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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의 정신’ 마지막까지 실천한 일꾼 이야기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를 쓴 ‘광주의 시인’ 김준태가 모처럼 책을 펴냈다. 시집일 줄 알았더니 인물 평전이다. 바로 2000년 숨진, 교육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 민주화운동가이며 목회자, 그리고 오월 광주의 아들이었던, 명노근을 다뤘다. ‘명노근 평전-하느님의 작은 아들, 광주의 작은 다윗’(심미안 펴냄)은 심장마비로 숨지던 마지막 순간까지 광주의 정신을 담고 살았던 ‘명노근’이라는 인물의 평전이면서, 치열했던 1980년 5월 광주의 열흘을 포함한 광주의 오월 정신에 대한 엄정한 보고 문학이기도 하다. 김준태는 “명노근 선생은 암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자신과 이웃을 지킨 사람이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지워준 무게를 흔쾌히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이다.”라고 술회했다. 명노근은 1965년부터 98년까지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전국국립대교수협의회회장단 의장을 지냈다. 또한 YMCA전국연맹 이사장을 역임했다. 덕분에 78년, 79년 잇따라 투옥됐고 80년 5·18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장로로서 광주기독계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이렇듯 그에 대한 추억은 모두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평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통되는 평가는 ‘명노근은 행동하는 실천가’라는 사실이다. 김준태는 정부 문서보관소를 뒤져 확보한 민주화운동 시절 명노근의 자필 진술서와 국회 5공 청문회 속기록 등을 바탕으로 200자 원고지 1800장 분량을 집필했다. 평전은 철저하게 사료 취재에 근거해 ▲교육자로서의 삶 ▲YMCA 활동가로서의 삶 ▲민주화운동가로서의 삶 등 3부로 나눠 명노근의 치열한 삶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친필메시지 공개… 시인 이상 “결혼은 만화다”

    소설가 구보 박태원(1910~1986)의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당대 문인들의 친필 축하 메시지들이 새로 공개돼 눈길을 끈다. 1920년대 소설 속의 구보씨는 하루 종일 종로와 청계천, 청진동 어딘가를 어슬렁거리며 쏘다녔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또한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가 느낀 고독감의 무게는 커져만 갔다. 이와는 달리 현실 속의 구보씨는 그렇지 않았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쓴 박태원의 삶은 주변의 관심과 애정을 많이 받고 살았다는 것을 이번에 공개된 동료들의 축하 메시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1910~1937), 구인회로 활동했던 소설가 겸 시인 조벽암(1908~1985),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1950), ‘문장강화’로 유명한 월북소설가 이태준(1904~?), 삽화가 이승만(1903~1975) 등이 결혼식 방명록에 글과, 그림, 시 등으로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삽화를 그리기도 했던 친구 이상은 방명록에 ‘면회거절 반대’라고 적으며 짓궂은 장난의 글을 쓴 뒤 “結婚(결혼)은 卽(즉) 慢畵(만화)에 틀님업고/ 慢畵의 實演(실연)에 틀님업다/ 慢畵實演(만화실연)의 眞摯味(진지미)는/ 또다시 慢畵로- 輪廻(윤회)한다.”고 적었다. 특히 자신의 이름을 ‘李箱’이 아닌 ‘以上’으로, 또 ‘만화(漫畵)’를 ‘만화(慢畵)’라고 의도적 오기를 했다. ‘4차원스러운 이상다움’의 한 면목이다. 이밖에 정지용은 방명록에 “꽃피였으니/ 열매 열고/ 뿌리는 다시/ 깊이-”라는 시적인 구절을 남겼다. 박태원의 장남 일영(70)씨는 20일 “다음달 탄생 100년을 맞는 아버지의 유물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자료들이 처음 발견됐다.”면서 “20여명의 축하 메시지가 담긴 방명록에 단짝이었던 이상의 글이 없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적 감정 등을 거쳐 첫 장에 ‘以上’(이상)이라고 서명한 글이 이상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전시회는 다음달 15일~7월5일 서울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린다. 방명록과 함께 박태원의 안경, 원고지 보관함, 책장, 40여권의 초판본 등이 전시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지하 시인 “작가는 좌우 오갈 자유 있어야”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황석영 변절 논란’에 시인 김지하(68)씨가 가세했다. 김씨는 18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 소설가 황석영(66)씨의 ‘광주사태, MB는 중도실용’ 등 일련의 발언에 대한 진행자의 질문에 “작가가 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 황석영을 내버려 둬라.”고 말했다. ●“작가에게 브랜드 딱지 매기지 말아야” 또한 김씨는 “(현 정부는)중도로 가야 하지만 지금 가고 있는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라면서도 “황석영이 휘젓고 다니는 것은 원래 유명한 일이며 그렇게 발언하는 것은 자기 자유”라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황석영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면서 “(황석영에 대해 ‘뉴라이트 선언’이라고 말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서)좌니, 우니 해서 작가들에게 자꾸 브랜드 딱지를 매기는 버릇들을 하지 말라. 작가는 자유로워야지 무슨 소리 하고 있느냐.”고 불필요한 논란의 확산을 경계했다. ●“진중권은 예술·문학 모르는 백치”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빼먹지 않았다. “한두 명도 아닌데 촛불이 켜졌으면 당연히 그 이유를 밝혀서 그 어젠다 안에 있는 불만 사유를 대통령으로서 해명하고 척결해야 한다.”면서 “그걸 아직도 못하고 잡으려고만 하고, 마스크 쓰면 잡아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그런 식의 대통령이 어디 있느냐.”고 강조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에 대해서는 “진씨는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르는 백치로 작가는 매일 아침마다 변해야 하는 것”이라며 “미학과 출신이라는 진씨는 미학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고 독설을 내뿜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포항서 발견된 학성리비 신라시대 最古碑 가능성

