쯤 돼서야 마무리. 속개된 개표작업은 초반에는 개표부정시비를 의식한 야당측 참관인들의 갖가지 주문으로 1개 투표함을 개표하는데 거의1시간이나 걸렸으나 하오부터는 시간당 2∼3개의 투표함에 대한 개표를 벌이는 등 빠르게 진행. 이날 순조롭게 진행된 개표작업은 하오 4시35분쯤 민주당(가칭)백승홍후보측 참관인들이 평리5동 4투표함의 투표인수가 유권자수보다 7명 더 많다고 주장,선관위측에 이의를 제기함에 한차례 중단. 곧이어 속개된 개표작업에서 이날 상오 봉인된 자물쇠의 열쇠가 맞지않아 개표가 보류됐던 마지막 투표함인 상리동 2투표함을 개표하려는순간 야당측 참관인들이 봉인된 자물쇠와 열쇠가 맞지않는 점을 들어 『리레이투표의 증거』라고 또다시 이의를 제기,두번째 개표중단사태를 연출. 선관위측이 진상을 조사한 결과 상리동사무소 직원인 구창수씨가 투표함을 자물쇠로 채운뒤 열쇠를 봉투에 넣어 봉인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자신의 사무실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뒤늦게 열쇠를 가져왔으나 투표함열쇠가 아닌 다른 열쇠를 가져온것으로 판명돼 또다시 사무실에 갔다 오느라고 개표가 지체되기도. 마지막 순간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며 개표장을 지키던 백후보는 4일 하오2시쯤 문후보와의 표차이가 5천표를 넘어서자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퇴장.〈대구=최암ㆍ김동진ㆍ우득정기자〉
  • 원외조직책 일부교체/민자,내주중 확정발표

    민자당은 4일 하오 박준병사무총장 주재로 조직강화특위를 열고 61개 원외조직책 인선문제를 논의,이미 내정된 서울및 호남지역 32개 지구당 조직책 중 1∼2명 정도를 교체한다는 데 민정ㆍ민주ㆍ공화 3계파간에 의견의접근을 보았다. 민자당은 다음주 중 조직강화특위를 재개,61개 원외조직책 대다수를 확정,발표할 방침이다. 한편 민정계 조직강화특위원인 박철언 정무1장관이 위원직을 고사함에 따라 김중권의원으로 교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 “소 신문등 읽고 「북한모순」깨달아”/유학생귀순 잇달자 감시원보내

    ◎망명 두북한학생 회견 2일하오 대한항공902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한의 소련유학생 남명철ㆍ박철진씨는 도착직후 공항귀빈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얼떨떨해 소감은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수명의 남조선사람을 통해 자유가 있다는 확신이 섰다』고 귀순소감과 동기를 밝혔다. ­두 사람의 인적사항을 자세하게 얘기해 달라. ▲(박철진)65년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유성고등중학교를 거쳐 김책공과대학 전자계산학과를 다녔다. 남군과는 같은 중학교와 같은 대학 동창이다. (남명철)85년3월 김책공과대학 재학때 소련 레닌그라드대에 유학했다. 이전에는 대학교에서 유학생을 위한 노어강습을 받았다. ­탈출경로와 망명동기는. ▲지난 3월25일 소련에서 동독으로 가 서독을 거쳐 프랑스의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했다. 여행증명서를 주소북조선대사관에서 일괄적으로 보관하고 있어 국경을 넘을 당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불법적으로 넘어야 했다. 그분의 신변보호를 위해 자세히 말할 수 없다. 어느 한 순간의생각으로 이러한 모험을 감행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보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소련의 여러 출판물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학기간동안 소련의 신문들을 통해 남조선의 정치ㆍ경제등의 객관적사실을 알게됐다. 정치의 자유와 물질의 부유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망명동기는. ▲이러한 모든 북조선에 대한 객관적 사실인식을 토대로 우리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조국으로서 남조선을 택했다. 이 조국의 민주와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현재 많은 북한의 유학생들이 소환되고 지난 89년에만도 3차례나 동유럽유학생이 우리나라에 망명했는데 소련유학생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해달라. ▲서방세계의 라디오등을 통해 유학생 소식을 듣고 있으나 공개적이고 본격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89년5월부터는 당원들을 파견해 학생생활을 감시하고 있다. 지난해말부터는 여행증명서(비자)를 모스크바의 북조선 대사관에서 한꺼번에 모아놓고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동유럽에는 8천7백여명의 모든 유학생이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물론 외교일꾼은 예외다. 소련에는 5백여명의 유학생과 연구생ㆍ실습생등 1천여명이 있다.
  • 북한유학생 2명 소탈출 한국 망명

    ◎남명철ㆍ박철진씨,독ㆍ불 거쳐 서울에 소련의 레닌그라드대학에 유학중이던 북한 유학생 남명철(25)ㆍ박철진(25)씨등 2명이 귀순,2일 하오5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소련에서 유학하던 북한학생이 귀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지난해 2월 체코유학생 조승군ㆍ김은철씨등 2명이 처음 귀순한 이후로는 4번째이다. 평양출신인 남씨등은 중ㆍ고교및 대학동창으로 김책공과대학을 졸업한뒤 86년 소련에 유학,레닌그라드대학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하던중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탈출을 결심,지난달 25일 레닌그라드를 떠나 동독과 서독을 거쳐 같은달 29일 프랑스로 넘어온뒤 현지에 있는 우리나라 공관에 망명을 요청,귀순하게 됐다고 밝혔다. 남씨등은 이날 하오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조선 내부에서 반란등으로 인한 변혁은 기대할 수 없지만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 서서히 조직화투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폭로했다.
  • 민자 「미확정」조직책 이선진통 언저리

