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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MB회고록 파장] 역대 대통령 솔직한 고백보다 자기 합리화

    대통령의 기록은 역사적 사료다. 대통령이 퇴임 후 남긴 기록, 회고록은 재임 기간 밝힐 수 없었던 비사(秘史)이며, 후세에게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다. 특히 대통령 기록물의 보존·관리가 2007년까지 법제화되지 않았던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의 회고록은 국가적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 판단 기준, 숱한 정상회담 등 외교 관계의 팽팽한 힘겨루기 등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다. 다음달 2일 출간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알에이치코리아)은 보안 문제를 의식한 탓인지 일반적인 출판 관행과는 조금 어긋났다. 회고록 원고는 출판사 몇 군데를 떠돌았고, 편집부가 최소 서너 차례 이상 교정을 보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이영인 알에이치코리아 홍보팀장은 “출판사에서 초고를 교정한 뒤 (MB 측에)돌려보냈고, 이후 사실상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편집장 역할을 도맡았고, 최종 원고본 역시 출판사가 아닌 MB 측에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10명의 역대 대통령 중 윤보선·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못다 쓴 회고록’(학고재·2009년)을 비롯해 ‘김대중 자서전 1,2’(삼인·2010년), ‘김영삼 회고록 1,2,3’(백산·2000년), ‘노태우 회고록 상,하’(조선뉴스프레스·2011년), 그리고 윤보선 전 대통령의 ‘외로운 선택의 나날’(1991년)이다. 회고록 판매부수가 가장 많았던 이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성공과 좌절’은 2009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16만부 가까이 팔렸고, ‘김대중 자서전’ 역시 양장본 8만세트와 페이퍼백 형태 보급판까지 더하면 10만세트 가까이 판매됐다. 대통령 사후에 발간됐다는 점도 판매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은 퇴임 뒤 3~4년 만에 회고록을 낸 뒤 평균 2권 안팎을 남겨왔다. 조지 W 부시의 ‘결정의 순간’(YBM시사·2011년),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물푸레·2004년)는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는 지금까지 5만부 남짓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회고록의 ‘배신’이다. 역사적 평가자료로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퇴임 대통령이 회고록을 자화자찬과 자기합리화, 또는 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논란과 비판의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출판계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에 대한 성찰은 없이 자신의 치적과 전임 대통령과 정적 헐뜯기에 치중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내용을 외면했다”고 지적한다. 김영준 학고재 편집국장은 “대통령 회고록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미덕은 거짓 없이 솔직하게 기술하는 것”이라면서 “독자인 국민이 회고록을 읽는 이유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입장에서 가졌던 고뇌와 판단 근거, 당시 안팎의 상황 등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고품격 문화콘텐츠 개발 등 역점”

    “고품격 문화콘텐츠 개발 등 역점”

    “신한류의 중심에 한국학이 있습니다. 고품격이면서도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대의 중심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대중과의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첫 번째 행보가 될 것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이 한국학의 대중화, 콘텐츠의 품격화, 문화 콘텐츠의 외교자원화를 선언했다. 이배용 원장은 27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부터 시행한 ‘찾아가는 한국학 콘서트’를 일반인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 추진할 것”이라면서 “집적된 한국학 역량을 국민들에게 돌리며 그 꽃과 열매가 더욱 풍성하게 결실을 맺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중연은 한국학 콘텐츠 대중화의 세부적인 내용 중 하나로 조선 시대 과거시험 답지 시권(試券)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조선 시대 양반 사회의 문화적 본질을 파악하고 과거제도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 시대 문화상, 사회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화 콘텐츠로서 출판물, 영상물 등으로 가공할 계획이다. 또한 2024년까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 사업 2단계에 들어간다. 전국 230여개 시·군·구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 자료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인터넷 등 다양한 정보통신매체를 통해 서비스하며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이 다시 새로운 지식 콘텐츠로 가공해 내는 순환형 지식정보시스템 구축의 일환이다. 특히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한민족의 전통문화 자료를 발굴, 분석해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는 세계한민족문화대전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마친다. 연말까지 그 첫 작품으로 ‘세계한민족문화대전-중국편’이 나올 예정이다. 이 밖에 세계 35개국 455권의 교과서를 분석해 한국 관련 내용의 오류 시정에 나설 계획이다. 이 원장은 “한국학은 한민족 정신문화의 근간이자 콘텐츠의 보고”라면서 “더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빛을 보고, 인류가 이에 감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또 “문화적 경쟁력을 높이고 후세에 자긍심과 창의성을 전달하는 데 취약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이를 보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쌍용차 구조조정 등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과연 정당화 가능하나

