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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 고어 영화 ‘불편한 진실’ 속편, 다음달 나온다

    앨 고어 영화 ‘불편한 진실’ 속편, 다음달 나온다

    이제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지구 온난화의 위기를 경고하는 두 번째 영화가 곧 다가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에 대한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나 11일(현지시간) "내년 1월 19일 열리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앨 고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를 담은 두 번째 영화가 출품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앨 고어는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공유하기 위한 지구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06년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는 자신의 강의 내용을 담은 영화 '불편한 진실'로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받으며 전세계에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고어는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헌정해야할 때"라면서 "위기에 직면했지만 해결의 노력과 방법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만큼 희망을 잃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고어는 지난 5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와 만나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주제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트럼프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강경하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 문제는 중국이 날조한 것이고, 미국은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것. 물론 트럼프와 대화 직후 고어의 설명에 따르면 "대단히 재미있었고,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할 것"이라고 말해 긍정적 변화의 여지를 보이기도 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월드피플+] 英81세 현역 축구선수, 새 팀 찾고 있다

    [월드피플+] 英81세 현역 축구선수, 새 팀 찾고 있다

    영국 웨이머스 출신의 디키 보스윅은 영국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 중 최고령이다. 무려 81세. 그가 12살이던 1947년 처음 축구선수로 뛰었고, 70년 가까이 여전한 '현역 선수'다. 영국 BBC는 12일(현지시간) 보스윅의 축구선수로서 삶과 함께 그가 새로운 팀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69년 동안 축구선수로서 1600경기를 뛰면서 약 400골 정도를 넣었고, 단 한 번도 경고를 받은 적 없는 '페어 플레이어'였다. 물론 보스윅이 20~30대 젊은 선수들과 함께 시합을 뛰는 것은 아니다. 그도 얼마 전까지 '영국 위키 베테랑리그'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60세 갓 넘긴 '젊은 사람'과 함께 뛰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3년 전 전립선암에 걸려 투병한 뒤 힘들게 회복했던 병력도 그의 은퇴 배경이 됐다. 그렇다고 축구 자체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보스윅은 곧바로 '워킹 축구리그'로 '스카웃'됐다. 좀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술렁술렁 걸어다니며 공을 차는 리그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 리그에 가자마자 좀더 빠른 페이스로 공을 차고 시합이 진행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60세 정도 되는 젊은 사람들과 홈, 원정 경기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시합을 뛸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보스윅이 '베테랑 리그' 여러 클럽을 향한 '쇼케이스'를 펼치면서 당당히 새 팀을 물색하는 배경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아빠의 성탄선물은 ‘성형수술’…4300만원 들여 변신한 딸

    아빠의 성탄선물은 ‘성형수술’…4300만원 들여 변신한 딸

    '딸바보 아빠'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23살 딸에게 준 선물은 '완벽한 몸매'였다. 선물 비용은 3만7000달러(약 4320만원). 아일랜드에 사는 할레이 요크(23)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끼니 때마다 탄산음료 500ml 1병씩을 마시는 등 하루에만 꼬박 5병의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흡입해온 127㎏ 몸무게의 '약간' 뚱뚱한 여성이었다. 청소년기부터 각종 다이어트 실패와 폭식을 반복했고, 최절정기에는 플러스사이즈 옷조차 입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비만상태를 겪어야 했다. 신체질량지수(BMI)가 40을 훌쩍 뛰어넘었을 정도. 그동안 각종 다이어트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지난해 위의 80%를 제거하는 위절제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수술 뒤 몸무게는 절반으로 줄었으나 팔과 다리, 복부 등의 늘어진 피부는 또다른 고민으로 남게 됐다. 딸이 고민으로 울상지을 때 '슈퍼맨'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아빠다. 그의 아빠 토마스 요크는 과감하게 지갑을 열었다. 1만9000달러(약 2220만원)를 들여 복벽성형외과수술을 받게 해줬다. 또한 1만3500달러(약 1580만원)를 들여 처진 피부 제거 및 가슴확대 수술을 받게 했다. 그 결과 제거한 피부의 몸무게만 4㎏이었고, 몇 달 전 36D컵이던 할레이의 가슴은 38G컵으로 변신했다. 내친 김에 패션모델로서 일도 시작했다. 할레이는 "위 절제술을 통해 몸무게는 줄었지만 옷 안으로 늘어진 피부가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딱 맞는 옷을 입지 못했고 늘 우울했다"면서 "아빠는 언제나 나를 위해 최고의 것을 해주려 했고,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나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됐고, 이 모든 것은 아빠가 주신 선물"이라면서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물론 현재 그의 건강은 '아빠의 선물'인 의료기술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것은 아니다. 수술 뒤 엄격한 관리가 있었다. 할레이는 뉴스통신사인 케이터스와 12일 가진 인터뷰에서 "주 4회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하고, 엄격하게 짜진 식단으로 하루 6끼 소식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순록의 몸집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왜?(연구)

    순록의 몸집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왜?(연구)

    산타할아버지의 썰매를 끌어야할 순록의 몸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탓이다. 12일 로이터 등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노르웨이 북극해에 있는 스발바드섬의 순록의 평균 몸무게를 조사해본 결과 1990년대 55㎏에서 48㎏까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반면 1990년대 800마리 정도이던 스발바드섬의 순록은 현재 1400마리까지 늘어난 상태다. 이는 개체수는 늘어났지만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순록의 몸집은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노르웨이 연구자들과 함께 조사에 참여한 스코틀랜드 제임스휴튼연구소의 스티브 앨본 박사는 "기후변화로 인해 더 따뜻해진 북극해의 여름 날씨는 순록들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도 보이지만, 겨울의 환경 조건은 순록들에게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극해의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눈보다는 비가 더 많이 내리게 되고, 내린 빗물이 얼음으로 바뀌면서 초식동물들의 먹이 찾는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제 겨울이면 순록의 일부는 굶어주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여름이 되면 암컷 순록들은 풍성한 먹을거리를 누리면서 개체 수를 훌쩍 늘리고 있다. 앨본 박사는 "우리는 순록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몸집은 작아짐을 확인했다"면서 "개체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생존에 혹독한 환경인 겨울철에는 먹을 것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짐을 또한 의미한다"고 순록의 몸집이 작아진 배경을 설명했다. 박록삼 기자 youngan@seoul.co.kr
  • 중국男, 여친 손목 묶고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는?