    포항서 발견된 학성리비 신라시대 最古碑 가능성

    신라시대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비석이 발견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5일 “최근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서 발견된 ‘포항 학성리비’(가칭)가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영일 냉수리비’(503년·국보 제264호)보다 더 빠른 501년의 것으로 추정돼 신라시대 금석문 중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응급 보존처리 작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관계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비문의 상세한 내용을 정리해 자료집 발간과 학술 심포지엄 개최 등 후속 작업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학성리 도로 공사현장에서 한 주민에 의해 발견된 이 학성리비는 부정형 화강암(최대길이 104㎝, 최대너비 49㎝, 두께 12~13㎝, 무게 115㎏)의 한 쪽에 200여개의 글자가 음각돼 있으며 판독 가능할 정도의 양호한 상태다. 여기에는 신라시대 경주 6부 중 하나인 사훼부(沙喙部), 신라 17관등 중 여섯 번째인 ‘아간지(阿干支)’ 등의 글자가 확인되고 있다. 특히 비문 맨 앞에 보이는 ‘신사(辛巳)’가 비문의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신사년은 지증왕 재위 2년인 501년 또는 진흥왕 22년, 561년이다. 561년 건립된 ‘창녕 진흥왕척경비’를 보면 벼슬의 관등명이 ‘아척간(阿尺干)’, ‘사척간(沙尺干)’ 등 ‘간(干)’으로 표기되는 반면, 이 학성리비에서는 ‘아간지(阿干支)’, ‘사간지(沙干支)’ 등으로 ‘지(支)’로 표기된다. 이는 학성리비가 561년보다는 501년에 건립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종일 학예연구실장은 “글자 자체는 판명이 되나 어떤 내용의 비문인지 전체적인 확인 작업은 앞으로 진행해야 할 부분”이라면서 “냉수리비, 울진 봉평신라비처럼 국보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가슴 먹먹해지는 소리들의 향연

    가슴 먹먹해지는 소리들의 향연

    날이 쨍하면 전남 완도에서 손에 잡힐 듯 내다보이는 남해 바다의 아담한 섬 생일도. 그의 첫 시집은 노을이 베고 누운 생일도의 붉은 빛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처음에는 생일도의 황토빛인 듯 노을빛인 듯 붉은색에 눈이 사로잡힌다. 하지만 시집을 열고 읽다가 가만히 눈감으면, 아련히 들려오는 숨비소리(해녀들이 물 위로 올라와 휘파람처럼 내뱉는 숨소리)를 비롯해 고요한 밤 빗방울 후두둑거리는 소리, 어느날 아침 직박구리의 활기찬 수선스러움 등이 들려온다. 200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일영의 시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실천문학사 펴냄)는 정서와 이미지를 ‘소리’에 집중했다. 김일영의 등단 이후 첫 시집이자 실천문학이 지난 3월 180번째 실천시선인 ‘밥그릇 경전’(이덕규)부터 시작한, 표지 디자인 변화의 두 번째 시집이다. 디자이너 안상수가 시인의 고향과 시인의 문학적 시원(始原)을 색깔과 이미지로 표지에 담아냈다. ‘삐비꽃’의 붉은색 표지는 김일영의 고향인 생일도 황톳길에 떨어진 동백꽃의 색깔이기도 하고, 노을이 비낀 섬의 색깔이기도 하다. 표제작이자 그의 등단 작품인 ‘삐비꽃’은 가슴 먹먹해지는 소리들의 잔잔한 향연이며, 시집에 담긴 다른 모든 작품들의 청각적 이미지를 잉태하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섬세한 시인의 정서와 유년의 기억이 숱한 붓질로 덧칠된 한 폭의 강렬한 색깔의 풍경화이기도 하다. 이 시가 노을이 저녁 바다를 물들이듯 시 읽는 이들 사이에서 이미 소리없이 퍼진 까닭이다. ‘목숨의 깊이에 다녀온 어머니에게서 바람 비린내가 났다’(‘숨비소리1’)라든가 ‘전생처럼 먼 전화기 저쪽에는 아직도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있을까’(‘숨비소리3’)와 같은 시어들은 김일영의 심상 한 곳에 박힌 ‘소리로서 고향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인적 드문 도시의 밤을 그려낸 ‘소리의 방’ 연작시 등 청각으로 시의 열정이 집중돼 있다. 게다가 김일영이 추구하는 시 세계가 단순한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 특히 고무적이다. 기계적인 도식을 들이대자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절묘한 결합이 돋보이는 것이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 세계의 선구자 역할인 셈이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귀로 만져야 할 작품들”이라면서 “감각하거나 지각하는 공감각적 추구는 초월성을 강력하게 환기시키고 있다.”고 평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갇힌 자들의 희망 찾기 유쾌한 정신병원 탈출기