    쌍용차 구조조정 등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과연 정당화 가능하나

    ‘제동장치가 고장난 전차(트롤리)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바로 앞 철로 위에는 다섯 사람이 묶여 있다. 마침 당신 앞에는 철로 변경 조종기가 있어 전차의 진행 방향을 지선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지선 위에도 또 다른 사람 한 명이 묶여 있다. 당신은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킬 것인가.’ 1967년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이 낙태와 태아의 도덕적 지위 문제를 다룬 논문에서 내놓은 ‘트롤리 사유 실험’이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제러미 벤담, 이마누엘 칸트, 버트런드 러셀 등의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을 빌려 인간의 도덕 본능과 의무감의 심리적 기저 및 행위의 근본을 결정하는 요인을 밝히려 했다. 수년 전 한국 사회에 열풍이 불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트롤리 사유 실험을 소개하며 딜레마적 상황 속에서의 가치 판단에 대한 문제, 사유의 여러 갈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로 사용하기도 했다.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가. 아퀴나스는 ‘이중 효과의 원리’를 제시하며 의도한 효과는 아니지만 예견된 효과라는 측면에서 정당화한다.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이 정상참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하는 벤담이라면 행위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으므로 단호하게 다섯 명을 살리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반면 칸트는 인격체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 아래 절대적 도덕을 강조한다. 칸트라면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사실 이는 고약한 윤리 퍼즐이 맞다. 공포영화 ‘쏘우’ 시리즈에서 매번 제시하는 잔혹한 딜레마적 상황과 비슷하다. 가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다리를 잘라야 하는 상황, 또는 갇힌 동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그중 한 명의 배를 갈라야 하는 상황 등이다. 한 철학자는 트롤리 사유 실험에 대해 “도덕철학에 나타나는 질병처럼 보인다”고 말하며 실험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리철학의 사유를 뛰어넘어 인식론, 형이상학, 심리학, 경제학, 인지과학, 심경생리학 등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다른 분야의 학문으로 전파되면서 트롤리 사유 실험은 조금씩 다르게 변주됐다.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등 실제 생활의 고민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제는 아예 ‘트롤리학’(trolleyology)으로 불릴 정도가 됐다. 물론 여전히 학제에 포함되는 정식 연구 학문이라기보다 철학의 하위 장르로 자리 잡는 추세다. 실제로 트롤리적 사유는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와도 밀접하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2009년 TV 프로그램 생방송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해일이 닥치고 있다. 한쪽에는 나이지리아인 다섯 명이 살고 있고, 반대쪽에는 영국인 한 명이 살고 있다. 한 곳밖에 구할 시간이 없다. 어느 쪽을 구할 것인가?” 방청객들은 키득거렸고, 브라운 총리는 “현대적 의사소통 기술로 두 곳에 다 경고를 줘서 탈출하도록 하겠다”는 궁색한 답을 내놨다. 이 밖에도 1844년 대서양을 항해하다 폭풍우에 조난당한 선장은 선실 보이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인육을 먹었다. 교수형이 선고됐으나 선원들 다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이 가장 약한 소년을 살해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참작돼 6개월형으로 감형됐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개인의 생명이 갖는 무게감의 정도, 개인과 집단의 상관성 등 사회정의와 정책 결정 과정의 공공성 등 딜레마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도, 쌍용자동차가 엄청난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도, 정부가 대기업의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간접세목을 스멀스멀 늘려 가는 것도 트롤리 사유 실험에서 자기 확신을 하며 나타난 결과로 이어진다. 현실의 문제를 합리화하거나 비판하는 데 철학이 얼마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샌델에 이어 지난해 말 ‘누구를 구할 것인가’(문학동네), 최근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이마) 등 트롤리 사유 실험에 대한 책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팍팍한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의 답을 찾다

    팍팍한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의 답을 찾다

    절대적 빈곤은 과거에 비해 줄었다. 하지만 부의 편중과 양극화로 인한 삶의 절박함은 더욱 커져 간다. 물질적 가치가 사람의 가치를 좌우하는 식으로 세상은 피폐해지고 있다. 인문학이 학자와 연구자의 손을 떠나 일반인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는 배경이다.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삶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을 찾는 열망은 더욱 커진다. EBS는 27일 낮 12시 10분 ‘서울인문포럼 2015’ 현장을 담았다. 지난달 14일 열린 제1회 서울인문포럼의 현장 중계다. 김현욱 전 아나운서의 사회와 서울인문포럼 배양숙 집행위원장의 해설이 어우러진 생생한 중계로 인문학의 의미와 함께 사회와 나의 관계성, 인생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 등 근본적 질문이 던져지는 생동감 있는 강연 현장이 공개된다. 특히 소설가 김홍신, 시인 문정희의 뜻깊은 강의는 강연장을 찾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선사한다. 소설가 김홍신은 ‘인생에도 사용 설명서가 있다’는 주제로 강연을 펼쳐 인간에게 주어진 한 번뿐인 인생의 존재 가치와 찬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한 시인 문정희는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라는 주제와 함께 인문학의 꽃은 문학, 문학 중 최고 보석의 언어는 시임을 언급하며 한국 문학이 가지고 있는 자긍심, 그리고 인문학 정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강연한다. EBS ‘서울인문포럼 2015’는 두 명의 강연자가 전하는 인문학 강의를 통해 희망차고 행복한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영화 프리뷰] 가슴 깊이 묻어둔 가슴 먹먹한 사랑

    [영화 프리뷰] 가슴 깊이 묻어둔 가슴 먹먹한 사랑

    헤어지기 서운했다. 서로 바래다 준다며 그 집 앞과 버스 정류장을 오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윽고 골목길은 어둑해지고 엉거주춤한 입맞춤에 가슴은 콩닥거렸다. 돌아선 뒤에는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전화기 붙잡고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제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도 모두 서툴렀다. 청춘의 시절은 그랬다. 젊은 연인들은 헤어졌고, 많이 아팠다. 세월이 흘러 다 잊었다 싶었는데 불쑥불쑥 떠오른다. 첫사랑의 기억은 그렇게 시간을 이긴다. ‘쎄시봉’은 첫사랑을 담은 영화다. 가슴 깊숙이 품어뒀던 옛사랑의 기억과, 어떤 세월도 절멸시킬 수 없는 사랑의 지속성을 그리고 있다. 1970년대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이 주된 공간이다. 영화는 윤형주, 송창식의 ‘트윈 폴리오’가 또 한 사람을 더해 ‘쎄시봉 트리오’로 활동할 뻔했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가공의 인물 오근태(정우)가 그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의 윤형주(강하늘), 송창식(조복래), 이장희(진구), 조영남(김인권) 등이 청춘과 낭만, 순수한 열정의 모습을 선보인다. 민자영(한효주)은 이 모든 이들의 연인이자 오근태의 가슴 시린 사랑이다. 영화배우가 되는 민자영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젊음들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첫사랑의 아픔과 애틋한 엇갈림의 대상이 된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웨딩 케이크’,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등 그 시절의 아련했던 음악이 곁들여짐은 당연하다. 특히 오근태가 이장희에게서 빌려와 민자영에게 자신이 만들었다며 들려주는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에는 풋사랑의 치기어린 고백과 헤어진 뒤 가슴 먹먹한 여운까지 들어 있다. 비오는 날 우산 속으로 뛰어든 이와 함께 걷는 짧지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길, 환심을 사려 거짓으로 자기를 꾸며댔던 기억, 공중전화기 위에 동전을 쌓아 놓고 보고픈 마음 달래며 들었던 목소리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기억, 불뚝거리는 갈망으로 여관문 앞에서 머뭇거렸던 발길, 누군가를 믿는 법을 채 배우지 못해 쌓여만 가던 사소한 오해와 불신, 그리고 헤어진 뒤 오랫동안 아팠던 일 등까지 청춘이 사랑하며 겪는 일들이 모두 있다. ‘쎄시봉’은 첫사랑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의 오근태(김윤석)는 더이상 노래 부르지 않는 회사원이 됐고,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민자영(김희애)은 이혼했고 은막에서 물러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의 우연한 해후에서 둘은 여전히 가슴속에 상대방이 들어 있음을, 조금도 늙지 않고 숨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애틋함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다. 냉정한 듯 돌아선 뒤 오근태는 비행기 브리지에 털썩 주저앉아, 민자영은 게이트 바깥에서 숨 쉬어지지 않는 울음으로 오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옛 사랑의 기억을 다시 가슴속 깊은 곳에 꼭꼭 묻어둘 뿐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 가슴 먹먹한 사랑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김현석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1970년대를 배경 삼은 지금 60대의 청춘 얘기지만 아픈 사랑의 기억을 품고 있는 이라면 세대를 뛰어넘어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기보다 시간의 흐름과 사랑의 지속성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덕분이다. 옛사랑의 그림자는 아무리 또렷해도 부디 가슴속에만 드리워 놓기를. 지금 곁에 있는 그 사람은 어떤 기억보다 소중한 현재의 당신이니까. 새달 5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90억장의 기록, 강대국 미국을 만들다