    ◎3계파,「무주」29곳 “팽팽한 줄다리기”/충남지역 민정 공화계 “물러설 수 없는 한판”/보선뒤 매듭…지지당원들 상경시위 잇달아 민자당의 원외지구당조직책 인선작업이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다. 민자당은 오는 3일 대구서갑과 진천·음성지역의 보궐선거가 끝나는대로 조직강화특위를 재가동,인선작업을 매듭짓는다는 방침이어서 이번주말이나 내주초쯤이면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개의 원외지구당중 지난 인선때 5(민정)대3(민주)대2(공화)의 배분비로 10명에 대한 인선을 매듭지은 서울지역은 나머지 10개 지역도 각계파가 나름대로의 지명도와 당선가능성등을 제시하며 자파후보의 낙점을 주장하고 있어 혼전은 더욱 극심. 도봉을의 경우 민정당시절 도봉갑지구당위원장직을 인계받은 양경자의원(전국구)측이 『이지역 13대차점자인 배성동전의원(민정계)이 스스로 지구당을 맡을 의사가 없다고 밝힌만큼 당연히 우리몫』이라며 조직책인선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으나 배씨측은 『그런말을 한적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양천갑은 민정계의 박범진씨와 민주계의 박수복씨가 경합을 벌여 왔으나 최근 민정계가 세게밀고 있는 박범진씨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관악갑은 민정계의 김우연씨와 공화계의 이상현씨가 맞서고 있는데 김씨의 경우 박철언 정무1장관이 뒤에서 밀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씨 역시 그동안 공화계가 오랫동안 점찍어둔 「성장가능 인물」이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을 전망. 관악을은 민정계의 김종인씨가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되고 5선경력의 민주계 김수한씨가 느슨한 태도를 보이는 틈을 타 공화계 전국구인 연제원의원이 확정되는듯 했으나 최근 김수석이 지구당인선에 나설뜻을 비쳐 다시 불투명해 졌다. 장석화의원의 민주당(가칭)합류로 원외가 된 영등포갑의 경우 민정당의 노동국장을 지낸 이득헌씨가 유력하지만 민주계측이 연고권을 내세우며 김영삼 최고위원이 아끼는 인물을 내세운다는 복안을 갖고있어 난산이 불가피하다. ○…민주계측의 연고권주장과 민정계의 인물위주의 배정요구로 1차인선때 한명도 내정하지 못한 부산은 민주계의 기득권을 인정,5개지역구를 3(민주)대2(민정)로 배분키로 잠정합의했다는 후문. 대전동구는 충남지역 열세인 민정계가 자파몫으로 배분해줄 것을 고집하고 있으나 공화계는 충청지역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경기지역의 유일한 원외인 성남을은 정무장관출신의 오세응씨(민정계)와 김기평씨(공화계)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으나 오씨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4개원외지구당중 22개 지역에 대한 인선을 잠정확정한 호남지역 역시 12개 미정지구당조직책을 놓고 혼전. 전북의 무주·진안·장수는 전병우(민정계) 오상현(민주계) 김광수(공화계)씨가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전씨쪽으로 기울어지자 김씨측 지지자들이 상경,집단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이리의 공천섭씨(민정계)도 계보에 위원장자리가 넘어갈 조짐을 보이자 맹렬하게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민정당사무차장으로 3당통합당시 호남권의 반발을 무마했던 구용상씨(전남곡성·화순)측도 민주계의 반발로 조직책인선이 늦어진데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 대소수교기획단 구성/정부/일정확약땐 대표부 수용방침

    정부는 오는 5월로 예정된 박철언정무1장관을 비롯한 대소수교대표단의 소련방문시 양국간 수교일정에 대한 소련측의 약속이 있을 경우 상주대표부를 설치,정식수교이전의 중간단계설정에 합의해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대표부설치와 함께 한소간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무역협정·경제과학기술협정 등의 체결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며 이들 협정조인은 빠르면 7월쯤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이밖에 오는 5월의 한소정부간 공식수교협상을 지원키 위해 기획원·외무·재무·상공등 관련부처 관계자들로 「대소수교협상기획단」을 구성키로 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31일 『그동안 정부는 중간단계없는 한소공식수교를 이룩한다는 방침이었으며 지금도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그러나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만큼 소련측이 납득할만한 수교일정을 제시한다면 수교에 앞서 상주대표부 설치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다른 소식통은 『정부측이 이같이 유연한 협상태도를 갖게된 것은 공식수교를 전제로한대표부설치는 오히려 수교일정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자는 『소련측은 수교보다 경제교류확대 등을 더 바라고 있다』고 전제,『한소간 구체적 수교일정에 대한 내부합의가 이루어진다면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무역협정등 경제교류를 원활히 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들도 정식수교이전에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자는 『5월에 소련을 방문하는 정부측 대표단은 대소협상기획단이 마련한 협상안을 토대로 소련측과 치밀한 외교교섭을 벌이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영삼최고위원 방소」 청와대 발표문