    두려운 밤이었다.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총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인적이 사라진 골목길은 적막, 그 자체였다. 열 네 살 소녀는 불빛 한 점 새나가지 않도록 이불로 창문을 꼼꼼히 덮었다. 악몽같은 이 밤이 어서 지나갔으면, 훌쩍 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아침이 됐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소녀는 그저 빨리 잠들고 싶어 누런 종이에 세로쓰기된, 별 흥미 가지 않는 소설책 한 권을 꺼내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밤을 꼬박 새웠고 창에 덮인 이불을 살며시 들춰본 아침, 어처구니없이 환한 밝음에 펑펑 울어야 했다. 꺽꺽거리며 눈이 퉁퉁 붓도록. 어린 영혼 위에 내려진 공포와 절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의 첫 경험이었다.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 작전을 펼치던 1980년 5월27일 광주의 그날밤 자취방에서 혼자 벌벌 떨던 시골 출신 어린 소녀의 경험이다. 소녀가 읽은 책은 잭 니콜슨이 주연한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다. 정신병동을 무대로 개인을 억압하는 체제에 저항하고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들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그날 밤의 기억과 함께 소녀의 심장 한 구석에 ‘소설적 파천황(破天荒)’의 기억을 새겨놓았다. 그리고 이 기억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떻게든지 해원(解寃)해야 할 자신만의 빚으로 남게 됐다.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 펴냄)로 1억원 고료의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정유정(43)이다. 이 소설은 어릴 적 기억에 대해 스스로 벌인 씻김굿이다. 소설의 무대는 강원도 정선 외딴 곳에 있는 수리 정신병원. 화자 ‘이수명’은 정신분열증으로 열여덟 살 때부터 정신병원 신세를 진다. 같은 날 재벌의 혼외 자식인 스물 다섯 동갑내기 ‘류승민’도 상속 다툼 탓에 강제로 수리 정신병원에 들어온다. 야맹증으로 점점 시력을 읽어가는 류승민은 찬란하고도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며 끊임없이 무모한 탈출을 시도한다. 이수명 역시 세상으로부터, 자신으로부터 끝없이 도피해오지만 류승민의 자유를 향한 의지,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끊임없이 꿈꾸는 희망에 서서히 물들어간다. 비록 정신병원에서 ‘미쳐서 갇힌 자’ 또는 ‘갇혀서 미친 자’들의 얘기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유쾌하다. 박민규를 연상시키는 간결하면서도 키득거리게 만드는 문체, 시니컬한 블랙 유머, 그리고 짜임새있는 서사 구조는 소설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게 만든다. 정유정은 “이 작품은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면서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썼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절망에 좌절하지 않고 이수명, 류승민처럼 당당하게 희망을 품고 맞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덧붙였다. 정유정의 이력은 특이하다. 문장 수업, 창작 수업은 따로 받지 않았다. 신춘문예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 생활, 직장(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생활을 하며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썼을 뿐이었다. 미국의 추리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와 스티븐 킹을 문학 스승으로 삼는다니 비주류가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읽고 쓰다가 어느날 늦깎이 소설가가 됐다.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공식’ 등단했고, 이번에 ‘내 심장을 쏴라’로 장르를 떠나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풀어나가는 만만찮은 실력을 가진 작가임을 확인시켰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공동집필은 서로 영감 얻어 좋아요”

    베스트셀러 ‘냉정과 열정 사이’의 공동 작가로서 국내에 일본 문학 열풍을 일으켰던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가 다시 한 번 뭉쳐서 소설을 펴냈고, 한국 출간에 맞춰 나란히 한국을 찾았다. ‘좌안(左岸)-마리 이야기’ ‘우안(右岸)-큐 이야기’(소담출판사 펴냄)를 함께 쓴 이들은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자신들의 문학세계와 새 소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에쿠니의 ‘좌안’과 쓰지의 ‘우안’은 옆집에 살면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마리와 큐의 50년에 걸친 인생 이야기다. 무려 6년 동안 일본의 한 문예지에 연재했다. 쓰지는 “에쿠니와 만나 러브 스토리가 아닌 더 긴 인생 이야기를 함께 만들 수 없을까 이야기했었다.”면서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이 소설에서 한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 교류를 소설로 풀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에쿠니는 “두 주인공이 유년기를 공유하며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이 소설의 큰 테마”라면서 “마리와 큐는 각각 강 왼쪽과 오른쪽에 있지만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걸어가는 존재들이며, 그런 면에서 한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공동작업의 어려움과 뿌듯함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에쿠니는 “공동집필은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단점이 많은 작업”이라면서도 “소설을 쓸 때는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작업이 중요한데 쓰지가 그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쓰지 또한 “공동집필은 한쪽 손을 묶어놓고 야구를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상대에게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에쿠니는 신뢰할 수 있는 문학적 파트너”라고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이번 방한 중 에쿠니는 소설가 정이현과, 쓰지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함께 썼던 공지영과 대담을 가지며 14일에는 문학 콘서트를 통해 한국 독자들과 만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Let´s Go] 대전 계족산 황토숲길…맨발의 향연