    중국男, 여친 손목 묶고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는?

    중국 PC방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이 대륙의 누리꾼들을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사진의 진위 여부부터 시작해 남녀 혐오 문제 등 해묵은 논란까지 끄집어내게 하며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최근 중국 포털사이트 웨이보에 올라온 사진 속에서는 한 남자가 PC방에서 한창 게임(LOL)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그의 손목에 쇠사슬이 묶여 있고, 사슬의 또다른 한쪽 끝에는 한 여자의 손목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여자친구로 보이는 그 여자는 PC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덮고 누워 있었다.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풍경이지만 단순히 웃고 넘기는 수준을 넘어 논란으로 비화됐다. 이름과 나이 등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자는 "게임을 하는 동안 여자친구가 바람이 나서 도망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이렇게 붙들어놓았다"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여자 역시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얌전히 누워 있었고, PC방에 있던 다른 이들도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일부러 설정한 장면일 뿐일 것'이라고 진짜가 아닐 것이라 말하는가하면, '중국 남자들의 찌질한 근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여자 역시 노예나 되는 것처럼 저렇게 복종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등 분분한 의견을 쏟아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포토]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서울에도 횃불 등장

    [서울포토]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서울에도 횃불 등장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집회에는 150만명이 몰렸다. 지방 45만명 등 전국적으로 총 195만명이 모여 사상 최대였던 이전 촛불집회의 전국 190만명을 넘어섰다. 본 집회가 끝난 뒤 시작한 2차 행진에는 횃불이 등장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화장품 1만5000원vs 42만원…피부 효과 좋은 쪽은?

    화장품 1만5000원vs 42만원…피부 효과 좋은 쪽은?

    화장품의 가격은 같은 기능의 제품이라도 브랜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굳이 비싼 화장품을 쓰는 심리 기저에는 비싼 만큼 좋은 성분이 들어있고, 그만큼 피부에도 좋으리라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상식과 믿음이 틀렸다면? 19일 NZ헤럴드는 최근 9종의 기초화장품(모이스처라이저)의 제품명을 가린 채 비교 테스트한 결과를 보도했다. 놀랍게도 13뉴질랜드달러(약 1만5000원·이하 달러로 표기) 짜리 화장품이 520달러(약 42만6000원) 짜리보다 오히려 더 낫다는 결과가 나왔다. 13NZ달러의 화장품은 편의점 등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N사의 제품이었고, 반면 520달러라는 비싼 몸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으로 판명된 화장품은 글로벌 고급브랜드로 유명한 L사 제품이었다. 뉴질랜드 소비자단체(콘슈머NZ)가 행한 이번 비교테스트에는 25~66세의 여성들이 실험 참가자로 나섰다. 최고 520달러 L브랜드부터 96달러 E브랜드, 61달러의 N브랜드 등 9종의 모이스처라이저를 각각 한 달 동안 하루에 두 번씩 사용하면서 그 보습효과를 체험하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 L브랜드 제품은 다른 제품의 중간 수준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 받았다. 슈 체트윈 컨슈머NZ 대표는 "사람들이 모이스처라이저를 쓸 때 굳이 비싼 제품을 찾을 필요가 없으며 20달러 안팎의 가격 제품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피부과학 측면이나 저자극 효과를 원할 때도 (브랜드 보다는) 화장품의 성분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예민한 피부일수록 화장품의 향, 방부제 성분, 알레르기 유발 성분 등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하이재킹’된 ‘최고 높이 범죄소굴’의 대변신 시작

    ‘하이재킹’된 ‘최고 높이 범죄소굴’의 대변신 시작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 있다면 어느 곳에서도 뚜렷이 잘 볼 수 있는 건물이 있다. 파리의 에펠탑, 서울의 63빌딩, 뉴욕의 옛 쌍둥이빌딩처럼 랜드마크 역할을 해오는 건물이다. 바로 54층, 173m 높이의 '폰테시티 타워'(이하 폰테)다. 지난 17일(현지시간) NZ헤럴드는 요하네스버그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폰테'의 드라마틱한 흥망성쇠를 소개했다. 1975년 '폰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남아공은 극단적인 인종차별과 분리 정책,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 '폰테'는 요하네스버그 국제지구 힐브로에 세워졌고, 소수의 백인 부유층 중에서도 최고의 부호들만 들어갈 수 있는,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급 아파트로 자리매김됐다.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원통 모양에 가운데는 텅 비어 있는 형태다. 사우나, 자쿠지, 테라스 등을 집집마다 갖추고 어느 방향에서도 탁 트윈 전망을 확보했다. 하지만 '폰테' 입장에서 본다면 기가 막힐 저항의 기운이 몰아쳤다. 1980년대 즈음부터 힐브로 지구에 아프리카 전역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폰테'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덩달아 범죄조직들도 근처에 활동 근거지를 만들었다. 위협을 느낀 백인 입주민들은 계속 빠져나갔고, 아파트는 점점 비어가게 됐다. 이들의 저항을 진압하는 데 골머리를 앓던 남아공 정부는 이 지역의 전원을 차단하고 경찰력을 철수하고 말았다. 0.1%의 최상위층만 살 수 있는 선망의 건물이 '하이재킹된 빌딩'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폰테'에서는 마약과 살인, 강도, 매매춘 등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무법의 치안부재 공간이 됐다. '폰테'의 비어 있던 원통 안쪽에는 14층 높이까지 쓰레기 더미가 쌓이기도 했다. 쓰레기더미 안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것 또한 별로 드문 일이 아니었다. 요하네스버그시 가이드 제임스 만군자는 "시민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너 공부 안하고, 엄마 말 안 들으면 폰테에서 살게 된다'는 뻔한 겁박을 하는 건물이 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폰테'에도 또다른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 1991년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적으로 철폐되며 인종차별과 관련된 각종 통제와 억압의 정책은 제도적으로 혁파된다. 그리고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올라 그 정점을 찍게 된다. 물론 만델라에게도 '폰테' 문제를 당장 해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예 건물 자체를 감옥으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되기도 했다. 극적인 변화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개최였다. 관리회사를 바꾸고 어마어마한 높이의, 악취나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도심 명소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요하네스버그 인근 마보넹지역의 사례를 참고했다. 버려진 빌딩으로 가득해 슬럼화됐던 마보넹은 2000년대 초반 도시재정비사업을 통해 카페, 패션숍, 갤러리 등으로 채워진 문화예술타운으로 변신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폰테'에서 살던 남아공 빈민들과 아프리카 불법이민자들이 쫓겨나야 하는 문제 등이 발생되기도 했다. 각종 국제상업자본들이 앞다퉈 몰려오는 전형적 현상 또한 나타났다. 도심재개발 관련 전문가인 에이단 모슬레슨(요하네스버그 위트워터즈랜드 대학) 교수는 "요하네스버그시의 문제는 단순히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문제로 단순히 보기에는 좀 복잡한 측면이 있다"면서 "자본의 요구에 의해 개발되는 부분도 있지만, 공간과 인종의 통합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폰테'의 범죄율은 10년 전보다 훨씬 떨어졌지만, 여전히 남아공에서는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그럼에도 '폰테'는 다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가이드 제임스 만군자는 "폰테는 지금 입주민들로 가득 찼으며, 이사를 가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선망의 아파트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남편 혹은 아내의 꼴보기 싫은 습관과 해결법

