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박록삼
    2025-08-16
    검색기록 지우기
  • 김기중
    2025-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하종훈
    2025-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이범수
    2025-08-16
    검색기록 지우기
  • 김경두
    2025-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25
  • “일상의 느낌 그 달 그 달 옮겨 ‘가족’은 내 인생 자서전일 것”

    “일상의 느낌 그 달 그 달 옮겨 ‘가족’은 내 인생 자서전일 것”

    누구는 소설이라 불렀고, 누구는 에세이라고 했고, 누구는 그냥 옆집 아저씨의 소박한 일기장 같은 것이라고 했다. 뭐라고 부른들 어떠랴. 사내는 갓 서른살 된 철부지 남편이자 두 아이의 서툰 아버지였고, 20대에 장안을 떠들썩하게 작품을 썼던 피끓는 청년 작가였다. 꼬박 35년이 흘러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됐다. 아들, 딸은 또다른 가족을 꾸려 자신과 또다른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됐다. 그동안 ‘별들의 고향’, ‘상도’, ‘유림’, ‘해신’ 등 셀 수 없이 많은 화제작을 남겼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기간의 우여곡절,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함께 했던 작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소설가 최인호(64)가 1975년 9월부터 지금까지 월간 샘터에서 35년 가까이 연재했던 소설 ‘가족’이다. ●누구는 소설이라고 누구는 에세이라고 ‘가족’이 샘터 8월호에 실리면서 무려 400회를 맞게 됐다. 지난해 암에 걸려 대수술을 받으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7개월을 제외하고 빠짐이 없었다. 사실은 작가가 몇 년 전 미국 출장 가는 길에 팩스 등 통신 상황이 좋지 않아 딱 한 달 소설 연재를 빼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작가도, 출판사도, 구체적인 시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벌써 단행본으로만 7권이 나왔고, 이번에 두 권 ‘가족 앞모습’, ‘가족 뒷모습’이 8, 9권으로 보태졌다. 엄청난 ‘대하소설’이 된 셈이다. ‘가족’은 소설의 서사를 품고 있는 자전 에세이에 가깝다. 하지만 작가는 부득불 ‘소설’임을 강조한다. 최인호는 단행본 서문에서 “일상 생활에서 느낀 이야기를 그 달 그 달 소설 형식으로 쓴 ‘가족’은 내 인생의 자서전일 것”이라면서 “매달 20장씩의 원고가 8000장에 이르는 장편소설이 되었고 내가 쓴 소설 중 가장 긴 대하소설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열 권을 채운 후 이 교향곡을 끝내게 될지, 아니면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될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는 몫”이라며 “인생행로를 통해 만나고 스쳐갔던 사람들, 이웃들, 나그네들 모두 한가족임을 요즘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매달 20매의 원고가 모여 대하소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곡절을 거치며 노년의 삶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느낌의 연장선상이었을까. 그는 가장 최근에 쓴 400회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도 “400회를 쓰는 동안 내 인생에서 만난 가족들과 그대들은 인생의 꽃밭에서 만난 소중한 꽃들과 나비인 것이니 숨은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들이여, 피어나라.”면서 “꽃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라. 그리고 마음껏 춤춰라.”고 말했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원숙하게 삶을 조망하고 사람을 찬미할 수 있는 최인호가 됐음을 편안한 언어로 얘기하고 있다. 특히 이번 단행본에서는 한국의 전통미를 한국 사람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진 작가인 주명덕(‘가족 앞모습’), 구본창(‘가족 뒷모습’)이 글맛을 한층 살렸다. 샘터 관계자는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8권, 9권이라는 숫자를 붙이지 않았다.”면서 “그동안 그림 일러스트로 표지디자인을 했는데 실제 얼굴이 들어간 최인호 작가와 어린 아들 도단이가 함께 찍은 사진(1985년 당시)을 넣어 보았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각박함 속에도 잔잔한 웃음이…

    ‘지하철 안의 풍경이 아득히 멀어지면서, 미스터 리의 어눌하게 웅얼웅얼하는 목소리가 귓속을 우렁우렁 울리더니, 눈앞에 까마득한 어둠이 펼쳐졌다. 너무 돌연해서 당황조차 못하고 있는데…(중략)…미스터 리를 감싸고 있는 금빛 광륜이 엄청난 럭스를 뽐내며 번쩍이는 바람에 나는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젠장.’ 재능이 모자란 탓인지 공채로 방송국 개그맨이 되고도 곁다리 출연 몇 번 만에 싹뚝 잘리고만 주인공 철이. 궁여지책으로 지하철 잡상인계의 전설이라는 미스터 리의 제자가 되어 하찮다고 여겼던 세상에 대해 조금씩 눈을 떠간다. ‘꽃미남 개그맨’이라는 허상은 ‘지하철 잡상인’이라는 현실 앞에서 가차없이 뭉개지고, 그 허술한 틈에서 낙천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새 살처럼 돋아난다. 2009년 오늘의 작가상(33회) 수상작인 우승미 장편소설 ‘날아라, 잡상인’(민음사 펴냄)은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힘이 재력이나 학벌, 사회적 지위 따위가 아니라 ‘낮은 곳의 각박함 속에서 구하는 웃음’에 있음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하철 잡상인 철이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미혼모 수지, 그리고 수지의 결함에 눈까지 먼 수지 동생 효철이가 작품의 앵글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이 질곡 속에 있다 해서, 또 사는 방식이 비루하다 해서 그것만으로 그들의 삶의 무게가 가볍다고 말하는 건 섣부르다. 문학평론가 정영훈(서울시립대 교수)은 “‘불행한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불행한 삶의 조건과 더불어’ 행복하기를 꿈꾸고, 반어를 통해 불행을 행복의 조건으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며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자기 고통에 지나치게 민감한 최근 소설과 비교할 때 이 소설의 장점은 더욱 두드러진다.”고 평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진 진정한 매력은 평론가들의 진단처럼 무겁고 둔중한 데 있지 않다. 작가는 사회성 짙은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재밌고 가볍게 다루는 재능을 한껏 선보인다. “웃음은 인간의 삶 자체가 비극일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포즈이자 제스처임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는 김미현(문학평론가) 교수의 평은 그런 점에서 적절한 관점이다. 짜증나는 무더위의 초입에 선 작가 우승미는 여전히 남루한 사람들에게 경쾌하게 인사를 건넨다. “지하철 1호선에서 만난 랜턴 전문 잡상인 미스터 리와 이제 아기 엄마가 됐을 수지 양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꼬마 귀신이 전하는 생명과 죽음의 의미

    묵직하다. 뇌사와 장기 기증의 의미를 다루는 어린이책이라니. 또한 어렵다. 초등학생들에게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으로부터 초월을 알려줘야 하다니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 ‘사랑과 영혼’의 어린이 버전처럼 상상력은 발랄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에 가닿는 방법은 친절하고 편안하다. 동화작가 최은영이 쓴 어린이 소설 ‘살아난다면 살아난다’(최정인 그림, 우리교육 펴냄)는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선을 넘나드는 열 두살 근호의 이야기다. 근호의 넋이 가족의 소중함, 생명의 소중함, 타인에 대한 헌신의 의미를 깨달으며 ‘죽어서 살아나는 법’을 배워가는 얘기다. 결국 죽음은 삶과 자리를 바꿔가며 늘 우리 곁에 있는 벗처럼 머물다가 떠나곤 하는 구체적인 대상이다. 귀신을 볼 수 있고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영매(靈媒)인 ‘703호 할머니’는 병원 안팎을 떠돌며 계속 살고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근호에게 알려준다. “편히 가려면 마음속 원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원망으로 가득 차서는 저승에 가서도 편히 지낼 수 없어.”라고 말이다. 근호조차도 채 깨닫지 못하고 있던 마음속 깊은 곳에 쌓였던 원망의 짐을 꿰뚫어본 703호 할머니의 지적이다. 근호는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재혼 가정의 아이다. 애정 표현에 서툰 새아빠, 새할아버지의 무관심에 시달렸다. 유일한 희망인 엄마마저 공부와 성적에 집착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근호의 마음 밑바닥에는 원망과 미움이 커왔다. 근호의 소박한 바람은 ‘엄마와 아빠랑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근호는 병원을 떠돌다가 심장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또다른 열 두살 소년 동우의 사연을 접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번민을 거듭하는 뇌사 상태의 근호와 엄마, 아빠. 이들은 죽음 직전의 근호 앞에서 마침내 마음을 열고 서로 화해하며 소통한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선택한다. 심장 기증을 통해 근호를 더 오랫동안 살리기로 한 것이다. 근호의 시선을 쭈욱 함께 따라가다 보면 가슴 깊은 곳이 덥혀지다가 뭉클한 기운이 서서히 올라온다. 죽음은 삶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쿠바 소설 ‘저개발의 기억’ 국내 소개