    [Let´s Go] 대전 계족산 황토숲길…맨발의 향연

    “적나라한 태양은 고통스럽게 뜨거웠다. 나는 오븐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소금이 두 눈을 아프게 찔렀다. 잠시 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손으로 땀을 닦아냈지만, 내 손과 얼굴 모두 소금투성이였다.”(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59)는 그리스에서 옛 마라톤 코스를 직접 뛰며 겪었던 고통스러움을 이렇게 적었다. 그는 자신이 내놓은 30여권의 책에 육박하는 26차례의 마라톤 완주를 했고, 3시간30분대의 풀코스 기록을 갖고 있는 심각한(?) 마라톤 마니아다. 문장쓰기는 두뇌 노동에 해당되지만, 책을 한 권 만드는 것은, 마라톤과 같은 육체 노동이라는 신념으로 그는 뛰고 또 뛰었다. 어디 하루키뿐이랴. 최근 10년 남짓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국내 마라톤 인구는 300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들은 굵은 허벅지와 날렵한 엉덩이, 탄탄한 복부를 자랑하는 건강마라톤 동호인이면서, 상당수는 하루키처럼 달리기 중독증에 빠진 이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눅들 일 없다. 늘어나는 뱃살과 처진 엉덩이를 가진 사람은 달리지 말란 법도 없다. 또한 길은 꼭 달리라고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명품 황톳길로 유명한 대전 계족산 숲길 13㎞ 코스라면야!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계족산 황토 숲길은 빠르게 달릴수록 그만큼 손해다. 가능한 한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보자. 그러다 흥이 돋으면 힘이 닿는 만큼 뛰어도 좋다. 계족산 황톳길은 장동 산림욕장에 있다. 대전터미널에서 차로 10~20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아쉽게도 대중교통은 약간 불편하다. 차를 갖고 대전나들목 또는 신탄진 나들목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자마자 성급한 사람은 여기에서부터 운동화며 양말이며 모두 벗어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600m 남짓 걸어올라가야 드디어 진짜 황톳길이다. 5월의 햇볕 내려앉은 신록은 산들바람에 몸을 뒤척거릴 때마다 연두색에서 짙은 초록색으로 색깔을 바꿔낸다. 길 양쪽으로 우거져 쭉쭉 뻗은 나무들은 황톳길에 적당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황톳길은 아예 신발도, 양말도 모두 벗어던지라고 귓전에 속삭인다. 조심스럽게 맨발을 내디디면 체로 곱게 쳐놓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황토가 발바닥을 푸근히 감싸준다. 멀지 않게 보이는 대청호는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한참을 걷노라면 흘리는 땀방울에서도 풀내음, 흙내음이 가득해진다. 풀썩거리는 황토 먼지조차 싱그러운 계족산 황톳길은 봄날 가족나들이, 사랑하는 연인의 호흡 느껴보기, 꼬마 아이들 자연체험 등 모든 것에 딱 들어맞는다. 그뿐인가. 3년 전부터는 매년 5월이면 아예 여기에서 마라톤 대회까지 열린다. 지난 10일 오전 5000여명의 맨발들이 계족산 황톳길에 모였다. 국내에서 유일한 맨발 마라톤이다. 이름하여 ‘에코힐링 마사이마라톤대회’다. 맨발로 걷고 뛰는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족은 육식을 즐기면서도 성인병 및 근골격계 질환이 없기로 유명하다.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에코힐링은 자연을 통한 치유를 의미한다. 이름은 마라톤이지만 ‘계족산 황톳길 정신’을 고스란히 구현한 대회다. 당연히 맨발이라야 한다. 물론 양말 또는 운동화를 신어도 되지만 황톳길 체험 기회를 차버리면 자기만 손해 아니겠는가. 또한 기록의 의미도 크지 않다. 5㎞와 13㎞로 종목이 나뉘는데, 13㎞를 뛴 뒤에는 완주증에 자신이 직접 기록을 적는다. 이러다 보니 기록을 위해 정신없이 뛰는 마라톤 마니아부터 길 위에서 딴전 피우기 일쑤인 서너 살 꼬맹이 손잡고 천천히 걷는 부모, 군데군데 펼쳐지는 숲속 음악회 듣고, 황토 머드팩 바르며 데이트하듯 술렁술렁 걷는 젊은 연인들, 황톳길을 신기해하는 외국인들까지 참가자들도 다양하기만 하다. 참가비는 1㎞당 1000원이다. 즉, 5㎞는 5000원, 13㎞는 1만 3000원이다. 여기에 30세 미만 참가자들은 참가비를 받지 않는다. 돈에 구애받지 말고 운동을 즐겼으면 하는 주최측의 바람이다. 게다가 이 참가비조차 전액 문화체육 예술분야 꿈나무 육성 장학금으로 기탁된다. 사실 이러한 황톳길은 대전 지역의 대표기업인 ‘선양’ 조웅래 회장의 뚝심으로 만들 수 있었다. 선양은 3년 전 1000t의 황토를 13㎞ 산책로에 깔았다. 1년에 서너 차례 황토를 부어야 한다. 36번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마라톤 마니아 조 회장은 지금도 매일 아침 이 코스를 돈 뒤 출근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쏟아붓는다. 대회조직위원장인 조 회장은 “티격태격 부부싸움한 다음날 아이는 살짝 떼어놓고 계족산성 황톳길을 걸어보라.”면서 “몸과 마음으로 부부 금실이 달라진다.”고 살짝 귀띔했다. 황토 발마사지에 산림욕 효과 등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인가. 이번 마라톤대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 11월까지 매월 두 번째 일요일마다 계족산에서 황토길 맨발 걷기와 숲속 음악회 행사를 갖는다. 맨발로 황톳길을 밟다가 산속에서 만나는 오카리나 연주는 천상의 소리인 듯 편안함을 안겨준다. 이날 30여개국의 외국인 500여명도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졌다. 네팔에서 왔다는 엠 마굴(35)은 13㎞를 완주한 뒤 “맨발에 닿는 흙의 느낌이 너무도 좋다. 운동화 신고 아스팔트 밟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새소리, 나무냄새 맡으며 뛰다 보니 1시간17분이 흘렀다.”고 말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참, 하루키는 마라톤을 예찬하며 또한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가치있는 것은 효율이 떨어지는 영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법이다.” 하루키가 황톳길 맨발 마라톤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하는 소리다. 계족산 황톳길만큼은 예외다. 이는 효율도 넘치고, 가치도 충만하다. 이번 주말, 한 번 발 걷어붙이고 걸어봄직하지 않나. 마라톤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호젓한 산길 걷기의 유쾌한 중독증에 걸려보자. 글 사진 대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침실 어떤 그림 걸어 놓고 즐겼나