    1.김영삼 민주자유당 최고위원과 일행은 90년 3월20일부터 3월27일까지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을 방문하여 소련 당정 지도자들을 광범위하게 만나 양국 관심 사항에 대해서 폭넓은 의견교환을 가졌으며,이번 방문을 통해 한소 양국의 관계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김영삼최고위원이 이번 방문에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면담한 것은 한소관계발전에 고무적인 일이며 소련의 대한관계 개선의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2.노태우대통령은 이번 김영삼최고위원 일행의 방소 기회에 새로 취임한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친서(3월17일자)를 보냈으며 이 친서는 3월22일 박철언정무1장관을 통해 소련측에 전달됐다. 노대통령은 친서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새 헌법하에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데 대해 축하하고,소련의 개혁ㆍ개방ㆍ신사고 정책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남북한 관계개선 의지를 천명하고,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한소 양국의 공동이익 증진을 위해 한소 관계정상화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하며,이제 그 실천의 시기가 되었다고 말했다.노대통령은 또한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한반도 및 동북아에도 확산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3.노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회답해 왔다. 이 회답은 3월26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소련 당관계자를 통하여 구두 및 서면으로 전달되어 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대통령의 취임축하와 소련의 대외정책에 대한 높은 평가에 대해 깊은 사의를 표하고,노대통령의 양국 관계 증진과 관계정상화에 대한 견해에 전적인 공감을 표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또한 양국 경제관계의 구체화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안정을 위해 협조하겠으며 한반도 정세의 정상화는 이 지역 모든 인민들의 이익에도 부합된다고 언명하면서 이에 전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4.한소 양측은 모스크바에서 가진 회담에서 양국 정상 사이의 이와같은 첫 의견교환이 양국 관계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로서 그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5.노대통령은 이번 한소 양측의합의에 따라 정부 차원의 대표단을 적절한 시기에 모스크바에 보내어 국교정상화 문제와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한 공동관심사를 협의토록 할 것이다. 6.정부는 노태우대통령이 추진해온 북방정책이 진전되어 여러 사회주의 국가와 외교 및 실질적인 관계가 증진되고 있는 이 시점에 있어서 국가이익에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신중히 추진해 나갈 방침임을 밝혀둔다.
  • 한반도에 새 평화기류 기대/노대통령친서ㆍ고르바초프 답신의 함축

    ◎양국정상 공감대 형성… 연내 수교 가능성/5월 대표단 방소때 일정 매듭 지을듯/수교ㆍ경협 우선순위 줄다리기 예상도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사이에 주고받은 친서 및 답신내용이 30일 노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의 청와대 회동에서 밝혀짐에 따라 한소간의 연내 수교가 가시권내에 들어왔다. 특히 양국 정상간의 친서 및 답신은 양국관계 정상화에 대한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양국 정상간에는 이미 국교수립 원칙에 사실상 합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은 친서를 통해 남북한 관계개선 의지를 천명하면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한소양국의 공동이익 증진을 위해 한소관계 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제 그 실천의 시기가 되었다』며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우리측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신에서 『노대통령의 양국관계 증진과 관계정상화에 대한 견해에 전적인 공감을 표한다』고 밝혀 양국간 국교수립에 아무런 이의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노대통령의 친서 및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은 모두 북방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박철언정무1장관에 의해 전달되고 전달받았다. 박장관은 이번 방소기간 중 부르텐스 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부 부부장 등 소련측 정부관계자와 22,26,27일 등 세차례에 걸쳐 정부차원의 공식접촉을 가졌는데 노대통령의 친서는 첫번째 접촉에서 전달됐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은 두번째 접촉에서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미수교국 정상간의 의견교환은 외교적으로도 드문 사안일 뿐만 아니라 양측간의 관계 접근의사가 합일점을 찾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일반론에서 볼 때 양국 관계정상화 장정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양국정상간의 의견교환에서는 그러나 『양국간 국교수립이 빠른 시일내에 달성돼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합의했으나 언제 양국간 수교의정서에 서명하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수교예정 스케줄에 대한 합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김최고위원의 방소를 계기로 양국간 공식접촉의 물꼬를 튼 만큼 5월 중에 범정부차원의 대표단을 모스크바에 보내 양국간 정치ㆍ외교적인 현안을 비롯,경제ㆍ문화ㆍ과학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협력증진 방안까지도 논의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대표단의 단장은 이번 방소를 통해 소련측 고위인사들과 두루 안면을 넓힌 데다 소련측과 상당한 고위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박철언장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대표단의 5월 모스크바행은 따라서 양국간 수교일정을 거의 마무리지을 것이 분명하고 소련측이 강력히 원하고 있는 우리 민간기업의 대소 진출을 위한 전제조건인 투자보장협정ㆍ이중과세협정ㆍ무역협정 등 투자에 따른 「안전판」 마련을 매듭짓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 소련측은 지금까지 대한관계 개선에 있어 「선경제협력 후국교수립」이라는 노선을 견지,경협 증진에 보다 주안점을 둔 반면 우리측은 『경협을 무기로 이번 기회에 곧바로 국교수립까지 달성하자』는 입장,즉 정치ㆍ외교적인 관계개선에 체중을 실어왔었다. 이러한 현상은결국 한소간의 수교시기는 양국간 실질적인 경협의 폭에 따라 좌우됨을 의미한다. 정부관계자들도 이같은 점을 충분히 인식,「수교」와 「경협」이라는 양저울을 적절하게 조율해 대소관계개선 외교의 이니셔티브를 잡아 나가겠다는 전략을 짜놓고 있다. 양국관계 개선과 관련,이번 방소에서도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났지만 상호 상주대표부 설치가 양국간 주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최호중 외무부장관은 30일 기자와 만나 『이번 방소에서 상주대표부 설치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소련측이 강력히 원할 경우 대표부 설치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바로 이점은 대표부가 현재 양국간에 설치돼 있는 영사처보다 격상되고 상주대사관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외교적 특권을 향유만 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가 이와 관련,『소련측이 수교직전 단계로 상주대표부 설치를 제의해 온다면 충분히 검토하겠지만 대표부의 성격이 ▲대표부의 장은 대사여야 하고 ▲정무ㆍ영사 업무는 물론 협정체결권과 외교교섭권을 가져야 하며 ▲빠른 시일내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이를테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대표부를 설치할 경우 대표부의 수준은 지난 88년 당시 헝가리와의 상주대표부 설치 합의 때와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표부 설치가 오히려 수교의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다른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에서도 그랬듯이 영사관계나 대표부 설치 등 중간단계 없이 곧바로 수교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여하튼 양국 정상간 공감대 형성을 계기로 오는 5월부터 본격화할 양국 정부간의 공식수교 교섭은 한소외무장관 회담을 거쳐 최종 마무리되어 연내에 양국간 수교의정서에 대한 서명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럴 경우 수교를 기념하는 노대통령의 소련방문과 함께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내년 4월경 방일에 이은 한국방문도 조심스럽게 점쳐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아직까지 「장미빛 기대」일 수 밖에 없다. 우리측에서 너무 조급하게 서두를 경우 오히려 대소관계 정상화 일정이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음을 외교 관측통들은 지적한다. 또 이러한 조급함은 양국관계 개선의 주도권을 완전히 소련에 빼앗겨 우리측은 수교교섭상 입지가 상당히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특히 우리가 소련과 수교를 맺는다 해도 소측이 40년 넘게 맹방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을 쉽게 저버리지는 못한다는 점과 소련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초강대국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명백히 인식해야 할 것같다.〈한종태기자〉
  • “한ㆍ소,한반도 안정에 공동 노력”/노대통령ㆍ고르바초프