    쿠바 소설 ‘저개발의 기억’ 국내 소개

    지식인이라는 존재는 늘 고민이 많다. 실제로 단순 명쾌하게 해석하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하물며 대중이 하나의 이론을 갖고 한 방향으로 몰려 가는 체제혁명의 시기라면, 게다가 그가 부르주아 지식인이라면 더더욱 회색 분자로 전락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 된다. 카리브해의 농염한 태양빛과 바다빛깔도, 흥겨운 재즈 음악에 흐느적거리듯 철썩거리는 말레콘(방파제)의 흰 파도도 그러한 지식인의 고뇌를 막을 수 없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쿠바 소설이다. 에드문도 데스노에스가 쓴 ‘저개발의 기억’(정승희 옮김, 수르 펴냄)은 2003년 처음으로 레오나르도 파두라의 추리소설 ‘마스카라’가 국내에 소개된 이후 두 번째로 나온 쿠바 소설이다. ‘환상적 리얼리즘’ 등으로 표현되는 중남미 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쿠바 소설은 더욱 희귀하기만 하다. ‘저개발의 기억’은 1965년 쓰여진 뒤 포르투갈어 영어·독일어·일본어 등으로 번역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작품이다. 다만 ‘쿠바스러운’ 카리브해 느낌을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쿠바혁명은 작가의 삶을 바꿔 놨다. 혁명 이전에 미국 뉴욕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며 자유롭게 오가던 데스노에스는 1959년 혁명 직후 정부에서 미술평론을 쓰고 잡지를 만드는 등 문화부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7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은 뒤 아예 미국으로 망명했다. 혁명의 외투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르주아 사업가 ‘나’는 1959년 쿠바혁명을 맞으며 부모와 가족이 모두 마이애미로 몸을 피한다. 혼자 남아 자신이 처음으로 성을 샀던 창녀, 자신을 거쳐간 여인들, 가족들에 대해 회상하며 기술한다. 데스노에스의 자전적 소설로 읽혀지는 이 일기 형식의 작품 속에서는 이밖에도 ‘저개발’로 상징되는 쿠바에 대한 기억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단편소설을 몇 편 쓴 ‘나’는 ‘쿠바에서는 내가 ‘벌레’(혁명의 변절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출간해 주지 않을 거고, 바깥에서는 내가 저개발 상태의 작가이기 때문에 출간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고 회색의 처지를 털어 놓는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나는 산 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죽은 자’라고 자학하며 ‘진정한 예술가는 항상 정부의 적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소설을 통해 훗날 자신의 정치적 망명을 사실상 예고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는 20년 이상 고국 쿠바로 돌아가지 못하다가 2003년 중남미에서 가장 권위있는 ‘아메리카의 집’이라는 문화기구에서 주는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으며 다시 쿠바 땅을 밟았고, 이후 사실상 복권(復權)됐다. 일기처럼, 회고록처럼 자신의 감정과 술회를 다분히 주관적으로 쓰고 있지만 작가 특유의 무심한 듯 건조하고 짧은 문장은 읽는 이에게 감정의 전이를 부추긴다. 소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짧은 단편소설 3편 ‘잭과 버스기사’, ‘믿거나 말거나’, ‘요도르’는 소설 본문의 맥락 속에 읽으면 더욱 재미있지만, 따로 빼내서 읽어도 슬며시 웃음짓게 만드는 ‘중남미 문학스러운’ 글편들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주말 데이트]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일등공신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

    [주말 데이트]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일등공신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

    “태릉, 홍릉, 수원 건릉 등 왕릉 주변에 보면 갈비를 파는 식당들이 많죠. 왜 그럴까요?” 지난 7일 만난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이창환 교수가 대뜸 물었다. “네? 글쎄요….” 이 교수가 싱글거리며 대답한다. “조선왕실의 베품 문화가 남아 있는 까닭입니다. 당시 왕릉에서 소, 돼지를 잡아 제례를 올린 뒤 남은 고기들을 인근 백성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제례에 올리는 고기도 조리하지 않고 생고기로 올렸죠. 소, 돼지를 잡아먹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갈비를 굽고, 갈비탕을 해먹기 시작했죠.” ●처음으로 조선왕릉 40기 도면 만들어 지난달 말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꺼번에 등재됐다. 이제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관광의 아이콘으로 조선의 왕릉이 주목받게 됐다. 이러한 쾌거의 숨은 주역이자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 교수는 ‘왕릉 전도사’답게 만나자마자 왕릉이 갖고 있는 무궁한 매력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이 교수의 얘기를 듣다보니 ‘왕릉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교수는 20년 가까이 왕릉에 대해 연구해온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왕릉 박사’다. 실제 전공은 녹지사(역사 경관)이고, 대학에서도 조경학 강의를 하고 있지만 처음으로 조선왕릉 40기를 모두 둘러보고 측량해 도면을 만들었을 정도로 왕릉에 푹 빠졌다. 그의 관심은 국내의 왕릉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의 왕릉과 비교하기 위해 중국에 가서 2년 동안 중국의 왕릉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한국과 중국의 왕릉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철학적 기반, 현재적 의미에도 정통해질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청 입장에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위해서는 조선 왕릉 40기의 도면이 반드시 필요했었고,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등에 중국, 베트남 등 왕릉과 비교해 문화적 특장, 매력을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세계문화유산 일괄 등재 추진은 이 교수를 빼고서는 도저히 진척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의 파견 실사단장으로 온 왕리쥔(王力軍)에게 조선 왕릉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 철학적 가치, 문화적 가치를 풍성한 사례와 함께 설명한 사람도 당연히 이 교수였다. ●죽은 사람·산 사람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 그는 “우리 왕릉은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중국 등 아시아 왕릉과 달리 대부분 10평 남짓의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면서 “대신 울창한 수목과 넓은 잔디 등을 조성해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3년상을 치를 때까지만 해도 무덤은 흉례의 공간이지만 이후에는 길례의 공간으로 바뀌어 쉬고, 놀고, 즐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시대가 바뀐 덕분에 수도권 주변의 유치원, 초등학교의 단골 소풍장소로 왕릉이 손꼽혔던 것을 떠올리자, 이 교수의 설명에 더 쉽게 이해되는 듯했다. 그는 “조선 왕릉은 왕의 무덤이면서 그 시대의 종합예술”이라면서 “왕릉 40기 모두 둘러보고 나면 조선 역사와 예술, 건축, 조경 등의 박사가 돼있을 것이고 숲과 자연 속에서 얻게 될 마음의 안식은 덤”이라고 말했다. ●원형 그대로 남아 문화예술 변천 한눈에 이 교수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 궁궐은 대부분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에 따른 것인 데 반해 왕릉은 건립 당시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조선왕조 문화예술 등의 변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왕릉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왕릉을 찾아가실 때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당시 임금의 생애·업적, 조각예술, 숲 조경 등으로 분야를 나눠서 공부하고 가보세요. 그리고 함께 둘러본 뒤 밥 먹고, 술 한 잔 하면서 자그마한 세미나를 갖는 것입니다. 왕릉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실 겁니다.” 왕릉은 거의 대부분(단종의 영월 장릉 제외)은 서울 수도권 안에 있다. 이 교수의 말을 따라 인터넷을 뒤적이며 공부한 뒤 아이 손잡고 주말에 훌쩍 나들이 다녀오면 어떨까.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이창환 교수는 1956년 출생. 강원 원주고-강원대 조경학과-성균관대 박사(조경史)-북경임업대학 원림건축학 박사후과정. 한국전통조경학회 부회장, 문화재청 전 전문위원, 현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 “99℃가 아니라 100℃로 사는 세상을 알아버렸죠”