    남편 혹은 아내의 꼴보기 싫은 습관과 해결법

    'N포 세대'의 시대다. 집, 직장 등 수많은 이유로 결혼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설령 어렵사리 결혼한 뒤에도 그 삶이라는 게 처음 콩깍지에 뒤덮여 있을 때처럼 알콩달콩 행복한 나날만 이어질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꿈꿔왔던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기 십상이다. 20년 이상을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가치를 갖고, 다른 삶의 방식으로 지내온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지낸다는 것은 또다른 갈등과 대립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상대방이 습관적으로 하는 사소한 행동 탓에 자신이 중시 여기는 가치와 영역이 무시로 침범당하고 흐트러지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 갈등의 무게감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미국 NBC뉴스의 계열사인 투데이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파트너의 문제 있는 습관은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으며, 각 문제별로 어떻게 다루고 극복해낼지까지 정리해 소개했다. 비록 외국언론의 보도이고 서양의 생활, 문화가 우리와 다를 법도 하지만 놀랍게도 공통점이 더 많다.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지낸다는 것은 동서불문 공통된 문제를 잉태할 수밖에 없는 탓일 테다. 집안의 권력투쟁이 대충 끝난 이들 말고 이제 막 파르르한 커플 전선의 복판에 있는 이들이라면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다. 1. 생리적 습관 뻔하다. 방귀뀌기, 트림하기, 콧구멍 파기, 이쑤시기 등 행동이다. 남들과 있을 때면 화장실로 슬며시 가서 해결하기도 하지만 유독 파트너 앞에서는 편하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곤 한다. 물론 이해와 인정이 있으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은 괴롭기 마련이다. 이때는 묻자. '나에게 더이상 섹시한 모습으로 비쳐지기 싫은가보지?'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좀 더 주의할 것이다. 2. 상대방 말 흘려 듣기 일껏 마음 속 얘기를 털어놓는데도 상대방의 눈은 TV 드라마 혹은 스포츠중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스쳐지나갈 일상 얘기라면 큰 관계 없을 수 있지만, 나름 진지하게 얘기하는 상황이라면 이만저만 속상할 일이 아니다. 둘 사이에 '약속 낱말'을 만들어보자. 예컨대 '바나나', '찰떡' 등 낱말로 말이다. 그리고 정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당신의 말에 귀기울이기를 바랄 때 써보자. 파트너의 태도는 바뀔 것이다. 3. 게으름 부리는 행동 결혼은 일상의 연속이다. 지나칠 정도로 작고 사소한 일들이 모여서 결혼이 된다. 빨래, 청소, 음식 장만, 설거지 등등은 누구나 해야할 일이지만, 대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적당히 어지러운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절대 봐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해서 결론을 내라. 역할분담, 공동작업의 시간과 부문 등을 정해보자. 물론 양보는 불가피할 것이다. 결혼은 일종의 단체생활이니까. 4. '변기 뚜껑'의 문제 화장실은 남녀가 늘상 공유하면서 사용의 방식이 아주 많이 다른 대표적인 공간 중 하나다. 사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변기 커버의 오르락내리락 문제'가 싸움의 발단이 되는 건 대부분 남녀커플이 결혼 초기에 한 번쯤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네안데르탈인 혹은 교양, 혹은 야만 운운하며 화를 내는 건 결코 능사가 아니다. 포스트잇을 활용해보자. 일부러 그러지 않는 한 상대방의 오랜 습관은 서서히 고쳐질 것이다. 5. 결정권, 선택권의 독점 보고싶은 영화도 두 사람 사이에 다를 수 있다. 식당의 메뉴도 당연히 다를 수 있다. 보고싶은 TV도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야구중계 등 다르다. 그럼에도 그것을 독점하고 자기의 취향대로만 결정하려는 이들은 심히 피곤한 캐릭터다. 이건 사소한 기술적 방법이 아닌 가정 내 권력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상황이다. 각자가 의미를 두는 것, 상대적으로 의미를 덜 두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인정해야 한다. 각 문제별 답을 제시했다. 모두에게 해결책이 될 정답은 물론,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의 눈으로 봤을 때 탐탁치 않은 습관을 갖고 있다. 또한 그만큼이나 상대방은 당신이 갖지 못한 장점을 충분히 갖고 있다. 이해하고 인정하고 양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그것도 할 수 없다면? 어떡하겠나,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아침식사로 바나나를 먹으면 안되는 이유