    ◎친서ㆍ답신 통해 합의/“양국 조속 수교 전적으로 공감/남북관계 진전에 적극적 역할”/5월 소에 정부대표단 파견 청와대 발표 노태우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친서와 답신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한소 양국간의 공동이익증진을 위해 양국수교등 관계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같은 사실은 노대통령이 30일 낮 청와대에서 소련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으로부터 방문결과를 설명들은 뒤 청와대 당국이 노대통령의 친서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내용을 발표문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밝혀졌다. 특히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답신에서 『한반도의 정세안정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밝히고 『한반도 정세의 정상화는 이 지역 모든 인민들의 이익에도 부합된다』고 언명,남북한관계 진전 및 정상화에 소련측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비쳤다. 노대통령과 김최고위원간의 회동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발표문에서 『노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남북한 관계개선 의지를 천명하고 한반도의 안정과평화,한소양국의 공동이익 증진을 위해 한소 관계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하며 이제 그 실천의 시기가 되었다고 한데 대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노대통령의 양국관계 증진과 관계 정상화에 대한 전적인 공감을 표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이는 한소양국 정상간에 국교 정상화의 의향과 원칙에 관해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는 5월 한소양국간의 수교및 경제협력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박철언정무1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대표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할 방침이다. 노대통령은 친서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 취임축하 ▲소련의 개혁ㆍ개방ㆍ신사고정책의 성공기원 ▲한소관계 정상화 희망및 실천 ▲한반도및 동북아에서의 화해ㆍ협력 확산노력 다짐을 밝혔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답신에서 ▲노대통령의 취임축하와 소련의 대외정책평가에 대한 사의표명 ▲노대통령의 양국관계증진과 관계정상화 견해에 대한 전적인 공감표시 ▲양국경제관계의 구체화에 관심 ▲한반도 정세안정에의 협조를 밝혔다.〈해설3면〉 노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은 이날 회동이 끝난 뒤 『이번 방문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한 것은 소련 관계발전에 고무적인 일이며 소련의 대한관계 개선의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번 방문이 양국관계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발표문을 통해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은 친서형식은 아니나 그가 노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그에 대한 답변을 측근에게 구술,이를 서면으로 정리해 우리정부에 전달한 것이라고 이대변인은 밝혔다. 이대변인은 노대통령의 친서전달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접수경위도 설명,『김최고위원이 고르바초프대통령 등 당정의 고위인사와 만나는 동안 박정무1장관은 정부차원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소련정부측 인사와 지난 22ㆍ26ㆍ27일 3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졌다』고 말하고 『1차 회담에서 노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2차회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을 구두및 서면으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구술내용 객관화 증거 외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답신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구술을적어 메모한 문서회답으로서 발언내용의 객관화를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물이나 발신인의 서명이 들어 있는 친서나 서한의 외교문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 “한반도 전쟁불안 해소가능”/김영삼위원 귀국

    ◎소와 긴장완화 심층논의/오늘 청와대 보고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은 소련방문을 마치고 29일 하오 방소단 일행과 함께 귀국했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김포공항에서 도착성명을 발표,『지난해 6월의 첫번째 소련방문이 한소 관계개선을 위한 시작이었다면 이번 방소는 양국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밝혔다. 김최고위원은 『이번 방소기간중 민자당과 소 집권당인 공산당과의 정식교류를 결정했다』고 말하고 『멀지않은 장래에 한소 양국간의 국교수립이 이뤄지리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소련지도부와 남북문제에 대해 충분한 얘기를 나누었으며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도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전하고 『앞으로 대북관계및 한반도 주변이 크게 변할 것이며 전쟁에 대한 불안이 없는 상황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한 깊숙한 논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최고위원은 30일 낮 청와대로 노태우대통령을방문,오찬을 함께 하며 고르바초프 소대통령과의 회동등 방소결과를 설명하고 한소 수교문제등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는 김종필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이 배석할 예정이며 방소단의 박철언정무1장관은 노대통령에게 별도로 방문결과를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 “대북한관계 큰 변화온다”/김영삼최고위원 방소 귀국회견 일문일답