    “99℃가 아니라 100℃로 사는 세상을 알아버렸죠”

    “9년 동안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했는데 마지막 즈음에 가슴이 덜 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하철 순환선을 타듯이 일이 익숙해졌다는 신호였고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신호였습니다.” ●가슴 더 뛰기 위해 새로운 도전 오지 여행가로,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거듭 변신하며 정열적인 활동을 펼쳐온 한비야(51)씨가 또다시 자리를 훌훌 털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한씨는 다음달 10일 미국 보스턴 터프츠대 플레처스쿨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이곳에서 1년 6개월 정도 기간 동안 국제관계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식량 구호 정책을 공부할 계획이다. 9년의 시간 동안 쌓은 현장 감각에 정책 이론의 부분까지 갖추겠다는 욕심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흔적을 한국에 남겨놓았다. 그가 ‘막내’와도 같다고 표현한 자신의 여덟 번째 책 ‘그건, 사랑이었네’(푸른숲 펴냄)를 내놓았다.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 책에 대한 밉지 않은 자랑과 함께, 새로운 삶을 앞둔 기대감을 들뜬 표정과 빠른 말투로 드러냈다. 그는 “그동안 썼던 책들이 내가 봤던 세상에 대한 전달자 역할이었다면 이 책은 숨김없이 나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책”이라면서 “여덟 번째 아이이자 막내같은 존재라 어젯밤에도 껴안고 잤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새롭게 놓인 도전에 대해서도 “나는 99℃가 아니라 100℃로 사는 세상을 알아버렸다.”면서 “공부가 어렵겠지만 물을 끓이지 못하는 99℃로 미지근하게는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업 마친 뒤에도 구호현장에 있을 것 한씨는 이후 국제구호 활동가로 변신해 2001년부터 월드비전에서 홍보팀장과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했다. 그는 학업을 마친 뒤 계획에 대한 질문에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색하겠지만, 50대의 나는 반드시 구호 현장에 있을 것”이라면서 국제 구호 활동을 천직삼아 일할 것임을 강조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Let’s Go]정선의 숨겨진 매력 속으로

    [Let’s Go]정선의 숨겨진 매력 속으로

    ‘강원랜드 오셨죠? 얼른 역 창구로 가서 돌아가는 기차표 끊어 놓으세요. 진짭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역 화장실 한 쪽 벽에 쓰인 낙서다. 실제로 이 말을 흘려 듣지 않은 이는 최소한 집까지 돌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설령 지갑에는 천원짜리 한 장 남아 있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1960~70년대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흥청거리던 석탄산업 역군들의 도시가 아니었다. 갓난애기 기저귀 빨래에서도, 수도꼭지에서 흘러 나오는 물에서도, 탄광 새벽작업조 출근길 한쪽 풀더미에 맺힌 아침이슬에서도, 어디를 둘러봐도 검은 탄가루가 묻어나던 진회색의 도시 또한 아니다. 또한 1980년 4월 누구는 폭동이라고 불렀고, 또 누군가는 항쟁이라고 불렀던 암울했던 ‘사북 사태’의 흔적 역시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지금 정선은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곳곳에 식당과 매점, 여관, 사우나, 전당포, 차량정비센터 등이 밤새워 불을 밝히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카지노로 대표되는 강원랜드다. 누군가에게는 대박의 희망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빈털터리의 쓰라림으로 남아 있는 강원랜드. 그러나 정선을 카지노로만 즐기려 한다면 절반 이상의 매력은 놓치는 셈이다. 정선에서 뚜벅뚜벅 걸으며 즐길 거리는 너무나도 많다. ●레일바이크와 농촌체험 어때요 정선군 남면 남동리 ‘개미들 마을’이 있다. 지장천이 굽이치는 마을 곳곳에 뿌려진 옥수수 밭고랑마다 개미들이 기어다니고 그 개미들보다 이곳 사람들이 부지런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농촌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지장천에서 유유히 노니는 송어, 미꾸라지를 잡아볼 수도 있고, 971m의 그리 높지 않은 백이산에서 원시의 자연을 만끽해 볼 수도 있다. 마을 뒷산처럼 보이지만 백이산에 발걸음을 들이면 동굴탐사와 암벽등반, 트레킹 등 고산준봉 못지않은 원시림에 들어선 듯 풀잎 하나, 나무 한 그루, 온갖 멧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콘크리트에 지친 도시인들을 편안케 한다. 마을 한 바퀴를 돌며 푸근한 산천을 보게 해주는 트랙터 유람차가 개미들마을의 명물이다. 트랙터에 나무로 만든 유람용 달구지를 매달았다. http://gemi.mygohyang.net (033)591-4141 또한 레일바이크는 예약하지 않으면 탈 수 없을 만큼 각광받는 정선의 최고 히트상품이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에 이르는 철로 위를 2인용 또는 4인용 철로 바이크로 달린다. 오르막길이 없어 자전거보다 힘들 게 없다. 살짝만 페달을 밟아도 금세 기본 속도를 내준다. 힘들면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밟고 다른 이들은 노추산, 송천계곡. 오장폭포 등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 된다. 예약 관련 문의는 정선군청(033-560-2361~3)을 통해 가능하다. 지난 겨울 스키 천국이었던 백운산은 여름을 맞아 또다른 천국이다. 40여종의 야생화가 지천에 피었다. 노랑벌꽃, 수염패랭이꽃, 루핀, 데이지 등 사람의 손에 의해 뿌려진 야생화들이지만 자연스레 색색의 군락을 이루며 하얗게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마운틴 탑에서 야생화를 한껏 즐긴 뒤 2.2㎞의 레일 위에서 즐기는 알파인코스터는 하이원 스키장을 한여름에도 찾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오르락 내리락 아찔함을 즐기는 알파인코스터는 한 번에 1만 5000원(어른)이다. 그러나 절정으로 치닫는 야생화를 즐기기 위해 굳이 곤돌라를 타야 할 필요는 없다. 백두대간의 전경을 만끽하면서 약 1시간 30분 오르면 해발 1426m의 백운산 정상 마천봉에 도달한다. 등산로 주변에는 봄에는 엘레지, 오랑캐꽃, 등근풀제비꽃 등이, 여름에는 개쑥부쟁이, 개불알꽃, 노루오줌, 개망초 등 다양한 꽃이 형형색색 옷을 입어 가히 천혜의 산책로다. ●‘식객’ 속 운암정의 고풍스러운 환생 운암정이 10일 문을 연다. 드라마 ‘식객’을 촬영했던 세트장을 아예 전통음식점으로 차린 것이다. 혹시라도 김래원(식객의 주인공 성찬 역)을 좋아해서 그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비록 이름은 빌려 왔지만 드라마의 명성을 빌려온 것이 아니라 원작(만화)에서 얘기하는 전통 음식의 복원 공간으로서 자리매김됐기 때문이다. 원작 만화 속 ‘운암정’이 전통 궁중음식을 재현하는 곳이라면 현실 속 운암정은 한정식과 궁중음식의 중간쯤 된다. 궁중음식의 대중화를 꾀하기 위한 ‘준(準) 궁중음식’이라고 해야 할까. 이를 위한 노력은 눈에 쉬 드러나지 않아도 여러 형태로 묻어난다. 10년된 된장, 고추장 및 20년된 간장에 햇장을 섞었고 미네랄과 유기산, 핵산이 풍부한 장을 쓴다. 또한 5년 동안 간수를 뺀 소금, 버섯, 새우, 멸치가루 등 천연 조미료 만을 사용했다. 여기에 음식 재료의 성격에 맞춰 식기도 맞춤형으로 준비했다. 메뉴는 가장 저렴한 한우육회골동반(궁중 비빔밥)이 3만 5000원이니 결코 싸지는 않다. 지난밤 카지노에서 대박이 터지지 않았을지라도 큰 마음 먹고 한 번쯤 즐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여름철 보양음식은 운암정의 야심작이다. 3년 전부터 식용이 허용된 오소리를 주재료로 한 ‘소웅보양진상’(16만원)과 도축되기까지 유황을 6㎏ 이상 먹여서 키운 ‘진짜 유황오리’로 만든 ‘홍삼유황오리진상’(12만원)은 운암정이 한껏 힘을 준 최고급 음식이다. ●“강원랜드 슬기롭게 즐기세요” 카지노는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영업을 한다. 일확천금의 꿈으로 대박을 노리다가는 쪽박찬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현금카드는 아예 집에 두고 가라. 또한 현금은 본인이 몽땅 써버려도 감내할 수 있을 만큼만 지갑에 넣고 가라. 혹시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 붙어 어느 만큼 돈을 땄다면 카지노 입장 시간이 5분이 됐건, 30분이 됐건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그리고 딴 돈은 불로소득인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기분 좋게 써라. 처참하게 돈을 잃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다. 처음에 돈을 딴 사람들과 그 잃은 돈을 만회하려는 사람들이다. 다시 한 번 명심하자. 카지노는 돈을 따러 가는 곳이 아니라 게임을 즐기러 가는 곳이다. 게다가 강원랜드라면 카지노 외에도 매력이 즐비하지 않은가. ●여행수첩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경부·중부고속도로(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 국도를 타면 영월 지나 정선에 도착한다. 태백선 기차는 청량리역에서 고한역까지 하루 일곱 차례 다닌다. ▲먹을 거리 정선 고한읍내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로 알려진 함백산 만항재(1330m)를 오르다 보면 정상에 거의 다와서 왼쪽으로 ‘함백산 토종닭집’이 있다. 대표메뉴 토종닭 백숙과 닭볶음탕이 맛있다. (033)591-5364. 글 사진 정선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4대강 사업구간 225곳 발굴조사