    아침식사로 바나나를 먹으면 안되는 이유

    바쁜 아침 이것저것 갖춰놓고 아침밥 챙겨 먹을 겨를이 없다. 이럴 때 속을 든든히 채워주면서도 껍질 쉽게 벗겨 먹을 수 있는 간편성까지 갖춘 바나나가 대안으로 애용된다. 게다가 다이어트와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졌으니 기쁜 마음으로 아침밥 대용 삼아 바나나 두 어개를 챙겨먹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아침에는 오히려 바나나를 먹어선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돼 뒷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매체 메트로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전문가의 말을 빌어 아침에 바나나를 집어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건강하고 현명한 식사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바나나는 칼륨과 섬유소, 마그네슘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건강식 및 다이어트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영양학자인 달리 지오프리 박사는 "바나나에는 25%의 자연당이 있고 적절한 수준의 산성을 포함하고 있어 밤새 잠들어있던 체세포를 깨워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만큼 금세 지치고 배고프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당 성분이 몸 속에서 소화되면서 맥주나 와인처럼 발효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것이 산과 알콜로 바뀌게 되며, 이는 소화기 계통의 정상적 활동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나나에 대한 기존의 상식에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손에 들고서 반쯤 먹고 있는 바나나를 당장 집어던져야 하는 건가. 물론 지오프리 박사가 바나나가 갖고 있는 건강 식품으로서 요소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는 건강식으로서 바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다른 음식'을 적절히 곁들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건강에 좋은 지방이 함유된 음식 등으로 균형잡힌 식단을 꾸리지 않으면 바나나의 장점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아침식사로 바나나를 먹으려 한다면 무가당 요거트나 땅콩잼 바른 토스트 한 조각, 또는 포리지(오트밀 죽) 등을 함께 곁들일 것을 권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미국 최초 여성대통령 후보는 클린턴 아닌, 144년 전 우드헐

    미국 최초 여성대통령 후보는 클린턴 아닌, 144년 전 우드헐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의 공식 대선후보가 됐다. 그는 이날 수락연설에서 "유리천장에 가장 큰 금을 냈다"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많은 언론매체들은 그에게 역사상 '첫 여성 대선후보'라는 타이틀을 그에게 안겼다. 하지만 미국의 첫 여성 대선후보는 사실 클린턴이 아니었다. 그보다 144년 전 한 여성이 존재했다. 바로 빅토리아 우드헐(사진·1838~1927)이다. 30일(현지시간) 미국의 소셜뉴스사이트 레딧에서는 우드헐의 삶과 활동 등을 정리한 글 하나가 올라오자마자 누리꾼들의 관심을 잡아끌었다. 우드헐은 1872년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끈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의 대선 후보였다. 그는 당시 남녀평등을 위해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선거 결과는 한 명의 선거인도 확보하지 못한 참패였다. 자신이 발간하던 잡지에 유력 남성 인사들의 섹스 스캔들을 폭로했다가 음란물 출판 및 비방으로 체포돼 대선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탓도 컸다. 그리고 미국이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게 거의 반세기 뒤인 1920년이었다. 우드헐은 시대를 너무나도 많이 앞서간 선각자였다. 우드헐은 참정권은커녕 여성 투표권도 없던 시절에 소수정당 대선후보로 나선 것이었다. 뉴욕에서 지식인 살롱을 만드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고, 월스트리트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주식중개소를 내기도 했다. 그는 당시 평등권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나는 여성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시정할 사회적·가정적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클린턴 못지 않은 의미있는 연설을 남겼다. 레딧 사이트에는 순식간에 800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들은 '우드헐은 또한 자유연애를 옹호하기도 했고, 아마 역사상 첫 히피일 것이다', '그해 평등당에서는 부통령 후보로 노예 출신으로 노예해방운동의 리더인 프레드릭 더글라스를 지명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자신이 부통령 후보로 선출된지 몰랐다', '백인 여자 대통령 후보에 흑인 남자 부통령 후보라니 흥미로운 런닝메이트였네' 등등의 관심과 부가 정보 등을 덧붙였다. 사진=위키피디아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히틀러 생가’ 철거? 슈퍼마켓? 고민하는 오스트리아

    ‘히틀러 생가’ 철거? 슈퍼마켓? 고민하는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북부 도시 브라우나우 암 인의 한 거리에 있는 3층의 노란색 건물. 주변의 여느 건물처럼 오래되고 낡았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게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이곳은 너무도 특별한 곳이다.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수백 만명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반인류범죄의 전범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태어난 곳이다. 건물 바깥에 '평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수백 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파시즘을 경계한다'라고 적힌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최근 이 건물의 소유권을 몰수하는 법안을 12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했다. 올해 안으로 의회를 통과할 전망이며, 그렇게 되면 정부가 이 건물의 처분권을 갖게 된다. 문제는 이 '문제의 건물'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산부인과 병원으로 쓰자는 의견에서 슈퍼마켓으로 하자, 소방서로 하자, 노숙자 수용시설로 하자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볼프강 소보트카 내무부 장관은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레이놀트 미터레너 부총리는 "문화재 보호 법규 때문에 철거는 불가능한 만큼 교육적 목적의 박물관이나 전시장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의 의견은 이렇게 다양하지만, 지향하는 목적은 마찬가지다. 바로 신나치 극우주의자들이 이곳을 '히틀러 성지'로 삼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유럽 전역의 극우인사들이 심심찮게 이곳을 들러 '히틀러 광장', 혹은 '히틀러 공원'으로 추앙하고 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급한 것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여기는 남미] 멕시코 마약전쟁 10년, 2만8000명이 사라졌다