    ◎“한ㆍ소 수교의 결정적 계기 마련/민자ㆍ공산당 수시로 상호초청”/동석 박정무,굳은 표정… “각료급 교류 합의 없었다” ○…소련방문을 마치고 도쿄를 거쳐 29일 하오 귀국한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은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방소는 한소관계정상화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으며 통일로 가는 문을 열고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평. 김최고위원은 이날 하오 6시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회견장으로 직행해 상기된 표정으로 미리 준비했던 도착성명을 10분간에 걸쳐 낭독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 ­멀지 않은 장래에 한ㆍ소국교가 수립된다는 데 이전에 KAL기 피격문제에 대한 소련측의 사과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에대한 논의는 있었나. 『이 자리에서 소련의 지도자와 한 얘기를 전부 밝히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국민들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소련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에서 김최고위원을 소개하며 차기 대권후보라 했는데 온당하다고 보는가. 『그같은 보도가 나간 경위를 내가 알 길이 없다. 소련기자가 자의로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방소 전부터 김최고위원과 박정무1장관이 동행ㆍ수행여부를 놓고 잡음이 일었고 소련에서도 친서문제로 다투고 경쟁적으로 회담에 임하는등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그러했나. 『이번 방소는 어디까지나 민자당 최고위원의 입장에서 당을 대표했다. 대표단은 전원 무사히 귀국했고 감사하는 것은 전체가 12일간의 출국기간 동안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하며 열심히 노력했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도 소련에서 개별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불가능했다. 모든 사실은 내가 알았고 누구든 나와 의논을 했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가장 염두에 두었다는 점을 알아달라. 신문이 잘못 쓴 것 같다』 ­소련과의 수교가 가까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언제쯤 가능할 것 같나. 『소련측도 많은 것을 밝히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가까운 장래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내일 청와대에서 노대통령및 김종필 최고위원과의 오찬회동을 가질예정인데 거기에서 좀더 자세한 얘기를 나눌 예정이다. 고르바초프와의 면담내용 등은 모스크바를 떠날 때까지는 발표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그동안 일부 내용은 기자들이 추측해서 쓴 것이 많다. 고르바초프와 만났을 때 그는 「우리들이 서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장애요인이 없다. 양국이 다같이 생동력있게 나아가자」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와의 면담내용을 좀더 자세히 밝힐 수 없는가. 『나는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했고 그도 나의 방문을 마음에서 우러나게 축하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당신이 추진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노태우대통령의 안부를 전했다.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도 노대통령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이번 방소가 대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며 그곳에서 북한측 인사와 접촉한 사실이 있는가. 『대북관계는 매우 크게 변할 것이고 한반도 주변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전쟁에 대한 불안없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도 좋게 될 것이다. 북한측 인사와는 어느 누구와도 만난 사실이 없고 다만 북한측 대사관으로부터 나의 일정을 묻는 전화는 많이 걸려 왔었다』 ­민자당과 소 공산당과의 정당교류는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가. 『수시로 우리 민자당의 초청에 소련집권당이 응하고 또 소련집권당의 초청에 우리가 응한다는 얘기다. 이것은 간단하게 보아서는 안되며 국교정상화로 가는 지름길이란 것을 생각해달라』 한편 이날 회견동안 박철언정무1장관은 시종 굳은 표정으로 김최고위원의 바로 옆에서 회견 장면을 지켜보았는데 회견이 끝난 뒤 『이번 방소가 한소관계개선에 플러스가 되었는지 마이너스가 되었는지 견해를 밝혀달라』는 질문을 받고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답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 박장관은 『한소 각료급 교류에 대한 소련측과의 합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전혀 합의된 바 없다』고 간단하게 답변. 박장관은 특히 김최고위원이 기자회견 도중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대화내용을 좀더 공개하겠다』며 미공개 내용을더 설명하려 하자『휴』하며 걱정스런 심경을 다시한번 노출. ○…이날 공항에는 김재광국회부의장,김동영총무,이병희ㆍ남재희의원 등 30여명의 민자당의원과 당직자,방소단가족등 2백여명의 환영객이 몰린 데다 내ㆍ외신보도진까지 취재경쟁을 벌여 북새통. 환영나온 의원들의 대부분은 민주계였으나 민정계에서 이긍규ㆍ조영장ㆍ박승재ㆍ서상목ㆍ신영순의원 등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이들 민정계 의원들은 평소 박철언계로 알려진 의원들이어서 눈길.
  • 당정「동반외교」로 한ㆍ소 공감대 확충/모스크바 여로 이얘기 저얘기