    4대강 사업 구간 225곳에서 발굴 조사가 이뤄진다. 또한 나루터 유적을 중심으로 27곳 이상에서 수중 조사가 실시될 전망이다. 4대강 사업 지역의 문화재 보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문화재청이 처음으로 밝힌 내용이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지표조사 결과 486건이 시굴 조사 등 사전에 유구(遺構·옛 건물의 흔적)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1차 공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261건을 제외한 225건에 대해 시굴조사, 표본조사, 분포 확인조사 등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청장은 “시민단체 등에서 수중조사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유수나 홍수에 의해 퇴적과 침식이 반복되는 하천에는 유구·유물의 존재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정해 1차 조사를 한 뒤 필요할 경우 조사 지역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일단 지표조사 보고서에서 고지도나 문헌조사 등을 통해 제시된 134곳 나루터 유적 중 27곳을 중심으로 수중 유구 상태와 주변 환경을 집중 조사할 계획임을 밝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4대강 사업시행자인 지방국토관리청과 계약을 맺은 23개 전문기관이 지난 2월부터 3개월간 지표조사를 시행한 결과 지정문화재 169건, 매장문화재 분포 추정지 및 비지정문화재 1482건이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청장은 “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하면서 문화재 보존 효과와 사회적 비용 절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4대강 사업이 문화재의 보존· 활용과 어울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공식번역가 제도로 작품 질 높이고 해외서 상설포럼… 한국문학 홍보”

    “번역의 질을 확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노벨문학상 자체를 굳이 목적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번역의 질이 좋아져 결과적으로 노벨상을 받는 데 기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죠.” 취임 6개월을 맞은 김주연(67) 한국문학번역원장은 6일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원장은 한국문학번역원 공식 번역가(KLTI Translator) 다섯 팀을 선정했음을 밝히며, 국내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김 원장의 우선적 바람은 노벨상과 같은 가시적 성과보다는 한국 문학의 활발한 해외 소개와 번역의 질 제고다. 김 원장은 “번역가 제도 운용을 통해 작품 번역의 질을 높임은 물론 뉴욕, 파리, 베를린, 베이징, 도쿄 등에서 해외 상설 문학 포럼을 개최해 국내 작가들과 그 작품들이 활발히 소개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선정된 번역가들은 영어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과 유영난씨 등 2개팀, 불어권은 최미경·장 노엘 주테, 독일어권은 김선희·에델트루트 김, 스페인어권은 고혜선·프란시스코 카란차다. 이들은 번역원이 고른 40권 안팎의 국내 작품들 가운데 한 권을 골라 번역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번역료는 기존 18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대폭 오른다. 김 원장은 “지금껏 수백편이 해외에 소개됐지만 제대로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은 없었다.”면서 “우선적으로 한두 권만 제대로 알려져도 우리 문학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와 함께 한국 도서의 해외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오는 13일 도쿄에서 일본 출판사, 한국 번역가 등이 참가해 ‘KLTI 도서포럼’을 여는 등 베이징(9월8일), 뉴욕(10월 중)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세 도시 외에도 파리, 베를린으로 해외 도서포럼의 영역을 넓히고 이후 모스크바, 스페인어권 도시 등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일그러진 청춘의 극단성 묘사 따뜻한 인간애로 고통 감싸

    일그러진 청춘의 극단성 묘사 따뜻한 인간애로 고통 감싸

    사내에게는 늘 어미가 없다. 그 탓일까. 남편과 사별한 애 둘 딸린 연상녀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못차린다.(‘생각하니 점점’) 혹은 갓 스물을 넘긴 어미 없는 청춘 남녀는 욕짓거리를 일상 언어로 내뱉으면서도 결국 서로를 가련하게 여기며 풋사랑을 일궈간다.(‘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어미없는 등장인물의 우울한 선택 어미 없는 사내의 상실감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세상의 벼랑 끝 마지막 한 걸음까지 밀려난 남매간의 금지된 사랑(‘아직 아직은’)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아니면 팔뚝에 어미의 얼굴을 문신으로 새겨놓고 살며 끔찍한 연쇄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다.(‘천국의 기원’) 이상섭이 3년 만에 펴낸 새로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처럼 철저하게 일그러진 가족 관계가 짙게 드리워놓은 그늘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어미없는 청춘들’이다. 세상이 아름답게 반짝이면 반짝일수록 꽃다운 젊음은 역설적으로 더욱 우울해진다. 빼빼 말라비틀어지거나 정반대로 익사 직전의 상황에 내몰려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건강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그의 소설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표제작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에서는 어머니가 없는 철없는 젊은 연인들이 자신을, 상대방을 동정하다가 마지막에는 ‘더러운 웅덩이에서 막 빠져나온 것’처럼, 그리고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한 마리 나비’처럼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다. 또한 그럼에도 ‘여기 왜 왔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가족 관계 안에 희망이 있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강점은 이미 첫 소설집 ‘슬픔의 두께’(2004년)와 두 번째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2006년)에서 확인된 바 있다. 바다를 무대로, 탄탄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한 삶의 구석진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있는 사람들을 애써 찾아다녔다. 이번 소설집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근친상간, 연쇄 살인, 사체 유기 등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며 리얼리즘이라는 문학의 형식적 굴레까지 벗어던진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게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이상섭의 장점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빛난다. 극단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우연에 내맡기지 않는다. ●풍자·해학의 타고난 이야기꾼 문학평론가 구모룡씨는 “이상섭의 변화는 소위 정공법으로 불리는 서술 전통을 서서히 이탈하는 데서 감지되었다.”면서 “세상의 위악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려는 그의 태도는 상실과 고통을 따스한 인간애로 감싸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상섭은 2002년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문예적 기교를 앞세운 가벼운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시대이기에 전업작가가 아니면서도 건강한 해학과 풍자를 놓치지 않는 이상섭이 더욱 돋보인다. 내친 김에 구성지고 질펀한 서사를 펼쳐내는, 가슴이 뻑적지근해지는 장편소설을 그에게 기대해본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Let´s Go] 전통과 현대 공존하는 中 상하이