    [여기는 남미] 멕시코 마약전쟁 10년, 2만8000명이 사라졌다

    2006년 멕시코 정부가 '마약 전쟁'을 선포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멕시코에서는 2만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마약 전쟁'이 남긴 심각한 후유증이다. 멕시코 인권위원회는 지난 1일(현지시간) 2006년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 기간 동안 멕시코사회에서 벌어진 인권백서를 펴내고 마약 카르텔과 치르는 전쟁, 마약 카르텔끼리 저지르는 전쟁 등 틈바구니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늘어나는 실태를 고발했다. 멕시코 마약전쟁은 멕시코 군부가 세력 다툼을 벌이는 마약 카르텔 사이에서 벌어진 모든 폭력을 종식시킨다는 목표로 2006년 멕시코 군부가 개입하면서 본격화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다루는 마약의 대부분은 미국으로 불법 밀매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간 수익은 최대 500억 달러(약 57조 3500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올초 멕시코 마약왕 구스만을 체포한 것은 가시적 성과의 하나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 마약 카르텔, 시민자경단 사이에서 비정규전 형태로 벌어지는 만큼 애꿎은 희생자들이 양산된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공식 사망자 수만 6만명이 넘으며 실종자까지 합치면 1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멕시코에서 발생한 최악의 실종 사건은 2014년 멕시코 남부도시 이구알라에서 사범대학에 다니던 대학생 43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일이다. 1968년도에 벌어진 대학살 기념집회에 참석하려던 중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사후 조사 과정에서 당시 이구알라 시장이 경찰을 시켜 학생들을 납치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은 현지 마약조직에 대학생들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멕시코 정부는 실종자 파악 및 추적에 뚜렷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실종자 DNA 등 관련 정보를 독점하면서 실종자 파악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사회와는 전혀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권위원회 관계자는 "특별히 정치적, 사회적 저항을 펼치지도 않은 사람들이 실종 희생자가 됐다"면서 "실종의 원인도, 배경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오히려 희생자를 비난하거나 사실 관계를 부정하는 말 밖에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2만 8000명에 대해 어떤 조사를 진행하거나 그러려는 움직임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UN 인권고등판무관 사무소 얀 야랍 대표 역시 "멕시코 정부는 실종자들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일부 조사 역시 사실상 실패했다"고 멕시코 인권위의 보고서에 힘을 실어줬다. 박록삼 기자 youngtna@seoul.co.kr
  • ‘마약전쟁 10년’…2만8000명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마약전쟁 10년’…2만8000명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2006년 멕시코 정부가 '마약 전쟁'을 선포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멕시코에서는 2만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마약 전쟁'이 남긴 심각한 후유증이다. 멕시코 인권위원회는 지난 1일(현지시간) 2006년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 기간 동안 멕시코사회에서 벌어진 인권백서를 펴내고 마약 카르텔과 치르는 전쟁, 마약 카르텔끼리 저지르는 전쟁 등 틈바구니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늘어나는 실태를 고발했다. 멕시코 마약전쟁은 멕시코 군부가 세력 다툼을 벌이는 마약 카르텔 사이에서 벌어진 모든 폭력을 종식시킨다는 목표로 2006년 멕시코 군부가 개입하면서 본격화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다루는 마약의 대부분은 미국으로 불법 밀매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간 수익은 최대 500억 달러(약 57조 3500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올초 멕시코 마약왕 구스만을 체포한 것은 가시적 성과의 하나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 마약 카르텔, 시민자경단 사이에서 비정규전 형태로 벌어지는 만큼 애꿎은 희생자들이 양산된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공식 사망자 수만 6만명이 넘으며 실종자까지 합치면 1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멕시코에서 발생한 최악의 실종 사건은 2014년 멕시코 남부도시 이구알라에서 사범대학에 다니던 대학생 43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일이다. 1968년도에 벌어진 대학살 기념집회에 참석하려던 중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사후 조사 과정에서 당시 이구알라 시장이 경찰을 시켜 학생들을 납치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은 현지 마약조직에 대학생들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멕시코 정부는 실종자 파악 및 추적에 뚜렷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실종자 DNA 등 관련 정보를 독점하면서 실종자 파악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사회와는 전혀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권위원회 관계자는 "특별히 정치적, 사회적 저항을 펼치지도 않은 사람들이 실종 희생자가 됐다"면서 "실종의 원인도, 배경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오히려 희생자를 비난하거나 사실 관계를 부정하는 말 밖에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2만 8000명에 대해 어떤 조사를 진행하거나 그러려는 움직임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UN 인권고등판무관 사무소 얀 야랍 대표 역시 "멕시코 정부는 실종자들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일부 조사 역시 사실상 실패했다"고 멕시코 인권위의 보고서에 힘을 실어줬다. 박록삼 기자 youngtna@seoul.co.kr
  • [건강을 부탁해] 코코넛 오일이 몸에 좋다고? 진실과 거짓

    [건강을 부탁해] 코코넛 오일이 몸에 좋다고? 진실과 거짓

    코코넛 오일은 지난해부터 한국사회를 휩쓸고 간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미란다 커, 기네스 펠트로 등 할리웃 스타들이 앞다퉈 코코넛 오일의 효과를 소개했고, 국내에서도 유명 배우들이 실제 체험 사례를 얘기하며 열풍을 이끌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코코넛 오일의 효능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면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눈화장을 지우고, 치아미백용으로 쓰이고, 피부와 모발 보습효과도 뛰어나며, 살을 빼게 해주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며,면역체계를 강화하며, 피부를 재생시키고…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놀라운 효능이 얘기되어지고 확대재생산되었다. 코코넛 오일을 꿀꺽 삼키든, 피부에 바르든 쓰임이 없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코코넛이라는 열매가 하루 아침에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면 이리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는 것은 좀 의아하지 않는가. 혹시 웰빙산업 열풍 속에서 이윤만 쫓는 업계에 의해 농락당한 것은 아닐까. 린디 코엔 영양학연구재단 설립자는 "시중에서 얘기하는 수없이 많은 장점들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없다"면서 "만약 당신이 더 건강해지길 원한다면 그 식이요법의 목록에 코코넛 오일을 포함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물론 코코넛 오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코코넛 오일에는 지방을 더 빨리 태울 수 있는 중간사슬지방산(MCFA)이 92%가 들어있어 체지방이 쌓이지 않게 도와주며, 라우린산 등 천연항생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두 가지로 상반되는 의견이 대립하는 지점은 과연 코코넛 오일의 지방이 심장 또는 심혈관계통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다. 린디 박사는 "사실 코코넛 오일을 즐겨 섭취하는 이들에게서는 심장관련 질환이나 당뇨병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코넛 오일에 들어간 라우린산은 몸에 좋은 HDL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뿐 아니라 몸에 나쁜 LDL콜레스테롤 수치까지 함께 높인다는 것이 심장관련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업계와 시장에서는 더 많은 과일과 야채를 먹으라는 얘기는 하지 않은 채 그리 익숙하지도 않고 이국적인 과일인 코코넛의 강점을 얘기하며 관련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시장과 자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씨드컨셉트'의 대표이자 영양학자인 벨린다 커크패트릭은 "사실 식물성 오일이 당초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몸에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확인하기 시작했다"면서 "카놀라유, 해바라기씨유 등의 식물성 오일은 추출 과정에서 높은 열을 가하면서 화학적 반응을 나타내고 정제작용이 일어난다"면서 "그렇게 만들어진 식물성 오일의 불포화지방산은 매우 불안정하고 산화되기 쉽다"고 말했다. 사진=©peterzsuzsa/Fotolia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그 남자는 스마트폰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 남자는 스마트폰과 결혼식을 올렸다