    ◎준국가원수급 예우… 인식변화 실감/사안별이견ㆍ「공다툼」인상준것은 흠 7박8일간에 걸친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의 모스크바 방문은 한소 양국의 공식수교를 향한 상호 교감대를 크게 넓힌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련측은 야당총재에서 집권여당대표로 변신한 김최고위원의 정치적 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를 준국가원수급으로 예우,사실상 한소 양국간 고위레벨의 공식 정치교류가 이루어졌다. 더욱이 박철언정무1장관을 중심으로 정부대표 성격의 수행팀에 의해 소정부당국과의 직접교섭이 진행됨으로써 일부에서 혼선이 일었다는 지적도 있으나 전체 구도면에서는 정치ㆍ실무레벨의 접촉이 어우러진 외교활동이 수행됐다고 보여진다. ○…김최고위원의 이번 소련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전격회동. 당초 우리 정부측은 대내외 현안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고르바초프가 북한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김최고위원을 만나줄 것인가에 회의적 시각이었던 것이 사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버리지 않았던 방소단은 회동이 이뤄질 경우 모스크바방문 막바지인 26일쯤에야 면담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었으나 도착한지 하룻만에 크렘린 내실의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린 것. 지난 21일 고르바초프가 김최고위원을 만나고자 한다는 연락을 한 인사는 마르티노프 세계경제및 국제문제연구소(IMEMO) 소장. 김최고위원은 이날 하오 6시10분쯤 숙소인 옥자브라스카야 호텔에서 소정부기관지인 이즈베스티야지와 회견 도중 마르티노프소장의 전화연락을 받고 황급히 크렘린으로 출발. ○정치ㆍ실무접촉 병행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의 면담에 대해서는 「상당한 얘기가 오갔다」 「3∼4분에 걸쳐 인사만 나눴다」는 상반된 관측이 엇갈리고 있으나 면담시간에 관계없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한ㆍ소 관계변화에 중요한 이벤트가 됐다는 평. 이번 김ㆍ고르바초프 면담성사는 정재문ㆍ황병태의원 등 측근수행 인사들의 숨은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볼 수 있으나 한국과의 교류증진을 바라는 소련측의 태도변화도 상당한 뒷받침이 된듯. 정ㆍ황 두 의원은 프리마코프 연방회의의장ㆍ부르텐스 공산당중앙위국제부 부부장,마르티노프 IMEMO소장 등 「고르바초프 직계라인」과 연쇄접촉을 갖고 김ㆍ고르바초프 면담을 강력 요청했다는 후문. ○…박철언정무1장관을 중심으로 한 실무팀은 부르텐스 공산당중앙위 국제부 부부장 등 소련측의 당정인사들과 연쇄 접촉을 갖고 김최고위원의 정치적 외교활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뒷바라지. 박장관은 김ㆍ고르바초프 회동이 황망중에 성사돼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노태우대통령의 친서가 고르바초프에게 직접 전달되지 못하자 브르텐스를 통해 친서를 전달하고 답신을 요청. 박장관은 또 김최고위원이 한소간 총영사관을 우선 설치하자는 소련측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자 이는 「중간단계없이 직접 수교이룩」이란 우리 정부 방침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외교의 혼선을 방지했고 결국 준공식관계수립을 의미하는 상호 대표부설치 합의를 도출. ○친서전달 혼선 유감 ○…소련측은 북한등의 입장을 고려,아직 선경제교류확대 후국교수립의 공식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김최고위원은 비정치적 활동에 있어 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 김최고위원의 모스크바대 초청연설시에는 4백여명의 청중이 몰려 한ㆍ소관계 진전에 대해 열띤 질의ㆍ응답을 벌였고 IMEMO와의 합동세미나도 성황리에 진행. ○…소련측의 방소단에 대한 예우도 국가원수급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현지 언론들도 김최고위원 및 한국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표시. 김최고위원에게는 소련의 최고급 승용차인 차이카가 제공되었으며 공식일정에는 경찰차가 선두에서 안내했고 대표단이 묵었던 옥자브라스카야 영빈관의 경비도 소련측이 전액 부담.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1면 박스기사를,노보스티통신은 김최고위원 인터뷰기사를 게재했으며 일본등 외국 언론들도 열띤 취재경쟁. ○비정치분야 적극적 북한측도 김최고위원의 동정에 깊은 관심을 표시,연일 소외무성에 방소단 일정을 문의했고 특히 김ㆍ고르바초프 회동확인에 굉장한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 북한 중앙통신의 모스크바 특파원인 장공섭은 계속 대표단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체크. ○…김최고위원 일행의 이번 방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속에 대표단 내부적으로 「공다툼」이 일었다는 인상을 준 것이 「옥의 티」였다는 지적. 정치인으로서 김최고위원의 언행이 북방비밀 외교를 주도하는 정부대표로서의 박정무1장관의 입장과 다소 상충되는 바람에 갈등이 표출됐다는 것. 이에 따라 노대통령의 친서전달과정,총영사관 설치문제 등을 둘러싸고 잡음이 있었을뿐 아니라 박정무1장관측은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할 북방외교가 정치이해 때문에 모두 드러나 정부측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 소 방문단 일행 평양 간 일 없다/청와대ㆍ김 위원 밝혀

    【도쿄=김영만특파원】 소련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도쿄에 기착한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과 박철언 정무제1장관은 28일 이번 방소단 일행중 북한을 방문한 인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최고위원은 『정재문의원을 제외한 대표단 전원이 도쿄로 돌아왔다』고 말하고 『정의원은 지난 27일 미국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방소단 일부의 평양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청와대대변인도 이날 방소단 일행중 몇명이 모스크바에 남아 평양을 방문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김최고위원의 일행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에 간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 고르바초프,노대통령에 답신/박정무/“귀국보고 뒤 일부내용 공개”

    ◎「크렘린 대좌」 기상에서 밝힐 듯/김영삼최고위원 귀국길에 【모스크바=김영만특파원】 박철언정무1장관은 27일 상오(현지시간) 모스크바를 떠나기 직전 소련측과 3차 수교실무협상을 갖는 자리에서 노태우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답신을 받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이 문서로 전달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장관은 이와관련,『노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국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답신내용을 부분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하오(한국시간 28일 새벽) 7박8일간의 방소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를 출발,귀국길에 올랐다. 김최고위원은 28일 상오 10시10분 일본 도쿄에 도착,다케시타(죽하) 전총리등 일본정부및 정계인사 등과 만나 양국 현안등을 논의한 뒤 29일 하오 귀국할 예정이다. 김최고위원은 도쿄행 기상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21일 크렘린궁에서 가졌던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회동사실을 확인하고 회동 내용을 부분적으로 공개할 것으로보인다.
  • 한소 수교길 “정치적 정지”/김영삼최고위원 방소 7박8일 결산