    [Let´s Go] 전통과 현대 공존하는 中 상하이

    │상하이 박록삼특파원│‘창장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 역사 발전의 필연적 합법칙성을 얘기할 때, 혹은 후대에 대한 경외와 자기 성찰을 요구할 때 중국에서 흔히 쓰는 속담이다. 하지만 상하이(上海)를 꼼꼼히 보고 나면 이 속담은 조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창장의 뒷물결은 앞물결에 섞여서 함께 흐른다.’ 정도로 말이다.창장(長江)의 지류가 흐르는 중국 상하이의 첫 인상은 ‘최첨단 과학문명의 총아’와 함께 시작된다. 푸둥국제공항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시속 431㎞의 자기부상열차를 타면 지하철 2호선 룽양루(龍陽路)역까지 30여㎞를 8분 만에 주파한다. 그럼에도 화려한 마천루가 뒤덮고 있는 중국의 메트로폴리스 상하이에 오면 몸을 바짝 낮추고 눈길을 낮은 곳에 둬야 한다. 수백년의 역사와 교감하기 위해서, 또 보이는 것 이상을 보기 위해서다. 상하이의 내밀한 속살은 그런 곳에 감춰져 있다. 상하이 곳곳에 감춰진 전통과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박제화되지 않은 역사가 숨쉬는 곳 1년이면 한국 관광객 수십만명이 상하이를 찾는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명(明)나라 시대의 정원 위위안(豫園)을 찾아 ‘부모를 위해 20년 동안 지은 효심의 정원’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또 해질 무렵이면 황푸장(黃浦江)의 강변 광장이라 할 수 있는 와이탄(外灘)과 유럽 또는 홍콩 어딘가를 방불케 하는 신톈디(新天地) 등을 들러 상하이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를 엿본 뒤 둥팡밍주(東方明珠) 468m 꼭대기에 올라가 상하이의 어마어마한 스카이라인을 둘러본다. 여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물어물어 찾아가 그 방치된 듯한 모습에 실망하거나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상하이에서 묵은 뒤 쑤저우(蘇州), 항저우(抗州), 난징(南京) 등을 찾아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상하이에 와서 필수적으로 들러야 할 곳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흔하게 널린 간접 정보들에 노출된 탓인지 뭔가 아쉽거나 식상하다. 2001년 이곳을 방문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표현처럼 이미 ‘천지 개벽’한 데다 내년 엑스포 행사를 준비하느라 더욱 화려해지고 있는 도시다. 번쩍거리는 불빛이나 뉴욕 못지않은 화려함보다 오히려 전통과 과거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특히 그 모습들은 박물관처럼 박제화되지 않았기에 더욱 반갑다.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하이의 낡은 골목길인 눙탕(堂)과 상하이에서 1시간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1700년 고도(古都)인 주자자오(朱家角)에서 물과 벗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인사동 혹은 홍대앞’ 타이캉루 눙탕은 중국 남방식 골목길을 일컫는다. 홍콩 영화에서 흔히 봤던 좁고 추레한 모습과 흡사하다. 세 명 정도가 함께 지나치려면 어깨가 스칠 듯하다. 머리 위로는 낡은 옷가지며 헤진 이불, 대충 쥐어짠 행주 등이 걸려 나부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중국 당국은 지난해 올림픽 이전부터 이를 단속해 왔다- 웃통을 벗고 있거나 러닝셔츠만 걸친 채 골목길 한편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무심하게 좇는다. 상하이의 눙탕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두어 곳밖에 남지 않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며 서양 관광객들과 국내의 일부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다. 가장 흥성한 곳이 바로 타이캉루(泰康路)의 눙탕이다. 중국 서민들이 살아왔던 역사와 생활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화랑과 골동품·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다. 중국적 도시 문화 속에서 각국의 음식 문화, 예술 문화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북한의 그림, 포스터만을 전문적으로 모아놓은 카페 ‘코뮤니스트’도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반가운 한글을 보고 들어섰다가도 섬뜩한 문구의 나열에 흠칫 놀랄 수도 있다. 카페 주인은 호주 사람이라나. 이런 골목길이 미로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술렁술렁 목적 없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찾으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헤매거나 아예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얼핏 홍대 앞의 자유분방함도 느낄 수 있고 인사동의 국적불명의 전통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은 청대의 봉건지배부터 서구 열강의 아귀다툼, 국민당, 공산당 등 역사의 도저한 흐름 속에서 권력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며 자신들만의 생존법을 익혀온 중국의 기층 인민들이 지내온 엄연한 생활의 터전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1호선 황피난루(黃陂南路)역에서도 꽤 떨어져 있다. 직접 찾기는 쉽지 않다. 그냥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타이캉루’를 외쳐야 한다. 중국어 성조가 익숙하지 않으면 그냥 한문으로 써주자. 상하이 택시기사는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주자자오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아직 낯설다. 최근 들어 여행상품에 많이 포함되면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수상 도시 저우좡(周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저우좡이 마치 반질반질 닳았지만 손에 넣기 어려운 큰 돌덩어리 같다면 주자자오는 울퉁불퉁하지만 볼수록 매력 있는 조약돌과 비슷하달 만큼 오밀조밀하다. 최근 국내 한 드라마(‘카인과 아벨’)를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차오강허(漕港河)를 큰 줄기로 해서 작은 샛강이 얼기설기 이어져 다뎬(大淀)호수로 흘러간다. 물길 사이에는 36개의 돌다리들이 놓여 명나라, 청나라 상업거리의 풍모, 뱃길의 정취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우체국 다칭유쥐(大淸郵局)는 중국 동부에서 유일한 우체역사기념관이다. 우체국 뒤편에는 우편배달 배들이 묶인 채 지금이라도 당장 편지와 소식들을 가득 싣고 떠나려는 듯 물결에 출렁거리고 있다. 또한 1912년에 지어진 커즈위안(課植園)은 중국식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원이다. 울울한 나무들 속에서 지친 다리쉼을 하기에 제 격이다. 이밖에도 벼농사전시관, 현대조각예술갤러리, 당삼채미술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주자자오는 상하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저우좡이 2시간 남짓 걸리는 데 반해 주자자오는 1시간 거리에 있다. 상하이체육관(上海?育館) 전철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상하이여행센터(上海旅游中心)가 있다. 여기에서 주자자오로 가는 표를 판다. 영어는 안 통하니 지명을 미리 한문으로 준비해 두자. 주자자오 입구에 도착하면 인력거꾼들이 비둘기떼처럼 몰려온다. 이 도시가 매우 넓으니 자기네 인력거를 타고 투어하라는 얘기다. 못 알아들으면 다행이지만 설령 말이 잘 통하더라도 무조건 ‘부야오!(不要)’를 외쳐라. 바가지 요금이다. 주자자오는 걸으며 쉬며 구경하며 돌아보기에 딱 좋은 정도의 크기다. 글ㆍ사진 youngtan@seoul.co.kr ●여행수첩 ▲이동 방법 푸둥 공항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탈 때는 꼭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자. 편도 티켓 50위안을 40위안으로 할인해 준다. 시내에서 이동할 때는 지하철이 좋다.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상하이의 공포스러운 교통지옥을 피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 2~6위안이다. ▲묵을 곳 호텔이 아니라도 싸고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많다. 바로 대학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영어가 곧잘 통하는 데다 교통이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또한 중국의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상하이사범대학(6432-2236) 또는 둥제(東街)대학(6598-2500), 화둥(華東)사범대학 등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100위안 안팎으로 묵을 수 있다.
  • 백제 채색벽화 발굴 부여

    백제시대 사찰 벽화가 숨겨진 자태를 일부 드러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1일 “지난 4월23일 이후 충남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51-2번지의 고대 사찰터인 ‘임강사지’를 발굴 조사한 결과, 백제시대 유물임이 분명한 채색 벽체 조각을 수십 점 수습했다.”면서 “이들 벽화 조각은 A-1구역이라고 이름붙인 백제시대 건물터 내에서 백제 연화문 와당이나 같은 시대 평기와류와 함께 다량으로 출토됐기 때문에 백제시대 벽화 유물임에 틀림없다.”고 밝혔다. 이번 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각종 지리에서 금강 변에 인접한 절터라고 해서 ‘임강사지’(臨江寺址)라고 일컬은 이곳이 백제시대 사찰터임이 분명해졌다. 방형 초석(方形礎石·사각형 기둥받침돌)과 원형주좌 초석(圓形柱座礎石·둥근 형태의 기둥받침돌)이 있는 백제시대 대형 건물터가 드러나고, 백제시대 각종 기와류가 함께 출토됨으로써 적어도 백제시대 이곳에 대형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1964년 동국대박물관이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벌여 백제시대 절터로 추정하긴 했지만 정식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김유식 부여박물관 학예실장은 “따라서 이번에 출토된 벽화 편(片)은 안정된 백제 문화층에서는 처음 출토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백제 회화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면서 “발굴이 계속되면 더 많은 벽화 편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혼 서린 곳… 개발논리 지양·체계적 보존해야