    턱시도 차림의 그는 사뭇 진지했다. 미국 라스베가스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주례가 '신부'를 영원히 존중하고, 사랑하고, 늘 충실하며, 행복한 삶을 살겠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네(I do)"라고 대답하며 서약했다. 이제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 반지를 끼워주는 시간,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건너편 '신부'쪽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신부'는 순결한 하얀색 보호커버를 온몸에 덮은 검정색 아이폰. 신랑은 스마트폰 고리에 왼손 네번째 손가락을 끼웠다. 주례는 결혼이 성립됐음을 엄숙히 선언했고 하객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라스베가스 리뷰저널은 2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애론 체르베낙(34)이 지난달 네바다주 라스베가스로 360km를 달려가 그의 스마트폰과 결혼식을 치렀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그가 '스마트폰 덕후'이거나 '화성인'인 것은 아니다. 멀쩡하게 로스앤젤레스에서 예술감독 일을 하고 있는 애론의 이날 결혼식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법적인 결혼도 물론 아니다. 그는 결혼식을 전후로 남긴 영상을 통해 "사실 우리의 삶은 스마트폰과 너무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어떤 경우 감정적 수준에 이를 정도"라면서 "실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위안을 받고 기쁨을 얻고 있는 등 우리 삶에서 가장 길고 긴 관계를 맺고 있지 않냐"라고 말했다. 라스베가스 교회의 대표인 마이클 켈리는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삶은 실제 스마트폰과 너무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아침이면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일어나고, 하루종일 시시때대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체크하고, 저녁에는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든다"면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얼마나 매달려있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애론의 상징적 행위에 동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숱한 댓글들이 쏟아졌지만 '18개월 뒤에 신부 바꾸겠네'라는 한 줄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진화론과 지동설 부정하는 보코하람…교사 학살의 이유

    진화론과 지동설 부정하는 보코하람…교사 학살의 이유

    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은 지리 교사 등 교사들을 집중적으로 살해했다. 이유는 간명하다. 자신들이 부정하는 진화론과 지동설을 가르친다는 이유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11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교원노조 자료를 인용해서 보코하람이 2009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교사 611명을 살해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북부지역 방언인 하우사어로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이다.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 인류가 진화한다는 다윈주의 등 생물학, 물리학 등 현대과학이론을 모조리 부정하며 혐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보코하람은 지구가 둥근 게 아니라 평평하고, 강우 현상도 증발한 수증기가 모였다가 내리는 게 아니라 신의 신성한 뜻에 따른 것으로 믿고 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교사들의 학살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합리적 배움의 기회를 상실한 95만명 학생들에게 미친다는 사실이다. 2009년 이후 교사직을 그만둔 교사는 모두 1만9000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그것도 모자라 2012년 9월 마이두구리의 한 중학교에서 말람 아지리 말라 교사(지리)에게 총탄 6발을 퍼붓는가하면, 영어 과목은 물론이거니와 생활지도 교사와 이슬람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도 자신들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살해 대상으로 삼고 있다. 25달러(약 2만8600원)에 매수된 극빈 지역 출신의 한 학생은 자신이 다닌 학교에 불을 지를 정도로 합리적 교육 상실의 후과는 큰 상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100년 현대사 ‘비운의 1번국도’ 시작점, 목포

    100년 현대사 ‘비운의 1번국도’ 시작점, 목포

    길은 거기에서 시작됐다. 뭇 사내들과 아낙들이 이고 진 채 거처를 옮겨다니며 발바닥으로 꾹꾹 다진 길이었다. 정주(定住)의 안온함을 뒤로 하고 삶을 찾아, 죽음을 피해 옮겨야함[移住]은 인간의 새로운 숙명이 되었다. 애초에 인간은 짐승과 흡사했다. 머무르지 않았고, 머무를 수 없었다. 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역시 근대에 접어들며 오랫동안 인간의 발때 묻은 길을 대신하는 길을 만들었다. 아스팔트로 널찍하게 다져진 국도는 새로운 길의 시작이었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선거는 끝났고, 누군가는 낙담하고 누군가는 환호한다. 덤덤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야할 때다. 대한민국의 국도 1번이 시작되는 길을 찾았다. 전남 목포다. 영산로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북쪽으로 이어졌다. 나주, 광주, 장성을 거쳐 전주, 천안, 평택, 서울을 지나 파주까지 잇고 있다. 철책에 막혔을 뿐 북한땅 신의주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1번 국도는 제 모습을 완성시킨다. 식민의 시절에 닦여 전쟁과 분단으로 가로막힌 한국 현대사 속 비운의 길이며, 여전히 사람의 손길, 발길을 갈망하는 미완성된 길이다. 그렇게 길의 시원(始原)을 더듬어 갔다. ●신의주까지 939㎞·판문점까지 498㎞1, 2번 국도의 시작인 영산로의 시작점에 ‘국도 1, 2호선 기점’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돌비석과 도로원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신의주까지는 939㎞이고, 판문점까지는 498㎞임을 알려 준다. 도로원표 너머 바로 위쪽에는 얼마 전까지 목포문화원으로 쓰던 건물이 영산로를 굽어보고 있다. 원래는 목포일본영사관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목포일본영사관은 역사적으로도 건축학적으로도 의의가 깊기에 1981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일제는 1897년 10월 1일 목포항을 개항한 이후 1900년 1월 이곳에 일본영사관을 착공한 뒤 열 달 만에 완공했다. 쌀과 소금 등 수탈 물자를 본국으로 실어 날라야 했고, 본국에서 가져온 전쟁물자를 만주 대륙으로 가져가야 했던 그들로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길이었다. 100년 전 어느 날 이 높은 곳에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큰 뜻'을 품은 채 흐뭇하면서도, 우려 섞인 눈빛으로 이 길을 주시했을 그들의 얼굴이 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무료한 표정으로 옛 식민의 수뇌부가 봤을 눈높이쯤에 놓인 벤치에 앉아 영산로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씰한 사내 두엇의 시선 역시 그 길 언저리에 닿아 있다. 옛 일본영사관 돌계단 아래 도로원표 옆에는 놀이터가 있지만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만 서너 명 길가에 걸터 앉아 두런거리고 있다. 이제는 쇠락했지만 한때 조선 땅 최고의 번창함을 자랑했던 목포시 영산로는 세상의 변화와 시대의 교체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쇠락한 식민지 중심가에는 고적함만 피식민의 좌절과 울분 서린 기억은 잠시만 접어 두자. 영산로는 누가 뭐래도 목포 제일의 번화가였다. 돈이 모였고, 문화와 예술이 모였고, 멋과 풍류가 모였다. 호남 최대의 일본식 정원이 꾸며진 이훈동 정원과 그의 호를 딴 성옥기념관은 그 시절이 당대를 어떻게 선도했는지 고스란히 증명한다.이훈동정원은 1930년대 일본인이 지은 집을 당시 조선내화 창업자인 이훈동이 사들여 꾸몄다. 여전히 ‘이훈동’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다. 석등과 석탑, 연못, 정원 등은 일본 여느 곳보다 더 일본의 전통을 품고 있으며 일본식 정원에 없던 벚나무, 동백나무 등 여러 꽃나무들을 심어 자신만의 뜰로 꾸며 놓았다. 호남에서 가장 큰 개인 정원이라는 설명도 덧붙는다. 너무도 유명한 곳이지만 개인 소유 건물이기에 미리 목포시 등을 통하지 않고는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훈동 정원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바로 옆 성옥기념관에서 어느 정도 풀어낼 수 있다. 각종 개인 소장품과 당시 기록물 등은 조선내화 창업자이자 전남일보 발행인으로서 성옥 이훈동이 목포, 전남 경제권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짐작하게 하고 나아가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특히 그곳 근처에는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잔혹상이 있다. 바로 목포근대역사관이다. 일제의 조선 수탈 전진기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을 개조해 만들었다. 당시 8곳에 이르는 동양척식회사 지점 중 소작료를 가장 많이 거둔 곳이다. 2층에는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까지 있을 정도다. 문구 만으로도 당시의 잔혹한 식민지 수탈의 참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역사관 맞은편 모퉁이에는 적산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가 여행객들의 입소문을 많이 탔다.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역은 영산로 시점에서 천천히 걸어도 10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가는 길에 초원실버호텔 오른쪽이 오랜 시절 복달임하는 음식으로 손꼽히던 민어회를 전문으로 파는 ‘민어의 거리’다. 식민의 시절은 물론 지금까지도 날이 서서히 더워지는 7~8월이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물론 값이 많이 비싼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이곳들은 목포를 찾는 이라면 결코 모두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다. 영산로를 모두 밟으려면 신의주, 최소한 파주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짧은 10분 남짓 동안 느린 걸음만으로도 100년 남짓의 시간을 단숨에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시간 이동의 길이다. 사진=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목포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가파르게 성장하는 中國의 G2 전략, AIIB와 일대일로