    조선시대 구중심처인 왕실, 그중에서도 내밀(內密)하기만 했던 침실에서 왕과 왕비들은 어떤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즐겼을까. 국립고궁박물관은 12일 기획전시실에서 ‘궁궐의 장식그림’ 특별전을 시작했다.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十長生圖)로 꾸민 창호 그림 19건 58점을 비롯해 실내 벽면에 붙였던 부벽화(付壁畵) 2건 2점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창호 그림과 벽그림을 조명하는 자리다. 또한 창덕궁 희정당을 비롯한 대조전, 경훈각 등 침전 내의 벽그림 6건 6점은 실물을 옮길 수 없어 영상 자료 형태로 공개됐다. 특별전은 오는 7월5일까지 열린다. 특히 이번에 공개되는 창호 그림은 창덕궁에서 전해진 것으로, 창호가 어느 전각에 설치돼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한 봉황도와 공작도 쌍폭 그림도 공개됐다. 이 그림들은 소재나 품격으로 보아 조선 왕실 침전 내부에 부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국외 한국문화재 보존처리 지원사업’ 일환으로 들여와 직접 보존수리를 완료한 뒤 국내 무대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고궁박물관 정종수 관장은 “실내 공간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통 창호와 장지(방과 방 사이나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의 다양한 쓰임새도 조명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기간 중 특별 강연회가 21일, 다음달 18일 박물관 강당에서 열린다. 또한 다음달 11, 25일에는 궁궐 장식그림을 직접 찾아 해설을 듣는 창덕궁 현장 답사 행사도 열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황석영, 아나톨리 김, 이승우… 노벨상 가능성 있는 작가 많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출신 대문호가 한글을 배우고, 한국을 뻔질나게 드나든다. 한국의 어떤 매력이 그를 잡아끌었을까.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작가이자 ‘지구촌 노마드’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9)는 2001년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셀 수 없이 한국을 들르고 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기 직전까지도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 ●처음 한국 찾아 ‘운주사·가을비’ 시 지어 그는 처음 한국을 찾은 뒤 들른 전남 화순 운주사의 감흥을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에 담기도 했다. 또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올라탄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는 ‘동양, 서양(몽환-역사)’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강원도 영월 일대를 혼자서 한 달 동안 여행하기도 했던 르 클레지오는 이마저도 부족했던지 2007~08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신분으로 아예 2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기도 했다. 한국말이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한글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아무런 문제없이 혼자서 버스, 택시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이유다. 하기야 설렁탕과 붕어빵을 즐긴다고 공공연히 말해왔으니 지한파를 넘어 친한파(親韓派)로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의 애정이다. ●2007~2008년 이화여대 석좌교수… 한글도 읽어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다시 한국을 찾았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아가페홀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난 르 클레지오는 한국의 문화와 사람, 역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거듭 과시했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에 오면 마치 프랑스에 있는 듯한 느낌”이라면서 “서울의 작고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걷는 것을 즐기며 특히 시골 논길을 따라 피어난 민들레꽃과 야트막한 산 풍경,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에 금세 와닿는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어머니의 고향인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지만 아프리카 모리셔스 공화국 태생인 영국계 군의관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덕분에 프랑스와 모리셔스 이중 국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영혼과 철학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태국, 멕시코, 미국, 파나마, 한국 등 지구촌 여러 나라를 떠돌며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서구 문명에 대해 비판하고 그 대안을 동양 철학 등 다른 문화권에서 찾는 작업에 천착하는 명실상부한 노마드 작가다. ‘조서’, ‘섬’, ‘황금물고기’ 등이 르 클레지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서구문명 비판… 동양철학 등서 대안 찾으려 노력 그는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성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스웨덴의 한림원을 방문해 보니 이들이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한국 작품도 많이 읽었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구체적으로 옮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말하기 어렵지만 황석영, 아나톨리 김(카자흐스탄 한인 3세), 이승우 등 가능성 있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일 한국을 찾아 이화여대 기숙사에 머물며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의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나 주제는 ‘문학을 통해 추구되는 행복’이며 공간은 서울이라고만 귀띔했다. 르 클레지오는 13일 이화여대, 22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이화여대 학생들과 일반인을 상대로 특별 강연회를 가진 뒤 28일 프랑스로 떠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리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

    “이 세상에서 나는 그다지 잘나지도 또 못나지도 않은 평균적인 삶을 살았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다지 길지도 않은 짧지도 않은 평균수명은 채우고 가리라. 종족 보존의 의무도 못 지켜 닮은꼴 자식 하나도 남겨 두지 못했는데, 악착같이 장영희의 흔적을 남기고 가리라.”(에필로그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됐으면 한다.”(프롤로그 중에서) ●5번째 수필집 출간 하루 남기고 암 투병 중 강단에 복귀해 우리 사회에 많은 감동을 던져 주었던 서강대학교 영미어문·영어문화학부 장영희 교수가 9일 낮 12시50분 쉰일곱 해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공교롭게도 하루 뒤인 10일 다섯 번째 수필집이자 유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이 출간됐다. 여기에는 힘들게 투병 중이었던 고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인은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 됐지만 영미문학자이자 수필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2000년 첫 수필집 ‘내생애 단 한번’에 이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 투병 중에도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선친인 고(故) 장왕록 박사와 함께 펄벅의 ‘살아 있는 갈대’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생전에 영미 시를 알기 쉽게 번역해 소개하는 등 아름다운 삶을 전파했다. 2001년 미국 보스턴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가 완치됐던 고인은 2004년 다시 척추암 선고를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2년간의 항암치료를 마친 1년 후에는 암이 간까지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고인은 2005년 봄 다시 강단으로 돌아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줬다. ●암에 굴하지 않는 용기 보여줘 소아마비와 암 판정을 받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것. 서울 출생인 고인은 1971년 서울대사대부고를 나와 서강대 영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거쳐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한국문학번역상도 수상했다. 고인은 13일 서강대에서 장례미사를 마친 뒤 선친이 묻혀 있는 천안의 공원묘지에 안장된다. 유족은 어머니 이길자씨와 오빠 장병우 전 LG 오티스 대표, 언니 영자씨 등 4자매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3일 오전 9시. (02)2227-7550.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 세계관광기구 사무총장 낙선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8일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아쉽게 낙선했다고 한국관광공사가 밝혔다. 오 사장은 이날 아프리카 말리에서 열린 UNWTO 집행이사회에서 전체 투표국 31개국 가운데 10개국의 지지를 획득, 20개국의 지지를 얻은 탈레브 리파이 현 UNWTO 사무차장에게 패했다.오 사장은 2003∼2006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에 이어 한국인 두 번째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도전했다. 작년 10월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변화와 개혁’의 공약을 내걸고 지난 7개월간 31개 집행이사국 가운데 27개국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오 사장은 인지도 면에서 앞서는 리파이 사무차장을 상대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리파이 사무차장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차기 사무총장직을 맡는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실질적 정직 드러내기”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실질적 정직 드러내기”