    한국 혼 서린 곳… 개발논리 지양·체계적 보존해야

    조선왕릉 40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왕릉으로 대표되는 우리 문화와 역사가 민족적 특수성을 넘어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쾌거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몇 년 동안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이 성취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익집단들의 개발 논리에 이끌리지 않도록 체계적인 보호·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민(民)이 시작해 관(官)이 완성 #장면1 2004년 6월20일 구리시민 4327명의 청원이 구리시의회에 제출된다. 9왕릉, 17위가 모여 있는 동구릉에 ‘조선왕조특구’를 지정해주면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풀뿌리 시민들의 무모해 보였던 첫 걸음이었다. #장면2 2004년 12월13일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조선왕릉 40기를 한꺼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2006년 1월16일 이를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하고, 2008년 1월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WHC)에 등재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장면3 2008년 9월21일 WHC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실사단을 한국에 보낸다. 그리고 올해 1월6일 문화재청에 태릉선수촌 철거 문제, 한국종합예술학교 이전, 서오릉 능역 내 일부 건물(골프장, 목장 등) 환경 개선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한 달 남짓 뒤인 2월27일 ICOMOS측은 “만족스러운 답변을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사실상 결정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보고 실제로 조선왕릉은 고구려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그저 옛 왕· 왕비들이 묻혀 있는 무덤이 아니다. 한국인의 의식 기저에 자리잡은 유교와 도교 등 철학적 가치와 함께 봉분· 석물 등의 문화적 성과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또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전통 제례의식의 계승 공간이며, 고문서와 유물 역사적 사료의 보고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연결지어주는 매개체인 셈이다. ICOMOS가 WHC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왕릉이 탁월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라는 점과 능침·제향·진입공간으로 나눠진 곳마다 독특한 조성방식과 석물이 있는 등 전체 공간 구성의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또한 풍수지리로 왕릉을 선택하는 등 자연의 법칙을 중요시했다는 점과 현재까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각 왕릉에서 제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주목했다. ●향후 관건은 개발과 보전의 조화 세계유산 보유국은 6년마다 한 번씩 현황을 조사해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계해야 할 부분은 개발 논리 일변도에 휩쓸리는 것이다. 독일 쾰른 성당은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나 성당 주변에 고층 건물 계획이 세워지며 2004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또한 오만 아라비아 사막의 아라비아 오릭스(영양) 보호구역은 축소를 택하면서 취소되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종묘가 종로세운상가 주변의 재개발 계획 등으로 등록 취소의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도 여당 국회의원이 내놓은 ‘15층 고도제한 완화’ 공약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우리도 세계유산에서 퇴출된 엘베 계곡과 같은 운명에 처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면서 “조선왕릉의 능묘 제도 복원 사업 기본계획을 토대로 복원정비하고, 능역 안에 들어선 태릉선수촌이나 군사시설은 유네스코와 약속한 시점까지 철거하겠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울한 시대… 이런 소설 어때요”

    끔찍했던 용산참사, 전직 대통령의 충격적 죽음 등 우울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등단 이후 30여년 동안 40여편의 단편작품만 남길 정도로 과언(寡言)으로 소설을 쓰는 박인성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후벼 파인 상처를 닦아주고 위로해줄 소설을 꼽았다. 그가 권하는 작품은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 서정인의 ‘강’,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다. 박인성은 “섬세한 문장으로 세상을 성찰하게 하는 한편 무감각한 일상에서 소통을 보여주는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 ‘유년의 뜰’도 좋고, 언어에 의한 상처의 치유라는 소설 본연의 기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서정인 작품도 다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면서 “한국인의 가슴 속에 품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그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극복을 풀어낸 이청준의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박인성은 등단작 ‘적, 소리, 빛’부터 시작해 ‘파장금엔 안개’, ‘호텔 티베트’, ‘사랑은 안개보다 깊다’ 등으로 ‘낯설게 보이기’의 효시라는 평을 받았고 삶의 비의(秘意)를 찾는 작품을 꾸준히 써왔다. 그는 실제로 우울증을 앓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탈북자·이주노동자의 삶 훈훈한 시어로 품다

    탈북자·이주노동자의 삶 훈훈한 시어로 품다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접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박해받는 선량한 이들이기에 연민의 시선으로 무조건 감싸줘야 할 대상인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벌레 대하듯 외면받거나 2등 시민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고정되고 박제화된 이미지다. 필리핀 베트남 몽골 파키스탄 미얀마 등 출신 국가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다투고 화해하고, 토라지고 즐거워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지만 실상은 그렇다. 만34년의 시력(詩歷)으로 어느덧 중견시인을 넘어 원로에 가깝게 된 하종오(55)가 나서 이들의 삶을 눈살 찌푸리며 멀리 밀어낼 이유도 없고, 당위성과 대의명분 아래 애써 끌어당겨 연대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가 펴낸 열 일곱 번째 새 시집 ‘입국자들’(산지니 펴냄)에 등장하는 탈북자, 이주노동자, 이주민들의 삶은 핍진함 그 자체다. 그는 “시인으로서 모든 감정과 수식어를 배제했다.”고 강조했지만, 문학적 전형성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면서도 오히려 훈훈함으로 가득차 입가에 미소짓게 만든다. 시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피부 색깔과 성별, 세대 등을 모두 뛰어넘어 같은 계급으로서 연대하고, 노동현장에서 입은 장애로서 공감하고(‘장애’), 아버지의 자식, 자식의 아버지로서 함께 뛰놀곤 한다(‘밴드와 막춤’). 시인은 굳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시인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아시아 공동체’가 절로 그려진다. ‘…한국인 철진 씨도/ 인도네시아인 하디링랏 씨도/ 언제 잘릴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쉴 때는 옆에 주저앉고/ 일할 때는 물건을 맞잡고 옮긴다.(‘비정규직’ 중 일부)’ 또 ‘연인’을 보면 ‘파키스탄인 자밀씨’와 ‘한국인 정숙씨’는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둘 다 공장 노동자’이고 ‘서로의 마음이 몸을 끌어당긴다’는 이유로 사랑을 이뤄낸다. 1980~90년대 민중시와 통일시를 주로 쓰던 그가 이주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평범한 관찰이었다. 1991년 강화도의 허름한 농가에 작업실을 마련한 시인은 살고 있는 서울 변두리 집(면목동)과 김포를 오가는 길에 ‘저 들판에 왜 저리 많은 외국인들이 있을까.’라는 첫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이후 여러 경로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등 여러 시집을 지속적으로 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주노동자 단체나 모임 행사 등은 일부러 피했다.”면서 “동네 변두리 목욕탕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얘기 나누다 보면 그 삶을 충분히 접하게 된다.”고 말했다. ‘입국자들’을 펴낸 출판사는 부산에 있는 산지니다. 시인은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면서도 일부러 서울이 아닌, 지방의 출판사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지방의 문화와 정서 등을 배경삼아 시나 소설 쓰는 문인들이 지방 문화의 활성화를 강조하곤 하면서 정작 이들도 자신의 책을 낼 때는 서울로 올라가기 일쑤다.”면서 “문인이라면 거대 출판사의 명성에 기대고픈 욕망을 버리고 좋은 시, 좋은 소설로 승부하려는 마음에서 출발 해야 한다.”고 힘줘 얘기했다. 시인은 그랬다. 글과 말이, 그리고 사람이 서로 다른 경우가 허다한 세상에서 주변부 삶을 살면서 주변인에 대한 지속적 관심, 게다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사소한 부분까지 살뜰하게 챙겨내고 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고] 소설 ‘순교자’ 재미작가 김은국씨 별세

    소설 ‘순교자’로 유명한 재미작가 김은국(미국명 리처드 E 김) 씨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자택에서 별세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77세. 1932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월남해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1964년 데뷔작 ‘순교자’(The Martyred)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심판자’(The Innocent)와 ‘잃어버린 이름’(The Lost Names)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한국전쟁 때 순교한 목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순교자’(영문소설)는 발표 당시 미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이후 세계 10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연극(1964), 영화(1965), 오페라로 각색돼 널리 알려졌다. 고인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덴마크계 미국인인 부인과 아들 데이비드, 딸 멜리사가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白凡 피묻은 옷 등 19점 문화재 등록