    가파르게 성장하는 中國의 G2 전략, AIIB와 일대일로

    육해상을 잇는 21세기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말 출범한 AIIB는 벌써 57개 국가가 참여했으며, 조만간 100개 국가를 넘어설 전망이다. 8일(현지시간)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팅포스트에 따르면 진리췬 AIIB 총재는 최근 한 포럼에 참석해 "현재 50개가 넘는 국가에서 AIIB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조만간 이사회를 개최해 신규 회원국 선정 절차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AIIB는 중국 주도하에 아시아 국가들의 도로, 철도, 항만 등의 인프라(사회간접자본) 건설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구다. 이를 통해 주변 국가로서는 투자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중국으로서는 주변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또한 중국 현지언론은 9일 '일대일로'와 연계한 국가들과 수출입을 통해 지난해 9955억달러(약 1148조 3000억원) 어치의 무역액을 달성했다는 내용을 담은 중국 상무부 자료를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중국 무역총액의 25.1% 수준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중 중국 기업의 직접 투자액은 148억2000만달러(약 17조948억원)로 전년보다 18.2% 증가했고, 이들 국가의 대중국 투자액은 84억6000만달러(약 9조7586억원)로 역시 23.8% 늘어났다. 이 두 가지 사업은 중국이 명실상부한 G2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추진하는 '경제굴기' 대외경제 장기 프로젝트의 핵심 축이다. 중국으로서는 AIIB가 국가의 경제정책을 통해 정치, 군사적 과제까지 확장시켜 수행할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라면, 일대일로는 민간과 기업끼리의 경제 교류를 통해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중국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비공식적 루트다. 선단양(沈丹陽)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과 일대일로 연선 국가 간 경제통상위원회 등이 긴밀히 협력해 무역을 진흥하고 소통을 강화한 결과 무역액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올해도 여러 영역의 협력수준을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길은,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삶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대처로 떠나는 자식의 발걸음이 잠시 떨리며 머뭇거렸음을, 옷고름 사이로 떨어진 어미의 눈물방울이 짭짜름했음을 동구밖 길은 아주 오래 기억했다. 동네를 감아 도는 그 길을 걸었다. 1930년대 중반 그 봄,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으면 통영 앞바다가 훤히 펼쳐졌을 게다. 여황산자락 아래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을 지난 눈 속에는 쉴 새 없이 고깃배가 오갔고, 부푼 꿈을 안고 오는 이, 또 다른 꿈을 이고 타향으로 떠나는 이가 엇갈리는 낡은 선창이 비쳤을 테다. 하지만 사랑을 잃은 사내에게는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도 오롯이 아름답기 어려웠으리라. 한참 나중에 호사가들이 통영을 일컬어 ‘한국의 베니스’ 운운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칭송했지만, 스물넷 평안도 출신의 청년시인 백석(1912~1995)에게는 실연의 상처가 훨씬 컸을 수밖에 없었다. 백석은 사랑을 위해 멀리 남쪽 바다까지 헛걸음을 반복해야 했다. 한 번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른 두 번은 사랑을 기억하며 가슴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찾았다. 그러나 한 번 떠난 사랑이 돌아올 리는 없는 법. 통영을 다녀왔던 길은 그의 작품 속 중요한 지역의 하나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으로 갈무리됐다. ●삼도수군통제영 복판 여황산 끼고 돌아 백석의 발길로부터 80년의 시간이 흐른 봄, 통영을 찾았다. 그가 시 ‘통영1’에서 묘사한 것처럼 통영 여황로에는 마침 ‘김 냄새 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차들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고, 타관의 학생들을 실은 수학여행 버스들은 줄을 지어 여황로 길을 지나고 있었다. 여황로는 174m의 야트막한 여황산(艅山)에서 비롯된 이름의 길이다. ‘여황’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임금이 아끼던 화려한 배로, 훌륭한 군세를 갖춘 큰 전선을 상징했다. 통영항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산세를 펼치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의 복판에 자리잡은 산이니 딱 걸맞은 이름이다. 통영시 북쪽 여황산 아래쪽으로 4113m 이어지며 문화동, 북신동, 명정동 등을 감싸고 돈다. 통영은 현대문화예술의 보물창고와도 같다. 특히 여황로 하면 일단 백석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여황로 충렬사 앞에는 백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통영2’라는 시다. 편의상 ‘통영1’, ‘통영2’라고 했지만 발표 당시 원래 제목은 모두 ‘통영’이었다. ‘통영2’는 그가 통영에 대해 쓴 시편 중 가장 길고 유려하며 음율을 잘 살렸다. 그는 ‘통영2’에서 이곳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또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에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여황로 길가에 앉아 한껏 달떠서 혼자 히죽거리는 백석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곧 깨지고 말 단꿈이었지만. 여기에 원체 아름다운 통영의 풍광까지 한눈에 들어왔으니 시인의 시심이 절로 우러났을 것임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백석 시비 앞 명정샘 박경리가 소설에 써 ‘난’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막 문청을 벗고 등단해 시인이 된 그는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통영 출신의 이화고녀 졸업반이던 박경련을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귄다. ‘난’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는 박경련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통영을 찾았지만 걸음이 엇갈려 만남이 어긋나게 됐다. 