    90억장의 기록, 강대국 미국을 만들다

    대통령의 욕조/이흥환 지음/삼인/384쪽/1만 8000원 한국은 국가기록의 나라였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왕명을 받아 처리한 업무를 낱낱이 기록한 ‘승정원 일기’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다. 역사 속 부끄러움도, 자랑스러움도 모두 기록이 됐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가 빛나는 기록 전통을 오롯이 물려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2007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물러날 때면 재임기간 동안 생산한 문서를 없애버리거나 사사롭게 들고 나갔다. ‘대통령의 욕조’는 미국 국가기록 시스템의 무서움을 유감없이 확인시켜 주는 책이다. 1909년 백악관에서는 150㎏의 뚱보였던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이 사용할 ‘욕조 특수 제작 주문서’를 만든다. 빛바랜 문서 한 장조차 100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록을 대하는 미국인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엿보게 한다.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mistration), 즉 국가기록보관소의 역사는 81년이 됐다. 90억 장에 가까운 문서를 보존하고 있다. 1900만 장의 사진, 640만 장의 지도, 36만 릴의 마이크로필름, 11만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별도로 보관돼 있다. 고작 230년 남짓의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미국은 물론 미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세계 여러 나라의 문서도 들어 있다. 책 속에는 그 가운데서 추려낸 한국 관련 문서 59건이 소개된다. 1977년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입장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분명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1급 비밀문서,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원자탄 사용을 검토했다는 내용의 문서 등 굵직한 사건부터 28세 농사꾼 아낙의 조선인민군 입대 청원서, 인민군 병사의 낡은 사진첩 등 사소한 생활의 부분까지 보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국가기록보관소를 뒤져온 미국 워싱턴의 이흥환 코리아정보서비스넷(KISON) 선임 편집위원이 국가기록의 중요성과 의미, 미국 국가기록보관소를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딱딱하지 않게 썼다. 새삼 깨닫게 된다. 국가기록물은 결코 대통령 개인이나 청와대의 것이 아니다. 그 소유권은 오늘의 국민과 내일의 국민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국민행복 업무보고] 국가브랜드 개발 집중 문화콘텐츠 역량 강화

    문화체육관광부는 22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년 업무계획 보고를 통해 올 한해 문화국가 브랜드 구축, 문화콘텐츠 창조역량 강화, 생활 속 문화 확산을 주요 정책 과제로 정했다. 문체부는 ‘국가 브랜드’ 제고에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국가 순위는 13위지만 같은 해 독일 시장조사기구 GfK가 집계한 국가브랜드 지수 순위는 27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돼 온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도 대폭 확대한다. 기존 문화시설 할인과 함께 1000여회의 다양한 기획 행사를 통해 ‘생활 속 문화 향유’를 일상화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평양 대성동 고구려시대 고분 남북 공동발굴조사를 올해 주요 업무로 추진한다. 문화재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개성 만월대는 제7차 공동 조사가 진행되고, 평양 대성동 고구려고분은 처음으로 공동발굴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굵고 낮은 목소리 처음엔 콤플렉스 이젠 인생의 행운”

    “굵고 낮은 목소리 처음엔 콤플렉스 이젠 인생의 행운”

    “목소리 콤플렉스가 컸죠. 제가 중학교 때 변성기를 심하게 앓아서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척 가라앉아 찻집 천장과 바닥 사이에서 웅웅거렸다. 이런저런 세상사 두루 겪은 30대가 잔뜩 무게 잡은 듯한 목소리다. 인사를 건네며 웃으니 크고 둥그런 눈이 이내 얕은 접시가 엎어진 것처럼 부드럽게 휘어진다. 요즘 대한민국 누나들을 한껏 달뜨게 한다는 예의 그 미소다. 배우 여진구(18)다. 이 멋진 청년은, 아니 이 멋진 청소년은 1997년 8월생, 이제 만 17세 5개월을 넘겼다. 친구들과 축구, 농구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거나 PC방에 몰려가 함께 게임을 하는 게 마냥 즐거운 나이다. 이제 곧 3학년에 올라가니 과연 1년 뒤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슬며시 입시 걱정도 드는 고등학생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찻집에서 여진구를 만났다. 여진구는 오는 28일 개봉을 앞둔 ‘내 심장을 쏴라’에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정신병원 환자 수명을 연기했다. 영화 속에서 ‘미쳐서 갇힌’ 수명이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자기 안에 갇힌 채 숨고 싶어 하고, ‘갇혀서 미친’ 승민이(이민기)는 끊임없이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 소설가 정유정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목소리 때문에 늘 자신감도 없었고 소극적이었고, 목소리 자체가 콤플렉스였는데 나중에 주변에서 목소리 좋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시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북받치기도 했죠. 이젠 이 목소리가 저한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운 오리새끼가 훗날 백조가 돼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듯 이제 선배 배우들이 부러워하는 ‘미운 오리새끼의 목소리’를 가진 여진구이니 ‘내 심장을 쏴라’에서 연기와 함께 목소리로 영화를 끌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3년 다큐영화 ‘의궤, 8일간의 축제’에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여진구는 “시나리오보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서였는지 촬영 초반에 수명이를 연기하면서 많이 경직되기도 하고, 헷갈렸던 것도 같다”면서 “문득 수명이처럼 소설 안에 너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치자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고 말했다. 벌써 10년의 관록을 가진 배우다. 2005년 영화 ‘새드 무비’로 데뷔한 뒤 영화와 TV를 오가며 쉼없이 찍고 또 찍었다. 2013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영화계에서 그를 ‘아역배우’가 아닌 배우의 한 사람으로 공식 인정한다는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여진구의 연기관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는 “지금껏 연기하면서 아역과 성인 연기를 따로 나누지는 않았다”면서 “그 역할에 몰입하며 분석하고 체화하는 것은 아역이나 성인역이나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단호하다. 하지만 세상의 눈은 그 둘을 분명히 나누는 것 또한 현실임을 그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학교 수업도 빠져야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급한 마음에 오가는 상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등 영화판의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어린아이들이 이해하고 공유하기에는 간극이 크다. 어느 촬영장이건 촬영 기간 동안 아역 배우들에게 부족하게나마 나름의 배려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가 되고픈 이유는 (배려의 대상이 아닌)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열망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서 선배님들이나 스태프 형, 누나들이 한 명의 배우로 봐주니까 오히려 좋았어요.” 그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최대한 몰입해서 연기하는 최고의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이 배우로서 목표”라면서 “연기경력이 쌓여가면서 욕심도 그만큼 늘어날 텐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질문마다 조심스럽게 생각한 뒤 진지하면서도 조리 있게 대답한다. 이미 의젓한 한 사람의 배우다. 그러더니 이내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꼭 연극영화과가 아닌, 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일단 지금은 대학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어 대학 캠퍼스를 걸어 보고 싶어요. 그런데 국어, 영어 등 언어영역은 그나마 자신있는데, 수리영역은 어휴….”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국경 사라진 자본의 세계, 글로벌기업 독주 막으려면