    시나 소설은 더이상 독자로서 읽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높디높은 장벽이 허물어지며 누구나 직접 쓸 수 있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고통의 극점으로 밀어넣는 행위다. 편지 한 줄, 일기 한 줄, 시어 하나, 소설의 첫 문장을 쓰고 고르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인 듯 고통스럽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쓰고 싶고, 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글을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글쓰기의 테크닉 측면으로 접근하기 일쑤다. 소설에서 요구하는 장르 규칙은 어떠하고, 첫 문장은 어떻게 구성하며, 기호는 어떻게 활용하며, 신춘문예가 선호하는 방식은 어떠하고…. 대중화된 글쓰기, 혹은 신춘문예 등단용 맞춤형 글쓰기에서 보여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다. 소설가 이만교(42)가 이러한 글쓰기 공부 관행에 메스를 가했다. 2006년부터 만 3년 동안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좌의 경험과 실제 강독하고 토론했던 사례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 공부책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그린비 펴냄)를 펴냈다. 그가 내내 강조하는 것은 ‘강렬하게 살맛 나게 하는 창조적 글쓰기 자체가 목적인 수업’이다. 이에 따라 수강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보고 기술적으로 문법이나 구성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를 놓고 감각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상상하는 방법, 실천하는 방법까지를 함께 점검하는 작업을 가져왔다. 이만교 강의의 핵심 키워드는 ‘정직하기’다. 내 삶에 정직하기, 내 무의식(욕망)을 정직하게 표출하기, 그렇게 욕망을 드러낸 뒤 느낀 추악함과 고통스러운 쾌락, 부끄러움 등 느낌을 정직하게 쓰기 등이다. 이만교는 이것을 ‘도덕적 정직’이 아닌 ‘실질적 정직’이라고 규정한다. 1992년 문예중앙에서 시로, 1998년 문학동네에서 소설로 각각 등단한 이만교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 등을 내놓으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의 맨 앞줄 즈음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나는 왜 쓰려고 하는지 등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글쓰기 작업이 꽉 막혀 버린 시기를 가졌다.”면서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진실은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쓰는지 나도 모른다.’는 사실뿐이었다.”고 말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시작됐지만 이제 이만‘교(敎)’로 통할 정도로 열광적인 환호와 뜨거운 지지자들을 낳기 시작했다. ‘글쓰기 공작소’는 그의 강의를 고스란히 활자로 옮겨놓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만교식 글쓰기 강의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인 내 작품이 낱낱이 해체되는 낯뜨거운 ‘실질적 정직’의 합평 기회를 직접 가질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살아 있는 분석 사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가물치 포일두르고 숯불 속으로

    가물치 포일두르고 숯불 속으로

    가물치는 영물(靈物)로 통한다. 수 십년(심지어 수 백년까지라는 설도 있다.)을 살 수 있는 데다, 아가미 외에 보조호흡기관이 있어 물 밖에 나와서도 며칠을 거뜬히 살아가는 점이나, 얼핏 보면 사람 얼굴인 듯, 뱀 얼굴인 듯 싶은 약간은 섬뜩한 외양 등이 이런 평가를 부추긴다. 조선 후기인 19세기 초 일종의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이규경 지음)’에는 “가물치의 머리에는 일곱 개의 별이 있어서 밤마다 머리를 북으로 하고 하늘을 쳐다 본다.”고까지 쓰여져 있다. 낚시하는 이들이 저수지 등에서 큰 가물치를 잡았을 때 경외의 마음으로 기꺼이 방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물치는 이렇게 일부분 신성화(神性化)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산후조리식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고단백 보양식으로서 허해진 기력을 보충하는데 최고로 좋을 뿐 아니라 철분 섭취를 돕는 비타민C가 풍부하고, 이뇨작용을 촉진해 산후 부종 예방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리 방식은 흔히 고아 먹거나 약재 등을 넣어 중탕해 먹는 것, 매운탕 등이 일반적이다. 한데 ‘가물치 구이’라면? 가물치에 대해 제법 안다고 하더라도 비린내가 나고 느끼할 것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포일 몇 겹을 두르고 숯불 속에서 1시간 가까이 푹 찜질하고 나온 뒤 가물치의 맛은 어설픈 상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리법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일단 인내심 갖고 낚싯대 드리워 저수지 진흙 속에 있는 놈을 잡아 올린다. 펄떡거리는 가물치(보통 50~70㎝)를 절반으로 가르고 양쪽으로 각각 열 번 남짓씩 칼집을 낸다. 그리고, 배 속에 인삼과 대추, 밤 등을 집어 넣는다. 그리고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으로 만든 양념장을 정성스레 바른 뒤 포일로 꽁꽁 싼다. 그리고 숯불 안으로 들어간다. 이러저리 뒤척이면서 골고루 익게 한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무위의 기다림을 경험해 본 강태공들에게도 고작 1시간의 기다림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비로소 맛본 가물치구이의 맛은 환상 그 자체다. 일단 두툼하게 씹히는 살점은 담백하면서 쫀득쫀득하다. 고아 먹을 때면 둥둥 뜨는 엄청난 기름이 남김없이 살점 속으로 스며들었건만 비린내도, 기름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살점 결을 따라 적당히 스며든 양념은 가물치 고유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잘 배어 있다. 살을 발라 먹다가 자작하게 남아 있는 짭쪼롬한 국물을 간간이 떠먹으면 마치 보약을 반찬으로 먹는 기분이다. 하지만 진짜 백미는 따로 있다. 가물치 내장이다. 씁쓸한 맛은 전혀 없다. 마치 프랑스 요리 푸아그라(거위 간)처럼 부드럽고 고소해 채 씹을 새도 없이 입 안에서 살살 녹아 버린다. 가물치 한 마리면 4명이 푸짐하게 즐길 수 있지만 이 내장만큼은 양이 너무나도 적어 동석자들의 치열한 눈치 다툼이 불가피하다. 이렇듯 별미임에도 가물치 구이는 흔하지 않은 요리다. 전국 어디를 가도 찾기 어렵다. 오로지 충남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의 안골낚시터(041-544-2369)에서 가물치 구이를 판매한다. 다만 최근 그리 많이 잡히지 않는 데다 가격이 제법 비싸 며칠 전 예약해야 그 맛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 한다. 모두 자연산이다. 값은 크기에 따라 6만~10만원. 아산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오늘의 나를 있게한 어머님께 바칩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한 어머님께 바칩니다”

