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의없는 것들’ 살인청부업자 열연 신하균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내기도 하고(화성으로 간 사나이), 극도로 광기어린 모습을 드러내기도(지구를 지켜라) 했다. 한없이 다정하고 해맑다가도(우리형), 한순간 악랄하게 변신(복수는 나의 것)도 했다. 어찌보면 눈에 띄게 잘 생기지도, 늘씬하게 잘 빠지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지만 그 속에 특별함이 있는 배우. 신하균의 변신이 우리는 그래서 궁금하다.
순수와 광기를 한 몸에 지닌 그가 이번에는 혀가 짧아 슬픈 킬러로 다가왔다.“사회와 소통하지 못한, 소외된 아웃사이더죠. 내가 될 수도, 당신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의 눈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를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박철희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예의없는 것들’(제작 튜브픽쳐스·24일 개봉)에서 그는 ‘ㄹ’을 ‘ㄷ’으로 발음하느니 차라리 영원한 침묵을 선택한 살인청부업자 ‘킬라’다. 칼을 잘 쓴다는 이유로 살인청부업체에 ‘스카우트’된 킬라는 경찰을 피해 수시로 집을 옮겨야 하고, 피 냄새를 없애려 독한 술에 의지하지만 삶이 나쁘지만은 않다. 소위 ‘싸가지가 하한가를 치는’ 예의없는 인간들을 제거하는, 명분이 있는 살인이기에. 하지만 재래시장 재개발건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조직의 보스를 처리하는 작업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코믹 누아르를 표방한 이 영화를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았다.”고 말했다.“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약자의 이야기이지만 표현이 무겁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듯한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심지어 섹스 중에도!) 역할이지만, 그의 대사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다고 해야 할 만큼 많다. 대사를 모두 내레이션으로 처리해 말과 행동을 따로 연기해야 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무척 컸다고 했다.“촬영을 하기 전에 미리 내레이션 녹음을 해 감정을 익히고, 촬영을 모두 끝낸 뒤에 다시 세밀하게 보충했죠. 감독님이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CD로 구워주기도 했어요. 느낌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역할을 소화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긴 박 감독과는 이번 영화로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감독이)구구절절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나 자신의 표현방법만 생각하고, 그것을 현장에서 보여주면 됐다. 그런 점에서 공통점을 찾고, 편하게 킬라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크린 밖에서 그가 생각하는 ‘예의없는 것들’은 어떤 부류일까.“약한 자를 괴롭히는 강자죠. 강자는 사회가 될 수 있고, 인간이 될 수도 있어요. 아주 포괄적이죠?”
이 영화가 ‘배우 신하균’을 새삼 다시 기억하게 만들 또다른 포인트 하나. 왜소하고 초라한 음지의 캐릭터를 즐겨 표현하던 그가 달라졌다. 예의없는 것들을 제거하는 그의 몸매는 무척이나 ‘예의바르다’. 가죽재킷(거의 유일한 극중 의상)을 벗어던지고 상반신을 노출하는 장면들에는 몸짱의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캐릭터의 질감을 살리려 운동으로 2∼3㎏을 줄였다.
진지하고, 과묵하기로 소문난 배우.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한다.“저,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거든요.” 그의 달라진 모습에서 쾌감을 충전받게 되는 건 오히려 그래서가 아닐까.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