    국경 사라진 자본의 세계, 글로벌기업 독주 막으려면

    자본의 세계에서 국경은 없어졌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며 코카콜라를 마시고, 말버러 담배를 폼나게 입에 문다. 한국의 청양고추를 비롯해 감자, 옥수수 등 몬산토 소유의 종자를 가꾸고 먹는다. 초국적 거대기업의 세계 지배는 이미 숨이 찰 정도로 넘치지만 그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아리랑TV는 22일 밤 11시 기획대담 ‘업프론트’에서 최근 한국에서 개장한, 세계 최대 가구업체 이케아 사태로 촉발된 거대 글로벌 기업의 한국 상륙에 대한 논란과 해결 방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유통업계 전문가인 서용구(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유통학회장, 정책·법률 관련 전문가 송세련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출연해 정부의 유통 분야 규제,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의 갈등 등 관련 쟁점에 대해 토론한다. 송 교수는 “글로벌 기업의 가열되는 논란은 대기업의 무차별한 공략”이라면서 “해당 국가의 시장은 물론 자본주의 자체까지 해칠 수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권 원장은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진출이 부진한 이유는 쓸모없는 규제들 때문”이라고 정부의 규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송 교수는 “지나친 규제 등 단순히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제 일변도가 아닌 중장기 비전 마련을 촉구했다. 또한 세계적인 마케팅 석학 케빈 켈러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를 위성으로 연결해 국내 글로벌 기업에 대한 조언을 들어 보고, 마틴 노이라이터 CSR컴퍼니 인터내셔널 대표를 연결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시민공부방 ‘시대의 반란’ 꿈꾼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시민공부방 ‘시대의 반란’ 꿈꾼다

    2000년 5월 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라 하면 정부 또는 대기업이 만든 연구소가 상식이라고 믿어지던 때였다. 정부 또는 재벌의 정당성 및 이해관계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소가 아닌 민간연구소는 낯설기만 했다. 심지어 개인의 이름 석 자를 내건 연구소였다. 다른 나라에야 매킨지, 브루킹스, 딜로이트, 노무라 등 개인 이름을 가진 연구소가 많았지만, 한국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순수 민간 싱크탱크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한결같이 만류했다. 차라리 정부에 들어와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고위 관료들의 제안도 잇따라 받았다. ●“순수 민간 싱크탱크 필요성 절실했죠”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56) 소장 얘기다. 그는 대학, 대학원에서 재무이론과 투자이론을 공부했고, 노무라경제연구소 연구부장을 지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환란의 발생 원인도 모르고, 수습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과 함께 한국의 브레인 역할을 자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보면서 민간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20일 경기도 고양시의 연구소에서 만난 김 소장은 한국 사회 20~40대 젊은 세대의 역량을 크게 평가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젊은 세대를 ‘2040 자식세대’로 표현했다. “2040 자식세대는 한국 사회의 첫 지식세대로서 정보통신혁명의 주체이며 자기 삶을 결정하고 자기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글로벌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한국처럼 젊은 세대의 열정과 역량이 넘치는 사회도 없습니다.” 연구소는 2007년부터 전국적으로 시민공부방모임을 시작했다. 현재 70여곳에서 1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역별로 꾸려진 시민공부방모임에 연구소는 동영상 자료 또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주거, 교육, 복지 등 자료를 제공하고 그를 토대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형식이다. 어렵고 딱딱한 경제학의 대중화, 학문의 생활화를 구현하는 공간이다. 여기 모인 이들 역시 20~40세의 학생, 직장인, 전문인 등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 소장의 말마따나 한국 사회의 희망을 만드는 자식세대들이다. 김 소장은 “이제 죽을 때까지 평생 공부를 해야 살 수 있다”면서 “학교가 아니라도 사회에서 누구나 쉽게,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시민대학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안에 300~500개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공부의 주제와 범위 역시 앞으로 철학, 역사 등 인문학까지 포괄하며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소의 시민공부방모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7월 ‘이순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젊은 세대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구체적 조직화의 첫걸음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처럼 기득권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가져올 수 있는 진지(陣地)를 구축하겠다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더이상 기성 정치, 제도 정치에 한국 사회를 맡길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 의식에서 자생적으로 터져 나왔다. 지난 17~18일 대전에서 시민공부방모임 운영진이 ‘이순신 프로젝트’ 1차 워크숍을 갖고 향후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차세대 한국사회 리더 양성 목표” 김 소장은 “시민공부방모임을 유지하면서 차세대 한국 사회의 리더를 선발, 양성해 일본의 마쓰시다정경숙 같은 형태의 정치 아카데미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내년 총선에서 모든 지역에 후보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따져 보니 젊은 사람의 정치 참여가 어색하지 않다. 미국에서 빌 클린턴은 만 46세 3개월에, 버락 오바마는 47세에 3개월에 대통령이 됐고,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만 43세에 총리직에 올랐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51세부터 새로운 독일을 이끌고 있다. 역사의 시곗바늘이 30~40년 전으로 되돌려진 ‘한국적인 상황’이 오히려 이례적일 따름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새 영화] ‘빅 아이즈’ 팀 버튼, 커다란 눈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다