    ◎대통령 친서ㆍ답신교환,「정상화 진입」 신호/소의 평화의지 확인… 한반도 안정에 도움/당ㆍ정의 첫 「경쟁외교」… 보완 효과 못거둬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의 7박8일에 걸친 방소는 한소 양국관계를 수교직전 단계인 「정부간 공식대좌」 단계로 끌어올렸다. 방문단이 당초 목표하고 예상했던 수교일정 단축이나 일정합의가 이루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친서와 답신을 주고받은 것은 두 나라 관계가 사실상의 「정상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지난 21일 크렘린궁에서 전격 회동한 점은 소련측이 대한수교에 대한 강한 의지를 공개화한 것으로 보여 한소수교가 실무적 협상절차만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까지 가능하게 한다. 방소단과 초청자인 IMEMO(세계경제및 국제문제연구소)가 26일 발표한 공동성명은 『일련의 대담을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소간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공동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말해 두 나라가 수교를 전제로 노력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나아가 공동성명은 『한소교류를 급속하게 해 양국간의 공식적 정부관계를 사실상 수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고 밝혀 두 나라가 비록 수교는 하지 않았지만 「공식적 정부관계」에 있음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김최고위원 일행의 방소활동은 박철언정무1장관이 주도하는 실질수교협상과 김최고위원측의 수교분위기 제고활동으로 2원화된 점이 특색이다. 때문에 방소단 활동의 구체적 평가도 두가지 측면에서 각각 다른 점수로 나타나고 있다. 김최고위원측이 주도한 수교를 위한 정치적 분위기 성숙작업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여겨진다. 김최고위원측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을 비롯,소련공산당 2인자로 불리는 야코블레프 정치국원,프리마코프 연방회의의장,부르텐스 공산당중앙위 국제부수석부부장 등과 잇따라 회담을 가짐으로써 양국간 수교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련측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소수교에 장애물은 없다』고 밝힌 점이나 공동성명이 한소 현주소를 「공식적 정부관계」로 설정한 점등은 정치적으로 두 나라 관계가 수교를 기정사실화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일련의 사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소수교의 실질협상은 커다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같은 정치적 분위기와 실질협상에서의 괴리는 경우에 따라 우리측 협상대표단에게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대표단인 박정무장관팀은 수교일정을 단박에 합의할 수 없다면 각료급을 대표로 한 양국협상팀을 구성,수교문제를 협의토록 시타리얀 경제담당부총리와의 회담에서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공동성명 작성과정에서 소련측이 우리측 요구사항인 「수교및 경제협력을 위한 각료급회담 필요성 합의」 조항을 굳이 삭제함으로써 소련측이 한소수교를 금명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방소활동을 결산하는 공동성명은 우리측의 선수교 후교류 확대의 요청에도 불구,과학기술처장관회담및 소련측 과학아카데미와 한국과학기술원 사이의 정기교류에만 합의하고소련측 문화교류 확대 요청의 결과랄 수 있는 문화교류를 위한 정부부처간 또는 공식단체간 접촉추진을 동시에 명기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우리측 주장인 선수교와 소련측 요구인 후교류확대 선수교의 이견차를 허물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정무장관은 세차례의 실질협상이 끝난 뒤 『소련측은 여전히 공식수교보다 교류확대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히고 『현재로서는 한소수교가 양국 정부간의 협상결과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이번 방소기간동안 수교가 필요하다는 점은 소련측에 강력히 제시했지만 수교의 구체적 조건 등은 아직 협상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협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수교의 시기가 결정될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음은 소련측의 두가지 발언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하나는 야코블레프가 설명한 『양(교류)이 질(수교)로 변하는 시기가 빨리 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대목이다. 또 하나는 소련측이 김최고위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영사처를 총영사관으로 승격시키겠다』고 한 부분을들 수 있다. 영사처의 총영사관 승격은 일견수교로 가는 단계적 절차로 볼 수도 있으나 비밀수교일정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현재상태의 장기화 계산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곧 교류축적이 수교를 위해 더 필요하다는 소련측 입장이 외교행위로 구체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측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막후에서 수교일정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총영사관 설치제의가 있다면 이는 현재의 수교없는 상호교류를 보다 장기화시키려는 계산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관례상 고르바초프가 노대통령에게 보내는 답신의 내용은 대표단이 서울로 돌아온 뒤 청와대측과의 협의가 있고 난 뒤에라야만 부분적이라도 공개가 가능하다. 답신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고 또한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김최고위원 간의 회동시간,형식,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한소수교문제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수교에 대한 소련측의 계산작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단계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실질협상의 미진에도불구하고 정치적 수교분위기 성숙,특히 「김­고 회동」은 한반도가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주변 4강국의 협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으려는 우리측 「생존외교」가 소련측의 「협조」를 얻어냄으로써 새로운 지평위에 서게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최고위원의 방소는 정부ㆍ여당내에서 처음으로 같은 외교목표를 두고 당과 정부가 경쟁을 벌인 우리 외교사의 첫 경험이었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의 특수성등으로 경쟁외교가 보완 상승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유리한 조건제시자를 골라잡게 만드는 문제점을 노출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최고위원과 박장관 모두가 언제나 「국민적 인기」를 염두에 두려 하는 정치인이란 점에서 이같은 시도는 실패가 예견되었던 부분도 없지 않다. 김­고 회담이 김최고위원과 박장관 간에 사전협의되지 않았고 이로인해 대통령 친서가 다른 방법으로 전달되었던 점은 외교에서의 「경쟁」이 가져다줄 수 있는 피해의 한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김최고위원 측근인사들은 『소련측이 대화 파트너를 김최고위원으로 골랐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있다. 소련측이 선택해준 대가로 무얼 요구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좀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모스크바=김영만기자〉
  • “한ㆍ소 수교 공개 협상단계 진입”/방소 박철언정무 인터뷰