    白凡 피묻은 옷 등 19점 문화재 등록

    1949년 6월26일 낮 12시30분쯤. 서울 종로구 평동 경교장(현 서울강북삼성병원) 2층 백범 김구(1876~1949년) 선생의 집무실이다. 백범이 점심 식사로 만둣국을 먹기 직전 면식이 있던 육군 소위 안두희가 면담을 요청한다. 늘 그림자처럼 수행하던 비서 선우진은 점심을 준비하러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며 잠시 자리를 비운다. 그리고 잠시 뒤 터진 네 발의 총성. 두 발은 비껴나가 유리창을 꿰뚫고, 두 발은 백범의 머리와 가슴을 그대로 관통한다. 쿨럭쿨럭 흘러내린 피는 조끼적삼과 저고리, 토시를 지나 바지, 양말, 대님까지 붉게 적신다. 역사의 한 장면으로 생생히 남게 된 백범의 마지막 순간이다. 문화재청은 25일 “백범 서거 60주기인 26일을 맞아 백범 선생의 유물 19점에 대해 등록예고 기간을 거쳐 439~442-3호 국가문화재로 최종 등록한다.”고 밝혔다. 25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용산의 백범기념관에서는 문화재 등록 유물을 일반인에게 공개 전시한다. 또 26일 오후 2시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백범 서거 60주기 추념식 및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이번에 문화재로 최종 등록된 유물은 서거 당시 입고 있던 피묻은 의복류 8점(439호)을 비롯해 백범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있을 때 편지, 붓글씨 등에 사용하던 인장(印章) 3점, 상하이 훙커우공원으로 떠나기 전 윤봉길 의사와 맞바꾼 회중시계가 있다. 그리고 백범이 60년 전 총탄에 맞기 직전 경교장 집무실 책상에 놓여있던 ‘신기독(愼其獨·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다)’ 등 유묵(遺墨) 휘호 3점까지 모두 19점이다. 특히 혈흔이 있던 의복은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존처리 결과 백범의 혈액형이 AB형임을 확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백범의 유물과 함께 경교장은 어느 곳만큼이나 대한민국 역사를 묵묵히 목도한 곳 중 하나다. 1945년 12월3일 첫 국무회의를 연 곳이며 12월28일 긴급 국무회의에서는 신탁통치 반대를 결정했고, 사흘 뒤에는 임정 내무부 포고령을 선포하고 미 군정에 행정권 이양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1948년 남북협상을 위해 주변의 온갖 만류를 뿌리치고 평양행 승용차에 올랐던 곳이기도 하다. 삼성병원의 사유재산으로 남아있는 경교장은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백범이 머물던 당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문화재청에서 현장 조사를 진행중이며 내년 6월부터 복원공사를 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아~.” 드디어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신음인 듯, 탄성인 듯 짧은 소리들만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구름이 엷게 깔렸지만 밤하늘에는 북두칠성, 북극성, 토성 등 별자국이 또렷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시의 형광등, 백열등 불빛에만 의존해 왔던 타락한 시력이었지만 무더기로 빛나고 있는 별을 찾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이 주황색, 초록색, 흰색 등으로 각기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책에서만 보던 사실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북두칠성 7개 별 중 손잡이 쪽 끝에서 두 번째 별이 사실은 2개임도 선명히 볼 수 있다. 북두칠성은 ‘북두팔성’이었다. 파천황(破天荒)의 순간이다. 강원도 영월군 봉래산 799.8m 꼭대기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의 개폐식 지붕이 열리면서 나타난 풍경들이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매일 저녁이면 세 차례(저녁 8시, 9시, 10시)씩 많은 사람들이 맨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천체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수와 영원으로의 별잔치가 펼쳐진다. 30분간 시뮬레이션 별자리 강의를 듣고, 나머지 30분은 진짜 별을 볼 수 있다. 여름밤에 보는 별은 더욱 선명하다. 별과 자연은 영월 여행의 키워드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가다가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30분 남짓 향하다가 영월 쪽으로 빠져나왔다. 신림 나들목(88번 국도)도 좋고, 제천 나들목(38번 국도)도 좋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쩡히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 FM이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 보니 들쑥날쑥한 음질의 방송만 나오질 않나, 엉뚱한 중국방송이 섞이질 않나, 깨끗한 방송은 잘 잡히지 않는다. 강원도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신호다. 실제로 온통 산이다. 영월 길 위를 차로 달려 보라. 산모퉁이를 돌아들면 또 다른 산모퉁이가 버티고 있다. 사람 사는 집 서너 곳이 모여 있나 싶으면 또다시 산이 떡하니 나타난다. 산자락 아래 평평한 곳이면 겨우 손바닥만 한 땅일지라도 한 구석에 집 짓고 밭 일궈온 이곳 옛 사람들의 신산하고 강퍅한 삶이 떠올라 가슴이 막막해진다. 하지만 대대로 사람을 힘들게 했던 산간오지의 때묻지 않은 자연은 이제 하나의 축복이 됐다. 청정무구 영월에 와서 래프팅만 하고 간다면 진짜배기 영월은 보지 못하고 가는 셈이다. ●영월 사람들이 감춰놓고 즐기는 곳 주천강 한 자락에 자리잡은 요선암(邀僊巖)과 요선정은 그 대표적인 예다. 주천강은 서강의 최상류이다. 서강은 다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르게 된다. 동강이 래프팅 등으로 때만 되면 몸살을 앓는 데 반해 서강의 윗물인 주천강의 요선암은 영월 10경에 꼽히면서도 한 구석에 꼭꼭 숨겨진 탓인지 사람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았다. 요선암 주변의 바위를 보면 더러는 엉덩이가 꼭 낄 정도로 조그맣게, 더러는 넉넉히 몸 담그면 좋을 법하게 널찍한 모양으로 곳곳에 널려 있다. 완만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결과 두툼한 바위가 힘겨루기를 한 끝에 만들어진 복스러운 바위들은 주천강 요선암 주변에 떡두꺼비처럼 넙죽 엎드려 있다. 요선암은 조선시대의 문인 양사언(1517~1584)이 이곳 경치에 반해 ‘신선이 놀고 간 자리’라는 뜻의 요선(邀僊)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주천강과 요선암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는 바로 요선정이다. 주천면에서 8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수주면으로 들어선 뒤 법흥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보일 듯 말 듯하게 ‘요선정, 미륵암’ 표지판이 있다. 미륵암까지 차를 타고 가서 뒤쪽 숲길로 100m 남짓 올라가면 요선정이다. 뒤편으로 난 숲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요선정이 나온다. 정자 앞에는 소박한 형상으로 마애여래좌상과 석탑이 있다. 요선정은 조선시대 숙종과 영조, 정조가 어제시(御製詩)를 남겨 놓았다.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마애불이다. 턱없이 길쭉한 상체는 황금비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름 근엄한 표정의 불상이지만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눈을 감은 듯 뜬 듯 앉아 있는 모습은 뭔가에 심술이 나서 뾰로통한 것 같다. 고려시대 지방의 한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것으로서는 유례가 별로 없는 마애불이라고 한다. 조형미에 대한 감탄보다는 장난을 걸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의 친근함과 소박함이 매력이다. 불상 뒤편으로 돌아서면 굽이굽이 돌아가는 주천강을 발 아래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이 있다. 여름 한철에도 잘 붐비지 않아 이름 그대로 ‘신선 놀음’에 맞춤이다. ●그래! 한우 먹자 영월을 찾는 이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 바로 다하누촌이다. 한우직거래의 새 지평을 연 곳이다. 2007년 8월 문을 연 뒤 늘 한산하기만 하던 주천면 섶다리마을을 사시사철 아이들 소리, 사람의 시끌벅적함으로 채운 일등공신이다. 여름, 겨울 성수기때면 마치 영월 필수 방문코스인 듯 하루에도 수천명이 찾아와서 한우를 먹고 가고, 싸들고 간다. 다하누촌 영업방식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서울 노량진시장에서 횟감 사들고 식당 찾아가 밥값, 차림비용 내고 회를 먹는 식이다. 100% 보장하는 한우 생고기가 300g에 8000원부터 시작하니 저렴함은 말할 것도 없다. 다하누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 30여곳 중 하나로 찾아가면 된다. 차림 비용은 한 사람당 2500~3000원이다. 특히 매력적인 점은 식당에 가면 상추, 깻잎, 고추 등 일반적인 쌈 채소는 물론이고 곤드레, 산뽕잎, 곰취 등 깊은 산속에서 뜯은 웰빙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하누촌의 또 다른 미덕은 바로 매달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이벤트 프로그램’이다. 이벤트 내용에 따라 달라지지만 100원에 한우 한 근을 사갈 수 있는 등 턱없이 싼 값으로 한우를 팔거나 경품으로 내놓는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난 5월 ‘제2 다하누촌’으로 문을 연 김포에서도 섶다리마을과 마찬가지의 이벤트 행사를 벌인다. 영월까지 가기 멀다면 강화도 가는 길에 있는 김포를 들러도 마찬가지다. 관련 문의 1577-5330. 아, 다하누촌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멸종 위기에 놓이며 천연기념물 지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제비가 다하누촌 본점 처마 밑을 비롯해 섶다리마을 곳곳에 너무도 흔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새끼 제비들의 지지배배 노랫소리가 한우 사러 들어가는 배고픈 이들의 발걸음을 잡아세우곤 한다. 역시 청정무구 영월이다. 다하누촌이 아니라면 딱히 먹을 거리가 없다. 대신 영월읍 복판에 있는 서부아침시장통에 가면 올챙이국수와 메밀전병, 보리밥, 순대국밥 등 소박한 먹거리가 지천이다. 또한 흔히 먹는 곤드레나물밥과 달리 곤드레를 끓여서 먹는 곤드레국밥은 영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과음 뒤 해장에 딱이다. 영월읍 리버가든(033-375-8804) 등에서 내놓고 있다. 날짜를 잘 따져본 뒤 덕포 5일장(4, 9일)과 주천 5일장(1, 6일)에 맞춰 가게 되면 장터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사진 영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작품은 인간문제에 천착… 중국은 탄탄한 서사구조 자랑”