    [새 영화] ‘빅 아이즈’ 팀 버튼, 커다란 눈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다

    표절이란 다른 사람 창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가져다 제 것처럼 쓰는 행위다. 동서고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음험한 그림자처럼 예술의 이름 뒤에 흔히 따라붙는 단어다. 국무위원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들은 제자 논문 표절 사실이 들통나 쩔쩔매고, 어떤 시인은 이름 짜한 문학상에서 표절 사실이 드러나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음악계에서도 잠잠할 만하면 표절 논란이 터져 나온다. 문제는 표절을 증명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팀 버튼의 새 영화 ‘빅 아이즈’는 화가 마거릿 킨(88)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1950~1960년대 미국 미술계에서 눈 큰 아이 작품들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팀 버튼이 “어릴 적 할머니집에도, 치과에도, 어디에도 눈 큰 아이 그림이 있었다”며 예술적 영감의 한 배경이었음을 이야기할 정도였다. 딸을 데리고 홀로 살던 무명화가 마거릿 킨은 월터 킨을 만나 재혼했다. 남편 역시 무명 화가. 두 사람은 갤러리를 열어 킨의 그림뿐 아니라 포스터를 팔고, 그림엽서를 팔며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문제는 그림을 그린 사람은 마거릿 킨이지만 바깥에서는 월터 킨이 화가로 행세했다는 사실이다. 1986년 마거릿 킨이 월터 킨을 고소하면서 비로소 진실이 알려지게 됐다. 마거릿 킨(에이미 애덤스)의 답답하리만치 나약한 모습이며 수완 좋은 사기꾼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는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낄낄대게 만들며 ‘표절의 법정’에 앉은 배심원인 관객들에게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짓게 한다. 팀 버튼은 킨의 ‘눈 큰 아이’ 그림의 표절을 주된 소재로 삼으면서도 표절에 대한 얘기에 머물지 않는다. 표절은 이미 윤리와 도덕 바깥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고, 사악한 가해자와 절대적인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월터 킨은 아내에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미술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 화가라야 한다고 설득하고, 아내는 찜찜해하면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부부는 역시나 큰 돈을 번다. 하지만 양심의 목소리와 작가로서 명예의 욕망을 외면할 수 없었던 마거릿 킨은 결국 진실을 세상에 밝힌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남편은 결국 무일푼으로 파산하고 만다. 악은 응징됐고, 진실은 승리했다. 그런데? 팀 버튼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묻는 듯하다. 월터 킨을 비웃고 비난하는 당신은 표절을 둘러싼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냐고, 악마와의 거래를 떨치지 못한 채 얻은 달콤함을 누린 당신도 표절의 공범이 아니었냐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가위손’ 등 무려 여덟 작품을 함께했던 자신의 페르소나인 조니 뎁이 나오지 않는 팀 버튼 영화다. 감독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판타지 가득한 작품 분위기와 달라진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카지노 리조트’ 연내 2곳 허가… 국내 대기업도 최대 주주 된다

    ‘카지노 리조트’ 연내 2곳 허가… 국내 대기업도 최대 주주 된다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복합리조트의 대주주 자격을 국내 대기업에도 주기로 했다. 10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서울 용산 주한미군 이전 부지 개발은 올해 하반기에, 현대자동차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개발 사업은 행정 절차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 내년에 착공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는 18일 총 25조 3000억원의 투자를 유발할 ‘관광인프라 및 기업혁신투자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올해 안에 2개 안팎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사업자를 추가 선정하기로 했다. 복합리조트가 경제자유구역 안에 들어설 경우 외국인만 가능한 최대 출자(51%) 규제를 풀어 국내 투자자도 최대주주가 될 수 있게 된다. 즉 대기업도 경제 자유구역에서 카지노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복합리조트당 토지 매입비를 빼고 1조원씩 총 2조원의 투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용산 미군 이전 부지는 3곳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한다. 정부는 그동안 남산 조망권 문제로 높이 제한(70m)을 요구했던 서울시와 합의를 끝냈다. 상업지역인 캠프킴 부지에는 당초 계획대로 용적률 800% 이상의 고층 건물을 짓는다. 유엔사 부지는 남산 조망권 확보가 가능한 높이와 용적률로 4월까지 개발계획을 승인한다. 수송부 부지는 다른 부지의 감정평가 결과 등을 보면서 개발계획을 확정한다. 이와 함께 현대차의 한전 부지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평균 2~3년이 걸리는 용도지역 변경, 건축 인허가 절차 등을 최대한 단축한다. SK E&S 등이 도시계획시설 변경 허가 등으로 애를 먹고 있는 열병합 발전소의 배관망 건설 관련 규제도 완화한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라인 증설을 위해 산업단지 인근에 간선도로를 깔아 준다. 용산 부지 개발과 3개 대기업의 현장 대기 프로젝트의 물꼬를 터 주면 총 16조 8000억원의 투자가 앞당겨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판교 창조경제밸리 조성(1조 5000억원), 도시첨단산업단지 6개 추가 조성(3조원), 관광호텔 투자 촉진(1조 2000억원) 등으로 8조 5000억원의 신규 투자가 창출된다. 시내면세점은 서울 3곳, 제주 1곳 등 총 4곳에 신설한다. 이에 대해 재계는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관련 법 개정과 부처 간 협의 등 내실 있는 후속책을 주문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대기업 투자활성화 대책] 허가 갱신 필요없는 ‘황금알’ 카지노… 최종 타깃은 내국인