    ◎북 과민반응 우려,일정 늦춰/국익 차원서 대소경원 검토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과 함께 방소중인 박철언정무1장관은 정부대표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현재 한소수교에 관한 실질적인 막후협상을 벌이느라 분주하다. 『수교협상은 조인때까지 비밀리에 진행돼야 한다』며 인터뷰를 줄곧 고사해온 박장관을 숙소인 옥자브르스카야호텔에서 만나 대략적인 수교협상의 진전상황과 협상전망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소련측에 비공식적으로 제의한 것이 무엇인가. 『남북관계등 공개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나 밝힐 수 있는 것은 첫째 당장 수교를 하자는 것이다. 둘째 당장 수교가 어렵다면 쌍방의 각료급 인사를 대표로 하고 경제외교관계 실무자로 구성된 대표단이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협상을 시작하자는 제의였다. 셋째는 한소 경제협력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경협방안등을 다루자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의 한소수교에 대한 입장과 현재의 상황은. 『당초의 구상은 4월말이나 5월초에 본격협상을 시작해 9월초순께 상설대표부를 발족하고 연말이나 내년초에 수교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였다. 그러나 소련의 여러가지 정치변화등 내부사정으로 인해 당초의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다』 ­협상 전망은. 『우리 국민들이 보기엔 막후협상이 다 끝난 것처럼 돼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소련은 지난번 막후협상때보다 더 여유있는 입장을 보이면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해오고 있다. 협상전망을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 우리가 모스크바를 떠날 때까지 소련측이 답신을 주겠다 하므로 답신을 받아 봐야만 전망을 할 수 있겠다. 다만 협상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인상을 갖는다. 우리가 다시 모스크바에 오든지 소련측이 서울로 오든지 아니면 제3국에서 계속 협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련측의 어떤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나. 『지난 22일 소련공산당중앙위 청사를 방문해 고위관계자에게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그 자리에서 양국대표 3명씩 모여 3시간동안 본격협상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소련측의 부르텐스 공산당국제국부부장과 또 다른 고위관계자가 참석했고 이것이 첫번째 활동이었으며 양국 정부간의 첫 공식 논의였다』 ­평양사람들과 접촉은 했는지. 『민족문제는 서로가 공개할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불가피하게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노력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가시적인 결과는 없다. 모스크바로 오기전 북측의 고위인사와 만날 것이라는 예상보도가 크게 나가고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동이 크게 보도되면서 북한측이 입장이 매우 어려워졌다. 북한측이 대단히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오고 있음을 이해해 달라. 그러나 계속 노력하고 있다』 ­김최고위원과 업무상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이에 대한 장관의 견해는.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연령면에서나 정치현상에서의 경험,당의 위치로 보나 그 분을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을 실질적으로 맡아서 해야 하는 입장이고 또한 정부측으로서는 국민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져가면서 일을 하려는 것이다』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의 회담이 수인사를 한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김최고위원이 직접 체험한 것이기 때문에 나로서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소련은 경제협력확대를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 국내사정이 많은 부담을 안으면서 조기수교를 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초기에는 자꾸 교류하자고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간 창구를 건실하게해 국교를 수립하는 데 국익이 있다. 막후에서 이 사람들에게 수교를 미끼로 우리로부터 많은 경제적 실익을 취하고 한국내 친소세력을 확대시켜 극동의 상황을 소련에 유리하게 변화시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의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모스크바=김영만특파원〉
  • 김영삼최고위원 방소 7일 이모저모

    ◎소 언론서 김­야코블레프회담 대대적 보도/박정무 상대­장소 감춘 회담ㆍ잠적에 관심 집중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의 방소일정이 27일(현지시간)로 모두 끝난다. 방소단은 그동안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전격회담,김최고위원과 야코블레프 국제담당 정치국원과의 회동,김최고위원 진용과 박철언정무제1장관측과의 미묘한 갈등 등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앞으로의 관심은 김최고위원이 밝히지 않고 있는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경위와 그 내용 그리고 박장관이 만난 인사들이 누구냐는 등이다. 김최고위원은 이 부분에 대해 계속 입을 굳게 다문 채 『못한 이야기들은 27일 모스크바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큰 뉴스에 묻혔던 뒷 이야기들을 모아본다. ○고르비회담은 함구 ○…무엇보다도 눈에 두드러진 현상은 방소단에 대한 소련측의 관심이 지대했다는 점. 소련 방송과 타스통신,프라우다지 등 현지 언론은 김최고위원의 일정을 19일의 도착때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이번 방소단활동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는데 특히 야코블레프와의 회담내용을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그러나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사실에 대해서는 전언론이 함구,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은 김최고위원의 모스크바대학 연설내용을 24일 녹음방송했고 모스크바방송등 2개의 방송과 1개의 신문이 김최고위원과 인터뷰를 했다. ○일정 빠짐없이 체크 ○…방소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현지 북한측 관계자들도 민감한 반응. 이들은 매일 김최고위원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김최고위원의 일정을 문의해 왔으며 북한중앙통신 장공섭,한철 등 두 기자는 방소단기자는 물론 박희태대변인에게까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체크. 특히 김최고위원의 고르바초프 회담후에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서너시간마다 문의전화를 해오는등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김최고위원 도착 당일만 해도 한소관계의 정치적 진전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던 중앙통신의 장기자는 뒤늦게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난 것은 잘된 것 아니냐』며 사실 확인을 위해 유도성 질문을 여러차례 하기도. ○“한국경제 배우자”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소련측은 자신들의 낙후된 경제를 시인하면서 한국으로부터 배우겠다는 저자세와 대국의 자존심을 동시에 내세우는 2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한국에서 배우겠다는 노력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방소단에 포함된 경제인들이 받은 느낌이다. 김상하상의회장과 구평회태평양경제협의회 한국위위원장은 소련측이 군사부문의 첨단기술을 우리에게 팔고 싶어하는 느낌을 받았고 태평양경제협의회에도 참여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고 전언. ○김의원과 별도 행동 ○…모스크바 도착이후 일정을 보안에 붙이고 있는 박철언정무장관은 노태우대통령의 친서전달이후 김최고위원과는 별도의 일정으로 행동. 박장관팀은 김최고위원일행이 IMEMO세미나와 모스크바대학 연설을 한 23일 상하오에 장소와 상대방이 알려지지 않은 회담을 가진 데 이어 김최고위원측이 관광ㆍ실내축구관람을 한 24일에도 서류가방을 든 수행원과 함께 하루종일 잠적해 상대방이 누구냐를 두고 구구한 억측이 대두. 박장관측이 연일 만나고 있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소련측의 대한 정책 핵심인사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미 박장관이 『모스크바에서 나의 관심은 수교문제가 아닌 민족통합에 관한것』이라고 밝힌바 있어 북한측 인사와 접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모스크바=김영만특파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