    “한국 작품은 인간문제에 천착… 중국은 탄탄한 서사구조 자랑”

    │상하이 박록삼특파원│번역(飜譯)은 어렵다. ‘완벽한 번역’이란 애당초 성립될 수 없는 명제다. 오죽했으면 “번역은 반역(反逆)”, “모든 번역은 오역(誤譯)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을까. 실제 원작 속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오롯이 담긴 그 사회의 문화, 역사, 철학, 그리고 작가의 삶의 흔적, 정신세계 등을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바꿔서 고스란히 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이런 탓인지 국내외 문단에서 번역가가 작가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세태와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가 있다. 그는 엄연히 자신의 작품으로 1993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뒤 ‘계수나무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등 장편소설 2권을 펴낸 소설가다. 하지만 그는 번역에 목숨을 걸었고, 꼬박 17년 동안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두 나라의 주요 작품들을 상대의 언어로 옮겼다. ●양국 오가며 주요작품 상대 언어로 풀어 그 결과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중국의 대표적 작가인 모옌(莫言), 자핑와(賈平凹)를 비롯해 ‘80후 세대’로 쓰는 책마다 수백만부씩 팔리는 젊은 작가 한한(韓寒), 그리고 서구에서 더 평가받는 왕안이(王安憶), 리얼, 류전윈(劉震云) 등 내로라하는 당대의 작가들이 작품을 싸들고와서 번역을 부탁하는, 그러나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돈도, 명예도 모두 거부한 채 싸늘히 손 내젓는 번역가가 됐다. ●최근 ‘태백산맥’ 중국어판 번역 부탁받아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최수철, 박상우, 임철우 등이 그를 통해 중국 독자들에게 소개됐고, 중국에서만큼은 국내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보다 유명한 작가로 통한다. 최근에는 소설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의 중국어판 번역을 직접 부탁하기도 했다. 물론 워낙 방대한 분량이기에 단시간에 번역되기 어렵다. 또한 해방과 분단을 둘러싼 이념과 정치체제의 문제가 등장한 작품이기에 중국 당국으로부터 쉬 허가가 나올지도 미지수다. 아무튼 중국과 한국 문단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소설가이며 한·중문학 번역가인 박명애(47)씨. 그는 대륙과 한반도의 문단에서 공히 알아주는 ‘대찬 여자’다. 최근 중국 상하이(上海)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중국의 여류 소설가인 탕모(唐墨·31)와 함께 한 자리에서 내내 중국어와 우리말을 섞어가며 유쾌하게 자리를 주도했다. 번역 작업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그는 “나는 출판사에서 의뢰받고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작품을 번역해 출판사에 작품 출간을 의뢰한다.”면서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작품이 애정을 받을 때의 뿌듯함이란 내 것, 남의 것을 뛰어넘은 예술적 희열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십수년 동안 남의 소설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에 주력하던 박씨는 올해 하반기 모처럼 자신만의 창작물을 내놓는다. 자전적 내용을 담은 작품 ‘광인의 사랑(狂人的愛情)’이다. 애초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내놓으려 했으나 일단 중국에서 먼저 출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중국 문단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예지로 꼽히는 ‘쭤자(作家)’에서 특집 기사로 다룬다. ●자전적 작품 ‘광인의 사랑’ 출간 예정 그는 “중국이나 한국 모두 세계 문학의 비주류라는 피해의식이 강한 것 같다.”면서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는 한국 문학과 탄탄한 서사구조를 자랑하는 중국 문학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교류한다면 세계문학의 주류로 나아가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호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youngtan@seoul.co.kr
  • 가족간 증오와 폭력 그 끝은…

    위태롭고 불완전하지만, 끝내는 여성들만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이루게 되니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잠시 일단락되고 잠복한 증오와 폭력의 고리가 언제 수면 위로 다시 터져나올지 공포스럽게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읽기에 참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저 덮어버리기에는 극악한 고통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인물과 상황의 흡인력이 너무 강하다. 소설 속 작중 화자인 ‘나’(화숙)는 물론 정신지체 장애인으로서 집단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어머니도, 고물상을 하며 주먹질을 일삼는 외삼촌도, 알코올중독에 찌든 외할머니도, 도박중독증 남편으로부터 벗어난 뒤 만난 옛사랑의 폭력에 또다시 시달리는 외사촌 수연이도, 피붙이로부터 버림받은 수연이의 딸도, 극심한 월경증후군으로 딸과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친구 진순이도 모두 피학 또는 가학의 주체로서 돌고 도는 증오와 폭력, 짓밟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화숙은 중학교 2학년 겨울, 외삼촌이 어머니를 ‘사실상 죽이는’ 장면을 생생히 목격한다. 하지만 못본 척한다. 그리고 외삼촌의 딸 수연이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가한다. 또한 수연이의 어머니, 즉 외숙모와 고물상 직원 ‘이씨’가 바람이 났다며 거짓 고자질을 해 두 가족을 풍비박산 내는 것으로 복수한다. 보복의 고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수연이가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다시 찾은 옛사랑 ‘재현이’는 ‘이씨’의 아들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 깔린 원한을 일상적인 폭력으로 수연에게 되갚는 것이다. 화숙으로부터 뒤늦게 이 사실을 접한 수연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김이설의 첫 장편소설 ‘나쁜 피’(민음사 펴냄)의 얼개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이설은 등단작 ‘열세 살’에서 보여줬던,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의 추악함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솜씨가 더 정교해지고 세련돼졌다. 이번 작품에서도 증오와 분노, 폭력이 어떻게 순환되며 계속 생명을 유지해 가는지 끔찍이도 정확히 보여준다. 배경의 시간과 공간은 명확하지 않지만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 떠밀려 가는 주변부 하층민들의 삶을 그려 냈다. 전형적인 계급간 갈등이 아니라 계급 내부, 가족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을 적나라한 절규와 비명으로 풀어낸다. 문학평론가 백지은은 “김이설이 음울한 고통의 세계로부터 기운차게 창조되는 인간의 위대한 환함에 대해 고개 끄덕일 아름다운 긍정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위로