    [대기업 투자활성화 대책] 허가 갱신 필요없는 ‘황금알’ 카지노… 최종 타깃은 내국인

    ‘카지노=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은 전혀 과하지 않다. 2013년 기준 전국 16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거둔 총 매출액은 1조 3684억원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1217만명 중 카지노를 찾은 외국인은 270만명(22.2%)이었다. 물론 이용률 대비 수입은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같은 해 143억 300만 달러의 관광 외화 수입액 중 12억 5009만 달러가 카지노 수입으로, 전체의 8.7%다. 그럼에도 카지노 사업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업체 입장에서는 매출액의 10% 이내에서 관광진흥기금과 별도의 법인세만 내면 되고, 허가 유효기간도 없는 등 특별한 의무 사항이 없다. 황금알 거위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치열하지 않을 리 없다. 카지노는 전체 건축면적의 5% 이내라도 전체 매출의 40% 안팎을 차지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다. 특히 정부는 올해 안으로 추가 선정하는 경제자유구역 내 복합리조트 사업자의 최대 출자자 자격을 외국인으로 제한하는 조항도 폐지한다. 공정한 경쟁 과정을 거치면 삼성, 현대 등 국내 대기업도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경제자유구역 내에 일정 규모(5억 달러) 이상 투자한 외국인 기업에는 5년 동안 외국인 지분율만큼 법인세를 면제해 주고 추가로 2년간 법인세를 50% 감면해 주는 등의 혜택을 줬다. 그러나 앞으로 내국인의 사업 참여가 가능해져도 이 같은 혜택은 주어지지 않는다. 문체부는 다음달부터 6월까지 신규 복합리조트의 시설, 사업 지역 등에 대한 콘셉트 제안 요청서(RFC)를 공고·접수한 뒤 평가를 거쳐 오는 11월까지 사업계획 요청서(RFP)를 공모해 연말에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사업자 수, 대상 지역, 시설 기준 등은 사업계획 요청서를 공고할 때 최종 결정하며, 선정된 사업자는 2020년까지 복합리조트를 완공할 예정이다. 발표 이전부터 중국과 홍콩의 자본 2~3곳이 카지노 사업을 위해 국내에 폭넓게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사전 내정설’까지 흘러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지노가 단순히 외국인 전용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더욱 엄격한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카지노만 외국인 전용일 뿐 나머지 객실, 위락시설 등에는 내국인 출입이 가능하다. 야권과 학계 등에서는 “해외 카지노 자본이 국내에 진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겨냥하고 선점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비판하며 “복합리조트의 카지노 기준을 테이블 몇 대, 머신 몇 대 등으로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체부는 카지노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문체부 산하에 카지노·복합리조트 감독 전담기구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카지노 허가 유효기간과 갱신제도, 카지노업의 양수·양도 사전승인 방안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카지노업 허가 유효기간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1년, 국내 강원랜드와 싱가포르는 3년, 마카오는 20년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은밀하게 위대하게 세상을 바꾸는 그들

    은밀하게 위대하게 세상을 바꾸는 그들

    내부 고발자 그 의로운 도전/박흥식·이지문·이재일 지음/한울아카데미/272쪽/2만 4000원 4·16 세월호 참사 이면에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다. 2014년 1월 청해진해운 직원 한 사람이 회사 여객선의 잦은 사고와 개운치 않은 사고 처리, 상습적 정원 초과 운항, 임금 체불 등에 대해 국민신문고에 제보했다. 하지만 정부는 임금 체불 건만 처리하고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이었다. 이는 내부고발, 즉 공익제보가 부정부패를 바로잡고 사회적 재앙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거꾸로 증명했다. 감사원의 감사 비리를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 군 부재자투표의 부정 실태를 고발한 이지문 중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LG전자의 물품구매 비리를 회사 감사팀에 내부고발했다가 직장 내 왕따, 해고 등 불이익을 받은 정국정씨,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KTX 노후 부품 사용을 제보한 신춘수 철도공사 직원. 그리고 최근까지도 총리실 장진수 주무관, 이은희(현 국회의원)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재벌가의 부도덕한 행태를 밝힌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 등 무수한 공익제보자들이 있다. 이들은 은밀하게 이뤄지는 부정부패를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의기롭게 바깥에 알렸다. 그러나 이는 해당 조직의 내부 논리로 본다면 ‘항명 또는 불복, 조직의 일탈 행위’다. 이들이 현실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것은, 조직 내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고, 사회 부적응자라는 멸시를 받으며 조직에서 쫓겨나고, 법정에 서고, 감옥에 가야만 하는 일이다. 2001년 부패방지법,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온갖 불이익을 홀로 감당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책은 씁쓸히 규정한다. 공익제보는 순교(殉敎)라고. 사회 전체의 이익과 공공적 가치를 위해, 마구 소리치는 양심의 외침에 귀 닫지 못해 자기희생의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공익제보를 감행한다. 그렇기에 실제 공익제보자이고 내부고발의 법적·행정적 체계의 전문가인 저자들은 성공적인 내부고발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전문가 또는 유경험자의 조언을 구한다. 사내 규범 등을 준수하고 동료들과 신뢰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불법의 물증을 확보한다. 법과 제도를 철저히 숙지한다. 시민단체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내부고발을 위한 준비 단계, 내부고발 방법, 이후 상황 대처 등 ‘내부고발 종합 지침서’로서 꼼꼼한 내용을 담았다. 공공의 이익을 인지하는 양심적인 이라면 모두 ‘내일의 내부고발자’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디자이너 김상진씨, 색맹이라 미대도 포기했는데 디즈니는 신경도 안 쓰던데요