    삶이 퍽퍽해질수록 유년으로 돌아가고픈 충동은 필연이다. 그 유년의 풍경이 어떻게 그려졌든 한구석에는 늘 어머니가 하나의 든든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미술경영연구소’와 ‘미술관가는길’이 6일부터 이달말까지 ‘어머니’ 특별기획전을 서울 인사동 ‘미술관가는길’에서 갖는다. 김형근, 김흥수, 이만익, 최석운 등 내로라하는 화가 21명과 함께 ‘문단의 대표 화가’인 소설가 윤후명이 50호 내외의 작품 2점씩을 출품했다. 1967년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한 뒤 줄곧 소설을 써온 윤후명은 최근 몇 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왔다. 그로서는 화가로 첫 공식 외도인 셈이다. 또한 담배장사를 하며 한국전쟁과 현대사의 격동기를 떠돌며 헤쳐온 그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문학 아닌, 또 다른 형태의 헌사다. 윤후명뿐 아니라 22인 화가들의 작품은 한결같이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화가 이만익의 ‘어머니와 별’을 비롯해 최석운의 ‘어머니와 아들’ 등 그림을 주욱 둘러보기만 하면 애써 구구한 설명이 붙지 않더라도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이미 곁을 떠났지만 하늘에서 늘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어머니, 뽀글뽀글 파마에 평범하고 촌스럽지만 억척스러웠던 우리네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면서 절로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특히 이번 특별 전시회를 맞아 22인의 화가들과 함께 영화감독 방은진, 드라마작가 김수현 등이 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를 모아서 기념 문집 ‘어머니, 그리고 엄마’를 냈다. 또한 16일, 23일에는 ‘명사로부터 듣는 어머니의 의미’ 등 특별강연회도 예정돼 있다. 한편 롯데월드에서는 ‘비교적 젊은’ 부모님이 즐길 수 있는 행사도 준비했다.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오후 6시 가든스테이지에서 ‘7080 카네이션 콘서트’를 펼친다. 박학기, 나무자전거 등이 1970~80년대 추억의 옛노래를 들려준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동반한 3대 가족 방문 고객을 위한 특별 우대 이벤트도 준비돼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다문화 사회 수준 높지 않아”

    “한국 다문화 사회 수준 높지 않아”

    “복잡다단한 우리네 삶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 박물관이 올바른 다문화 사회 정착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일 국립민속박물관 주최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다문화 사회와 박물관의 역할’을 주제로 한 국제 포럼에 참석한 낸시 애블만(50)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한국도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게 됐지만 아직 그 정도와 수준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자신의 아이들 2명을 한국의 대안학교로 보냈던 실제 경험을 거론하며 “한국인들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이 농촌 등 지방에 거주하는 동남아시아 지역 출신쯤으로 제한돼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동남아 중심의 다문화 인식의 틀을 깨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초등학교 교장으로부터 “당신의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차별이 사회에서 나타날수록 박물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블만 교수는 “박물관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아는 성찰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열린 국제 포럼에는 애블만 교수를 비롯해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유럽지역 우도 괴스발트(독일) 회장, 그리스 세실리아대의 마리아 블라하키 박사, 일본 홋카이도대 히데키 다루모토 교수 등과 함께 연세대 김인회 명예교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이선 연구위원 등이 발표에 나섰다. 이들은 한 쪽 문화에 대한 일방적 이해를 강요하거나 또 다른 문화를 배제하는 등의 방식을 거부하는 차원에서, 박물관이 떠맡아야 할 여러 문화간 소통, 교류, 공감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도 괴스발트 회장은 유럽과 한국, 모든 나라들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으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구석기 연구성과 한눈에

    한국 구석기 연구성과 한눈에

    ‘한반도 구석기 연구의 아버지’인 원로 고고학자 손보기(87) 전 연세대 교수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파른 손보기 기념관’이 5일 문을 연다. ‘파른’은 ‘늘 푸르름’을 뜻하는 손 교수의 아호다. 손 교수는 1964년 충남 공주 석장리를 발굴하며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처음 증명했다. 이는 식민사학이 용납하지 않던 ‘일본을 앞서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는 기존의 논거를 과학적이며 실증적으로 뒤집었다는 의의를 띠고 있다. 손 교수는 1992년까지 12차례에 걸쳐 발굴과 조사를 진두지휘했다. 연면적 188㎡의 공간에 전시실과 세미나실, 기증 자료실 등에서 한국 선사 구석기학 연구, 고활자·인쇄분야 등의 연구 자료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개관하는 기념관에서는 손 교수가 지난해 기증한 평생 연구자료와 수집 유물 1만여점 등과 함께 그가 직접 쓴 석장리 발굴 일지도 함께 공개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다문화 가정 어린이도 함께 즐겨요”

    “다문화 가정 어린이도 함께 즐겨요”