난의 집이 충렬사 근처인 명정동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사이 그의 직장(조선일보)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가 난과 결혼을 해 버리고 말았다. 사랑과 친구를 함께 잃은 아픔 탓이었을까. 그는 그해 조선일보를 그만뒀다. 그리고 기생 자야(子夜·본명 김영한·역시 백석이 붙여준 애칭이다)를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눴고, 고향집 부모님의 성화에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렀지만 다시 자야에게 돌아갔다. 1940년 자야마저도 떠나 고향땅인 신의주, 정주로 갔다. 그가 통영에 대해 직접 남긴 작품은 ‘통영 1, 2’ 외에 ‘남행시초2-통영’ 등 모두 세 편이다. 특히 ‘남행시초2-통영’ 시편 마지막에는 난의 외사촌 오빠인 ‘서병직씨에게’라고 적었다. 그를 통해 통영 장터며 선창 등을 둘러봤음을 알게 해준다. 백석이 들여다본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골 명정샘은 지금도 여황로 시비 앞에 있었다. 충렬사 문화해설사인 옥복주(47)씨는 “일(日)정과 월(月)정 두 개의 샘이 있어 명정(日+月=明井)이 됐다.”면서 “1670년 만든 이후 몇 년 전까지 330년 넘도록 식수로 썼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여전히 맑지만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통영2’ 중)을 찾을 수는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명정골은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1926~2008)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문장 속에도 그 흔적을 흩뿌려 놓았다. 박경리는 명정골에 대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고 했다. 박경리의 생가는 여황로 충렬사 주차장 맞은편 바로 곁의 좁은 골목길인 ‘토영 이야길’을 따라가면 있다. 하지만 현재 다른 이가 살고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표지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남편과 사별한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에게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무려 5000통의 연서를 보냈던 유부남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사연이 남겨진 곳도 그리 멀지 않다. 유치환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중)고 노래했던 통영중앙우체국은 여황로에서 서문로를 따라 7~8분 남짓 내려오다가 세병로(청마거리) 오른쪽으로 접어든 뒤 3~4분쯤 걸어가면 있으니 그리 멀지 않다. ●지긋한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읊어 이른 아침 여황로 어귀에서 만난,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는 늙수그레한 중년의 김모(58)씨는 “그 사람들이야 먹고살만 하니까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썼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도 유치환, 이영도의 ‘아름다운 불륜’이며, 시인 김춘수, 화가 김용주,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박경리 등 통영 출신 예술가의 이름들을 줄줄이 들먹였다. 흔히 돈을 잘 버는 동네에서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들 하는데, 통영이라면 ‘중늙은이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소설 한 토막쯤 읊조린다.’는 말이 좋이 쓰일 법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후딱 오른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통영시내 쪽으로는 강구안길이며, 여황산이 보이고, 다도해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산도, 매물도, 그리고 멀리 대마도까지 한눈에 푹 안긴다.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과분할 만큼의 통영이다. 이곳의 길 위에서 시집 한 권, 소설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그 옛 기억과 향취까지 가져간다면 더욱 어울릴 법하다. ● 역사의 보고 통영의 길들 동피랑·서문까꾸막… 토박이말 길이름 천국 통영은 바다의 왜적들과의 싸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바람으로 다져진 곳이다. 통영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역사의 현장으로 뚜벅뚜벅 들어감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4년(선조 37)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 세운 뒤 ‘통영’이라는 지명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통제영의 약칭에서 따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와 통제영의 일종의 객사 역할을 했던 세병관(洗兵館·세병로 27), 그리고 북포루(北樓) 등은 통영 출신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고,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 필수 방문지다. 길 이름 역시 이러한 역사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세병로, 충렬로 등은 물론이고 통제영을 굳게 지키던 문들도 이름을 남겼다. 동문로(東門路)와 서문로(西門路)는 모두 옛 통영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였던 동문과 서문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두 문 모두 고갯마루의 정상쯤에 위치해 있었으니, 통영 토박이들의 말로 ‘동문까꾸막’(동문고개), ‘서문까꾸막’(서문고개)이라고 불렀던 길들이다. 북신로(北新路) 역시 통영성 북문 바깥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길이라는 뜻이다. 또한 세병로와 여황로 사이를 잇는 갈림길인 운주길은 옛 통제영의 관아였던 운주당(運籌堂)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남해안대로에서 갈래져 나온 원문마을길은 통제영 입구였던 원문성(轅門城)에서 따온 마을 이름을 달았다. 이 밖에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동피랑길은 정겨운 마을 벽화로 유명하다. ‘피랑’은 벼랑을 일컫는 통영 말이다. 통영시의 동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배기로 통영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자랑한다. 통영성과 동포루(東樓)의 유적이 있다. 사진=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통영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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