    디자이너 김상진씨, 색맹이라 미대도 포기했는데 디즈니는 신경도 안 쓰던데요

    “월트디즈니에 와서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 ‘판타지아 2000’이었어요. 사실 19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놀라곤 하지만 그때는 정말 인상적이었던 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법한 장면까지 꼼꼼히 챙기고 작업하는 세심함이었습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디즈니의 무서움, 힘 등을 절감할 수 있었지요.”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만난 김상진(56)씨는 월트디즈니의 작업 시스템에 대한 감탄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월트디즈니 수석 캐릭터 디자이너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빅 히어로’에서는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를 맡아 밑그림에서부터 캐릭터 디자인 완성, 컴퓨터 그래픽 입체적 전환 등 애니메이션 작업은 물론, 모형제작, 기획 등에 대한 총괄 책임을 맡았다. 그의 일터는 꿈을 만들고, 꿈을 파는 곳이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 게도 잊힌 동심을 되살리게 해준다. ‘꿈 공장’이라고 명명되는 이유다. 인종적 편견과 차별, 미국의 문화적 침략이라는 비판 등도 간간이 제기되곤 하지만, 멀게는 ‘밤비’, ‘로빈후드’, ‘정글북’ 등을 비롯해 가깝게는 ‘헤라클레스’, ‘인어공주’, ‘겨울왕국’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이 전 세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문화적 영감을 줬다. 그 역시 애니메이터로서 취약점이 될 수도 있을 신체적 한계를 딛고 자신의 꿈을 이뤘다. 그는 적록색맹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광고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지만, 색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나와야 했다. 그때 찾은 새로운 전망이 애니메이터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독학으로 공부를 했고, 캐나다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다가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사하게 됐다. 전 세계 애니메이터들이 선망하는 꿈의 일터였다. 1995년, 36세의 늦은 나이였다. 한국인 첫 디즈니 캐릭터 디자이너다. 김 캐릭터 디자이너는 “디즈니에 근무하면서 적록색맹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사람들은 모두가 각자의 핸디캡을 갖고 있을 수 있는데 그런 핸디캡이 잠재적인 재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개척한 디즈니 애니메이터의 길은 한국인 후배들이 이어받았다. 그와 함께 김시윤 캐릭터 디자이너 역시 ‘빅 히어로’ 제작에 주요한 작업을 하는 등 디즈니에서 일하는 한국인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즈니 입사 후에도 대체 불가한 역량을 선보였지만, 그의 삶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입사하고 몇 년 되지 않아 디즈니는 2D 애니메이션을 공식적으로 중단하고, 컴퓨터 그래픽 3D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2D 캐릭터 디자이너는 회사를 그만둬야만 했다. 그는 그때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을 새롭게 배웠고, 그렇게 꿈의 길을 계속 걸어올 수 있었다. 그는 “디즈니 회의 분위기는 마치 놀러온 듯 농담도 주고받고 서로 낄낄대는 등 편하고 자유롭다”면서 “아티스트들이기에 최대한 창조적으로 역량을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고 디즈니 작품들이 선보이는 힘의 원천을 설명했다.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물었더니 잠시 생각하다 대답한다. “모든 애니메이터들의 공통된 꿈일 텐데요, 언젠가는 제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는 할 수 있겠지요? 하하.”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새 영화] 미라클 여행기

    [새 영화] 미라클 여행기

    구럼비 바위는 산산이 깨졌고, 언론은 일찌감치 무덤덤해졌다. 강정마을의 제주해군기지, 정식 이름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공사’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해군 관사 건립을 놓고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마을을 감싸고 돈다. 지금껏 이 마을 1800명 주민 중 665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539명이 기소돼 이 중 204명이 실형, 집행유예, 벌금형 등 판결을 받았다. 강정마을을 둘러싸고 펼쳐졌던 오래 삭은 갈망들과 희망 찾기는 이렇듯 각자의 입장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라클 여행기’에는 두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슬며시 지나간다. 성체를 들고 미사 집전을 위해 이동하는 천주교 신부의 길을 경찰들은 차도건, 인도건 모두 막는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동안 실랑이, 몸싸움을 벌인 뒤 겨우 지나간다. 그 뒤로 경찰 한 사람이 보일 듯 말 듯 성호를 긋는 모습이다. 또 다른 장면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강정마을의 한 주민이다. 그는 책마을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마치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책마을처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일장훈계를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담장 밑에서 키우던, 소담히 자라는 소라껍데기에 담긴 선인장을 선물하는 모습이다. 갈가리 찢긴 것처럼 보이는 제주 강정마을이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미라클 여행기’는 2013년 10월 17일 인천항을 떠난 배우 지망생 최미라가 강정마을에서 2박 3일을 보내며 겪고, 듣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정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 3만여 권의 책을 실은 배-공교롭게 지난해 4월 16일 참사를 당한 ‘세월호’, 즉 청해진해운의 배-를 타고 떠난 350명의 사람 사이에 섞여 그들이 강정마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듣고, 각자의 삶과 강정마을의 의미를 한 땀 한 땀 엮어낸다. 최미라 역시 배우를 꿈꾸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는 백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강정마을 사람들 사이로 이병률 시인, 문규현 신부,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노종면 YTN 해직기자 등 강정평화책마을을 만드는 데 동참한 이들의 얼굴이 카메라 안팎을 스치듯 드나든다. 다만 다큐 영화로서 형식적 어색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TV ‘여섯 시 내 고향’의 리포터처럼 최미라가 카메라와 서사의 중심이 돼 펼쳐지는 형식은 다큐 영화의 강점인 진실의 힘을 희석시키는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소박한, 소통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는 정도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전부터 수난이 이어졌다. 영화에 세월호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네이버 포털사이트 예고편에서 배 옆면에 쓰인 ‘청해진해운’ 글자를 모자이크 처리시키도록 종용받는가 하면,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시사회 대관을 거부하기도 했다. ‘미라클 여행기’는 15일 인디플러스, 아트하우스 모모,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 등 전국 15개 영화관에서 개봉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입담 좋은 할머니 모십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은 19일부터 제7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700명을 공개 모집한다고 15일 밝혔다.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구연에 소질이 있는 만 56~70세 이상 여성들을 뽑아 유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는 사업이다. 선발된 이야기 할머니들은 경북 안동의 국학진흥원에서 2박3일의 신규 교육과 서울과 대구, 부산, 대전, 광주, 제주 등 광역별로 월례교육 등 연간 70여 시간의 교육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활동하는 할머니들에게는 소정의 수업료 등을 지급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단원풍속도 등 공공저작물 200만여건 온라인에 푼다

    정부가 만든 공공저작물 200만건이 올해 추가로 개방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과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등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방한 국보, 보물 등 중요 소장품 1만 936점과 문화재청의 문화유물 사진 등을 비롯한 200만건의 공공저작물을 공공누리포털(www.kogl.or.kr)에 개방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저작권법 개정 이후 공개한 293만 3000건에 더해 개방된 공공저작물은 500만건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역시 공공저작물 26만 5000여건을 개방했고, 올해 추가로 46만여건을 개방할 예정이다. 2013년 문체부의 현황 및 수요 조사에 따르면 정부와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공저작물은 760만여건에 이른다. 이것이 모두 개방될 경우 경제적 효과는 2조 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하정우 “대중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 감독 입장에서 알고 싶었죠”