    ‘5월 5일은 편견 없고, 차별 없는 아시아의 어린이날!’ 큼지막한 눈에 야트막한 코, 까무잡잡한 얼굴로 늘 싱글벙글하는 민혁이도, 까만 피부에 곱슬머리로 학교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다가 친구들에게 “니네 나라나 응원해.”라며 핀잔 들었던 성철이도, 초등학교 입학한 지 몇 달이 됐건만 아직도 한글 쓰기가 서툰 석남이도 아직껏 외갓집을 가보지 못했다. 엄마의 고향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을 지도에서 겨우 더듬어 손가락으로 짚어봤을 뿐 어떤 곳인지 막연하기만 하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는 우리 사회의 벽은 두텁고, 피부색 다른 엄마의 고향을 알고픈 호기심은 여전히 크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5일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라나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박물관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문화 어울림 한마당 행사’는 2일 일본의 날, 3일 중국의 날, 4일 러시아·중앙아시아의 날, 5일 동남아시아의 날로 지정해 해당 나라의 민속, 음악, 음식, 춤, 옷 등 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마당을 활짝 열어놓았다. ●2~5일 박물관 곳곳서 ‘어울림 한마당’ 특히 모든 행사에서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체험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한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풍성히 준비했다. 2일에는 한국 춤 공연을 대표하여 중요무형문화재 92호 이수자인 박건희가 ‘봄을 물들이다’라는 주제로 한국 전통춤 태평무 등을 선보인다. 신명나는 한국적 가락과 우아한 손놀림이 곁들여진다. 이밖에도 한국전통무예 24반, 태극기 그리기 체험 등을 선보인다. 또한 25일까지 기획1전시실에서 ‘우리 안의 세계’ 특별전을 갖고 10여개 나라의 500여점 생활용품을 전시한다. 전국 다문화가정에서 수집한 것들로 각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고, 이것들이 한국 문화와 자연스레 어우러질 수 있는 보편성을 확인시켜준다. ‘이주의 발자취’, ‘각 민족별 결혼 혼수품’, ‘결혼 이민자의 하루 생활 영상물’ 등이 전시된다. 이밖에 민속박물관은 4일 ‘다문화사회와 박물관의 역할’을 주제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국제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신광섭 관장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배우도록 요구하기보다는 어머니 나라와 아버지 나라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미래의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 지속적인 행사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호미곶 등대박물관에선 한지등초롱 만들기 한편 경북 포항 호미곶에 있는 국내 유일의 등대전문박물관인 국립등대박물관에서는 어린이날 야외전시장에서 ‘해양생활 한지등초롱 만들기’, ‘민화 부채 그리기’를 배우고 직접 해볼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충무공종부, 정부에 유물 기탁

    충남 아산 현충사 경내의 충무공 이순신 종가 고택부지가 법원 경매로 넘어간 가운데 종부 최모(53)씨가 종가 소장 충무공 및 종가 관련 유물 100여점을 지난 30일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소에 기탁 보관했다고 문화재청이 1일 밝혔다. 기탁 유물은 현재 국보나 보물로 지정돼 현충사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과는 별개이며, 서적이나 고문서류가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는 충무공에게 내린 교지(敎旨)를 비롯해 보물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유물도 5점 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이번 유물 기탁으로 일각에서 제기한 ‘이충무공 유물의 임의처분’ 문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탁 유물은 보존처리 및 소유자 측과의 협의를 거쳐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기탁은 소유권 일체를 넘기는 기증과는 달리 소유권은 원래 소장자가 그대로 유지한 채 보관 등의 관리권만 다른 기관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연필로 쓴 인터넷 소설… 김훈 ‘공무도하’ 1일 첫 회

    연필로 쓴 인터넷 소설… 김훈 ‘공무도하’ 1일 첫 회

    지난달 28일 찾은 경기도 일산 소설가 김훈의 집필실. 좌우가 뒤집어진 ‘ㄱ’자로 이어진 책상 위 한쪽에는 예의 원고지 더미가 쌓여 있었고, 그 위에 지우개와 샤프펜슬이 뒹굴고 있었다. 연결된 또다른 책상 위에는 두꺼운 국어사전 두 권이 펼쳐져 있었다. 또다른 벽면에는 예닐곱 권의 법전과 한문대자전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컴퓨터? 없다. 또 하나, 당연히 있을 법한 것 중 없는 것은 소설책이다. 한쪽 벽을 빼곡히 채운 서가에는 소설책은 단 한 권도 없고, 사기(史記) 등 역사책·고전 등이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는 김훈의 오피스텔이다. 이곳으로 매일 ‘출근’해서 원고를 쓰고 책을 본다. 인터넷과 철저히 담을 쌓은 그가 1일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문학동네(http://cafe.naver.com/mhdn.cafe)에 매일 연재소설을 쓴다. 제목은 ‘공무도하(公無渡河)’. 김훈과 인터넷이라니…어울리지 않는 파격, 그 자체다. 그는 “글쓰기가 힘들어서 자꾸 미뤄오다가 내가 먼저 문학동네 쪽에 인터넷 연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면서 “하루에 원고지 8~12장 정도 써서 오는 8, 9월 정도까지는 써야 할 것 같다.”고 입을 뗐다. 인터넷에 연재하지만 형식은 지금처럼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써서 넘겨줄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나는 인터넷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이 특별한 독서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특별히 그들을 배려할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이 내 고유의 문장과 사고를 이끌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훈 특유의 까칠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엄청난 형식의 파격을 택했건만 역시 형식의 변화만으로는 내용을 견인하지 못한다. 많은 현상적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소통과 참여’의 질적인 발전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이미 박범신, 황석영을 비롯해 공지영, 이기호 등이 인터넷 연재를 통해 ‘혼자 쓰지만 함께 쓰는 소설’을 쓰고 있다. 인터넷 연재소설의 쌍방 작용은 댓글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김훈은 “댓글을 보지도 않을 것이고 볼 생각도 없다.”면서 “독자들이 따라오면 함께 가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나 혼자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무도하’는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역사소설을 주로 써온 김훈의 본격적인 당대(當代) 소설이다. 신문기자로서 활약하던 시기인, 대략 1970~80년대를 다루지만 현재라고 불러도 관계없는 요즘의 이야기라고 한다. 김훈은 “지금까지 300장 정도 원고를 써놓았고 서사의 줄거리도 잡아놓았다.”면서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라고 소개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근로자의 날’이 더 쓸쓸한 그들은… 황우석 사기 핵심이 차병원에 끝까지 ‘막장’ 고수하고 퇴장한 ‘아내의 유혹’ ’최불암 시리즈’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기막힌 ‘보이스 피싱’ 수법들 해군 간부 계좌에 뭉칫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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