    하정우 “대중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 감독 입장에서 알고 싶었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스크린 속 멋진 몸뚱아리의 화려한 액션도, 가슴 먹먹하게 하는 절절한 눈빛도, 키득거리게 만드는 해학도 모두 배우들이 펼쳐 낸다. 촬영팀, 조명팀, 미술팀, 의상팀, 음악팀, 소품팀 등 수없이 많은 이들의 열정과 눈물이 더해져야 겨우 영화 한 편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중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 감독의 입장에서 알고 싶었습니다. 감독이 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웃음의 코드를 의심하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었지요. 저는 더이상 변명할 수 없는 감독이니까요.” 지난 12일 서울 중구 삼청동 한 찻집에서 하정우(37)를 만났다. 2013년 데뷔작 ‘롤러코스터’에 이어 새해 벽두부터 ‘허삼관’을 연출해 내놓았다. 이제 어엿한 ‘감독’으로 호명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의 첫 작품(롤러코스터)은 난해한 웃음 코드로 ‘마니아용 블랙코미디’라는 묘한 평가를 받았다. 관객은 27만명에 그쳤다. 첫 영화는 연출에 대해 갓 틔운 열망의 싹이었다. 그는 “사실 ‘롤러코스터’는 독립영화로 봐야 되는 것 아니냐”고 계면쩍게 웃으면서도 “첫 영화를 찍고 난 뒤 나 혼자만 웃긴다고 생각했고, 호흡이 빨랐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허삼관’을 찍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을 찾으려 노력했다”면서 “이번 영화를 찍으며 많이 고민했고, 열정을 쏟았고, 최선을 다해 만들었던 만큼 어떤 평가가 나오더라도 이게 나의 한계일 것”이라고 말했다. ‘후회 없이 만들었다’는 하정우식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하정우는 감독이기 전에 배우다. 꼬박 10년 동안 하정우는 강렬한 이미지로 늘 대중 곁에 있었다. ‘추격자’에서 평범한 이웃이자 끔찍한 살인마로 주변을 맴돌았는가 하면, 가난과 멸시가 서러웠던 ‘황해’의 조선족 청년이었고, ‘범죄와의 전쟁’의 조폭 두목이거나 , ‘베를린’의 버림받은 북한 비밀요원이었으며, ‘군도’에선 우직히 떨쳐 일어서는 민중들의 맨 앞에 선 순박한 도치였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감독 변신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서 막연히 영화감독이 되는 모습을 꿈꿨다”면서 “2012년 ‘베를린’ 촬영을 모두 마친 뒤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문득 영화를 한 번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감독 변신의 계기를 설명했다. “연기도 점점 매너리즘에 빠지는 듯했고, 배우로서 제가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컸습니다. 영화를 찍어야 배우로서 계속 활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허삼관’은 피, 자체를 서사의 씨줄로 삼고, 가족의 의미를 날줄 삼아 풀어낸 작품이다. 중국 소설가 위화(余華)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했다. 1953년, 그리고 1964년 충청도 공주로 시간과 공간을 틀었다. 원작 속 개인의 유장한 인생 흐름은 없지만, 피의 서사는 오롯이 남았다. 아버지 허삼관에게 피는 생존의 수단이었고, 힘겹고 가난한 시절, 가족을 이루게 해주는 필수적 요소였다. 영화 속 일락이는 11년 동안 듬직하게 첫째 아들 노릇을 했건만, 제 피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순간 허삼관에게 “사람들 없을 때는 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아저씨라고 불러”라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영화 후반부 아버지는 피붙이 아닌, 아픈 일락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피를 판다. 하정우는 “단순한 복고적 정서 되살리기를 피하기 위해 인물의 관계와 갈등에 더욱 집중하고, 미술과 음악 등 감각의 차이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준비된 감독 하정우의 흔적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는 순천 야외 세트장의 잘 자란 옥수수를 표현하기 위해 봄에 미리 심어놓는 꼼꼼함까지 선보였다. 또 감독 의자와 카메라 앞을 바삐 오가는 와중에도 세 아들 일락, 이락, 삼락이를 연기한 남다름(13), 노강민(10), 전현석(9) 등 아역배우들을 살뜰히 챙겼다. 스태프들에게 “고함 치지 말고, 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우디 앨런이나 찰리 채플린처럼 진한 페이소스가 있는 웃음을 그리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세 번째 작품은 마흔 살 넘어서나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 봤자 2~3년 남았다. 감독 욕심이 크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아부지 ‘1000만’입니더

    아부지 ‘1000만’입니더

    영화 ‘국제시장’이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1000만명을 넘어서며 올해 첫 1000만 관객 영화의 문을 열었다. 지난달 17일 개봉 직후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킨 ‘국제시장’은 28일 만인 13일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14번째로 ‘천만영화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영화로만 치면 열한 번째다. 이로써 윤제균 감독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천만 영화를 2편 보유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윤 감독은 2009년 ‘해운대’(1132만명)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제시장’은 윤 감독뿐 아니라 출연 배우들에게도 영예를 안겨줬다. 주인공 ‘덕수’ 역할의 황정민은 연기 인생 25년 만에 처음으로 ‘1000만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절정의 연기력에 흥행 배우로서의 명성까지 더하게 됐다. 또한 숱한 작품에서 명품 조연 역할을 해 온 오달수는 ‘1억명 배우’라는 전례 없는 명성을 얻게 됐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을 모두 더한 결과다. 영화는 한국전쟁 때 남으로 피란 온 뒤 한국 사회의 질곡 속에서 덕수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중장년층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해 더욱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영화는 현대사의 사건들을 취사선택해 다루면서 박정희 시절을 미화했다는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윤 감독이 “정치색을 배제했다”고 밝혔지만 인터넷 공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찬반 양론이 분분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유력 정치인들이 공개 관람을 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영화를 언급하면서 흥행세는 가속을 붙였다. 여기에 투자배급을 맡은 CJ E&M의 역할과 함께 뚜렷한 경쟁작이 없는 겨울 영화시장 조건도 ‘국제시장’의 흥행에 한몫했다. 계열사인 CGV를 통해 스크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국제시장’은 개봉 첫날 931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뒤 최대 1040개까지 스크린을 확보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국제시장’은 CJ가 지난해 후반기에 가장 공을 들인 영화이다 보니 스크린을 충분히 잡고 시작했다”면서 “CJ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영화 흥행에 주요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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